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취소선 둘째

2022.08.24 13:2108.24

둘째 

 

맨 처음 사라진 것은 위층의 네 살 먹은 남자아이였다. 어쩐지 층간소음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엄마가 말했다. 며칠 여행이라도 간 줄 알았다고.

“그런데 이상해. 그 부모들, 아이를 찾지도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부모들은 마치 처음부터 둘째가 없었던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누구요? 작은 아이요?”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엄마는 내려야 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란 걸 내게 확인받으려 하셨다. 자기가 치매에라도 걸린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엄마가 동네 가십거리를 또 하나 생산하시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윗집 첫째 아이를 만나고 나서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 점심시간에 유치원 건물 앞에서 햇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다가 그 집 첫째 아이가 미끄럼틀을 타며 노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았겠지만 이틀 전에 엄마가 했던 말도 있고 해서 아이에게 다가가 너네 동생은 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섬뜩했다. 말간 얼굴로 “저는 동생 없는데요.” 대답하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뭐? 눈썹 위에 볼록한 상처, 그, 그거 니가 블록 던져서 생긴 상처라고, 아직도 기저귀를 못 떼서 너네 엄마가 걱정하시는 그, 그, 너랑 하나도 안 닮고, 너네 할아버지 닮았다고 너네 엄마가 싫어하는 그, 그 동생, 있잖아!”

나는 당황한 나머지 병설유치원 임 선생님이 학부형 상담 내용이니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던 내용을 몽땅 발설했다.

“그런 동생 없는데요?”

그 애는 내가 자기를 유괴라도 하려 한 것처럼 경계하더니 뒤로 물러나 유치원 건물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 이틀 뒤에 정후가 사라졌다. 정후는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의 말썽꾼으로 걸핏하면 여자아이들을 때려 울리는 - 교사로서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 심성이 약간 뒤틀린 아이였다. 정후는 연년생 형이 있는 아이로 그 형인 정하는 5학년 전체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될성부른 싹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아이였다. 형제가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러니 정후는 잊으려야 잊을 수도, 모르려야 모를 수도 없는 아이였는데, 아무도 정후가 사라진 것을 몰랐다. 나조차도 3교시가 끝날 무렵에서야 알아차렸다. 평소보다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섬뜩한 기분에 찬찬히 교실을 둘러보던 내가 소리쳤다.

“누구 정후 본 사람? 정후 오늘 안 왔나?”

아이들은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같은 소리를 두 번이나 더 하고야 반장에게서 정후가 누구냐는 대답을 들었다. 정후는 출석부에서도 입학기록에서도 교실 뒤 상벌점판에서도 사라져 있었다. 점심시간에 5학년 교실 쪽으로 뛰어가 정하를 찾아 물어봤는데, 역시나 정하는 자신에게 그런 동생이 없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내가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4학년 교사들에게 정후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도 한결 같았다. 정후가 대체 누구예요?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정후를 알고 있었다.

“아, 니가 말하던 그 말썽꾸러기 말이야? 걔는 사고 안 치는 날이 없다며?”

나는 엄마 손을 붙들고 발을 굴렀다. 체기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도 기억하는구나. 내가 미친 게 아니구나. 그런데 왜 다들 정후를 모른 척하지? 그제야 나는 위층 둘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애도 정후처럼 사라져버린 게 틀림없었다. 엄마와 나는 고민하다가 카레를 한 솥 끓이고 파김치를 무친 다음, 음식을 반찬통에 나눠 담아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아래층에서 왔다고 하자 위층 여자가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혹시 층간소음 때문에 올라오신 거면, 저희 집 아니에요. 우리 애는 계속 학원 가 있다가 방금 들어왔거든요.”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반찬을 좀 많이 해서 나눠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저 죄송한데, 오늘은 애 아버지가 늦는 날이라서요. 뉴스에서도 요즘 층간소음 문제로 아래위층 간에 불미스러운 일도 많고 한데, 문 앞에 두고 가시면 안 될까요?”

아니, 이렇게까지 경계할 건 뭐냐고, 내가 분통을 터뜨리려는데 눈치 빠른 엄마가 내 손을 붙들더니 “그럼 다음에 아저씨 계실 때 얼굴 한 번 뵈어요. 반찬은 문 앞에 둘게요.” 하고 나를 끌고 내려왔다. 엄마는 우리가 이전에 항의한 것들 때문에 그런다고, 우리 쪽 잘못도 있으니 양해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추론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둘째의 존재를 깡그리 잊은 사람이 어떻게 둘째가 태어나고 생겨났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단 말이지?

