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5.

-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 몸에서 나온 무기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 나한테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뭘 설명하라는 거예요.

- 저들이 보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가.

- 글쎄요. 날 여기로 보낸 게 누군지 이젠 헷갈리는군요.

 

1.

시아 언니를 만난 건 유난히도 춥고 배고픈 날이었다.

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남자애를 후미진 골목의 담벼락에 처박고 있었다. 그놈이 내 동생이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샌드위치를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이 겨울을 무사통과해 봄을 볼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던 나는 마음속으로 발톱을 갈아대고 있었고, 나보다 큰 놈을 메다꽂아 정신을 잃게 만든 건 그 덕분이었다.

샌드위치를 줍고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 깡이 넘치네. 맘에 들어.

돌아보니 내 또래의 여자가 서 있었다. 샌드위치를 노리는 건가 긴장했지만,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시하고 동생을 찾으러 가려는데 상대가 말했다.

- 잠깐 얘기 좀 할까?

- 몸으로 하는 얘기?

- 아니, 진짜 얘기.

- 사는 게 참 한가한가 봐?

콧방귀를 뀌자 상대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 저녁 사 줄게.

차디찬 바람을 타고 고기 굽는 냄새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발 옆에서 빈 깡통이 구르더니 배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 좋아. 일단 내 동생부터 찾고.

서둘러 골목을 떠나자 상대가 속도를 맞춰 따라왔다. 모퉁이를 돌자 기계경찰들이 경찰차에 건달들을 욱여넣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계들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거리는 부랑자와 고아로 넘쳐나는 걸까?

동생은 편의점 골목의 쓰레기 더미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쓰레기 수거 로봇은 속일 수 없지만 사람은 속일 수 있다. 나조차도 쓰레기봉투로 착각했으니까. 동생은 내 뒤에 선 사람을 보고 더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한데 거리 생활을 몇 년 했더니 사람을 더욱 못 믿고 소심해졌다.

- 괜찮아. ‘착한 언니’야.

- 아아… 안녕하세요.

동생이 쭈뼛쭈뼛 수줍게 웃으며 일어났다. 내가 ‘착한 아저씨’나 ‘착한 언니’에게 뭘 주고 돈을 받는지 모르는 아이였다. 영원히 모르길 바랐다.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온 건 그래서였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엄마의 포주였던 인간이 엄마 대신 일해서 빚을 갚으라며 내 동생까지 끌고 나가려 했다. 울화통이 터진 나는 엄마의 유일한 유산인 빈 술병으로 놈의 얼굴을 후려갈긴 후 동생을 들쳐 업고 도망쳤다. 이후 우리는 거리의 아이들이 되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상관없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착한 언니’는 우리를 햄버거 가게로 데려갔다. 그곳은 너무나도 아늑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엄마와 단둘이 햄버거를 먹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가 구청에 근무할 때였는데, 그때 그곳과 같은 체인점이었다. 그땐 그래도 직원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자동화돼 있었다. 실은 기계가 직원이라 봐야겠지.

망할 기계. 빌어먹을 자동화. 엄마가 구청에서 잘린 것, 그런 일밖에 할 수 없었던 것, 동생을 지우려 한 것. 기계들과 자동화 때문이었다. 기계들이 사람의 자리를 잠식해가는 세상에서 엄마는 우리의 미래를 걱정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 그러다 엄마는,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내가 기계에 둘러싸인 채 홀로 분투하리라는 걱정에 내 동생을 낳기로 결심했다.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매장의 주문접수는 각 좌석에 부착된 단말기에서 이뤄졌고, 음식의 제조와 서빙은 로봇들이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버튼 몇 개를 누른 다음 손바닥을 대서 결제를 하는 게 다였다. 가게의 손님들은 말끔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무슨 일들을 하고 있을까? 기계에게 빼앗기지 않는 일이란 뭘까?

그동안 ‘착한 언니’는 햄버거를 세 개 주문했다. 밝은 곳에서 마주한 그녀는 동그란 눈매가 영민하고 앙증맞은 콧방울이 앳돼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수많은 흉터들이 거리 출신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착한 언니’는 내 시선을 의식하고 쌩긋 웃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 나를 동생이 빤히 쳐다봤다.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다행히 로봇이 와서 햄버거를 놓고 갔다.

나와 동생은 감사 인사를 내뱉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생존에 관해서라면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말라는 게 내 신조였다. ‘착한 언니’는 우릴 가만 바라보더니 햄버거를 두 세트 더 주문했다. 두 번째 햄버거는 꽤나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포장지와 빈 컵만 남자, 방금 전까지 당당하던 ‘착한 언니’가 별안간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근처 테이블은 해자라도 파 놓은 듯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우릴 오물 쳐다보듯이 하던 사람들이 코를 막고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도 ‘착한 언니’는 몸을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 너희들 뉴와이키 알지?

뜬금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뉴와이키는 화성 근처의 관문을 통해 갈 수 있는 머나먼 식민 행성이었다. 희소 광물의 보고, 노동자 천국, 광대하고 저렴한 땅. 사람들은 금맥을 찾겠다며 뉴와이키 행 우주선에 올라탔고,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3년 전, 뉴와이키는 지구에 헐값으로 자원을 납품하는 일에 넌더리가 나서, 지구에서 강요한 독점 공급 계약을 멋대로 파기하고 다른 항성계들과 거래를 틀었다. 지구의 높은 사람들이 화가 난 것은 당연지사였다.

지구는 뉴와이키를 침공했고, 뉴와이키는 군사력이 강한 어느 항성계와 동맹을 맺고 병력을 지원받았다. 지구는 연이은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하다 9개월 전 뉴와이키와 종전에 협상했고, 그 후 뉴와이키로부터 과거의 몇 배의 가격으로 자원을 수입하다 불황과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 거기 이민 가려고 직업 훈련 받는 중인데….

무슨 얘길 하려는 건가 의아한 한편,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 것, 이 미친 기계 천국을 떠나는 것, 모두 부러운 일이었기에. 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 훈련소에서 애들을 모으고 있는데, 훈련비가 무료야. 숙소도 제공해주고. 관심 있어?

당연하지! 아니, 이건 분명 사기다. 가난한 자들에게 최후의 보루였던 자선단체와 복지정책마저 자취를 감춘 세상에서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한단 말인가.

- 뉴와이키 정부가 지원하는 거야.

- 왜?

- 뉴와이키 대통령 알지?

- 그 빨갱이 두목?

뉴와이키 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을 무단 선포한?

- 말조심!

‘착한 언니’가 콧등을 찡그렸다. 누가 들을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듣기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 빨갱이가 아니라, ‘뉴와이키 민중의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단결 투쟁하는 노동자 연맹’이야.

- 그게 그런 뜻이었어?

- 완전히 다른 말이지. 뉴와이키는 여기랑 달라. 대통령 공약이 그거였어. 아무 일이나 기계한테 맡겨버리지 않겠다. 사람이 할 수 없거나 위험한 일만 맡기겠다. 연맹이 의회를 장악해서 법을 바꾸고 기계를 갖다 버렸지. 기계의 주인들도 쫓아버리고.

