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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부터 필자들이 각 단편에 대해 단평을 한 것을 모아 기획 기사로 엮게 되었습니다.
익명이나 다른 예명을 바라시는 분은 그 이름으로 올려지게 됩니다.

1. 페넬로페 - fool

블랙홀을 건너는 시대가 와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 이라는 걸 생각했다. 인간은 미래를 그려도 환상을 그려도 지옥과 천국을 그려도, 결국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도. (미로냥)

2. 옥션 - 赤魚

환상이라는 건 오히려 '리얼'하지 않은가? 이런 글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미로냥)

두 인물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던 단편이다.
단편 전체의 분위기이며 수호의 시선이기도 한 냉소와 조소는 두 인물이 선명하게 대조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진우와 수호가 그렇게 대조되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시니컬한 섬뜩함이 이렇게 선명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성장을 보면서 웃고 있는 수호는 아내와 자식까지 사들여 인생을 꾸려나가는 남자다. 그가 여기는 즐거움은 여자였고, 그는 여자를 구입해서 행복해졌고, 그렇게 행복을 구입했다. 그의 인생은 사고팔고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편이 재미를 주면서도 섬뜩한 건 발상이 현실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들은 사온 물건을 보고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애완동물을 제2의 가족이라 여기고 사랑하면서 펫샵에서 사오지 않는가. (추선비)

소재가 돋보이는 단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굳이 두 친구의 성격 대비가 필요했을 지가 의문이네요.
두 인물의 거창하게 소개한 배경 역시 마찬가지로, 이야기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서두가 화려했던 것에 비해 뒤로 갈수록 호흡이 빨라지면서 이야기를 요약해버린 감이 있습니다. 두 인물의 소개 이후, 수호가 진우에게 사이트를 알려주고 설명한 이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끝나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가연)

3. 어떤 밸런테인데이 - 赤魚

처음에 읽을 때는 이렇게 전개될 줄 몰랐는데.. (...) 적어님 미워요!!!! (.......) 적어님이 이야기하시는 잃어버린 시간이나 소년, 소녀성은 명쾌하면서도 깊어서 좋아요. 어줍잖게 이런저런 감상을 늘어놓거나 일부러 쿨한 듯 짤막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흩날리는 것보다, 훨씬 더 직격해 들어와서 무서워요. (루나벨)

4. 키리에 - 루나벨

마지막을 향해 치닿는 감각이 좋았다. (미로냥)

5. 전설의 대마법사 - 가연

잘 생각해 보면 트라우마도 파국도 상처도, 아주 일상적인 찰나에서 기인한다.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미로냥)

얼핏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행간에 슬픔이 뚝뚝 흘러요. 정말로요. (루나벨)

6. 신체의 조합

처음 읽었습니다.(게을렀나...)
우주가 생물의 몸과 같은 모양이라면 그런 세계가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안의 세포들도, 손상을 입게 되면 다른 정상 세포의 양분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자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 중 자살을 '거부'하는 세포들이 '암'이 되어 자신들이 사는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그런 것을 생각하고 쓰신 것인지 아닌지는 언급이 없으시니 모르겠습니다만... 현저하게 낯설면서도 어딘지 낯설지가 않은, 슬픈 세상이었어요.
'어딘지 낯설지 않게' 만드신 것은 뛰어난 묘사력 때문이겠지요. 가연님이 원하시는 향기가 나고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세상, 이미 창조하고 계신 듯 합니다. (ida)

7. 낙오자 - 은림

균형 잡힌 이야기, 설정, 감각. 그런데 3%정도 부족한 기분 때문에 간질간질하다.(미로냥)


8. 태양을 삼키다 - 은림

제목이 이미 <태양을 삼키다>입니다. 제목에서 몇가지 기대를 할 수 있어요. 이게 상징이겠다, 라거나, 무슨 암호인가, 라거나, 진짜 태양을 삼켰나? 등등. 소설은 은은한 암시로 이어질 수도 있고 추리로도 이어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서두에서 다시 제시됩니다. ‘나는 태양을 삼켰다/정말이다.’

이렇다면 이건 말 그대로 주인공이 정말 태양을 삼킨 겁니다. 최소한 쓴 사람은 독자가 그렇게 의식하기를 바라고 있어요(이 시점에서는). 이제 이 불가능한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가 하는 물음이 소설 전체에 대해 독자를 이끕니다. 독자는 소설 구조를 대충 예상하게 됩니다. 수수께끼 같은 일 -> 언제 어디서 어떤 배경으로 그 일이 일어났다 --> 왜 혹은 어떻게 된 일일까? 풀어가는 과정 --> 답이 밝혀지고 엔딩. 실제로 소설의 구조는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자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수수께끼같은 일, ‘태양을 삼켰다’ 두웅 주고. 언제 어디서 어떤 배경으로 - 졸졸 흘러가고. 갑자기 이 여자가 흡혈귀라는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되겠죠. 이때 바로 그 일이 일어나는데 - 음.

