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경계선, 인격, 장애

최의택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피곤에 절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얼른 입을 열지만,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 상황이 낯설어서? 그건 아니다. 변호인의 신분까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더 들어주기 위해 ‘대리인’이라는 다소 주제 넘는 호칭을 들먹이며 이곳에 찾아온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리기 위해서는 앞에 보이는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아야만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이곳, 제복을 입은 사람보다 입지 않은 형사가 더 많은 경찰서에 처음 와 보는 사람처럼 넋이 나가서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조차 못하고 있는 이유[1]는… 아마도 그 ‘아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저 복도 어딘가(필요하다면, 적어도 앞에 있는 경찰관보다 더 상세히 누군가를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에 있는 좁은 진술실 안에서 홀로 떨고 있을 그 ‘아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아이’를…….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돌아서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휴대폰으로 명함을 불러와 경찰관에게 보인다.

“로봇권행동 위드알 대표 엄지원입니다.”

경찰관은 몇 번이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며 공들여 뭔가를 입력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안내한다. 복도를 걸으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느낌—모든 것이 낯설고, 그래서 두려운 감정에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경찰관을 따라 그 ‘아이’가 있는 진술실로 간다. 경찰관이 문을 열어주려고 해서 나는 손을 든다.

“제가 해도 될까요?”

경찰관은 약간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이고는 크게 한 걸음 물러서서 뒷짐을 지고 정면보다 살짝 높은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러면 자신의 존재가 더는 없는 게 된다는 듯이.

나는 진술실 앞에 서서 괜히 자세를 바로잡고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우선은 ‘아이’가 불필요하게 과도한 결박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부터 살피지만 어디까지나 습관일 뿐, 최근 몇년 간 과거 같은 비상식적인 행태—차마 말로 옮길 수조차 없는 일은 다행히도 많이 감소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인기척에 고개를 드는 ‘아이’의 동그랗고 말간 얼굴을 보자 나는 그만 숨을 참고 만다. ‘아이’가 ‘말한다’.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되 불완전한, 그러니까… 굳이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자면, 태풍으로 그 일부가 처참히 뜯겨 나간 건물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아이’를, 나는 감히 서서 내려다볼 자신이 없었다. 주저앉듯 무릎 꿇고서 나는 ‘아이’를 올려다봤다. ‘아이’의 얼굴만큼은, 온전했다. 마치 그것이 그 ‘아이’의 존재 이유라는 듯. 나는 ‘아이’를 보며 이전의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위드알에서 함께했던 ‘아이’들을(‘아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 ‘아이’처럼 인간형에 미성년자의 모습을 한 건 아니지만, 로봇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어쨌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지구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아이’들의 삶은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싶을 만큼 다양하면서도 하나같이 끔찍했다. 보고 있노라면 환멸이 들 지경이라 가끔은 이 일을 하는 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위드알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상 정신과 진료를 제공했고(대표인 나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이유로 직원들은 끊임없이 퇴사했다. 그런 일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직원(신입들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곤 하는)은 몇 안 되는데, 위드알은 전적으로 그들에 의해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안녕.”

자꾸만 떠오르는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내가 말했다. 굳이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아이’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서. 나에게 있어 앞에 있는 존재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설계된 상품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같은, 또 다른 존재였다.

죽어도 소리를 낼 것 같지 않은 ‘아이’와 나, 그리고 성경 씨와 세종 씨가 함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사무실은 고요했다. 성경 씨가 특유의 성미를 못 이기고 말했다.

“이름이 뭐야?”

‘아이’가 이번에는 성경 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치 움직이는 물체에 반응해 움직이는 폐쇄회로 카메라 같은 동작이 조금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고전 SF 영화에서 나오는 인공지능 로봇을 볼 때에나 느낄 법한 것이었다. 그때, 뒤에서 세종 씨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말을 못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되물었다.

“고장?”

세종 씨는 정말 혼잣말을 하다 놀란 것처럼 움찔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에, 그러니까,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아닐까…….”

옆에서 성경 씨가 반박했다.

“그건 아니야. 얘 데려온 쪽이 검사해 봤는데, 소프트웨어는 이상 없댔어.”

“그래요? 그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네. 말하는 기능이 없는 거죠.”

평소에도 곧잘 실없는 소리를 잘 하는 세종 씨의 말에 늘 그렇듯 성경 씨가 반응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물론 말이 안 되죠, 안 되는데, 또 안 되는 게 되는 곳이 이곳 일이니까.”

세종 씨 말에 순간적으로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상상이 떠올라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게 추궁이라도 하듯 말했다.

“뒷받침할 근거 있어요?”

“아… 잠시만요.”

세종 씨가 밖으로 나갔다. 자기 말을 뒷받침하기 위한 무언가를 가지러 간 거였다.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다시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말을 할 수 없니?”

‘아이’가 역시나 내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어떤 전율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아이’는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고개를 끄덕여 말했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해요. 어떤 충격이 가슴을 때린 듯 말문이 막혀서 나까지 말을 잃은 것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곧이어 커다란 가방을 양손에 들고 돌아온 세종 씨가 뭔가를 ‘아이’의 몸 이곳저곳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삐딱하게 서서 보던 성경 씨가 말했다.

“정말 이대로 해도 되는 거야? 저렇게… 눈 뜬 채로?”

“에이, 절 뭘로 보시고. 저도 여기 생활 이제 3년차예요.”

“그러니까.”

“자, 자.” 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대표인 나의 또 다른 업무였다. “세종 씨, 얼마나 걸려요?”

“어, 한 3분 정도? 얼마 안 걸려요. 그냥 실행 중인 프로세스 훑어보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뭐, 누구는 그거 확인하기 위해 PC를 셧다운까지 하는 모양이지만.”

“이게…….”

나는 손을 들어 저지했다. 작업이 시작되자 세종 씨 장비의 디스플레이에서 뭔가가 쉴 새 없이 바뀌었다. 한쪽 구석에 진행 정도가 표시되어 있어 우리는 모두(‘아이’까지도) 그곳만 쳐다보았다. 얼마 안 가 작업이 끝났다. 세종 씨가 “잠깐만요” 하고 결과를 훑어보는 동안 나는 ‘아이’ 옆에 앉아 ‘아이’의 하나뿐인 손을 잡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순전히 날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렇더라도 그 순간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네.” 세종 씨가 얼 빠진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정말 없어요. 기능뿐만 아니라 관련 장치가 아예 없어요.”

곧바로 성경 씨가 말했다.

“시발 좆같은 새끼들.”


“여기가 내 집이야.”

