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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용이 잠드는 바다 - raile

2005.03.25 23:5803.25

루나벨 ( l u n a b e l l @ o r g i o . n e t   http://lunabell.net )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저도 모르게 웃게 만드는 글들이 있다. 소설적인 기교나 구성,문장에서의 완결성 같은 요건들과는 상관없이, 깨끗한 진실함과 사랑, 열정이 전해져서 그렇게 마음 한켠을 따스하게 만드는 글. 필자는 그런 글에 대해서 '영혼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를 즐겨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말로 진정성이라고도 한다. '다만 내 안에 있는 이 이야기를, 이 인물들을 그려내고 쏟아내고 싶다'는,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고도 분명한 글쓰기의 본질이 생생하게 숨쉬는 소리. 그러니 작가 자신이 꾸는 꿈에 스스로가 취하여 부르는 콧노래, 조금은 허풍이 섞인 무용담들, 취기에 괜히 흘려보는 눈물과 헤픈 웃음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작가란 무아지경속에 빠진 지휘자나 무당과 같이 스스로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신명나게 써야하는 것일게다.

  raile님은 그런 면에서, 신명이 난 무당이다. 그래서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눈길도 끌어모아 굿판으로 잡아끄는, 그러한 무당이다. 그 재미난 굿판에 초대되었으니 우리는 그녀의 춤사위나 노랫가락을 멀찍이서 분석하기보다 먼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에 유심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격앙된 목소리로 풀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우선 들어보고, 재미가 있었다면 그 때는 우리도 함께 뛰어들어 어깨춤을 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1.

  그리하여 그녀의 이야기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우리는 곧바로 숨이 막힐듯한 바다소리와 바다 너머로 가라앉는 붉은 햇볕이 우리를 가득히 감싸안는 것을 느낀다. 그 풍경은 현란하지 않고 질박한 언어로, 그러나 너무나도 행복하고 정성스레 수놓여있다. 그리고 그 바닷가로 평범한 한 소녀, 서희가 걸어들어온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를 조금은 불퉁하게 맞는 소년, 사루오가 있다. 사루오는 자신의 분신인 용에 그녀를 태워 돌려보낸다. 용의 갈기를 쓰다듬는 서희의 부드러운 손길에 그는 머쓱히 고개를 숙인다.
  환타지 소설 치고는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첫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절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작가의 후기를 보니 과연, 이 도입부는 직접 꾼 꿈에서의 광경을 따온 것이란다. 어쩐지 바다 내음이 훅 끼쳐올 정도였더니, 그래 과연 '신명'이다. 한 자락의 꿈에서 느낀 감동을 씨줄과 날줄로 풀어내어보고 싶어서 잡은 펜으로 이렇게 한 필의 긴 이야기를 짜내셨으니.

  그러나 다분히 충동적으로 시작했을 이 이야기의 궤도는 이상하게도 매우 안정적이다. 사루오와 서희를 주축으로 전개되는 플롯의 전개 과정이 세밀하고 명확하다. 독특한 동양적 세계관과 잘 짜여진 용족과 계급적 특색에 대한 설정들, 그리고 그 위에 포진한 각각의 등장인물들. 그 모든 것들과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차근차근 전개되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미리 치밀하게 짜 둔 플롯인 듯, 여러 복합적인 갈등노선들과 복선들이 교차하면서 실마리가 하나 둘 밝혀지고 마침내 실체가 허물을 벗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정갈한 하나의 소실점으로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 소실점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서희와 사루오, 두 사람의 사랑이다. 용족의 존속에 대한 비밀, 용족 내에서의 권력구도와 긴장,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오고가는 감정과 사건들, 그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서 결말을 향해 치달아가는 듯 하지만, 실은 모든 것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물론 어찌 보면 이러한 구도는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주어졌던 운명을 바꾸고 마침내 행복해지는 주인공들은 많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용이 잠드는 바다>가 독특한 것은, 이러한 주인공들의 사랑의 성취, 이 단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외부적인 주요 노선에 그들의 사랑이 편입되어 함께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의 노선, 그것이 다른 모든 부차적인 문제들을 함께 일단락짓는다.
  그들에게 '세계의 운명'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돌려주세요, 사루오와(서희와)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것만이 그들의 소망이자 미래이다. 다른 것이 개입되지 않은 이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을 모두가 응원하고 독려하고 있다. 사루오와 서희의 친구들, 사루오의 아버지인 하로우를 비롯해서 상재녀와 관련한 같은 아픔을 겪었던 용들, 천룡의 가신들, 모두가 각자의 바람과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뒷받침하며, 악역인 타무하와 뢰이주 역시 그들의 사랑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떠맡고 있고, 이야기의 흐름이나 초점 자체마저도 두 사람의 사랑에 맞춰져있다. 환타지라기보다 로맨스에 가까울 정도의 이러한 집중선은, 이 작품은 기존의 다른 환타지와는 다른 면에서 '현실적'으로 만들어준다. 이 작품이 현실적인 것은 소위 '이세계소녀깽판물(웃고 넘어가자)'이라고 불리우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와의 융합 때문이 아니다. 흔히 환타지 소설에서 다루는 신과 인간의 문제, 세계의 존립, 종족과 국가간의 괴리와 갈등, 선과 악의 대립과 같은 주제들은, 물론 흥미로우면서도 다양하고 깊은 문제의식의 제기가 가능한 좋은 선택범위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히 추상적이고,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는 겪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에 실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혹자는 여기서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겪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환타지이고, 그래서 환타지가 재미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용이 잠드는 바다>를 보자. 용에 대한 환상적 설정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그렇게 강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 달성이 세계 전체를 화합시키는 극적으로 행복한 결말이, 어찌 환타직(fantasyc)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로와의 관계를 추구하는 그들의 서투르지만 따뜻한 모습이 어찌 가깝지 않겠는가? 인간관계의 문제는 사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2.

