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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3년12월 1일부터 2023년 12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하였습니다.

2022년 12월, 2022년 마지막 달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임희진 님의 「궤도 위에서」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반신 <문이 없는 집>
의아한 상황에서 출발하여 1인칭 시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심정을 따라 묘사하는 글입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의 사람의 1인칭은 독자가 몰입하기 쉬운 반면 극한으로 몰린 인물의 1인칭은 독자가 몰입하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렵지요. 단락의 구분도 없이 오직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내몰리는 글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주인공이 누나라는 사람에 의해서 병원에 갇혔고 주변의 인물들은 의사나 간호사, 병원의 환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직접 대화 대신 인용만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인물과 독자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듭니다. 나는 정말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살 압력을 받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의사의 말대로 망상일 뿐일까요. 불완전하지만 서로 교류가 있었던 소아와 연락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아의 존재 역시 나의 망상이었던 게 아닐까 불안해집니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많은 사건을 상상하게 만드는 느낌의 글입니다. 작가가 그걸 의도한 것이라면 성공적인 것이겠지만, 독자에게 최소한의 가독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김성호 <사과를 먹어봤어>
사랑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소설로 썼다면, 그 소설은 누구의 작품일까요. 작가는 자신의 프라이버시(어쩌면 연인의 프라이버시까지 포함해서)를 지키기 위해서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을 연인은 공모전에 출품하고 당선합니다. 소설은 표절이지만 이야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표절이 아니라는 논리, 그러므로 자신은 계속 소설을 쓰겠다는 주장은 주인공의 우울증을 더욱 심화시키지요. 소설이 공개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은 밝히고 싶지 않았던 이들에게 다 노출되는데 자신의 소설이지만 당선의 영광을 안은 것은 전 연인입니다. 실제 이야기를 소설로 옮겼을 때 등장인물의 인격은 어떻게 취급되어야 하는지, 분명한 표절 건에 면죄부를 줄 권리를 누가 가질 수 있는지, 창작자로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담담한 문체로 그려집니다. 화자가 삶의 의욕을 찾게 되는 것이시를 쓰는 청년과의 만남 때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화자가 우울해 진 것은 자신의 소설을 연인이 표절했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정체성이 모두에게 밝혀졌기 때문일까요, 연인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배신했으면서도 다시 잘 지낼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일까요. 사람의 관계와 소설 속에 실제 인물을 어떤 식으로 극화할 것인지 생각할 점이 많은 소설이지만, 마지막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모든 것을 극복한 모습처럼 그려지면서 소설가로서의 도덕성 문제가 가볍게 마무리된 느낌이 아쉽습니다.

임희진 <궤도 위에서>
부부가 될 사람만이 출발 가능한 화성행을 준비하다가 두 커플이 각각 남녀 한명만을 남기고 출발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남아있는 두 사람은 화성행을 포기하지 못하고 커플로서 화성에 출발합니다. 친밀한 적 없는 사람과 부부가 될 수도 있는 길을 택한다는 것은 그만큼 화성행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지요. 그런데 사고로 커플이 되어 출발한 두 사람이 탄 우주선은 화성에 도착하지 못하고 우주 정거장에도 도착하지 못한 상태로, 60년치의 식량을 실은 채로 계속 궤도를 돌게 됩니다. 누구도 살아있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시간을 둘이서 보내면서 화성행도, 지구로 귀환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연히 조우할 사람들을 위해 우주 방송을 시작하는 남자의 행동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희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답을 숫자로 받아든 사람이라면 반대로 감성적인 무언가에 매달릴 만도 하지요. 궤도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결말을 읽고 나면, 절망이 거듭되는 상황에서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위로를 받는 것이 사람이고,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예정된 종말을 향해 무기력하게 있기 보다는 작은 희망으로 뭔가 시도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우지 <종말의 마라토너>
햇빛 아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종말을 맞이하고 햇빛에서 피해 있었던 사람만이 살아남은 아포칼립스의 시대에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아 오직 자신의 생존력만을 키우며 살아가는 주인공은 어쩌면 재난에서 살아남는 것은 우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한 사람에게 손을 뻗었더니 예상하지도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책임지게 되고, 어느새 그들 안에서 권력을 잡은 이는 정중하게도 주인공에게 구원자로서 모두를 계속 책임질 것을 요구하지요. 거둔 것은 주인공이지만 그는 그들을 내보낼 수 없으므로 권력자가 제안한 선택지란 결국 무한한 책임 혹은 피난처 양보 사이의 양자택일이 됩니다. 담담한 어조로 아포칼립스에 생존해 나간 주인공은 일견 차가워보이지만, 재난 상황에서 자신은 생존하되 권력을 원하지도 않고 이 세계에 새 생명을 무책임하게 내보내지도 않으려는, 책임감 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포칼립스에서 무한 약탈과 도덕 경시의 삶을 당연하게 그려내는 작품들도 많지만, 권력자로 군림하거나 추앙받는 자리를 거절하고 당연한 듯이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말의 부분에서 다소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주는 건 어땠을까요.

두영 <AI로 만든 이야기>
작가는 때로 누군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대신 써 주길 바라기도 하지요. 때로는 자신이 읽고 싶은 글을 누가 대신 써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서 AI가 예술가를 도태시키는 이야기를 쓴 작가가 이야기를 창작하는 AI에게 이야기를 지어내도록 하는 설정이 흥미를 더합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말은 작가가 정하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그러면서도 결말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AI와의 첫 대화는 정말 저런 것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작가와 AI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호기심을 더해가던 전체의 스토리는 AI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방향으로 급전개하다가 마지막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은 처음 출발에서 조금 멀리 간 게 아닐까요. 글쓴이의 말대로 AI의 대화에서 살을 붙여 만든 스토리여서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전체적으로 글의 짜임을 생각해서 쓴 글이라기보다는 손이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쉽습니다.

