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네버마인드, 지구

2022.08.28 12:4508.28

작가: 2020년에 쓴 단편을 거울에도 올립니다. 브릿G에서 먼저 공개했었습니다.

 


J'avoue j'en ai bavé, pas vous, mon amour.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 왔다는 걸 인정할 게요, 내 사랑.

Avant d'avoir eu vent de vous mon amour

당신이라는 소원을 가지기 전까지는, 내 사랑.

매들린 페이루Madeleine Peyroux, <La Javanaise>

 

부드러운 선율이 라운지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오래된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우주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손가락으로 짚어 호를 그렸다.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오래된 샹송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록 아니면 듣지 않는 ‘록 순혈주의자’이자 영어로 된 노래만 고집하던 내가 프랑스 노래를 듣게 된 건 순전히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때문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이 바다에 사는 괴물과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대학에서 영화 강의를 들을 때 반쯤 의무로 보게 된 영화인데, 이 우주선에 승선하고 난 뒤에 부쩍 좋아졌다. 과제를 쓰고 내기에만 바빴던 대학생 때와는 달리 지금은 여유가 넘쳤다. 그래서 그 감정의 물결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고전의 품격이란 걸 지금에서야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달콤한 멜로디를 매들린 페이루의 목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듀엣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 때 문이 열렸다. 기계 승무원이겠거니 하는 마음에 돌아보지 않았고, 그 생각은 역시 맞았다.

 

「건강 상태 체크하러 왔습니다, 지희 씨.」

 

항상 이 시간만 되면 온도 조절기를 점검하는 스티븐이 오는데, 왠걸. 건강 상태를 점검하러 오는 에드였다. 나는 모든 기계 승무원에게 이름을 붙였고, 이 녀석들도 그 이름을 알아들었다. 복잡한 정식 명칭보다는 정겨운 별명이 부르는 게 훨씬 나았다.

 

“아, 에드. 오늘도 열만 재면 돼?”

 

「그렇습니다. 이마를 가까이 대주시겠습니까?」

 

나는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고 그가 팔에서 꺼내는 체온기를 이마 가까이에 댔다. 이 체온계의 특징은 체온을 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어떠한 증표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에드가 말해주는 결과가 전부였다.

 

「항해 38일째, 이름 박지희. 체온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강상태가 정상입니다. 운동은 주기적으로 계속 하고 계십니까?」

 

늘 그렇듯이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우주선에만 있는 데 병이 생길리가 있나. 하지만 에드가 자주 체크하는 이유는, 바로 그 희귀한 예외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발생하면 난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재앙 덩어리가 될테니까.

 

“네가 이렇게 자꾸 찔러대니까 하게 되더라.”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50일째 되는 날에 건강검진을 한 번 더 진행해야겠군요. 어쩌면 승선 때보다 건강해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좁은 곳에 있어도?”

 

「한정된 곳에서의 생활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자명한 사실입니다. 특정한 패턴만 유지한다면 말이에요. 거기에 지희 씨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선원들과 오락거리인 타블릿도 있지 않나요?」

 

“말은 잘해.”

 

기계 승무원을 대할 때 좋은 점은 비꼬아서 말해도, 그들이 사실만을 걸러 알아 듣는다는 점이었다. 에드는 내 열을 잰 뒤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기계 승무원과 하는 대화도 이게 나흘만인 것 같은데, 너무 일찍 끝나버렸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타는 날만 해도 이렇게 저런 감정 없는 기계들을 신경 쓸 줄은 몰랐는데.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 건 꽤 괜찮은 감정을 들게 한다. 적어도 죽어 있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설령 기계에게 느낀다고 해도.

 

에드가 나가자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드라마를 볼 생각으로 태블릿을 들었다가, 창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 앞에는 끝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우주선 헤르메스는 안정적으로 센타우루스 자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유사 지구 행성 프록시마 B로, 우리의 옛 세대가 건설한 신도시 페니안으로.

 

 

 


 

 

 

인류는 바이러스에 멸망하진 않았다. 다만 자멸했을 뿐이었다.

 

2020년대에 창궐한 바이러스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단락되었다. 백신 개발에 매달린 의료진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 시기에 급증한 일회용품의 사용과 안일한 기후 대처가 환경에 결정타를 가했다. 동시에 수많은 분야의 기업이 쇠락했기에, 이상 기후와 겹쳐져 지구는 빠른 속도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뒤늦게 환경오염을 막아보려고 했다. 연예계 셀럽들은 기후를 되살리자는 홍보를 했고 정부 기관 근처 곳곳에는 나무를 심자는 포스터나 일회용품 사용 지양 권고 안내문이 붙었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다. 사람들은 40년 전에 그 행동을 했어야 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바로 그 년도에. 악운이 겹쳤다고 해야겠다.

 

나는 그 뒤의 시대에 태어났기에 그 사람들의 사투를 모른다. 때늦은 환경운동을 하기 보다는 척박해진 지구에서 살아남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한 때에 태어났으니까. 역사책에는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그들의 노력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 세대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2074년, 더 이상 따뜻하지 않고 무더워지기 시작한 4월에.

 

사람들이 고갈되어버린 지구를 결국에는 버리는 선택을 했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두 번째 우주 시대가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들이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되자 반쯤 쫓겨난 것이었다. 사람들도 자신들의 잘못을 알았다. 이 이상 지구가 심각해지기 전에, 욕심으로 더 큰 재해를 불러 일으키기 전에 이주를 결정한 건 잘한 일이었다. 어떤 환경 칼럼니스트는 ‘그것이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썼고, 난 그 글을 보고서 이미 늦은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긴 했다. 옳은 선택이었지만 너무 늦었다고.

 

각국에서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추첨하거나 선출하거나, 혹은 비밀스럽게 사람들을 우주에 보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 2090년대가 되었다. 30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떠날 즈음에는 국제 항공우주국 연합이 새로운 조항을 내세워 더 많은 민간인들이 페니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조금 특이했다. 연합은 페니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정착하길 원했는지 각 나라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보내길 원했으며, 언론계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서 내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국의 신문사는 하나의 팀을 보내는 걸 방침으로 삼았다. 한국도 역시 세계의 경향을 따라갔는데, 내가 다니는 언론사에는 젊고 저널리즘 정신이 투철한 기자가 나서길 원했다.

 

말이 그렇지 사실상 누구로든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지구 밖으로 보내고 싶은 거잖아. 새 신입도 뽑을 겸에. 해고나 다름 없지 이게 뭐야. 내가 그렇게 생각했듯이 불확실에 자신의 삶을 걸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지구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 묶여 있었다. 쉽사리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다른 분야에서도 몇몇 괴짜들이나 삶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과 그 외의 학자들이 페니안으로 이주하려 했다.

