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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레인

돌로레스클레이븐

1.

굿스피드 호가 워프를 빠져나오자, 기이하게 뒤틀리는 거대한 가스 행성이 갈색 폭풍을 품고서 우주선을 맞이했다. 가스 행성 주위로는 소행성들이 거대한 띠를 이뤘고, 그 장사진은 족히 수십AU 가까이 늘어졌다. 때문에 이 길고긴 천체들의 흐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장엄한 강물을 바라보는 듯한 감상에 젖어들게 했다.

암석의 강물 속에서 낡아 빠진 이온 엔진이 희미한 푸른빛을 서서히 흘렸다. 그러자 굿스피드 호는 소행성들의 물결 위로 유유히 몸을 비틀었다. 마침내 우주선이 강물 위로 올라서자 거대한 가스 행성의 비틀어진 자전축 너머로 한줄기의 빛이 꽃처럼 활짝 피어올랐다.

그것은 우주에서 보는 여명이었다.

영겁의 심연 속을 벗어난 굿스피드 호의 모습은 한마디로 고철덩어리와도 같았다. 소행성을 격추해야할 메스드라이버는 전원이 꺼진 채 포신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함선 곳곳을 뒤덮고 있는 방열타일 위로 움푹 파인 자국들이 마치 달 표면을 연상케했다. 거기다 우주선 선체를 따라 돌고 있는 거대한 도넛 모양의 워프 드라이버는 미묘하게 스파크를 튀기면서 우주선 주위를 위태롭게 돌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스파크가 우주선 다른 부분에 옮겨 붙는다면, 우주선은 거대한 섬광이 되어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우주선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 중 누구도 함교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품이 없다니까.”

이 자그마한 푸념은 거대한 우주선의 선수부에 자리한 함교에서 흘러나왔다. 그 푸념의 주인공은 굿스피드 호의 부함장인 에이팩스였다. 그는 조종석 뒤쪽에 자리한 사물함에서 마지막 남은 우주복을 꺼내 손에 쥐고 흔들어댔다.

“거기다 부품이 있어도 우주복까지 고장 나는 바람에 지금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이제 어쩔 거야? 정말로 이래도 주문 안 넣을 거야?”

에이팩스가 학을 때면서 소리치자, 함장석에 앉아 있던 미나는 마지못해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곤란 하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주복은 또 어디가 망가졌는데?”

“자세제어장치가 말썽이라고. 전에 열펌프 고장 났을 때 내가 간신히 돌아온 거 기억은 해?”

“기억은 하지. 네가 조종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쇠파이프 좀 치우라고 한 것도 기억이 나.”

“근데, 저 파이프는 왜 아직도 바닥에 뒹굴고 있는 거야?”

미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파이프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상혁이에게 파이프 좀 처리 하라고 했어. 상혁이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냐.”

미나는 손에 들고 있던 말라빠진 진저퀴그낙 뒷다리 튀김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바삭한 튀김옷이 이빨사이에서 질겅질겅 바스러지자, 생강냄새가 외계 생물의 육즙과 함께 배어나왔다. 아. 정말이지 질리지가 않는 맛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음식의 풍미를 즐기고 있을 동안 에이팩스는 뭐가 그리 다급한지 우주복을 한 손으로 들어 보이면서 소리쳤다.

“젠장. 지금 튀김이 넘어가? 지금 상황이 어떤 줄이나 알아?”

벌써 서른 봉지 째 진저퀴그낙 튀김을 먹고 있던 미나는 기름진 입가를 핥으면서 말했다.

“아, 그만 투덜거려. 이 투덜이 스머프야. 그 정도는 괜찮아. 그냥 입어도 돼.”

“저걸 그냥 입으라고? 너 생각이 있어? 자세제어장치가 나갔다고! 그냥 우주로 튕겨나가면 우주선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이거야! 세상에. 당장 이걸 입고 밖에 나갔다간 확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찍을 거라니까.”

미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뭔데? 새로 나온 게임이냐?”

“아니. 영화야. 아주 오래 전에 지구에서 만들어진 고대 영화. 어쨌든 부 함장으로서 공식적으로 건의하건데 우리 당장 본사에 부품을 주문해야해. 긴급 주문 신호를 보내면 장거리 택배로 부품을 받아서…….”

“그건 안 돼.”

튀김을 입에 문 미나는 고개를 바쁘게 저으면서 말했다.

“절대 안 돼. 지금 우리가 부품 주문을 하면 분명 회사에서 우리한테 불이익을 줄게 뻔해.”

“불이익? 젠장. 지금 화물이랑 사람이 다 날아가게 생겼는데 불이익이라고?”

“그래. 아마, 택배비로만 몇 달치 월급이 날아갈 걸. 거기다 이번에 고장 난 부분은 특히 더 비싼 부품이잖아. 잘못하면 몇 년 치 월급이 날아갈 수도…….”

“헤헤. 간장 새우주세요.”

에이팩스와 우주복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미나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최첨단 펄스 스케너 위에서 잠꼬대를 하는 아시아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미나는 곧장 잠꼬대를 하는 남정네의 옆구리를 밀어 찼다. 너무나도 곤히 자는 통에 미나의 일격을 대비하지 못한 남자는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미나는 바닥에 나동그라진 아시아 계 청년에게 버럭 소리쳤다.

“상혁아. 인나라! 자슥아!”

바닥에 나동그라진 상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입가에 줄줄 흐르는 침을 닦으면서 기지개를 켰다.

“아이고, 아이고야. 내 초밥 어디 있냐? 내 초밥!”

“넌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네비게이터 안 봐? 소행성 접근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냐?”

미나가 못마땅한 얼굴로 소리치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소행성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메스드라이버가 망가져서 막을 방법도 없잖아. 아이고야.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냐? 내가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거지?”

“그건 네가 우리한테 알려줘야지. 이 네비게이터 양반아.”

보다 못한 에이팩스가 한소리 하자 상혁은 떡진 머리를 긁적이면서 펄스 스케너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컴퓨터가 홀로그램 화면이 띠우기 무섭게 상혁은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혀를 차면서 말했다.

“뭐야. 우주 공항에서 겨우 3파섹 날아 온 거야? 이번에는 뭐가 문제야?”

