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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깊은 잠 Deep Sleep

2011.03.31 16:0603.31


1.

시작은 평범했다. 허나 ‘꿈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이 낳은 결과는 거대했다.
사람들이 흔히 꿈에 대해 착각하는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꿈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가끔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는 꿈을 꾸곤 한다.

꿈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자소시 꾸었던 꿈들. 의사, 경찰, 소방관. 어릴 적에는 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직업을 꿈꾼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꿈은 쉴 새 없이 뒤바뀌기 마련이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일류 대학을 나와,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 혹은 회사를 설립하거나, 로또에 맞는 꿈.
꿈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되기도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 꿈을 정의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인간만이 과거를 살고, 인간만이 미래를 알려한다. 꿈은 과거와 미래의 창이다.
꿈이 인간에게 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2.

10대 때를 회상해보면 그때의 꿈들이 헛웃음만 나오는 것임을 지금에 이르러서야 너무도 쉽게 깨닫는다.
그 꿈이 시작된 것은 13살 무렵이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흰 새를 보았다. 흰 구름이 흰 새를 덮었지만, 새는 고고히 구름을 헤치고 창공으로 날아간다. 구름은 흰 새를 방해할 수 없었다.

- 구름을 헤치고 나온 대기권의 창공은 푸르고 흰…, 무언가의 미래였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자 이 꿈이 멈춰버린 시기가 언제인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지만, 이런 꿈이야 흔히 말해‘개꿈’이라고 불리는 것 아닌가.
가끔은 개꿈 중에서도 심심치 않게, 멋들어진 외제차 굴리며, 으리으리한 빌딩의 소유주가 되는 기분 좋은 개꿈도 있기야 하다. 그래. 꿈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어린 것들이 말이야. 꿈이 없어, 꿈이.”
TV 드라마나 만화에서 가벼운 말투로 지나가는 말이 어린 시절의 내게 묻는다.
‘어렸을 때, 너는 무슨 꿈을 꾸었니.’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은 애초에 꿈을 가지고 있었나?
꿈을 이루는 데에 실패한 그들이 아이들의 꿈까지도 잡아먹는 현실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조카가 말해준 꿈 얘기가 떠오른다.
해몽에 관심이 많은 조카 놈은 그 ‘개꿈’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요새는 인터넷으로 해몽을 해준다기에, 조카 녀석이 기어코 돈을 내고 꿈을 상담한다.
남의 꿈을 해몽하여 돈을 받아먹는 저 치들도 실상 자신의 꿈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3.

정신없이 사나운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일어나서까지도 괜스레 기분이 나쁘고, 일진이 즐겁지 못할 것 같은 불유쾌함으로 잠자리를 뜰 것이다.
나 역시도 오늘 하루의 꿈이 썩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잠이 싹 달아난 표정이 된 것이겠지.
화장실에서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고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꿈의 흩어진 파편들이 조각조각 모여서 곧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낸다.
‘뭐였더라, 그게.’
하지만 모여진 꿈의 기억은 금세 잊혀 진다. 꿈은 기억으로 잡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상, 그 꿈을 다시 꿀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없다.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내 꿈을 망각하고, 꿈을 먹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굳이 왜냐고 묻는다면, ‘남들도 다 그러니까.’ 라고 평범하게 대답해주고, 이리 반문하고 싶다.
‘그런 당신의 꿈은 뭐지?’
회사 출근을 하기 전의 아침은 항상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떠오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는 것은 뇌가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잠재워 놓고 자신만의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둔한 육체가 똑똑한 뇌를 따라오기엔 한계가 있을 테니까. 뇌의 처리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육체는 잠들고, 뇌는 엄청난 분량의 활동을 시작한다.
뇌의 활동이 어째서 기억에 남지 않느냐고? 글쎄, 뇌가 지운 것은 아닐까? 육체는 뇌를 따라가지 못한다.
다시 생각해볼까? 만일 당신이 루시드 드림을 알고 있고, 경험해보았다면 내 설명도 쉬울 것이다.
인간은 꿈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꿈속의 자신이 실제 자신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는 이야기다. 당신은 꿈꿀 때, ‘이건 분명 꿈일 것이다.’ 라고 생각한 때가 여태까지 꿔온 수많은 꿈들과 비례해서 월등히 많은가?
아니, 월등히 적을 것이다. 꿈은 그러하다. 뇌가 스스로 활동하는 시간. 바보 같은 육체가 이룰 수 없던 것을 한풀이 하기위해 만들어낸 공간.
‘그래서 인간은 꿈을 꾸고, 꿈을 동경하는 거야.’
예를 들면, 육신의 콤플렉스 등을 없앤다거나. 혹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순간이동하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진다. 꿈은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
단지 육신의 내가 아니라, 뇌가 원하는 세계만 보여줄 뿐이지.
“시답잖은 소리 집어치우고, 회사나 가자! 돈 벌어야지, 돈.”
그래봐야 어차피 삶은 뇌의 세상이 아니라 육신이 사는 세상일 뿐이다.