윗집 둘째가 태어났던 쯤에 나는 고시생이었다. 초등 교사처럼 여자한테 좋은 직업이 없다고 엄마와 아빠가 등 떠밀어서 재수까지 해서 교대에 들어갔지만, 임용시험이 바늘구멍이었다. 정부에서는 매년 줄어드는 초등입학생 규모에 맞추어 교사 임용 정원을 대폭 줄였다. 천운으로 임용고시에 붙었다 해도 발령이 나기까지 거의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들이 고시생들 사이에서 돌았다. 매해 임용 경쟁률은 높아지고 발령 대기는 길어질 거라고 했다. 그 와중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언제까지 고시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생활비를 누군가는 벌어야 했으니까. 그때 나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천장에서 들리는 묵직한 소음은 나를 공황상태로 몰아가곤 했다. 농구 드리블을 집에서 하는 거야 뭐야? 나는 참다못해 위층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어서 벨을 서너 차례 더 눌렀고, 한참만에야 문틈 사이로 부스스한 얼굴이 나타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다.

“아래층인데요, 정말 너무 시끄러워서….”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너무하세요. 초인종 누르지 말라고 쓰여 있는데, 글씨 안 보이세요?”

그때야 나는 대문에 붙은 쪽지를 발견했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초인종 누르지 마시고 조용히 노크해 주세요.’ 그래서 나는 그 집에 둘째가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됐다. 멀리서 희미하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 사라졌는데, 그건 나를 괴롭히던 그 소음이 집안에서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뒤꿈치로 바닥을 찍으며 거실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서너 살 아이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나는 우는 여자를 향해 둘째아이 보느라 첫째는 방치하는 중이시냐고 쏘아붙이고, 온갖 교육학 지식을 쏟아낸 다음에 집으로 내려왔다. 그 후로 위층 여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만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감정이 있다면 그 사건도 기억하고 있다는 소리고 그럼 둘째아이는 당연히 태어났어야 했다.

 

며칠 뒤, 우리 반의 또 다른 둘째아이가 사라졌다. 늘 레이스 달린 원피스만 입는 통통한 여자아이였는데, 정후처럼 기록에서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아무도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위층 부모들을 어떻게 만날까 고민했다. 임용시험에서 열다섯 문제나 찍어서 맞춘 나의 직감에 의하면, 모든 비밀은 그 집을 캐면 풀리게 돼 있었다. 그렇지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뭘 들고 가봐야 지난번 같은 취급을 받을 테고, 빈 반찬통만 우리 집 대문 손잡이에 걸어놓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친밀해질 방법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웠다. 급기야 엄마와 내가 화장실 환풍구를 따서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방법까지 의논했을 때, 경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지야, 나 좀 이상해. 지금 와줄 수 있어?”

그러고 보니 금요일이었다. 지난해부터 대구 지방 출장소에 발령받아 근무 중인 경호와 나는 주말에나 데이트를 했는데, 금요일 밤에 갑자기 와달라고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호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매사에 내 사정을 먼저 챙겨서 어떨 땐 좀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경호의 목소리가 침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기차를 타고 바로 대구로 내려갔다. 경호는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나를 만나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까지 가는 내내 오른손을 계속 외투 주머니에 찌른 채였다. 그 와중에도 젠틀하게 내 가방을 왼손으로 받아 챙겼다.

“오른손은 왜 그래?”

내가 묻자 경호 얼굴이 흐려졌다. 별일 아니라고, 집에 가면 말해주겠다고 했다. 집에 가서 보니 별일이 아닌 게 아니었다. 경호 오른손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매끈하게 손목에서 팔이 끝나 있었다. 그건 사고로 잘리거나 선천적 기형으로 태어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정성스럽게 디자인한 작품 같았다. 신이 태초에 설계한 인간은 손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미학적으로 완벽했다.

“아니! 이게 뭐야!”

내 고함에도 그는 큰 반응 없이 눈썹만 좀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답답함에 화가 치밀었다. 언제부터냐 물으니 이틀 됐다고 했다. 병원에 가봤냐고 하니 가봤는데 엑스레이 촬영 결과 손은 원래 없었던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손을 왜 찾느냐고 의사가 묻더란다. 그래서 좀 황당하고 불편하지만 왼손으로 업무를 처리했단다.

“이 꼴을 하고 그냥 회사를 다녔단 말이야!”

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고 2년째 연애만 하고 있는 건 순전히 그의 이런 면 때문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소개팅으로 만났다. 내가 임용에 합격하자마자 엄마는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딸아이가 중매시장의 1등급 직업을 얻었으니 남자를 소개해달라는 전화였다. 사실 나는 엄마가 그때 정말 내 신랑감을 구했다기보다 내가 임용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더 컸다고 본다. 그런데 고모가 엄마에게 자기가 아는 집 아들이 이번에 공사 시험에 합격했다면서 둘이 만나면 딱 좋겠다며 중매를 자처했고, 나는 설득과 강요에 등 떠밀려 그 자리에 나갔다. 설득과 강요에 등 떠밀려 나온 것은 경호 쪽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경호는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퇴사를 말리던 나도 나중에는 그냥 해버리라고 짜증을 냈는데, 그는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었다. 엄마도 고모도 결혼하면 변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쪽을 믿는다. 순서가 반대여야 했다. 경호가 변한다면 나도 결혼할 용의가 있었다.