“우주복이랑 워프 엔진. 양전자 탱크 위에 전선 하나가 끊어졌어. 잘못하면 반물질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거야.”

“워. 그럼 빨리 고쳐야지. 난 할로윈 날 죽고 싶지는 않다고.”

“그런데 부품이 없어. 예비부품도 남은 게 없다고. 그래서 내가 본사에다 부품을 요청하자고 했더니 우리 잘나신 함장이 말씀하시길 그랬다간 우리 모두…….”

“워워워. 에이팩스. 그건 미나 말이 맞아.”

“맞아. 내 말이 맞다니, 까……. 우윽.”

미나가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를 뜨자 상혁은 자리에 똑바로 앉아서 말했다. 예상과는 다른 상혁의 반응에 놀란 걸까? 에이팩스는 세상 누구보다도 괴상한 얼굴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에이팩스 네가 이 쪽 업계에 별로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인데, 배달 업계는 항상 예산 부족에 시달려왔어. 그렇다보니 어떻게든 예산을 줄이기 위해서 별별 짓을 다했지. 특히 회사에서 주목한 것은 인건비였어. 기계야 정비를 꾸준히 하면 대체가 가능하지. 하지만 인간은 대체하기 참 힘들거든. 교육도 문제고 또 숙련도가 낮아도 문제였고 말이야. 그래서 회사는 사람을 채용하는 대신 로봇을 썼어. 그런데 100% 로봇을 쓰니까 또 부품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네. 그래서 회사에서는 로봇의 대체제로 사람들의 유전물질을 싼 값에 임대해서 쓰기로 결정했어. 유전물질이니까 최저시급은 피해갈 수도 있고, 또 몇몇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었거든. 아마 우리 본체는 지금 이 순간도 나대신 아주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을 걸.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마 이번에 우리가 부품을 새로 청구하면 회사는 우리에게 택배비용을 청구할 거야. 그런데 우주 택배는 웬만한 택배보다 훨씬 비싸지. 그런데 사람도 임대해서 쓰는 회사 차원에서는 그런 예상 외로 발생하는 지출을 곱게 볼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정량 이상의 금액 손실을 내게 되면 회사에서는 우리를 잘라버리는 대신 확 저세상으로 보내려고 들 거야. 내가 전에 듣기로는 이 우주선을 끌던 작자들도 손실을 내는 바람에 잘렸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본사에서 에어록을 강제로 열어서 승무원들을 우주 밖으로 던져 버렸데. 어차피 우리는 복제품이라 딱히 인권이 없다나봐. 미나도 들은 얘기인데……. 잠깐. 미나는 어디 있어?”

너무 많은 말들 속에서 익사할 뻔했던 에이펙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인기척은 조종실 격벽 뒤편 함교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욕설이 섞인 토악질 소리였다.

2.

화장실에서 나온 미나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입을 닦았다. 양치질을 했지만 여전히 입안에 기름기가 맴돌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함장석에 앉아 두 눈에 젖은 수건을 올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에이팩스는 미나가 먹던 포장지를 한손에 쥐고서 혀를 찼다.

“어쩐지 너무 많이 먹는다 했어. 나 원.”

에이팩스가 포장지를 구겨 바닥에 던지자, 포장지는 곧장 ‘저희 FTL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작은 홀로그램 글귀로 변했다. 글귀가 바닥에서 시계방향으로 빙그르 돌다 사라지자, 에이팩스는 또 다시 혀를 차면서 말했다.

“FTL에서 시킨 거야?”

“그래. 사흘 전인가. 포보스 우주공항에 정박했을 때 FTL 한 달 정액권을 샀거든. 그래서, 가끔 먹는데. 으. 뱃속에서 진저퀴그낙이 날뛰고 있어…….”

“혼자서 서른 개나 먹어대니까 뱃속이 고장 나는 거 아냐. 쯧쯧.”

상혁이 혀를 차면서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의자 위에 늘어져 있던 미나는 손가락을 튕기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거야!”

그녀는 무서우리만큼 해맑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FTL에 접속해서 과실 규정 찾아봐. 얼른!”

“그건 또 왜?”

“왜긴 뭘 왜야? 내가 배탈이 났잖아. 그걸 가지고 난리치려고 그러지. 막 인터넷에도 올리고 여기저기다 찌르는 거야. 그러면 분명 FTL쪽에서는 어떻게든 합의를 보려고 들겠지. 자료를 인터넷에서 내리는 대신 우린 짭짤한 목돈 좀 챙기면 돼. 그 돈으로 부품도 사고 우리 은행 잔고도 좀 배불리 먹이고 말이지.”

미나의 계획을 들은 에이펙스는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미나는 지방질로 가득한 그의 가슴을 때렸다.

“일단 해보고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나도 별로 내키지 않아. 그 FTL이잖아. 미래에서 왔다고 떠들어대면서 전 우주의 모든 조리법의 특허권을 취득한 미친놈들 말이야. 그런 놈들 건드렸다가 좋을 게 없어.”

맨날 잠만 퍼질러 자기 바쁘던 상혁조차도 늘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에이팩스를 거들었다.

“내 원본의 큰 형도 FTL을 건드렸다가 혼쭐이 났었잖아.”

“그, FTL가맹점 입간판용 홀로그램 해킹하려고 간보다가 잡힌 놈?”

미나가 말하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불법을 저질러서 그런 거잖아. 어느 행성에 가든 그런 짓하면 잡혀가는 거야.”

“그래도 냉동감옥에서 머리만 해동된 체로 4년을 보내는 건 조금 심했다고 봐.”

상혁이 궁시렁거리자, 에이팩스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미나, 저 네비게이터 놈이 맨날 병든 병아리 마냥 졸고 있는 놈이긴 해도 저 놈 말이 가끔가다 맞을 때도 있어.”

미나는 툴툴거리면서 소리쳤다.

“됐고, 우주선 상태나 보고해봐. 워프 엔진은 어떻게 됐어? 냉각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워프엔진은 114시간 더 있어야 작동할 거야.”

“거봐. 114시간이나 걸리잖아. 그렇다고 회사에다 요청하면 우리 입장이 곤란해진다고. 거기다 이러다가 목적지까지 제 시간에 못 가면 우리 다 잘리는 거야. 알겠어?”