나는 집 현관문을 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서서 날 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뒤로하고 ‘아이’한테로 가서 ‘아이’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혹은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잡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세종 씨가 덤벙거리기는 해도 성실한 사람이거든. 알았지?”

‘아이’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은 우리 능력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세종 씨는 늘 그렇듯 간단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나는 물론 성경 씨도 찬성했고, 곧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아마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했다.

“일단은 그 팔부터 어떻게 하자.” 나는 우지끈 부러진 나뭇가지 같은 ‘아이’의 팔을 보지 않으려 서둘러 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나도 이 일 하면서 배운 게 꽤 있어.” 그러고는 ‘아이’를 보며 익살스런 미소를 보였다. “가령, 핸드폰으로 현관문 여는 방법이라든가.”

웃으라고 한 말인데 너무 고차원이었나 싶은 마음이 들 즈음 ‘아이’가 실낱같이 웃는 게 보인 것 같아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과연 정말로 우스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날 위해 웃어주는 것인지 따위가 궁금해졌고, 그러고 나니 괜히 또 회의감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닐 만큼 요즘 들어 자주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하나뿐이었다. 모른 척하기.

“들어가자.”

나는 들어가자마자 집 안 곳곳을 살폈다. 평소보다 퇴근이 늦은 것에 보복을 하기 위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우리집 꼬맹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나날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날 놀라게 했다. 지난 번에는 자는 척 자기 침대에 인형을 넣어놓고 내 방 옷장에서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우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 방에 없을 터였다. 아이는 무언가를 두 번 이상 하는 법이 없었다.

“아라? 어디 있어?” 나는 얼른 뒤돌아 ‘아이’한테 속삭였다. “내 딸. 아라. 지금 시위 중이야. 늦었다고.” 다시 집 안에 대고 외쳤다. “아라야, 오늘은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될까? 엄마 할 일이 있어. 많이 다친 친구가 있어서… 아라야?”

아라는 부엌 선반 안쪽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부터 들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아라한테 달려가 아라를 그 안에서 빼냈다. 힘없이 쭉 딸려나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다음, 그다음은 뭘 해야 하지? 그때, 옆에서 뭔가가 쑥 튀어나와 나는 또 한 번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가, 내 어깨를 잡더니 다시 손바닥을 귀에 가져다 댔다. 아!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인공지능 비서를 호출했다.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나 대신 말했다.

“나 심심해. 재밌는 얘기해줘.”

아라가 내 품에 안긴 채 한쪽 눈을 떠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너!” 하고 소리치다 가슴께가 쪼그라드는 통증에 숨조차 쉬지 못하고 가슴만 움켜쥐었다. 아라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 제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겁쟁이!” 하고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런 와중에 내 핸드폰은 유머랍시고 구연동화 같은 것을 낭독하고 있었다. 꺼버리고 싶어도 통증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이’가 솜털 같은 동작으로 내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인공지능 비서를 입 닫게 해주었다. 나는 인상을 쓰듯 웃으며 “고마워” 하고 말했다.

나는 선반 안에서 영락없이 큰일이 난 것처럼 쓰러져 있던 아라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통증을 무릅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곁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아이’도 따라 일어섰다.

“이쪽이야.”

나는 서재 겸 작업실로 갔다. ‘아이’를 의자에 앉힌 뒤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팔이 있던 자리를 뒤늦게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상처와 말을 못 하는 것이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나는 얕은 숨을 내쉬었다.

“알겠지만 난 공학자는 아니야. 그냥 이 일을 하다보니까 관련 지식이 약간 쌓인 것뿐이지. 그래서 당장 고쳐주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고,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한테 널 맡기기엔 아직 우리한테 그럴 권한이 없어. 어디까지나 넌 지금까지 널 데리고 있던 자의 소유물이니까. 지금 그 권리를 가져오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몇 주 내에 처리가 될 거야. 그 뒤로도 또 다른 절차가 진행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는 걸로 하고, 일단은 급한 대로 봉합 정도만 하는 거야. 여기까지, 됐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나는 의자를 밟고 서서 책장 꼭대기에 있는 나만의 구급 키트를 꺼냈다. 맡은 사건마다 유용하게 쓰였던 것들을 사비로 하나둘 사서 모아두었던 거였다. 정말로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긴장과 흥분이 동시에 밀려드는 듯했다. 그 때문일까. 나는 ‘아이’ 앞에 자리잡고 앉아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괜히 “시작한다?”, “괜찮지?” 따위의 질문을 해댔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태연한 얼굴을 위아래로 끄덕일 뿐이었다. 마침내 내가 권총처럼 생긴 장비를 손에 들고 ‘아이’한테 다가갔다.

그때였다. ‘아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도 따라 돌렸고, 거기에는 아라가 서 있었다. 아라는 무언가 대단한 거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라가 들고 있던 구체관절인형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동시에 아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나대로 놀라서 아라를 향해 달려갔다. 아라는,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울어댔는데 도저히 그치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울음을 울기 위해 존재하는 기계처럼 맹목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울어대는 아라를 보며 덩달아 나까지 초 단위로 겁이 쌓여갔다. 또다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한심하게도 나는 상처를 봉합 받기 위해 대기 중이던 ‘아이’를 돌아보았고, ‘아이’는 한결같이 태연한 얼굴로 우리 쪽으로 걸어와 하나 있는 손을 아라한테 뻗었다. ‘아이’는 아라의 두 눈을 손바닥으로 덮고서 나를, 여전히 내 손에 들려 있는 권총같이 생긴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비어 있는 부분을 눈짓했다. 아! 나는 서둘러 봉합을 시작했다.

아라의 발작적인 울음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봉합도 제법 잘 되었지 싶었다. 나는 실습 결과를 검사 맡는 심정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고개를 이렇게 저렇게 해서 봉합 상태를 확인한 ‘아이’는 아라의 눈을 덮고 있던 손을 치웠다. 아라가 내게 와락 안겼다. 너무 갑작스러웠던 터라 나는 균형을 잃고 몸을 휘청였다. 그러자 ‘아이’가 날 잡아주었다. 아라를 안은 채 ‘아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법적인 절차가 끝나면 저 ‘아이’는 아마도 나와 함께 살 것 같다고.

나는 한참 만에 아라한테 물었다.

“이제 말해 봐. 왜 울었어, 우리 딸?”

아라는 손가락을 물고 있었다. 내가 억지로 빼내려 하자 아라는 내 품에서 몸을 비틀어 저항했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아이’를, ‘아이’의 빈 공간을 보았다. 결국 아라가 말했다.

