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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11월 심사평

2022.12.15 00:0012.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2년 11월 1일부터 2022년 11월 30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하였습니다. 해당 기간 업로드된 7편의 소설 중 victoria 님의 〈초롱초롱 거미줄에 옥구슬〉과 푸른발 님의 〈사랑, 미칠 것 같은, 심가와의, 끝내 죽지 않는〉은 작품의 우수성과는 별개로 분량 기준을 초과하여 심사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독자우수단편의 심사 기준 분량은 창작게시판의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3기 심사단 선정)’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022년 11월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없습니다. 다음 달을 기대하겠습니다.

 

해리쓴, 〈사람의 얼굴
‘삵’이라는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혼합한 반半인간 괴이를 등장시켜 신비로운 공포를 자아내는 소설입니다. 한 아파트에서 나이 지긋한 경비원이 의문의 존재를 쫓는다는 상황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소외되는 인간이 초월적으로 보이는 대상을 추격하며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진행됩니다. 경비원에게 함부로 하는 주민들의 모습과 공진이 처한 열악한 근무 여건을 고려했을 때 수상쩍은 존재를 향한 공진의 추격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질 여지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런 배경 설정에도 불구하고 모든 장면이 하나의 맥락으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서두에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성폭행 사건, 도중에 인용되는 노자의 도덕경, 주민들이 경비 직원에게 질 낮은 음식을 주는 행위, 삵의 얼굴을 한 사람, 사람의 얼굴을 한 짐승, 괴롭힘당하는 고양이들, 102동 9층의 미스터리, 공진이 위험한 음식을 받은 아이를 걱정하며 끝나는 결말까지 주요 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개별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분절은 ‘삵’의 얼굴을 한 사람을 분명히 정의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삵의 얼굴을 한 사람은 괴이로서 존재합니다. 실제로 있을 법한 인물도 아닐뿐더러 끝내 정체가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 삵이 소설 안에서 지니는 ‘의미’까지 희미해져 버린다면 이야기의 기반이 흔들리게 됩니다. ‘삵’의 존재가 주인공인 공진의 모든 행동과 소설의 중심을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삵의 소설 속 유일한 기능은 공포감 조성뿐입니다. 환상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는 하지만, 뚜렷하게 하나의 단어로 삵의 역할을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그와 관련된 일련의 장면이 단지 흥미로운 추격 장면으로만 남습니다.
하나 더, 완독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삵이 잡히는 결말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공진이 삵을 잡는 장면은 ‘신비’스러운 괴이의 활동 종결을 의미합니다. 이는 더 이상 소설 안에서 삵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사라짐을 의미하죠. 그렇기에 이후 아이가 들고 사라진 ‘위험한 음식’의 등장은 생뚱맞습니다. 심지어 공진에게 그 음식을 준 주민은 삵의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주민이 삵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적당한 암시가 있었다면 앞 사건과의 연속성으로 인해 오싹함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삵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옛날이라고 해서 딱히 서로를 더 믿었던 건 아니란다.”라는 등의 대사를 보았을 때 해리쓴 님은 〈사람의 얼굴〉에서 인간의 불신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적 공포를 형상화하기 위해 삵을 끌어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삵의 존재를 숨긴 채, 계속되는 주민들의 반목과 고조되는 범죄상을 모두 미지의 존재인 삵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삵을 끝내 잡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 공진의 여정을 꼼꼼히 좇기만 해도 이 소설은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이 글을 쓰며 힘을 싣고자 했던 장면을 모두 추려내어 필요없는 부분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아울러 ‘삵’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한두 줄 내외로 정리해 보세요. 이 작품의 플롯 수정과 보완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폭력이 자극적인 소재로만 끝나지 않게 주의하며 삵의 의미와 공진의 직업인 경비원, 주민들이 취하는 무심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적절히 이야기에 안배한다면 분명 좋은 소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단편 잘 읽었습니다.