나는 경호에게 병가를 쓰도록 했다. 주말이 지나면 병가를 올리라고 하자 경호는 병가 사유를 뭐라 쓰냐고 난감해 했다. 경호에게 일단 ‘정형외과적 사고로 인한 업무 불능’이라고 쓰고 나중에 진단서는 의사와 상의해 결정하면 된다며, 상세하게 해야 할 일들을 지시했다. 그는 내가 시키는 일들을 왼손으로 스마트폰에 저장해 넣었다.

“니가 와 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가 웃었다. 그 특유의, 봄에 트는 첫 움 같은 미소였다. 찬바람 한 번이면 똑 떨어질 것 같은 힘없는 미소. 내가 없으면 어쩔 거냐고 따지고 싶은 애처로움이 그에게서는 뚝뚝 묻어났다. 내 발목을 잡는 건 경호의 이런 면들이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나는 “이래서 너랑 결혼을 못 해.” 하고 쏘아붙였다. 경호는 또다시 웃었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경호의 마음을 안다. 경호는 나에게 청혼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는 언제나 퇴사를 고민하고 있고 그래서 책임질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같이 밥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섹스를 하고 잤다.

 

위층에 도청장치를 설치하자는 우리 모녀의 논의는 일주일째 답보 상태였고, 일주일 사이에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열네 명이나 사라졌다. 모두 둘째들이었다. 드디어 나 외에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교사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레지스탕스들처럼 학교 구석진 곳에 은밀히 모여 사라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답이 없었다. 공적으로 어딘가에 말하면 우리만 정신병자 취급당할 분위기였다. 우리는 사라진 아이들이 어떠했는지, 어떤 얼굴이었고 어떤 말투를 가졌고 어떤 버릇을 가졌고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사가 말했다.

“그런데 남겨진 애들에 대해서는 왜 말을 안 하죠? 걔들도 변했던데요.”

모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교실로 돌아가 아이들을 유심히 보았다. 과연 남겨진 첫째들도 변했다. 남루하고 후줄근한 옷차림이던 한 아이는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었고 학습 태도도 좀 좋아졌다 싶었다. 반면에 어떤 아이는 전보다 피곤해 보였고 기운이 없었다. 그런 아이는 말했다.

“엄마가 학원을 너무 많이 보내요.”

학원에 가는 게 좋다는 아이도 있었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집에 혼자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저녁을 사먹는다며 지갑에서 파란 지폐를 꺼내 보였다. 다들 첫째가 아니라 외동이 되어 있었다.

외동으로 크는 게 어떤 것인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유치원으로 급하게 나를 찾으러 온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걸으며 큰소리로 엄마 욕을 하던 일이다. 미리 연락하면 좀 좋냐고. 늘 이런 식이라고. 그러나 엄마는 나를 하원시켜 줄 돌보미들이 갑자기 그만둘 때마다 할머니 욕을 했다. 하나뿐인 손녀인데, 남의 손 안 빌리고 자기가 거두겠다 하실 만도 한데 정말 독하다며. 좀 더 자라서는 엄마가 가스와 보일러, 식칼이 든 싱크대 문짝에 테이프를 붙이고 나가던 기억도 난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단속하고 일하러 나가려는 것이었다. 테이프가 떨어져 있으면 혼낼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나는 엄마나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케이블 티브이를 보았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티브이다.

엄마는 중소기업 경리부에서 일했고 40대에 명퇴를 당하셨는데, 그 회사에서 기혼 여성이 그만큼 버틴 사람은 엄마 혼자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출산 휴가도 육아 휴직도 보장받을 수 있고, 아이들이 집에 올 시간이면 퇴근해 집에 올 수 있는 직업, 그러면서도 절대 여자라고 잘릴 일 없는 직업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런 직업이야 선택의 여지없이 뻔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교대에 갔다. 엄마의 설득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니 자식도 외동으로 만들래?’였다. 나는 내 자식은 외동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안 낳았으면 안 낳았지.

그래, 사실 나는 안 낳을 작정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애를 낳는 건 죄를 짓는 일이다. 걔들의 미래야 뻔하니까. 기후 위기로 엉망이 된 지구환경에, 양극화에, 반지성주의에, 극단주의가 판치는 세상. 그런 곳에 무책임하게 생명을 떨굴 수는 없다. 제 밥그릇 정도는 가지고 태어나는 세상도 아닐뿐더러, 밥그릇만 있으면 되는 세상도 아닌데.

