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출근길이었다. 세종대로와 새문안로의 교차점에서 관용차인 에쿠스에 탄 채로 긴 편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좌측 편에서 열린 창문 너머로 비명과 고함소리가 들렸다. 무릎 위에 놓고 선전용 극본을 쓰고 있던 노트에서 눈을 떼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니 굉장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양복을 입은 공무원 같아 보이는 남자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사람들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차려입은 옷과 어울리지 않게도, 하는 행동은 마치 성난 고릴라 같았다. 일단 온 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으니 위압감이 상당했다. 넘겨보니 뒤쪽 버스 정류장 쪽에 머리 부위가 피범벅이 된 다른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이런 종류의 무차별 살인은 몇 년 전까지는 꾸준히 증가 추세였지만, 형량을 크게 강화하고 나서는 점차 소강되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체포되면 즉결심판으로 날이 가기 전에 교수형 당하는데 이렇게 잡히기 쉬운 곳에서 저런 난동을 부리다니 어지간히 정신이 나갔다 싶었다. 게다가 이 부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출신도 괜찮은 편일 텐데, 의아하다는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그 미친 남자가 주변 사람들을 위협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남자를 중심으로 멀찍이 떨어져 피신해 있었다. 사옥이 지척에 있는 관영언론인 대민일보 기자들이 군중 사이에서 이 난리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남자는 이상하게도 무기를 가지지 않은 맨몸인 것 같았다. 손에 특히 많은 피가 묻어 있어서 번들거리는 장갑을 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남자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인도 위를 서성거리다 차가 비어 있는 옆 차선을 넘어 내 차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김기사! 문 잠갔지?”

다급하게 외쳤다.

, 잠겨 있습니다! 창문도 닫겠습니다.”

김기사는 열린 창문을 닫았다. 피투성이의 남자가 운전석 쪽으로 달려들어 만세를 하는 포즈로 앞문에 몸을 비볐다. 확실히 가까이서 보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입을 벌리고 얼굴을 괴기하게 일그러뜨리며, 초점이 맞지 않는 시선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김기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듯이 난동을 부렸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곧바로 남자에게 총을 쏘지 않은 것은 내 차가 장관급 관용차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는 경봉으로 얻어맞아 제압당한 뒤 경찰차에 실려졌다. 경장 계급장을 단 경찰이 내 차로 다가와 나에게 경례를 올렸다. 창문을 내린 다음 물어보았다.

저거 어떻게 된 겁니까?”

경장은 경찰차 뒷좌석에 갇혀서도 계속해서 난동을 부리는 남자를 돌아보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광화문 복판에서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해서요. 일단 데려가서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놀라셨을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요. 바로 청사로 가 봐야 하니까, 길 좀 내 줘요.”

경장은 경례를 붙이고 경찰에 의해 통행이 통제되고 있던 교차로로 내달렸다. 곧 새문안로를 채우고 있던 차들이 양편으로 밀려나고 길이 터졌다.

별 일이 다 있습니다, 장관님.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습니까?”

김기사가 내가 걱정되는지 쾌활함을 유난스럽게 가장하며 말을 걸었다.

그렇게 광화문광장 끝에서 유턴하여 정부서울청사 앞에 도착하니 정문 경비대가 피투성이가 된 내 차를 보고 몹시 당황해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김기사와 함께 킬킬대며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안행부에 방금 전 사태에 대해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정보공유를 요구한다는 공문을 선전부의 이름으로 보내고, 대민일보 쪽에는 일단 단순한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해프닝으로 가닥을 잡아 다루라는 보도지침을 언론청을 시켜 내려 보냈다.

 

2.

같은 청사 안에 위치한 통일부 유장혁 장관이 점심시간 때 면담을 신청했다. 거창하게 면담 신청이라지만 어차피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개인 휴대폰으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쩐지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면서 점심 먹고 차나 꼭 같이 하고 싶다는 게 요지였다.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캐물어보려고 해도 한사코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라며 사양한다.

 

과연, 정말로 전화로 할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국정원 쪽에서 인홍이랑 유린이가 지하당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는 거야? 내 말이 맞아?”

유장혁 장관은 약속시간이 되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뜨거운 차를 잘도 불지도 않고 마셔 목을 축인 다음 굉장한 얘기를 쏟아냈다. 지하당은 총통령에게 반하는 목적으로 구심한 일군의 세포조직 간 총화로, 각 말단군집의 세부목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러지 않아도 국가 내 젊은 층의 인구수가 적은 상황에서 모자란 머릿수를 불리기 위해 연합한, 복잡한 진용을 가진 반정부조직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안전보호청에서 믿을 만한 사람한테서 들은 얘기야. 정말로 관여되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국정원에서 혐의를 두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란 말이야.”

목이 타서 차를 마셔보려 했지만, 손이 떨려 힘들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책상 뒤 창문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니코틴 연기가 폐로 들어가자 약간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밖에서 누가 들을까 저어되어 창문을 다시 닫고 유장혁에게 물었다. 유장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수준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건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한 비방인지는 몰라.”

좀 더 알아봐 줄 수 있어?”

들리는 대로 알려줄 수는 있지만, 한계는 있어.”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놀란 마음에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유장혁도 흠칫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비서실 직원 한 명이 고개만 내민다.

장관님. 오후 일정에 대시려면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유장혁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툴툴거렸다.

, 바로 내려가지. 차 준비시켜요.”

, 알겠습니다.”

직원은 문을 닫고 나갔다. 유장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저번에 보복부 장관 우광민이가 허리 잘려서 두 토막 나 죽은 거 기억나지? 걔 총통령이랑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어. 일 년 전엔 총통령이 그렇게 끼고 돌던 국무총리가 고사포에 수천 조각이 나서 죽은 것도 있고. 우리 총통령은 기분파라서 언제 누가 죽어도 딱히 이상할 것도 없어. 너도 조심해야 해. 지하당이랑 연관이 있는 거라면 농담 아니고 삼족이 화천 수용소로 끌려갈 거야. 애들 단단히 단속해.”