김성호, 〈슈타겔의 남자들 
한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엮은 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자신을 게이로 커밍아웃한 작가와 그의 열렬한 남성 독자들이 맺는 관계에 주목하며 읽었습니다. 동성애자인 독자가 동성애자인 작가의 죽음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며 쓴 글이기 때문에 퀴어에 관한 의제를 끌어올 여지가 있는, 더불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의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철이 덜한 문장들과 간간이 빛나는 대사, 특히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하진에게 “소설을 써야 하는 손이네요”라는 슈타겔의 말 등을 보았을 때 글의 힘이 없지는 않은 단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여건 안에서 인물 개개의 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석연치 않은 부분이 포착됩니다. 동성애자로 자신을 정의하고 가짜 죽음을 꾸민 슈타겔과 그런 슈타겔을 추종하는 독자들. 그들의 관계를 세세히 톺아 보았을 때 어색한 대화와 장면이 속속 등장합니다. 특히 하진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신을 얻다 두고 일하는 거예요?”라는 디자이너의 말에 “이게 다 슈타겔 때문이에요.”라고 답하는 부분, 그리고 이어지는 “저번 주에 자살한 소설가요.”라는 슈타겔에 대한 부연은 비일상적이고도 독자로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사들입니다. 물론 이런 대화로 낯섦을 형성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목적하는 낯섦에 선행하는 부자연스러움이 있다면 독자에게는 요철로 읽힐 여지가 있는 대화입니다.
이 소설에서 슈타겔의 죽음은 하진과 민혁을 연결합니다. 한 작가의 죽음이 두 독자의 사랑을 돕는다는 설정이 재밌습니다. 그렇기에 하진은 슈타겔이 사실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기뻐하기는커녕 민혁과의 이별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슈타겔의 사인회에 가서 다시 죽을 생각은 없는지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의 손에 민혁의 이름으로 사인을 받아 나옵니다. 뒤에 언급되는 사이렌 소리가 민혁이 돌아올 타이밍에 울린다는 점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인물이 민혁이라는 점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슈타겔의 죽음, 그리고 실제로는 살아있었음에 어떤 의미가 존재해야 할까요. 단순히 슈타겔의 죽음으로 민혁과 하진이 이어지고 슈타겔이 살아있음으로 둘의 사랑이 종결되는 소설의 구조에 모든 인물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소설은 재미있는 관계의 구조를 만드는 데에서 그치기에는 아깝습니다. ‘슈타겔’이라는 인물이 소설가임에도, 그가 남긴 글과 인기, 명성에서 더 추출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없었을까요. 또는 민혁과 하진의 관계가 슈타겔의 소설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들이 좀 더 슈타겔에 깊이 몰입하던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요. 인물을 좀 더 과감히 움직이는 시도를 해보세요. 개별 인물의 색이 분명할수록 소설은 뚜렷해집니다.
보완 사항을 한 가지 더 꼽자면 제목이 〈슈타겔의 남자들〉임에도 슈타겔이라는 인물이 이 소설에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 든다는 점입니다. 슈타겔을 향한 작가의 인물관이 불분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민혁과 하진을 이어주는 인물의 직업이 소설가가 아니라 가수라도, 교사 또는 영화감독이더라도 이 소설은 나름대로 성립합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하진과 민혁을 잇는 인물로 왜 소설가를 선택했는지 독자들에게 좀 더 납득이 될 만한 근거를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런 결정적인 빈틈은 슈타겔의 전사(前事)가 부족함에서 비롯됩니다.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슈타겔의 정보는 그가 이 글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함에 비해 매우 적습니다. 그는 어떤 작가였을까요. 그가 자살로 죽음을 위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그가 글로써 쓰고 싶던 퀴어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은 왜 그의 팬이 되어야만 했을까요. 퀴어와 소설가는 다양한 맥락에서 흥미롭게 엮일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이 소설에서는 단지 표면적인 정체성 형성에 그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퀴어’라는 단어에 지나친 무게를 두고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전히 ‘퀴어’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소설에 나올 때 최소한 그들의 등장함으로써 전달되는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진과 민혁의 형태를 뚜렷이 빚어가는 동시에 그들과 슈타겔의 삶에 인과를 부여한다면 더 풍성하고 다양한 장면의 구성이 가능할 듯합니다. 등장하는 이들의 심리나 행동의 이유를 좀 더 과감하게 설정해 보세요. 더불어 독자들에게 납득이 가능할 만한 대화와 장면으로 소설을 구성한다면 읽으면서 드는 질문을 수월히 해결할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사항을 이것저것 말씀드렸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아람, 〈처음과 끝 
“우리의 행성 밖에 외계 문명이 실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아니다”라는 도전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입니다. 외계 생명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그것이 가설이 아니라 지구와 인류에게도 영향을 미쳤을(혹은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희곡을 시작으로 최근의 천문학적 견해까지 다방면의 지식을 포괄한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아마도 이아람 작가는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가 아닐까 짐작해 봄직합니다.