 

결국 우리 회사에서는 내가 나서기로 했다. 부장님이 아무도 없으면 랜덤으로 추첨한다고 했을 때, 우리 직원들의 표정을 모두가 봤어야 하는 건데.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긴장된 분위기. 결국 나는 내가 가는 게 모두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대형 언론사에서 나갈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다니. 나는 회사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 미련을 남기며 사는지 알 것 같았고, 그와 반면에 내가 이곳의 삶에 별 미련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기나긴 설명을 하고 난 뒤에야 페니안으로 아주, 아주 긴 출장을 갈 수 있었다. 많이 싸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뭐하는 짓이었나 싶긴 하다. 페니안으로 가면 다시 지구로는 돌아올 수 없을텐데. 엄마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텐데. 지구를 떠나 우주선에 몸을 싣고, 신도시로 향한다는다는 건 그런 건데.

 

그래도 창 밖을 바라보며, 우주에서의 삶을 즐길 때면 후회가 조금 사그라든다. 많은 미련이 남았지만 버틸만 했다.

 

 

 


 

 

 

나는 지구를 떠난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아예 처음으로 지구 밖을 나가서 사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이 우주선이 개척선이었다면 내 직업은 기자가 아니라 과학자나 기술자였어야만 했으리라. 아예 전문적으로 훈련된 우주인들만 탑승했던 백 년 전과 다르게 헤르메스 호에는 일반인들도 많이 탑승해 있었다. 지구에 남은 다른 사람들은 뒤이어 오는 우주선에 탑승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완전한 이주를 이루어낸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그래서 헤르메스 호에 탑승한 민간인은 전부 냉동수면을 했다. 5년 동안의 항해를 깨어서 지낸다면 반드시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고, 노화의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아예 시간을 멈추는 발상이었다. 선원들 역시 대부분은 제한된 알고리즘으로만 움직이는 인공지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소한의 인원만을 배치하는 방식이이었다. 그 나머지 선원들은 서로 루틴을 정해 몇 명씩 몇 달간 활동하다가 다시 잠들고, 다른 사람이 깨어나고 다시 활동했다.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특히 미국이나 유럽 쪽 우주선에 자유의지나 하나님의 섭리, SF 소설의 예시 등을 운운하며 냉동수면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본 뉴스 기사를 기억한다. 2080년대 후반에 출발한 우주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출발한 우주선 아르테미스 V가 페니안으로 향하는 우주선 중 깨어있는 민간인의 수 최대 기록을 갱신했다는 내용이었다. 한 50명이었을테다.

 

아르테미스 V는 북유럽 우주선이었고, 동아시아 3국 사람들이 탑승한 이 헤르메스 호는 다행히도 다들 냉동수면을 하는 편이었다.

 

나만 빼고.

 

나는 이 우주선에서 유일하게 깨어 있는 민간인이었다. 나처럼 잠들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우주선 사정으로 인해 번외 처리 되거나 건강상의 이유, 신념의 이유(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이 시간을 건너뛰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등 다양한 이유로 냉동 수면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았다. 다른 우주선에도 나 같은 사람은 드물테지. 기껏해야 10명 정도일까. 한 반은 커녕 작은 규모의 동아리나 모임조차 간신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헤르메스를 포함해서, 페니안으로 향하는 우주선의 평균 정원이 약 300여명인 걸 생각하면 나는 별종 중의 별종인 셈이었다. 

 

그래서 이 별종은 ‘처음으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일과를 기록하는 기자정신’을 빌미 삼았다. 승선 당시 깨어 있던 선원들은 내게 수긍하며 깨어있는 걸 허락해주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내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조항에도 어긋나는 거 없고, 여러분도 딱히 상관 없는 듯 하니까 괜찮지 않겠냐고. 나만 몇 년 더 사는 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했다. 어차피 나이 차이를 신경 쓸 사람은 페니안에 가면 없으니까.

 

우주를 구경하고 싶었다. 우주선에서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었고, 기회가 된다면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활도 함께 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런 단순한 호기심으로 내 시간을 정상적으로 돌려 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몇 년의 세월을 스스로 뛰어넘는데도 불구하고. 자고 싶지 않았다. 우주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곳의 생활을 기사를 써 페니안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한동안 우주의 풍경을 글로 담으면서, 사람들과 경이를 나누었고 승객들이 냉동수면을 하는 과정을 온전히 글로 기록했다. 그 때까지는 내가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주선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타게 되리란 걸 예측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구의 거의 모든 컨텐츠가 탑재되어 있는 태블릿들이 들어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 뮤직비디오, 노래, 등등.

 

나는 주로 아주 고전이 된 영화나 옛날 시트콤을 보곤 했다. 드라마나 영화는 각각 그 시절이 제일 좋았으니까. 영상물이 질리면 노래를 들었다. 재즈나 클래식을 한 번 들어보려고 했는데 취향에 완전히 맞진 않아서, 결국 돌고 돌아 록 밴드 노래를 제일 많이 듣긴 했지만.

 

격리 기간을 체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원들과는 반쯤 강제로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했다. 사실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며 교류하고 싶었지만 그 사람은 그냥 나를 별종, 혹은 귀찮은 골칫덩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초반 며칠 동안 내게 시선을 힐끗 주거나 어색하게 영어로 대화하고서는, 그 뒤로 일체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에드와 시간을 자주 보낸 것도 이 때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온도 체크를 하는 로봇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우주선 내에서 겉돌자 에드가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방에 자주 찾아왔다. 품에 껴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자주 안고 창을 바라보거나 혼잣말을 했다.

 

"별이 참 예쁘네..."

 

「저것은 별이 아니라 행성입니다. 별은 항성을 지칭하는 말이죠.」

 

혼잣말을 하면 에드가 태클을 걸고… 우리 사이의 대화는 이런 식의 만담을 나누는 게 대부분이었다.

 

엄마가 내 나이 쯤이었을때 직장 다닐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 계속 안에만 있고, 즐길 거리는 많지만 심심한 기분. 애초에 나는 사람과 만나지 않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라 괜찮았다. 오히려 뒹굴거리면서 낄낄대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가끔 상념이나 우울에 젖을 때면 창 밖을 바라보고서 우주에 대한 경이감, 뭐 그런 걸 느끼면 되었으니까.

 

나는 괜찮았다. 이대로라도.

 

 

 

 


 

 

 

“에드야.”

 

「네, 지희 씨.」

 

“항해 며칠째였더라?”

 

「정확히 132일 5시간 35분 23초를 지나고 있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젠장, 그래도 이건 시간이 너무 느리게 지나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지금이라도 냉동수면을 시켜달라고 조르고 싶을 정도로.