“안 아파?”

나는 “응?” 했다. 아라가 벌떡 일어나 언제 대성통곡을 했냐는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아예 대놓고 ‘아이’의 봉합된 부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안 아파?”

‘아이’가 아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는 최종적인 뭔가를 바라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내가 말했다.

“아프지 않아.”

“왜?”

“그건…” 이걸 뭐라고 설명한다?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야.”

“왜?”

“음, 그게… 그러니까…….”

나는 “아!”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아라가 권총같이 생긴 장비의 끝으로 내 팔을 찌른 것이다. 나는 아라한테서 그것을 빼앗았다.

“뭐 하는 거야?”

아라는 당황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마치 엄마는 왜 아파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에 나야말로 황당해서 버럭 말했다.

“당연히 엄마는 아파! 너도 아파. 사람은 모두 아파!”

아라는, 약간 텅 빈 시선으로 ‘아이’를 돌아봤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막연하지만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라가 조금 빨랐다.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체관절인형을 주워 ‘아이’한테 건넸다.

“네 이름은 에바야.”

에바는 아라의 구체관절인형 이름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세종 씨의 단출한 모습을 기웃거렸다. 세종 씨가 부끄러워해서 얼른 사과했다.

“미안, 미안. 근데 짐이… 없네요?”

“아, 장비요. 필요 없어요.” 세종 씨가 주머니에서 상자를 하나 꺼냈는데, 꼭 목걸이 케이스만 했다. “이것만 있으면 끝.”
얼른 보여주고 싶어하는 게 너무 보여서 나는 웃으며 세종 씨를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아라를 향해 외쳤다.

“아라, 에바! 나와 봐!” 세종 씨가 날 보길래 설명했다. “아라가 멋대로 이름을 붙인 거 있죠. 그것도 자기 인형 이름을.”
“이름… 아, 그렇죠, 이름.”

아라가 나한테 그러듯 에바의 손을 붙잡고 거의 매달리듯 끌며 방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세종 씨를 보고 더없이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바보 아저씨다.”

나는 경악해서 달려가 아라의 입을 틀어막고 세종 씨한테 설명했다.

“미안해요. 얘 말은… 그러니까 착하다는 거예요. 그렇지?”

아라가 내 손을 깨물고 달아나더니 역시나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닌데. 성경 언니가 이 아저씨 바보랬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 못 해 본. 그런데 아저씨, 연애가 뭐예요? 대수학보다 어려워요?”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어, 미안해요, 정말. 애가 통제가 안 돼.”

세종 씨는 그저 헤헤헤 웃기만 했다. 그러자 아라는 금세 싫증난 얼굴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세종 씨가 목걸이 케이스 안에서 정말로 목걸이 같은 것을 꺼내 뭔가를 하는 동안 가만히 있기 뭣해서 나는 마실 것을 준비했다. 내가 컵을 가지고 갔을 때는 이미 목걸이가 에바의 목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유가 아니었다. 정말로 빛을 내는 것이었다. 오디오의 이퀄라이저 효과를 연상시키는 빛의 물결은 주기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우리한테 말했던 게 저거예요?”

세종 씨는 미소를 머금고 “네” 했다. 그러고는 태블릿 PC를 꺼내 복잡해 보이는 표를 띄웠다.

“에바라고 했나요?”

“네.”

“에바, 이걸 외워볼래?”

에바가 정말이지 기계적으로 표를 훑어보는 동안 세종 씨가 나한테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각 문자에 대응하는 이진수 값을 정리한 것이었다. 목걸이에 내장된 간단한 센서를 통해 에바는 0과 1, 그러니까 각 이진수에 상응하는 신호를 보내고, 목걸이에 설치된 프로그램이 그것을 실시간으로 변환해 투명한 디스플레이에 빛으로 문자를 띄운다는 게 세종 씨의 설명이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그 흐름 자체는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에바한테는 특히 간단한 것이어서 우리는 곧 에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에바입니다.’

나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오셨어요, 대표님.’

에바의 목에 채워진 투명 디스플레이에서 발광하는 글자를 곁눈질로 보고는 차마 반응하지 못하고, 아니 할 수가 없어 일단 에바의 맞은편에 앉는다. 내가 앉자마자 에바가 말한다.

‘아라는 어때요? 울음은 멈췄나요? 너무 울면 안 되는데. 그럼 그때처럼 또 정신을…….’

“그만.” 나도 모르게 에바의 말을 끊는다. “지금은… 그리 적절한 주제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해요, 대표님. 저는 그냥 아라가 걱정돼서.’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나는 다시 입술을 잘근 씹으며 두통에 한쪽 눈을 찌푸린다.

‘약, 가방 안주머니에 있어요, 대표님.’

정말이지……. 나는 후, 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아. 너에 대한 얘기로 인터넷이 마비가 될 지경이야.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 그래.”

‘사람이 죽어서요?’

“그래.” 내가 화내듯 큰소리로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또다시 말문이 막힌다. 이제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자 참으로 부적절하게도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 정말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나는 에바를 힐끔 쳐다본다. 에바는 당연하게도, 태연하다. 이 ‘아이’로선 달리 어찌할 수 없을 불가역적인 태도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만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에바의 오른쪽 팔로 간다. 멀끔하게 생긴 그 팔은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도드라져 이질적이다. 저 팔이 이식되기 전의 에바가 떠오른다. 한쪽 팔을 통째로 잃고서도 별수 없이 태연했던 ‘아이’.

“그때 널 맡는 게 아니었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는 떨어져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훔친다. 에바는 그런 날 바라볼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태연하게.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에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닌 걸 알지만 마치 다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욱해서 소리친다.

“도대체 왜… 왜…….”

이런 말을 지껄이는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 견디기가 어렵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대표님.’

에바의 말이 머릿속에서 이글거리는 느낌에 나는 흠칫한다. 비유에 불과하지만 녹음한 것을 다시 재생한 것처럼 똑같은 저 말을 처음 들었던 때가 떠오른다. 뒤이어 에바가 했던 말도. 역시나 똑같이, 에바가 말한다.

‘저는 대표님이 불행하길 원하지 않아요.’


밤늦게 집에 돌아간 내가 팔에 상처를 입은 에바를 서재로 데려가 앉혀놓고 물었을 때도 에바는 단지 그렇게 말했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대표님.’

나는 일단은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하니 에바의 새로 이식한 팔에 난 상처를 바라만 보았다. 상처는 한두 개가 아니었고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마치 어린아이가 멋대로 휘갈긴 낙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뒤이어 떠오른 것은 아라였다. 아라가 순수하게 집중하는 얼굴로 에바의 팔에 무언가를 하는 상상…….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붙잡고 기대 섰다.

