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아웃백

아메리카흰꼬리사슴

 

도하를 처음 품에 안았던 때가 기억난다. 작고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도하를 흠뻑 적신 아내의 양수였다. 축축함. 우리의 먼 조상들이 바다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듯한 그 습기가 가장 먼저였고, 작고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은 다음이었다. 나도 당시 땀에 한가득 젖어 있었으니 도하가 내 품에서 처음으로 느낀 감촉도 아마 축축함이었을 거다. 젖은 포옹이 불쾌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초의 기억이었다.

도하의 어린 시절들을 회상하고 있자면 어김없이 커튼 뒤에 숨었던 도하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나는 도하를 찾았고 도하는 커튼 뒤에 숨는 장난을 쳤다. 햇살이 아주 짙은 오후였다.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을 넘어 빛이 거실로 가지런히 들어왔다. 오직 도하를 투과하지 못한 부분만이, 도하의 크기만큼 아주 작게 그림자 조각을 만들어냈다. 나는 한참이나 도하를 찾는 척 이름을 부르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커튼 뒤에서 도하는 참지 못하고 연달아 새된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조급할 게 없었다. 언제든지 커튼을 젖히고 도하를, 그림자가 아닌 뚜렷한 모습의 도하를 발견하고 품에 안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도하는 지하 15m 아래에 동결되어 있다.

종종 도하를 보기 위해 그 건조하고 차가운 냉동고를 찾는다. 불투명한 동면장치의 유리 안으로 검은 형상이 보이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그림이기에 나는 그 안에 있는 아이가 도하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도하를 동면시킬 때 분명 나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사이에 도하를 바꿔치기했다면. 혹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엉뚱한 누군가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셈이다.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투명한 형상 앞에만 서면 이 망상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커튼을 젖히고 끝내 도하를 찾았는지에 대한 기억이 내겐 없었다. 거실에서 도하를 찾아다녔던 기억은 뚜렷하지만, 그 이후에 커튼을 열고 도하를 어찌했는지는 순전히 내 상상으로 채워져 있다. 만일 누군가가 와서 내가 도하를 찾다가 그대로 거실을 나가버렸다고 지적한다면 나는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그때부터, 도하가 그 커튼 뒤에 숨어있던 순간부터 이 불확실한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째서인가. 그 이후로도 나는 5년 넘게 도하를 키웠지만, 도하와 함께한 시간은 기억 속에서도 밀도가 낮았다. 오직 도하를 찾아 거실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던, 그 배회만이, 뚜렷하고 생생했다.

 


 

하주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남편을 죽였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내가 무너질 거라 수군거렸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못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 위치에 서기까지 끊임없이 달려야 했던 과거가 있었고 거기서 생성된 일체의 집념들이, 나도 모르는 새 관성을 만들어냈으니까. 그 끔찍한 사건도 나를 멈춰 세우지 못했다. 그 사실에 진저리치면서도 정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그렇게 무너졌다면 남은 가족들, 언니와 엄마 또한 살아남지 못했거나 살아남더라도 비참해졌으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주는 사건 현장에서 즉시 포획되었다. 이미 감염은 종말 단계까지 진행된 후였고 인지능력은 사라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감염자 격리병동의 유리창 너머로 두 달간 하주를 지켜봤다. 치료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하주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었다.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하주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주길 바랐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옆을 지켰고 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할 때는 간병인을 통해 하주의 상태를 살폈다. 단 몇 분이라도 좋으니, 아이의 정신이 온전히 돌아온다면 그간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했다는 말과 정말로 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치매 같은 종류의 병이 아니었다. 하주는 한순간도 정신을 회복하지 못했고 점차 지켜보기 힘든 모습으로 변해갔다. 불치병에 걸린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는 특수한 사례가 있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기대했다. 돌아오는 답은 서둘러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감염자 격리병동에 하주를 두 달 가까이 입원시킨 건 분명 의원으로서 내가 누린 특권이었다.

남편이 죽은 지 63일째 되는 날, 하주의 안락사 동의서에 서명했다. 말이 좋아 안락사였지 약물이 든 주사침을 총에 장전하고 감염자에게 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난 온전한 시체라도 거둘 수 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진 후에 발의된 법안에 의해서 이제 조금이라도 폭력성을 보이는 감염자는 현장에서 바로 사살할 수 있다. 임의로 시체를 거두는 행위조차 불가능하다. 내가 법사위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 본회의에 통과시킨 안건이었다.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던 시간은 20일 안팎이었다.

희박한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그때, 하루만 더 기다렸으면 하주가 정신을 회복하지 않았을까. 내가 모르는 순간에, 간병인도 눈치채지 못한 시간에, 공백의 몇 분간, 혹시 하주는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좀만 더 하주의 곁을 지켰다면, 하주를 생각했다면. 아니, 안타깝지만 그런 가능성은 없다. 사례가 보고된 적도, 학계가 엇비슷한 가설을 발표한 적도. 한 번 퇴화한 인지능력이 다시 회복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그 단호한 부정 뒤에도 안녕은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내 아이가 유일한 사례였을 지도 모른다는, 미련의 바닥이 내 마음속을 지옥으로 만들곤 하니까.

 


 

멀리서 레토나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왔다.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레토나가 정문에 다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군에서 경계 보초를 서는 기분이었다. 누구일까. 생필품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강도일 수도 있고, 아직 좀비로 변하지 않은 감염자일 수도 있다. 누구든 내 집에 접근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건 1년에 가까운 잠복 기간과 100%에 가까운 치사율이었다. 종말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았더라도 감염자는 바이러스를 옮겼다. 이윽고 차량은 정문에서 멈췄다. 남자 하나가 내리더니 옥상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문 좀 열어달라는 손짓을 보냈다. 군청 공무원이었다.