 

아직도 냉동수면을 취하지 않았다. 가끔 이름을 모르는 선원들이 와서 냉동수면하지 않겠냐고 영어로 물어 보았고, 나는 계속해서 노, 노 라고만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은 이유가 제일 컸다. 우주는 사실 실컷 보았고, 혼자만의 생활도 질리기 시작했지만 고집이 발동하기 시작한 건지 저 수면 기계에 눕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워서인가. 아니면 대체 뭐인가.

 

에드는 내 옆으로 뽈뽈 다가왔다. 나는 태블릿 화면을 숨기지 않았다. 그곳에는 내가 틀어 둔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에드의 둥근 렌즈에서 푸른빛이 나오더니 이내 내 태블릿을 스캔했다. 마치 처음 우주선에 탔을 때 내 건강 상태를 조사했을 때처럼.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뮤직 비디오가 감지되었습니다. 록 음악을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너 그런 것도 데이터베이스에 있어?”

 

「제 역할은 지희 씨를 비롯한 탑승객의 건강 유지이고, 그 목적에는 대화를 통한 정신 건강 상태를 해소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문화 지식 정도는 제 안에 있습니다.」

 

내 태블릿에서는 1990년대에 활동한 전설적인 록밴드의 뮤직비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헤르메스 호에 탑승한 이후로 너바나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게 거의 일상이 되었다. 커트 코베인의 슬프고 화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드의 말은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정감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기계답게 어조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말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에드와 ‘대화’하는 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음성 변조 프로그램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합성된 목소리지만, 여전히 기계는 기계다. 또한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는 말도 역시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람 같았다. 기이하다. 록을 좋아하냐는 말에 어떻게 반응할까, 하다가 그냥 내 생각을 말했다.

 

“응, 록 좋아해. 예전부터 이거 엄청 많이 들었고 다른 밴드 노래도 많이 들었거든.”

 

「펄 잼이나 사운드가든 같은 밴드 말입니까?」

 

“아니, 그렇게 과격한 밴드들만 들은 건 아니고…. 벨 앤 세바스찬 같은 밴드랑, 또…. 그린 데이, 라디오헤드…. 이 밴드들 진짜 다 알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다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공공기관에서 만든 로봇이라 그런지 말투도 왠지 모르게 공무원 같았다. 나는 신기하게 생각하며 노래를 다시 틀었다.

 

이제는 50년이 훨씬 넘어가는 옛날 밴드였지만 여전히 화면 속의 커트 코베인은 떡진 머리를 하고 있었고 불만 있는 우울한 표정을 하다 꽥 하고 소리를 지른다. 관객들은 그에 맞춰 격렬하게 머리를 흔든다.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이어 붙인 파편 같은 가사가 날카로운 일렉트릭 기타의 소음들에 뒤섞인다. 헬로우, 헬로우, 하우 로우. 헬로우, 헬로우.

 

「커트 코베인은 여전히 멋있군요.」

 

“네 의견 아니지.”

 

「그렇습니다. 커트 코베인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평가입니다. ‘여전히 멋있다’.」

 

화면 속의 록 밴드는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화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괜스레 우울해졌다. 절규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그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정말 추종하다시피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기만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모인 공연장에서 다 함께 머리를 흔드는 관중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시대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지금 우주선에 자발적인 갇혀 있는 내 상황을 비웃는 것 같아서.

 

그 즈음에 에드가 질문을 했다.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추출한 통계와 다르게, 지희 씨는 또래 세대들과 다르게 옛날 노래를 들으시는 편이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왠지 따지는 듯한 말투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레트로 마니아라서. 록이 좋은데 요즘은 그런 밴드들이 잘 없잖아.”

 

재앙이 문화를 뺏어갔다. 2020년대 이후로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대중적인 파급력을 잃었다. 모여서 콘서트를 하고 라이브 세션을 하며 녹음을 하는 게 밴드 문화인데, 당시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밴드들이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명맥을 잇던 밴드는 멤버들이 사망하며 해체하거나 개인 활동을 하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음악을 하다 죽었다.

 

「그래도 여전히 록이나 얼터너티브 장르에는 계속 신인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요?」

 

에드는 단순한 궁금증이라는 듯이 물어 보았다. 나는 그냥 단순한 취향이라고 답하고서 얼버무렸다.

 

이상하게 이미 사라진 것들에 애정이 더 갔다. 고전 영화. 옛날 대중음악.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요즘 것들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고지식한 취미 때문에 본업으로 쓰는 기사 말고도 취미로 음악 칼럼을 쓰고, 그걸로도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고민거리였다.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지희 씨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대화였습니다. 이제 가도 괜찮을까요?」

 

누가 유교국에서 만든 로봇 아니랄까봐, 꽤 친절했다. 그런 주제에 이름은 왜 서양 이름이람.

 

“그래, 너도 바쁠테니까 가봐.”

 

나는 그를 보내고 침대에 멍하니 누웠다. 나는 혼자였다. 이 커다란 우주선에서, 수많은 사람과 있는데도. 완전히 혼자였다.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하는 건, 그저 그게 내 취향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누군가와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 역시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문화는 혼자로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서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며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난 완전한 외톨이였다. 즐길 건 많았지만 나눌 건 없었다.

 

점점 공허해졌다. 이야기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듯 했고, 노래 역시 그랬다. 구멍이 난 물독에 물을 콸콸 들이붓는 것과 다름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너바나의 영상을 찾아 보았다. 이렇게 인간적인 사람이 스스로 총을 쏴 자살했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지만 그렇게 자신을 파괴할 힘 역시 가지고 있는 이상한 존재였다.

 

「지희 씨.」

 

“네?”

 

나는 이어폰에서 들려온 기계 승무원의 목소리를 듣고 이어폰을 뺐다. 에드가 아닌 다른 녀석이었다. 그러고보니 바보 같은 짓이네. 통신 네트워크로 말을 건건데.

 

다시 귀에 그것을 꽂고 승무원이 안내하는 소리를 들었다.

 

「식사 시간입니다.」

 

“아, 네. 지금 갈 게요.”

 

식당으로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시아 우주선이니까 이렇게 한 번에 모여서 밥을 먹는 거겠지. 다른 나라 우주선은 먹고 싶을때 나가서 먹고 그러려나.

 

우주선은 어쩌면 축소한 지구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노아의 방주, 뭐 그런 거.

 

 

 


 

 

 

며칠 전에 새로 깨어난 선원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특징인 이재현, 중년에다가 성격이 꽤 괴팍하지만 그들 중에서 머리도 권력도 제일 좋고 높은 것 같은 이케다 유이, 대화를 많이 안 해본 장유안과 리우쉰. 나는 중국어를 잘 못했다. 그들은 한국어를 약간은 할 줄 알고 영어는 유창하지만, 어느 쪽도 소통이 답답한 건 마찬가지일 테다.

 

“아, 지희 씨 왔다. 와서 먹어요.”

