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거울 거울 21호 단편 단평

2005.03.26 00:0103.26

이리스 (e a r t h _ s e a @ h a n m a i l . n e t )



0. 들어가며

  16개의 작품이 한꺼번에 업데이트 된 기염을 토한 21호였다. 다른 달보다 며칠 짧은 2월인데도 이렇게 글들이 많이 쏟아지다니. 두 글을 내신 작가분이 은림 님, 댕!님,  적어 님, 명비 님 네 분이나 되신다. 여는 이번 호를 처음 보고 으악, 하고 소리를 쳐야 했다. 16편 모두에 대해서 짧아도 평을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무리일 듯, 가능한 대로 감상을 붙이려고 한다.

1. Love Affair – 추선비

  추선비 님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다. 글이 그 때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최근의 뱀파이어 연작을 포함한 다른 글과는 달리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산의 도시'의 통령 부인이 지하조직의 한 남자와 벌이는 불륜을 부인의 시점으로 서술했다고만 하면 이 이야기의 매력이 감소할 위험이 있다. 도덕적으로 정점에 서 있는 것 같은 상징물인 '산의 도시', 그 곳의 모든 체계를 수립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통령 부인이, 그 세계의 체계와는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 조직의, 한 남자를 사랑해 버린다. 논리와 감정, 도덕과 인성이라는 대립 구조가 이 글의 중심을 이룬다. 산의 도시는 보석조차 장신구로 사용하지 않는 극도의 절제된 사회다. 사람들은 규율을 어긴 사람에게 신체 절단이나 즉결 처분을 내릴 정도로 엄중하다.

  그런 사회에서, 도시 밖의 '황무지'에 관한 글을 쓴 여주인공 인애는 근본적으로 이단아일 수 밖에 없다. '꽃처럼 웃어줄 수 없는' 여자인 인애는, 황무지의 그림을 그린 원섭에게 보다 어울린다. 그러나 그러한 스토리보다도 이 글은 전적으로 인애의 중심에 맞춰져 있는 서술에 몰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산으로부터 추방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인애가 만나는 것은 원섭일 지 모르는,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으리라고 여겨지는, 두개골이다. 로맨스 소설과 같은 해피엔딩을 취하지도 않고, 취할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섬뜩하리만큼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이 글에서도 추선비님 특유의 절제된 문장이 간혹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장면은 서술 방식까지 바뀌어져 있어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건이 모두, 마치 현재를 이야기하는 듯한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의 사건에서도 또 회상이 나타나며 현재의 사건이 그 전체를 회상한다. 마치 액자처럼 현재가 과거를 끌어안고 있으며, 과거는 현재 시점처럼 다루어진다.  생동감있는 서술이 글의 매력을 더한다.


  다만 이성과 감성, 규율과 인성의 대립이라는 구조가 너무 전형적이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의 도시와 황무지의 대조, 강현과 원섭과의 대조와 같이 모두 양분되어 있는 구조는, 다소 어려운 이 소설의 내러티브에 비해서 단조롭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대립 구조가 더 복잡해졌더라면 글을 이해하기는 보다 어려워졌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선악의 구도만큼이나 이성과 감성의 대립은 흔한 이야기가 아닐지. 추선비 님 특유의 독특한 스토리가 아쉽다.



2. 전설의 대 마법사 – 가연

  시간 여행은 자주 SF에서 다루어지는 소재이지만, 판타지의 소재로도 상당히 매력적이구나 느낄 수 있었던 글이었다. 마법을 통해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고, 그 일로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쉬운 마법이지만 '바다에서 채취한 금'이라는 비싸고 구하기 힘든 재료를 요구한다는 제한.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다만, 전 생애를 걸어서 단 한 순간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마법사의 비극적 결말을 다루고 있는데, 글의 논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가 모호한 것이 문제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평범하고 개성이 부족한 문장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까지 밋밋하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지. 비극적인 분위기를 내려 했다면 더욱 몰입되는 것이 좋고, 희극적인 분위기를 내려 했다면 글투 역시 조금 발랄한 편이 낫지 않았을까.