서명 안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 안의 누군가와 뭐라 말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얼마 있다 남자는 차에서 서류를 꺼내곤 내게 보란 듯이 허공에 높이 흔들었다. 정문에 박스 테이프로 성의 없이 그걸 붙여놓고는 다시 레토나를 타고 유유히 떠나버렸다. 나는 레토나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문으로 뛰쳐나가 남자가 붙이고 간 서류를 확인했다.

강제 집행 계고

내 집행 동의 없이 도하가 잠든 녹진리의 동면시설을 밀어버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시설명을 동결 시체 보관소라고 적어놓았다. 서류를 바닥에 던지고 시체보관소를 향해 두 발을 쐈다. 물론 종이는 너덜너덜하게 찢겨서 여기저기 날릴 뿐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개머리판으로 펜스를 수십 번 쳤다. 펜스가 텅텅 울릴 때마다 머릿속에서도 뭔가 화약 터지듯이 펑펑 폭발하는 울림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시체, 보관소. 공이가 뇌관을 치듯이, 두 단어가 머릿속 내벽 어딘가를 치고 지나갔다.

내 아이가 시체란 거지. 그래서 짐짝처럼 보관하고 있다는 거지. 그걸 밀어버리겠다고 지금. 길가 노점에 하듯이 밀어버리겠다고. 그럼 도하는. 저 까마득한 지하에서 아이가 나를 향해 어찌 할 것인지를 묻고 있을 것만 같았다. 동면장치는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아니었다. 설사 옮길 수 있는 설비를 구했다 하더라도 동면상태를 유지하려면 전기가 필요한데 여길 떠나면 어디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소리가 울릴 정도로 펜스를 쳤다. 텅텅. 시체, 보관소. 텅텅. 아이를 어떻게 옮겨야 한다는 건가. 이게 살인이란 자각도 없겠지. 어느 순간 팔을 멈추고 진동에 귀 기울였다. 불빛이 꺼져가듯이 진동이 사그라지는 것을 기다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거를 막는 수밖엔 없었다. 그 외에는 동면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진동이 가라앉자 그 사실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떻게. 가만히 총 한 자루 쥐고 앉아 지평선을 바라봤다. 막막하게 한숨이 흘렀다. 어쩌다 이 모든 일이 벌어졌는가.

 

14년 전 내가 처음으로 O바이러스 환자를 본 건 친구가 보내준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얼어붙은 건축 경기 때문에 취업에 번번이 미끄러져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신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O바이러스는 애버리지니 병으로 불렸고, 심각한 기억 상실과 인지능력 퇴행만 관찰되었을 뿐, 아무도 좀비라는 단어를 연관시키지는 않았다. 영상에서 본 소년 역시 좀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가난하고 굶주린 가출 청소년에 더 가까웠다. 노던 준주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대개 애버리지니를 대상으로 발병했기에 초기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은 감염병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초기 증세가 알츠하이머와 유사해 보였다는 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복지나 의료와 관련된 도시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동네였고 그 때문에 감염자들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아웃백의 황량한 들판을 활보하곤 했는데 얼마 안 가 울룰루를 찾는 여행객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시작은 아마 선량한 의도였을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비쩍 마르고 수척한 사람들이 넓디넓은 아웃백을 방황하고 있었으니까. 여행객들은 자신이 가진 물과 음식을 나눠주었다. 감염자는 캥거루나 에뮤처럼 그걸 받아먹었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가장 곤혹스러운 관광상품이 되었다.

울룰루를 향하던 수많은 관광객이 그들을 발견하고, 음식을 던져주고, 관련 영상을 개인 SNS에 업로드했다. 몇몇 과감한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찍기도 했고 더 나쁜, 차마 인터넷에 올릴 수 없는 짓을 하곤 비밀리에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폭행과 추행을 당하더라도 그들은 신고하지 않았다. 대학 동기가 보내줬던 그 영상 속 소년도 질 나쁜 관광객들이 촬영한 희생자 중 하나였다.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소년을 둘러싸고 시끄럽게 웃고 떠들어댔다. 맛있니? 너 집이 어디야? 말을 못 하니? 원래 영어를 못했니, 아니면 병에 걸려서 못 하는 거니. 소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들이 건네준 샌드위치를 반 이상 흘리면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간간이 영상에 비친 관광객들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그저 재밌는 추억거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여행을 마친 뒤 고국으로 돌아갔고 자신들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계속 아웃백에서의 일을 즐거워했을 것이다.

첫 번째 사망자는 아웃백의 무제한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에 감염자가 치이면서 발생했다. 사망자의 등장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전문적인 의학 검사가 시행되면서 전염 가능한 바이러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울룰루를 향하는 발길은 뚝 끊겼지만 이미 수만의 여행객들이 노던 준주의 감염자와 접촉한 후였다. 병명은 그렇게 애버리지니 병에서 애버리지니 바이러스로, 다시 국제기구의 권고에 따라 발병의 근원지를 따 O(Outback) 바이러스로 정정되었다. 시작은 아웃백이었다. 그 황량하고 메마른 들판에서 시작된 죽음이 내 아이까지 앗아갔다.