 

재현은 날 상냥하게 맞아주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눈길만 주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승무원들은 식사하면서 헤르메스 호가 미국과 동유럽 우주선과 같은 항로를 탔다는 식의 대화를 말했다. 계획에 있던 일이지만, 통신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궤도로 비행해서 내게 알려주는 것이란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거지?

 

“다른 우주선은 어떻대요?”

 

재현은 시리얼을 우적거리면서 내게 정중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는 멀쩡하게 운행하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냉동수면 단계에서 사고가 일어난 적도 없고, 깨어있는 사람들도 멀쩡하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는데. 특히 미국이나 유럽 우주선은 깨어 있는 사람들의 인원이 많아 작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는 우스갯소리고 나오기도 했고요.”

 

나는 끄덕이며 <나홀로 집에> 같은 가족 영화를 생각했다. 온통 금발머리에다가 한 명을 제외하고선 전부 미국적인 사람들. 아침으로 꼭 빵을 먹을 것 같은 사람들. 사실 우주선에서는 보존식을 먹기 때문에 그런 영화 같은 사람들의 생활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말에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며칠 전에 미국 우주선의 신호가 소실됐어. 그쪽 이름은 이카루스 IV인데.”

 

내 맞은 편에 있던 유이 씨가 빵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필이면 지구 관제소랑 연락이 끊긴 곳에서 소실된 거라 대형 사고가 예상 돼. 다른 우주선이 구하러 갔는지, 아니면 급히 경로를 변경해야 할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마침 소실된 그 지점을 지나고 있어서 이거 먹고 경로를 바꾸러 갈지, 아니면 그냥 우리 갈 길 갈지 정할 참이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불평조로 말을 이었다.

 

“난 대체가,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사고만 치는지 모르겠어. 탑승하는 주제에 냉동수면 절대 안된다고 선원들이랑 싸우고…. 왜 그렇게 안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야? 나는 빨리 이 당직 끝나고 자서 일어난 다음에 페니안으로 가고 싶은데.”

 

“그 사람도 그 사람들만의 사정이 있는 거겠죠.”

 

“그렇게 모두의 사정을 이해해주다가는 다음 우주선은 거기로 못 갈걸. 깨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혹시 모르지, 그거 때문에 신호가 사라진 건지도.”

 

유이 씨를 나무라던 재현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가끔씩,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에는 중국인 아니면 베트남인 선원만 깨어나서 내가 대화하기가 어려웠고, 그들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일부러 식탁에서의 대화를 피하고 언젠가부터 아예 따로 방으로 식사를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그런 관계에 비하면 차라리 이게 나았다. 그래도 대화가 되긴 하지 않은가. 아직 이야기를 많이 해 본건 아니지만.

 

어느새 두 사람은 내가 아직 이름을 외우지 못한 중국인 선원 두 명과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기본 회화 정도만 들을 수 있었고 전문용어는 적당히 맥락상으로 이해했다.

 

나는 재현이 너무 신기했다. 중국어 발음도 좋은데다가 한국인이라 나랑 어느 정도 공감대도 있고. 물론 분야가 다른 사람이기에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기대할 수 없었지만.

 

“지희 씨 의견은 어때요?”

 

건조된 쿠키가 너무 딱딱하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재현의 말이 들려왔다.

 

난 당황스러워 그에게 반문했다.

 

“네?”

 

“찾으러 갈지 말지 말이에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할텐데 일단 찾기만 하면, 표류하게 된 원인이나 경로를 바꾼 이유만 물어보면 되거든요. 전자의 경우에는 저희가 고쳐주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뭐 갈 길 가면 되는 거고요. 좌표 수정하는 게 조금 일이겠지만….”

 

재현은 이 대목에서 헛기침을 했다. 중요한 대목을 말하는 것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유안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쉰과 유이 씨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무슨 소리야! 만약에 헛발걸음 하면 어쩌게? 그건 그쪽네 사람들 사정이지, 우리가 상관했다가 괜히 또 우리도 좌초되면 어떡하려고.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거야, 재현아.”

 

그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재현에게 강하게 반박했다. 쉰도 끄덕이며 한국어로 말했다. 나를 배려해준 것인진 몰라도.

 

“위험합니다. 저희도 300명의 사람 있고요. 살린다면 저희 쪽 살릴거에요.”

 

나는 고민했다. 이 사람들은 우주인으로서 고민하고 있겠지만, 나는 기자니까. 미국 쪽 우주선을 구하러 가는 게 기삿거리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당연히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 중에서 뭔가 모험담이 생기면 선원들의 지위도 올라 갈 거고.

 

하지만 기사 하나 쓰겠다고 나까지도, 나아가서 잠을 자고 있는 민간인들까지도 위험을 부담할 수 없다. 유이 씨의 말이 정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가 앞뒤 가리지 않고 과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이 씨는 굉장히 지적이고 틀린 말은 안 하는 사람이다. 난 어느 쪽의 말에도 공감하여 되려 고르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셈이었다.

 

페니안 사람들은 물론 지구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겠지만, 우주에서 만나 서로 도움을 주고 훈훈한 정을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확신이 서질 않았다. 나는 퍼석퍼석한 고깃덩이를 씹으며 고민해보았다.

 

내가 이걸 해도 괜찮은 건가? 정말 문제가 안 생기는 걸까? 위험한 판단과 개인적인 욕망을 뒤섞어 흐린 판단을 하고 있는 거 아냐? 그렇지만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과 도킹하면, 그곳에 있는 민간인과 대화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적어도 다른 나라 사람의 목소리라도.

 

나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감옥에 갇힌 사람도 아니고, 외계인들만 있는 행성에서 홀로 있는 사람도 아니었는데도. 그렇지만 지구에서처럼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얼마나 걸릴까요?”

 

“찾는데에는 미정인데, 사흘 이내로 뭔가 나오지 않는다면 저희도 철수할 거에요. 발견한다면 도킹과 물자전달에 하루 정도 쓰면 이틀이 소요가 될 거에요.”

 

“그것도 무지막지한 손해란 걸 알아둬.”

 

“유이 씨, 말씀이….”

 

“내가 뭐 틀린 말했어?”

 

재현은 아무래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듯, 그를 언짢게 바라보다 한숨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쉬었다. 나는 주변을 바라 보았다. 어느쪽의 말을 들어도 괜찮을 듯한 인상이었다.

 

그러다가 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뭐라도 안 하면 찝찝할 것 같지 않아요? 며칠만 좀 더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이 씨가 무지막지하게 실망했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재현과 유안은 미소를 지었고, 쉰은 못 말린다는 듯이 제 팔짱을 꼈다.