4.

한국의 도로는 아침의 출근길에 정체가 심하다. 이러한 교통정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기 일쑤다. 그리 촉박하지 않지만 꾸준히 시계를 보고는 ‘늦었다, 빨리 가야한다.’하고 자기합리화와 자기세뇌를 시킨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이때에 누군가 끼어들기를 하면 클락션을 울리는 것은 기본적인 행위다.
헌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도로가 조용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가 없다거나 교통정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짜증날 정도로 꽉 막혀서 다리 하나를 채 못 건너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낯선 것은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옆의 차에서 한 사람이 머릴 배꼼 내밀고 앞을 바라본다. 너무도 고요한 정적이라 차마 뭐라고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눈만 껌뻑인다.
나는 참다못해 자동차에서 내려 무엇이 이러한 고요를 만들고 있는지 찾기로 했다.
“뭔데 이렇게 조용한 거야?”
괜스레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침묵에 목소리를 크게 내보았으나 맞장구 쳐주는 사람의 소리는커녕 자동차 엔진소리만 나고 있는 고요한 도시가 왠지 섬뜩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저게 뭐지?”
드디어 누군가 말을 꺼냈다. 나는 그 사실에 왠지 안도감보다 불안함이 먼저 떠올랐다.
한참 앞에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구경이라도 난 듯 모여 있다. 어렴풋이 보이기로 꽤 많은 사람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거나 누워버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뒤, 옆을 포함한 사방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는데 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누워있는 사람을 괜찮으세요? 하고 일으키자, 그 일으킨 사람이 순식간에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도 하나 둘씩 털썩털썩 자리에 쓰러진다.
순간의 정적, 그리고…
“사, 사람이…”
내 입에서 흘러내린 말이 촉진제가 된 것일까? 얼마지 않아 인간의 참된 본능이 공포에 질려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꺄아아악!”
“죽었다, 죽었어!!”
그들은 바닥에 엎어져있는 사람은 상관하지도 않고, 차에서 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죽은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고, 몇몇은 차 위를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 역시 차 위로 뛰어다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앞뒤 잴 것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내 생각엔 단 하나의 사실만이 들어왔다.
‘닿으면 죽어! 닿으면 절대 안 돼!’
죽은 인간과 닿으면 안 된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지상명령과도 같이 내게 다가왔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까 한참 앞에서 도로를 달리다가 죽은 자에게 걸려 넘어진 아가씨가 보였다. 그 아가씨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정확히는 죽은 사람들과 같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옷깃, 옷깃조차 닿아도 안 돼! 무조건 피해야 해!’
그쯤 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TV상가가 앞에 보였다. 그 앞에서 나오는 뉴스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상황을 인지했는지, 서로가 서로간의 간격을 지키며 서있었다. 혹여나 누가 자신의 옆으로 바짝 다가올까 긴장한 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오늘 오전 6시경, 국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각별히 유의하셔야겠습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절대 쓰러진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 안 된다고 보건당국이 전해왔습니다. 모두 집으로 귀가하셔서, 사태를 지켜보셔야겠습니다. 다음 뉴스입……]
뉴스는 거의 반복되다 시피 그저 그런 종류의 정보가 전부였다. 우선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 이상의 것을 얻으려면, TV나 라디오와 같은 단방향 매체보다 인터넷이 좋을 것이다.
‘어서 집으로 가자.’
아마 TV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테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벗어나는 이들을 보며, 나도 자리를 피했다.
‘이곳에서 집이 가까운 게 이렇게도 감사할 줄이야.’
그렇게 잠시 걸어가다가, 아이의 손을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황급히 뛰어가는 한 아줌마를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좋지 않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즉시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길 수 통.
“받아라, 제발 받아!”
[연결이 되지 않아……]
맑고 청량한 여성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오자 핸드폰을 거칠게 닫아버리고 주머니에 넣었다.
더욱 다급해진 마음으로 집에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외동아들 하나밖에 없는 부모님이었다. 이를 악물고 달리고 또 달려야했다.