미나가 엄지손가락으로 목덜미를 그으면서 말하자 에이펙스는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네가 앞으로 올릴 글 때문에 우리 모두 다 ‘원인 모를 사고’를 당한다거나.”

“아니면 네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거겠지.”

미나는 함장석의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컴퓨터가 홀로그램화면을 띠우자 미나는 곧장 인터넷에 접속하려 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잡히지 않았다. 설정을 만져도 그대로였고 심지어 컴퓨터를 껐다 켜도 인터넷이 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인내심이 바닥난 미나는 인상을 구기면서 컴퓨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에라이. 이 망할 놈의 고철덩어리가.”

“워워. 살살해. 무슨 1960년대 컴퓨터도 아니고 그렇게 때리다간 컴퓨터 훅 간다고.”

에이펙스가 말하자, 미나는 컴퓨터를 발로 차면서 항변했다.

“인터넷이 안 되잖아.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는 맞아도 싸!”

미나가 주먹을 추켜올리고 소리치자, 상혁은 턱을 괴고서 컴퓨터를 살폈다. 컴퓨터 위에는 오류 3304#라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어디보자. 오류 3304#이라……. 이건 통신망 오류인데.”

“젠장. 고칠 수 있는 거야? 워프 통신 되는 휴대폰만 있었어도 벌써 항의하고도 남았겠네!”

미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컴퓨터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상혁은 학을 때면서 소리쳤다.

“컴퓨터 좀 그만 때려. 좀! 이러다 메인컴퓨터 고장 나면 다 죽는다고. 에이펙스. 미나 좀 붙잡아봐.”

에이펙스가 궁시렁 거리면서 미나를 함장석에서 끌어내리자 상혁은 오른팔을 걷어 올렸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 요골을 잡아 당겼다. 그러자 그의 팔에 돋아난 비늘처럼 생긴 선이 천천히 뜯어지면서 뼈와 피부가 유연하게 늘어졌다. 상혁이 늘어진 팔뚝 피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늘어진 살갗 위로 화면이 떠올랐다.

상혁은 욕지꺼리를 내뱉으면서 늘어진 살갗 아래로 툭 튀어나온 신경네트워크 단말기를 쭉 뽑았다. 그러자 그의 피부 아래로 꿈틀거리는 신경말단이 눈에 들어왔다. 상혁은 신경 네트워크 단말기를 컴퓨터 단자에 찔러 넣으면서 말했다.

“제발 기계 좀 살살 다루라니까. 맨날 컴퓨터를 축구공처럼 차고 그러니까 애가 맨날 이 모양 이 꼴 아냐. 나 원, 이렇게 진단 프로그램 돌릴 때마다 오른팔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라고!”

“어쨌든, 통신 관련된 사항도 네 몫 아냐. 빨리 고쳐.”

결국 꼬리를 내린 쪽은 상혁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신경단말 속으로 자신의 정신일부를 흘려보냈다. 그의 의식은 서서히 우주선 속을 헤엄쳐 데이터의 흐름을 읽었다. 방대한 배선 속에서 그는 몇 차례 화물칸으로 흘러들었다.

이온 엔진 속에 녹아든 뒤에 다시 빠르게 워프 엔진 속에 축적된 양전자 연료 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선체 윗부분에 다다랐다. 굿스피드 호의 선체 윗부분에는 메스드라이버와 통신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상혁은 오래전에 고장 난 메스드라이버를 내버려둔 채 통신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통신기 페널 속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선체 위에 빼곡히 박힌 압력 센서가 작동했다. 처음 감지기가 작동 된 것을 알아챈 그는 별 생각 없이 통신기 페널 속으로 접속을 시도했다. 우주에는 은근히 선체를 때리고 지나갈 만한 물체들이 많았다. 이를 테면 작은 소행성도 굿스피드 호를 때릴 수도 있었고, 가끔가다 얼음 조각도 굿스피드 호를 때리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때문에 상혁은 그리 이상한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혁은 압력센서가 상당히 이상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압력 센서는 몇 분이 지나도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보통 소행성이나, 얼음 조각이라면 우주선을 때리고 그냥 지나쳐 갔을 터였다. 설령 외벽에 박혔다면 압력센서는 곧장 경고음을 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압력센서는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고, 꺼지지도 않았다.

마치 무언가 우주선에 매달린 듯 센서에는 계속 불이 켜져 있었다. 상혁은 압력센서 쪽으로 의식을 가져갔다. 하지만 상혁의 의식이 작동 중인 압력센서에 깃들기 무섭게 센서가 꺼졌다. 상혁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다른 센서들을 살폈다. 그는 의식을 쪼개서 외부 카메라도 샅샅이 살폈다. 소행성이라면 다행이지만. 네비게이터가 불길한 생각을 떠올리던 그때, 또 다른 압력센서에 불이 들어왔다. 에어록 근처의 압력센서였다.

상혁은 에어록 주위의 카메라 쪽으로 스며들었다. 카메라를 돌리자 검은 우주공간이 렌즈에 비쳤다. 텅 빈 공간을 보려보던 상혁은 카메라의 모드를 바꿨다. 적외선의 푸르스름한 시야가 세상을 밝히는 순간. 검은 공간 속에서 무언가가 카메라를 잡아챘다.

상혁은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는 몸을 떨다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미나와 에이펙스는 상혁의 몸에 달려들었다. 미나는 상혁의 목에 손을 대면서 말했다.

“어이. 어이. 괜찮은 거야? 야!”

“젠장. 밖에……. 오, 씨발…….”

상혁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밖에 뭐가 있어. 밖에!”

“밖에?” 에이펙스는 팔장을 낀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밖에 뭐가 있다는 거야? 오늘이 할로윈이라고 장난치는…….”

에이펙스가 웃는지 짜증을 내는 건지도 모를 표정으로 말을 하던 그때였다. 날카로운 소리가 함교 뒤쪽에서 울려 퍼졌다.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였다. 에이펙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조종실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자 상혁은 조용히 소리쳤다.

“하지 마. 에이펙스. 열지 마.”