 

 

 


 

 

 

탐색에는 당연하게도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과정에서 제외되었고 평소처럼 방에 있는 신세였다. 기사를 운운하며 선원들에게 말해보았지만, 그들은 전문적인 과정을 노출시키면 불안감이 증대될 우려가 있고 그게 탄로나면 괜히 문제가 복잡해지기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유이 씨의 의견이었다. 재현은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지만, 기왕 찾으러 간다고 했으니까 한 번쯤은 그에게 배려를 할 모양이었다.

 

나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검은 바다도 슬슬 눈에 익어 물리기 시작한 참이었다.

 

이 결정으로 헤르메스 호가 얼마나 바뀔까? 앞으로 4년 남짓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깨어 있다는 가정 하에, 나는 지금보다 더한 고독을 끌어 안고 우주선 내부의 삶을 기록하게 되겠지.

 

페니안으로 향하는 이주선은 워프 항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부작용 때문이었다. 아직 개발 초기단계기도 했고, 페니안으로 워프를 보낸 작은 화물선이 어디론가 행방불명 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이후 사람들은 워프 기술에 더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있었다.

 

5년을 꼼짝 없이 버틸 생각은 없었다. 단지 승무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라고 하는 게 달갑지 않았을 뿐이었다. 우주에 나가는 거 기왕 생활도 조금 해봐야지 않겠는가. 그런 터무니 없는 호기심만으로 사람의 인생은 급박하게 달라진다. 내가 지금 우주에 나와 있는 것도, 페니안으로 향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 아니었던가.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가 머무는 침실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노래를 들었다. 이름 모를 작곡가의 뉴에이지 앨범이나 드뷔시, 에릭 사티 같은 것들. 한동안 귀를 너무 일렉트릭 기타 소리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차분한 노래를 들으며 우주를 바라보았다.

 

외로웠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보기 좋게 나는 그들의 예상에 들어맞고 말았다. 누군가와 진득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웃고. 맛있거나 형편 없는 것을 먹고 품평하고 싶었다. 공기를 마시고 뱉고 싶었다. 인위적인 것들 사이에 둘러 싸여 불평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누웠다. 우주선 침실은 폭신하지만 천장이 너무 단조롭다. 창을 바라보면 그냥 검은색일 뿐이고. 머릿속에서 SF 영화를 상상했다. 쿠아론이었나 카메론인가, 그런 이름의 감독이 찍은 우주 영화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았다. 아니, <그래비티>가 아니던가? 미지의 신호를 받고 가서 뭔가 일어나는 비극이….

 

아무튼 영화 주인공들은 뭔가 하던데. 난 아무것도 못하네. 차라리 잠을 자서 엑스트라나 될 걸 그랬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문득 그 미국 우주선이 실종되었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 생각했다. 생각하자마자 두려워졌다. 나도 어쩌면 그런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이렇게 크고 넓은, 광활하고 공허한 우주에서 미아가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람은 커녕 동물, 곤충, 식물조차 살려고 하지 않는, 살 수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있다는 건. 홀로 남겨진다는 건.

 

 

 


 

 

 

엄마의 마지막 말이 문득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를 떠올렸다. 겨울이었다.

 

갈 거니?

 

나는 항상, 모든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실없는 소리를 할까봐. 역시 마지막 말은 항상 맥없이 나오는 법이었다.

 

응. 갈 거야.

 

버스나 비행기랑 다르게, 우주선에 탑승하는 과정은 괜히 길고 복잡해서 엄마와 내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내가 우주선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그냥 게이트와 플랫폼 사이에서 헤어지는 것처럼, 어느 통로에서 작별인사를 나눠야 했다.

 

네가 해야 할 일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별 의미도 없을지도 모르는데?

 

저주 내리는 것 같다. 그만 좀 해.

 

엄마가 미련 때문에 그렇게 실없이 말하자 나도 그에 덩달아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빠와 다르게 엄마는 초연해보였다. 예전부터 내가 말을 잘 안 듣는 탓이었을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과계 학과를 져버리고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결혼하라는데 아무랑도 결혼 안할 거라 해서. 엄마는 나로 인해 포기하는 연습을 했던 걸까. 다만 하나만큼은 알 것 같았다. 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날 사랑해서 나를 보내주는 것도 견디는 것만 같다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도.

 

몸 조심해. 글은 계속 쓰고. 밥 잘 챙겨 먹고.

 

엄마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어.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안 그래. 엄마를 뭘로 보니.

 

…딸.

 

응? 왜?

 

사랑해.

 

응, 나도.

 

엄마와 나는 부끄러운 말도 제법 잘하는 편이었다. 그게 다른 가족이랑 다른 점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했다. 나는 엄마를 꼭 끌어 안고, 토닥여준 뒤에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랑 이혼해도 되겠네, 이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

 

엄마는 그것에 답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지구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마음 놓지 못하고, 이제는 자연을 걱정하겠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때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엄마는 내게 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희가 새 사람이 되는 구나. 가서 열심히 살아. 우리 생각하지 말고.

 

엄마의 넋두리와도 같은 말이 유독 인상 깊게 남았다. 누가 글쟁이 엄마 아니랄까봐 말도 정말 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닮은 걸까. 괜히 구질구질해지는 것도, 그걸 티내지 않으려고 덤덤해 보이려 하는 것도.

 

웃었다. 어깨와 손에 담은 온기를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용케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을 누가 잊어버릴 수 있을까. 조금 싱겁기도 한 부모님과의 생이별을.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한 여자를.

 

나는 페니안에서 겨울을 맞이하면 목도리를 하고 다니던 엄마 생각을 할 거라고 다짐했다.

 

 

 


 

 

 

기사를 쓰다가 안고 있던 쿠션을 내던지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썩을,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너무 좁고 답답하고 외롭다. 정말 승무원들이 전부 기계였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외롭고 고독했다. 여러 승무원들과 이야기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이었다. 사람,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말고도 넓은 공간과 낮과 밤이 필요했다. 내 몸이 지구의 삶을 울부짖고 있었다. 대화를, 소통을.

 

기분 전환으로 스매싱 펌킨스의<Cherub Rock>을 틀었다. 빌리 코건이 자꾸 날 내보내달라고 소리친다. ‘날 좀 내보내 줘, 내보내 달라고!’하고. 나도 좀 그랬으면 좋겠네요, 대머리 아저씨. 그렇게 소리 좀 질러봤으면.

 

그래서 홧김에 그냥 스피커로 크게 틀어 놓고 머리를 흔들었다. 어차피 선원들이 있을 관제실과는 거리가 머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변박이 나올 때마다 뻘쭘하게 리듬을 타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났다. 앨범의 다음 트랙도 격정적인 곡이어서 분위기를 이을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한창 흥이 났을 때 에드가 내 방으로 뽈뽈뽈 기어왔다는 거 정도였다.