  그러나, 이렇게 '사랑'이라는 소실점을 향해서 모든 요소들이 일관되게 움직이며 놀라운 결실을 보여주지만, 또한 그 흐름에 편입되지 못한 것들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글의 호흡이 그렇다. 서장에서 그리도 빼곡했던 밀도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급격하게 옅어지기 시작한다. 신(scene)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갈수록 줄어들고 가빠지는데, 10장과 1장을 비교해보면 그 호흡의 차이에 놀라게 된다. 초반부의 밀도가 유지되었다면 아마 글 전체가 두 배의 길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축약되거나 생략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덕분에 주인공인 서희와 사루오는 물론이고 그 주위의 많은 등장인물들의 깊이와 개성이 감소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맛깔스러운 속도감과 주마간산 식의 급한 진행은 달라서, 상황 전개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내달려야만 했다는 점이 아쉽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상재녀에 대한 진실이 폭로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용들의 '비'라고 할 수 있는 상재녀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두 주인공의 사랑의 성취를 위한 가장 큰 조건임과 동시에 스토리 자체를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선 상재녀들이 그의 부군에게서 어떻게 '내침'받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독자들은 사루오나 자한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아주 피상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다. 어찌 된 이유인지는 모르게, '상재녀들은 후계자를 낳기 위한 도구로 쓰임받고 버려지며 부군에게 내침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정보에 불과하며, 독자들이 사루오나 자한, 뢰이주,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들이 느꼈을 고통과 상재녀들의 슬픈 운명을 절실하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와 연관된 구체적인 회상이나 사건들이 진술되었어야만 했다. 대체 용들이 상재녀들을 어떻게 홀대를 했기에 그토록 서럽다 하는 것인지, '내친다'면 정확히 어떻게 내친다는 것인지(칼로 직접 목을 벤다는 것은 꽤 후반에나 알 수 있다), 독자들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상재녀의 진실은 나름대로 꽤 큰 반전인데, 그 작중의 긴장상태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상재녀의 이제까지의 삶과 그녀들과 관련한 갈등, 일화들이 포석으로 깔려서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동시에, 등장인물들과 독자들을 더욱 철저히 속였여야 했다. 사루오 등의 후계자들은 아버지들이 어머니, 즉 상재녀를 대했던 방식을 혐오하면서도, 그러한 상황이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당연한 일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그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상재녀가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이론적인 증거나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상재녀가 왜 '반려'가 될 수는 없고, 한 번 쓰고 '버려져야만'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치고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반려로 맞이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 배경지식 뿐이라면야 사루오는 그저 일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은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비를 그렇게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조금은 무모하게 서희를 끌어안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일족의 장들과 고룡들에게 대들며 왜 반려는 안되느냐,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주면 납득하겠다고 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당하다. 아버지들이 하나같이 어머니를 내치거나 죽이는 것을 봄에, 당연히 자한처럼 그 배후에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또는 아버지들이 단순히 자기쪽에서 먼저 상재녀를 해침으로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짐을 자식에게 지우지 않게 하려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어떤 거짓 명분이나 이유를 대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진실로 접근하는 방식들이, 거의 모두가 쉬운 대화를 통해서라는 점 또한 문제가 된다. 그것도 어떤 매우 특별한 인물도 아닌, 이렇게 긴박한 - 서희를 사이에 두고 타무하와 일족간의 대치관계가 발생하는 - 상황 이전에도 얼마든지 물으면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사루오 주변의 인물들과의 대화인 것이다. 사루오와 자한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진실을 캐내기 위한 그 어떤 능동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거의 모든 정보들이 저절로 조금씩 밝혀지면서 손 안으로 들어오며, 자한이 약간의 추리를 덧붙일 뿐이다. 수동적인 대화를 통한 정보 획득이 아닌, 최소한의 능동적인 접근, 그리고 더 나아가 회상이나 특정 인물의 행동이나 표정, 구체적인 사건 등으로 진실을 밝혀나갔다면 소설의 안정성도, 재미도, 개연성도 훨씬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공간에 대한 묘사나 어휘 구사의 미진한 부분이 종종 보일 때에 아쉬웠다. 또한 개별 인물의 생각의 흐름이나 행동패턴에 대한 깊이있고 입체적인 통찰력이 부족한 점, 그에 따른 심리 묘사도 그러했다. 서희의 어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나 결핍에 대해서는 전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루오에게 '미워하지 말아줘'라고 하는 것은 가슴이 저미면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이 잠드는 바다>의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소소은과 자한 부자는 물론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치마, 사루오와 서희를 왕자님과 공주님이라고 불러주는 재미가 쏠쏠한 (^^) 발련, 비정하면서도 슬픈 존재인 타무하와 그의 가신 하라까지, 전개가 빨라서 이야기들이 다 나오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캐릭터들이 이 정도의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두 주인공에 이르면 더더욱 놀라워진다. 서희는 강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소극적이고, 섬세하고, 기가 약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내성적인 소녀다. 사루오 역시 솔직하지 못하고 비틀린, 그러나 정이 많은 소년이다. 이 평범하다면 평범할 인물들이 이 글에서 가지는 흡인력과 매력, 그리고 그들이 잡아쥐는 행복의 결실은 그 무엇보다도 작가가 그들에 대해서 가지는 따뜻한 시선의 반증일 것이다.
  필자는 raile님의 글을 대할 때 듣는 언제나의 그 소리를 이 작품에서도 들었다. 행복하게 살아라, 라는 말. 다른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서 함께.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그에 화답해 어깨춤을 추어야 할 때가 아닐까. 춤판이 벌어지기 전에, 그네들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준 raile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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