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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망각의 숲

2010.02.21 23:3302.21

  
컴퓨터 자판을 현란한 손놀림으로 두드리며 나는 온 정신을 컴퓨터의 모니터에 집중했다.
구슬이 부딪히는 신나는 소리와 형형색색의 현란한 그래픽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푹 빠져있는 나였다.
"혜정아? 너 또 오락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부지런히 오락을 하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의 꾸짖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시끄러운 오락의 효과음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17년 넘게 엄마와 같이 살면서 습득한 내 몸의 보호체계 덕분이다. 거실에 있던 엄마가 내가 있는 방으로 다가오려는 낌새가 느껴졌다.

"아.. 아냐! 엄마. 나 미술 숙제 때문에 인터넷 검색하는 중이였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빠르게 마우스로 검색사이트로 화면전환을 하며 변명을 하는 나였다. 그리고 검색창에 빠른속도로 "명화"를 입력하곤 아무 사이트나 클릭해서 들어갔다. 게임을 하며 보낸 시간 동안 숙달된 나의 손가락 근육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였다. 화면이 온통 이름모를 유명한 그림들의 썸네일로 가득찬 찰나의 순간, 뒤에서 엄마의 기척이 느껴지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헉. .. 아슬아슬했다.'
"흐음~"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미술선생님이 마음에 드는 그림하나를 찾아서 감상문을 쓰라는 거 있지. 하하"
"그래? 숙제 끝나면 오락하지 말고 컴퓨터 끄고 일찍 자! 알았지?"
"알았어. 내가 뭐 매일 오락만 하는 줄 아나.."

나는 모니터에 펼쳐진 여러 그림들 중 아무 그림이나 클릭하고는 그것이 굉장히 흥미롭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물건인 것 마냥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이 눈에 제대로 들어올리가 없었다. 나의 오감은 온통 엄마의 움직임에 쏠려있었으니...
나의 할리우드 액션 뺨치는 연기에 넘어가셨는지 곧 엄마가 별다른 잔소리 없이 다시 안방으로 사라지셨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다시 빠른 속도로 게임사이트로 이동을 하려던 순간 갑자기 모니터의 맨 오른쪽 구석에 있던 작은 검은 그림이 나의 시선을 홱 끌었다.
  순간적으로 게임사이트로 이동하려던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의 마음은 그 그림을 크게 확대해서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찼다. 나도 모르게 블랙홀처럼 강한 무엇에 끌리듯이 멍하니 마우스로 그 그림을 멍하니 클릭했다.
그러자 한 화면 가득히 검은 숲의 모습이 눈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내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강한 자력에 이끌린 거 마냥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거진 숲을 표현한 듯한데 밤인지 온통 숲이 검은색이였다.
그러나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숲 하나가 아니라 나무 한 그루에서부터 나뭇잎 하나, 나뭇잎의 잎맥까지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너무 섬세하고 사실감 있게 표현된 그림이였다. 마치 숨을 깊게 들이쉬면 밤에 나는 숲 특유의 짙은 향과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의 강한 흡인력에 내 마음은 단순히 그림을 화면에서 확대하여 제대로 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인쇄하여 소유하고 싶은 욕심으로 커졌다.  