낳게 되면 외동이 아니라 둘은 낳겠다던 결심도 흔들린 지 옛날이다. 형제자매가 의지처가 되는 세계는 이제 판타지에 가깝다. 예전에 경호에게 형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본 적 있다. 경호는 비교 당하는 대상이 늘 앞서가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경호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주중에 통화할 때는 왼손으로 사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병가가 끝나가고 있는데 오른손은 계속 없어진 상태여서 난감해 했다. 나는 금요일 저녁에 대구로 가서 그의 집을 청소해주고 전자렌지용 음식만 먹으며 버틴 그를 위해 식당에 가서 신선한 것도 좀 사 먹였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경호의 발이 없어졌다. 다음 주 출근이고 뭐고 당장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나는 경호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는 일을 반나절 하고는 짜증이 나서 1.5리터 빈 패트병을 줘버렸다. 그는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패트병 뚜껑을 따고 소변을 봤다. 그 뒷모습을 보며 참담한 심정으로 고민하다가 그를 데리고 서울 집으로 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경호가 자기 식구들에게는 도저히 그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발도 없이 어떻게 혼자 있을 거냐고 내가 따졌을 때 경호는 입을 꾹 다물고 손목의 시보리만 잡아당겨 늘였다. 경호를 그렇게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는 경호의 운동화 안에 양말을 말아 채워 넣고 경호의 뭉툭한 발목과 운동화를 붙여 청테이프로 감아 버렸다.

“가자, 서울로.”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경호를 한쪽 어깨에 메고 큰 캐리어를 끌면서 지하철을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기차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다가 경호 발에서 운동화가 부러져 나가 내가 운동화를 주워온 게 두 번, 남자 화장실에 따라 들어갈 수 없어서 화장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린 게 두 번, 자리가 없어서 노약자석에 앉은 경호에게 화를 낸 노인이 두 명, 잠든 경호 손바닥 위에 천 원을 올려놓고 간 시민이 한 명 있었다. 우리는 KTX 좌석 위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경호는 울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울기에 모른 척했다. 알아봐주길 바랐다면 나를 보고 울었겠지.

엄마는 경호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놀랄까봐 미리 말하지 않고 갔는데, 말을 안 해서 더 놀란 것 같았다. 평소에 아들처럼 생각한다고 늘 말해왔던 것처럼 엄마는 서둘러 경호를 위해 죽을 끓였다. 장은 멀쩡한데 왜 죽을 끓이냐고 내가 핀잔을 줘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여독이 풀린 경호가 내 방에서 곤히 잠든 걸 보고 나서는 내 옆구리를 찔러서 안방으로 데려갔다. 엄마는 문을 닫고 바깥 기척을 살핀 다음 말했다.

“야, 피임해라. 결혼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할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월요일에 병가를 연장하려고 회사에 전화를 건 경호는 자신이 입사한 적도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의 인사기록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엄마는 저녁 식탁에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저녁 먹고 다 같이 티브이를 보는데 엄마가 카톡을 넣었다.

‘경호네 연락해라. 데리고 가라고.’

나는 화난 이모티콘을 보내고 경호가 직접 연락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문자를 입력한 다음, 엄마를 노려보았다.

그날, 경호의 그것이 사라졌다. 경호가 울었다. 나도 난감했지만 숨을 고르고 경호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했다.

“긍정적이야. 적어도 한센병은 아니잖아. 그 병은 그게 제일 나중에 없어진다더라고.”

별로 위로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경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더 크게 울었다.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호가 여러모로 시원찮은 애인이긴 해도 그거 하나는 잘했는데…….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허망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에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 성적 행위를 하는 데 그것이 꼭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건 생식을 위한 기관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우린 아이도 안 가질 거였는데 뭐.

경호는 이제 무릎까지 남은 다리와 손 없는 팔뚝과 형체는 없고 감각만 남은 거기와 멀쩡하고 쓸모 많은 혀가 들어 있는 온전한 머리를 한 채, 이불 밑에 누워 내가 퇴근하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사는 낙이라곤 나밖에 안 남은 사람 같았다.

경호가 퇴근한 나를 향해 버둥거리며 애정을 갈구하는 그 일주일 사이에 아이들이 열일곱 명 사라졌다. 교무회의에서 어째서 학생 수에 맞지 않게 이렇게 선생들이 많은 것이냐는 이야기가 교장과 교감의 입을 통해 나왔다. 기간제 교사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다들 사색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고모와 전화로 대판 싸웠다. 고모가 자신은 경호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조카 중매를 서 놓고 남자에게 탈이 나니까 발뺌하시는 거냐고 엄마가 따졌고, 고모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사람 잡지 말라고 맞섰다. 경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위층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금치를 무쳐서 쪽지와 함께 문 손잡이에 걸어두었고, 외가에서 보내온 양파와 감자를 문 손잡이에 걸어두기도 했다. 고맙다는 쪽지와 빈 반찬통이 우리집 대문에 걸려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경호가 음식을 거부했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결혼도 안 한 애인에게 기저귀 갈게 시키는 게 자존심 상해 그러는 줄 알았다. 거기가 없어서 소변은 보지 않았지만 대변은 봐야 해서 기저귀를 채워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래. 좋아. 그럼 먹지 말고 죽어. 어차피 출생기록도 곧 사라질 텐데.”