 


 

화가 난 표정으로 창밖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남자를 보면서 희한하게 나는 정치 경력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쳤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하주와 남편의 사건에서 비롯된 추문이 가장 큰 위기였다. 내가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과 자녀를 거의 돌보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감염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가정에 무관심했다는 보도가 연일 터져 나왔다. 빅데이터 속에 떠다니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재선은커녕 두 번 다시 이 바닥에 발을 붙이지 못할 거라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난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건 떠나간 민심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내 지역구였던 서초구가 행정구역 폐쇄 절차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선거구가 사라진 탓이었다. 6·25 이후 두 번째로 개설된 피난 국회가 을숙도를 거쳐 진도로 옮겨왔고 생존한 국민조차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 총선은 시행되지 않았다. 국회의 폐쇄는 나만의 위기가 아니었고, 애초에 위기를 넘어서는, 도리어 무얼 어찌해볼 수조차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나는 의원직에서 내려온 후 본업이었던 변호사로 돌아갔다. 망가진 세계에서도 법리는 필요했다. 주인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어 소유권이 불분명해진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쟁의를 주로 다뤘다. 국가 시설이 들어서야 하는 공간에도 끝없이 사유지 재산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배우자, 자녀, 사촌에서 팔촌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가계도를 들고 와 그보다 더 복잡한 재산 상속의 과정을 설명하며 보상을 요구했다. 정부와 개인 사이를 중재하는 게 보통의 업무였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서 국가재건위원회 소속으로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재건위의 대표적 매파였고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다소 끔찍한 결정을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조롱의 내용은 대개 남편을 잃고 자식까지 죽이면서 정치인으로 붙어 있는 것에 대한 수군거림이었지만, 그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잃은 사람들은 많았다. 아직 잃지 않았거나 잃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지켜야 할 게 많았다.

내 아이는 시체가 아닙니다.’

남자가 들고 있는 피켓의 글귀였다. 그래서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려 보였다. 어쩌면 스무 살쯤 나이 차가 날 수도 있겠다. 대학생이었던 하주가 죽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가니까. 남자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구멍이 숭숭 뚫린 종이를 던지듯 건넸고 나는 간신히 그게 계고장임을 알아보았다. 녹진리에 있는 시체 보관소 철거 문제를 모르진 않았다.

근거가 뭡니까.”

이 남자가 지금 나와 시설 철거에 대한 법리를 다투겠다는 건가. 하필이면 나와. 행정집행에 허가를 내준 사람도 따로 있는데. 남자의 속내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만은 아니었다. 다만 재난 이후 나만큼 압류, 매각, 철거와 같은 법적 문제를 취급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회사가 운영을 포기했어요.”

말하고 나니 포기했어요, 하는 사무적인 말투가 예전의 행적을 떠올리게 했다. 지대가 체납됐어요. 계약을 불이행했어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아요. 그러면 지체없이 밀어버렸다. 내 입에 나온 말이 어떤 주문처럼 작용해서, 불도저나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달려가 사람 혹은 건물을 통째로 땅에서 쫓아버렸다. 빈자리는 다시 사람이 채웠다. 더 부유한 사람, 이라는 확신은 없다. 어차피 재난 때문에 재산은 쉽게 증발했고 다들 사는 게 고만고만했으니까. 대체 무엇을 위한 순환이었나. 이제 와 이런 의문은 왜 드는가.

내용을 좀 보고 싶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나는 계약서를 꺼내고 그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시설을 건설한 시공사는 진도군으로부터 10년간 전력을 공급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그 만료 기간이 지난 달이었다. 이후엔 시설 용지에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 전력을 자체적으로 공급하기로 했지만, 10년 동안 전지판은 단 한 개도 설치되지 않았다. 시설에 들어가는 전력은 260가구의 한 달 사용량과 엇비슷한데 이건 어찌 더 경과를 지켜볼 수 있는 비용이 아니었다. 진도군은 체납을 묵과할 수 없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강제 집행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최종의사를 통보했다. 그들은 고작 전보 한 통으로 내부 사정이 어려워 법무 대리인을 파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사실상 강제 집행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시설에 안치된 스물세 사람 중 한 명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모두 유족이나 법정 대리인이라 부를만한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유일한 관계자는 내 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였다.

우선 공급 중인 전기를 차단해야 하는데, 그럼 지하의 동결시설이 가동을 중단할 겁니다. O바이러스는 낮은 온도에서 냉동하더라도 생존하고 역가가 완전히 감소하지 않아서 전염 활동의 위험성이 남아요. 자연 소멸할 때까지 지하를 폐쇄해야 합니다.”

우리 애는 죽어야 한다는 거죠?”

죽어야 한다. 남자의 화법은 묘했다. 내게 아이의 죽음을 책임 묻는 것 같기도 했고 최소한의 윤리의식에 기대는 것 같기도 했지만, 높낮이 없는 그 말투는 그저 사실확인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가게에서 점원이 이 제품 고른 게 맞으세요, 묻듯이. 체념일까.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피켓을 만들어 일인 시위할 필요도. 어쩔 수 없이 십 년 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하주의 죽음을 결정했던 내가 생각났고, 그러자 이 남자를 본 순간 그 위기의 순간들이 떠오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동면을 믿지 않아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내 아이가 그렇게. 되었을 때. 나도 동면을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불치의 바이러스에 동면을 선택한 이들은 그때도 있었다. 워낙 좁은 시장이었기 때문에 얼치기 업체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그저 가정용 냉동고에 시체를 넣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곳부터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사용했다며 수십억을 요구하는 곳까지 여기저기 광고를 실어댔다. 한 줄기의 가능성이라도 잡고 싶었던 내가 동면을 선택하지 않은 건 만나는 전문의마다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세포는 얼게 되면 부피가 증가하는데 그 과정에서 세포막이 손상된다면 사람이고 바이러스고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다. 체내의 수분을 줄인다 하더라도 발생한 얼음 결정은 여전히 세포에 치명적이었다. 체액을 다른 액체로 교환하는 방법, 아예 부피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급속냉동하는 방법, 부작용을 줄이려는 방안은 많았지만, 결론은 모두 같았다.