에이팩스가 멈칫거리는 사이, 미나는 빠르게 조종실과 함교를 가로막은 격벽 앞으로 다가갔다. 상혁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미나는 곧장 함교로 통하는 격벽 옆에 달린 잠금장치를 작동시켰다. 격벽이 완전 밀폐되었다는 안내음과 함께 상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의자를 짚고 일어나며 말했다.

“뭔지는 몰라도 방금 우주선 외벽에 달라붙었어.”

문 앞에 선 미나는 인상을 구겼다.

“소행성이야?”

“아니. 소행성은 아니야. 뭔지는 몰라도 선체에 붙어서 움직였어. 놈이 에어록 카메라도 부쉈는데, 젠장. 그건 소행성이 아니었어. 꼭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고!”

상혁이 주절거리던 그때였다. 조종실 전원이 꺼지고 대신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세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불안한 눈으로 번뜩이자 어디선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경고. 에어록 외부 해치 소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이펙스는 자신의 자리에 떠있는 반중력 의자 위에 앉았다. 그가 컴퓨터에 떠오른 함선의 상태를 살피던 그때였다. 함교 내부의 산소농도 그래프가 사라졌다. 에이펙스는 경악스런 얼굴로 소리쳤다.

“에어록이 사라졌어. 젠장! 뭔지는 몰라도 에어록을 뜯어냈다고!”

“사, 산소는?”

“괜찮아. 조종실 내부에서의 산소유출은 없어. 생명유지장치도 작동중이고.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 알다시피 우리가 생명유지장치의 필터를 간지 4년이 넘었어. 당장 빨간불 들어와도 할 말이 없다고.”

에이펙스가 중얼거리자 상혁은 불안한 듯 소리쳤다.

“젠장. 우주복은 어디 있어! 만에 하나라도 놈이 해치까지 부수고 들어오면…….”

“어차피 하나 밖에 없어. 거기다 자세제어장치가 고장났다고. 젠장! 내가 그래서 본사에 주문을 넣자고 했잖아!”

“하지만 회사 정책이…….”

에이펙스는 변명을 늘어놓는 미나의 멱살을 붙잡았다. 미나가 까치발을 버둥거리면서 괴로운 듯 앓는 소리를 내자, 에이펙스는 소리쳤다.

“진작 내 말을 들었어야지! 진작에!”

“웃기지마.”

미나는 오른손목을 뒤로 꺾었다. 그러자 손목이 갈라지면서 손목 안에 수납되어 있던 권총의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미나는 잽싸게 손목을 90도 가까이 접어 권총을 집었다. 가느다란 총신이 손목 안에서 튀어나와 에이펙스의 턱을 향해 다가갔다. 상혁은 혀를 찼다.

“썩을!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아! 저 밖에 있는 게 뭔지 아무도 신경도 안 쓰는 거야? 세상에! 저 에어록을 때버린 놈이…….”

상혁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세 사람은 한순간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두꺼운 철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철문 너머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짧고 간결하게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정확히 세 번 연달아 이어졌다. 마치 노크 소리처럼.

미나를 놓아준 에이펙스는 곧장 함선의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그가 함교 뒤편의 풍경을 홀로그램 화면으로 띠우자 둥둥 떠다니는 물건들 사이에 서 있는 검은 형상이 화면에 잡혔다. 함교 한가운데 서 있는 검은 까마귀처럼 생긴 놈이었다.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거대한 부리와 길게 늘어진 털이 천장까지 닿고 있었다. 온 몸이 깃털 같은 것으로 뒤덮인 그것은 붉은 눈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생긴 기다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다시 한 번 해치를 두드렸다. 크리스마스의 유령의 묵직한 노크소리가 순식간에 조종실 안을 집어삼켰다.

세 사람은 각자 물건을 집어 들었다. 에이팩스는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번쩍 들어올렸다. 닳고 닳은 방석이 에이팩스의 머리를 때리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미나는 들고 있던 레이저 권총을 장전했다. 그녀가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리기 무섭게 권총은 홀로그램으로 된 조준선을 띠웠다. 홀로그램 조준선이 함교를 틀어막은 격벽에 작은 점을 찍을 동안, 상혁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격벽 너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괴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격벽 위로 붉은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격벽을 녹이려는 건가? 미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격벽은 녹지 않았다. 오히려 강철로 된 격벽은 순식간에 흐트러진 붉은 실이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승무원들은 아연실색을 했다. (강철이 털실로 바뀌는 마법도 놀라웠지만) 이대로 격벽이 사라진다면 조종실은 곧바로 우주공간에 노출 되어버릴 터였다. 승무원들은 잽싸게 한손으로 주위의 물건을 잡고 버텼다. 허나 우주선 어디에도 산소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없었다.

세 사람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숨을 죽이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격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자 함교 앞에 서있는 까마귀 괴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의 뒤에서 붉은 실들이 뱀처럼 몸을 뒤틀면서 촘촘하게 짠 직물처럼 에어록의 격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광경 얼굴로 붉게 빛나는 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까마귀 괴물이 유유히 함교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놈이 부리를 까딱거리는 순간. 에이펙스는 서둘러 반중력 의자를 놈에게 집어던졌다. 묵직한 의자가 허공을 내달리자 그것은 손을 뻗었다. 붉은 실은 스멀스멀 그것의 손끝에 모여 기다란 검은 장검이 되었다.

그것은 장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조명불에 번뜩이기 무섭게 의자는 허공에서 두 동강이나 함교 바닥을 뒹굴었다. 보다 못한 미나는 곧장 검은 까마귀처럼 생긴 괴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허나, 붉은 레이저는 놈의 검은 가죽 근처에 가기도 전에 수만 갈래의 무해한 빛으로 산란되고 말았다. 그 광경에 놀란 선원들은 숨을 집어삼켰다.

선원들이 자리에 얼어 있을 동안 까마귀 괴물은 성큼성큼 미나에게 다가갔다.

그것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자, 에이팩스는 곧장 몸을 던졌다. 그는 까마귀 괴물에게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까마귀 괴물은 몸을 숙였다. 놀라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에이팩스의 비대한 몸 안쪽을 파고든 그것은 칼자루로 에이팩스의 배를 후려쳤다.