5.

현관문을 닫지도 않고 급하게 들어온 집안은 그저 썰렁하다고 표현될 만큼 정적이 흐른다. 물론 집의 온기는 충분했지만 느낌이 그러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이런 상황이 되면 마음이 금세 초조해진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부모님 방의 문이 내 손에 의해 조금씩 열릴 때마다, 심장이 터질듯 뛴다.
“제길.”
예상했던 결과인가.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침대에 누워계신 채 일어나지 않으셨다.
잠시 후 나는 부모님이 숨을 쉬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골이나 이갈이 같은 것은 없었지만, 평소 비염이 있으신 아버지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청각을 자극 시켰기 때문이다.
‘잠깐! 죽은 게 아니라 잠든 거라고? 그럼 잠든 이를 따라서 만지면, 나도 잠들게 되는 건가? 아니면 죽는 건가?’
우선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생각에 의외로 침착해졌다. 죽은 게 아니라면 백신으로 깨울 수 있을 테니.
생각을 마치고 빠르게 거실의 TV를 틀고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TV는 한창 뉴스를 보내고 있었다. 자꾸 속보가 나오는 것인지, 뉴스 앵커는 계속 상황 설명을 하기에 바빴다.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이 바이러스는, 잠들면 깨지 않는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잠을 자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보균자와 닿는 순간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상당수의 인구가 도로에서 잠이 든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TV에는 헬기 위에서 정체된 도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다수의 인간들이 도로에서 잠들어 있었고, 또 그에 비례하여 많은 인간들이 도로에서 빠져나가려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로의 끝에서 군인들이 민간인을 돕고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마치 여느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들이었다.
인터넷의 실시간 검색어는 이미 바이러스에 관한 것으로 꽉 차있었다. 어떤 블로그는 <잠을 깨우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놨는데, 블로그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아이의 블로그는 맞벌이인 엄마와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글로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받았다.
허나 정작 중요한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오직 인터넷에서 정의하길, <수면 바이러스>라는 이름만이 떠돌 뿐이었다.
‘수면 바이러스라…….’
그 순간 나는 등골을 관통하는 섬뜩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열려있는 현관문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이다. 꼬마 여자아이였는데, 마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몽유병!?”
이럴 수가. 수면 바이러스는 인간을 잠재우는 바이러스다. 몽유병은 잠을 자면서도 돌아다닐 수 있는 병이고. 이 아이는 기억하기로 분명 옆집 아이다.
나는 입을 벌린 채로, 천천히 다가오는 아이의 손을 피해 네 발로 황급히 기어서 도망갔다. 힐끔 본 반대쪽 집의 현관문은 아이의 엄마가 쓰러져서 닫히지 못하고 있었다.
‘저길 통해 나온 건가?’
나는 철퍼덕 하고 집안을 들쑤시는 몽유병 아이를 피해 집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이가 이곳으로 향할 것 같아, 빠르게 문을 닫고 현관에 기대어, 숨을 돌려보았다.
“허억, 허억….”
바로 앞에 싸늘한 시체처럼 잠들어있는 아줌마가 당장이라도 일어나 달려들 좀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급박해진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만일 보균자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으면? 혹은 내가 타고 내려가는 도중 보균자가 탄다면?
‘폐쇄적인 엘리베이터는 안 되겠다. 우선, 백신이 나올 때까지 어딘가 홀로 있을 만한 곳으로 피신해 있어야겠어.’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집안의 몽유병 아이를 쫓아낼 자신감도 없고 말이다.
다행히 지갑은 챙겼고 나이 서른이 넘도록 담배나 술을 입에 가까이 하지 않으니 딱히 지출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식비와 숙박비가 문제인데.
‘근데 이런 상황에서 돈이 쓸모 있을까? 만약에 음식점이나 그런 곳에도 보균자가 가득하다면?’
그래도 일단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서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 온 곳은 없었다. 친구 놈들이나 후배들 모두 패닉에 빠져있을 테니, 연락을 못한 것이겠지. 게다가 지금은 누가 보균자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에 만나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홀로 행동해야겠지.
계단으로 13층을 내려온 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다행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아파트 단지 내에는 사람의 인기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으로 보면 아파트 전체가 수면 바이러스로 잠들었을 것이다. 아니라면 모두 피신한 것이겠지.
“일단 피신을 위해서는 먹을 게 필요할 거야. 물. 제일 필요한 게 물인데…….”
단지밖에 있는 편의점이 떠오른 나는, 그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물론 주위를 살피는 것 또한 잊지 않고서 말이다.