현대 의학으로는 되살리는 게 불가능했다. 먼 미래. 먼 미래의 과학을 신앙처럼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믿음이 내게는 없었다. 당장 인류의 존망을 다투는 지독한 바이러스의 앞에서 존재의 가능성조차 알 수 없는 미래 인류의 과학을 믿고 아이를 꽝꽝 얼린 채 수십, 수백 년을 보내게 할 자신이 없었다.

똑같이 아이를 잃은 입장에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생존의 문제에요. 진도에 남은 생존자들을 위해선 전기가 필요해요.”

극복하고 나아가야지 않겠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아이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극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남자가 나를 보고 말했다.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겠습니다.”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거긴 시체 보관소고 공공보건법률을 위반한 상태입니다.”

당신한테나 시체지, 나한테는 아닙니다.”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등록된 시설 목적을 말하는 거예요.”

나는 보좌관을 통해 당시 건설사가 제출한 허가 신청서류를 찾아 보여주었다. 사용목적란에 쓰인 동결 시체 보관소에 밑줄을 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동면에 관한 시설허가는 안 났어요. 처음부터 회사는 시체 보관소로 목적을 적어 냈어요. 여긴 묘지에요. 몰랐나요?”

남자는 충격을 받았는지 시체 보관소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불쾌한 침묵이 한동안 방안을 떠돌았다. 우리 모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테이블만 바라보았다. 남자는 한참 동안 그 상태로 앉아있었고 몇 번의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냉동된 인간은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법리적으론 시체지만 정말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시체는 아니었다. 뇌사나 식물인간 같은 문제와는 달랐다. 미래의 과학을 긍정해야 그들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럴 수 있나. 믿음으로 인해 죽거나 산 상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전례 없는 이 행정집행에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따져보면 어차피 그 안에 들어있는 인간들은 O바이러스 감염자고 길어봐야 2년을 살 테니 시체와 다름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내 생각에 거기까지 미쳤을 때, 남자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이랑 똑같진 않아요.”

뭐라고요?”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었어요. 도하는 감염 진행에 내성이 있었어요.”

감염으로부터 살아남은 극소수의 돌연변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완전 면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종말 단계에 이르는 시간이 늦춰질 뿐이었다. 10, 혹은 20. 정확한 기간은 아무도 몰랐다. O바이러스의 변이는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돌연변이 감염자들은 연장된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 감염 활동을 지속했다.

결국 시간의 문제가 아닌가. ‘똑같진 않다.’라는 남자의 말이 대단히 미련하게 들렸다. 자신의 아이는 수명이 조금 더 기니 동면에 들 자격이 있다는 뜻인가.

그럼 뭐 때문이었는데요?”

내가 물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었죠.”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대학 졸업 후 내가 겨우 입사한 회사는 불 꺼져가던 세계 건설 경기 속에서 굉장히 독특한 돌파구를 찾은 곳이었다. 회사는 개인용 방공호를 건축했다. 주로 핵전쟁이나 자연재해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당연히 좀비의 습격에서도 안전했다. O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좀비 사태는 일종의 유머였다. 회사는 소수의 마니아를 위해 홍보용 팸플릿 가장 뒷면에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재난 상황을 삽입해두었다. O바이러스가 나타난 후 그건 가장 앞면으로 옮겨갔다.

내 엔지니어 사수는 내가 노아의 방주의 마지막 티켓을 끊은 행운아라고 자주 떠들었다. 나와 입사 동기들은 부족한 인력난에 추가로 고용된 기술자들이었다. 한창 O바이러스가 치명적인 공포로 확산할 무렵이었고 회사는 폭발적이다 못해 기이한 성장 곡선 그래프를 그린 시기였다. 경영진은 회사의 직원들에게 복지로 방공호를 약속했지만, 재난 초기에 닥치는 대로 고용한 기술자들에게까지 방공호를 제공할 만한 여력은 없었다. 대신 나름 안전성을 갖춘 가옥을 제공했다. 덕분에 나는 문산의 한 거주구에 49평짜리 이층집을 받아 생활할 수 있었다. 온 나라가 마비되고 행정구역이 폐쇄되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그것도 굉장한 호사였다.

그곳에서 제약회사 연구원이었던 아내를 만났고 결혼식을 올렸다. 방공호가 필요한 VIP들은 여전히 많았고 군부 시절 건설된 대피소나 창고 지하실을 개조하는 작업을 위해 외지로 오랫동안 출장 가 있는 날이 많았다.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이런 세상에서도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경의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생활을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버티고 버텨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나의 생존만을 말한다면 지난 14년은 꽤 성공적이었다. 70억 넘는 인류가 죽어가는 동안에도 살아남았지 않은가. 내 아내와 아이는 실패했음에도.

 

여보. 도하 못 봤어?”

