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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잠자리 인간

2011.03.01 12:1003.01

잠자리 인간


오른쪽 눈을 다친 지도 어느덧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시간을 이렇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지금 시각은 밤인데, 시작했을 때는 해가 떠있었던 것 같다.
몸과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정신의 한구석은 무료함에 절어 웃기는 걸 보고 웃게 되어도 즐겁지 않게 되었다. 잠을 자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이미 몸은 어떤 선을 넘어서 침대로 가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힘겨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놔둬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지금의 나는 폐인과 다름없다.
잠들고 싶다.  

내 방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오른쪽에 침대와 창문이 있다. 의자에서 한 걸음 만에 갈 수 있는 침대에서 누울 때 발이 놓이는 쪽에 미닫이 창문이 있다. 겨울바람 때문에 이중창을 해놓은 창문인데, 창문 밖으로는 집과 약간의 사이를 두고 작은 담벼락이 서있었다.
약간의 사이, 집과 담벼락 사이에는 좁은 틈이 존재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가지가 얇은 이름모를 나무와 호박덩굴이 자란다.
나는 괴담을 한 편 보게 되었다.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걸 보고 나자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방 안 공기가 미지근했던 터라 섬뜩한 느낌 때문에 몸이 으스스해졌다. 그때였다.
소리가 났다. 나뭇가지와 호박덩굴이 있는 담벼락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정도의 크기와 질량을 가진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
어쩐지 나는 그렇게 느꼈다. 순간적으로 가슴의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지나간 듯 섬뜩해졌다.
일순간 섬뜩함으로 머리가 굳어져 역설적으로 컴퓨터에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창문 너머를 살펴보고 있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두근거렸고, 나는 이름 모를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밤보다 더 어두운 색을 띈 채 창문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담벼락 안쪽에 떨어진 무언가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머릿속에 생각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귀신이 아닐까 무서웠다. 그러나 공포가 가시자 이윽고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잠깐 숨이 멈췄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계에서 온 요정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러 온 건 아닐까. 나는 한동안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두근대고 있었다.
현실이 편하지만, 여차하면 이계에 가서 세계를 구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내 심장은 공포감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벽 때문에 돌아간다 해도 1분 정도 거리였다. 일어나서, 추우니까 옷 좀 껴입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유는 알고 있다.
아마, 지붕에서 고양이나 쥐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그럴듯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도 있는데다, 내 상상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가는 게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안 나갔다.  

근육이 녹아내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상태였다.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침대에 누웠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정신이 각성한 상태였다. 금방 잠들지 않았다.
누워서 잠시 담벼락 안쪽에 떨어진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그런 정도의 기대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이었다.

언제 잠들었더라?
물론 기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알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혈압 때문에 힘들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눈앞에 회색빛으로 흐려졌다. 나는 알람만 끄고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먼지를 들이마실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이 눈에 거슬려 모니터를 껐다. 컴퓨터가 완전히 부팅 되기를 기다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졸았다. 목이 말라서 냉장고로 갔다. 물을 마시려다가, 입안에 흘러든 물을 목으로 넘기지 않고 머금고 있었다. 입을 헹구고 내뱉었다.
냉동고에서 얼음조각을 꺼내 입에 넣었다. 얼음이 녹으면서 입안에 물기가 돈다.

방으로 향하던 걸음이 멈췄다. 그대로 거실을 맴돈다.
“아, 뭐였더라.”
뭔가 기억해내야 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거실을 돌아다녔다. 갑자기 생각났다.
방에 들어가서 적당히 위에 걸칠만한 걸 찾았다.
겨울이라 밖은 꽤 쌀쌀할 것이었다.
옷을 걸치고, 문득 발이 시려 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면용 양말을 신었다. 잔뜩 긴장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마당에는 눈이 내려와 있었다. 전혀 몰랐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눈을 좀 구경하다가 슬리퍼를 신고 발을 내딛었다.