  '그 이상의 장식은 없는데도 이 날이면 어두침침한 마법 학교도 화사하게 빛났다',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프리안은 결심했다'와 같이 어색한 문장들이나, '그 솜털이 그의 심장을 더 거칠게 두들겼고 마지막 용기를 주었다'와 같이 직역한 것 같은 번역투의 물주 구문이 글의 몰입을 막는 것도 아쉽다.

  가연 님의 글에서 묘사가 점점 강세를 띄어 가더니, 최근에는 묘사 역시도 맥이 빠져있는 듯해 아쉽다. 최근에 번역물들을 많이 읽으시는 게 아닐지. 전체적으로 날 것을 읽는 듯이 걸러지지 않은 문장들이 많아서, 짧은 글을 읽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게 만든다. 구성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인물간의 관계가 복잡하지도 않은 글이 실제보다 길게 느껴지는 건 문장의 흡인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작가분께서 최근에 슬럼프를 겪으시는 게 아닌지 염려된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3. 태양을 삼키다 – 은림

  작가 분의 평소 글과는 전혀 달라서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좋고 싫고의 의미가 아니다. 21호 글을 읽으면서 필진들이 서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는데, 그 대표적인 글이 바로 이 '태양을 삼키다'였다. 작가분 특유의 짧고 경쾌한 문장 대신에 안정적인 문장이 자리했다. 대화도 극도로 줄어들었다. 짧은 문장과 많은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이 자칫하면 이야기가 산만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바람직한 변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장은 직선적으로 진행되는 평소의 플롯에는 너무 지리해질 수가 있는데, 단락 하나에 독자가 멈추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단조롭지 않도록 플롯을 역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는 태양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피를 마시지 않고 변화해버린 흡혈귀를 주인공이자 화자로 삼고 있다. 실연당하고 사회에서도 별반 의미있는 삶을 살아간다고는 할 수 없는 젊은이인 '나'와, 80살이 조금 넘은 젊은 흡혈귀 '희정', 그리고 나의 전 애인인 '원희', 세 사람 정도가 글에서 중심이 된다. 글의 서두에 깡패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별로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깡패들의 등장 씬이 글 전체의 분위기와는 별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부분 전체를 빼어 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면 자체가 어색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 중심은 내가 삼킨 태양의 실체를 아는 것이고, 중심을 강하게 잡기 위해서는 군더더기는 가능한 한 제거해주는 편이 좋겠다.

  글의 중심이 되는 '태양'의 실체가 결말에서 드러나는 것이 반전인지, 마땅한 귀결인지 모호하다. 반전으로 보기에는 그 전에 '원희'를 제외한 다른 가능성이 아예 없어서 아쉽고, 마땅한 귀결로 본다면 주인공 '나'의 반응이 지나치게 격정적인 것이 아닐지.

  그러나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문장 가운데 '사진은 오랫동안 열지 않은 이메일 함 속에서 스팸메일에 짓눌려 바짝 졸아 붙어 있었다. 마치 잊어 달라는 원희의 공격에 짓눌린 내 미련처럼.' 같은 톡톡 튀는 표현들이 녹아 있어 글에 감칠맛을 더한다. 감성적인 분위기에 거스르지 않게 촉촉한 문장 역시도 글의 완성도에 일조하고 있다. 아직은 전체적으로 플롯의 안정성이라든가, 결말 부분까지의 진행 같은 점에서 매끄럽지 않은 점이 보이지만, 앞으로 지켜볼 재미로 남겨두도록 하겠다. 작가분의 건필을 기대한다.


4. 낙오자 – 은림

  은림 님의 개성이 십분 발휘된 글이었다. 앞서 다룬 '태양을 삼키다'와는 대조적으로 대화가 스토리의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세 줄이 넘는 단락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서술이 간략하다. 전체적으로 상당한 길이인데도 지루하지 않게 빨리 읽어진다.