‘저는 대표님이 불행하길 원하지 않아요.’

에바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미 불행으로 향하는 문은 열려 버린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 문은 처음부터 계속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아라는 언제나 조금씩 엇나가 있었다. 그 근거가 될 만한 상황을 떠올려 보자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저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이다. 아니면, 그냥 모른 척했거나. 이제 와 따져보면 그것들이 전부 한 방향으로 가리켜고 있었던 그 문을 나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무시해온 것이었다. 나는 두려움에 몸서리치고는 서둘러 그 문을 닫아 버렸다.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알 수가 없어.”

내 말의 저의에 스스로가 역겨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에바 특유의 태연한 표정조차 날 힐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피하고 돌아서서 공구함을 찾아 꺼냈다.

“일단 그것부터 어떻게 하자.”

상처는 뾰족한 것으로 찌른 듯한 것이 여러 개, 긁은 것과 벤 것이 각각 두어 개 있었다. 다시금 머릿속에 아라가 나타났다. 손에 송곳 같은 것을 쥔 아라가 색연필로 낙서를 하듯 에바의 팔에 뭔가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콕콕 찌르는 정도에 그치지만 에바가 반응하지 않자 아라는 점점 강도를 높여 간다.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고, 결국 아라는 다른 것을 가지고 와서 하던 행동을 이어간다. 도대체 아라는 무엇이 궁금했던 걸까.

'아니야.'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외쳤다. 그냥 일에 지쳐서 그러는 거야.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현실에 지친 나머지 기계적으로 하게 되는 나쁜 상상을 하는 것뿐이야.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꽤 자주 그런 일이 있었던 터라(덕분에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하고 눈을 떴다. 하지만 에바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심장이 벌령거렸다. 결국 나는 에바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내가 불행하길 원하지 않으면, 말해 줘. 이 팔, 왜 이런 거야?”

‘저한테 물은 걸 후회할 거예요.’

“네가 말해주지 않아도 후회할 거야! 널 맡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걸 원하는 거야? 내가 널 선택한 걸 후회하는 거? 그래?”

비겁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에바 말대로 나는 물어본 것을 후회했다. 그저 망상인 줄 알았던, 그저 망상이길 바랐던 생각은 사실이었다. 에바의 팔에 상처를 낸 것은 아라였다. 내가 상상한 그대로 아라는 테스트하듯 강도를 높여 가며 에바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처음에는 꼬집어 보다가 날카로운 것으로 찔러 보고 긁고 베고……. 그러면서 아라는 에바한테 끊임없이 물었다. “안 아파?” 하고서. 마치 이래도 안 아파? 하듯 그 강도는 점점 더 커져 갔다. 결국 인공피부가 찢어져 험한 꼴을 보고 나서야 흥미를 잃었던 것이다.

문득, 아라가 에바를 처음 보고 돌연 울음을 터뜨린 날이 떠올랐다. 에바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내가 말하자 아라가 했던 행동(엄마를 찔러보다니?)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버럭 “사람은 누구나 아파!” 하고 소리치자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눈빛으로 에바를 보고는 자기의 구체관절인형을 건네던 아라의 모습. 나는 몸에 힘이 풀려 그냥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에바도 따라서 의자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 상처투성이의 팔을 들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라를… 어떻게 해야 하지?”

눈가에서 빛이 일렁여서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아라는 외로워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6살짜리 애가 외롭다니?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에바가 말을 이었다.

‘혼자예요. 늘. 세상에 아라 외에는 없어요. 아무것도.’

“물론 내가 바빠서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았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젠 너도 있고…….”

에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라는 혼자예요. 그래서 외로워요.’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뭍고 한숨 지었다. 에바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라가 혼자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원인이라면 조금은 희망이 있었다.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에바의 손을 마주잡았다.

“곧 아라 입학하니까 아마 지금보다 나아질 거야. 어쩌면 친구가 생겼다고 우릴 모른 척할지도 모르지. 그럼 좋겠는데, 그치?”

에바는 늘 그렇듯 농담에 반응했다. 당장은 그것이 좋았다.

"그때까지 엄마 놀이 좀 해 보지, 뭐. 일이야 성경 씨랑 세종 씨가 잘해줄……."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인터폰으로 한 여자가 보였는데 나는 얼굴을 알아보고 얼른 문을 열었다. 몇 달 전,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진 아이의 뇌를 기계에 업로드하기 위해 자문을 구하러 위드알에 찾아왔던 선아 씨였다.

그때 선아 씨가 다소 지친 듯이 사무실에 찾아온 이유를 말했을 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었다. 사람의 뇌, 정확히는 뇌의 활동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은 그 유서가 깊다고 할 법했지만, 간간히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어느 연구소 어느 교수의 연구팀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혹은 개발했다 정도에서 그칠 뿐 정말로 사람의 의식을 기계에 업로드하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의식이라는 것의 정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기는 한 건지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왔을 사람 앞에서 할 만한 얘기는 분명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의 눈치만 보는 동안 선아 씨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을 끝도 없이 열거하며 처음의 지쳐 보였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으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선아 씨가 우리, 위드알에 원하는 것은 자신도 인정한 바, 망상에 가까운 자신의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저 그거면 된다고 선아 씨는 말했었다.

선아 씨가 그때보다 훨씬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겨우 미소 지었다.

"놀라셨죠? 죄송해요. 사무실에 안 계시다고 해서……."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듯 뇌를 업로드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대신 선아 씨에게 돌아온 것은 뇌가 적출된 아이의 시체와, 뇌 활동 데이터와 아이가 살아 생전 남긴 다양한 기록들을 기반으로 만든 인격 모방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는 작은 저장장치 하나뿐이었다. 유명 상조회사가 최근에 새로 선보인 장례 서비스에 포함된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선아 씨를 안으로 안내했다. 에바가 마실 것을 가지러 가는 것을 멀뚱히 보던 선아 씨가 불쑥 물었다.

"아라는요?"

"어, 사실 모르겠어요. 워낙 제멋대로인 녀석이라."

선아 씨가 쓴웃음을 짓고는 에바가 가져온 컵을 받아들었다. 마시는 듯하더니 또 불쑥 말했다.

"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나는 네? 하듯 선아 씨를 쳐다봤다.

"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우리 수지를."

선아 씨가 작은 태블릿 PC를 꺼내 놓았다. 화면에는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였는데, 그 애가 내 쪽을 보더니 말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허수지라고 해요."

