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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8월 심사평

2022.09.15 00:0009.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2년 8월 1일부터 2022년 8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하였습니다.

2022년 8월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없습니다. 다음 달을 기대하겠습니다.

 

ㄱㅎㅇ, 「월광
‘달빛’이 비추면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을 짧게 제시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제목인 ‘월광’에 충실해 달빛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변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피아니스트, 화가처럼 예술가와 그들의 정신세계를 기묘하게 비틀었다는 것도 ‘광적인 예술가’ 이미지의 효과적인 변용입니다. 다만 지금의 소설은 단편의 스케치를 보는 느낌입니다. 분절된 이야기가 조립된 소설에도 각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중심 소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이야기의 주제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달빛과 절름발이, 신체의 훼손, ‘타닥타닥’ 등의 음성상징어처럼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괴이한 이미지 외에는 개별의 장면을 연결하는 동시에 의미를 형성하는 요소가 부재합니다.
독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작가는 ‘어느 절름발이의 이야기’에서 이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절름발이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소설가’와 ‘화가’라고 이름 붙은 장면은 꽤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소설가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절름발이’의 이미지가 화가를 통해 완성된다는 서사성도 부여됩니다. 하지만 이때 ‘피아니스트’는 앞뒤와 연결성이 다소 떨어지는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 이 소설은 작가가 달빛의 분위기에 맞는 여러 이미지를 조합하느라 전체적인 흐름을 놓친 것으로 보입니다. ‘월광’이라는 말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고 싶었던 단 하나의 메시지, 또는 주제의 줄기가 있어야 합니다. 절름발이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완성되는 데에 관여한 여러 예술가가 겪은 신비로운 달빛의 환상을 짧게 연결해보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단편이 쓰이리라 확신합니다. ‘피아니스트’ 이야기에도 그림과의 접점을 만들어 보세요. 그냥 지우기에는 조금 아까운 음악적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반야, 「오래된 거주민
신체강탈 모티프가 두드러지는 소설입니다. 미지의 생명체가 욕망이라는 감정을 입고 인간의 몸에 거주하며 그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이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남편이 너에게 자주 등을 돌리네. 그래서 네가 날 발견할 수 있었던 거겠지.”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 생명체가 소설 안에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서술자 ‘나’의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자신의 숙주를 차지하려는 ‘거주민’의 탐욕스러움이 적절히 정제된 상태에서 짧은 이야기를 움직입니다.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의 변화가 큰 비약 없이 부드러운 인과로 이어진다는 것도 이 소설의 큰 장점입니다. 남편에게서 아들로 숙주의 대를 이어 지구에 거주하는 이 기생체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면서도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추는 작가와 독자의 밀고 당기기가 결말까지 꽤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다만 “네 남편이 너를 떠나지 않게 해줄 수도 있어”라는 대사와 “몸이 손상되지 않는 게 좋아”라는 대사 사이에서 서술자 ‘나’는 기생체에게 남편을 죽이라는 (정확히 쓰자면 ‘죽이려고 노력’하라는) 조의 명령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대사의 전(前) 장면에서 기생체의 입으로 발화되는 어떤 대사에서도 남편을 죽이라는 명령이 선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집필 또는 퇴고 중 삭제되었거나 작가의 머리에서만 형성된 채 글로 쓰이지 않은 기생체의 대사가 있는 듯합니다. 이 부분을 보완해 대사의 흐름을 다듬어 준다면 더 매끄럽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을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던 여자가 자신을 자조하는 한편 그의 아기에게서도 기생충을 발견하는 결말은 꽤 적절한 선택입니다. 이야기를 완전히 맺는 것보다는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두려움이 배가 됩니다. 아기의 이름을 무심코 ‘꼬물이’라고 짓는 간호사의 등장도 의미심장한 한편 오싹하네요. 전반적으로 요철이 적은 문장과 납득가능한 결말, 흥미로운 설정과 부드러운 감정의 흐름이 장점인 소설입니다. 이 기생체가 등장하는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어지네요.