의외로 생각했던 것만큼 춥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기온이 낮아서인지 서서히 체온이 빼앗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장 담벼락 쪽으로 향했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차가워서 손으로 코를 가렸다.
담벼락에 도착해, 쪼그리고 앉아 호박덩굴 사이를 숨을 죽이고 살펴보았다. 내쉬는 입김이 하얗게 허공에서 산화하는 가운데, 호박덩굴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서 나는 발견했다.
있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다. 발견한 순간 호흡이 멈췄다. 심장조차 멈춘 것 같았다. 그만큼 놀라웠다. 잠깐이나마 기대는 했지만, 또 어쩌면 진실이라고 믿기도 했던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눈앞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별다른 장애물도 없이, 그야말로 무방비로 놓여져 있었다.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호흡을 재개했다. 그리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조심스레 앉아 든 채 방으로 돌아왔다. 밖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와서인지 방안의 공기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창문을 열지 않은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게 생각났다. 창문을 열어두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앞에 있는 탁자에 가지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 이것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문득 적막하다고 느껴져 tv를 켰다. 채널을 음악이 나오는 곳에다 맞췄다. 음파의 존재감 때문에 외롭지 않게 되었다.  
거실에는 나 말고 사람이 없어서 기분 좋은 공허감이 느껴졌다. 나는 탁자 위에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것은 20세 정도의 동양인 여자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생겼다. 머리는 흑단 같고, 허리까지 내려와 있다. 완전한 나신이지만 예술작품을 보는 듯 음란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밀로의 비너스를 보는 듯 했다. 물론 둘은 달랐다. 일단 인상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르고, 이건 대리석 조각상이라기보다는 도자기 공예품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인간은 아니다. 크기도 문제지만 거기다가 등에 두 쌍의 날개가 돋아 있었던 것이다. 날개는 문으로부터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조류가 가지는 그런 날개가 아니라 잠자리가 달고 있는 것처럼 얇고 투명한 막 같은 날개였다.
곤충인가. 나는 곤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눈에 반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생물체가 내가 싫어하는 곤충이라고 생각하기는 싫었다.
문득 한 가지 말이 떠올랐다. 잠자리 인간. 너무 기묘하게 느껴졌다. 다른 말을 생각했다. 키워드는 아름다움, 인간형, 여자, 날개였다.
요정.
나는 잠자리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큰데. 인간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겉모습은 어린 것 같지 않고, 머리카락도 검고, 활발해 보이지도 않고. 이런 걸 요정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런 불길한 걸.
“잠자리 인간 쪽이 나은 것 같은데.”
이쪽이 더 독특하고.
잠자리 인간은 의식이 없는 상태인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눈가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기다란 속눈썹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 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몸을 날려 잠자리 인간으로 향할 상대의 시선을 차단했다. 들켰으면 변태로 매도당할 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동생이었다.
배후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해?”
던지듯 물어왔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상대의 시선이 이쪽에서 완전히 떨어졌다고 생각되었을 때 잠자리 인간을 안아들고 내 방으로 갔다.
“그냥.”
동생은 거실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닫았다. 문득 모처럼 밖에 나갔는데 금방 다시 방안에 들어온 게 왠지 아쉬웠다.
잠자리 인간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의자에 앉아 침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잠자리 인간이 침대 위에 무방비로 늘어져 있었다.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두 손을 넣고 잠자리 인간을 들어올렸다.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몸이 이번에는 공중에서 늘어졌다. 고개가 앞으로 숙여지며 흉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몸이 굉장히 부드럽다고 느꼈다. 도자기 공예품이 아닌 사람의, 그 중에서도 어린 여자아이의 느낌이었다. 문득 이 잠자리 인간은 겉모습보다 훨씬 어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이어졌다.
이런 성인의 모습은 실은 곤충의 보호색 같은 것이고 실제로는 정말로 조그맣고 연약한 그런 잠자리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기에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땐 어느 정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타인을 대하면서 상처입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잠들어 있을 때조차 보호색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 혹은 그 종은 대체 어떤 사람을 살아온 것일까.