에이펙스는 물풍선처럼 자리에 고꾸라지자, 놈이 에이펙스의 비대한 몸을 피해 몸을 뒤로 뺐다. 그 틈을 타서 상혁이 휘두른 쇠파이프가 까마귀 괴물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기습에 가까운 일격이었음에도 까마귀 괴물은 당황하지 않고 장검을 추켜올렸다. 쇠파이프가 장검의 칼날을 때리자 괴물은 손잡이를 머리 위로 세워 올렸다.

그렇게 쇠파이프는 칼날을 따라 흘러내려 애꿎은 바닥을 때렸다. 맑은 쇳소리가 조종실 안을 휘감자, 까마귀 괴물은 바닥을 때린 쇠파이프를 두툼한 발로 짓밟았다. 어찌나 세게 밟았던지 바닥은 움푹 꺼졌고 파이프는 곧장 상혁의 손을 빠져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뒷걸음질 치던 상혁은 까무러치듯 뒤로 넘어갔다. 까마귀 괴물은 잠시 넘어진 상혁 쪽을 노려보다가 자신에게 손을 뻗는 에이팩스의 머리를 향해 칼자루를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에이팩스의 몸이 옆으로 무너졌다. 모든 방해물을 제거한 까마귀 괴물은 천천히 미나에게 다가갔다. 놈은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미나가 들고 있던 레이저 권총을 가로챘다. 그것은 권총을 한손으로 으스러뜨리면서 말했다.

“세상에. 사람이 노크 하는데 대뜸 총부터 쏘는 게 어디 있어요?”

까마귀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것은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맑은 목소리였다. 무엇보다 사람의 구강구조에서 흘러나오는 완벽한 구개음이었다.

“당신들 정신 나갔어요? 대체 왜 의자는 던지고 그래요? 거기다 쇠파이프는 또 뭐고!”

“뭐? 무슨……. 허. 기다란 칼을 들고 다니는 놈이 할 소린 아닌데!”

상혁이 따져 묻자, 까마귀 괴물은 깃털이 늘어진 몸을 틀어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내보이면서 말했다.

“오, 이거. 이거라도 없었으면 당신네가 날 때려 눕혀서 어디에 묶어 놨겠지. 안 그래? 이건 최소한의 호신용 무기라고. 그리고 당신네들이 함교까지 와서 격벽에다 애처롭게 노크 하고 있는 사람에게 총만 쏘지만 않았어도 이 사단은 안 났어.”

남자는 까마귀처럼 생긴 헬멧을 손으로 두어번 두드렸다. 그러자 헬멧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헬멧 속에 가려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부시게 선명한 금발머리가 잔뜩 구겨진 얼굴과 함께 나타났다. 남자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머리카락을 손으로 비비자 상혁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왜 그딴 헬멧을 쓰고 다녀요? 우주에서 보면 그거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요?”

“알죠. 하지만 오늘이 할로윈이잖아요. 회사에서 배달부는 반드시 할로윈 복장을 지참하고 다니라고 했다고요.”

“젠장!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린 심장 떨어져 죽는 줄 알았다고! 거기다 에어록이랑 격벽은 어떻게 한거요?”

“어, 음, 이건 홀로사이트라는 건데. 돈만 넉넉하면 이걸로 뭐든 만들 수 있고, 뭐든 부술 수 있는 도구 비스무리한 건데. 뭐, 당신들은 알 필요 없어요. 어쨌든 간에 배달부에게 함부로 의자 던지고 쇠파이프 휘두르는 거 아닙니다. 잘못하다 머리가 날아가도 난 책임 못 져요. 그리고 생각이란 걸 좀 해봐요. 설마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대의 외계 생물이 땀 냄새랑 뼈다귀 밖에 안 남은 선원들을 잡아먹으려고 일부러 이 고철 덩어리에 몰래 잠입하겠어요? 진부하잖아요. 무슨 고대 영화도 아니고 말예요.”

그는 넉살 좋게 웃었다. 짙은 담배연기가 물신 배어나올 것 같은 퇴폐적인 미소였다. 미나는 그 웃음이 못마땅했다. 그녀가 살벌하게 얼굴을 구기자 남자는 미나 쪽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 쪽이 미나 아웃버스 씨죠? 저는 FTL에서 나온 배달부 릭입니다. 컴플레인 거셨죠?”

“내가 미나 아웃버스인데……. 잠깐. 잠깐만. 난 아직 컴플레인 걸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걸었을 지도 모르죠. 그래서 왔어요. FTL이잖아요. 빛보다 빠르게 처리를 해야죠. 그래서 식중독이라고요? 흠, 언제부터 편찮으신 거죠?”

잠시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던 미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그 쪽 회사 도시락을 한 달 치를 샀어. 그리고 며칠째 계속 토하는 중이라고.”

미나가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항의하자 릭은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흠, 거 이상하네요. 저희 회사 제품은 완전 살균처리 된 뒤에 전송이 됩니다. 제조과정에서 오염될 리는 만무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소리?”

“에이. 당연히 아니죠.”

릭은 고개를 저으면서 친근하게 웃었다.

“다만, 회사와 고객 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오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요?”

“오해 좋아하시네. 상한 음식을 준건 그 쪽 책임이잖아.”

“글쎄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희 공정 과정은 완벽합니다. 하지만 식사하시는 자리는 영 아닌 거 같네요. 특히. 저 가운데 자리를 보시겠어요?”

릭은 미나의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는 먹고 버린 포장지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세상에. 저런 곳에서 밥을 먹으면 건강했던 사람도 아프겠어요.”

“하. 웃기시네.”

“어쨌거나 컴플레인을 취하하신다면 저희 측에서도 일련의 보상을 해드리도록 하죠.”

“하! 그 쪽 잘못이 없는 데 왜 계속 우리가 아직 올리지도 않은 컴플레인을 취하해달라고 하는 거지? 암만 봐도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거 같은데.”

에이팩스가 한껏 무개를 잡고 말하자 릭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못이 누구에게 있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든요. 소란이 생기면 그건 모두 소란의 중심이 된 사람들의 책임일 뿐이죠. 지난 수백 년간 그래왔지 않습니까? 저희는 어떻게든 손실을 줄이기 위해 보상을 해드리는 겁니다.”

