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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필진 김청귤 작가님의 앤솔러지 『미드나잇 레드카펫』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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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소녀를, 언니를, 나의 여왕을 괴롭힌다면
우리는 더 지독하고 명랑하게 투쟁하리라!

인간이되 인간이지 않은 존재의 모순

김청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미드나잇 레드카펫』은 이 시대에 아포芽胞처럼 퍼져버린 수많은 사회문제를 작가만의 독특한 판타지세계와 첨예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우리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디스토피아를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비현실의 감각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책은 계속해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세대를 거듭하는 고질적인 선호사상’, ‘비일비재한 폭력’ 등을 가감 없이 다룬다. 「한밤의 유혈 사태」는 살인이나 스토킹 같은 경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일종의 면죄부처럼 사용하는 황당한 현상을 비판한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내리지 않으면서, 우연한 사고로 용의자가 된 주인공 ‘나’에게는 희롱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강제로 묵인한다. 이런 강압적인 수사 속에서 주인공이 ‘생리’는 어째서 ‘심신미약’의 이유가 되지 않느냐고 되묻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며, 그렇기에 이 작품은 현 시대를 적나라하게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유사한 맥락으로 ‘피해자’가 분명 존재함에도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문제는 「서대전네거리역 미세먼지 청정 구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이하게 되었다는 판타지적 설정이 더해진 이 작품에서는 미세먼지 ‘괴물’이 미세먼지 ‘히어로’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성별로 우위를 가르고 권력과 지위에 따라 범죄 사실이 미화되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준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하던 ‘도연’은 학교 선배이자 같이 일하는 ‘기혁’에게 위협을 당한다. ‘도연’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는 이유로 집착하듯 연락을 하고,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손목을 잡아채고 욕설을 퍼붓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가한다. ‘도연’의 도와달라는 외침을 들은 ‘다정’의 도움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지만, 다음 날 ‘기혁’은 술에 잔뜩 취한 채 카페에 찾아와 또다시 ‘도연’에게 난동을 부린다. 그러나 ‘기혁’이 경찰서에 연행된 이유는 ‘도연’에게 저지른 폭력 때문이 아닌, 카페 기물을 파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쨌거나 처벌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온 소란에 ‘도연’은 다시 한번 참담해진다. ‘기혁’이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이해 경찰서 일대가 청정 구역이 된 것이다. 그렇게 ‘기혁’은 ‘가해자’에서 순식간에 미세먼지 ‘히어로’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경찰서에 있던 이유를 알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체한다. 작품에서 미세먼지 인간을 묘사한 “인간이되 인간이지 않은”이라는 수식은 온몸이 미세먼지로 바뀌어 이 세상의 이방인이 된 미세먼지 인간을 그대로 서술하는 동시에, 차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인간이면서도 인간이지 못한’ 자들을 꼬집기도 한다.

위의 두 작품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누군가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는 플롯을 공통적으로 갖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밤의 유혈 사태」에서는 ‘용의자’가 조사를 받는다는 것과 「서대전네거리역 미세먼지 청정 구역」에서는 ‘피해자’가 조사를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청귤 작가는 가해자인 ‘기혁’의 조사 장면이 아닌 피해자 ‘도연’의 조사 장면을 앞세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장치’에 숨겨진 본질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바로 두 작품의 조사 장면의 분위기나 경찰의 언행, 사건의 결말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어째서 용의자와 피해자의 조사 장면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는가? 만약, ‘기혁’이 조사받는 장면이 「한밤의 유혈 사태」와 대응했다면? 우리는 분명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여전히 “인간이되 인간이지 않은” 존재들에 둘러싸여 있고, 우리는 너무 쉽게 그들에 노출된다. 그렇기에 김청귤 작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그들에 맞설 수 있도록, 아포에 감염되지 않도록 이 책을 통해 외치는 것이다.

우리의 연대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투쟁이다

『미드나잇 레드카펫』에 수록된 여섯 작품은 모두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마법소녀, 투쟁!」에서 마법소녀들은 목숨을 걸고 괴물에 맞서 싸우지만, 시민들은 마법소녀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히어로’라면 응당 희생이 따르는 것 아니겠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우리가 목격해온 많은 ‘히어로’들이 있기에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법소녀들에게 짧은 치마나 딱 붙는 유니폼을 입히고, 괴물이 공격하는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아름답거나 예쁜 장면을 기대하는 대목에서는 이 또한 히어로가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지 반문하게 된다. 특히 마법소녀에서 은퇴하면 또 다른 마법소녀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그들의 삶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역할과 책임을 강요당하는 우리 현실과 직결된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찌찌레이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근미래, 여성들은 순수 혈통의 인간을 낳고 영양소가 풍부한 모유를 공급해야 한다는 이유로 ‘인공 가슴 이식수술’을 받는다. 소설 속 남성들은 더 건강한 몸을 위해 인공 장기나 신체로 교체하면서도, 여성은 ‘임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약조차 처방해주지 않는다. ‘임신’이 하나의 성에 국한된 필수적 책임인 듯 강요되는 이 불편한 설정이 성별에 따른 차별적 역할 부여가 여전히 만연한 우리 사회를 연상케 한다는 사실이 꽤나 안타깝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수난은 「이달의 네일」과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서도 이어진다. 하루아침에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한 「이달의 네일」의 ‘하늘’은 몸이 바스라지고 방 안이 먼지로 가득해지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하늘’은 옆에서 자고 있는 ‘언니’를 깨울 수도, ‘미세먼지 인간’ 변이자를 찾는다며 아파트를 휘젓고 다니는 경찰 앞에 나설 수도 없다. ‘하늘’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언니’와 동성 연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가 규정한 ‘평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늘’은 ‘소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앨리스 인 원더랜드」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여왕’과 ‘하트 잭’ ‘앨리스’ ‘체셔’ 등의 익숙한 캐릭터를 불러내 새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동화에서는 남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여왕’의 잔인하고 악랄한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면, 김청귤의 소설에서는 ‘여왕’임에도 불구하고 ‘여’왕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의 모순을 다룬다. 나아가 능동적으로 삶의 주체가 되기를 선택한 ‘앨리스’가 ‘여왕’의 ‘주체성’ 역시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은 여성들의 ‘아름답고 우아한’ 투쟁의 길을 보여준다. 반면, 작가는 또 다른 ‘여성’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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