또, 무슨 이유에서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내가 발견해낸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잠자리 인간을 들어올린 채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침대에 앉아 그대로 누웠다. 상체와 하체 조금을 침대에 얹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잠자리 인간을 든 양 팔을 천장 쪽으로 쭉 뻗었다. 그대로 팔을 뒤로 넘기며 기지개를 켰다. 그대로 잠시 들고 있다가 팔을 내려 잠자리 인간을 안았다.
문득 사위의 적막함이 전신의 주위를 스쳐지나간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고독하다기 보다는 햇살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정면에는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손바닥 아래, 심장 위로 느껴지는 잠자리 인간은 금방이라도 흙으로 만든 유리처럼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럼 부서지고 난 다음은? 모르겠다. 그래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어서 잠자리 인간을 좀 더 힘주어 안았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나는 옆으로 굴러 몸으로 잠자리 인간을 가렸다. 그리고 날 멀뚱히 내려다보는 방문자를 마주 쳐다보았다. 천천히 들키지 않게 잠자리 인간을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
내가 대답했다.
“어, 누나. 왜?”
한심할 정도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누나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놀러왔어.”
어이가 없어졌다. 그때 누나가 손가락을 들어 이불을 가리켰다.
“뭐야 그거.”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뭐, 뭐가?”
변명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말이 떨려나왔다. 좀 더 침착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손가락은 내려가지 않았다. 내 맥박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는 누나가 잠자리 인간을 보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진심으로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게 싫었다.
이윽고 누나의 손이 내려갔다. 누나가 먼저 화제를 돌렸다.
“어제 그 뉴스 봤어?”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에 앉았다. 침대가 조금 흔들렸다.
“뉴스?”
뉴스는 그리 잘 보지 않는다. 누나도 그걸 아는지, 그대로 그 뉴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깃거리였다. 그때 부모님 중 한 분이 밥을 먹으라고 불렀다. 누나에게도 같이 먹자고 말했다.
“네, 잘 먹겠습니다.”
누나는 밝게 웃으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먼저 앞서 나가고 나도 따라 나갔다. 나는 내가 늘 앉던 곳에 앉고 누나는 나에게서 직각으로 위치한 곳에 앉았다. 누나를 보았다. 얼굴선이 시원스럽다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었다. 대체로 대화는 없었지만 불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tv에서는 토크쇼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다들 tv에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채널을 돌렸다. 음악채널에 맞추고 다시 밥을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릇을 들고 계수대로 갔다.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었기 때문에 나는 밥을 남겼다. 나만 빼고 밥을 다 비운 게 보였다.  
나는 잔반을 모아서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키우는 고양이와 개한테 밥을 주려는 것이다. 둘 다 덩치가 작아서 조금밖에 먹지 않는다. 그릇을 보니 어제 준 밥도 다 먹지 않은 채였다. 밥은 밤 동안 밖에 방치되어 있었기에 밥그릇에 얼어붙어있었다.
나는 그 위에 밥을 덜어 넣었다. 개는 나를 경계하며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얼굴 보는 일이 드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더 그렇다.
내가 개에게 밥을 주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 일을 자처한 건 순전히 누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있기 어색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남과 같이 있는 게 나에게는 독특한 심리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고개를 돌려 문에 달린 유리창 너머로 집안을 살핀다. 누나는 방안에 들어가지 않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봤다. 어느새 황색 줄무늬르를 가진 고양이가 내 발치를 맴돌고 있었다. 나에게 딱 붙어서 맴돌고 있어서 바지에 고양이의 몸이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고양이는 몇 년 전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꽤 예전부터 키우던 것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느끼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꽤 오래전부터 고양이가 등장한다. 예전에는 자주 놀아주곤 했던 터라 나에게 친근하게 군다. 고양이의 밥그릇에 가보니 개의 밥그릇과는 달리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나는 개에게 밥을 덜 때 건더기를 절반보다 적게 주었었다. 나는 처음 있던 것의 절반보다 많은 양을 고양이의 밥그릇에다 부어주었다. 고양이가 밥그릇에 달려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집안을 살폈다. 여전히 누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그리 재미있어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발끝으로 살짝 건드려주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누나가 몸을 일으켰다.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빈 밥그릇을 물에 담그고 방으로 갔다. 누나가 내 뒤를 따라 방에 들어왔다.