그 일로 전 지구가 떠들썩했다. 높은 사람들은 뉴와이키 대통령과 연맹을 도둑놈의 자식들이라고 욕했다. 저쪽에선 홍길동이니 로빈 후드니 하는 모양이지만.

- 그래서 우리 같은 애들을 데려가는 거야. 일손이 부족해졌거든. 어때?

나는 동생을 보며 고민했다. 땟국이 줄줄 흐르는 가엾은 모습을. 머리 밑에 득시글대는 이, 입가에 달고 있는 부스럼, 옷은 주워 입은 거라 상의는 꽉 끼고 바지는 헐렁했는데 그나마도 홑겹이라 겨울을 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내 좌석 단말기에 손바닥을 대고 개인 계좌 잔액을 조회했다. 포주가 엄마에게 지운 빚이 (-)를 달고 떠올랐다. 지구의 어딜 가든 따라붙을 족쇄였다. 하지만 지구를 떠나면?

내가 관심을 보이자 ‘착한 언니’는 조건이 있다고 했다. 뉴와이키 공기가 지구보다 희박하기 때문에 그곳에 적합한 체질인지를 피검사로 알아보는데 합격해야 받아준다는 거였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준다니 최소 며칠간은 주린 배를 안고 얼음장 같은 보도블록 위에서 잠들 일은 없었다.

- 시아라고 해.

‘착한 언니’가 손을 내밀었다. 언니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힘이 넘치는 손이었다.

- 난 아롬.

- 난 다롬.

대화 내내 나한테 찰싹 붙어 있던 동생이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시아 언니는 우리 손을 양손에 꼭 잡고 웃었다.

- 아롬다롬?

- 아롱다롱 이쁘게 살라고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야.

- 그래. 아롬아, 다롬아. 환영해. 너희가 합격하길 빌어.

시아 언니가 환하게 웃었다. 쏙 들어간 볼우물이 사랑스러웠다.

 

두 시간 뒤, 우리는 허름한 원룸 건물에 들어와 있었다. 거리의 아이들이 득시글거려 악취가 뿜어져 나왔지만 괜찮았다. 지붕과 음식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간호조무사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팔뚝을 내밀고 피를 뽑은 뒤 건물 안에서 빈둥거렸다.

아이들은 흥분한 상태였다. 무료로 직업 훈련을 시켜주고 뉴와이키로 보내준다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와 화성 사이에 있다는 그 웜홀이 아니라 이 지저분한 원룸이 신세계로 가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피검사에 불합격한 애들은 도로 거리로 내몰릴 텐데, 이 일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을까? 소문이 퍼지면 높은 사람들이 뉴와이키를 더 싫어하게 될 텐데 이민 가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나?

시아 언니는 커넥톰 재설계라는 것으로 기억을 지우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 애들 모으려고 돌아다니다가 전에 만난 애들을 또 본 적이 있는데, 날 기억 못 하더라. 자꾸 친한 척을 해서 떼어내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거리의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데. 사실만 지우고 감정은 남는 건가? 안쓰러운 한편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기억을 맘대로 주무르다니? 내 눈에 떠올랐을 반발심을 시아 언니는 차분하게 바라봤다.

- 나도 첨엔 별로였어. 하지만 생각해 봐. 그게 애들한테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이미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을 더해주는 게 좋은 일일까? 어쨌든 시아 언니는 그걸 알고부터는 한 번 갔던 동네는 다시는 안 간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 온 시아 언니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선택했다. 깡이 맘에 든다고 했지. 가슴이 다시금 콩닥거리더니 문득 서늘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시아 언니를 잊어버렸을까? 그 아이들의 가슴은 아직도 두근댈까?

시아 언니는 9개월 전부터 아이들을 모으며 약무보조원 과정을 밟아왔고 3개월 뒤에 떠나게 돼 있었다. 뉴와이키에서 다시 만나면 좋으련만, 내 피검사 결과가 불합격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언니를 다시는 못 보게 된다. 기억도 지워질 거고. 하지만 언니에 대한 내 감정은 남겠지. 난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그리움에 빠져 살 테고. 나는 꼭 합격하게 해 달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올렸다.

 

내 피검사 결과는 합격이었다. 동생은 불합격이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모집 책임자라는 아저씨는 유전학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훈련소에 들어오라는 말만 했다. 솔깃했지만 싫다고 했다. 동생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자 아저씨는 불합격 된 애들이 나가고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 뒤에도 우릴 붙잡아두고 설득했다.

- 거리의 아이들 말이다, 평균수명이 스무 살도 안 된다는구나.

- 저 스물 한 살인데요.

- 평균 말이다. 평균.

- 죄송해요. 수학시간에 졸아서요.

아저씨는 화를 낼 줄 알았건만, 차분히 다음 말을 고민하기만 했다. 존경스러웠다. 다른 어른들은 거리의 아이들을 대할 때 이러지 않는다. 화를 내든가 멸시한다. 아저씨의 다음 말을 듣자 그의 태도가 이해가 됐다. 피검사에 합격한 애가 얼마 안 된다며 내가 훈련소에 꼭 들어와 줬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 너희 중에 하나라도 잘 돼야 되지 않겠니? 네가 동생을 지키려 해 봤자…

나는 아저씨가 우리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떠들도록 내버려두고, 시아 언니에게 뭐라고 작별 인사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위탁 가정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 괜찮은 델 알아봐주마. 동생을 거기 맡기고 네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은 다음 데려가면 되지 않겠니?

- 괜찮은 위탁 가정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죠.

거리의 아이들 중 상당수는 학대받거나 앵벌이를 강요당하는 생활을 못 견디고 위탁 가정을 나온 애들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비참한 인생이 얼마나 다양하게 비참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 다 그런 건 아냐. 우린 훌륭한 위탁 가정을 파악해뒀어. 네 동생 하나쯤 그런 가정에 배정시키는 건 문제도 아니고.

아저씨는 강한 자신감을 풍겼다. 이쪽 정부에 유능한 스파이들을 심어둔 모양이었다. 뉴와이키 정부의 능력이 이 정도라니, 새삼 감탄스러웠다. 시아 언니를 계속 보게 되리라는 기대가 앞섰지만 흥분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 다롬아, 언니는 아저씨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질문 아닌 질문이었다. 동생은 천진하게 답했다.

- 언니랑 떨어져 있는 건 싫지만, 다시 올 거니까.

언니 다시 올게. 여기 가만있어. 동생과 떨어져 있어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하는 말이었다. 처음엔 저항이 심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부터 적응을 시키자 동생은 이제 몇 시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늘 약속을 지킨 덕분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럴 거다.

남은 건, 동생의 기억을 지우는 문제였다. 나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물론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우는 게 좋겠다고 했다. 왜냐면 뉴와이키는 뜬소문으로만 아는 미지의 세계였으니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 못 했고, 그렇더라도 어떤 고초를 겪게 될지 몰랐다. 동생을 정말 데려갈 수 있을지, 언제 데려갈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에 대한 기억을 남겨놓는다면 동생은 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 애가 타서 병이 나지 않을까?