나는 들고 있던 컵을 놓칠 뻔했다.

연신 고맙다며 멀어져 가는 선아 씨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일이 나랑은 안 맞는 게 아닐까. 나는 사무실로 향하며 성경 씨와 세종 씨를 호출했다.


“정말 감사해요.”

마침내 아이의 입학을 허가받고서 나오는 길에 선아 씨가 우리에게 말했다. 벌써 네 번째였다. 그 점을 놓칠 성경 씨가 아니었다.

“자꾸 그러시면 술 사달라고 할 거예요.”

선아 씨가 “그럴까요?” 하며 웃었다. 처음 보는 편안한 모습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이제 우리 아라랑 친구가 되겠네요.”

왠지 아차 싶었다. 아라한테 태블릿 PC 안에 들어 있는 아이, 수지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과연 아라에게 수지는 ’사람’일까? 돌연 겁이 났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현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때, 전화가 왔다. 아라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괜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괜한 것일 터였다. 아직 수지는 입학도 하지 않았으니까. 문제가 있을 수 없지. 그런 이상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라의 담임 선생님이 매우 조심스럽게 학교에 와줄 것을 부탁했다.

“애가 다쳤나요?”

내 말에 모두가 돌아보았다. 나는 미소 짓고는 조금 떨어져 걸었다.

“그건 아닙니다, 어머니. 걱정은 마시고…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자 성경 씨가 물었다.

“왜요, 대표님? 아라, 다쳤대요?”

“응?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이는데, 선아 씨가 말했다.

“선생님인가 봐요.”

나는 묘한 죄책감에 선아 씨를 마주볼 수가 없어 시선을 내리깔고 답했다.

“네. 무슨 일인지 와 보라고…….”

“얼른 가 보세요.”

선아 씨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아 씨가 말했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거예요. 감사드립니다.”

나는 다시 학교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실제로는 짧기 그지없을 이동 시간이 왠지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담임이 내게 전화를 걸 만한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라가 다친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불안하다는 게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꼭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지 않나. 그 순간 엄습해 오는 상상은 실로 불쾌한 것이어서 결국 엘리베이터를 멈춰 세우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불쾌한 상상을 멈추는 데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준호라는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착용 중이었는데(수지는 역시나 어린 나이에 의식이 모방되어 컴퓨터 하드웨어에 이식되었다는 것을 나는 잊었던 걸까), 그 의족의 상태가 너무나 낯이 익었던 것이다. 에바의 새로 이식한 팔이 그랬듯 정확히 똑같은 ‘흔적’이 준호의 의족에도 남아 있었다.

준호는 울다 지친 듯 힘이 없어 보였고, 그런 면에서는 선생님과 나라고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이 예외였다. 바로 아라였다. 아라는 끓어오르는 뭔가를 주체할 수 없는 짐승처럼 교실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라를 힘에 겨운 듯이 바라만 봤다. 나는 화가 나서 아라한테 소리쳤다.

“이리 와. 당장.”

아라는 그 정도야 어렵지 않다는 듯 곧장 달려와 내 다리 위에 앉고는 양다리를 힘차게 가위질했다. 처참하게 망가진 의족을 달고 있는 준호가 아라의 모습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보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아라를 밀어내고 아라 앞에 무릎 꿇어 시선을 맞췄다. 여전히 사태 파악을 하고 있지 않은 아라를 노려보며 힘주어 말했다.

“네가 이랬어?”

아라는 의족을 슥 내려다보더니 응, 하고 대답했다. 그것은 마치, 불쌍한 친구를 위해 고장난 의족을 고쳐주었을 때나 가능한 당당함이었다. 나는 기가 찬 나머지 선생님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제야 선생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라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그것은 버거움이었다.

“왜?”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아라는 ‘왜’라는 질문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였다. 교실 문이 열리고 아마도 준호의 어머니일 사람이 들어왔다. 준호 어머니는 아이의 상태부터 신속하게 살폈는데, 그 찰나의 순간동안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럼에도 준호 어머니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선생님과 내게 인사했다. 준호 어머니는 상황을 전해 듣는 내내 마치 이 이상의 그 어떠한 소란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강직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는 사실 상황에 맞지 않아 어색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감히 가해 학생의 부모 입장에서 따지는 것 또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서서 고개만 조아렸다.

준호 어머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챙겨온 휠체어에 아이를 옮기려 했다. 더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의족은 분리조차 여의치 않아 또 다른 불편함을 초래할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들어야 하자 선생님이 돕기 위해 다가갔다. 나도 얼른 따라 붙으려는데 준호 어머니가 완고하게 거부했다. 그 태도에는 분노마저 실려 있는 듯해서 결국 우리는 준호 어머니가 혼자서 힙겹게 아이를 옮기는 것을 벌 서듯 지켜보아야 했다. 준호 어머니가 교실을 나가다 말고 날 돌아보더니 뭐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알은체를 했다.

“수지 엄마를 돕고 계시다고요.”

절망감부터 들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마치 ‘네가? 댁 자식이나 똑바로 살필 것이지.’ 하는 비난이 들리는 듯했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었다. 준호 어머니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수지 엄마가 다시 자기 삶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굉장히 묘한 말을 남기고 준호 어머니가 휠체어를 끌고 나갔다. 그러는 동안 아라는 휠체어를 탄 준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거의 도망치듯 차에 올라 출발시키자마자 내가 소리쳐 물었다.

아라는 불과 십여분 전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해맑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러다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고는 소리쳤다.

“나비! 엄마, 나 나비!”

고개를 돌려 보니 사거리 고층 빌딩 전광판에 홀로그램 고양이가 팔랑팔랑 뛰어다니고 있었다. 설마 동물을 파는 광고인가 하고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광고가 어딘가 낯익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유행한 광고였다. 하지만 저건 고양이 로봇 광고인데……. 곧 예스러운 광고가 리마스터링되고, 당시 혁명적이라 칭송 받던 고양이 로봇이 번데기를 벗고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진짜 고양이가 된 듯 움직이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헤벌리고 홀로그램을 올려다봤다.

‘조심하세요! 이것은 당신이 알던 로봇이 아닙니다. 이 아이들은 “진짜”입니다. 믿을 수 없다고요?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고양이를 꼬집어 보세요. 놀랍게도, 이 아이들은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조심하세요. 이 아이들의 발톱을 말입니다.’

홀로그램 고양이가 달려들며 광고가 끝났고 나는 말했다.

“성경 씨한테 전화해.”