내가 컴퓨터 앞의 의자에 앉자 누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마우스를 잡고 잠시 있다가, 누나를 방치해 두기가 꺼려져 서랍에서 영사기를 꺼냈다. 아는 사람이 버리는 것을 가져와 부품을 사서 고친 것인데 구식이지만 꽤 쓸만하다.
나는 영사기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예전에 경품으로 받고 좋아했지만 어쩌다보니 안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DVD를 꺼내 컴퓨터에 넣었다. 장수가 꽤 많으니까 이걸 다 볼 때쯤이면 저녁이 되어 있을 것이다.
누나는 희미하게, 왠지 미안해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봤던 거 아니야?”
“응? 아니.”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실제론 누나의 호의에 감동을 받을 지경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은 당찬 행동도 보여주지만 누나는 기본적으로 착하고 사려를 생활에 실천하는 사람이다. 내가 손해 보는 일을 자처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걱정 받는 것은 분명 귀찮은 일이겠으나 그래도 누나에게는 걱정 받아도 그다지 싫지 않다. 이건 분명 내가 누나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올랐다. 누나를 지나쳐 벽과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누나 사이에 영사기를 놓고 영사기의 방향을 천장 쪽으로 돌렸다. 이불을 벽 쪽으로 접어 밀어 넣고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두꺼운 커튼으로 가렸다. 내가 눕자 누나가 내 옆에 붙어 누웠다.
어느 날 주인공의 친구들이 실종되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이 그들이 사라진 영화관에 갔다가 역시 친구들처럼 영화 속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영화 속 세계는 황량한 서부의 한 마을. 그 세계에 있으면 현실에서의 기억이 점점 사라진다. 영화 속의 사람들은 영화 속 세계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악당이 그것을 방해한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내용이었다. 일본 작품인데, 자막이 없었지만 누나가 중요한 부분은 해석을 해줘서 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데 목이 말라왔다.
“물 좀 마시고 올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곧이어 잠자리 인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물 마시러 간 사이 누나가 잠자리 인간을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게 다 내가 잠자리 인간을 숨기는 걸 누나가 보았기 때문이다. 문득 사실 잠자리 인간이란 생물은 특별한 게 아니고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나는 방문을 나선 후 냉장고로 곧장 가지 않고 멈춰 서서 몸을 숨긴 채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에선 누나가 이불을 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침묵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분노나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허탈감도 없었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단순히 잠시 동안 온 몸의 피가 멈춰 있다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순간 문을 천천히 열고 있었다. 누나는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방안으로 걸음을 내딛자, 발걸음 소리 때문인지, 내 몸에서 나는 사람의 냄새 때문인지, 혹은 문을 열 때 거실에서 들어온 빛에 의한 조도의 미묘한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직감 때문인지, 혹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여러 가지 요소가 합해진 결과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누나가 뒤를 돌아보았다는 것이다. 침대 위에는 잠자리 인간이 쓰러져 있었다. 옆으로 쓰러진 채 날개를 뒤로 포개어 늘어뜨리고 있었다. 둥근 모양을 한 어깨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가련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나는 잠자리 이간을 안아들고 뒤로 물러섰다. 누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품에 안긴 잠자리 인간의 존재를 느끼며 방문까지 물러섰다.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가 나를 쳐다봤다. 표정에서는 아무런 의문도 놀라움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나만 몰랐지 잠자리 인간은 일상적인 것일까. 믿기지 않는다. 있을 수 없어. 오히려 잠자리 인간이 내 정신병의 산물이라는 쪽이 가능성 높아. 문득 이게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잠자리 인간은 실존한다. 누나만 못 보는 것일 수도 있어. 혹은 연기인가.