김성호, 「모의 꿈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에서 착안된 이미지가 ’모’라는 여성으로 이어지는 도입이 흥미롭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실제로 중고서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단편인 듯, 사실적인 근무체계와 업무의 내용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다 읽은 중고책을 매입해 재판매하는 중고서점에서 근무하는 서술자 ‘나’와 환경미화 일을 하며 버려진 책을 줍는 모의 만남이 ‘버려진 것들’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연결되는 지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버려짐’은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소설 속 인물의 면면과도 연관이 됩니다. “그럼 청소부인 나하고 책팔이인 당신이 달라요?”라는 모의 대사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신권 지폐에 집착하던 그녀의 행동, 책을 쓰레기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나라에서 (약간의 과장이긴 합니다만) 문예창작을 전공한 ‘나’의 전사 등 ‘버려진’ 인간들이 이 문장에 스며 있습니다.
작가는 중고서점의 근무 상황뿐 아니라 문예창작을 전공한 서술자에게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장에 과잉된 감정이 비치기도 합니다. 전술한 “이 나라 이 사회에서 책이란 종이에 ‘쓰레기’라는 글자마저 적어내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한다”라는 부분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모의 성격을 차분하게 형성했기 때문에 소설 전반의 문장에서 불필요하게 과한 감정이나 무거운 표현을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듯합니다. “커다란 두 눈이 생멸의 소실점으로 좁혀들었다”와 같은 문장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얻지 못하는, 추상적인 ‘생멸’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좀 더 문단의 맥락에 맞는, 명료한 장면으로 수정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서애라자도, 「둘째
둘째들만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단지 존재의 사라짐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여성과 물질주의적 세태에 대한 고민을 녹여내려 한 시도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를 담으려던 작가의 시도가 소설 안에 산재한 이미지에서 그칠 우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부재하기에 독자는 어느 장면과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 단편은 내부 인물을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상 현상을 감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마지막으로 신체의 소실 현상을 직접 겪는 사람)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일관된 메시지는 없어 보입니다. 이는 둘째들의 ‘소멸’이 소설 안에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채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둘째들의 실종을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이 이야기 내부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안에서 ‘나’와 경호의 위치 또한 한번 더 고려되어야 합니다. 물론 주인공 ‘나’가 여성으로서 교사 일을 하며 듣는 차별의 언어는 이 단편 안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경호’라는 인물의 말과 행동은 그가 둘째라는 것 말고는 소멸해야 할 이유가 없는 (마이너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경호보다는 ‘나’에게 사라지는 특성을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는 경호에게 소수자성을 부여해 소멸의 이유를 만들어준다면 좀 더 편하게 독자의 납득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물의 단계적 사라짐이 꼼꼼하고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있기에 그 현상의 이유를 보완한다면 더 나은 소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성호, 「아버지는 이케아에서 왔다
희준의 불안정한 가정사와 그가 소수자로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긴장감을 이케아의 침대로 적절히 형상화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는 이케아에서 왔다’라는 제목이 처음부터 독자를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네요. 희준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고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는 것 또한 울음을 숨기기 쉬운 ‘헬멧’을 벗지 않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소설을 구성하는 요소가 대체로 자신의 자리를 잘 파악한 채 납득 가능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이 단편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아버지는 이케아에서 왔다」는 작가가 이야기 안에 심어 놓은 질문의 답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다만 결말의 몇 줄에서 느껴지는 희준의 격한 감정은, 그리고 그가 아버지의 집에서 갑자기 식사를 마무리하고 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장면은 급작스럽습니다. ‘아버지의 집’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아직 자신의 집으로 복귀하지 않은 희준의 상황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그의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좀 더 아버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 뒤 집에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안정적인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희준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며 눈물을 쏟아내기에는 아직 아버지와의 관계 내지는 감정이 단단히 쌓이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석’이라는 인물이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존재감을 잃는 문제도 해결되어야 합니다. 무석에게도 이런 결말(희준의 아버지를 향한 갑작스러운 동정)이 이해될 수 있는지를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신다면 좀 더 균형감 있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단편입니다.