동시에 아라가 “나비, 나비, 나비 사줘” 하고 칭얼거리는 바람에 인공지능 비서가 엉뚱한 사람한테 통화를 걸려고 해서 결국 핸드폰을 꺼내 직접 전화했다.

“엄마, 나비이.”

“조용히 안 해?”

“네?” 성경 씨였다.

“아니, 미안. 통화 가능해요?”

“네. 근데 아라는…….”

나는 얼른 말을 가로막았다.

“저기, 지금 혹시 인터넷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럼요. 지금도 하고 있는 걸요.”

“그래요. 그 새로 공개된 광고 중에…….”

“그거 보셨어요? 고양이?”

“봤어요?”

“네. 반응 죽이는데요. 이거 20년도 더 된 광고라는데, 어, 대표님은 이거 직접 보셨어요?”

“보긴 했는데,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저런 게 출시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지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러게요.”

“상품 등록 된 거 맞아요?”

“대표님.” 세종 씨였다. “지금 찾아보니까 아직 등록된 게 없어요. 대기 중인 건 있지만, 그게 이 로봇에 대한 건인지는 알 수 없고요. 그런데 고통을 느끼는 로봇이라니 정말…….”

“선을 넘은 거야.” 내가 말을 잘랐다.

“어… 하지만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스마트 인공피부 같은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잖아요.”

“그렇다고 그걸로 고통을 구현하지는 않았어!”

인공지능 비서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경고등을 띄웠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미안해요. 혹시 지금 제품안전정보센터랑 국립전파연구원에 이 제품 관련으로 진행 중인 거 있나 알아봐 줄래요?”

“네. 지금 공문 작성해서 보낼게요.”

“아니, 아니, 공문 말고, 직접 가 봐요.”

“네? 직접이요?”

이럴 때마다 세대 차이라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대개 발품 파는 일은 내 몫이었다. 나는 아라를 힐끔 보았다. 이대로 아라를 집에 내려주고 내가 직접 가는 게 최선이겠지만, 아직 들어야 할 것이 있었다.

“부탁 좀 할게요. 되도록 빨리 확인 좀 해줘요.”

통화가 끝나는 순간 아라가 말했다.

“나비.”

옆에 있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조용히 있을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화가 나서 나는 아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단순히 화가 났음을 보이려는 건 아니었다. 나는 아라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그 애… 준호 다리… 왜 그렇게 한 거야?”

아라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대꾸했다.

“그거 다리 아닌데.”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낫다 싶었는데, 불행히도 그런 생각이 처음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에바가 에바이기 직전에 정확히 같은 일이 있었고 그때 내가 한 거라고는 그냥 지켜본 것뿐이었다. 그에 대한 대가라고 한다면 나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목이 메어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왜… 다리가 아니야, 그 애한테는…….”

“다리 아니야. 내가 확인했어.”

찌르고 베어서? 나는 그 말을 꿀꺽 삼키고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다시 설정했다.

“엄마, 어디 가?”

“친구 만나러.”

“병원인데? 친구 아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운전을 수동 모드로 전환했다. 인공지능 비서가 쉴 새 없이 수동 운전에 내포된 위험성을 설파하는 것을 무시하며 속도를 높였다.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인 이성이가 디스플레이 속 차트와 그래프를 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내 눈으로 직접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라는 소위 영재 중의 영재라고 이성이가 말했다. 나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딘가 중간이 툭 잘려 비어있는 느낌. 이곳에 오는 차 안에서, 병원 로비에서, 보호자 대기실에서, 그리고 이성이의 진료실 앞에서 느꼈던 불안과 초조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거 말고…….”

이성이가 입을 굳게 다물자 특유의 각 진 턱이 더 두드러졌고 나는 다시 긴장의 끈을 꽉 조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 감당하기에 이성이가 하는 말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너무나도 엄청나다’. 그렇게밖에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라는 마음이 없어.”

그것은 의사가 할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핵심에 근접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고 그저 멍청하게 이성이를, 걔가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두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하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없어…” 하고 되뇌는 것. 그것이 최선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말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돼?”

이성이가 해준 말들은 전부 녹음해서 듣고 또 들었다. 들으면서 펜과 종이로 옮겨적기까지 하며 몸에 익혔다. 핵심은 간단했다. 학습. 이성이가 강조한 것은 학습의 접근법이었다. 아라한테 옳고 그름이란 그저 피상적인 것, 말 그대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껍데기를 가지고 아이를 학습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대신 아라한테 있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이용해야 했다.

“아라한테 넌 아라 자신 못지않게 실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야. 그러니까 네 자신을 이용해.”

나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아라한테 갔다.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 덮고 날 올려다보는 아라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지만, 어쩐지 이제는 위화감 또한 느껴져서 괴롭기 그지없었다. 이 상반된 느낌은 어딘가 현실감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말했다.

“준호는 어때?”

“뭐가?”

“다리 말이야.” 나는 녹음된 이성이의 목소리를 상기했다. ‘절대 아라 앞에서 감정적으로 굴지 마. 아라는 그걸 약점으로 보고 물고 늘어질 거야. 순전히 재미를 위해.’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네가 망가뜨린 다리, 어떠냐고.”

“아, 그거. 새로운 거 달고 왔어. 더 좋은 거 같아.”

내가 준호 어머니 모르게 보낸 것이었다. 그런다고 짐작하지 못할 리 없지만, 그래도 그대로 되돌려 보내지는 못할 테니까. 그게 최선이었다.

“그것도 망가뜨릴 거야?”

아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 빤히 쳐다봤다. 마치 얼굴 인식 센서처럼 차가운 느낌에 두려운 마음부터 들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일부러 미소 지었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언론 인터뷰나 대외 활동을 할 때 가장 먼저 숙련되는 것이 웃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해 봐, 또 그럴 거야?”

아라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면 안 돼.”

“왜?”

나는 허리를 숙여 아라와 눈을 맞추고 아라의 새까만 눈을 들여다보며 분명하게 말했다.

“아라가 또 그러면 엄마가 아라를… 싫어할 거야.”

아라의 까만 눈이 일순 흔들리는 게 보였는데, 사실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라가 평소처럼 칭얼대는 대신 조용히 “알았어”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라가 내 의도대로 따라온다는 증거는 될 것 같았다. 마음이 미어졌다. 나는 더 환하게 웃었다.

“참, 곧 있으면 아라 생일이네. 우리 파티할까? 친구들 불러서.”

“정말?”

“준호도 초대할 거지? 친구잖아.”

“응.”

나는 아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우리 딸.”