“결국, 푼돈 주고 입을 막으시겠다.”

상혁이 비꼬듯 말하자, 릭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세 사람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끝에서 홀로사이트가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붉은 실이 영글어지면서 네모난 은백색 홀로그램 카드 세 장이 되었다. 릭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FTL본사에 들어가실 수 있는 플레티넘 입장권입니다. 세 분 모두 쓰실 수 있죠.”

“되팔 수 있냐?”

“아뇨. 플레티넘 입장권도 발급될 때부터 유전적인 각인을 거치기 때문에…….”

“꺼져.”

“정말로 제가 제시한 보상책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마지막 기회입니다만.”

“이딴 쓰레기 들고 내 배에서 꺼져.”

미나는 릭의 어깨를 밀치면서 소리쳤다.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내가 식중독으로 고생한 값이랑 동등한 값어치의 물건을 가져오라고! 알겠어? 세상에. 누가 당신네 가계에 가고 싶데? 공기계로 주든가 돈으로 주든가 해야 할 거 아냐!”

릭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미나를 노려보았다. 루비색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득이자 성을 내던 미나는 잠시 주춤거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릭의 시선 너머에 숨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적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측은함이었다.

어째서 저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거지? 미나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릭은 자신의 우주복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깃털달린 우주복 위로 스멀거리는 붉은 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 순식간에 까마귀 헬멧으로 변했다. 헬멧을 뒤집어 쓴 릭은 몸을 돌려 함교를 나섰다. 그는 자기가 부순 문을 붉은 실로 복구하면서 어께너머로 말했다.

“후회할 텐데.”

전자음이 섞인 불길한 목소리가 우주선 안을 빠르게 감돌다 사라졌다. 그럼에도 함교에 선 세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릭은 천천히 함교를 향해 걸어 나갔다. 에어록이 열렸다는 안내음이 잠시 흘러나왔다가 이내 사라졌을 뿐이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에이펙스였다.

“참내. 정말 이상하군.”

“그러게. 까마귀 탈을 쓰고 나타나다니. 제정신이 아닌데.”

미나가 궁시렁거리자, 에이펙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 컴플레인을 걸기도 전에 온 것도 그렇고, 우리 항로를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모르지. 그 FTL이잖아.”

상혁은 치를 떨었다.

“솔직히 그 놈들이 모든 음식들의 특허권을 독점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얼굴 맞대가며 상대도 안했을 거야.”

미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료를 분배하면서 말했다.

“상혁아. 좌표 다시 잡아봐. 어디 다음 항구까지 최단거리 좀 잡아보게.”

미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대답이 없자 미나는 고개를 돌려 상혁이 서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의자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상혁의 모습을 찾았다.

허나, 상혁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반 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했다.

“에이팩스. 상혁이가…….”

그녀는 바로 옆에 서있던 에이팩스에게 말을 걸었다. 에이팩스도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미나는 두 눈을 껌뻑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녀는 문뜩 FTL에서 온 까마귀 배달부를 떠올렸다. 어쩌면 놈이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리에서 한발자국 땔 수 없었다. 미나는 서서히 뒤로 빨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주선이 서서히 바스러졌고 함교 정면을 감싸고 있던 강화유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미나는 자신이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뒤로 빨려 나가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오히려 격벽 쪽으로 빨려나가고 있었다.

미나는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입 속에서는 비명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미 그녀에게는 입이라는 구조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라고 지칭할 존재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미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 중에 아주 미량의 물질들만이 워프 항법을 통해 잔해들과 함께 넘어와 소행성들 사이에 흩어졌을 뿐이었다.

3.

릭은 굿스피드 호의 함교를 떠났다.

그는 자신이 부순 에어록을 복원 시킨 뒤, 우주 공간 속에 몸을 던졌다. 그가 우주선에서 멀어져 아득하게 흩어진 소행성 사이에 섞여 들어가자 헬멧에 달린 디스플레이 위로 화면이 떠올랐다. 보안 채널이란 문구가 화면 왼쪽 상단에서 깜작거리기 무섭게 흑발을 단정히 묶은 한 여자가 나타났다.

“리키. 배달은 어때? 합의는 잘 봤냐?”

“아니. 그 쪽에서 거절했어.”

“허, 꽤나 배가 불렀군. 무려 한 달 치 무료이용권에 본점 입장권까지 줬는데도 마다하다니.”

“그 놈들 이용권을 되팔려고 수작을 부리더라고.”

릭은 꺼림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요한나. 이번 배달 수당이야기인데.”

“수당? 무슨 수당?”

“무슨 수당이라니? 위험수당 말야. 나 방금 저 화물선 승무원한테 머리 날아갈 뻔했어.”

릭이 궁시렁 거리기 무섭게 요한나란 이름의 검은 머리 여자는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 뻣뻣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어, 리키. 자, 잘 안 들리이인다. 통신장애인가보네. 아마도.”

“17차원 양자터널링 통신에 장애가 있다고? 뭐, 근처에서 워프 엔진이 터지기라도 했어? 야! 1시간 이내로 수당 신청 안하면…….”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릭은 우주 속에 버려졌다. 그는 헬멧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하지만 점장과 이어진 직통 통신망은 반응이 없었다. 멋지군. 릭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면서 삭막한 우주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의 헬멧 위로 작은 홀로그램 화면 하나가 떠올랐다. 타임머신 사용 허가서였다.

릭은 그 허가서를 손에 쥐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는 홀로그램 화면을 뒤집었다. 홀로그램 뒷면에는 방문 목적이 적혀 있었다.

‘제거할 것 – 미나 아웃버스, 에이펙스 호로가, 강상혁. 포보스-530 도크 확인.’

릭은 홀로그램을 손으로 구겼다. 은밀한 지령이 담긴 화면이 자글자글하게 구겨지는 순간. 이제 그는 광활한 우주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우주공항 위를 거닐었다. 우주복은 어느 샌가 후줄근한 레인 코트가 되어 정강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머리 위에는 소행성 대신 떠다니는 수많은 상점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중국 음식점이 달달하고 기름진 냄새를 풍기면서 릭의 머리 위로 빠르게 날아갔다. 음식점 밑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삼은 홀로그램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릭은 옷깃을 바싹 올린 체 포보스 우주공항을 거닐었다. 그러자 홀로그램 광고판을 단 드론들 수 십 대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현재 세일 중인 면세제품을 늘어놓았다. 10월 27일 특가 세일 중인 포도주와 고급스런 감정들을 담은 나노스틱들이 떠올랐다.