6.

편의점에 도달하기까지 이토록 인기척 하나 듣지 못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다만 길가에 엎어져 자고 있는 유치원생과 노란 유치원 승합 차량을 보았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금세 도망쳐 나왔기에 그곳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편의점에 도착한 지금은 편의점 밖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의 문제는 간단했다. 편의점 점원이 잠들어 있는 상황을 유리창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몽유병 사건을 겪은 이후엔 아무리 곤히 잠들어있는 사람이라도 경계되기 마련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자.”
생리의 욕구는 대체로 막연한 두려움보다 강하다. 허름한 뒷간이 무섭지만 오줌이 너무 마려워 누러가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었다.
문을 열자 딸랑이는 편의점 종소리가 고요한 편의점 안을 울렸다. 나는 혹시 몰라 편의점 안에 누군가 자고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자세를 낮추고 편의점 곳곳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점원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말이다.
“먹을 거랑 마실 거 먼저 챙기고….”
생각해보니 이것들을 담기 위해선 큰 봉투나 가방이 필요했다. 그것은 당연히 편의점 점원의 카운터 쪽에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정신이 아찔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흔치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점원 쪽에 다가갈 엄두가 난 것도 아니다. 편의점 점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게로 달려드는 망상까지 들기 시작했다.
“봉지는 나중으로 하고 우선 물건부터 꺼내놔야겠다.”
나는 점원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음료코너에서 몇 가지 이온음료와 생수를 꺼내놓았다. 식품코너를 바라보니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 그리고 버거 종류와 도시락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더욱 나를 허기지게 만들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식욕이 돌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식품들을 대여섯 정도 꺼내와 삼각 김밥을 먹으며 더 필요한 것이 없을까 편의점을 돌아보았다.
“아!!”
정말 속으로 로또를 맞은 것 마냥 쾌재를 부르고서 잡화코너에서 여행용 가방을 집어 들었다. 사이즈도 넉넉할 뿐더러, 근처에서 각종 세면도구까지도 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램프와 담요까지 가져오니 더더욱 완벽한 한 세트가 되었다.
이젠 더 볼 것도 없이 음료와 식품들을 주워 담고 편의점 밖으로 향하려다가 발을 멈칫했다.
“비상상황에 절도는 법에 위반되는 행위지.”
나는 지갑을 열어 5만 원 권 두 장을 편의점 점원과 되도록 가까운 교통카드 충전기 밑에 끼워두려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때 형용할 수 없는 찝찝함이 밀려왔다. 마치 누군가 내 나체를 훑어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느낌이 너무 강렬해, 기름칠 안 한 철문처럼 고개를 삐걱거리며 돌렸고 동시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네가 해준 게 뭔데! 우어으엉…….”
점원이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이상한 헛소릴 지껄이는 상황에서,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원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계산대 위로 엎어져버렸다.
“뭐야…. 자, 잠꼬대인가?”
나는 겁에 질려 편의점 문을 등으로 밀고 그곳을 네 발로 기어서 나왔다.