그러나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듯합니다. 하나의 완결된 글의 단위로만 보았을 때 〈처음과 끝〉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만, 이 글에서 소설의 역할을 하는 문장, 그러니까 작가가 자신의 상상을 기반으로 가공하여 썼음직한 부분은 “1907년,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남아있는 하버드의 교정을 가로지르며 헨리에타 리비트는 청교도다운 단정한 블라우스를 입고 하버드 천문대로 출근하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후 세 문단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장면만이 소설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물과 사건, 배경이 소설의 기본 구성 요소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 글은 하나의 창작품이 될 수는 있으나 소설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후술할 내용은 소설을 평해야만 하는 심사자로서 적는 의견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 글에 쓰인 대부분 문장이 소설의 것으로 볼 수 없음에도, 앞서 언급한 헨리에타의 등장은 소설로서 독자를 집중시킵니다. 이 논픽션 안에서 소설의 역할을 하는 부분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헨리에타의 움직임과 그것을 묘사하는 문장이 매우 소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대목은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 당대의 현실을 거칠지만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글을 소설로써 평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지 이아람 님의 문장 자체는 소설을 쓰기에 이미 어느 정도 완성도가 갖춰져 있습니다.
이 글을 소설로서 보완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가공을 거치면 좋을지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마치 소설을 쓰기 직전, 작가가 깔끔히 정리해 놓은 자료와 같습니다. 충분히 소설로 쓰일 여지가 있고 소설의 중간에 삽입되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의 풍부한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내용이 하나의 주제를 향한다는 점에서 목적성도 상당히 뚜렷합니다. 다만 이 글에는 전술하였던 소설 구성의 3요소 중 사건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시공간적 배경은 헨리에타가 살았던 당대로, 또는 그로부터 과거와 현재로 설정이 가능하지만,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건이 될 만한 지점, 특히 이야기로 풀어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역시 헨리에타의 삶입니다.
소설 속 헨리에타 리버트(온라인에서는 헨리에타 리비트로 검색되는 천문학자와 동일인으로 보겠습니다)는 실존 인물로서 여성이고 천문학자입니다. 그리고 다른 남성 천문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진 인물입니다. 여성으로서, 천문학자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만한 독자가 많을 것이라는 점과 작가만 알고 있는 독특한 분야의 지식이 읽는 이에게 이끌어낼 호기심을 생각하면 충분히 소설로 가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은 당대 천문학자로서 여성이 다수였음에도 역사에 이름이 남은 이들은 남성이라는 점입니다. 페미니즘의 리부트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금, 여성학의 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헨리에타는 세계가 우주를 보는 눈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독자로서 첨언하자면 헨리에타의 삶을 더욱 알고 싶습니다. 지면과 심사의 형평성에 관련하여 심사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만, 소설을 쓰는 것, 특히 천문학의 신비로움을 글로 풀어내기를 계속하셨으면 합니다. 사건과 배경, 인물을 놓치지 않고 쓰다 보면 분명 충분히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위수림, 〈다카포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소설입니다. 음악적 요소인 다카포가 이야기 속 회귀의 속성과 맞물려 ‘되돌아감’의 의미를 분명히 형성하고 있습니다. 읽는 동안, 마치 음표와 쉼표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환상문학에 신비함을 더하던 쌍둥이의 유사성까지 알뜰하게 끌어온 단편입니다. 짧은 분량임에도 완결성이 있고, 꿈을 두 정신의 연결점으로 삼아 태국과 미국을 오가는 거대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12분 늦게 태어난 동생, 12시간 전으로 회귀하는 꿈 등 ‘12’라는 익숙한 숫자가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여행의 주된 규범을 다양하게 끌어와 썼음에도 그것이 모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시기적절하게 쓰였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카포〉의 보완사항은 이런 장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만약 수정을 거칠 예정이라면 글의 분량을 늘이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나하나 떼어두고 보면 개성이 강한 소재가 여러 개다 보니 분량이 다소 짧게 느껴집니다. 지금 이 단편은 어떤 장편의 시놉시스 또는 도입처럼 보입니다. ‘꿈’이라는 소재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충분히 매력적이고 광범위함에도 〈다카포〉의 주인공에게 설정되는 욕망은 매우 협소합니다. 주인공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소설의 진행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생을 살리겠다’라는 생각만으로 12시간 전의 꿈이자 라린의 현실에 접속한 메이는 그것에 성공합니다. 라린이 성공적으로 돌아온 후 이야기는 끝나게 되죠.