  내용은 가볍지 않다. '씨앗'과 '열매' 등으로 치환된 원형적인 소재들과, 고난을 극복한 연인들의 러브스토리, 현실에 좌절한 소녀의 죽음, 여러 가지 소재들이 들어가 있는데도 서로 거스르지 않고 하나로 융합 되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독서가 쪽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데도 무척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서, 오히려 중심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메이든의 사랑 이야기가 빛이 바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시험을 거부한 것은 일곱 번째 남자 때문이 아니라, 여섯 번째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부분도 사소한 부분이지만 작가의 재치가 보이는 듯해 좋았다.

  다만 마지막의 부분에 어머니가 나타나 메이든의 시체를 수습하는 부분은,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을까 싶을만큼 의아했다. 메이든-이그노, 독서가-어머니,의 양대 대립 구조가 결말 부분에 가서 흐트러지면서 메이든와 어머니의 화해도 아니고 대립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시체를 수습해준 것이 메이든을 용서해서인지, 아니면 메이든이 낙오자가 되어서 자신의 명예에 흠집이 생길까 염려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일단 피었다면 누구도 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낯설다. 오히려 화단에 물을 주고 떠나는 행동이 후자 때문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한 이 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 글은 분명 재미있는 글이지만,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심이 흐릿하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5. 마왕에게 꽃다발을 – 미로냥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다 싶었더니, 글의 말미에 작가분의 덧글이 있었다. '머나먼 시공 속에3' 이라는 게임 속 캐릭터에 반해 쓰셨다고 한다. 해본 적은 없지만, 일본 게임 특유의 캐릭터성이 잘 살아있는 게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글에서 등장하는 '선생님' 역시도 일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할 법한 인물인 걸 보면, 정말 작가분이 최근에 그 게임에 푹 빠지신 게 아닐지.

  레이디 밀피앙쥬, 티파렌과 선생님, 황태자와 폐태자, 중심 인물들 외에도 티파렌의 아버지, 오빠, 티파렌을 사모하는 이엘파 등이 등장하고 스토리 역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이 글은 중편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구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대사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연상시키다보니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후자가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미로냥 님 특유의 유려한 문체나 정교한 묘사에 눈길이 가지 않고, 대사와 캐릭터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버리는 것이다.

  레이디 밀피앙쥬의 성격이 다소 들쭉날쭉한 것이 조금 아쉽다. 선생님을 대하고 있을 때는 10살도 되지 않은 여자애 같은 느낌이더니, 아버지를 상대할 때는 20대 중후반의 여성 같고, 황태자와 함께 있을 때는 1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뒤로 가면서 검술 솜씨나, 감정적인 면들이 서서히 드러나긴 하지만 단편에서 그렇게 긴 행보를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특히 레이디의 대사가 외국 번역물의 말투와 비슷한 것도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작에 비해서 스토리성이 확실히 강화되었다는 점은 높이 살 만 하다. 감정 묘사가 능하신 반면에 사건의 플롯이 빈약했던 것이 전작들의 단점이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확실히 사건이 중심에 와 있다. 단편에서 이야기의 반전이 2회 이상 되면 독자가 식상해 버리기 쉬운데, '마왕의 등장'과 '실제의 현실'이 바로 결말부분에서 모두 나타나다 보니 결말이 산만해진 느낌이 든다. 실상은 이랬더라- 라는 것이 반복되면 마지막 결말 까지도 그렇게 미덥지 않은 느낌이 들 수 있다.

  더욱 건필을 기대한다.


6. 피곤하면, 이리와요, 혜경씨 – 정대영

  판타스틱 시리즈가 아닌 정대영 님의 단편은 오랜만이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판타스틱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 보아도 될 글이 아닌가 싶다.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판타스틱 동상이몽' 보다도 더 판타스틱 시리즈 다운 글이다. 여성 화자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혜경씨는 핸드폰을 그렇게 곱게 사용하지 않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다. 예쁘고 특이한 악세사리 가게를 친구와 같이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대 거리에서 라즈베리 토핑을 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성 친구를 자매처럼 사랑하는, 그런 성인 여성이다. 평범하기 때문에 소식이 점점 끊어져가는 친구와의 관계에 불안해 한다. 언젠가 뚝 끊어질 핸드폰 악세서리처럼 먼 곳으로 간 친구의 소식이 끊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혜경씨는, 세일 기간을 피해 수의를 마련하듯 옷을 사고, 악세서리를 고르고, 속옷까지 새로 장만하며 친구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흐지부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멀어지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혜경씨가 백금 날개의 부재를 깨닫고 친구와의 이별 의식을 하는 장면은 서글프다. 거울을 보며 오늘 나는 너무나 아름답구나, 하고 말하는 장면도.