방공호에 설치한 태양 전지판에 문제가 생겨 대구까지 10일 넘게 출장을 다녀온 날이었다. 날밤을 세는 작업을 한 탓에 너무 피곤했고 아침 8시에 헬기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죽은 듯 잠들었다. 아내가 나를 깨운 건 정오 무렵이었다.

지하실에 있겠지. 문 다 잠가놨는데 어딜 나가.”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아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잠결 같은 목소리가 한층 더 웅얼거리듯이 울렸다.

왜 자꾸 도하가 지하실에 내려가지?”

숨바꼭질한다고.”

저 혼자서?”

. 혼자서. 도하 혼자서도 잘 놀아.”

도하는 다분히 산만한 아이였다. 유소년기에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했으니 정서적으로 좋았을 리가 없었다. 문산의 집 지하에는 2층 깊이의 지하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도하는 심심할 때마다 그곳으로 내려가 숨바꼭질을 했다. 고작 커튼 뒤에 숨는 게 다였던 도하가 그 복잡한 미로를 알고 난 뒤로는 통 찾기 힘들 정도로 꼭꼭 잘 숨어버렸다. 나도 함께 숨바꼭질하면 십여 분쯤 찾다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는 날이 많았다. 그 날도 도하가 숨을 곳을 찾다가 어디선가 잠들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뒤 아내가 황급히 뛰어와 나를 깨웠다.

여보. 환풍구가 왜 열려있지?”

도하에게 공구 만지는 법을 알려준 건 나였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도하가 걱정되어서 한 일이었다. 내가 죽더라도 전기설비기술이나 건축기술을 배워두면 굶어 죽진 않겠다 싶은 계산이 있었다. 또 간혹 도하가 문설주를 타고 문을 오르는 장난을 치는 걸 본 적도 있었다.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다그치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나도 어렸을 때 자주 그랬으니까. 하지만 내 공구 통에서 래칫 렌치를 꺼내 환풍구를 딴 다음에 경사진 좁은 통로를 타고 밖으로 나갈 줄은 꿈에도, 정말이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그 날 도하는 야산을 올라가 철조망을 따라 걷다가 철조망 바깥에서 서성이던 감염자에게 붙잡혔다. 감염자는 도하를 꾀어서 철망 밖으로 팔을 뻗게 한 다음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광망(光網)을 통해 이상을 감지한 경비원들이 출동했고 감염자를 사살한 뒤에야 도하는 풀려날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집은 폐쇄되었고 우리는 문산에서 쫓겨났다. 회사는 원한다면 새로운 거주 구를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 한해서였다. 내가 가족과 함께 떠나겠다는 결정을 전하자 다시 복직하기는 어려울 거라 통보했다.

도하를 붙잡은 그 감염자가 무슨 해코지를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경비원에게 들은 바로 그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 어떻게 거기에 들어갔니. 어떡하면 거기서 살 수 있니.

 


 

내가 다시 그 남자를 만난 것은 우연히 군청 앞을 지나가면서였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태양전지패널을 포터에 싣고 있었다. 구름이 잔뜩 낀 8월 초여름의 날씨였고 습기와 열기 때문에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나는 업무차 순방을 나섰다가 군청 앞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시위 탓에 급히 일정을 수정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요사이 의회에서 다뤄지는 가장 뜨거운 화두는 내륙에 군대를 투입하는 일이었다.

10년의 봉쇄 더는 못 참겠다. 누가 격리 대상인가.

시위 구호에 시달리는 것은 여의도나 이곳이나 다른 바가 없었다. 기록적인 가뭄에 올해는 특히 더 충돌이 심했다. 나는 비용과 추가 사상자 문제로 병력 투입을 반대하는 쪽이었고 이 때문에 어느 새부턴가 정계에서 조금씩 온건파로 분류되고 있었다. 통상 O바이러스 감염자들의 수명은 길어봐야 2년이었다. 대개 그 이전에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했고 운이 좋게 2년을 살아도 인지능력이 모두 퇴화해 아사를 피하지 못했다. 진도로 피난 왔던 10년 전만 해도 나는 O바이러스 특성상 오래지 않아 한반도 내의 감염자가 자연 소멸할 것이라고 내 나름의 낙관을 전파하고 다녔다. 당시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은 내 계산에 없었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보다 위험한 건 99%의 치사율을 가진 바이러스였다. 자연선택설에 의해 O바이러스는 숙주의 수명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내륙의 인간들도 더 면역이 강한 개체들만 살아남을 것이고. 어쩌면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세대를 거듭한 끝에 O바이러스와 인간이 불멸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섬과 지하에 숨어 사는 우리는, 콜럼버스가 도착한 아메리카의 원주민 꼴이 되겠지.

나조차도 육지와 봉쇄된 채 10년을 보내니 조급함이 들기 시작하는 게 사실이었다. 모두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내가 녹진리 시체 보관소의 강제 집행을 조금 더 늦추자는 의견을 내자 담당자는 물론이고 동료 정치인들조차도 난감해했다. 이미 회사도 포기한 시설인 데다 안 그래도 동면시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어찌 지려 하느냐는 게 일관된 반응이었다.

비가 내립니다. 의원님

보좌관이 나를 처마 밑으로 끌어당겼다. 구름이 끼어 오전 내내 습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래 내릴 것 같진 않았다.

한바탕 와야 하는데.”

논에 물 적시기엔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 사람들.”