 

4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4분기 우수작은 10월 후보작인 쟁뉴 님의 「카페 플루이드」와 12월 후보작인 임희진 님의 「궤도 위에서」 중에서 쟁뉴 님의 「카페 플루이드」가 4분기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A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소속해야하는가? 이러한 정체성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이 오후 세 시의 성별전환이라는 상황 설정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주제와 작품을 끌어가는 핵심 설정이 단단하게 결합된 솜씨가 감탄스럽습니다.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고, 누구에게나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다듦이 세상에 드러날 때의 두려움을 섬세하게 다루는 작가의 시선에서 애정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B
첫문단부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설정을 제시하고 그로부터 오는 낯선 긴장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서사의 힘이 놀라웠습니다. 소수자 정체성을 다루는 이야기는 많지만, 이처럼 선천적 조건에 의해 극단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인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는 그리 흔하지 않지요. 매일 매순간 평범함을 가장하지만 결코 타인과 같아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있는 인물의 외로움이란 얼마나 아득한 것일지 내내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그에 대해 이 이야기의 결말은 정말로 훌륭한 답을 내어주고 있네요.

C
하루에 한 번, 오후 세 시마다 성별이 바뀌어버리는 사람. 태어날 때는 여자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여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한낮에 성별이 바뀌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생활이 이어집니다. 성별이 등록되어 있는 신분증,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성별인지 꼭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 쉬워서,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성별이 도중에 바뀌는 기이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쉽게 누군가를 범주화하고 그 범주로 규정하려고 하지요. 인종, 국적, 성별, 나이, 외모. 그리고 이제는 혈액형을 지나 MBTI까지 누군가를 잘 재단된 칼로 나누듯이 판별하고자 합니다. 지원과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범주로 나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상당 부분, 우리는 타인을 범주화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가끔 마주치는 카페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든, 중요한 것은 그가 어디에 속하는가가 아니라 그와 나의 관계가 어떠한가겠지요.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의 시점으로 파고든 지점이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D
어느 세계에서나 문화는 성별 정체성을 기준으로 형성되고, 여러 정체성 중에서도 젠더 플루이드한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배제되곤 하지요. 마치 그게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인 마냥. 혼란과 재제의 이야기를 물리적 실제로 만들어버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인체(를 비롯한 여러 생물학적 개체)는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고, 인간의 문화는 강고해보이지만 지금도 유동적으로 형성되고 있지요. 주인공의 삶을 아주 자연스럽게 내러티브화한 점이 훌륭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에 고점과 저점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E
여전히 성기의 형태로 개인의 성별을 판단하는 세태를 유쾌하지만 직관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식기가 변하는 외의 차이가 없이 거창하게 성별이 바뀐다고 말해도 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일생일대의 고민을 마주한 듯한 부모의 모습은 과장된 것 같지만, 지금의 현실을 꼼꼼히 따졌을 때 그들에게 닥친 것은 말 그대로 시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 지원의 부모는 아이의 성별이 열두 시간마다 바뀌는 걸 당장의 어려움으로 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욱 성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 왔을 테니까요. 그들의 대사에서도 종종 이런 비의도적 차별이 묻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별을 이분법으로 보는 세상. 그 안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지원의 모습을 보며 독자는 지원의 인생에서 진짜 시련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지 깨닫습니다. 지원의 본질이 변하지 않음에도 그를 규정하고자 하는 세상이 지원과 그의 가족, 평생에 걸친 시련이 아니었을까요.
지원은 분홍색과 파란색, 오줌 싸는 자세, 변성기,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 생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비전형적인이라고 작가가 표현하기는 했지만 이런 몸은 보통 세상에서 비정상이라고 불리곤 하죠. 작가는 지원을 향하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가도, 그와 같은 몸을 가진 사람들, 성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가져오는 과정에서 그들을 둘러싼 혐오와 차별의 수준을 잠시 낮추기도 합니다.
지원이 익명에 편입되는 장면은 그렇기에 흥미롭습니다. 익명은 한 사람의 신상을 숨기는 역할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개인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겠지만 그 책임을 잘 이행하는 이들에게 익명성은 안전지대입니다. 성별과 시선을 뛰어넘어 익명으로 연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지 않아 이런 특성이 소설에 짙게 묻어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그것 또한 지원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말부에 나오는 담이라는 인물 역시 이런 익명성을 드러내고 있으니 익명의 존재들이 지원에게 더욱 힘써 연대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으면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 되었으리라는 제안은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지원의 변하는 몸뿐 아니라 더 많은 소수자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지원은 검정고시를 보는 학교밖청소년으로 잠시 살기도 하고 미라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으며 휠체어에 탄 학생을 친구들이 놀리는 장면도 목격합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이야기를 쓰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반영하듯이 지원의 변하는 몸은 소설의 결말에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존재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카페 플루이드에서 더 유동적이고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지원의 모습이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장편 또는 연작의 모습으로 카페 플루이드라는 공간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소설을 쓰는 데에 있어 구성과 문장의 세밀한 결합은 언제고 작가에게 숙제로 남습니다. 이 소설에도 간단한 비문이 발견되긴 합니다만 퇴고와 검토로 충분히 발견되어 수정 가능한 수준입니다. 이는 글을 쓰는 시간이 쌓임에 따라 일정 부분 해결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고 소외된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는 분명 독자를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는 듯합니다. 작은 실수를 확대하기보다는 더 큰 장점으로 이를 충분히 덮는 작가의 능력과 환상문학으로 소수자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조명한 시도에 가산점을 주어 카페 플루이드에 한 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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