유장혁은 따발총마냥 이렇게 쏘아붙이고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를 하고서 사무실을 나섰다.

양복 상의를 걸치기 전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인홍이는 내 아들, 유린이는 내 딸이다. 제 엄마가 막내 낳다가 죽은 후로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맞지만, 붕산조라는 이름으로 다른 고위층 2세들과 몰려다니기에 그래도 민주공화국 국민으로 제구실은 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지하당이라니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3.

총통령은 상징성이라던가, 이미지, 구체적으로는 예술적인 표현에 실려 운반되는 메시지에 민감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선대 총통령 시절에는 비교적 눈에 띄지 않았던 부처인 선전부와 그 장관인 내가, 현재의 공화국 내에서 나름의 권력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취향의 발로로, 총통령은 일 년 가량 전부터 성북동 북정마을을 깨끗이 밀어내고 그 자리에 현 총통령의 친부인 선대 총통령을 찬양하는 영생공원과 그 공원을 둘러싼 고급주택단지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공사가 장기화되었다. 지자체에서 얼마씩 돈을 갹출해 내도록 했지만, 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예산과 자재가 부족했고, 강제 동원되는 국민들의 불만도 날이 갈수록 심화되었다. 국민의 경우 소위 열정페이라는 것을 강요당하여, 제대로 생활조차 할 수 없이 최소한의 금액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들이 많았다. 사실 이러한 불평을 다스리기 위해 선전 전략을 짜고 있는 입장이기는 했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할 정도로 낮은 임금이기는 했다.

 

총통령의 해결책은 단순했다. 건설부 장관 김성문에게 총통령의 훌륭한 계획을 턱없는 실무능력으로 망쳐버렸다는 혐의를 지우고 광화문 광장에서 총살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논리였다. 총통령은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사실 결정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고 단순히 그 행사를 보다 강렬하게 꾸미기 위한 제반사항을 속히 대령하라는 무언의 압박으로서,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반대하면 김성문 옆에 함께 묶여서 내 무덤을 내가 파는 셈이 될 것이므로 매우 훌륭한 생각이십니다.’라고 발언했다. 내가 내각 내에 적이 많은 것은 일부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처형식 날에 광화문 광장은 사람으로 붐볐다. 그러나 총통령은 여느 때처럼 참석하지 않았다. 전대 총통령 시절에 연설장에서 동생이 테러범에게 사살당한 후로 군중이 붐비는 곳은 피하게 된 연유였다. 하지만 5부요인을 위시해 그 밑의 고위층들과 대량의 군중, 특히 영생공원 건립에 동원된 인부들은 강제로 참석해야 했다. 수방사의 군인들이 차출되어 경찰들과 함께 경비를 담당했다.

 

정해진 시각이 되자 우리 부처에서 고심을 거듭해 짠 프로그램에 맞춰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개회사로서, 첫머리의 연설은 이 분야의 전문가로 공인되어 있는 내가, 직접 쓴 연설문을 가지고 진행했다. 이어서 춤과 노래,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돈을 아끼지 않은 다양한 볼거리들이 전면에 제시되었다. 그 내용이 하나같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 모든 장면은 대민일보의 카메라에 의해 담겨져 총통령 관저를 향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최종적으로 마감하기 전까지 수십 번을 반복해 본 내용이라 자연히 딴 생각에 정신이 가 닿았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이랬다. 기본적으로 외국의 예술이라는 것은 제각기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그 내실이 풍요롭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 국가의 예술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총통령을 찬미하는 것을 제일목표로 하고 있어 이것도 저것도 전부 같은 얼굴처럼 보이기 십상이었다. 나도 이 분야에서 종사하여 내각의 높은 자리에까지 운 좋게 올랐지만, 이런 제한된 주제를 가지고, 결정적으로는 갖가지 세부적인 규제를 아슬아슬하게 지켜가며 작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몹시 힘들고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난 선전무대에 내놓을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괴로움을 느낀다. 순수하게 작품을 만들며 기쁨을 느끼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과물을 완성하고 나서도 성취감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나에게 항상 슬픈 느낌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행사가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었다. 곧 김성문이 끌려나와 수백 명의 눈앞에서 총알구멍이 나 죽을 것이었다. 그런데 오른편의 군중 속에서 소란이 있었다. 비명과 다급한 고함이 섞인 것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보았다. 뭔가 색다른 것이 있으면 일단 넘겨다보고 그 뒤에 생각하는 것은 내 직업병이었다.

 

그래서 볼 수 있었던 광경이 확실히 색다른 것이기는 했다. 장교복장을 한 군인 한명이 근처에 있는 사병의 얼굴을 쥐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장교의 머리통에 가려져서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둘 아래로 피가 오줌처럼 듣는 것으로 봐서는 별로 상서롭지 못한 일 같았다. 그 근처에는 해당 장교보다 높은 직책의 인원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병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교가 잡고 있던 사병을 놓았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사병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장교는 이성이 없는 짐승처럼, 위협하는 몸짓으로 주변을 휘휘 젓다가 뒤편의 민간인 한명에게 달라붙었다. 거기부터 본격적인 난리가 시작되었다. 그 소요는 보다 못한 국방부장관이 직접 사살명령을 하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되었다.

 

유장혁이 내게로 다가와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이 속삭였다.

행사 진행해, 총통령이 화 낼 거야.”

 

그 이후 다시 행사는 재개되어 최종적으로 눈이 가려진 죄수 복장의 김성문이 끌려 나와 통나무 기둥에 묶였다. 이 총통령의 교시를 제대로 옹위하지 못하고 사리사욕만을 채우느라 공사에 막대한 차질을 빚은 발칙한 반동분자를 지금 여기에서 처형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정말 싫은 일이지만 내가 연단에 올라 읽었다. 그런 다음 김성문의 몸에 서른 개 정도의 구멍이 뚫렸고, 김성문은 숨이 끊어졌다.