내가 신경질을 내며 죽그릇을 탁 내려놨을 때, 경호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늘 형과 비교하며 기를 죽여 키워서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굳는다던 경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너, 혹시….”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경호는 처음부터 엄마를 보러 가고 싶었다. 처음 오른손이 사라졌을 때부터 말이다. 그러나 스스로 전화해 오른손이 없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좀 더 눈치가 빠르고 섬세한 성격이었다면 처음 경호가 연락했을 때 경호 부모님께 대신 연락을 해줬을 것이다. 경호 엄마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며 전화를 끊지 않게 중재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뒤늦게 눈치챈 나는 차근차근 그의 마음을 물었다. 경호는 내가 묻는 말들을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 질문에 이르러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보러 갈래?” 경호 목이 어찌나 맥없는지 바람에 꾸벅이는 마른 풀 같았다.

나는 휠체어를 장만해서 경호를 그의 본가에 데려가기로 했다. 경호네 집은 경호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집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경호는 기억을 더듬어 조부모님 집을 기억해냈다. 인천의 구시가지에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한 집이라 골목 어귀에서 택시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경호의 형을 만났다. 나는 너무 놀랐다. 전혀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호 형을 딱 한 번 만난 적 있었다. 내가 아는 경호 형은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였는데, 말끔하고 단정한 차림새를 하고 표정이 딱딱하고 우울한 사람이었다. 굉장히 속물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경호 말에 의하면 나와 헤어진 뒤에 내 옷차림을 평하면서 중산층도 안 되는 집에서 자란 모양이라 했단다.

그랬던 그가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하고 귀에 피어싱을 다섯 개나 한 차림으로 편의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경호도 그를 못 알아보고 지나칠 뻔했는데, 피를 나눈 사이는 확실히 달랐다. 경호가 “준호 형!” 하고 반사적으로 외쳤다. 자기 이름을 들은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지만 경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휠체어를 밀며 뛰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백수였다. 내가 점심을 사준다고 하니까 경계하면서도 졸졸 따라왔다. 나이 사십이 가까운 사람이 강아지처럼 의존적이었다. 그는 치킨을 혼자 한 마리 해치우고 낮술로 맥주를 마셔가며 가족사를 술술 털어놓았다. 자기에게 동생은 없지만, 엄마가 동생이 생길 뻔한 적이 있다는 말을 하긴 했단다. 그때 이혼을 결심할 때여서 아이를 지우고 이혼했다는 것이다. 간단히 약 한 알이면 낙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대목에서 나는 경호의 표정을 살폈다. 예상 외로 경호는 슬프거나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내가 준호 씨에게 우리 사정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마다 경호는 미리 눈치 채고 헛기침을 해서 내 입을 막았다.

이혼한 엄마는 결혼 전에 몸담았던 영화계로 돌아갔다.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다가 영화 비평도 했고 근래에는 사설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영화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 시대 여자로 그런 경력은 흔치 않다며 자기는 정말 엄마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의 저서와 사진이 실린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주었다. 나는 내가 사주는 치킨을 뜯고 있는 주제에 어깨가 올라가 거들먹거리는 그의 태도가 눈꼴사나웠다.

“그래서 준호 씨는 지금 뭐하세요? 직업이?”

그는 자기가 영화감독이라고 했지만, 대표작이 뭐냐고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편영화 두 편을 얘기했는데, 어느 영화제를 검색해야 이름이 뜨냐고 물으니 대답을 우물거렸다.

“그래서, 장편은 없으세요?”

내가 집요하게 묻자 그는 맥주 500을 원샷 하더니 곧 입봉할 거라고 했다.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것도 입봉하면 끝낼 거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왠지 친근감이 든다며 이렇게 놀다가 저녁까지 같이 먹자고 권했지만, 나는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혹시 다음에 어머님을 만날 수 없겠느냐고, 우리가 영화 쪽에 관심이 있어 그런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자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자리를 정리하는 눈치인데도 맥주를 기어코 한 잔 더 시켰고 일어서며 한 번에 들이켰다. 치킨 집을 나와서는 택시 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나는 그와 더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먼저 가시라고 했다. 좀 머뭇거리며 서 있던 그는 내가 꿈쩍도 않고 버티고 있자 마지못해 다세대주택이 바짝 붙은 좁은 비탈을 타박타박 걸어서 올라갔다.