릭은 드론들을 향해 쌀쌀 맞게 말했다.

“꺼져. 확 배터리를 강제로 뽑아다 거꾸로 끼워버리기 전에.”

릭이 윽박을 지르기 무섭게 드론들은 유유히 다른 여행객들에게 날아갔다. 보란 듯이 꽁무니에 가운뎃손가락을 추켜올린 홀로그램 화면을 띠운 것은 덤이었다. 릭은 아니꼬운 얼굴로 드론들을 보려보다 천천히 공항을 가로질렀다.

면세점 앞에 다다르자 바닥에 타일처럼 늘어선 회색 판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 가이드 용 드론인 플레이트였다. 릭이 제 몸 위에 발을 올리기 무섭게 플레이트는 역장으로 릭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서 유유히 공중에 날아올랐다. 플레이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서 유유히 관광객들 무리 사이로 들어섰다. 그러자 역장 위로 가이드라인이 떠올랐다. 화려한 광고들이 순식간에 공중에 떠 있는 수많은 가계들의 항로를 따라 나타나고 사라졌다.

릭은 날아다니는 가계들을 바라보다 탑승 게이트 바로 위에 날아다니는 만두집을 가리켰다. 경로 상으로 봤을 때, 도크와 이어지는 직원 통로의 환풍기 바로 근처를 지나는 가계였다. 회색 플레이트가 그를 역장 속에 가두고서 유유히 만두집까지 데려다 줄 동안 릭은 홀로사이트를 펼쳤다.

붉은 실이 손끝에서 흘러나와 화면을 이루자, 그의 손에는 공항의 지도가 떠올랐다. 그 지도에는 공항의 모든 길과 사람들의 위치와 행동거지까지 모두 들어 있었다. 물론 감시 카메라의 위치와 530 도크의 위치는 덤이었다.

‘잠시 후, 덤플링 FTL – 포보스 지점에 도착 예정입니다.’

플레이트의 안내 인터페이스가 말했다. 하지만 릭은 인터페이스의 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만두 가계를 휘감은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였다. 광고 속에서는 어느 이름 모를 배우가 나와 콜라를 시원스럽게 마시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흐른 콜라가 검은 물방울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이용할 수 있겠군. 플레이트가 만두 가계 정문에 내려앉기 무섭게 릭은 만두가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서둘러 손바닥을 펼쳐 홀로그램 창 서너 개를 펼쳤다. 그리곤 가계 외벽을 화려하게 감싼 홀로그램 광고에 접속했다. 그는 광고가 나오는 순서를 살펴보았다. 콜라 다음에는 향수, 그 다음에는 새로 나오는 우주선 광고가 이어졌다. 시간은 못해도 3분이 걸리지 않을 테니 아마 지금 시작하면 향수 광고가 끝나기 전에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정문에 맴도는 만두 익는 냄새를 뒤로 한 채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맛난 냄새로 가득한 가계 내부와는 달리 화장실은 지린내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청소한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듯 보였다.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릭은 곧장 홀로사이트로 화장실을 걷어냈다. 화장실 전체가 붉은 실이 되어 흐트러지기 무섭게 가계 외벽을 감싸고 있던 홀로그램 광고가 떠올랐다. 어느 외계 행성의 이국적인 배우가 17개의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춤을 추는 광고였다. 배우가 7갈래로 갈라진 턱 아래 숨어 있던 이빨다리를 까딱이기 무섭게 릭은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릭은 빠르게 30m 아래 펼쳐진 공항의 전경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그를 보고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없었다. 홀로그램 광고가 빠르게 그의 몸을 다시 집어 삼킨 덕이었다. 그는 광고 속에 숨어 빠르게 추락했다. 펄럭이는 셔츠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바람이 서늘하게 등줄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바닥이 조금씩 가까워지자 릭은 조그마한 추진기를 몸 곳곳에 달았다. 그는 제트 엔진을 조심스럽게 분사하면서 광고 속에 숨어 환풍기 쪽으로 다가갔다. 환풍기 위에 다다르자, 릭은 모든 추진기를 일제히 작동시켜 자신의 운동 에너지 만큼의 추력을 뿜어냈다.

환풍기 위에서 정확히 순간 속도가 0이 된 릭은 고양이처럼 사뿐히 환풍구 위에 착지 했다.

릭은 다 쓴 추진기를 몸에서 때어냈다. 쌀알처럼 생긴 추진기가 붉은 실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지기 무섭게 그의 얼굴 앞에는 자그마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릭은 눈앞에 떠오른 자그마한 홀로그램 창을 손으로 잡아챘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 달 홀로사이트 사용료-2380 우주 달러. 오늘 중으로 차감될 예정.’

어우. 릭은 혀를 내둘렀다. 한 달에 버는 돈이 2400 우주 달러건만 2380이나 내놓으라고? 릭은 혀를 차면서 엉덩이를 움직였다. 지금은 신세한탄을 할 때가 아니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환기구 위에 앉아 있는 수상쩍은 남자를 보고 신고전화를 넣는 사람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러면 다음달에는 2500 우주달러를 내야 할지도 몰랐다.

릭은 벽에 손을 올렸다. 그의 작은 손길에 얇은 벽은 붉은 실이 되어 흩어졌다. 릭은 벽에 난 조그만 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간 뒤에 벽을 원래대로 복구했다. 환기구를 따라 그가 향한 곳은 530번 도크였다.