도우너, 「만다린 치킨
‘만다린 치킨’이라는 독특한 음식의 이름으로 독자를 궁금하게 하며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샤넬 귤을 향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려던 만다린 치킨에 불어닥친 위기를 적절히 삽입된 뉴스와 인물의 대사를 통해 드러낸 단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샤넬 귤, 만다린 치킨, 메타플랫폼스(구 페이스북)의 미래형 메타버스 도시처럼 보이는 메타 월드 등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현재의 독자들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익숙한 단어를 사용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소설의 배경에서 가벼운 재미를 느끼며 ‘장사’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의 경중을 따져가는 의미가 있는 단편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소설은, 만다린 치킨을 홍보해 줄 것처럼 등장한 인물인 김정민 작가의 반전 이외에 크고 작은 사회적 이해가 충돌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거시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독자의 마음에 남는 묵직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의도했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네요. ‘만다린 치킨’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독자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설을 써보는 시도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재의 면에서 고려해 볼 만한 지점도 있습니다. 먼저 패션 브랜드의 이미지가 여전히 강한 ‘샤넬’과 귤이라는 과일이 결합했을 때 오는 이질감이 있습니다. 좀 더 ‘귤’이라는 과일을 부각할 수 있는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특수한 고급 과일 상품에 어울리는 브랜드명을 새로 지어 보는 건 어떨까요. 또한 “2052년이 된 지금, 서브웨이에서도 고기 없는 햄을 여덟 종류나 고를 수 있는데” 등 미래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은 좀 더 소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장면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체육이 일상화된 미래에서 육식을 답습하는 식품명인 ‘치킨’이 상용화되는 것이 이해 가능한지도 고려해주세요. 독특한 시도를 한 소설인 만큼 일부 보완을 거친다면 많은 독자에게 더 깊은 의미를 주는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헤이나, 「네버마인드, 지구
지구를 떠나 항해하게 된 기자 지희가 표류한 우주선을 만나는 과정이 개연성 있게 진행되는 소설입니다. 락 음악의 가사를 소설 곳곳에 삽입해 텍스트 안에서 음악성이 느껴지도록 한 것도 이 단편의 매력입니다. 인터랙티브 텍스트의 특성을 살려 링크해 두신 몇몇 곡은 즐겁게 들었습니다. 음악에 취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래를 찾아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네버마인드’라는 제목과 달리 자신의 모행성인 지구에 가벼운 미련을 가진 지희의 마음이 이야기에 은은하게 녹아 있네요. 한 사람의 심리와 그에 따르는 상황을 끈질길 정도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단편이기에 좁은 범위에서 평을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선 우주선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냉동수면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적절한지 의문이 듭니다. ‘노화’나 질병을 걱정해 냉동수면을 하기에는 5년이 조금은 짧게 느껴집니다. 우주 항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명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특히 ‘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만큼 실제 신체의 노화가 이루어진다고 충분히 느껴지는 단위로 (최소 10년 이상) 설정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우주에 항해하던 오래된 기체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지희의 시간으로 30년보다 훨씬 이전의 (지금으로부터 매우 근미래 또는 지금보다도 과거의) 우주선이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지희가 고전이라고 생각하던 음악을 동시대의 가수를 통해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 냉동되어 있었다면 더 흥미로운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꼼꼼하게 써내려간 단편인 만큼 이 소설이 더 넓은 범위의 시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기를 희망합니다. 페니안에서의 사람들은 지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헤이나, 「여전히 인간이 되기에는 멀었다
문단과 그 밖의 경계,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관해 총체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소설입니다. ‘여전히 인간이 되기에는 멀었다’라는 제목을 볼 때 한 사람의 인간됨에 관한 치열한 고찰을 담은 단편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퍼수트로 대표되는 ‘퍼소나’라는 단어와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고민하는 김이현의 캐릭터에서 창작자가 드러내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계성’을 다루는 소설은 언제나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편에 쓰인 김이현의 말투와 그가 놓인 상황, 전반적인 내용의 진행이 마치 일방적으로 비인간 캐릭터 (소설 안에서 퍼리라고 표현된) 팬덤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문단을 비난하고자 쓰인 것처럼 조금은 공격적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문학상이 익명 심사를 하고 있는 등 문단 내에서도 분명한 자정 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그것을 모두 배제한 채 김이현이 단지 유명세를 탄다는 이유로 등단의 기회를 주었다는 등의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표현을 