 

 

 


 

 

 

나는 급히 조종실로 달려갔다. 가는 도중에 노트북을 부숴 먹을 뻔할 정도로 급했다. 신호를 찾아냈다는 걸 에드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역사적… 일지도 모르는 순간을 놓치게 되니까.

 

문이 열리자 조종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복도나 침실과는 다르게 어두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여기서 검은 펜을 잃어버리면 못 찾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선원들은 자리에 앉아 모니터와 조종실 전면에 있는 창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재현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우리 둘은 서로 눈을 맞췄다. 난 어디에서 뭘 하면 되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건가요?”

 

“구조 신호를 받았어. 그래서 지금 쫓아가고 있지. 거의 다 와가서 부른 거야.”

 

유이 씨가 명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래도 신경질 내는 목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었지만, 나는 그의 이런 털털한 목소리가 좋았다.

 

앞을 보면 새까만 우주 뿐이었다. 무언가를 발견하기 되려 쉬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재현의 근처에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디 있으면 될까요?”

 

“빈 자리에 가서 대충 노트북 피셔도 돼요. 전원이 안 들어와 있는 곳은 터치 스크린도 꺼져 있으니까.”

 

그의 말대로 했다.

 

조종실에서 혼자 기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건 꽤 이상한 기분이다. 마치 이과대학원생들의 컨퍼런스에 잘못 찾아온 인문대학생 같은 처지가 된 것 같았다. 대학원생이 아니라 대학생.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전문용어를 말하고 듣는 쪽은 그걸 이해하고. 나만 모르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따로 해설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한낱 민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일단 기사를 써야한다. 아니, 기사가 아니라 그냥 일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순간에서만큼은 객관적이고 건조한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에 손만 올리고 있었다. 주변을 이따금씩 보면서. 방해가 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어, 저기…!”

 

재현의 말에 모두가 창을 바라보았다. 유안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가기까지 했다. 하얀 점이 있었다. 작은 소행성들 사이로, 확실히 보이는 것.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터치 스크린을 조작했고, 멀리 있던 그것이 확대되었다.

 

이카루스 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낡은 우주선이었다. 헤르메스 호와 거의 다르지 않은 날렵한 모습이었지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우주선 몸체에 성조기 마크가 붙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멀리 있어서 작게 보이는 거겠지. 실제 지름은 수백 미터도 넘을 것이다. 헤르메스 호가 그렇듯이. 어두운 공간에 홀로, 백조처럼 고고히 떠다니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저러다가 소행성에 부딪히면 어떡하지. 실제로 부딪힌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재현은 가까운 우주선에 통신하기 시작했다.

 

들립니까? 이카루스 호.

 

절박한 목소리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기삿글을 쓰다가 나는 정면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이카루스 호는 점처럼 보였다. 탐색을 할 때와 똑같은 속도로 이 이상 다가갔다간, 궤도가 어긋나서 돌이킬 수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만간 통신이 닿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답은 오지 않았다.

 

재현은 다급한 목소리로 통신을 계속해서 보냈다.

 

이카루스 호, 듣고 있습니까?

 

응답 바랍니다.

 

뭔가 이상했다.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대답이 오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다. 어떠한 잡음조차 들려오지도 않았고, 그저 계속해서 그 우주선이 발사하는 삐- 삐- 거리는 구조신호만 계속될 뿐이었다.

 

응답 가능한 인원이 있습니까?

 

거기 누구 있나요?

 

“잠깐, 재현아. 잠깐.

 

유이 씨가 다급하게 신호를 보내는 재현 씨를 말렸다. 헤드셋을 끼고 마이크에 다급하게 외치던 그는 유이 씨를 바라보았다. 그가 재현을 부른 이유를 다른 두 사람은 알아챈 모양인지 경악하거나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러세요. 선배…?! 지금 구조 신호를 안 보내면….”

 

“지희 씨는 이걸로 복도에 있는 로봇 몇 대좀 호출해줘요. 이름 색이 푸른색인 녀석들 두서대랑 녹색인 애들 네 대.”

 

나는 그가 던지는 단말기를 받았다. 터치스크린을 몇 번 조작하니 복도에 있는 로봇들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었다. 유이 씨의 말대로 했다. 푸른색은 다리가 달린 모델이었고, 녹색인 애들은 에드처럼 바퀴로 움직이는 모델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냐니까요…!”

 

“조금만 더 확대해봐요, 유안. 저기 저, 성조기 있는 부분.”

 

스크린 속의 우주선이 조금씩, 조금씩 커다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 작지 않은 크기의 우주선이었다. 그렇지만 헤르메스 호에 비교해서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배율을 조금만 높였을 뿐인데도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

 

깨끗한 성조기가 붙은 표면 아래에는 우주선의 이름이 나타나 있었다. 이카루스 III. 며칠 전에 신호가 사라진 우주선은 이카로스 IV.

 

“너무 늦었어.”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입을 벌리며 놀라고 있을 때, 유이 씨만큼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뒤쪽에서 문이 스륵, 하고 열리며 몇 대의 로봇들이 들어왔다. 단체로 오면서 ‘부르셨습니까?’라는 기계 합성 목소리를 냈다. 선원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유이 씨가 어떤 명령을 내릴 지 대충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체라도 찾아서 지구로 보내던 페니안으로 가져가던 하자. 도킹은 하지 않는다. 소형 우주선에 로봇을 태워 안쪽을 원격으로 조사한다.”

 

나는 급하게 노트북으로 이카루스 III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이 연결된 건 아니지만 백과사전이 탑재되어 있어, 내가 지구를 떠날 때까지의 기본적인 지식은 내장되어 있었다. 우리 앞에 있는 저 황량한 우주선에 대한 정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게 30년 전에 발사되었다는 걸 아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선원들은 우주선을 최대한 가까이 댄 뒤에 로봇들을 보내는 작업을 실시했다. 유이 씨가 부르라고 했던 로봇들은 탐사 기능이 있는 로봇들이었고, 그 중에서 바퀴만 달린 로봇과 팔다리가 달린 로봇들로 나뉘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바퀴가 있는 로봇은 형태를 바꾸기 쉬웠고, 다른 로봇은…. 뭐, 말 안해도 알 것이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점이 바로 수족이지 않은가.

 

나는 조종실 구석에서 선원들의 브리핑을 들으며 기사를 작성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로봇들과 함께 밥을 가져다 주었고, 최대한 선원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도왔다. 이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쪽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조사가 진척되면 진척될수록, 점점 암담해졌다.

 

“생활 공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재현은 어두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우주선 내부는 어둡고 기온이 낮으며 황량했다. 불이 전부 꺼져 있어 귀신 아니면 에일리언이라도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발사된지 30년이 지난 우주선인데도 사람이 들락날락 거리지 않았고, 간간히 보이는 테이블 위의 찌꺼기나 쓰레기 같은 물품들이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가 어떤 초자연적 현상에 의해 없어진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했다. 공포 게임을 하거나 호러 SF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음악도, 과장된 연기나 사운드도 없는, 고요하고 묵묵한.