 

그러고 나서는 오후 일정을 소화하고 고위층을 대상으로 파란 기와집 접견실에서 열리는 교양교육에 참석했다. 엘리트들의 사상교육을 한다는 목적으로 요즘 매일 같이 총통령 칙령으로 열리는 연회겸의 모임이었다. 여기에는 총통령이 참여하여 함께 먹고 마신다. 연회 내내 내가 쓴 선전용의 시와 산문, 연극과 노래, 영화 등이 교육의 주요 레퍼토리로 제시된다.

 

연회 동안 난 총통령의 가까이에 앉아 총통령이 따라주는 술을 열심히 받아 마시는 얼마 안 되는 무리에 속해 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다른 장관들의 처형식 날에 그 선두에서 사형의 온당함을 선전하는 연설을 줄기차게 해왔음에도, 아직 내 머리가 목과 연결되어 있는 가장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일 터였다. 총통령이 즐거운 표정으로 금일의 공연을 치하하며 나에게 거듭해서 고급 양주를 따라 주었다. 취하면 실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전 총리는 취한 상태에서 총통령의 면전에 대고 현행 국정 운영 방식의, 국내 및 국제 정치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만연한 실태에 대해 전문가적인 우려를 피력했다는 이유로 고사포에 떡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4.

여자들의 비혼, 비출산이 종북세력의 공작에 연원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다루는 선전물의 제작 임무가 우리 선전부에 할당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전국민 매파화 운동이나 ‘1가구 3자녀와 같은 선전전략 등이 제시되었고, 보복부 및 노동부와 연계하여 비혼/비출산을 고집하는 여성에 대해 행정적 불이익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논의가 전개되고 있었다.

요즘 애들이 배가 불러서 그렇습니다. 헛된 거 못 보게 하고 우리나라의 건강한 전통과 풍습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고 몸과 마음을 고되게 만들면 자연히 출산율은 증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채무도 하나씩 지게 만들고 말이죠.”

노동부 장관 송현국의 말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 달 후에 열린 삼부 장관 총회에서 마무리를 장식할, ‘출산 장려를 메인 주제로 잡는 연극의 극본을 쓰느라 자정을 넘겨서까지 서재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자식 놈들은 전부 외박 중이었다. 일정이 계속 넘쳐났지만, 유장혁의 언급이 신경 쓰이는 터라 내일은 무리해서라도 가족 모임을 꼭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안에 보모가 있기는 했지만 아이와 같이 자고 있을 것이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보모는 깊이 잠들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문득 작업 중에 애가 깨면 골치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보모를 깨우지 않고 직접 나가기로 했다. 옷장을 열며 이 오밤중에 무슨 일일까 생각하니, 유장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가, 혹시 국정원에서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해서 덜컥 겁이 났다. 여하간 이런 시각에 찾아오는 사람이니 심상찮은 일이 확실하다는 심산에, 서둘러 외투를 걸쳐 입고 현관문을 열어 마당으로 나서니 대문 창살 너머에 서 있는 신장이 작은 사람이 한 명 눈에 들어왔다. 가로의 수은등 빛에 행색이 드러났는데, 입고 있는 코트가 고급품이었다. 모자를 쓰지 않아 안경을 걸치고 있는 학자풍의 얼굴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는 들어있지 않는 사람이었다.

 

혹여나 암살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잠시 들었지만, 정말 그렇다면 감시카메라가 담 위에 노골적으로 놓여 있는데 얼굴을 저리 뻔히 드러내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누구십니까?”

대문으로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세요. , 수도병원의 이예중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창살 너머로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보니 소속은 수도병원이었고, 신경의학 전문의 직함과 공학박사 직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굉장한 인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정보는 담겨 있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자제분인 송유린 양의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태연한 표정과 말투를 견지하며 말했다. 불길한 느낌이 배면의 저변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 딸이 무슨 일이 생겼나요?”

지금 수도병원에 있습니다. 함께 가시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다친 건가요?”

심각한 부상은 아니지만, , 확인해주실 것이 있어서요.”

.”

지하당과 연관된 겁니다. 심각한 사안이라 한시가 급합니다.”

 

난 나를 태운 박사의 차가 정말로 수도병원 위병소를 통과할 때까지 박사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확실한 모험을 감행한 것은 박사의 입에서, 유장혁도 언급했었던, 지하당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뼈만 남은 저승사자의 환상이 등에 업혀 있는 감각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이 전략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지하당이라는 상상하기 싫은 단어의 조합과 마주친 나로서는 산술적으로 따져 말하기가 힘들었다.

박사는 내가 남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수도병원의 위병소가 시야에 들어오자 박사의 말에 군말 없이 따라 뒷좌석 아래에 숨었다.

 

위병소를 지나고 나서는, 박사와 나는 큰 방해 없이 한산한 병원 건물 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데스크의 간호사가 박사를 보고 인사했다.

지금 가능한가?”

박사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 이화연 박사님도 퇴근해서 아래층 간호사는, 예 그렇습니다.”

데스크의 간호사는 박사 뒤에 어설프게 숨어 있는 나를 보더니 말꼬리를 흐렸다. 박사는 곧바로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 둘은 지체 없이 층계를 내려가 지하 2층의 적막한 계단참에서 잠시 멈췄다.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방금 지나온 지하 1층은 평범한 철제 방화문으로 계단참이 복도와 통해 있었지만 지하 2층은 상당히 두껍고 견고해 보이는 현대풍의 보안문이 복도로 가는 길목을 봉쇄하고 있었다. 박사가 보안문 우편의 벽 내부에 박혀 있는 자그만 철제 박스를 열쇠로 열었다. 그러자 카드 리더기로 보이는 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사는 지갑에서 자기 ID 카드로 보이는 물건을 꺼내 리더기에 읽혔다. 단속적인 기계음이 반복되더니 보안문 손잡이 끝부분에 녹색불이 켜졌다. 박사는 문을 열었고, 나를 앞세워 몹시 수상해 보이는 장소로 들어갔다.