동생은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울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당장 우리를 떼어놓기라도 하는 듯이.

- 말도 안 돼! 어떻게 잊어버려! 언니를 어떻게!

동생은 눈물콧물을 쏟으며 난리를 쳤다. 그럴수록 나의 확신은 더해갔다. 나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 강한 채로는 낯선 가정에 적응할 리 만무했다. 나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고 냉정하게 말했다.

- 알았어. 그럼 언니 이민 안 갈게.

죄책감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동생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건 동생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 몸 하나 살려두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어린 동생까지 챙겨야 한다는 게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혼자 몸으로 우릴 키웠던 걸까? 말년에는 술에 찌들어 살긴 했지만, 그래서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거리 생활을 해 보니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남자들이 올라타는 와중에 우리를 걱정하는 삶에 염증을 느꼈을 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테고, 어쩜 엄마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우리가 미웠을 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술에 의존한 게 아닐까….

나는 이 비루한 곳을 떠나고 싶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생활에 집중하려면 동생이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동생과 내가 서로에 대한 그리움에 매몰돼 현실에 충실하지 못 한다면 우리가 뭘 하든 죽도 밥도 안 될 터였다.

동생은 큰 울음을 한바탕 쏟아내더니 내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안쓰러운 와중에 안도감이 퍼져나갔다. 그런 내 자신이 증오스러워, 시아 언니가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도 모른 체 했다.

나는 훈련소의 커넥톰 재설계실 앞에서 동생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 건강해야 해. 금방 데리러 올게.

- 언니도 건강해. 그리고 나, 언니 안 잊어버릴 거야.

하지만 두 시간 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문을 열고 나온 동생은 나를 알아보지 못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착한 언니’에게 그럴 때처럼 수줍게 웃는 것이었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미소로 화답하며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기억이 제대로 지워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 반가워. 이름이 뭐니?

- 권다롬이요.

- 예쁜 이름이네.

- 저희 엄마가 좋아하는 단어에서 따온 거예요.

- 무슨 단어?

- 아롱다롱이요. 아롬이라고 지을까, 다롬이라고 지을까 고민하다 다롬으로 결정했대요.

동생의 기억에서 내가 삭제됐다. 하지만 동생은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감정만은 남은 게 틀림없었다. 가슴이 미어지다 못 해 조각조각 떨어져나갔다. 순진한 미소를 더 이상 마주하기 힘들어 돌아서려는데 동생이 물었다.

- 영화 정말 재밌었죠?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했다.

- 이걸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무슨 영화를 말하는 걸까. 동생이 본 건 나도 빠짐없이 봤는데.

- 정말 재밌더라. 근데 제목이 뭐였지?

- 이너스페이스요. 엄마랑 극장에서 봤었거든요.

커넥톰 재설계라는 게 영화를 보면서 하는 거였나? 어쨌거나 그 영화는 어느 날 밤 엄마가 고객의 호출을 받고 나갔을 때 TV에서 방영한 것으로, 동생과 내가 함께 본 것이다. 그때 우리는 엄마가 돌아와 우리가 깨어 있는 걸 보고 호통 칠까 봐 문소리에 한 쪽 귀를 기울이며 영화를 봤었다. 그 시각에 엄마가 손님에게 구타당해 머리가 깨지고 있던 것도 모르고. 다음날 늦잠을 자던 우리는 기계경찰이 깨우는 바람에 소스라치며 일어났었다.

동생의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다니. 고마워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까.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2.

나는 가사도우미 양성 과정에 들어갔다. 재미와는 거리가 먼 시간이었다. 이런 건 기계한테 맡기지 왜 사람 손으로 하는 거냐고 투덜댔지만 답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 해서 배웠고, 게을러질 때면 동생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덕분에 3개월 뒤에는 각종 가전을 뜯어 먼지를 닦은 뒤 완벽하게 조립해 놓고, 꽉 막힌 배수구를 30초 만에 뚫을 줄 아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 일을 고른 건 3개월 과정인데다, 고물가 때문에 뉴와이키와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어서였다. 출발이 무산될까 봐 불안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시아 언니와 같은 이민선에 오르게 됐다. 이민선은 와이키언 호스(Waikian Horse)라는 이름의 구닥다리 크루즈선이었는데 관광객이 아닌 이민자로 채워져 있었다.

관문까지 보름, 관문을 통과하는데 1주일, 관문에서 뉴와이키까지 열흘이 걸리는 기나긴 항해였다. 나는 시아 언니와 한 객실을 썼다. 침대가 두 개였지만 우리는 한 침대에서 부둥켜안은 채로 아침을 맞이했고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전부가 아니라 대부분이었던 건 매일 받는 사상 교육 때문이었다.

사상 교육은 뉴와이키 영화나 드라마로 이뤄졌는데 가상현실 장비를 걸치고 콘텐츠 속의 감각들을 직접 느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토리의 일부가 되어 캐릭터들과 부대끼다 보면 뉴와이키언(Newwaikian)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어서 인기 있는 시간이었다. 종일 영화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뉴와이키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직업 훈련을 받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부모와 조국조차 돌아보지 않는 아이들을 이름만 들어본 외계행성이 입양하려는 것이다. 훈련소 사람들은 엄했지만 무섭지 않았고, 아이들의 일탈이나 반항에도 놀라운 참을성을 보였다. 그때부터 뉴와이키언은 우리의 선한 동포였다.

그런 분위기는 ‘연맹의 아이들’이 부추기는 것도 있었다. 연맹의 아이들이란 시아 언니를 비롯한 초창기 훈련생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었는데, 그들은 ‘연맹’과 뉴와이키 대통령을 틈만 나면 찬양했기에, 나는 그 대통령이 푸근하고 너그러운 삼촌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연맹의 아이들은 시아 언니를 빼앗아가는 다른 이유였다. 그들은 인솔 책임자를 중심으로 매일 모였는데 그는 승무원들을 제외하면 그곳에서 유일한 남자였다. 뉴와이키 정부는 남자애들도 데려간다고 했는데 왜인지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을 한 공간에 두는 적이 없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그런 걸까?

시아 언니가 물어보니 인솔 책임자가 내놓은 답변이 황당했다. ‘너희는 뉴와이키언 속에 완벽히 녹아들어야 해. 이민자끼리 결혼하는 건 실패한 이민이거든.’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남의 결혼 계획을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습지만, 원래 사람은 끼리끼리 모여 사는 법이다. 뉴와이키의 도시들 이름이 왜 뉴베이징, 뉴파리, 뉴나이로비이겠는가.

우린 그가 고루하다며 웃었다. 성별 분리 정책은 곰팡내만 풀풀 풍길 뿐이었다. 나와 시아 언니는 장밋빛 미래를 ‘함께’ 그리고 있었으니까. 많은 애들이 그랬다. 다들 봄을 맞은 나비처럼 들떠 있었다.