나는 턱으로 시위대를 가리켰다. 비를 피하고자 간이 천막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시 시위를 재개할 요량이었다. 그만 건물로 들어가자고 말하는 보좌진에게 잠시만 혼자 있고 싶으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청했다. 처음에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내 부탁을 거절했지만 계속 고집을 피우자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비켰다.

비를 맞으며 홀로 청사 계단을 내려가는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시위대와 군인들은 서로의 동향을 살피느라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자가 패널을 실었던 포터는 청사 오른편 주차공간에,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조수석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덥석 시트에 앉자 운전석에서 비를 피하던 남자가 당황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녹진리에 설치하려는 건 아니겠죠. 한참 모자랄 텐데.”

내가 물었다. 남자는 부정은 하지 않고 쓴 웃음소리를 냈다.

아이를 위해서는 못 할 짓이 없죠. 당신은 이해 못 하겠지만.”

나도 내 애를 사랑했어요.”

내 대답은 반사적이었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하주의 죽음에 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사랑을 말했다. 그러면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한순간에 날카로워졌다.

여기엔 왜 왔습니까.”

남자는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무슨 해코지를 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와 만난 뒤로 끊임없이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어떠한 환영 같은 것이 있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어느 순간에 번뜩이며 올라오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조용히 타오르며 끝없이 회상을 강요하는 무언가였다.

한 번 더 얘기를 해보려고 왔어요.”

나는 그가 부재에서 비롯된 상실감에 빠져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남자는 삶이란 영역을 모두 공백으로 비워내고 그곳에 가족의 죽음을 채워 넣은 사람 같았다.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든 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마땅한 감정이나 목적 같은 게 빠져있어서 누군가가 프로그램을 집어넣고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과거의 명령만을 반복하는 로봇처럼 느껴졌다.

필요 없어요. 당신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남자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무덤덤한 말씨로 대꾸했다. 물론 나를 상처 입히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언론을 통해 내 가정사를 알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했다. 물론 그가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내뱉는 말이 무슨 의도로 비칠지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기묘한 독백을 시작했다.

그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 애를 찾아갔던 적이 있어요.”

국감이 열리는 시기였다.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빴다. 이미 몇 달째 남편과 하주를 보지 못했지만 그 날이 아니면 1년 내내 얼굴도 못 보고 지내겠다 싶은 마음이 일었다. 정오 무렵 남편에게 통화로 집에 찾아가겠다고 하자 남편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눈치였다. 몇 달 만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것이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하주가 죽은 듯 침대에 누워 있던 것과 부쩍 늘어난 남편 몸의 생채기 또한 조금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 이름을 불러봤지만, 하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남편은 황급히 다가와 피곤해서 그러니 이해해달라며 나를 붙잡았다. 나는 겨우, 겨우 전날 밤 과음을 하고 들어와 정오까지 침대에 누워 자는 하주의 모습만 상상했다. 병에 걸려 아파하고 있을 가능성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못했다. 언제 정신 차릴 거냐. 모진 말만 쏟아내고 방을 나왔다.

하주와 남편을 보내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날 정오의 풍경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따금 꿈을 꾸었고 방 안에서 나는 아파하는 하주에게 다가가 이유를 묻는다. 괜찮은지를 살핀다. 어떨 때는 내가 죽임을 당한다. 만일 그랬다면, 그 날 하주에게 좀 더 관심을 가졌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남편이 나 대신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기나긴 고통과 후회, 끝이 없는 고독과 투쟁도 모두 그 날로 끝나고 아이와 남편에게 갖게 될 죄책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결말은 하주가 온전한 정신으로 내게 아픔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 공간에는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 벽이 없고 며칠 밤을 기다리지 않아도 내게 귀 기울이는 하주가 있어 나는 언제고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꿈이 끝나고 난 뒤에 잠에서 깨 끝없이 누군가에게 속죄하는, 그런 결말이 있다.

 


 

그녀의 말을 듣는 동안 나 또한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마터면 정말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고, 한심하게도 그게 나를,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잠시 사로잡혔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방식에는 구원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깊은 상처와 죄책감은 질량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얼마나 많이 반복해서 여러 사람에게 털어놓든 간에 그것은 똑같은 수만큼 복사되어 퍼질 뿐 여전히 내 안에, 깊은 흔적을 남긴 채 고여있을 수밖에 없다.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없다.

도하와 숨바꼭질을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도하는 혼자 있는 시간은 장난감으로 보냈지만 지루해질 때면 내게 매달렸다. 문산에서 살던 시절, 내가 가장 관심을 쏟은 것은 지하실을 방공호와 같은 대피소로 만드는 일이었다. 아내는 내 걱정이 너무 과하다고 지적했지만, 문산까지 수백의 감염자 무리가 떼 지어 습격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나는 방공호를 원했다. 내 고객들의 것처럼 세계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우리 가족을 지켜줄 대피소가 필요했다.

투상도를 그리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도하를 지하실로 데려갔다. 도하는 숨바꼭질하는 동안에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다. 커튼 뒤가 아닌 구불구불하고 어둡고 깊은 그 공간에서 도하는 내가 찾으러 가지 않더라도 한참을 숨어있고는 했다. 내가, 지하 밑 어딘가에 있을 마법의 공간을 말해줬으니까. 마녀의 옷장처럼,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말해줬으니까. 도하가 그 말에 얼마나 집착하게 될지 몰랐다. 돌아가는 팬의 뒤편에서 나오는 빛에, 그 바깥의 초록에, 은회색의 사각 통로에, 사로잡히게 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산을 올랐을 것이다. 익숙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았을 것이다. 철망 바깥의 모험을 바랐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렇게나 내뱉은 그 말 때문에. 이제 내게 남은 것은 그때의 말뿐이었다. 그게 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이 여자는 내게 그것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과오를 고백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누가 집에 불을 질렀어요.”