“사랑해, 엄마.”

내가 나가려는데 아라가 날 불렀다.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웃으며 다시 돌아섰다.

"왜?"

"다른 애도 불러도 돼?"

"그럼."

아라가 환하게 웃으며 이불을 머리 위로 올렸다.

아라의 방을 나와 문을 닫고 나서 나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에바가 옆에서 소리 없이 있어 주었다.


에바와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극도의 긴장으로 자꾸만 실수를 저질렀다. 음식을 태우고, 첨가물을 잘못 넣고, 심지어 기껏 완성한 요리를 접시에 담아 옮기다 손이 미끄러져 그대로 바닥에 엎기까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정신도 뭉개진 듯 온몸을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에바가 멀뚱히 서서 늘 그렇듯 태연한 얼굴로 보고 있는데, 돌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냥 웃었다. 미친 듯이 웃어대는 날 보고 따라서 미소 짓는 에바를 보고 또 웃었다. 웃으면서 겨우 생각했다. 정신과 박 선생님이 휴가에서 돌아왔던가? 아라의 생일 파티가 끝나는 대로 병원에 연락해 봐야겠다. 잊어버릴까 봐 아예 핸드폰에 미리 알림을 지정했다. 그러자 에바가 물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나는 쪼그려 앉은 채로 이걸 어떻게 손대야 하나 고민하며 말했다.

“정신과 상담. 주기적으로 하던 거야.”

엎어진 접시를 들어보고 흠칫 놀랐다. 이 괴물은 뭐지. 이게 정말 내가 만든 음식이라고? 나는 괜히 손가락으로 괴물을 찍어 맛을 봤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맛에 비위가 상해서 얼른 치워 버렸다. 정리를 마치자 에바가 말했다.

‘다운 받을까요?’

“어… 그게 좋겠다.”

역시 괜한 호기였다. 내가 눈물을 머금고 싱싱한 식재료를 음식물 처리기에 넣는 동안 스마트 쿠커에서 에바가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레시피대로 요리가 완성되어 나왔는데 그 신속함에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에바가 그 옆에 서서 그때그때 필요한 캡슐을 충전하고 완성된 요리를 보기 좋게 접시에 옮기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알림이 울렸다. 아라가 단지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내가 허둥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에바가 날 붙잡고 말했다.

‘다 잘될 거예요.’

나는 미소로 답했다. 그래, 다 잘될 거야. 기껏해야 꼬맹이들 홈 파티일 뿐인걸.

현관문을 열자 아라가 제일 먼저 뛰어 들어와 집주인 행세를 했다.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문 너머를 지켜봤다. 곧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준호였다. 걸음걸이가 약간 어색한 게 아직 적응 중인 모양이었다. 생각이 짧았다. 그저 더 좋은 모델을 선물할 생각만 했지, 기존 것과의 연동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아라의 등을 떠밀었다.

“도와줘야지.”

아라는 도무지 얼마 전 일과는 연결 지을 수 없을 만큼 스스럼없는 태도로 준호한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준호는 상기됐지만 침착한 얼굴로 아라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아이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아이들은 장난감 로봇이 분리되듯 뿔뿔이 흩어졌다.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죽을 듯이 초조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미소를 짓고 이 꼬맹이들을 보다가 거실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준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어서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호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야말로 와줘서 고마워. 마실 거 줄까?”

나는 음료를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에바가 보이지 않아 아라의 방 쪽을 보니 거기 있었다. 꼬맹이들 사이에 있는 에바의 태연한 모습이 꼭 모든 것을 내려놓은 체념처럼 보여서 웃는데, 에바가 내 쪽을 쳐다봤다. 장담컨대, 평소와 다른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나는 ‘다름’을 인식했고 들고 있던 음료를 쏟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아라의 방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이들이 뭔가를 둘러싸고 있다가 날 보고 물러섰다. 그러자 에바와 아라가 보였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태블릿 PC가 보였다. 아라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곧 그 태블릿 PC의 정체를 깨닫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수지였다.

나는 수지를, 아니 태블릿 PC를 집어 들고 화면을 두드려댔다. 옆에서는 아이들이 여전히 비명을 질렀고 울음을 터뜨렸고 자기들끼리 뭐라 중얼거렸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에바가 내 앞에 무릎 꿇고는 말했다.

‘없어요.’

뭐가 없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소름이 끼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라가 보이지 않았다. 수지의 태블릿 PC가 여기 떨어져 있는 것과 아라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정말로 그런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에바가 말했다.

‘이젠 없어요.’

그리고 다음 말에 나는 정말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수지는 이젠 없어요.’

에바의 말대로 수지는 이젠 없었다. 그 간단한 말이 갖는 무게가 한동안은 와 닿지가 않아서 경찰들이 우리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를 향해 무언가를 물어대고 심지어는 에바를 전기적으로 옭아매 데려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네, 아니요, 모르겠어요 따위의 말만 기계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조차도 할 수가 없게 됐다. 넋이 나간 선아 씨를 보고 나는 염치없게도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선아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서 날 쳐다보더니 결국 말했다.

“우리 애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예요?”

나는 수지가 여기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떨구고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지껄였다.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선아 씨는 가고 난 뒤였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내내 나는 내 딸을 보러 간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다. 몇 번이고 멈춰 서고 돌아서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에 쪼르르 앉아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중 아라는 없었다. 내가 다가가 아라가 어디 있는지 묻자 늘 아라와 함께 다니던 세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조막만 한 손이 가리킨 곳은 복도 끝에 있는 문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또 한 번 용기를 내야만 했다. 문에는 작은 창이 나 있어 그 안에 있는 아라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경찰관이 날 발견하고 눈으로 알은체를 했다. 조금 지나자 아라가 밖으로 나왔다. 아라는 날 보더니 믿을 수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끔찍하게도, 나는 아라의 손을 놓고 싶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건 꿈이야. 악몽, 지독한 악몽이야.

뒤이어 나온 경찰관이 내게 말했다.

“어머님?”

나는 아라의 손을 꼭 잡았다.

“네. 제가 아라 엄마입니다.”

경찰관은 음, 하더니 뭐라 말했는데 나는 귀를 의심했다.

“네?”

“아이가 많이 놀란 것 같아서요. 보니까 어머니도 그러신 것 같은데, 이럴 땐 자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아라와 눈을 맞췄다. “알았지? 집에 가서 코 자는 거야.”