 

와이키언 호스가 뉴와이키 궤도에 안착했다. 우리는 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하며 몸수색을 꼼꼼히 받았다. 쇠붙이는 물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물건은 모조리 압류 당했다. 지구의 보수단체들이 관광객이나 이민자로 위장하고 와서 테러를 해댄다는 거였다. 입국 심사도 까다로웠지만 훈련소에서 서류를 잘 준비해준 덕분에 한 명도 빠짐없이 지상으로 내려가는 궤도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는 내내 맞닥뜨린 뉴와이키언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쉴 새 없이 인사하고 농담을 던졌다. 어수선했지만 맘에 들었다. 내가 살던 거리가 풍기던 무기적인 정연함과는 판이했기에. 그곳은 기계들이 도시의 질서를 유지했는데, 여기선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기계음과 쇳가루가 아닌 숨소리와 땀내로 가득한 이곳. 나는 뉴와이키와 사랑에 빠지리라 예감했다.

하지만 이민국에 도착한 우리는 예상치 못 한 난관을 만나 당황하고 말았다. 우리가 날아오는 동안에 직장 배정이 끝난 데다 직장이 뚝뚝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신서울의 어느 청소업체로, 시아 언니는 뉴밴쿠버의 어느 대형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이민국에서는 배정된 직장을 거부하면 이민을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직업 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인력 분배의 형평성을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거였다.

빨갱이들. 순간 욱하고 말았다. 그러다 곧, 아직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죄스러웠다. 이제는 이곳이 조국인 것이다. 여자를 구타해 죽였는데도 ‘플레이’였을 뿐이니 상해치사라며 3년형을 때리는 저곳이 아니라.

이민국에서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이별해야 했다. 하지만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여유가 생기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 현지의 연락수단을 갖추지 못 했기에, 각자가 가게 될 도시와 직장의 이름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것 말고는 서로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항공권을 들고 뿔뿔이 흩어지며, 이제부터는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에 몸서리쳤다. 게이트에 다다를 즈음에는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신서울로 향하는 항공기에 몸을 실으며 승무원의 산뜻한 미소를 마주하면서부터는 세상의 끝에서 홀로 서 있는 듯 아찔하고 위태로운 감각에 시달려야 했다.

그날 햄버거 가게에서처럼, 시아 언니의 손과 동생의 손을 잡고 싶었다. 두 손이 허전하기만 했다. 그 텅 빈 느낌은, 내가 낯선 도시와 사람들 사이에서 힘겹게 뿌리를 내리는 동안 쉬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왜냐면 무슨 수를 써도 시아 언니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가게 된 병원에서는 직원의 개인 정보를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고 했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며 모은 돈을 들고 간 흥신소는 시아 언니가 그 병원을 나갔다는 소식만 물어왔을 뿐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의 재회를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관문을 봉쇄해 버렸다. 지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타개할 목적으로 재침공을 고려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었다. 대통령은 발 빠르게 군사동맹을 강화한 뒤, 관문 앞 검문소에 병력과 무기를 잔뜩 배치했다.

그 소식을 듣고 사지가 뜯겨나간 느낌이었다. 그날은 뉴와이키에 온 지 1년 되는 날이었다. 나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박혀 울었다.

다음날부터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샘도 영혼도 빈껍데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채로 일을 나갔다. 꾸역꾸역. 일은 미래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일 뿐이었다. 일을 하면 생각이 비워지고, 생각이 비워지면 마음이 고요했다. 그래서 나는 일만 했다. 음식으로 충전하는 청소로봇이나 마찬가지였다. 1년 뒤 영을 만날 때까지도 그랬다.

 

3.

영은 가구였다. 그냥 그렇게 정해버렸다.

내가 그의 집을 청소하는 동안 그는 휠체어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인사말만 대충 주절거리고 그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고 답답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죽은 것 같아서였다. 물론 가까이 가보면 가슴이 들썩이고 있었다. 일하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 성가신 고객이었다. 그래서 정해버렸다. 가구라고.

처음 발을 들인 날, 그 집은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사방에 먼지가 뽀얘서 걸음을 디딜 때마다 재치기가 터져 나왔다. 유일하게 말끔한 곳은 영의 방 침대 정도였다. 다른 방 중 하나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나머지 둘은 침실이었는데 세 방 모두 긴 시간 방치된 듯 눅눅한 냄새가 났다. 그런 집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은 영이 아니라 그의 사회복지사였다.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일의 범위를 정했다.

가장 넓은 거실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거실 벽에는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역시나 먼지가 두터웠다. 액자를 닦으며 나는 그 집의 누군가가 죽었음을 깨달았다. 먼지 쌓인 방들의 주인이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남자 둘과 나이든 남자 하나가 있었다. 나는 젊은 남자 중 하나를 기억해냈다. 그는 영화배우로, 내가 이민선에서 좋아했던 영화의 주연이었다. 영화는 기계들이 일하고 사람은 기본소득을 지급받아 놀고먹는 세상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우울과 무기력을 그린 것이었는데, 남자는 금속 박스를 걸치고 기계로 위장해 일을 하며 생의 의미를 되찾았다.

뉴와이키 도착 후 나는 그가 ‘연맹’을 열렬히 지지하던 배우였음을 알게 됐고, 다음 해에는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가 영이었다.

영은 사고로 형과 아버지, 그리고 몸의 오른쪽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그들은 밤늦게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영의 형이 운전을 했고, 영이 조수석에, 아버지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들을 뒤에서 따라오던 트럭이 덮쳤다.

블랙박스 분석 결과 트럭은 과속에다 차선을 넘나들고 있어서 졸음운전을 의심받았다. 운전사는 부인했으며 오히려 영의 차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주장했는데, 마침 영의 가족이 그날 저녁 식사 때 술을 마신 정황이 포착돼 쌍방과실로 결론 났다. 영은 술을 마신 사람은 자신과 아버지만이고 형은 분위기 맞추느라 한 모금 정도 입에 댔을 뿐이라고 했지만 한 모금 마신 건 음주가 아니냐며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지구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자율주행차는 음주운전, 졸음운전, 과속 전부 하지 않으니까.

과거에 전 행성을 아울렀던 자율주행시스템을 부활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 많았지만 잠깐이었다. 운전자에 대한 교육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는 목소리가 더 컸기에. 이후 영화계와 정치계는 영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이런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영이 워낙 유명했던 탓에 교통사고의 무서움이 대중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영이 미디어에 계속 노출됐다면, 자율주행시스템을 버린 것이 크나큰 실수였는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주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단절 당한 영의 심정을 나는 이해했다. 나 또한 동생이 있는 세상과 단절됐으니까. 그래서 그가 나를 청소로봇처럼 취급해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어차피 나도 스스로를 청소로봇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내가 그 집을 변모시키는 대과업의 달성을 앞둔 날이었다. 나는 목요일마다 그 집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묵은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묵은 때를 닦았다. 과업은 완전히 마치지 못 했다. 영의 휠체어 아래와, 예의상 청소기를 들이밀지 않고 남겨둔 주변 바닥에 여전히 먼지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먼지는 그가 얼마나 같은 자리를 고집했는지 알려주는 증거였다.