혹은 누나가 환상이거나.
진실을 판명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친 기분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이거 보여?”
잠자리 인간을 안고 있던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누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잠자리 인간이 보이지 않는 눈치다.
“뭐가?”
“손을 뻗어봐.”
누나는 이제 어리둥절한 상태인 것 같았다. 걱정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왜?”
“난 지금 뭔가를 들고 있어. 만져봐.”
내 어조가 진지하게 들렸는지 누나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나머지 손가락을 접고 두 번째 손가락만을 들어 올리며, 조심스레 내민다. 나는 팔은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뻗어 누나의 손가락이 잠자리 인간에게 닿는 것을 지켜보았다. 누나는 손가락을 천천히 내밀고 있었다. 마치 뭔가가 손끝에 닿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했다. 그러나 때는 찾아왔다. 손가락 끝이, 정확히는 연분홍색 매니큐어를 살짝 바른 귀여운 손톱이 잠자리 인간의 몸에 닿았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 장면을 눈에 담았다. 누나의 손가락이 닿은 곳은 잠자리 인간의 가슴부위였다. 손가락이 조금씩 전진했다. 그때 이변을 발견했다. 손가락이 계속 나아갔던 것이다. 멈추지 않고, 솟아오른 가슴이 짓뭉개짐에도 멈추지 않고 , 손가락은 차근차근 잠자리 인간의 몸속으로 침투해가고 있었다. 안 돼. 심장이 찔려버릴 거야. 나는 팔을 거둬들여 잠자리 인간을 품에 안으며 누나에게서 돌아섰다. 심장이 맥동하고 있었다. 잠자리 인간을 껴안고 누나에게 등을 보인 채, 잠시 동안 그렇게 있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서자, 거기에는 누나의 겁먹은, 그러면서도 연민이 어린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누나를 마주보았다. 잠시 동안 그렇게 있었다.
“물 좀 마시고 올게.”
“응.”
돌아서서 나갔다.
거실을 가로질러가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잠자리 인간을 한 손으로 안고 물통으로 손을 뻗었다. 물병의 목을 잡으려 했으나 손아귀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원근감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손을 들어 왼쪽 눈을 만져봤다. 망막에 손끝을 댔다. 의안이 만져졌다. 눈 주위에는 흉측한 화상자국.
얼굴에서 손을 떼고 물병을 잡았다.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손이 떨려서 그대로 병을 들고 물을 마시기 어려웠다. 물병을 가져가, 컵을 꺼내 거기에 물을 따랐다.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누나에게 안 보인다면 굳이 잠자리 인간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방안에 놔두는 건 신경 쓰여서 귀찮다. 거실에 놔두려니 방치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어쩌지, 어디에 두며 좋을까. 그렇지, 서랍에 넣어두면 되겠네. 서랍에 넣어두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책상에 붙어있는 서랍 중 가장 큰 맨 아래 서랍에 잠자리 인간을 넣고 침대로 돌아갔다. 애니메이션은 극장판이었다. 남은 DVD가 많아서 느긋한 마음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결말을 보게 되었다. 슬픈 이야기였다. 힘든 일을 같이 이겨내고 앞으로 즐거운 삶을 같이 보내리라 여겼던 사람을 잃게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누나는 옆에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울음을 참으려 해도,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도 그것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누나는 저녁이 되었을 때 돌아갔다. 겨울이라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밖은 군청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산은 짙은 군청색,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옅은 군청색,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은 칼날처럼 서늘한 군청색.
누나를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지쳐있다는 걸 깨달았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어쩔까 하다가 컴퓨터를 껐다.
침대 위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불로 다리를 덮었다.