도크는 관리자 외에는 출입금지였지만 릭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CCTV는 걸림돌조차 되지 않았다. 홀로사이트에는 전파 및 광학적인 측면에서 모든 기록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재밍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도 릭이 환기구에서 기어 나와 복도를 걷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도넛을 먹는 사이에 릭은 복도를 지나갔다. 잡담을 하는 사이에 문을 열었고 카메라가 잠시 다른 곳을 보기 무섭게 그는 카메라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건설용 엘리베이터의 카메라가 그를 본 것도 아니었다. 카메라는 그를 보기도 전에 붉은 실이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릭은 바닥에 떨어진 붉은 실을 구둣발로 밀어낸 뒤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굿스피드 호가 정박한 530번 도크로 향했다. 레일이 우주를 빠르게 가로지르자 산소를 머금은 역장이 비눗방울거품처럼 엘리베이터를 감쌌다. 릭은 엘리베이터 난간에 기대어 우주 공간에 떠있는 우주선들을 감상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우주선들이 주유를 위해 유유히 우주 공간 위를 날아다녔다. 몇몇 인부들은 기계 팔이 달린 정비 우주복을 입고서 우주선을 손보기 바빴다. 릭은 잠시 죄책감을 가진 뒤에 엘리베이터 선로 끝에 나타난 굿스피드 호를 바라보았다. 화물을 가득 채운 컨테이너 상자들이 하나둘 우주선 꽁무니에 매달렸다. 연료와 냉각수를 보충하는 배관들이 굿스피드 호에 꽂혀 있었다. 하지만 어떤 배관이 워프 엔진에 꽂힌 배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릭은 배관을 눈으로 쫓다가 레인 코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까마귀 모양의 우주복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는 까마귀처럼 역장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굿스피드 호로 이어진 배관이었다.

붉은 색 산소 배관 위를 날아 도크 외벽에 단단히 고정된 노란 색 전력선 위를 가로지르자 마침내 초록색 배관이 눈에 들어왔다. 배관은 도넛 모양 워프 엔진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배관을 따라 유유히 우주를 가로질렀다.

한 10여분을 날아간 끝에 릭은 워프 엔진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는 수십 가닥의 붉은 실로 자신의 몸을 고정한 뒤에 도넛모양 엔진 위를 걸었다. 낡은 엔진커버가 월면처럼 울퉁불퉁하게 패여 있었다. 그는 외부에서 수동으로 접근할 수 있는 관리용 컴퓨터를 찾았다. 연료와 전기계통에 접근할 수 있는 녀석이어야 했다.

오래지 않아 릭은 탱크 위에 달린 계기판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치 오래된 도시락 뚜껑처럼 생긴 두꺼운 철판 아래 가려져 있던 오래된 컴퓨터에 불이 들어왔다. 릭이 화면을 두드리자 컴퓨터는 천천히 탱크 안에 든 양전자의 용량을 알려주었다. 저장탱크에는 아직 양전자가 48% 정도 밖에 충전이 되질 않았다.

컴퓨터를 살피던 릭은 굿스피드 호의 전력체계를 교묘하게 바꿔놓았다.

그가 한일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엔진의 전기계통부를 살짝 들어냈다. 그리곤 홀로사이트로 만든 양자신경망 회로를 추가했다. 이 회로는 굿스피드 호가 워프 엔진이 작동할 때 양전자 탱크 속으로 전류가 흐르도록 유도하는 회로였다.

회로가 정말 제대로 작동한다면 양전자와 전자는 서로 반응해서 어마 무시한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굿스피드호는 수천 파섹을 아우르는 장대한 공간 속을 떠다니는 중성미자가 될 터였다.

4.

회로 점검을 마친 릭은 제 발로 접근 제한 구역을 빠져나왔다.

아직은 평온한 공항의 풍경 속에 녹아든 릭은 유유히 공항으로 나와 플레이트 위에 올라섰다. 그는 곧장 FTL 포보스 우주공항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플레이트는 유유히 공항을 날아올라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허공에 떠 있는 원통형 구조물 앞에 릭을 내려주었다.

딱 한 사람이 들어가면 가득 찰 것 같은 비좁은 공간이었다. 릭은 구조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릭이 한걸음 원통 안으로 발을 들이자, 출입문은 사라졌다. 마치 해가 저물기라고 한 듯 원통 속에 스며들던 빛이 사라지기 무섭게 무한히 중첩된 공간들이 쏟아지는 모래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릭은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속에 겹쳐져 쏟아져 내리는 수 만 가지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 테이블과 술집 풍경을 떠올리자, 공중에 반쯤 떠 있는 둥그스름한 원형 테이블이 놓인 어둑한 방이 나타났다. 그는 테이블을 둘러 싼 도넛모양의 의자 쪽으로 다가갔다.

푹신한 의자에 앉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다. 릭은 왼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면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메뉴판이 테이블 위에 떠올랐다. 릭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위스키 온 더 락스를 주문했다. 주문을 입력하기 무섭게 홀로그램 화면에는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요한나였다.

“일은 끝낸 거야?”

그녀가 묻자, 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아끼자 요한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죄책감이 드는 거야?”

“이제 와서 무슨.”

릭은 고개를 저으면서 테이블 위에 잔을 집어 들었다. 두꺼운 술잔 속에서 얼음이 딸각이기 무섭게 그는 차가운 위스키를 한입에 들이켰다. 쓰디쓴 액체는 차갑게 혀를 휘감아 목을 따라 내달렸다. 알 수 없는 향기가 코 쪽으로 올라와 신경을 긁어댔다. 그는 쓰디쓴 속을 움츠리면서 테이블에 몸을 웅크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나 받는 거지?”

“흠, 본론부터 가자? 좋아. 우선 윗선에서는 이번 일을 상당히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좋아들하셔. 그래서 보너스로 네 수명을 10년 더 연장하기로 했어. 거기다 웃돈도 100우주 달러 더 얹어 주기로 했고. 불만 없지?”

“그래 불만은 없…….”

어……. 릭은 갑자기 사라진 홀로그램 화면을 노려보면서 말꼬리를 흘렸다. 다음 순간. 거대한 폭발이 포보스 우주공항을 집어삼켰다. 사방에서 전자기 펄스경보가 울렸고 양자 터널을 긴급 폐쇄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릭은 울적한 얼굴로 중첩 공간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쏟아져 내리는 강철의 파편과 컨테이너 상자들이 우주 속에서 아라베스크를 추고 있었다.

파편을 피해 달음박질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릭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마 일주일 정도는 우주선을 띠울 수도 없겠군.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위스키를 집어 들어 홀짝 들이켰다. 릭은 고개를 까딱이면서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뭐, 적어도 고통 없이 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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