시니컬한 투로 사용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학상을 수상한 대부분 시의 경향을 보았을 때 김이현의 시가 그에 속한다고 보기에도 어렵습니다) 이 소설이 날카로운 이분법적 관점에서 한발 물러나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소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와 시, 소설이 혼재된 단편인 만큼 이 경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면담은 보통 상호 간 예의를 위해 존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중간 삽입된 인터뷰가 사적인 대화가 아니라면 존댓말로 수정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이 글은 소설이기에 김이현에 대한 평론가적 해석 역시 읽기에 불편함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초반 김이현에 대한 소개가 소설보다는 평론의 문장에 가깝기 때문에 이 부분에도 수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평론적 문체가 소설 안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이 김이현에 대한 객관적인 평, 그리고 그가 쓴 실제 시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기보다는 이 독특한 시인이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에 좀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피엔스,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새로운 행성 ‘뉴와이키’에 지구인들이 이주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모든 것에 ‘뉴’를 붙이며 구세대와 신세대, 모행성과 개척 행성을 나누려는 인간의 심리가 거시적인 배경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새 행성으로 먼저 이주되는 사람들은 소수자, 약자, 범죄자로 설정되어 있네요.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본성이 은연중에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생을 위해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는 아롬과 그런 언니의 기억을 잃는 다롬, 그리고 새 행성에서 적응하며 지내는 아롬의 생활이 그럴듯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아롬의 ‘이주 목적’이었던 동생의 존재감이 후반으로 갈수록 옅어진다는 것입니다. 분명 동생을 위해 새 행성으로 옮겨 온 아롬이 뉴와이키의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다롬은 점점 형체를 잃습니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결말에 등장하는 전염병의 발발과 그것의 유행은 뚜렷한 의미를 얻지 못합니다. 이 단편의 이후로 지구의 다롬은 어떻게 지낼까요. 소설을 완독한 독자에게 아롬은 뉴와이키에 전염병을 퍼뜨린 최초의 숙주로만 기억됩니다.
그러나 아롬에게는 다롬이 있고, 아롬은 다롬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혈육일 때 큰 의미를 갖습니다. 작가가 소설의 초반에서 지구에서 떠나는 아롬에게 다롬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죠. 사실 이 소설은 지금의 상황에서 다롬이라는 인물이 없어도 진행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작가가 다롬을 이야기에 넣기로 결정했다면 그의 뒷이야기 역시 놓쳐서는 안 됩니다. 급작스럽게 마무리되는 듯한 후반부의 속도를 조금 줄이고 지구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다롬의 서사를 다시금 소환해 준다면, 새로운 이주 행성에서의 미래 인류를 사실감 있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푸른발, 「언니
「언니」는 자매애를 그리고자 배경을 위태롭게 설정한 소설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을 극단적인 위험으로 몰아넣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문장이 짧고 가독성이 있어 장면을 상상하기 쉽고, 마치 영상 시나리오를 보는 듯 상황과 움직임, 대사가 쉽게 이해되는 단편이었습니다.
다만 직관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이 소설은 마치 독자와 이야기 사이에 하나의 얇은 막을 두는 듯합니다. 독자는 작가가 이야기 뒤에 설정한 전사를 서술자를 매개로 하지 않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디까지 소설로 풀어내야 하는지, 어디까지는 뒷이야기로 남겨둘 것인지를 작가가 균형 있게 선택해야 합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전체 서사의 아주 일부만,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매가 처한 세상은 왜 전쟁을 하고 있는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이 왜 자행되고 있는지, 왜 테러와 무력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야심가”, 또는 군사들의 대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원인이 상황과 배경을 긴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배경이 인물을 움직여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욱 그에 대한 정보가 분명히 선행되어야 합니다.
독자는 이 단편 안에서 주인공이 거주하는 나라(또는 도시)의 지리적 위치, 정치적 상황,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거의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끝내 무력으로 인해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전면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분투하는지.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배경을 쌓아가다 보면 인물이 놓인 공간이 구체적으로 바뀔 것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위치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인물과 배경이 잡힌다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또한 제 의미를 분명히 획득할 수 있겠지요. 분명한 문장이 인상적이기에 이런 세부적인 사항을 보완한다면 독자를 깊이 끌어들일 수 있는 소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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