  하지만 이별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게 정리되는 것이던가. 시간이 흘러 덧없이 맞이할 수 밖에 없던, 최후 통첩으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던, 이별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혜경씨는 카페 앞에서 결국 또 유예를 택한다. 아직은 이별의 시간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중얼거리며,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금방이라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대하는 혜경씨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어느새 독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 그래- 그 때 그 친구, 정말 영원할 것 처럼 느껴졌었지 라고.

  작가분이 제목을 붙이신 의도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여는 혜경씨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한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영혼같은 친구가 멀어져서 삶에 지쳐서 힘들고 피곤하면 이리오라고, 그렇게 혜경씨를 달래는 느낌이다. 카페에서 오랜 뒤의 만남을 준비하듯이, 모든 삶의 외로움을 그렇게 유예하고 기다리며 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가끔 어이없는 맞춤법 실수가 눈에 띄는데 ( 라즈베리를 로즈베리라고 쓴다거나, 체와 채를 혼동한다거나 하는 부분이다.), 오타인 것이 분명한 오기(헨드폰, 와 함께 부드러운 문장에 찌꺼기처럼 걸리적거려 아쉽다. 작가분이 퇴고하실 때 조금 더 신경을 써주시길 부탁드린다.


7. 판타스틱 동상이몽 - 정대영

  판타스틱 시리즈가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로 이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이 글은 확실히 판타스틱 시리즈의 파격에 해당한다. 행동 묘사가 따로 없이 오직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소설이면서 그나마 따옴표까지도 모두 제거됐다. 전반부는 '나'의 대사만이 쭈욱 이어지다가 중반 이후에는 '나'와 '언니'의 대화가 단락마다 주체를 바꾸어가면서 이어진다.

  전반부에서 계속 나의 대사만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 전개가 조금 당황스러웠으므로, 작가분이 어째서 이런 형식을 취하셨을지 생각해 보았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언니의 대사가 글의 일부분이 되었는가의 경계는, 언니가 "나로서 나를 대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결국 이 글은 오직 나만의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된다.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언니의 대사 역시 언니 스스로의 발언이 아니라 나로서 걸러진 발언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설명도 없고 배경 묘사도 없기 때문에 오직 입밖에 나오는 말 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짐작할 수 밖에 없는데, 글의 전반은 비교적 이 부분을 잘 해결해 냈다. 인물의 대사가 우리가 실제 발하는 대사와 비슷해 상황을 짐작하기 용이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현실의 대사와 유사하다보니 글에서 꼭 필요하지 않을 부분이 너무 많이 서술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의 중반 이후는 사념적인 발언이 대부분이어서 글에 집중을 조금만 떨어뜨려도 흐름을 놓치기 쉬운데, 전반은 너무나 주변적인 것이 많아 또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커피에 대한 설명이나 이야기를 꺼내는 부분의 머뭇거림은 과감하게 잘라내어도 좋지 않았을지.

  자신이 특별해지기를 바라고, 지금의 현실에 지쳐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판타스틱 시리즈라고, 그래서 그들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여는 예전에 말한 적 있다. 이번 글 역시 그랬다.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자신이 특별해지길 바라지만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하지는 않는 평범한 우리들같은 '나' 가 찾아낸 방법은 너무나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언니에게 자신으로서 자신을 대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와의 대화. 자신이 자신을 알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충분히 환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중반 이후에 이어지는 대화들은 무척 추상적이기 때문에 독자의 몰입을 요구한다. 잠시만 포인트를 놓치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나인지 아니면 나로서 대하고 있는 언니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야기 내용이 조금 극적이라면 달랐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읽기 쉬운 글은 아니다. 물론 집중해서 글을 추적해 가면 창작하는 사람이 한 번쯤 해 보았을 고민이나 깊이있는 생각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타인의 자책을 옆에서 보아야 하는 괴로움만 느낄 수도 있다.