“세상에, 나이 사십에 입봉도 못했다고?”

내가 경호 휠체어를 밀고 골목을 돌아 나오면서 말했다. 나는 예전의 굴욕을 되돌려주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무능과 가난을 경멸하고 욕했다. 경호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자 5분 만에 택시가 왔다. 택시 기사와 함께 트렁크에 휠체어를 접어 넣고 경호 옆자리에 탔다. 우리 집으로 행선지를 부르고 한숨 고를 때, 경호가 말했다.

“우리 형, 행복해 보이더라. 우리 엄마는…, 더 행복해 보이려나.”

경호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경호는 식물처럼 말이 없어졌다.

 

학기 말이 되었다. 이제는 나 외에 누구도 사라진 둘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모두 학교 안의 살벌한 분위기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기간제 교사였던 병설유치원 임 선생이 짐을 쌌고, 학교 쪽에서도 네 명의 기간제 교사가 책상을 정리했다. 임 선생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우리는 건물 앞 국기게양대 옆에 서서 잠깐 대화를 나눴다. 임 선생은 앞날이 막막하다고 했다. 정부에서 향후 몇 년 간 임용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입을 닫고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야릇한 표정으로 “그래도 정 선생님은 퇴직 때까지 걱정 없겠네요. 부러워요.” 했다. 그녀의 입에서 기나긴 입김이 나왔다. 내 입에서 나온 것도 입김뿐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녀를 자극할 것 같아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바람에 날린 로프가 국기가 없는 알루미늄 게양봉을 두 차례 때렸다. 댕, 댕, 대화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 같았다. 그녀는 “우리가 다시 만날 일 있을까요?” 하고 쓸쓸한 미소를 짓더니 가버렸다.

임 선생과 헤어지고 생각하니 어쩌면 내 태도가 불구경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나도 경호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경호는 입을 닫고 지낸 지 거의 한 달이 되었고, 엄마는 자꾸 나에게 이제 어떡할 거냐고, 사위도 아닌 다 큰 남자의 병수발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느냐고 짜증을 냈기 때문이었다. 기저귀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갈아주고, 양치질과 세수도 내가 출근과 퇴근 때에 해주는데, 엄마는 점심으로 미음에 빨대를 꽂아 한 끼 먹이는 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쳤다.

“너 제정신이냐? 여자들이 결혼에 왜 발목을 잡히는데, 결혼을 안 했다는 건 책임이 없다는 건데, 뭘 그렇게 지극정성이야? 그 집 꼴이 어떤 꼴이든 상관 말고 데려다줘. 너 그렇게 신세 망칠래?”

나는 처음에는 대거리를 하다가 나중에는 귀를 막고 경호가 있는 내 방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 즈음 들어 아빠 생각이 부쩍 났다. 아빠는 간암 진단을 받고 딱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이모들의 탁자를 향해 달려든 적이 있다. 엄마가 막지 않았으면 이모 중 누구든 멱살을 잡고 끌어냈을 것이다. 빈소에서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게 화근이었다. 오래 병치레 않고 딸꾹 죽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중병 들면 가족 고생 안 시키고 돈 써 없애지 않고 빨리 죽어주는 게 제일 좋은 가장이라고, 큰이모인지 둘째 이모인지가 말했고 나는 듣자마자 “말이면 다예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나를 막아선 엄마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의 눈 때문에 나는 화를 누르고 빈소로 돌아갔다. 엄마는 나를 두고 철이 없어서 그런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엄마가 과연 아빠를 사랑했나 의심했다. 그래서 장례식 내내 엄마와 말도 섞지 않았다. 아빠가 죽자마자 엄마는 아빠 물건을 몽땅 정리해서 내다 버렸는데, 그 속에는 엄마와 아빠가 연애시절 찍은 사진도 들어 있었다. 엄마는 그 사진들을 내게 던지며, “이거 너 가질래?” 하고 물었고 나는 그걸 왜 내가 가지냐고 대꾸했었다. 가지기 싫다는 게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아빠는 엄마의 추억이어야 마땅하기에 그렇게 대꾸한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러면 버릴 거라 했다. 그래서 내가 가로채 지금도 그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두 분 사이에는 문제가 없었고 다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뒤의 엄마 행동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이해하는 것은 아빠에 대한 배신 같았다.

종종 아빠가 등장하는 악몽을 꾸곤 했다. 아빠는 호흡기를 하고 있었는데, 의사 말로는 이미 죽은 사람을 강제로 살려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면 호흡기를 뗄 예정이었다. 우리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 푹 쉬어요, 여보.

아빠, 거기서는 아프지 마.