망설임 끝에 다가가 물었다. 그는 가구가 아니었기에.

- 다 치웠는데 한 군데가 남았습니다. 마저 치워 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창문 좀 열겠습니다’, ‘창문 닫겠습니다’ 외에 내가 그에게 한 첫 말이었다.

영이 놀라서 쳐다봤다. 말하는 고양이를 본 사람처럼. 그가 나를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멍하니 날 보다 허둥지둥 바퀴를 굴려 물러났다. 수동 휠체어였다. 한 손으로 쓰기에는 힘겨워 보이는데 그걸 고집하는 건 기계 혐오 때문일까? 바닥을 닦는 내내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러 있음을 의식했다. 지금껏 무시하더니 왜 이제 와서? 역시나 성가신 고객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딱 한군데가 남았다.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영의 휠체어 바퀴였다. 저대로 집안을 돌아다니면 내가 흘린 땀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청소기 솔을 바꿔 바퀴의 먼지를 제거했다. 영은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긴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영을 씻겨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사도우미와 사회복지사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오묘했다. 다 마치자 영이 눈을 떴다.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 많이 불편하셨죠?

- 아녜요. 덕분에 집이 환한걸요. 감사합니다.

그가 미소 지었다.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사람이 웃기만 했을 뿐인데 집에 불을 밝힌 것 같았다. 문득 뺨이 달아올랐다.

- 별말씀을요. 그럼 이제 창문 닫겠습니다.

서둘러 돌아서자 그가 말했다.

- 나중에 제가 닫을 테니 바람 좀 쐬세요. 많이 더우신 것 같은데.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더위로 받아들여준 것이 고마웠다. 더욱 고맙게도 그는 차가운 주스를 꺼내 따라주었다.

- 이렇게 꼼꼼하신 분은 처음이에요. 다들 보이는 데만 치우고 가셨거든요. 제가 세탁기 뒤나 찬장 같은 데는 못 볼 줄 아셨나 봐요.

스피커가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내 고막으로 전달되는 목소리. 이제는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눈앞의 그가 현실임을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다.

- 아… 예전에도 도우미를 부르셨군요.

- 누가 와도 성에 안 차서 한동안 아무도 안 불렀어요. 청소 상태가 맘에 안 든다거나 다시 해 달라거나 그런 말 못 하겠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이 집에 드나드는 것도 솔직히 불편하고요. 그렇다고 직접 해 보려니….

영이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내려다봤다. 반쪽이 마비된 몸으로는 청소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청소 로봇은 인공지능의 부활과 사물인터넷의 재확산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규제로 더 이상 생산되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한 정부와 연맹이 때때로 고지식하고 고압적이라고 느껴진다. 특히나 관문을 봉쇄한 결정에 대해서는. 아니, ‘고압적’은 상당히 점잖은 표현이다. 나는 그 결정을 누군가의 목을 졸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다.

영이 이해를 구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느닷없는 분노를 털어버리느라 조금 더듬거려야 했다.

- 혼자서, 다 하실 필요 있나요. 저는… 저도 그래요. 청소 말고는 젬이라….

영이 빙긋했다.

- 지구에서 오신지 얼마 안 됐나 봐요.

- 그렇긴 한데, 티가 많이 나나요?

- 아뇨. 단지… 뉴와이키에서 자란 사람은 ‘청소 말고는 개떡이라’ 이러거든요.

개떡? 상스러운 어감에 인상이 찡그려졌지만 꽤나 감칠맛이 난다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 우리 조상들이 지구에서 온 수형자들이다 보니 거친 말들이 꽤 남아 있어요.

- 처음 들어봤어요.

뉴와이키의 영화나 드라마를 꽤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데….

- 요즘 사람들은 병손이니 발손이니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나는 사고를 당하고 편마비가 와서 운전 병손이 됐어.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나는 따라 웃을 수도, 동정할 수도 없어 당황했다. 병손이라니, 개떡보다 훨씬 별로였다. 기계를 버리고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는 강박과, 그러다 보니 재주가 부족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비하하길 주저 않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모른다는 사실에 민망해야 할지 뿌듯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근 2년간 수다를 떨어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거의 없었다. 청소는 혼자 하는 일이었고, 고객들과는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고, 일이 끝나면 기진맥진한 몸을 집까지 끌어다 놓는 것조차 겨우 해내고 있었기에.

영이 문득, 조심스럽게 물었다.

- 가족 분들도 함께 오셨나요?

- 아뇨. 동생이 있는데….

데려올 방법도, 만날 방법도 없다. 지구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도 몇 백 년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곳이 돼 버렸으니까. 오랫동안 느끼지 못 한 뻐근함이 가슴을 관통했다. 영은 내 애통함을 눈치 챈 듯 했다.

- 언젠가는 지구와 화해하고 관문이 다시 열릴 거예요.

- 그렇겠죠….

뉴와이키는 타 항성계들과 다방면으로 교류를 늘리며 독립 행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와는, 글쎄…. 나는 그저 예의상 동의했을 뿐이었다.

- 성급하고 극단적이었어요. 모든 게.

말하는 영의 시선이 내가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혁명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니, 놀라웠다. 정부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자칫하면 그에게 동조하고 연맹에 맞서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를 다시 의식한 그가 물었다.

- 성함을 안 여쭤봤네요. 저는 선우영이에요.

- 저는 권아롬이에요.

- 이름도 예쁘시군요. 저희 집 잘 부탁드릴게요.

단골이 되어주겠다는 거로군. 일솜씨가 맘에 드는데다, 이름과 가족사항을 알아냈으니 이 정도면 불편한 사이는 아니라고 판단한 걸까? 그나저나 이름‘도’ 예쁘다니?

 

다음 목요일부터 영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작업을 구경하거나 업계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일이 끝나면 주스나 커피를 대접하며 조곤조곤 떠들곤 했다. 상실감에 빠져있을 거란 건 내 짐작일 뿐이었는지? 그는 활력이 넘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아님 나의 등장이 그를 우울의 늪에서 건져 올린 걸까?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점차 편안해졌고, 급기야 목요일은 내가 가장 고대하는 날이 되었다. 『어린왕자』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그에게 ‘길들여진’ 셈이었다. 그가 나에게 ‘길들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는 내가 이민선에서 좋아했던 그의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내 감상을 듣는 그의 얼굴엔 줄곧 씁쓸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 그걸 찍은 게 벌써 3년 전이군요. 3년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아니, 3년까지도 필요 없어요. 어떤 사건 하나만으로 180도 바뀔 수 있어요.

혁명을 향한 관점이 뒤집혔다는 명백한 선언이었다. 누가 듣고 있을 것만 같아 위축됐지만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에게는 그의 생각과 마음이 중요했기에.

- 사고… 때문인가요? 영 씨가 혁명을 다시 보게 된 게….

그는 그렇다고 하더니 돌연 고개를 저었다.

- 다 제 잘못이에요. 형이 피아니스트였거든요. 운전하다 손 다칠까 봐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럴 일 절대 없다고 떠밀었어요. 그때 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인간은 주인의식을 되찾아야 한다. 운전은 주인의식을 기를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다. 기계에게 나를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기계를 지배해야 한다.