7.

도로의 공기가 기분과는 반대로 마냥 상쾌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숨을 한껏 들이쉬다가, 국가의 어떤 부서인지 추측할 수 없는 전신보호복을 입은 무리들이 밴에서 요란스레 나오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길모퉁이로 기어가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질병관리본부? 국토해양부? 뭔지 몰라도 빨리빨리 좀 해결해달라고!”
거의 혼잣말하듯 그리 중얼거린 후, 그들이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 보기 위해 길모퉁이에서 빠져나와 조금 더 가까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가로등에 기대어 자고 있는 남자를 일으켜 업고 밴으로 향했다. 그러길 3초. 남자를 업고 있던 이는 마치 처음부터 잠들고 싶었던 것 마냥 길바닥에 철퍽 엎어져버렸다. 그리고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이, 이런!”
전신보호복도, 아니 그 어떤 것도 저 깊은 잠으로 인도하는 바이러스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국가도 대항할 수 없는 바이러스는 충격을 남겨주었다. 그 길로 나는 정신없이 뛰고, 또 뛰었다.

도시의 적막은 예상외로 삭막하지 않다. 하기야, 도시라는 것이 원체 사람 냄새나 사람 소리보다 자동차 매연과 소음에 둘려있는 곳이니, 적막이라 한들 소음과 무엇이 다를까. 사람의 소리가 없기는 매한가지 아니던가.
정신없이 뛰면서도 단 하나, 사람이 많을 법한 거리는 피해 간다. 혹여 잠든 이가 일어나 내 발목을 붙잡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잠의 세계로 인도할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친구가 반지하 방을 얻어 아마 일주일 후 그곳으로 이사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함께 그 반지하 방을 둘러보고 왔던 것이 지금에서야 뚜렷하게 떠오른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사는 사람도 적어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것이기에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만 이라도 그곳에 숨어있어야겠다.
생각이 끝나고 실행에 옮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발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8.