 

그곳은 병원보다는 교정소를 연상시켰다. 삼청송 교정소에 방문했을 때 느꼈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최근에 새로 내부를 공사한 것 같아서,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새것처럼 느껴졌다. 박사는 아무 말 없이 복도를 따라갔다. 우편에 늘어선 두꺼워 보이는 철체 문들은 성인 눈높이 부분에 쇠창살이 쳐진 창문이 나 있고, 문 아래쪽에는 배식구가 있는 것이 영락없이 교정소의 독거실 문처럼 보였다. 몇몇 방에서는 찰상을 통해 방 내부에 서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박사는 열한 번째 되는 문 앞에 멈춘 다음 문으로 가까이 다가가 철창을 넘겨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손짓했다.

이 안을 보세요. 저 사람 기억하십니까?”

머뭇거리며 내부를 보자 팔이 잠긴 구속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방 안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시선이 멍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기 중의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눈길이었다.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었다. 일전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맨몸으로 난동을 부리다 제압된 것을 내가 직접 목격했던, 공무원 같아 보이던 남자였다.

나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박사를 돌아보았다. 박사가 대답했다.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특히 신뇌라 부르는 영역에 광범위한 손상이 가해진 상태죠.”

신뇌부터 잘 알아듣지 못했기에,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박사를 쳐다보았다. 박사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크게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투로 설명을 계속했다.

광화문에서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보셨죠? 저희 측에서는 정동발작이라고 부르고 있는 행동양상입니다. 대뇌가 담당하는 고등한 사고가 마비되고 원시뇌인 변연계만 남게 되어서 편도체가 주도하는 싸움 또는 도주 반응이 과활성화 된 상태입니다. 지금은 약으로 진정시켜 놓은 상태고요.”

?”

부연한 설명도 무슨 소리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반문했지만, 박사는 동요하지 않았다.

다음은 이쪽입니다. 건설부 장관 처형식 때 보셨던 장교도 여기 있습니다.”

박사는 무뚝뚝한 태도로, 나를 데리고 조금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 경로에 있는 방 중 하나에는 컨토션을 하려는 것처럼 몸을 온통 뒤틀고 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신체가 극도로 말라 있었기 때문에 뒤튼다기보다는 구겨졌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그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박사가 끼어들었다.

저건 이제는 개선된 부작용입니다. 푸르키녜 세포가 대량 소실되어서 운동실조와 경련이 유발되는 종류였죠.”

환자를 쳐다보는 박사의 얼굴에 동정심이 어렸다.

심한 경우는 후두엽 새발톱고랑까지 침범해서 시각에 장애가 유발되는 경우도 있었고, 두정후두고랑까지 영향이 간 경우는 뇌 절반이 사실상 녹아 버려서.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습니다.”

박사는 손으로 자기 머리통을 이리저리 짚어가며 설명했지만, 평생 의학과는 연이 없던 나에게는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었다.

 

이게 다 뭐하는 겁니까!”

슬슬 불안함을 넘어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한 탓에 무심코 박사에게 쏘아붙였다. 내 딸이 저렇게 되어버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일까? 박사는 슬쩍 내 안색을 살피고는 외투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군가가 받은 휴대폰을 나에게 넘겼다.

받으세요. 따님입니다.”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받으라니 받아 보았다.

여보세요.”

아빠! 나야! 설명해줄 테니까 말하지 말고 잘 들어! 난 지금 다른 곳에 있어. 들어서 알겠지만 지하당 일 때문이야. 수도병원 쪽에서 아빠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예중 박사라는 사람이 설명해줄 거야. 일단 얘기만 듣고, 내 쪽 일은 내일 가족모임 하면서 더 자세히 말해줄게.”

분명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딸의 목소리였다.

 

딸과의 통화가 마무리되자 박사는 감방들이 늘어선 복도 안쪽에 있는, 더욱 깊고 비밀스러워 보이는 장소로 나를 데려갔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었다. 박사는 기업 생산실 규모로 칩을 만드는 설비가 되어 있는 음압실과 칩을 뇌에 장착시키는 장소인 수술실, 장착된 칩을 통해 사람 간에 정신을 덮어씌우거나 암시를 통해 조종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우주선 내부처럼 보이는 복잡한 기계가 널려 있는 조종실을 일별하도록 했다. 한 층 전체를 한 가지 연구주제만을 위해 소모하고 있는 만큼, 전체 연구실의 규모는 상당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총통령은 말 그대로 우리 모두의 정신을 장악하고 싶어 하는 거군요. 이 기계를 써서.”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시겠지만, 극비이죠. KIST 쪽에도 관계되는 연구실이 있습니다만, 그쪽은 단순히 최적화나 소재작업을 전담하고 있고, 중추에 해당하는 연구들은 모두 여기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사는 우리가 방금 들어갔다 나온 조종실의 전원을 내리고 방에서 나오며 말을 받았다.

우리는 보안을 위해 맹산에 나무심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총통령을 하이브마인드로 만드는 계획이죠. 우리 모두가, 특히 엘리트들이 그 신경망의 주요 말단이고요. 아무래도 총통령은 사람이니까 한 번에 모두를 조종하는 것은 아니고 한 번에 한 명씩만 정식을 장악할 수 있지만요.”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요?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박사는 단호한 얼굴로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한 일이였지요.”

박사는 손가락으로 뇌가 손상되어 있다는 피해자들이 감금된 감방이 늘어서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래서, 결론은 뭐지요? 당신들은 나를 데려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요?”

박사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물이 끓고 있던 커피포트로 다가가 믹스커피를 두 잔 탔다. 그 중 한 잔을 나에게 건네고 자기도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 총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엘리트층이지요. 특히 군부 장악이 고심거리입니다. 지금 고위층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정부 내의 일에 접근할 기회가 없는 사람이라도 떠도는 분위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것은 그랬다. 다들 갖가지 잔인한 방식으로 죽을까봐 대놓고 말은 못하고 있지만, 부와 영화를 대가로 내놓아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도 크다는 불만은 총통령과 멀거나 가깝거나에 관계없이 고위층 대부분이 공유하는 정서였다. 박사는 내 표정을 잠시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장관급을 데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처형쇼를 하는 상황이니까요. 총통령 본인도 자각은 있어서 이런 일을 꾸민 것인데.”