그는 흥분한 듯 몸을 들썩였다.

- 아니, 솔직히 말할게요. 매번 제가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어요. 아버지는 평생 자율주행차만 타셨기에 운전대 잡는 걸 겁내셨고, 형은 손가락 걱정하느라 면허증만 겨우 딴 상태였거든요. 그게 답답하기도 했고, 저도 한 번쯤은 편하게 술 마시고 남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싶었어요.

영은 괴로워하는 얼굴이 되었다.

- 그날 제가 우기지만 않았더라면, 형 옆에서 졸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애초에 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탄식하며 왼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우는 건지 울음을 참으려는 건지 그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 영 씨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진심이기도 했다. 그가 한 일은 내가 동생을 천애고아로 만들어버린 것에 비하면 잘못이라 부를 만 한 게 없었다.

관문이 봉쇄된 후 나는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그 어린것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그러다 그 모든 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무심하게 굴러가는 이 거대한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고, 세상이 구르는 속도나 방향을 바꿀 힘은 전혀 없노라고. 그 구동력을 못 이겨 부서지거나 떨어져나가도 세상은 굴러가느라 바빠서 돌아볼 여유가 없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 식으로라도 나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살아가려면. 너무나 보잘것없고 실낱같기만 한 희망이지만, 혹시라도 관문이 다시 열리면, 동생을 다시 만나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헌데 그는 어떤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할까. 형과 아버지가 사는 세상으로 통하는 관문은 그가 죽는 순간에야 열릴 텐데. 가슴이 먹먹해진 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 오른팔이었다. 촉각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잡았다. 저세상에 한 발을 들인 듯한 그의 모습이 두려웠다. 저세상을 더듬고 있을 그 손을 나는 꼭 붙잡아 이 세상으로 끌고 나오고 싶었다.

영이 고개를 들더니 자신의 오른팔을 잡은 내 손 위에 왼손을 포갰다.

- 고마워요. 이런 얘기… 아롬 씨가 처음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이런 얘기는 아무한테나 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해하고 위로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상대가 아닌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위로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상실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그들이 안타까움이 아닌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그 증거다. 게다가 연맹과 정부를 비난하는 부분은 표면적인 이해조차 바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돌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연맹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될 작정이었고,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 언제든 말씀하세요. 다 이해하니까요.

나는 동생을 어떻게 버리고 왔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매우 가슴아파하며, 관문은 다시 열릴 거라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위로했다. 확신에 가까운 말이었다. 믿음은 나한테도 옮아왔다. 그날 밤 자려고 누울 때까지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관문은 다시 열릴 거라는 그의 목소리가 감미로운 노래가 되어 귓전을 간질였다.

 

다음 주 목요일에 영이 물었다. 청소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는데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시간이 없다고 망설이자 그는 괜찮다고 했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알아서 배울 것이라는 거였다. 나는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그 다음 주 목요일. 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또래인 남녀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더니 내 머리에도 카메라를 씌워주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날 따라다니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대화로 보건대 분명 그 친구가 아니었다. 그 친구는 부끄럼이 많은 성격인가? 왜 직접 와서 보질 않는 걸까? 그날은 영이 간식거리를 사러 나가서는 내가 떠날 때가 다 돼서야 돌아와서 얘길 거의 나누지 못 했다.

다음 주에 영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할 것이 있다고 했다. 청소 일을 배운다는 친구가 기계라는 거였다. 거의 완성됐다고. 내가 놀라자 그는 미리 말하지 않아 미안하다며 내가 그 일에 동참한 것으로 비치면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돼 그런 거라고 했다.

- 그 친구들과 그런 일을 하는 건… 남한테 일일이 부탁하고 눈치 보는 상황이 싫어서예요. 운전을 예를 들어보면요. 저 같은 사람이 운전할 수 있는 차를 회사들은 만들지 않아요.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까요. 정부는 운전사를 고용하라 말하겠죠. 비용도 지원해준다고 하고요. 하지만 한밤중에 드라이브를 하고 싶으면 어쩌죠? 요리는요? 소박한 집밥조차 직접 해 먹으려면 전 매번 사람을 불러서 부탁을 해야 해요. 설령 입맛에 안 맞아도 감사하며 먹어야 하고요. 그런 게 저는 너무 번거롭고 불편한 거예요. 정부는 또 말하겠죠. 직접 운전도 하고 요리도 하고 싶니? 몸을 잘라. 의체를 만들어줄게.

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기술이 이만큼 발달했지만 죽은 신경세포를 살리는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어요. 저는 움직이는 팔다리를 얻으려면 반 기계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영이 겪었을 것들을 나는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걸 느껴왔으니까. 이 정도면 나도 뉴와이키 사람 다 됐네, 라고 여길 때마다 튀어나오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 언어 확장팩을 뇌에 다운로드 받지 않는 이상 그 간극은 늘 존재할 테고, 그러는 한 나는 영원히 이방인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영과 나 사이에는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간극은 물론 고객과 가사도우미라는 간극도 없다고 생각해왔다.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 그럼 저는 더 이상 안 부르시는 건가요.

- 네, 이제 그 친구한테 맡겨보려고 해요.

명치에서 알싸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다른 고객에게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는 느껴본 적 없는 감각.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 알겠습니다. 그럼.

청소도구들을 챙기려 일어서자 영이 휠체어를 굴리며 다가왔다.

- 아롬 씨, 그런 뜻이 아니라….

그는 나를 붙잡으려는 듯 왼손을 들었다 놓았다 안절부절 못 했다.

- 전 아롬 씨와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이렇게 편안한 느낌은, 이렇게 죄책감 없이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전 아롬 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집이 아롬 씨한테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즐겁고 편한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아롬 씨, 원하시면 언제든 오셔도 돼요. 아, 물론 불편하시면 밖에서 봬도 되고요. 연락만 주시면 언제든 나갈게요.

영의 눈망울은 주인의 손길을 구하는 강아지처럼 반들거렸다. 나는 가슴을 후벼 파던 쓰라림을 잊고 웃음 짓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럼 일요일에 찾아봬도 될까요, 라고 묻자, 영은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일요일은 영과 나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야구 중계를 보기도 하고,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고, 피아노를 뚱땅거리기도 했다. 그날도 우리는 젓가락 행진곡을 쳤다. 내가 영에게서 배운, 생애 처음 배운 피아노곡이었다. 내가 반주를, 영이 멜로디를 맡았다. 영은 손이 커서 왼손만으로 멜로디를 칠 수 있었다.

띵띵띵 띵띵띵, 땅땅땅 땅땅땅. 건반이 춤추기 시작하자 어깨가 절로 들썩여졌다. 몇 마디나 지났을까? 돌연 영의 템포가 빨라졌다. 오오, 질 순 없지. 나는 더 빨리 쳤다. 영은 더욱더 빨리 쳤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며 경쟁하듯 두들겨댔다. 음과 음이 뒤엉키고 손과 팔이 엇갈리고 연주가 엉망이 되었다. 급기야 서로의 연주를 방해하며 대치하던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피아노에서 물러났다. 매번 하는 장난이었고, 장난 끝에 찾아오는 것은 짜릿한 전율과 카타르시스였다.

