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필진 전혜진 작가님의 소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이 출간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남이면 차라리 나은 일도 있는 것이다.”
단단한 현관문 안,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날카롭게 베어 나가다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가려진 이야기, 가로막힌 이야기를 성실하게 듣고 써온 작가 전혜진의 신작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이 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무한한 사랑의 상징, 가족을 다시 묻는다.
‘은정’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5년째가 되던 3년 전, 수도권 변두리 광역버스 종점에 집을 얻었다. 작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아버지가 찾아올 리 없는 안전한 집이었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은정은 옆집에서 문이 우그러들도록 발로 차고 고함을 지르며 저주를 퍼붓는 사람을 마주친다. 은정이 평생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하도록 얽어매고 쫓아다니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웃들의 수군거리는 말에 의하면 자매인 줄 알았던 옆집 두 여자는 실은 연인 관계였으며 엄마라는 이가 딸을 데려가려 벌인 일이었다고 했다. 이튿날 퇴근길 마침 옆집 여자 중 한 사람과 마주쳐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은정은 옆집 문 안에서 흘러나오는 수상한 소리를 듣고 얼어붙는데……. 아버지가 칼을 휘두르고 목을 졸라오는 끔찍한 악몽마저 다시금 은정을 침입해온다.
흔히 가족의 연을 천륜이라 부른다. 인력으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거스르려 하면 벌이 내린다는. 그러나 가족을 절대적인 사랑의 울타리로만 바라보는 사회에서 집은 누군가에겐 삶을 가두는 우리가 되고, 가족 폭력은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안기고 가해자는 무한히 용서받는 감춰진 이야기가 된다. 전혜진 작가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에서 그 천륜을 전차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비유한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잘라버린 알렉산드로스대왕처럼 “매듭에 꽁꽁 묶인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때로는 과격하게 잘라낼 것을 잘라버려야만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단단한 현관문 안,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날카롭게 베어 나가는 이 작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억압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게 해주며 해로운 관계를 끊고 나아갈 용기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