문산을 떠나 태안에 정착해 살고 있었을 때였다. 도하는 인지 퇴화가 비교적 일찍 멈췄고 폭력성이 거의 없어 겉보기엔 약간의 자폐증 증상만 지닌 듯이 보였다. 나는 기적이라 생각했다. 다시 문산에서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재난은 그렇게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영화처럼 불행이 나만을 비껴간 채 동화와 같은 결말에 이르게 해주는 일은 없었다. 가능한 한 조심했음에도 아내가 도하를 돌보다가 감염되고 말았다. 도로를 보며 멍하니 있는 날이 잦았고, 결국 거주지에 소문이 퍼졌다. 누가 불을 질렀는진 알 수 없다. 어차피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테니까. 아내는 감염 초기 단계라 스스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도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도하를 구출했을 땐 이미 연기를 상당히 들이마신 뒤였다.

그게 마지막이었을 거라고, 불길과 연기 안에서 기침하는 모습이. 그걸 생각하면 보낼 수가 없지 않으냐고 나는 따지듯이 물었다. 부모라면 그게 당연하지 않냐고.

아이를 그만 보내줘요.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이 있다면 후회할 게 없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손등이 덮이며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피부 감촉을 느꼈다. 비에 젖은 축축한 손바닥이 도하를 안았던 첫 포옹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으로 어떤 가능성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과오를 지울 수는 없지만 이렇게 다른 무언가를 축적해가며 묻어둘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땅에 묻고. 애도를 그만 끝내고. 나는 정말 지쳐있으니까.

그렇게 불가해한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할 찰나에 바깥에서 함성이 끼어들었다. 10년의 격리 못 참는다. 정부는 적극적인 생존 방식을 모색하라. 어느새 소나기가 그치고 다시 시위대가 천막 밖으로 몰려나왔다. 군인들은 판초 우의를 접고 대열을 만들었다. 바깥의 열기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게 잊고 있던 무언가를 상기시켰다.

내 고객들이 지상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요?”

내가 손을 빼내자 그녀도 씁쓸한 얼굴로 손을 거뒀다.

뭐라고 불렀죠.”

아웃백.”

사람들이 당신을 찾고 있을 것 같네요. 나는 완곡히 그녀에게 떠나달라는 말을 전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녹진리 동면시설의 일은 까맣게 잊혀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쯤엔 그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느 새벽녘, 나는 보좌관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청용리의 상수도 시설로 향했다. 직접 사건을 목격한 내가 내린 결론은 진도를 행정 폐쇄하고 모두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는 게 낫겠다는 것이었다.

취수원으로 쓰는 구계 저수지에서 감염자의 시체가 떠올랐다. 한여름이라 부패의 속도가 빨랐고, 물고기들이 뜯어 먹은 탓인지 피와 살점이 사방팔방에 흩어져 떠다녔다. 수도원 직원들은 급히 용수를 중단하고 시체를 건져 올렸지만, 정수장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혼화와 소독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2700m³가 넘는 오염수가 그대로 시민들에게 공급된 것이다. 수도뿐 아니라 하천으로 흘러가 버린 물도 문제였다. 내륙에서 건너온 생존자 중에는 하천 근처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지어놓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몇 명이나 감염되었을지 추산이 어려웠다. 구역 격리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 그러니까 물이 오염되었다. 초기 대응팀이 급조된 날, 해양 경비대는 감염 초기 단계의 외부인이 해안가를 통해 진도에 들어온 뒤 덕신산에서 아사했고, 지난밤 폭우에 그 시체가 떠내려와 구계 저수지에 다다랐을 것이라는 다소 장황한 가정을 내놓았다. 행정처는 감염자가 진도 내륙을 휘저을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경비대를 질책했고 또 누군가는 일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하나 마나 한 말을 꺼냈다. 고성과 질타가 오가는 중에도 나는 묘한 이질감과 알 듯 말 듯 한 어떤 해답에 골몰하느라 아무런 의견도 내놓지 못했다.

남자가 떠오른 것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였다. 총의 방아쇠가 당겨지듯이 그 남자가 떠올랐다. 운전 중인 보좌관에게 질문했다. 윤보. 그 녹진리 동면시설 어떻게 되었지? 그젠가 그저께인가 집행일이었을 텐데 지금 구계지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지 않았겠습니까. 뭐 나가는 걸 못 봤는데.

그런가. 그렇게 되었나. ‘아웃백이라 말했던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감겨들었다. 나는 소리 없이 아웃, , 하고 단어를 떨어트려 발음해보았다. 수없이 내뱉었던 단어였지만 이 순간, 생경하게, 그 말이 새삼 얼마나 외지고 쓸쓸한지를 느꼈다. 바깥이고, 뒤편이라니. 그런 곳에서 죽음이 왔다니.