- 한 번 더 칠까요?

건반에 손을 올리고 돌아봤다.

- 잠깐만요, 아롬 씨. 지금 양배추인형 같아요.

영이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가리켰다. 광란의 연주 때문에 헝클어진 것이다. 피식거리며 머리를 매만지니 그가 말끄러미 응시했다. 나도 그를 바라봤다. 맑고 따뜻한 눈동자를. 내 인생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이토록 가까이 마주하는 것은 그가 네 번째였다. 엄마, 동생, 시아 언니, 그리고 영.

그의 눈빛에서 어떤 갈망을 읽었다고 느낀 순간,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던 내가 사라졌다. 그의 시선은 옆으로 축 늘어진 오른손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게 놔둘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살며시 돌려 입을 맞췄다. 입술과 혀가 부드럽게 맞부딪히고 그의 왼손이 허리를 감아오고 나는 그의 어깨를 둘러 안았다. 영원 속에 갇힌 듯 입술을 탐닉하던 그가 문득 고개를 숙였다.

- 미안해요, 아롬 씨. 나 같은 반쪽 인간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고개를 들어 나를 보게 했다.

- 나는 영 씨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요.

영혼의 무게를 규정하는 것은 몸이 아니니까. 나는 영을 만나고 그걸 깨달았다. 영과 평생을 함께하리라는 확신이 온 것도 그때였다. 오랫동안 빈껍데기였던 우리의 마음에 무언가가 단단히 차오르고, 그 무언가는 몸이라는 장벽을 넘어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거였다. 일요일과 영과 나.

그렇다고 시아 언니를 잊은 건 아니었다. 영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득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도 잦아졌다. 헤어질 때 살덩어리를 떼어내는 것만 같았던 아픔은 점점 사그라져 희미한 잔상만 남았지만 언니가 잘 지내는지 알고 싶다는 염원만은 강렬했다. 그럴 때마다 자답한다. 당연히 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밝고 적극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어쩜 지금쯤 관리자로 승진했을지 모른다. 나보다 멋진 여자를 만나 고양이와 강아지를 네 마리나 키우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도 잘 있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시아 언니와 영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언니로부터 축복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날은 결국 오고야 말았다.

 

4.

영과 함께한 지 8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식을 올렸고, 이사를 했고, 아이를 가져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일 테지만 괜찮았다. 우리에겐 ‘꾸미’가 있었기에.

꾸미는 나에게 청소를 배운 그 기계의 이름이었다. 원통형의 몸과 돔 모양의 머리, 네 개의 길고 유연한 팔과 무한궤도로 이뤄진, 칭찬삼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해맑게 웃는 귀여운 아이였다. 처음엔 청소만 했지만 우리가 가르친 덕분에 요리는 물론 운전도 할 수 있었다. 운전은 밤에만 시켰고 사람처럼 옷을 입혀야 했지만 영은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꾸미가 집안일을 도맡아준 덕분에 우리는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해 작은 성공을 거뒀고, 영은 연기 학원을 차렸는데 수강생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었다. 그가 어두운 기억을 떨치고 문을 열고 나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물론 꾸미의 공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꾸미 덕분에 집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났으니까. 정부는 왜 이런 것에 눈을 감으려 할까?

꾸미가 즐겁게 아침을 차리고 영과 나는 느긋하게 기다리며 신문기사를 뒤적이는 것은 우리의 전형적인 아침 풍경이었다. 그날 나는 어느 광고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최루탄의 연기 속에서 제 손을 잡아주신 분을 찾습니다. 우리는 OOOOOOOO일 오후 OO시청 앞에서 지구와 기계들의 압제를 몰아내자며 시위 중이었지요. 최루탄이 터져 그곳이 지옥으로 변했을 때 당신은 바닥을 뒹굴던 저를 OO빌딩 화장실로 데려다주셨습니다. 찬물로 제 얼굴을 씻겨주신 당신은 제가 존함도 여쭙기 전에 다른 동지들을 구하러 달려 나가셨지요. 하지만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붉은 재킷만을 기억합니다. 이 광고를 보신다면 OOO-OOOO-OOOO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평생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왔습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뒤늦게나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영은 꽤나 낭만적이라는 평을 내리고 흥미를 잃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상하게 문장 하나하나가 맘속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처럼 느껴졌다. 저런 시위가 벌어질 당시 나는 뉴와이키에 있지도 않았는데.

다음날부터 나는 불현듯 그 시위 현장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 최루탄 발포 소리, 뿌연 연기, 사방에서 터지는 기침. 누군가가 괴로워하며 쓰러졌고,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는 내 옷 소매가 붉다…

언젠가 본 영화 내용이었던가? 아니다. 내 과거였다. 광고를 낸 사람은 나를 찾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 시위 현장에 나는 있었다. 나는 결국,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냐고 자문하면서도 광고의 전화번호로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러고 나니 후련했다는 점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나는 시아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고 온종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 했다.

언니는 병원을 그만두고 학자금대출을 받아 약대를 졸업한 후 제약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우리는 영상통화를 했는데 어린 아이들이 자꾸 끼어들어 방해를 받았다. 언니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언니의 남편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언니가 이민선에서 좋아한 영화의 주인공과 닮은 인상이었다.

- 그렇지? 보자마자 반했어. 하는 일도 비슷해. 기계활동감시본부 소속이야. 너는? 선우영 닮은 남자 만났어?

뭔가가 어긋나며 끽끽대는 이명이 들려왔다. 우리는 이민선에서 영화에 대한 얘기는 나눴어도 배우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드물다. 특히 남자 배우에 대해서는. 하지만 이제 와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 순간을 고대해오지 않았던가. 나는 선우영을 닮은 남자가 아닌 선우영과 결혼했다는 소식으로 언니를 즐거운 충격에 빠뜨렸다.

- 믿겨지니? 우리가 완벽한 뉴와이키언이 됐다는 게.

내 예상과 아주 다른 모습이었지만 언니는 행복해 보였다. 나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걸까? 하지만 언니의 아이들이 자꾸 끼어드는데다 언니가 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물어볼 기회를 자꾸 놓치고 말았다. 나중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자, 침울한 기분이 해일이 되어 휩쓸고 지나갔다.

잊을 만하면 덮쳐대는 파도였다. 영과 함께하는 기쁨, 동생과 시아 언니를 잃어버린 슬픔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파동들. 그 울렁거림은 시아 언니를 되찾자 도리어 심해졌다. 행성 반대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언니는 행복했다. 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내 동생은? 나는 동생이 잘 지내는지는 고사하고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은 영이었다. 그는 지구와 기계에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새로운 정치조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돕고 있었고, 여론을 조금이라도 환기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관문을 열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이틀 뒤, 뉴밴쿠버에서 택배가 날아올 때까지만 해도.