박사는 크게 한숨을 한 차례 쉬었다.

계획이 성공해서, 사실상 성공했습니다. 연결만 남았지요.”

박사는 마시던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흥분했는지 말하는 동안 손을 휘저으며 이 상황의 혼란스러움과 부당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총통령이 우리 모두의 정신을 장악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현재의 총통령이 자행하는 통치 방식을 견지하면 얼마 안 있어 나라는 망합니다. 그건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알 수 있어요. 동의하시겠죠?”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건 사실상 동의한다는 표현이었다.

모든 뇌에 칩이 장착된 건가요?”

나는 박사에게 물었다.

당신의 뇌에도. 저의 뇌도 물론이죠. 당신 가족은 전부 최상위 단말기가 장착되어 있어요.”

어린 아기도?”

박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본인이 감시당한다는 자각이 없으니까 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기도 쉽죠. 고위층과 그 가족에게는 정신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최상위 칩이,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몇 백 명 당 한명씩만 상위 칩이 장착되어 있고, 나머지는 단순히 뇌 속에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가하는 형식의 하위 칩이 넣어져 있죠.”

전 국민한테요? 어느새 그런 대규모 수술이 이뤄진 거죠?”

난 경악하여 외쳤다.

일반인에 대해서는 아직 모두에게 넣은 건 아니고, 앞으로 전 국민 무료 건강검진 정책이라는 걸 통해 차근차근 수술을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정부에 의해 엘리트로 분류되는 인원들은 이미 넣고 있어요. 일전에 고위층들에게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한 일이 있었죠?”

과연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다. 웬일로 총통령이 좋은 일을 하나 싶었었는데, 지금까지나마 그 일을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수면마취를 하고 내시경 검사 대신에 뇌수술을 한 셈입니다. 제가 수술을 집도했죠. 중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한 최신 기법으로, 상처도 없고 감쪽같았죠?”

박사는 검지로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윙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칩들을 한 장소에 연결하는 네트워킹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그럼 우리는 정신 조작에 대한 방호가 불가능해져요. 지금은 정신들 간의 거리가 실질적으로 이격되어 있지만, 시스템 내에 수납되면 우리의 가장 내밀한 부분들이 총통령 손아귀에 놓이는 셈이죠. 그걸 막아야 해요.”

계획은?”

역으로 해킹할 겁니다. 당신과 같은 고위층은 연결된 채널의 대역폭이 넓어요. 일반 민중은 단순히 짧은 메시지나 인상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수준으로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지만, 당신 같이 단번에 국가 내에 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신속한 대응이 어렵죠.”

박사는 두 손을 마주보게 하여 대역폭이라는 개념을 손바닥 사이의 너비로 표현했다.

이런 이유로 최상위 단말기는 정신의 전면적인 잠식을 목적으로 가장 큰 대역폭을 가집니다. 대량의 정보를 단번에 이송시켜서 당신의 몸에 총통령의 정신이 씌워져 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시스템에 약간의 장난만 치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박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며 말을 이었다.

고위층, 그 중에서도 당신 같은 특별한 총애를 받는 인물이라면 모든 준비가 완벽하기 갖춰지기 전까지 정신이 잠식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입니다. 사고가 일어나서 죽거나 장애를 입으면 안 되니까. 그만큼 우리 측의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박사는 다음 말을 이을까말까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입 밖에 내어 말했다.

당신의 아들과 딸은 대단치는 않지만 일단 우리 쪽 일을 오래 보고 있어 와서 계획에 포함시키기에는 위험하다는 합의가 내려졌습니다. 그들은 이 계획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박사는 방의 구석자리에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디데이에, 당신이 총통령의 몸을 잠식하는 겁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 겁니다. 하지만 보안 장치가 있어서 길어야 3분 정도? 그 사이에 저나 다른 요원이 그라운드 제로로 진입해 하이브마인드의 위치에 총통령 대신 인공지능을 연결합니다.”

인공지능?”

아무 것도 연결하지 않고 마무리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계획이야 다시 재개하면 그만이니까.”

박사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난 국가주의자입니다. 당신도 현재 인공지능 분야가 얼마나 발전해있는지는 알 거에요. 그 인공지능 중에서도 가장 최첨단의 것이 국가를 지배할 겁니다.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물론 인간을 다치게 하거나 괴롭게 만드는 일은 최소화할 겁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것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대한 우선순위가 동일 선상에 놓입니다. 그거 외에 선택지는 없습니다.”

박사는 손바닥을 앞쪽으로 하여 두 손을 어깨 높이로 올렸다. 그리고 오른손을 머리까지 들어 올리며 말했다.

총통령이냐.”

이번엔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머리까지 들어올렸다.

인공지능이냐.”

박사는 헛기침을 했다.

당신 딸과 아들이 이 일에 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아시겠지만 지하당에 깊이 연관된 당신들 가족은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협조해주신다면, 당신 가족의 안전만은 저희 측에서 완벽하게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박사는 기운 없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5.

며칠 후 여느 때처럼 새벽까지 내 집의 서재에서 일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선대 총통령의 기일이라 상당히 큰 규모로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공연을 마련해야 해서 업무적인 부담이 심했다. 누가 서재 문을 두드렸다. 예의 수도병원에서의 일이 있은 다음날 열린 가족모임에서 지하당임을 천명한 이후로 자식 놈들은 계속 밖으로만 돌고 있느라 집 안에는 나와 보모, 막내인 송준영 밖에 없었다.

보모인가 싶어 문을 열어보니 웬 피투성이의 사람이 감자포대처럼 굴어 들어왔다. 안아서 얼굴을 자세히 살피니 내 아들이었다.