어쩌면, 그 남자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녹진리에 군경을 보내 남자와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 본인이 선택한 것들에 관해 물었을 것이다. 후회는 남지 않았는지. 견뎌낼 수 있는지. 그러나 이제 내게 그런 질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남자의 삶을 전해 듣고 난 후에야 나는 14년 만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또한 하주를 상실한 지난날로부터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했음을, 극복하기는커녕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바깥이고 뒤편인 그곳에 무수한 사람들을 내치고 미뤄서 더는 채울 수 없는 포화상태까지 만들었음을,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에게 그만 보내주자고 말했나. 극복하고서 살아가자고. 자조적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뒤 보좌관에게 내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건넸다. 나도 출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보좌관은 내게 진도 바깥으로 피신할 생각인지를 물었다. 나는 당장은 어디로 떠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아마 감염자들의 시체는 앞으로 연달아 발견되겠지만, 우리가 간다면 어디로 가겠나 하며.

아무래도 피해야지 않겠습니까? 곧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으려 달려들 텐데.”

글쎄. 나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도 똑같지 않나.

 


 

지상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닫았다. 여러 겹의 차폐막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재난으로부터 이곳을 보호해줄 터였다. 이제야 나만의 방공호를 가졌다. 낮은 온도와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동면실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자주 손발과 입술이 텄다. 정수시설과 비상식량도 갖춰져 있었지만,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하루 대부분을 동면장치 안의 도하를 상상하며 보낸다. 편한 미소를 하고 있을지. 죽은 듯 표정이 없을지. 어느 장면을 상상해보더라도 도하의 얼굴이 쉽게 기억나지 않았다. 태안을 떠나 녹진리에 도하를 안치했을 때의 기억은 이렇다.

태안에서 서천으로, 그리고 영광과 목포를 거쳐 해안 지방을 떠돌았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사람이 적을 것 같았고, 여차하면 다 같이 바다에 빠져 죽을 심산이었다. 목가적이고 살풍경한 세상이 차창 밖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사라진 세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단정했다. 죽은 사람들의 사체가 도로며 논밭에 빼곡했다. 아직 숨이 붙은 감염자들은 허수아비처럼 허허 들판에 서서 차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봤다. 호전적인 몇몇은 차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기도 했다.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액셀을 더 밟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도망치고 있으면, 조수석에 앉은 아내를 룸미러로 곁눈질하게 되었다. 아내는 어느 쪽이 될까. 정물처럼 고요해질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달리게 될까. 그리고 도하는. 연기에 질식해 죽어가고 있는 내 아이는. 그 사실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해남에 접어들었을 땐 사실상 투신을 각오한 상태였다. 모두가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았을 때 끝을 내고 싶었다. 두륜산 공원에 차를 세우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자정이 넘어가도록 나는 추억에 관해 이야기했다. 처음 만났던 날이며 결혼식을 올렸던 문산의 집. 그리고 도하를 출산했던 일에 대해. 아내는 듣고 있되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 나를 보며 미안, 하다고 말했다. 감염이 심화 된 이후로 아내는 꿈결 같은 말들을 자주 했다. 뭐가 미안해. 나는 다정하게 되물었다. 아내는 다시 한참 말이 없다가 잘 가, 라고 말했다.

어디로.”

꿈결 같은 그 말에 진지하게 매달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가 잘 갈 수는 있는 건지. 겁 없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는 길 잃은 사람처럼 하염없이 되물었다.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여보. 어디로. 그 말을 되뇌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아내는 사라지고 없었다. 조수석이 텅 비어있었다. 그러니 남해로 투신하지 않고 진도군까지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근처를 뒤졌지만, 그녀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도하를 두고 멀리 갈 수도 없었다. 나는 아내가 도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초기 감염자들이 그런 증세를 보이곤 했으니까. 진도에 접어드는 동안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고 어느 순간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차를 멈춰 세웠다.

선생님, 어디서 오셨습니까?”

 

문산에서 엔지니어 일을 한 경력 때문에 진도군청은 내게 정착을 권유했다. 도하가 잠든 동면시설을 소개해 준 것은 진도대교에서 날 억류시켰던 나이 든 장교였다. 자신이 알고 지내던 장성 역시 그곳에 잠들어 계시니 한 번 생각해보라는 말투였다. 나 또한 그 희박한 가능성을 알았기에 거절했으나 그가 무심코 던진 말이 내 생각을 바꾸었다.

극락 같은 세계가 온다지 않습니까.”

극락 같은 세계는 어쩌면, 도하의 얼어붙은 혈관에 다시 피를 흐르게 하는 세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나도 완벽히 모르는 세계. 도하 또한 전에 몰랐던 세계일 것이다. 그건 내가 도하에게 했던 말의 다른 형태이기도 했다. 지하실의 어느 공간을 지나면 마법의 통로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미래가 다가오면, 나는 그 선량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 동면시설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하 밑에 잠들어 있는 도하를 발견하고 깨워주기를 바란다. 낯선 시대에 당도한 도하를 친절하게 맞이해주기를 바란다.

도하에게 건넨 말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전지판을 설치해 전기가 끊기는 걸 대비하고, 전력을 줄이기 위해 도하의 것을 제외한 다른 캡슐의 전원은 모조리 꺼버렸다. 그리고 그 안 든 시체들은, 아마 그 여자는 내가 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도하를 미래로 보내고 나는 여기 남아, 이렇게 표류한다. 스물두 구의 시체를 꺼내는 동안 얼굴을 모두 확인했다. 도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 장치가 도하의 것임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고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아내를 잃었던 그 날처럼,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어두컴컴한 지하에 남아, 황량하고 쓸쓸한 아웃백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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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1월 심사평3 2020.02.15
우수작 당신은 나의 애정 캐릭터니까 — 두영 2020.01.15
선정작 안내 2019년 최우수작 안내3 2020.01.15
선정작 안내 12월 심사평 및 4분기 우수작 안내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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