아라는 경찰관이 무슨 말을 하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경찰관은 그걸 너무 놀란 나머지 감정적으로 회피하는 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저 경찰관은 앞으로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아라가 다른 인생을 살거나. 인간이지만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나는 아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어떻게 견뎌야 할지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아라가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져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조사한 경찰관은 수지의 의식을 '삭제'한 게 에바라고 결론 내렸다. 필요한 경우 에바의 기억을 검토할 수도 있으니 알아두라고 했다. 나는 에바의 기억 속 아라를, 날카로운 흉기를 가지고 에바의 팔에 낙서를 그리듯 상처를 입히는 아라를 상상하지 않으려 운전을 수동 모드로 전환시켰다. 그러자 인공지능 비서가 거부했다.

“운전자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음악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러고는 멋대로 즉석 음악을 재생해 버렸다. 불쾌감은 잠시였다. 이내 나는 한결 침착하게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따져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사고가 일어났다. 아주 불행한 사고가.


“미안해.”

내가 말한다. 목소리가 너무 심하게 떨려서 에바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일 뿐이다.

‘저는 대표님이 불행하길 원하지 않아요.’

나는 쇠 맛을 느껴서야 입술을 씹는 것을 멈추고 마침내 본론으로 들어간다.

“정말로 네가… 네가 수지를… 그렇게 한 거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마치 에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는 듯 눈물샘은 요지부동이다. 나는 경이와 혐오로 몸을 떨며 끝끝내 에바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다. 그다음은 나도 한계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진술실 밖으로 뛰쳐나가 문을 닫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날 보고 있는 경찰관의 존재를 깨닫고는 겨우 진정한다. 내가 겨우 말한다.

“여태 기다리신 거예요?”

경찰관은 그저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미소를 짓고 다시 나를 밖으로 안내한다. 그러면서 자꾸만 내 쪽을 힐끗힐끗 보는 것이 느껴지지만 모른 척한다. 데스크에 가서 맡겨 놓은 소지품을 챙기는데 경찰관이 어렵게 말을 꺼낸다.

“안에 계시는 동안 찾아 봤습니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경찰관이 덧붙인다. “위드알이 어떤 일을 하는지요. 꽤 유명한 단체더군요.” 그러고는 또 덧붙인다. “아, 실은 저희 부모님이 전자파 과민증이시거든요. 물론 여전히 정식으로 인정받는 질환은 아니지만, 그분들의 자식으로 자라면서 몸에 밴 생활 습관은 무시할 수 없죠. 말하자면 20세기 히피의 아이랄까.”

경찰관이 꽤 재치 있는 농담을 한 것처럼 으스대다가 이내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실은 궁금한 게 있는데,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말씀하세요.”

경찰관이 여전히 어려워하길래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제야 경찰관이 묻는다.

“왜 이런 일을 하시죠?”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아, 미안해요. 사실 이 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고, 그래서 듣기 싫은 질문이기도 해서요. 제가 경찰관님한테 왜 이 일을 하는지 묻는다고 생각해 보시면 아마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전 이 일만큼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거든요. 너무 거창한가요?”

“아니요, 좋은데요. 하지만 바로 그런 시각 때문에 이유 없이 배척 당하는 존재가 있어요. 그들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주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이 해야 하는 일 아닐까요? 답변이 됐나요?”

나는 몸서리를 친다.

“실은… 아니요, 부족합니다. 제 경우의 바탕에는 편협할지언정 같은 종을 우선하는 근본적인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 않나 하는데요.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말하다보니…….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실례가 됐다면 사과 드립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나가려다 멈춰 선다. 자리에 앉으려던 경찰관이 엉거주춤해서 날 쳐다본다. 나는 경찰관의 책상 한쪽에 있는 헝겊인형을 집어든다.

“아주 오래돼 보이는데요.”

경찰관이 살짝 불안한 듯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대답한다.

“예, 저보다 나이가 많죠. 엄마가 절 임신 중에 직접 만드신 거래요. 그런데 그건 왜…….”

“이건 분명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죠?”

경찰관은 입을 굳게 다물고 인형을 한 번 보고는 다시 표정을 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나는 인형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실례했다고 사과한다. 정말로 나가려는데 경찰관이 말한다.

“안에 있는… 아이는 정말이지 든든하겠습니다.”

나는 겨우 웃어 보이고는 서둘러 이곳을 빠져 나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과연 ‘사람’일까?

차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아라가 칭얼댄다.

“나비 언제 사줄 거야?”

나는 차를 출발시킨 후 아라와 마주보고 앉아 아이의 어깨를 다소 힘주어 잡는다. 아라가 어깨를 비틀어 빠져 나가려고 해서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준다.

“아파.”

“나비가 갖고 싶어?”

아라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에바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되는데?”

나는 눈물을 삼키며 소리친다.

“아마 폐기될 거야. 너 폐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

“엄마, 아파.”

“무슨 뜻인지 아냐고!”

아라가 대답한다.

“없어지는 거.”

숨을 쉴 수가 없다. 이 아이는 더 이상 내 딸, 아라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라의 어깨를 놓고 다시 앞을 본다.

“맞췄으니까 나비 사 줘.”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나는 목적지를 새로 설정한다. 그것을 본 아라가 투덜거린다.

“또 저기야. 거기 지루해.”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촬영실로 들어가려던 아라가 돌아서더니 날 향해 손을 뻗는다. 저 조그마한 것을 혼자 들여보내기에 촬영실은 너무 춥고 시끄럽고 공허하다. 평소 같으면 누가 뭐래도 함께 들어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옆에 있던 이성이가 옆구리를 찌른다. 나도 지금 하는 행동이 적절하지 않다는 건 잘 안다고. 하지만……. 그때, 아라가 내게로 와서 안긴다. 뭘 알고 그러는지 평소보다 더 어리광을 부리며 아라가 속삭인다.

“엄마, 사랑해.”

순간 눈물이 왈칵 흘러서 나는 아라를 안으며 눈물을 훔친다.

“나도… 사랑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성경 씨한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일을 관둬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성경 씨는 건성으로 네네, 하고 대꾸한다.

“성경 씨, 진심이야.”

내가 말하자 정적만이 감돈다. 나는 후, 크게 숨을 내쉰다.

“갑자기 왜요?”

나는 에바를 떠올리지 않으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두통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라 헛웃음마저 나온다. 그때 로비를 청소하는 로봇이 웅웅거리며 앞을 지나가는데 등 부분에 전원 스위치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저걸 누르면 저 로봇은 즉시 동작을 멈출 것이다.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말한다.

“더는 이 일을 할 자격이 없어.”

그러고는 통화를 끊는다. 아라가 있는 촬영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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