책을 읽는 중이었다. 문득 잠자리 인간이 생각나서 책갈피를 끼웠다. 이불에서 벗어나기 싫어 침대 밖으로 몸을 내밀고 서랍에 손을 뻗었다. 열어보니 잠자리 인간이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잠자리 인간이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윽고 누군가 잠자리 인간을 훔쳐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다른 데 놔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가장 먼저 의심되는 사람은, 슬프게도 누나였다. 나는 초조하게 되어서 거실을 돌아다니다 행동을 정하게 되었다. 옷을 걸치고 누나의 집으로 갔다. 밤의 어둠 속을 희미한 시야에 의지해 걸어갔다. 나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누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누나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내 발을 붙들고 울며 애원하도록, 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물론 상상만 할 것이다. 어쨌든 추궁은 해야겠지만.
밤이 되어 내려간 기온이 머리를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며 걸어갔다. 누나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200m쯤 될까, 그 정도다. 거리가 짧기 때문에 분노가 가라앉을 정도로 오래 걷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추위는 생각이 복잡하게 뻗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 이 생각만 하며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었다.
누나의 집 창문을 통해 누나가 아직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 앞에 서자 앞으로의 일에 대한 흥분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자, 왔다. 올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누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다. 날씨가 춥다고 생각하며 손을 들어 익숙하지 않은 초인종을 눌렀다. 집안에서 무엇인지 모를 희미한 소리가 났다. 별생각 없이 손잡이를 돌려보니 그대로 문이 열렸다.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누나의 방 쪽으로 가자 마침 방에서 나오고 있는 누나와 마주치게 되었다. 누나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이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모니터에는 글자가 빼곡했다. 원고라고 짐작했다. 원고라고 해도 그냥 모아두기만 하지만.
저녁식사 중인 듯 모니터 앞에는 볶음밥이 조금 큰 그릇에 담겨 있었다. 누나는 그것들을 보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서서 말했다.
“누나, 잠자리 인간 못 봤어? 내 집에 있던 거 말이야. 고양이랑 비슷한 크기에 여자처럼 생긴 거. 검은 머리에 등에 날개달리 작은 사람이야. 누나가 가고 나서 보니까 없어졌어.”
막히지 않고 말을 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누나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다. 누나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표정이 굳지도, 멈칫하지도 않았다.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누나가 말했다.
“못 봤어. 왜?”
“아니, 난 누나가 훔쳐간 줄 알았거든.”
여전히 수상한 낌새는 없었다.
“하하. 미안, 난 안 훔쳤어.”
“진짜?”
“응, 정말.”
“그럼 누나가 미안할 건 없네. 내가 미안하지.”
“그렇긴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수상한 미소는 아니었다. 어느새 나도 웃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날 사로잡고 있던 분노는 눈이 녹은 듯 사라져 있었다.
“갈게.”
그렇게 말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찾아보자. 나는 건망증이 심하니까, 혹은 게슈탈트 붕괴라는 것 일지도 모르고. 게슈탈트 붕괴라는 말의 어감이 좋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게슈탈트 붕괴라는 말을 흥얼거렸다.
문을 열고 난방을 해서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섰다. 찾자. 잠자리 인간을 찾자. 나는 기억을 더듬고, 차근차근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잠자리 인간을 넣어둔 혹은 넣어뒀다고 생각하는 서랍을 열었다. 차근차근, 내 행동 경로를 더듬어갔다. 찾을 수 없었다. 화가 났다. 대체 어디를 놓친 것인지 생각했다. 서랍에 넣은 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런데 사라져 있으니 누가 훔쳤다는 말이 된다. 집안에는 부모님과 동생과 누나와 내가 있었다. 누나, 나 제외. 부모님은 서랍을 열지 않으실 것이다. 동생도 굳이 서랍을 열 일이 없다. 아니. 그래, 동생, 동생은 잠자리 인간을 봤다. 아침에 잠자리 인간을 가지고 왔을 때, 언뜻 보고 뭔가 궁금해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져갔다.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동생의 방으로 갔다. 동생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깨 너머로 보니 교과서와 노트를 펴놓고 있기는 했다. 내가 들어온 걸 모르는지 돌아보기는커녕 노트에 필기하던 손이 멈칫하지도 않았다.