  문득 제목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동상이몽이라 하면 서로 같아 보이지만 실상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던가. 여태 판타스틱 시리즈는 항상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주인공이 택하는 해결책이 곧 제목이 되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택한 것이 동상이몽이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 글은 결과적으로는 비극이 되고 만다. 언니는 나로서 대한 것이 아니었고, 나와 언니가 나눈 대화가 동상이몽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파격적인 형식이나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내며, 다음 글에서도 신선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8. 페넬로페 – fool

  알려진 글을 새로 리메이크하는 것은 이미 그 글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원작의 그림자에 눌릴 위험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여는 가장 먼저 그 점을 염려했다. 하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무척 즐거웠다. 원작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 글은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의 시작과 끝, 수미쌍관의 구조로 짜여져 있는 형식은 단지 글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페넬로페 부인이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뜨개질을 하고 매듭을 풀 것이라는 예상,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어진 이야기가 어쩌면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남겨주는 것이다. 또한 완성되지 못하고 다시 풀려나오는 털실은 곧 페넬로페 부인의, 누적되지 못하고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억을 상징하기도 한다. 뜨개질하는 행위는 분명 원작에서 차용되어 온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더욱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치매라는, 다루기 쉽지 않은,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 위험하지 않을 수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배경을 미래로 다루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도 여전히 남는다. 로봇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이 글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번호로 단절된 단락들이 지나치게 독자에게 거리감을 두어서, 자동적으로 장면을 바꾸는 손쉬운 방편으로 만든 게 아닌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즐겁게 읽었다. 아직 글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글의 구성에 다양한 시도를 하시는 것 같아 독자로서 기쁘다. 작가분의 건필을 기원한다.


9. 키리에 – 루나벨

  카톨릭을 연상시키는 수도원, 카스트라토라고 하는 실존하는 사람들을 들고 와서 마치 중세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글이었다. 만연체를 번역한 것 같은 문장이 작가분의 평소 글투와는 달랐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글투라는 것은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독자된 입장으로서는 작가분의 변화가 항상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작가 자신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느꼈을 듯 싶을 정도로 이 글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강렬하다. 성스러움과 맞닿아 있는, 혹은 무척이나 성적으로 느껴지기까지하는 아슬아슬한 신비로움이 글 전체를 감돌고 있다. 특히 라시앙 데옌이라는 인물의 묘사 부분에는 정말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작가가 힘을 쏟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다만 카톨릭적인 분위기를 차용하면서도 카톨릭의 설정은 피하듯이 비껴가서, 수도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너무나 단순히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스러운,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고결한 것에 닿고자 하는 인간이 몰락하는 것을 다루고자 하였다면 기왕 수도원의 분위기를 넣은 이상 좀 더 철저하게 고증해 주었으면 어떠했을지.

  보다 높은 차원에 이르르려 하는 인물이 잘못 선택하는 길이 성적인 행위라는 것도 아쉽다. 자칫 잘못하면 글을 평범한 동인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지 않는지. 성적인 것에서 단절되어 수도를 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많은 동인물에서 쉽게 다루어 온 형식이다보니 그렇게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탁월한 묘사와 전체적인 분위기만큼은 단연코 돋보였다. 작가분의 건필을 기원한다.


10. 고양이의 언어 – 아르하

  지구 밖, 식민도시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을 리 없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복제가 불가능한 고양이는 그 곳에서는 전자고양이로밖에 볼 수 없다. 사람들이 다른 멸종 동물들보다 훨씬 더 고양이에게 집착하더라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멸종한 동물은 멸종한 것 뿐, 다시 돌아오지 않고 떠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주는 추운 바깥을 돌아다니던 고양이를 구하고는 안도한 듯이 잠들지만, '나'는 인식표를 통해서 고양이가 실제는 잘 만들어진 전자 고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낸다. 고양이의 야생성을 동경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출까지 했다가 돌아오는 고양이. 나는 실망하며 고양이가 프로그램대로 집으로 돌아가도록 문을 열어준다. 하지만- '나'의 말대로, 그것이 진짜 고양이가 아니면 어떠한가. 미주가 믿었던 것처럼, 아버지의 거짓말을 모르는 어린 소녀처럼, 그렇게 믿을 수 있다면.