 

춘천 쪽에서 군부의 쿠데타 시도가 발각되어 한창 소요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정황은 듣지 못했지만, 아들은 서울 외곽에 다른 일로 나가 있다가 어찌어찌 그 일에 말려드는 바람에 도망쳐왔다는 것이 내가 아들의 말에서 이해한 저간의 사정이었다. 내가 병원에 전화를 하겠다고 하자 아들이 말렸다.

내 얼굴 아무도 못 봤어. 겨우 도망쳤는데, 여기서 들키면 안 돼. 전화하지 마. 준영이랑 유린이도 위험해져.”

아이고, 이놈아. 그러게 엄한 짓 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엉엉 울며 다그쳤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아들을 앞에 두고 이제 와 무슨 소용일까. 아들의 몸에 난 구멍도 징그럽게 많아서 하나만 출혈을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문득 이예중 박사가 떠올랐다. 그도 지하당 소속이고 의사이니 부탁할 수 있는 건 그밖에 없었다.

 

금방 다시 전화 걸죠.”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금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으니 박사였다.

, 춘천 쪽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몇 명이 자백하는 바람에 계획과 연관된 사람들이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 아들이

아직 계획 자체나 저 같은 경우는 혐의에서 벗어나 있는 걸로 보이지만 만약을 위해서 앞으로 직접적인 접촉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아들이 죽어갑니다! 당신은 의사잖아요!”

침착하세요. 송유린! 송유린의 신변은 저희가 확보했습니다.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조금 있다가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박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 아들은, 심정은 이해가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그도 이해할 겁니다. 무리하면 나머지 가족까지 위험해져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바닥에 쓰러져 흐느꼈다.

마음 강하게 잡으셔야 합니다! 따님과 어린아이를 생각하세요! 전 발이 묶였습니다. 금방 인편으로 계획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전하겠습니다. 저하고 극소수의 사람만 당신이 관여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피해가 갈 일은 없습니다.”

이 꼴이 되었는데 피해가 아니라고!’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울음에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물리적으로 이 계획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뒷일을 맡기겠습니다. 가능한 지원은 최대한 제공하겠습니다.”

아들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세상이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총통령이 하이브마인드가 되면 그가 당신 가족의 비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을 명심하세요. 금방 당신 아들을 수습하기 위해 사람이 갈 겁니다. 집 안의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세요.”

 

6.

태연함을 가장할 자신이 없었다. 거의 모든 일정을 내근으로만 돌리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눈물이 나올 때는 유린이와 준영이를 생각하며 참았다. 춘천 쪽의 일을 뒷마무리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정보기관들이 잔뜩 날이 서 있어서 조그만 이상 징후로도 꼬투리를 잡힐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개중에 발각되기만 한다면 실제로 형장에 엮여 들어가기 충분할 정도의 혐의점을 가진 우리 가족 전부는 한 평 정도 되는 뗏목에 탄 채 사방에서 몰아치는 삼각파도에 맞서고 있는 꼴이었다. 몸을 사리고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힌 것은, 총통령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나를 아직 좋아했다. 며칠 후 선대 총통령의 기일에 바칠 찬양시를 연회에서 소개하니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매일 밤 열리는 연회 자리에서 즐거움을 가장하는 것이 나에게는 제일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유린이와는 오빠가 그렇게 되어버린 이후 두 차례 만났다. 자신은 지하당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관악구 쪽에 있는 별장에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위장하고 있다 했다. 거기에 내 아들을 대신해 대역이 세워졌다고도 들었다.

 

어느 날, 정확히는 선대 총통령의 기일 하루 전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보모가 방금까지 딸이 와 있다 떠났다고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서재 책상의 열쇠로 잠그는 서랍 안에 낯선 편지 두 통과 두꺼운 서류봉투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지 하나는 내 딸에게서 온 것이었다. 손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무슨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 들었어. 성공하기를 바랄게. 나는 걱정하지 말고, 일 끝난 다음에 만나자.’

다른 편지는 이형행 대령이라는 사람이 발신인이었다. ‘당신 딸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살려 놓았다. 앞으로도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 그러나 당신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실패하면 당신과 당신 딸, 갓난아기도 전부 끝장일터이니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는 문면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서류봉투 속에서는 예의 정신조작 기기의 구조와 해킹 방법에 대한 자세한 매뉴얼이, 숙지한 후에 곧바로 태워 버리라는 지시와 함께 쏟아져 나왔다.

 

향후의 행동은 우리 가족에 있어서는 어찌 보면 다행이게도 신속하게 이어졌다. 새벽에 발이 묶여있다던 이예중 박사가 급히 찾아왔다.

요즘 계속 늦게까지 깨 있으시는군요.”

오늘이 선대 총통령의 기일이라서.”

박사는 내가 타 준 티백차를 건네받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시스템을 가동만하면 총통령의 계획대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찻잔을 잡고 있지 않은 손을 계속 허벅지에 비비고 있는 박사는 긴장되어 보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난 이 집에서 매뉴얼대로 역해킹만 하면 되는 거죠? 시기가 언제죠?”

오늘이요. 선대 총통령의 기일날입니다. 오전 열시에 전면적으로 시스템이 가동될 겁니다.” 상당히 급작스러운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박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면 우리 정신이 모두 총통령만이 관리할 수 있는 네트워크상에 놓이게 됩니다. 이제 총통령은 앞으로 주파수 조율 같은 소모적인 사전 과정을 진행하지 않아도 인터넷 홈페이지 열듯이 우리 머릿속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시청광장에서는 축제 중이겠죠. 장소는 경복궁입니다.”

박사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몹시 피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기습적이죠. 정보를 얻자마자 달려온 겁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이걸 몰랐다면 꼼짝없이 총통령한테 뇌를 저당 잡혀야 했을 겁니다.”

박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얼굴의 주름에 음영이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위험부담을 잔뜩 안고 여유 없이 일 처리하는 거 할 짓이 못 되는 거 같습니다. 요 며칠 잠도 설치느라 죽을 지경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바가 있었다.