잠자리 인간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역시 이 녀석의 짓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 쪽으로 다가가던 중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이변을 알아차렸다. 주위의 기물과 스탠드 불빛으로 인한 그림자에 가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동생은 다리가 하나 없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무릎에서 5cm가량 윗부분부터 사라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는 게 미안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되나 고민하며, 부모님 중 한 분이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불안하게 서있었다.
동생은 책상을 집고 일어서더니,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한발로 뛰어서 문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게 위태로워 보였기에 부축해주었다.
거실로 나오자 부모님 두 분이 보였다. 다행히 두 분은 정상적이었다. 아니, 동생의 다리가 소멸한 걸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다는 점에선 비정상이라 할만하다. 이상하게도 두 분은 동생의 다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동생의 다리가 사라진 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동생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빠, 휠체어 좀 사줘. 불편해.”
“그래?”
의문형이었지만 그 물음은 동의를 뜻했다.
나는 동생의 방에서 잠자리 인간을 가지고 내 방으로 갔다.

아침이었다. 나는 내가 잠자는 동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자리 인간이 또 없어져서 동생의 방으로 갔다. 조용히 문을 열었지만, 동생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하반신을 이불로 가린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동생은 자기 방에 침입한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아줘.”
“응?”
나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은 어서 안아 돌라는 듯 양팔을 내 쪽으로 뻗고 있었다. 가만히 서있기는 무안해서 동생에게 다가가는 중에 내 시선이 동생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팬티만 입고 있는 하반신에는. 이젠 양다리가 없어져 있었다.
나는 동생을 안아들었다. 어떻게 안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는데, 동생이 두 팔을 내밀고 있었으므로 몸을 들고 나서 한 팔로 엉덩이를 안았다. 동생의 양 팔이 목에 감겨왔다.
원래부터 어린아이 같은 체형이었던 데다 양 다리가 없어져서 많이 가벼웠다.
동생이 작게 말했다.
“화장실.”
화장실로 데려다주었다. 혼자서 오줌을 누기는 고난한 일이어서 같이 들어가 줘야 했다. 어지간히 참았는지 물소리가 시원했다. 동생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여전히 부모님은 동생의 상태에 관해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음날 보니 동생의 왼팔이 사라져 있었다.
그 다음날 보니 동생의 두 팔이 사라져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부끄러운지 나에게는 부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팔이 없었으므로 동생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나에게 안기게 되었다.
그 다음날은 여러 가지가 많이 사라졌다.
얼마나 사라졌냐면,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두 다리가 사라졌을 때까지만 해도 귀여운 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동정심이 왈칵 치솟을 정도가 되었다.
쟤 병원에 안 가도 돼요?
라고 부모님께 묻고 싶었으나 묻지는 않았다. 왠지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어느 날,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자, 동생이 미친 듯이 꿈틀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랐기에 동생을 토닥였다. 그리고 전처럼 어느새 동생의 방에 있는 잠자리 인간을 내 방으로 옮겼다. 그 다음날 동생이 소멸했다.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웹 서핑을 하다가, 왠지 참을 수가 없어 누나의 집으로 갔다. 누나는 나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도중에 누나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걱정’하다니, 이 경우에 걱정을 받아야 할 건 명백히 동생이다. 그런데 나를 걱정 하는 것이다. 동정하는 것이다. 사려해주는 것이다.
내 동생 기억해?
라고 묻고 싶었다. 두려워서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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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강탈자 공모전 공모작입니다. 왜 탈락했는지에 대해서는 짚히는 점이 너무 많네요. 신체강탈자 소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호러소설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문장을 간결히 해서 한 9천자 정도로 줄여볼까 하는데 이대로는 어떨지 궁금해서 올려봅니다.

kasd78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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