 

「라운지, 생체 반응 없습니다.」

 

「주방 역시 없습니다.」

 

「창고, 생명체의 반응으로 추측되는 단 하나의 증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봇들은 각자 절망적인 소식을 들고 왔다. 나는 재현이 보고 있는 스크린을 보고 있었는데, 이 로봇은 창고 부근을 다니며 쓰레기 뒤지듯이 이카루스 III에 있던 물건들을 조사했다. 평범한 생활용품부터 연구 내용을 적은 것 같은 종이들, 어딘가의 부품으로 보이는 금속 덩어리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그 중에는 테이프 같은 것도 있었다.

 

“저거 챙기라고 하면 안 돼요?”

 

나는 그 테이프에 어떤 목소리가 있을지 괜스레 궁금해졌다. 선원들이 무언가 중요한 걸 녹음했을수도 있지 않은가.

 

“음성 자료도 중요 물품이라 알아서 챙길 거에요.”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테이프들을 주섬주섬 담아 제 몸 안에 수납하기 시작했다. 나는 리우쉰이 확인하고 있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로봇은 동력실 근처를 순찰하고 있었다. 이제 다음은 수면실로 향할 차례였다.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있어야만 했다. 적어도 잠들어 있는 거라면, 모종의 사정이 생겨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면….

 

「수면실, 생체 반응 없습니다.」

 

로봇은 그렇게 말하며 수면실 안쪽으로 향했다.

 

 

 


 

 

 

탐사 8시간 후.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발견하긴 한 것이었다. 수면실에 사람들이 있었다. 생체 반응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냉동수면이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세포를 하나하나 극저온에서 얼려 인간을 보존하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로봇의 말에 나만 동요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선원들의 대화 기록이나 개인적인 일기장을 통해 우주선이 왜 이곳에 표류하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헤르메스 III 역시 페니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와 함께 출발한 우주선보다 기술이 낙후됐고, 그렇기에 항법 AI나 속도, 시설 등이 헤르메스 호에 실린 것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이 우주선에는 8명이 탑승해 있었고, 기록에 따르면 모두 깨어 있다 점차 한 명씩 냉동수면을 진행했으며, 마지막에는 2명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즉, 이카루스 III가 표류되기 직전에는 두 명이서 나머지 6명을 온전히 이끌고, 페니안까지 데려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어떤 로봇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로.

 

다른 선원들은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원들이 전원 냉동수면을 택해야만 했던 이유를.

 

재현은 식량과 연료 부족에 대한 가설을 세웠고, 리우쉰은 우주선 한쪽이 파손되어 있었다는 걸 증거 삼아 소행성 추돌로 인한 비행 기능의 상실을 주장했다. 장유안은 낙후되어 연료를 많이 잡아먹는 냉동수면장치를 근거로 들며 무리하게 오랫동안, 빨리 비행하여 페니안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다른 우주선의 도움을 기다리며 구조 신호를 켜고 자신들도 수면에 들어간 건 아니냐고 강하게 말했다. 평소에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던 유이 씨는 이번만큼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가설을 종합했다.

 

나는 로봇이 가져 온 선원의 테이프를 살펴 보았다. 리처드 윌리엄스라는 이름이 뒷면에 적혀 있다. 토론에서 엿들은 바로는 가장 마지막에 남아, 냉동수면을 가동시키고 우주선을 절전 상태로 돌려놓은 장본인이었다. 아무리 30년 전이라고 해도 이미 명맥이 끊기다 못해 사라져버린 매체인 테이프를 왜 우주선에서 썼는지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때로는 좋은 기억을 아날로그의 형태로 남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리처드도 그리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열띤 토론을 벌이는 조종실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에드에게 이 안에 무슨 트랙이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로봇 친구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나를 데이터 분석실로 데려갔고,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테이프를 스캔 기계에 넣고 그 결과를 보았다.

 

내 취향인 노래들이 많았다. 록이 마지막 불꽃을 남긴 시대의 노래들. 버브의 <Bitter Sweet Symphony>,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나 <Don't Loock Back in Anger>, 고전 반열에 있는 데이빗 보위의 노래들이나 롤링 스톤즈의 노래도 있었다. 아는 밴드들의 이름이 나와서 반가웠다. 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길 원했으니까.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명씩 잠들기 시작한 선원들. 이 테이프에 있는 사람들의 노래조차 리처드를 구원하지 못했다. 그가 혼자서 바라본 우주를 생각했다. 닳디 닳은 테이프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를, 귀를 혹사시키는 일렉트릭 기타의 소음을, 심장을 울리지 못하는 드럼 소리를 떠올렸다. 희망이 되지 못하는 음악은 고문일 뿐이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찾아오면, 무엇도 그를 치유시키지 못한다. 어떤 이가 부르는 희망의 찬가조차도.

 

나는 리처드의 고독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왔다. 눈가에 흐르는 걸 닦았다. 얼굴도 모르는 그 리처드라는 사람을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해야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알 것 같기도 했다. 창 밖을 보며 지구에 두고 온 제 사람들을 생각해야 했던 그 외로웠던 사람을, 결국 그를 견디지 못해 우주선의 모두와 함께 잠들며 언젠가 함께할 날을 기다린 사람을.

 

이어폰을 끼고 오아시스의 <Stand By Me>를 작은 볼륨으로 틀었다. 테이프에도 있는 노래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 옆에 있어줘

 

내 옆에 있어줘

 

 

 


 

 

 

 

 

우리는 이카루스 III에 여분의 연료와 깨어난 사람들을 안내할 로봇 몇 대, 그리고 메시지를 남기고 떠나기로 했다. 완전히 끌고 가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4년 넘는 우주 비행을 아주 거추장스러운 부속물을 달고 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연료 문제도 연료 문제였지만 소행성에 부딪힐 위험이 너무 컸다.

 

영광스럽게도 나도 이카루스 III의 사람들에게 짤막하게 몇 마디를 했다. 나는 특별히 리처드 씨의 이름을 언급했고, 언젠가 페니안에서 만나면 나를 찾으라고 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할머니가 된 후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이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테니까.

 

어쨌든 가야 할 사람은 가야 했다. 산 사람이 살아야 하듯이.

 

제가 떠날 때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새 사람이 되는 거라고. 우리들은 어쩌면 새로운 인류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지구에서의 삶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말아요. 신경 쓰지 말자구요. 그만큼 더 좋은 인생이 저 너머에서 기다릴테니까.