도시라서 그런지, 사람이 없는 도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차선도 넓은데다가 이리저리 자동차들도 많아 거치적거린다.
주변에 쓰러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피해가는 통에 가는 속도가 계속해서 느려진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몰려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무도 없는 자동차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여행배낭에서 차가운 햄버거를 꺼내 먹으며 연신 주변을 경계했다. 신경이 곤두선 채 음식을 먹으려니 소화가 잘 안 된다만. 감염되어 영원히 길바닥 위에 잠들어버리는 것보다야 낫다.
햄버거를 다 먹을 즈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소리다.
[생존해 계신 분들은 속히 저희 지시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겠습니다.]
확성기를 들고 걸어오는 군인들이다. 그들은 안전한 곳을 말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 말에 홀려 군인들에게 다가간다. 군인들은 민간인을 철저히 보호하듯 감쌌다.
[생존해 계신 분들은 속히 저희 지시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겠습니다.]
“안전한 곳? 그런 데가 있을 리 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부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편의점 앞에서 국가에서 나온 무리들이 감염자를 옮기다 쓰러진 것을 보고 난 이후에 국가에 대한 불신이 무럭무럭 자라 올랐다.
어차피 안전한 곳이라 봐야 대피소나 체육관, 학교 정도겠지. 그런 갇힌 공간에서 보균자가 나오면 그대로 전멸이다.
군인들이 점점 이곳으로 다가오자 자리를 피하려 일어났다.
“아저씨도 얼른 군바리들 따라 가야죠? 뭐해요?”
한 여자가 등을 강하게 때리며 말을 건다. 남의 몸에 닿았다는 사실과 군인들의 시선이 이곳에 몰렸다는 것은 둘째 치고 너무 당황스러워 여자를 빤히 바라본다.
“나 먼저 갑니다. 멍 때리지 말고 따라오세요, 아저씨.”
당황스러움이 사라지자, 이윽고 분노와 짜증이 밀려온다. 만일 자신이 보균자였으면 그 여자는 저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염시킬 소지가 있었다. 그 반대로 여자가 감염자였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지.
그리고 군인에게 벗어나려 했더니 되레 시선을 끌어버린 통에 이제 벗어날 길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무엇이 되었건 오해를 받겠지.
자연스레 군인들의 무리에 합류한 채로 얼마를 걸었다. 사람들에게서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채,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위치를 고수하며 걷고 있었기에 그나마 안정된 표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 불안감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것이다.
“아주머니, 아이가 참 예쁘네요.”
아까 그 여자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하는데 바보같이 헤실 거리며 또 남에게 말을 건다. 아줌마가 대답이 없자,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내 시선을 보더니 이곳으로 다가온다.
‘윽.’
“아저씨, 아까 도망갈 것 같은 표정으로 있더니. 결국 왔네요?”
“누구 덕분에. 그리고 좀 떨어져주지?”
이 여자는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인가. 겁이 없는 것인가. 이 여자는 그나마 자신의 말에 대답해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쁜 표정을 짓는다.
“난 다들 말 안 하면 바이러스에 안 걸린다고 생각하는 바보인 줄 알았어요. 이럴수록 쉴 새 없이 떠들어줘야 잠이 안 온 다구요.”
“내가 보균자여도 이렇게 붙어 있을 건ㄱ…”
[달리지 말고 걸어오십시오! 이상 행동을 보이면 즉시 저지하겠습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말에 나도, 이 여자도 고개를 들어보았다.
저 앞에서 웬 사람이 맨발로 미친 듯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수상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나는 긴장된 몸으로 사태를 파악해 보았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가장 적절하다.
군인들도 민간인들도 그리고 옆의 수다쟁이 여자도 궁금한 듯, 그곳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몸을 빼야겠다.
몰래 골목 쪽에서 그들이 이곳을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기로 하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맨발로 뛰어온 사람이 군인들의 앞에서 허덕거리며 뭐라고 횡설수설한다. 몸짓을 보면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표정이다. 군인들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그 사람을 안심시키려 했다.
“몽유병!”
그때 몽유병에 걸린 사람들이 주변에서 나와 군인들을 둘러싸고 덮쳐오는 게 아닌가?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저곳에 있었으면 꼼짝없이 도로 위에서 잠들 판이었다.
군인들은 각자 긴 막대를 꺼내 막대의 끝으로 몽유병 환자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밀쳐내었다.
그러다 잠시, 한 군인이 쓰러졌다. 몸이 닿은 게 아니라 막대로 건드렸는데도 잠들어 버린 것이다. 한 축이 무너지자 다른 축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군인들이 모두 잠들어버리자, 민간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려했다. 이미 잠든 군인을 밟고 지나간 이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몽유병 걸린 이들에게 얽혀 함께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수다쟁이 여자도 결국에 몽유병 걸린 이들에게 둘려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몽유병에 걸린 이들은 마치 임무가 끝났다고 여기는 것인지, 그 도로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9.

“깨어있는 사람을 잠재우기 위해 몽유병 걸린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말인가.”
침울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몽유병 걸린 이들이 다가올까 두려워 주변을 둘러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소리에도 식겁하여 신경이 곤두설 정도다.
반지하 방까지 오는데 벌써 도시에는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배도 고프고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곳은 아파트가 오래되어 아파트 단지 내에 물탱크가 자체적으로 있다. 때문에 수도가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아파트에서는 충분히 쓸 양이 된다는 것이다.
반지하 방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아무도 없다. 불을 켜자 주변이 환해진다. 현관문까지 걸어 잠그고, 신발장으로 막아두자 그제야 안심이 된다. 얼른 씻고 휴대폰 DMB로 상황을 봐야겠다.
샤워를 하는데 어려움은 단지 수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배낭에서 가져온 담요 한 장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옷을 입었다. 머리카락은 원체 짧으니 대충 물기를 털어내자 금세 말라버린다.

DMB를 수신하고, 차가운 바닥에 남은 담요 한 장을 깔고 젖은 담요는 둥그렇게 말아 베개처럼 만들었다.
[…따라서 국민 여러분께서는 군부대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은 생방송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져 생존자를 대피시키고 있사오니, 따라서 국민 여러분께서는 군부대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은…]
TV, 라디오 어딜 틀더라도 같은 메시지가 반복되어 흘러나온다. 그만큼 정부도 무력화되었다는 뜻이겠지. 고위급 장관이 잠들었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한숨을 쉬고 바닥에 누워 천장의 환한 형광등을 바라보자 눈이 아렸다. 그만큼 오늘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피곤했던 하루였다.
그때 형광등의 빛이 점점 거대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그 빛이 나를 덮쳐오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은 빛에 휩싸여 버린다.