택배 발신인은 시아 언니였다. 상자 안에는 조그마한 캡슐과 함께 메시지가 동봉돼 있었다.

잘 지내? 희박한 뉴와이키 공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걱정이네.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고산병 치료제 보낼게. 효과 좋아. 숨쉬기가 훨씬 편해질 거야.

뉴와이키에 와서 호흡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두통과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 저절로 좋아졌는데.

캡슐을 들여다볼수록 기이한 느낌에 목구멍이 스멀거렸다. 의문의 광고를 보고 내가 한 행동, 이어진 시아 언니와의 통화, 언니가 보낸 맥락 없는 메시지. 이 모든 게 불과 일주일 안 되는 시간동안 벌어졌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곳에서의 삶이 제 궤도에 오른 지금? 별안간 숨이 가빠왔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욕지기가 올라왔다. 오래 전에 앓았던 고산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고산병으로 고생하던 내가 약을 사 먹고 낫는 모습이었다. 언제 어디서 그런 걸 봤지? 영화에서 봤던가? 난 그런 약을 먹은 적이 없는데.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있었던 것 같다. 같은 게 아니다. 분명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고산병으로 고생할 때 나는 그런 약을 사 먹었다. 이것과 똑같이 생긴 캡슐이었다.

불가항력의 유혹이었다.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도 없이 캡슐을 삼켜버렸다. 목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시원한 느낌은 잠깐이었다. 나는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흘 뒤에 열이 내리자 보름이 넘도록 기침이 나더니 전신에 수포가 돋아나 가라않질 않았다. 이상 증상을 호소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뉴와이키언의 태반이 새로운 병에 시달렸고, 그 중의 반은 열이 내리지 않아 죽었다.

그 중에 영이 있었다. 나한테 옮은 것이다. 영은 내가 회복세에 접어들 무렵 열이 올랐는데 진행이 너무 빨랐다. 한밤중에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영은 그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는 그의 임종도 지키지 못 했고 장례도 치러주지 못 했다. 정부가 팬데믹을 막겠다고 이동과 모임을 금지한 탓이었다.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발 누가 장난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내 몸을 지옥불에 던질 테니 그를 다시 살려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지만 천사도 악마도 찾아오지 않았다.

영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야 했을까.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죽었다. 아니, 내 덕에 형과 아버지와 재회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아아, 아프고 나니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다.

아니, 분명 나 때문이다. 정부는 신서울에서 벌어진 팬데믹이 나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초기 감염자들이 내가 만난 직원들, 고객들, 영과 그의 수강생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단독범이 아니었다. 팬데믹은 전 행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시작이 모두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10년 전에 몇 개의 우주선을 나눠 타고 왔고 그 중 하나가 와이키언 호스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뉴스 보기를 포기해버렸다.

어느 날 정부 요원들이 나를 잡아갔다. 나는 그들이 우리가 설립한 정당과 꾸미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그러니까 이민자들이 무기를 지니고 왔다는 거였다. 우리 게놈에 포함된 특정 DNA코드가 활성화돼 바이러스로 변했다고. 그것은 오래 전에 인류의 일부를 감염시킨 뒤 긴 세월을 잠자고 있었던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자로, 정부는 우리 몸속에서 어떠한 나노봇의 잔해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그 DNA코드를 전사해 레트로바이러스를 부활시켰고 그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킨 거라고 한다.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뉴와이키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였다고? 그렇다면 훈련소에서 피검사를 한 것은 그 DNA를 갖고 있는지 알아내려 한 건가? 훈련소는 뉴와이키가 아니라 지구 정부가 운영한 거였나? 시아 언니가 준 캡슐에 나노봇이 들어있었나? 언니는 알고 있었을까? 언니가 죽어서 확인할 길이 없다. 언니의 가족들도 죽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진실을 알게 되다니, 진즉에 영을 따라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뉴와이키는 죽음의 행성이 되었다. 뉴와이키와 거래하던 항성계들은 물론 군사동맹을 맺은 곳들도 병력을 철수시키고 관문을 봉쇄했다.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의료시스템이 붕괴하고, 사회가 무너져 내렸다. 거리에도, 병원에도, 관문 앞 검문소에도 환자와 시체가 넘쳐났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관문을 지구는 가뿐히 열어젖히고 침공해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휘청대는 정부를 무너뜨린 뒤 귀중한 자원을 유유자적 쓸어가는 것이다.

영, 당신 말대로 관문이 열렸어. 하지만 우리가 바란 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네. 당신이 이 꼴을 못 봐서 다행이야.

비난의 손가락이 우리를 향한다. 우리가 타고 온 이민선이 트로이 목마라고 한다. 지구의 흑심을 모르는 정부가 순진하게 목마를 받아들여 뱃가죽을 갈랐다고 한다. 그 뱃가죽을 비집고 나온 우리가 지구의 첩자라고 한다. 더 심한 말도 들었다. 우리를 중세시대 공성전 때 투석기로 성 안에 날려 보내던 흑사병 시체에 비유한 것이다.

아아, 그날 시아 언니를 만나지 말았더라면. 따라가지 말았더라면. 동생을 데리고 그곳을 나왔더라면. 그랬더라면… 영은 결코 못 만났겠지…

 

5.

- 이제 아셨겠지요. 전 첩자도 아니고 무기도 아니고 흑사병 시체도 아니에요. 당신들을 낚으려는 미끼에 불과했어요.

- 그건 우리가 판단한다.

- 판단 결과는요?

그들은 내 앞에서 꾸미를 해체해 껍데기만 남겼다.

- 지구인들은 감염될 일이 없다. 기계만 보내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의 우주선에 이 로봇을 잠입시킬 것이다. 안에 당신을 넣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끝까지 이런 식인가.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가 기괴한 형태로 현실이 되다니. 영과 내가 키운 아이를 깡통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나는 분을 참지 못 하고 그들을 노려봤다.

- 맘대로 해봐요. 어떻게 처신할지는 내 맘이니까.

- 걱정하지 않는다. 기억을 바꿔놓을 거니까.

그들은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곳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이민선에서 영화를 볼 때 썼던 가상현실 장비였다. 모든 것이 맞물려 들어갔다. 우리는 영화를 본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세뇌당한 것이다. 광고를 보고 연락한 것, 캡슐을 삼킨 것, 세뇌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영을 만난 것도 그랬던가? 그와 사랑에 빠진 것도? 그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들은 나를 의자에 앉혔다. 병으로 쇠약해진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 했다. 헬멧이 머리에 씌워지자 동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너무도 그립지만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 이대로 가면 난 동생부터 만날 테고 동생을 제일 먼저 감염시키게 될 거예요. 동생이 죽은 걸로 기억을 조작해 줄 수 있나요? 그 정도 선처는 해 줄 수 있잖아요.

그들은 의견을 나누더니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했다. 기계가 가동되고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다.

영이 떠난 지금, 동생은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다. 하지만 동생마저 죽은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전문청소용제 중에는 인체에 위독한 것이 많다. 우주선에서 나는 그것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관문을 열 것이다. 동생과 영이 기다리는 우주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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