<언제 어디서 어떤 배경으로 그 일,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이게 한 단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배경과 언제, 어디서를 만들어오신 것 아닌가요? 독자는 지금까지 그 흐름을 따라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바로 그 일이 일어나야겠지요. 이 일이 발발하는 시점에서의 태양은, 이전의 적도 사진에서의 태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태양’은 사건상 어떤 필연성을 띄고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어요. 작가분도 이미지를 드러내는 표현을 많이 쓰셨습니다만.

이미지로만 연결하는 것이 거의 필연성으로 보일 만큼 강하게 보이려면, 이미지 자체가 정말 끔찍하게 강하든지, 최소한 이미지가 ‘바로 그 일’ 대해 필연적인 의미를 띄어야 할 겁니다. 사실 전자를 할 수 있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암시도 딱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너무 약해요. ‘태양을 삼키는’, 서두에서도 두 줄의 문장으로 따로 강조되었던 그 행위(이렇게까지 강조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요)가 일껏 여기까지 와서는 모자라거나,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후에 독자가 다시 한번 글을 돌아보게 하는 필연성이 제시되느냐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필연성이라기보다는 해석상 의미있을 법한 구도가 있긴 합니다만, 그건 사후적 해석이지 당시 상황과는 관계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하나 더 덧붙여봅시다. 흡혈귀가 된 우리 주인공이 기억의 조각을 짜맞추는 걸 봐요. 어떻게 짜맞추었는지는 마지막에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 동감하기에는 전제가 너무 적습니다. 왜 일출을 보러 돌아다니면 기억 조각을 얻을 수 있는 걸까요?
그 문단에서는 설령 그럭저럭 설명이 된다고 해도, 소설 전체와, 주제와 관련해서 이건 무슨 의미가 있지요? 맥락에서 이 사람의 이 행위는 어떻게 읽어내야 합니까? 왜 이 사람은 기억을 되살리는 데에 이런 방법을 택할 수 있었고, 왜 이런 방법이 실제로 기능했을까요? - 수수께끼가 풀리는 장면은 소설의 클라이막스 아닙니까. 끝에 갑자기 튀어나온 한 두 문단으로 설명이 끝나버리는데, 그 설명은 전체 맥락에서 가야 할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막판인데요.

구조가 전형적이면서도, 이런 허술함이 중요한 두 부분을 포함해서 여기저기 있다 보니 사실 맥이 빠집니다. 엔딩의 답은 좋게 느꼈습니다. 왜 그것이 태양이고 세례인지, 왜 그는 지금 흡혈귀인지, 이해가 되거든요. 그런데, 다시 질문: 과연 저는 바로 이해를 한 걸까요. 그러니까 저는 과연 일차적인 감각만을 이용해서 이 엔딩을 이해한 걸까요?

위의 말을 고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왜 그것이 태양으로 상징되는지, 왜 그는 지금 흡혈귀로 상징되는 바인지> 이해가 됩니다.
저는 사실 이 소설 전체가 상징물로 쓰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이게 전혀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 애초에 이런 소설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상징들, 장면들을 하나씩의 의미로 해석해야 할 거 같은 압박을(매력을!) 주는 소설이고, 실제로 해석하자면 상당히 완결된 구도의 흐름이 짚힙니다(제 해석이 맞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이런 완결된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분명한 특성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저 상황의 흐름만으로 보자면 어딘지 나사가 풀려 있다는 겁니다. 해석은 상황에 의해 독자에게 먹혀야 하는 거지, 독자가 사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 22호에서 몇몇 단편을 맘에 두었고, 단평을 쓰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게으름이 겹쳐서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은림 님의 글은 이것보다 낙오자가 더 좋았고, 두 개를 같이 다루려고 했는데 이 꼴이 되었군요...OTL 다음 기회를 노려봅니다(...) (kippa)

어딘가 아쉽지만, 손 대면 흐트러질 것 같아 손 댈 수 없는 기분. (미로냥)

9. 천사가 지나갔어 - 로비

우울한 밤에, 가만히 스크롤을 내리면서 보면 눈물이 핑 돈다. 여기 천사가 지나갔다. 어쩌면 이젠 없다. (미로냥)

로비님의 첫 글로 보게 된 것이 문근영 대통령이었습니다.
감각적이지만 과연 그 이상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소녀들을 구하는 건 소년이다, 라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보일 법도 했습니다.
다음 글을 보면 로비님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지요.
다음 단편인 “스타벅스 기행문” 역시 감각이 돋보였지만, 역시 보이는 것 이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글에 꼭 보이는 것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로비님 글이 그러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던 거죠.
마르셀 뒤상은 왜 재채기를 하지 않는가에 이어 천사가 지나갔어, 까지 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경계선에 있는 것 자체가 로비님 글의 매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렌지 쥬스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요.(가연)

10. love affair - 추선비

날카로운 색채가 가슴에 흠뻑 스미는 느낌이었어요. 깊이 남는 시를 읽은 것 처럼 마음이 계속 저릿저릿하네요. (루나벨)

11. 판타스틱 동상이몽 - 정대영

마지막 문장이 크리티컬이네요. ㅇ.ㅇ (...) 댕님 글을 읽으면 아,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더불어 이제 좀 남자분이 쓰시는 글이구나 라는게 보이네요.(....) (루나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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