호흡기가 벗겨지고 삽관이 뽑혀 나가고 심전도기의 그래프가 멈추고…. 아빠가 눈을 번쩍 떴다.

“경호는 잘 있냐?”

엄마가 이제 그만 말하고 죽을 시간이라며 아빠 얼굴 위로 흰 천을 덮었다. 아빠 얼굴 실루엣의 코끝에서부터 피가 배어 나와 흰 천을 물들였다. 천 아래의 육신이 쪼그라드는지 천이 서서히 주저앉았다. 땀에 젖어 깨어나 보면 내 방이 낯설었다. 잠들어 있는 경호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이불을 끌어서 목까지 덮어주고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경호 숨소리를 들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맥박처럼 가느다란 숨소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경호의 혀가 사라진 걸 알았다. 이를 닦아 주다가 발견했는데 정확히 사라진 시점은 알 수가 없었다. 혀가 있을 때부터 경호는 말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니?”

경호는 버섯이 피기 직전의 나무둥치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경호를 일으켜 앉혔다.

“언제부터야?”

경호는 제재소의 톱날로 들어가기 직전의 나무둥치처럼 뻣뻣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경호의 뺨을 때렸다.

“대답해! 언제부터, 언제부터….”

경호의 눈시울이 빨개지는 게 보였다. 내가 손 댄 자국보다 눈 주위가 더 붉어졌다. 내 손자국이 발갛게 비쳐 올라왔고 그 위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나는 경호의 눈물을 닦아줬다. 경호 혼자 닦을 수가 없으니까 닦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게 연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닦아줬다. 그리고 경호 입을 벌려 없어진 혀를 다시 확인했다. 내 눈으로, 내 손으로, 내 혀로, 열심히 확인했다. 경호를 꼭 끌어안고 입술을 붙이고 열심히 확인했다. 경호 옷을 벗기고 경호의 없어진 손을, 발을, 거기를 열심히 확인했다. 나는 숨 가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데 경호는 죽은 나무토막처럼 송진 같은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다 경호가 썩어 없어질 것 같았다.

“나가자. 너한테는 햇볕이 필요해.”

나는 경호에게 다시 옷을 입혔다. 두툼한 담요를 챙겨 들고 경호를 휠체어에 태우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나오며 보니 엘리베이터 벽에 보호용 부직포가 붙어 있었다. 우리 라인에서 누가 이사를 나가는구나 생각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위층 아이가 놀고 있었다. 토요일이니 유치원에 안 갔겠지만, 한 번도 밖에서 노는 걸 본 적 없는 아이인데 의외였다. 나는 다가가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는 그네를 타러 뛰어가 그넷줄을 잡은 채 나를 경계했다.

“엄마가 낯선 사람하고 말하지 말랬어요.”

아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너네 유치원 옆 학교 선생님이야, 하려다가 이웃이 더 친근하겠다 싶어 내 소개를 새롭게 했다.

“난 낯선 사람 아니야. 아래층 누나야. 근데 너 오늘은 웬일로 놀이터 나왔어? 부모님 어디 계시니?”

“우리 이사해요.”

아이는 우리집 라인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차 리프트를 가리켰다.

“엄마가 동네 구려서 못 살겠다고 이제 교양 있는 사람들 사는 곳으로 가서 살재요.”

“교양 있는 사람들?”

아이는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누나가 그 성질 드러운 고시생이죠? 아직도 합격 못했는지 자꾸 엄마 만나자고 한다는 그 누나 맞죠? 난 누나랑 이야기 안 해요.”

일곱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의 조숙함-빠른 언어 발달과 세속적 세계관에 놀라 얼어붙어 버렸다.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목소리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나의 기억과는 다른 여자가, 푸석하고 퉁퉁한 얼굴의 여자가 아니라 옅은 화장을 한 미인이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스포츠웨어 세트 위에 캐시미어 코트를 걸쳐 입고 서서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위층 여자라는 판단이 서기 무섭게 튀어나가 그녀 앞에 섰다.

“저기요.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얻어먹고 고맙다고까지 말씀하셔 놓고 애 앞에서 무슨 험담을 그렇게 하신 거예요?”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여자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죄송한데, 고맙다고 하지 그럼 뭐라 그러겠어요? 근데 저희 그런 반찬 안 먹어요. 반찬통에서 잡내가 너무 나서 먹을 수도 없었구요. 저희, 흙 묻은 채소도 안 먹어요. 쿠팡에서 손질 채소만 제때 시켜 먹어요. 너무 많이 주셔서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만 더 나왔어요. 죄송해요.”