박사는 품에서 A4 용지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경복궁의 부감도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그 내부의 후미진 위치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이제 강의 시작하니까 잘 들으세요. 여기 비밀 지하시설이 있습니다. 보안을 위해서 내부 경비 인원이나 기술자들은 당일 가동 직전에 차출된 말단들이 배치될 겁니다. 일반 사병과, 기기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가동하는 교육만을 받은 기술자들이 오퍼레이터로서 내부 현장에 위치합니다.”

박사는 검지로 부감도의 동그라미를 톡톡 쳤다.

가동 자체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고, 총통령이 조종기에 앉은 다음 2분 이내로 완료되기 때문에 자기 깐에는 기습적으로 처리한다는 심산이겠죠. 심지어 현장 보안에 총통령 경호실도 배제되었습니다. 총통령이 직접 짠 계획이죠. 일단 가동만 되면 반란분자가 있더라도 자신이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한 겁니다. 전체 과정에 5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박사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역해킹은 전혀 위험부담이 없습니다. 방향만 다를 뿐 총통령 쪽에서 쓰는 것과 동일한 기술이니까요.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면 총통령이 전면적인 시스템 가동을 지시하지도 않았겠죠.”

박사는 빨간색 사인펜을 꺼내서 청와대 정문에 잉크로 점을 찍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축제에 집중된 상태에서 총통령이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 내 비밀기지로 신속하게 진입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박사는 사인펜으로 청와대 정문의 점과 경복궁 내 비밀기지를 나타내는 동그라미를 90도로 한 차례 꺾어지는 선으로 연결했다.

그가 방탄 차량을 탄 채로 경복궁 내부로 들어가면 1분 기다렸다가 역해킹에 들어갑니다. 여기 있는 타이머를 사용하세요.”

박사는 가지고 온 서류가방에서 복잡해 보이는 기구를 꺼냈다. 무슨 크리스마스 장식이 잔뜩 달린 헤드기어처럼 생긴 것이었다. 서류봉투에 담겨 있던 매뉴얼에 그려진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매뉴얼 읽으셨죠? 이게 타이머입니다. 60으로 맞춰 놓으면 초마다 숫자가 떨어지다가 0이 되었을 때 역해킹이 시행됩니다. 다른 건 다 조정해 뒀어요. 순간 출력이 강해야 하니까 여기 축전기에 콘센트 사용해서 미리 최대로 충전해두세요. 안테나는 지금 설치하죠.”

박사는 나침판을 들고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창가의 탁자 위에서 화분을 치우고 대신 안테나를 올려놓고서는 나머지 각 파트와 안테나 사이에 다양한 굵기의 전선을 연결했다.

당신은 총통령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시선으로 주위를 볼 수도 있어요. 진입요원은 당일 날 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투입될 수도 있고요. 그냥 밖에 누구누구가 왔는데 안으로 급히 들여보내라라는 뉘앙스로 경비 인력에게 속달로 지시를 내려주시면 됩니다.”

박사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부감도에서 신무문이 위치하는 붉은 선상의 지점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신무문도 닫아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딱 1분만 카운트하고 바로 진입할 겁니다. 아니면 이쪽에 폐쇄된 루트를 이용할 수도 있죠.”

박사는 손가락으로 건청궁으로부터 비밀기지가 있는 곳까지 선을 그었다.

건청궁의 이쪽에 비상탈출용의 입구가 있습니다. 전자식으로 밀폐된 문이 다섯 개지만 제가 입수한 카드로 열 수 있어요. 내부 경비 인원을 정식 입구 쪽의 루트로 보내시면 저희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을 사용할지는 직전에 알려드리죠.”

박사는 크게 한숨을 쉬며 다시 한 차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계획을 보다 완벽히 만들기에는 준비 시간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해야 합니다. 3분이에요. 엄청나게 짧은 시간입니다. 경복궁 자체가 방호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무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광화문을 포함해서 나머지 세 개 문은 아마 걸어 잠그겠죠.”

박사는 자세를 고쳐 앉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다음 내 눈을 주시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부분부터는 완전한 추측이지만 가능성이 높아요. 누가 진입하려했는지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고, 뇌에 피가 돌지 않는 개체와 링크될 경우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무조건 선보고 후조치로 되어 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춘천 사태 때 총통령이 직접 몸으로 배웠거든요. 토하고 발작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박사는 오른손을 코앞에서 휘휘 젓더니 아까 그려놓은 빨간 선을 따라 한 차례 사인펜으로 똑같은 선을 그었다. 말투에는 나름대로 기백이 있었지만 얼굴에 근심스러움이 떠올라있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제압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명령 전까지는 사살당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차피 백여 명의 적이 있는 곳에 저 한 명 들어가는 거니까 총통령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공격을 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박사는 사인펜을 내려놓고 두 손을 비볐다.

중요하니까 다시 말씀드리는 건데, 연결되자마자 저희가 신무문으로 진입할 거니 곧바로 저희에 대해 언급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저희가 알아서 할.”

박사는 말의 끝마무리를 흐렸다. 당혹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안 돼. 총통령이야.”

박사는 눈을 질끈 감더니 품에서 작은 총처럼 보이는 것을 꺼냈다. 그리고는 바닥을 구르면서 재빨리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방구석으로 숨어들어간 박사는 그 기구를 자기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는 김빠지는 소리가 들렸고, 박사의 머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덤덤탄이었다. 이제 누구와 어떻게 연락해서 일을 처리해야하는지, 나는 몰랐다. 내 딸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7.

디데이의 축제는 아홉시부터 시작되었다. 지나치면서 언뜻 본 서울광장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기사를 시켜 청와대로와 효자로가 마주치는 곳에 열시 십분 전부터 관용 차량을 세워 놓고 화상통화로 청와대 정문을 비추도록 했다. 의전으로서 깜짝쇼를 준비했다는 것이 의아해하는 김기사를 구슬리기 위해 급조한 핑계였다.