  그건 마치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것처럼 서글프고 안타깝다. 그것이 실제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다. 한 번 멸망한 종족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곁에 있었던 이들은 세상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이든, 우리와 함께 살아왔던 동물들이건 말이다.

  여는 이 글에 대해서는 구성이라든가 문장이라든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여가 미주와 마찬가지로 있을 리 없는 꿈을 꾸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여에게 거짓말을 해 주기를,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해주기를, 진짜 고양이처럼 고양이다운 전자 고양이를 만나게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작가분의 건필을 기원하며, 사랑스런 고양이 지지가, 좋은 곳에 갔기를 기도한다.


11. 맺으며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쁜 한 달이었지만, 반면에 서로 서로 닮아가는 글들이 눈에 띄어 안타깝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참고하여 자신을 성장해 나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늘 여가 말하듯이 자신의 단점을 개선하는 것과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리는 것은 구별해야 할 일이다. 만약 단점을 버리는 것과 장점을 지키는 것 둘 중에 하나밖에 택할 수 없다면 여는 단언코 후자를 권하겠다. 자신의 개성이라는 것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것이고, 백금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글투에 어울리는 스토리는 분명히 있다. 언밸런스로 이루어지는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그 소설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치중해서 열심히 깊이 깊이 묘사해 들어간다면 그건 소위 요즘의 말로  얼마나 생뚱맞겠는가. 동화적인 스토리에는 존댓말로 끝나는 어미도 어울리지만, 현실의 냉혹한 비판을 하고 싶다면 건조한 문체가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장을 흉내내는 것은 위험하다. 모 소설가는 무진기행의 문체를 닮고 싶어서 손으로 무진기행을 100번을 베껴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소설가의 문체는 무진기행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문체를 깨달아 간 것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 부럽다고 해서, 감정 묘사에 강한 사람이 그런 흉내를 내면 이쪽도 저쪽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소모임에서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의 경우에 문장이 닮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건 초기에만 그쳐야 한다. 그런 과정은 확실히 일어나기 쉽다. 자신이 읽고 있는 글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 문체다. 위에서 여가 말한 작가분의 경우에는 집필에 들어가면 아예 다른 글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한다. 글이 끝날 때까지 은둔하다시피 모든 외부 접촉을 단절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흉내내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물론 지금의 거울 작가들에게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다.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아집은 다르다. 내 것만이 옳다고 지키다가 자신에게 멈추어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어서는 안된다. 서로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분명 벗어나야 한다. 아직은 거울의 글이 심각할 정도로 닮아가는 것은 아니다. 개성적인 글들이 훨씬 더 많다.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개성, 장점, 단점, 그 경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첫 단계임을 고려해 주시기 바라며 이번 달의 감상을 마무리한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대담 赤魚 님과의 대담3 2005.03.26
거울 거울 21호 단편 필자 단평2 2005.03.26
거울 거울 21호 단편 단평 2005.03.26
거울 용이 잠드는 바다 - raile1 2005.03.25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6 - 헤임스크링라 18 2005.03.25
거울 거울 20호 단편 단평2 2005.02.26
그림이 있는 벽 보라빛 매혹3 2005.02.26
거울 거울 19호 단편 단평6 2005.01.28
그림이 있는 벽 노래하는 늪 2005.01.28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5 - 헤임스크링라 17 2005.01.28
장르 판타지 랜드4 2004.12.29
거울 거울 18호 단편 단평 2004.12.29
그림이 있는 벽 신체의 조합1 2004.12.29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4 - 헤임스크링라 16 2004.12.29
그림이 있는 벽 시작 2004.11.26
장르 과학소설 읽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 2 2004.11.26
거울 거울 17호 단편 단평3 2004.11.26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3 - 헤임스크링라 15 2004.11.26
거울 거울 16호 단편 단평6 2004.10.30
그림이 있는 벽 배웅1 200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