10.

‘여기는…?’
나는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도 익숙한 장소. 오늘만 해도 내가 일어났던 장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날개를 흔들었다.
‘날개?’
하얀 날개. 침대 옆에 있는 거울이 내 모습을 밝게 비춰준다. 빛이 날 정도로 하얀 새다. 그래, 나는 흰 새다.

아주 지독한 꿈을 꾸었다. 인간이 되었고, 인간의 삶을 살았던 아주 지독한 꿈이었다. 그건 꿈을 잃어버린 삶이었다. 아무 소망도 없이 어딜 향해 걷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꿈이었다. 시작이 어딘지 몰랐고, 끝이 어딘지 몰랐다.
하지만 이것으로 꿈은 끝났다. 꿈속의 슬픔이 사그라지자 늘 도전했던 꿈이 떠오른다. 저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리라. 방의 창문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나는 능숙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창틀에 앉았다.
구름 저 너머로 날아가는 꿈.  펄럭이는 날갯짓과 동시에 힘차게 박차고 올라 하늘로 질주했다. 날개를 펴자 순식간에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나의 소망, 나의 숙원이 저 너머에 있다.

날아오르기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날 막지 마!’
인간이 된 꿈속에서 꿈을 잃었던 이유. 그래, 저 먹구름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는 저 먹구름에 먹혀버렸다. 그래서 꿈을 잃었고, 시작도 끝도 모른 채 살아갔다.
그건 아주 비참하고 슬픈 삶이었다.

먹구름이 푸른 하늘을 뒤덮자 천둥이 친다. 폭풍우가 몰려온다. 나는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먹구름으로 들어섰다.
빛을 뿜던 흰 몸이 점점 탁해지고 때가 묻었다. 점점 잿빛으로 물드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꿈에서 꾸었던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꿈에서 꾸었던 ‘사람인 나’를 떠올렸다. ‘사람인 나’는 꿈을 잃고 살아갔다. 그것은 정확히 꿈을 잃은 게 아니라, 폭풍우에 꺾인 것이었다. 벼락에 좌절당한 것이었다. 방해하는 것에 패배했던 것이다. 날개가 꺾이고 시야가 흐려지며, 흰 색의 고고함은 잿빛의 암담함으로 변질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람인 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날개를 꺼냈다. 새하얗고 거대한 날개였다. 거대한 날개는 잿빛 깃털을 다시금 하얗게 물들이며 먹구름을 헤쳐 버렸다.
검은 구름 속을 헤치며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검은 구름을 뚫고 창공에 이르렀다.

- 이곳은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푸르고 흰, 나 자신의 미래다.

그리고 그는 창공에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열 개의 손가락. 두 개의 팔. 두 다리. 완벽한 인간의 몸체였다. ‘나’는 깨달았다.
“그래, 이것은 ‘사람인 나’다.”
그리고 나는 절대적인 창공의 미래 속에서 서서히 하얀 세상이 다가옴을 느꼈다.

11.

눈을 뜬 곳은 빛이 ‘사람인 나’를…, 아니 나를 덮쳤던 반지하 방이다. 어느새 날이 환하게 밝았다. 나는 잠들었던 것인가? 잠에 들었지만 깨어났단 말인가?
나는 급히 현관문을 막고 있는 신발장을 치우고 문을 열어 밖으로 향했다.

밖은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나도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도 사람들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양이다. 먹구름을 뚫기 위한 하얀 날개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펼치려고 하는 그 하얀 날개를 공중에 뻗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날개.
마음 속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하얀 날개.
꿈의 날개를.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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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뮨 11.03.31 16:08 댓글 수정 삭제
    글의 심사평을 듣고 싶은데, 4월 26일 군대에 갑니다.. 하하.
    휴가 나와서 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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