 

재현이 내 메시지를 번역해주었는데, 나는 영어로 된 그 말을 읽으면서 제법 잘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Nevermind>를 활용한 부분이 재치 있다고 생각했다. 리처드 씨가 이걸 좀 알아주면 좋을텐데. 영어로 번역할 때 그 부분을 신경 써달라고 했으니 알아 들으리라 믿었다.

 

메시지를 녹음한 뒤의 일들은 선원들의 몫이었다. 이카루스 III에 있을 로봇들을 보내야 했고, 루틴도 다 일일히 정해줘야 했다. 로봇들은 가장 먼저 내부 시설을 다시 가동하고, 헤르메스 호에서 식량을 조금 떼어 보급하며 수리할 예정이었다. 그런 뒤에 사람들을 차례차례 냉동수면에서 깨워 다시 페니안으로 향하게 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일일히 설정하고 보내는 건 어렵진 않지만 귀찮은 일이라고, 유이 씨는 말했다.

 

“지희 씨한테 여러 모로 잊지 못할 기억을 안겨준 것 같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안 될텐데.”

 

나는 그의 웃음을 따라한 듯한, 털털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더 있으면 불안해서 못 깨있을 것 같아요.”

 

일련의 일들이 끝난 뒤, 우주선은 궤도를 수정하여 다시 페니안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별 다를 것 없는 우주선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약 사흘 간에 걸친 모험이었다. 물론 내가 한 건, 거의 없지만. 전혀 없다고 봐야 하지만. 뜻 깊은 나날들이었다.

 

다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외롭고 답답하지만, 그 날 이후로 뭔가 변한 것 같았다. 미련 없이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미련이 없다면 더 이상 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재현과 술을 먹기로 했다. 우주선에 있는 보존용 알코올은 지독하게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술김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냉동수면 하려고요.”

 

“정말요?”

 

그는 의외라고 말했다. 우리는 안주라고 할 것도 없어서 그냥 내일 먹을 식사용 쿠키를 조금 떼서 깨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구의 온갖 음식들이 그리웠다.

 

“이카루스 III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오히려 죽어도 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잠들기 전까지 최대한 잘 해드려야겠다 생각했어요.”

 

“굳이 그때만 잘해줘야하는 이유가 있는 거에요?”

 

“외로운 건 모두 싫어하잖아요.”

 

“저 잠들기 전까지만 그렇게 해줘요, 그럼.”

 

그는 내 말에 미소 지었다. 알코올은 달지 않고 썼다. 적지 않은 일들을 보고 경험해왔는데도 이건 맛있어지는 법이 없었다. 아니면 우주선에 실린 술이라 그런진 몰라도.

 

“마음을 바꾼 이유라도 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엄마 얼굴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바로 지워졌다. 요즈음엔 그 생각만 하면 30분은 기본으로 감정을 정리하는 데에 소요해야 했는데도. 앞에 사람이 있어서인지 금방 잊어버릴 수 있었다.

 

“미련을 버리니까 낫더라고요. 여기서 지구의 시간으로 살면 뭐해요. 우주도 실컷 봤고, 기사로 쓸 만한 사건도 겪었고. 페니안으로 가야죠, 저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뜸을 들이고 엄마 이야기를 했다. 걱정이 되서 된통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과장이었다. 우주를 보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건 정말 내 호기심에 기인한 것이었다. 미련으로만 내 수면 거부를 설명하긴 어렵다.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조금 취기가 올라왔을 즈음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페니안에서의 삶이 어떨 거라고 생각해요?”

 

재현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를 비웃고 있었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는지 대답이 잠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제정신을 차리려 쿠키를 계속해서 씹었다. 퍼석한 맛이 난다. 초콜릿 칩이라도 있으면 좀 덧나나. 우주에선 할 수 없는게 너무 많다.

 

“그래도… 지구보단 낫지 않을까요? 지희 씨는 재미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척요.”

 

“그렇군요….”

 

“그렇지만 저희는 싱거운 삶을 살 기회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는 이전 세대에게서 지구를 빼앗긴 사람들이고요.”

 

재현은 내 말에 동의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잔을 부딪히는 소리와 딱딱한 쿠키를 씹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재현이 말했다.

 

“한 명이라도 깨어 있어서 다행이에요. 유이 선배나 유안이, 쉰이랑 같이 있으면 우주선 얘기 밖에 안하거든요. 하여간 워커홀릭들이야.”

 

“술친구 생겨서 좋단 거죠, 그거?”

 

그는 부정하지 않는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 즈음에 잔을 한 번 더 부딪혔다.

 

“사람은 혼자 못 사나봐요.”

 

몇 번을 동의해도 모자라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에드에게 건강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전부 정상으로 나왔고, 추가로 처방을 받는 일도 있었다. 몇 시간 뒤면 선원들의 안내에 따라 냉동수면을 할 예정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도 했고 기사도 충분히 썼으니까. 페니안에 가서 몇 주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양이다. 글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뭐….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야하나.

 

이어폰에서는 늘 그랬듯이 폭발할 듯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노래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중요할 때나 감정적으로 힘들 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돌아오는 법이었다. 리암 갤러거가 감미롭지만 힘있게, 나른하지만 확실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특별한 사람이 변해갈까,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이상하게 흘러갈까.

 

좋아하는 밴드들의 노래를 들으며 몇 년 간 잠들러 가는 기분은 상쾌했다. 내일을 기다릴 수 있었다. 어제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기억하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선원들과 포옹을 했고, 특히 재현과는 더 길게 했다. 깨어난 뒤에는 꼭 한 번 더 술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나는 몇 시간 뒤면 너를 볼테니, 너는 몇 년간 기다리고 있어달라는 말 역시 했다. 재현도 곧 다시 냉동수면을 할지도 모르지만. 만약이란 게 있잖아. 유이 씨에게는 선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달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했고,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엄마 다음으로 가장 멋있다는 말을 했다. 나머지 두 사람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했고. 에드를 안아주기도 했다. 감정을 느끼진 않았지만, 예의상인진 몰라도 화면에 하트를 띄워주었다.

 

헤르메스 호를 떠날 것도 아닌데 괜히 집을 떠나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지구의 내 방을 떠올렸다. 짐이 하나도 없는 풍경이 어색했던 그 때를. 이제서야 떠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집을, 엄마를, 그리고 지구를.

 

나는 수면장치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몇십 분 정도 기다려야하지만. 이미 난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은 상태였다.

 

이제 인사할 차례야.

 

안녕히, 지구.

 

페니안에서 봐.

댓글 2
  • No Profile
    정상훈 22.09.01 22:32 댓글

    음악 취향이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냥 읽었을 때도 재밌었고, 주인공이 떠나오는 지구가 우리 각자에게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때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잘 풀어주신 것 같습니다.

  • 정상훈님께
    No Profile
    글쓴이 헤이나 22.09.13 13:02 댓글

    정성스럽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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