그러나 전술하였듯 이 소설의 공간과 상상이 워낙 넓은 범위를 포괄할 가능성이 있기에 독자는 쌍둥이와 꿈의 접속만으로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메이의 욕망이 하나로 설정되었고 그것이 완수되어 끝난 이 단편은 완결성의 면에서는 흠이 없습니다. 그러나 연속성 내지는 플롯의 풍부함에서는 독자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하지 못합니다. 마치 대극장에서 활용할 법한 무대장치를 꾸며놓고 짧은 단막극을 공연한 것과 같습니다. 화자가 동생에게 느끼는 열등감, 동시에 가족으로서 그녀를 사랑하는 애정을 작가가 면밀히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동생과 화자와의 에피소드를 한두 개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서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단편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멋진 장면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이와 라린이 그들의 능력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요. 자매를 넘어 더 많은 이들과의 관계를 상상해보세요. 메이와 라린의 신비한 꿈이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거나, 세계를 살리거나 죽이는 데에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물의 욕망과 그것의 결말은 글을 쓰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겠으나 훌륭한 이야기에 독자로서 후속을 기대한다는 의견은 드려보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미 완결되었으니 대범하고도 과감한 상상력의 무대에 더 많은 인물과 시공간을 올려 보세요. 충분히 나아진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좋은 단편 잘 읽었습니다.

위수림, 〈엘에프오 마음
자신의 주변에 적응하지 못하던 서연이 우주에서 온 ‘너’를 만나고 그와 있었던 짧은 시간을 회상하는 형식의 소설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모든 움직임을 정지하는 섦릸의 등장은 소설의 도입에서 독자를 흡인력 있게 끌어당깁니다. 그런 그를 “단둘이 대화를 하고 싶다고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멈춰버리는 아이”라고 말하는 서연의 말은 외계에서 온 ‘너’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섦릸은 오직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주에서 왔으며 지구의 시간과 공간을 조정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이죠. 이처럼 〈엘에프오 마음〉은 하나의 장면과 그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이 섬세하게 맞물리는 단편입니다. 외계에서 온 ‘너’의 목소리가 “어떤 구획 안에도 들지 않겠다는 듯 퍼져”나간다는 표현이나 우주를 가로질러 단 한 명의 짝을 찾는다는 설정 등 자신만의 문장과 상황 설정에 능한 작가가 쓴 글처럼 보입니다.
사실 지구 밖 생명을 다룬 소설을 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기에 작가들에게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콘텐츠에서 지나치게 ‘지구다운’ 모습을 걷어내는 게 관건입니다. 〈엘에프오 마음〉은 한글의 조합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철자들을 모아 단어를 만드는 방식으로 낯섦을 꾀합니다. 분명 한 존재의 이름과 그의 모행성에서 소통에 사용하는 기관의 명칭을 어색한 철자로 써놓았을 뿐인데도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작은 변화를 소설 안에 꾸준히 등장시켜 특정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사소한 센스가 좋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수림 작가는 세밀한 문장을 요하는 청소년 소설의 작법에 능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특성을 글 안에서 더 살리기 위해서 조금은 감상적이고도 추상적인 장면을 걷어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문장 자체가 이미 충분히 부드럽고 감각적이기 때문에 추가로 아름다움을 의도하거나 연츌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섦, 난 가끔 말하는 법을 잊어.”라는 문장은 언뜻 보았을 때, 한 세계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는 서연의 처지를 ‘말 못함’에 빗대어 드러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말하는 법을 잊는다’라는 표현을 조금 더 오래 곱씹자면 의미가 희미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이 앞뒤 맥락과 유연히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앉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세상에 뿌연 막이 있는 것만 같아.”라는 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뿌옇다’라는 말은 감각적인 표현 같지만, 굉장히 추상적인 단어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뿌연지, 또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뿌연지, 심지어 세상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이 모든 것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글에 쓰인 문장과 표현을 볼 때 위수림 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가리키는 구체적인 장면을 찾을 역량은 충분해 보입니다. 조금 더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표현을 발굴해 보세요. 감동을 주기 위한, 특히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문장이 꼭 아름답고 추상적이기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화된 감정을 덜어낼 때 드러나는 세련됨도 독자가 소설에 매료되는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단편 안에 들어가야 하는 인물과 사건, 배경의 범위를 정확히 측정하고 알맞은 분량으로 써내릴 줄 아는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정확한 묘사와 자신만의 구체적인 문체를 발굴해 낸다면 좋은 소설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우주적 상상에 능한 위수림 님의 독특한 다음 소설도 읽고 싶어지네요. 개인적으로는 〈엘에프오 마음〉이 남유하 작가의 수상작 「푸른 머리카락」과 유사한 인물 관계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좋은 단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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