여자는 내가 아이를 어쩌려고 한 것처럼 뒤로 물러나며 아이를 감싸 안더니 서둘러 보안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쫓아가면 치한으로 신고할 분위기였다. 게다가 경호를 혼자 두고 뛰어온 것이 기억났다. 경호 곁으로 돌아갔다. 경호를 덮어줬던 담요가 미끄러져 내려와 있었다. 경호 턱 밑까지 담요를 끌어올려 꼭꼭 싸매주고 윗집이 이삿짐을 옮기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급 가구들이 사다리차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고 또 내려와서 컨테이너 트럭 속으로 들어갔다. 다정한 부부와 한 아이가 중형 세단 속으로 들어갔다. 차들이 단지 내 도로를 따라 크게 원을 그리며 줄지어 돌더니 사라졌다. 내 머릿속에는 우리집과 같은 구조의 텅 비어버린 공간이 떠올랐다. 그곳에 콩콩거리며 뒤꿈치로 바닥을 찧고 다니던 네 살 아이 하나가 우두커니 남겨져 있었다. 아이는 서서히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족과 한 아이의 가능성이 내게서 완전히 떠나버린 이후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경호를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에 선득한 찬 기운이 느껴졌다. 문득,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어졌다. 나는 경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경호야.”

불러도 대답 없는 경호.

“경호야, 너, 나 사랑하니?”

경호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움직였다.

“사랑하면 눈을 두 번 깜빡여 봐.”

경호는 눈싸움을 할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버티다가, 빠르게 두 번 깜빡였다.

“왜 사랑하니?”

경호의 눈은 다시 빛을 잃었다.

“왜, 나를, 사랑하니? 혹시….”

찬바람이 불어서 코가 시렸다. 그래서 잠시 말을 멈췄다. 콧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는 혹시 내가 너를 먹여 살려줄 직업을 가져서 사랑하니? 절대 잘릴 일 없는 직장에, 애를 둘 낳든 셋 낳든, 출산 휴가 육아 휴직 꼬박꼬박 써가며, 휴직 수당 받아 가며, 다 건사할 수 있어서, 그러니까 넌 평생을 손이 없어도 발이 없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무위도식 할 수 있어서, 혹시 그래서 날 사랑하니?”

경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파란 불꽃이었다. 나도 세상도 깡그리 태워 없앨 듯한 적의를 담은 불꽃이었다. 그리고 경호가 사라졌다. 휠체어 위의 담요가 푹 수그러들었다. 담요를 짚어보았다. 손이 한없이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깜깜한 구멍이 느껴졌다. 손이 아니고 가슴에.

또 찬바람이 불었다. 발갛게 언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손이 젖어 들었다. 알고 보니 콧물이 아니고 눈물이었다. 휠체어를 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웬 휠체어냐고 물었다. 엄마는 경호를 잊었다. 엄마가 기억해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윗집 둘째 이야기는 영원히 꺼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모든 둘째들을 잊을 거라 다짐했다.

 

다음 날, 방학 전 마지막 출근을 하니 학교에 공지가 붙어 있었다. 학생 수 감소로 학교는 통폐합되고 이 학교는 폐교 처리된다는 공지였다. 상관없잖아. 나는 내 교실로 들어가 짐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나는 선별된 사람이니까 이 내리막에서 절대 굴러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고. 나는 첫째라고.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짐을 모두 박스에 담고 나서 컴퓨터를 켜고 웹브라우저 창을 열었다. 새 겨울 코트를 주문할 생각이었다. 위층 여자가 입었던 캐시미어 코트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자 결제 버튼을 클릭했다.

 
댓글 5
  • No Profile
    정상훈 22.08.25 23:15 댓글

    글을 읽어보니 인디스쿨을 알고 계실 분 같네요. 나와 경호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어느 쪽이 되더라도 비극적인 일이죠. 둘째가 없어진 현상만 나열해서 전시하더라도 참 근사한 글이 되었습니다.

     

    노래가 하나 떠오르네요. The Offspring의 The Kids Aren't Alright.

  • 정상훈님께
    No Profile
    글쓴이 서애라자도 22.08.27 23:40 댓글

    인디스쿨, 몰랐는데 알게 해주셔서 감사해요.(오프스프링도요.)
    쓴 지 2년 정도 된 글입니다. 그때 너무 복잡한 현상들을 단편 안에 구겨 넣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근래에 이 글을 읽은 분이 하나도 어렵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노골적이고 선명하다고 하셔서 공개된 웹에 올려 보기로 했어요. 
    정상훈 님 덕분에 제가 저만 알아듣는 이야기를 한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

  • No Profile
    사피엔스 22.09.05 23:40 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사라진 것보다 잊혀진 게 더 슬프네요.

  • 사피엔스님께
    No Profile
    글쓴이 서애라자도 23.02.05 22:55 댓글

    어머, 제가 게을러서 이제 댓글을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 No Profile
    글쓴이 서애라자도 23.02.23 21:20 댓글

    http://mnews.jtbc.co.kr/News/Article.aspx?news_id=NB1211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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