과연, 열시가 가까워지자 방탄 차량 한 대가 청와대에서 튀어 나와 굉장한 속도로 신무문을 통과해 경복궁 안으로 사라졌다. 난 무선장치를 이용해 타이머를 켰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매뉴얼에 적혀 있었던 것처럼 좋은 감도를 가지고 잘 작동했다.

타이머의 숫자가 0을 가리키자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뒤에 타고 있는 인원들에게 꼭 잡으라고 외치고, 타고 있는 홍보용 트럭을 몰아 급하게 신무문으로 향했다. 신무문은 닫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 앞의 군인이 차를 세우려 했다. 나는 경적을 울리며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선전부 차량이다! 비켜!”

그러고서는 계속해서 차를 밀고 나갔다. 총알이 날아올까 잔뜩 긴장했지만 과연, 박사의 예상대로 위협은 있되 실제적인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신무문 위에 서 있는 군인들과 부지 곳곳에 배치된 인원들이 요란한 음악을 울리며 요란한 복장으로 요란한 춤을 추고 있는 차량 뒤의 공연 팀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볼만했다. 개중에 열심히 무전기에 대고 뭐라 외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마도 3분 동안 제대로 된 응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차를 모는 내내 확성기에 대고 열심히 거듭해서 외쳤다.

선전부 차량이다! 총통령님이 지시하신 공연팀이다!”

군인 몇 명이 진행 경로에 뛰어들어 차량을 멈추려 시도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크게 유턴을 했다. 차가 크게 기울자 차량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백미러로 확인하자 낙오한 인원은 없는 것 같았다.

 

지도상에 표시되었던 바로 그 자리에 개방된 입구가 있었다. 뭐가 되었든 시간이 부족했기에 밀고 들어갔다. 경적을 계속 울리며 확성기로는 거듭해서 총통령의 지시라 외쳐댔다.

얼마간 내려가니 곧 차를 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거기에 대충 차를 대고 내렸다. 시계를 보니 2분가량이 남아 있었다. 빠듯했다.

들어온 통로 반대편에 강화유리문으로 격리된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비슷하게 생긴 기계들이 잔뜩 늘어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조종실임에 틀림없었다. 조종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 권총을 겨누고 고함쳤다.

손들어! 움직이면 사살하겠다!”

이 소리를 듣고 트럭 뒤편에서 여자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빨리 내려! 총통령님의 명령이 있으셨다!”

나는 나대로 트럭 차체를 두드리며 공연팀을 재촉했지만 뒤쪽의 군인이 계속해서 위협하는 바람에 상황은 영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난 총구를 나에게 겨누고 있는 그 군인에게로 곧장 다가가서 면전에 대고 소리쳤다.

너 내 얼굴 알지? 나 선전부 장관이야 이 새끼야! 총통령님의 명령대로 공연할 수 있는 인원을 데려 왔어! 수상하면 총통령께 직접 물어봐! 우리를 막으라고 한 말씀이라도 하셨어? 총통령님의 명령이었어! 노하시기 전에 문 열어, 어서!”

난 몸으로 밀쳐 유리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문은 열 수 있었지만 조금 비집고 들어가자 방 안에 있던 군인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몸으로 나를 막았다.

총통령은 방 가운데 놓인 조종기 내부에 앉아 있었다. 그 곁에서 장교 한 명이 총통령에게 몸을 기울이고 다급한 태도로 계속해서 말을 걸고 있었다. 난 거기에 대고 외쳤다.

총통령님! 접니다! 제가 왔어요!”

내 목소리를 들은 총통령이 고개를 돌렸다. 잔뜩 울상 짓고 있는 얼굴이었다. 총통령이 몸을 뒤집더니 양손을 들고 내 쪽으로 뻗었다.

저거 봤지! 서두르라고 하시잖아! 빨리 비켜!”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사살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일체 대꾸하지 않고, 무언가를 갈구하듯 나를 향해 양 손을 뻗고 있는 총통령의 모습까지 보고서 나를 적극적으로 막아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경비 인력 전원은 하이브마인드 계획에 대해 부스러기조차 주워들은 바가 없을 터이니 지금 총통령이 진짜 총통령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서둘러 공연팀을 차체 뒤에서 끌어내리고 등을 떠밀어 조종실 내부로 들여보냈다.

남자 배우의 선창으로 화려한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기념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작곡하고 구성하고 연습시킨 인원이었다. 아마 지금쯤 시청광장에서는 일정에 정해진 공연팀이 등장하지 않는 바람에 열심히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공연 인원의 분장은 지금 이곳에서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어린이 프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조금 변경했다.

총통령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계산상으로 20초가 남았다. 총통령에게 다가가 얼굴을 마주치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똑똑히 들을 수 있게 방백을 하듯이 외쳤다.

제가 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영광을 대신 누려도 되겠습니까?”

총통령의 얼굴을 한 준영이가 아빠를 보니 좋았던 모양이다. 마침내 꺄르륵거리며 몸을 들썩거리고 크게 기뻐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수도병원 지하에서 조종기의 자세한 구조는 본 적이 있다. 박사가 품에 가지고 있던, 인공지능이 담겨 있다는 USB를 패널의 커넥터에 꽂기만 하면 되었다. 머뭇거리는 기술자를 단박에 밀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패널 앞에 섰다.

5초가 남아 있었다. 사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의혹이 깊어 박사에게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 말 많은 박사가 이 점에 대해서 별반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했다.

이것으로 유린이와 준영이를 정말로 구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지 않으면 백 퍼센트 죽는다. 그것도 비교적 편안한 방법으로,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예사 방식으로 죽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지배받는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자유의지라는 것을 가질 수는 있을까. 내내 자기인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에 따라 단속적으로 관리되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총통령의 웃음소리가 가셨고, 대신 신음소리를 흘리며 끙끙거리는 기색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어쩌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그대로 USB를 커넥터에 꽂아 넣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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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추석 연휴를 맞아 쓴 글입니다.

이러저러 무리수가 많다는 느낌이기는 합니다... 

중간에 박사가 숨도 안 쉬고 말하는 것 같아서 9월 25일에 조금 수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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