망설임 없이 인쇄버튼을 눌렀다. 구형의 프린터가 거칠게 투덜거리며 짙은 검은 칼라의 그림을 내뿜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모니터의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목마름에 사로잡혀 그림 전체를 샅샅히 훑어보는 나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림의 오른쪽 부분에 숲의 검은색이 아닌 약간 짙은 갈색의 긴 줄과 회색의 기다란 점이 보였다.
"이게 뭐지?"
나는 얼굴의 모니터에 바짝 들이대고 바라보았지만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그림을 다 인쇄했는지 소음을 내뱉던 구형 프린터가 한번 부르르 떨며 멈췄다.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인 나는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속의 검은 숲의 이미지가 그대로 옮겨진 인쇄된 그림을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집어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잘 보일 수 있도록 침대 끝 벽 한가운데에 인쇄된 그림을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침대에 벌렁 누워서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서서히 벽에 붙은 그림 속의 숲이 점점 확대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희미하게 쌉싸름한 풀냄새와 축축한 나무의 냄새가 나는가 싶더니 그 냄새는 점점 짙어지고 검은 숲은 더욱더 확대되어 내 방에 퍼지더니 순식간에 내 주위를 감싸 버렸다.
어느 사이엔가 주변은 칠흑같은 밤의 숲으로 변해있고 나는 곧 빽빽이 나무가 우거져 있는 숲의 한 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숲의 풍경이 내가 인쇄한 검은 숲과 똑같다는 것도.
'헉! 이럴수가.. 설마 내가 그림 속에 들어온 거야?!!!'
믿기지가 않았지만, 나는 좀 전에 내 방에서 입고 있던 꼬질꼬질한 보라색 체육복 차림 그대로였고, 양말도 신고 있지 않은 맨발로 돌 섞인 까칠한 흙을 밟고 서 있는 익숙치 않은 느낌을 너무 실감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얇은 체육복 사이로 숲의 추운 밤 바람이 스며들어, 몸이 살짝 떨리는 것도... 세찬 바람에 대충 틀어 묶었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풀어져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이봐요!! 아무도 없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을 향해 외친 나의 목소리는 구슬픈 돌림노래마냥 반복해서 울렸다. 나는 계속 외쳤지만 내 목소리는 또 다른 내 목소리를 만들어내 숲 속은 내 목소리들로 가득차 서로에게 울릴 뿐이였다. 조금씩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 머릿속에 갖가지 어두운 생각들이 가득차올라 순간적으로 아찔해졌다.
가만히 있다보면 다시 내 방으로 원상복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눈을 꾹 감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내 귀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나무향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접하는 상황의 두려움에 가만히 있자니, 점점 더 추워져 몸이 사시나무마냥 덜덜 떨렸다. 어두움에 눈이 익숙해지자, 숲의 윤곽이 어느정도 뚜렷하게 보였고, 나는 결국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맨발에 닿는 따끔거리는 돌조각들을 피해 조심스레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만 따라 걸었다. 빛 한점없이 나를 빨아들일 것만 같은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숲을 헤매었을까?
두려움은 걷는 동안 어느새 사라지고 없어졌다.
숲은 온통 검푸른 색이였지만 불쾌한 느낌이 아니라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숲 속을 걷는 동안 익숙치 않던 숲의 풀내음이 점점 익숙해지자, 나에게 묘하게도 사향처럼 몽롱한 효과를 끼치고 있었다.
한참을 걷던 나는 잘 다듬어진 길을 발견했다. 누가 마치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부드러운 갈색 흙으로 된 길... 갑자기 아까 컴퓨터 모니터에서 본 그림 오른쪽 부분의 갈색 긴 줄이 떠올랐다.
'아... 그게 이 길이구나...'
나는 나의 지금의 상황도 잊고 해결되지 못했던 의문점 하나가 해결된 것이 은근히 기뻤다. 그리고 더불어 같이 궁금해 하던 회색 톤의 긴 점도 떠올랐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의 정체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거친 숲속을 헤매느라 혹사당한 발을 부드러운 갈색 흙길로 돌렸다. 길을 따라 걷노라니 비단결 같은 부드러운 흙의 감촉에 발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맑은 공기와 숲의 풀내음, 밤의 고요함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에 젖어 길을 따라 걷는 것을 즐겼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길 저 끝에서 회색모자와 회색옷을 입은 누군가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는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앗.. 그 회색점이 사람이였구나!!'
나는 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회색의 그 사람을 붙잡기 위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봐요~~ 잠깐만요.!!"
나의 큰 목소리에 걸어가던 사람이 가던 길을 우뚝 멈춰섰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걸었다.
"헉헉..실례지만 말 좀 물을께요~"
회색옷의 사람이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움직임에는 흡사 영화속의 슬로우 모션처럼 묘한 느릿함이 있었다. 온통 회색톤으로 감싼 그 사람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 나는 순간 이 사람은 얼굴도 회색이지 않을까 하는 묘한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그런데 내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 사람은 정말로 얼굴이 회색이였다!!!
"헉!!"
'이럴수가...그럴리가 없어!!'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흰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모습을 딱히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키가 작은건지... 큰 건지...
머리색깔과 눈의 색깔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여자같기도 하고 남자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닮은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친구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엄마처럼 보였다.
분명 앞에는 사람이 서 있는데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당혹스러움에 나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나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그 회색 옷의 사람이 살짝 웃었다.
"제 모습은 당신이 떠올리는 대로 보일 거예요. 그러니 보고 싶은 모습을 떠올리세요"
"네?"
나는 순간적으로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 사람 말대로 내 앞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회색옷을 입은채...
"헉!! 엄마?"
"당신이 보고 싶은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인가 보군요."
그러나 목소리는 전혀 엄마가 아니였다. 심지어 왼쪽 볼의 점과 눈가의 주름형태까지 똑같이 엄마의 겉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목소리와 모습의 괴리감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변할 수가 있어요?"
내가 정말 신기해하며 묻자 엄마의 모습을 한 사람이 대답했다.

"저는 [기억]이거든요. 제 모습은 저를 보는 사람이 떠올리는 기억에 따라 투영되어 보이는 거 뿐이지요."
"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말에 나는 약간 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무언가 정상이 아닌 듯한 느낌...
'하긴... 지금 내가 그림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지.'
"그럼....;; 여.. 여긴 어디죠? 저는 원래 여기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그림속으로 들어온 거 같아요."
엄마의 모습을 한 그 사람은 아니, [기억]은 내 말을 듣자,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역시나 적응되지 않는 묘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음.. 그림을 통해서 오셨다면, 물질세계에서 오신 것 같네요. 여긴 [망각의 숲]이랍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망각의 숲] 그림이 물질세계에까지 가게 되었을까... 여기 오래 있으면 좋지 않아요. 점점 기억을 읽어버리게 되죠. 물론 저와 있으면 덜 하겠지만..."
"기억을 잃어버린다고요?"
“네.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여기에 있는 순간순간, 당신은 하나씩 당신의 기억을 잃어버려요.”
“그럴 리가...”
너무 황당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였다. 미심쩍어하는 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엄마의 모습을 [기억]이 말을 이었다.
“한번 오늘 아침에 한 일을 기억해 보세요.. 사소한 것부터..”

엄마의 모습으로 말하는 그 사람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소심한 나는 어느새 [기억]의 말을 따라 아침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집중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오늘 아침에 무엇을 했는지...
아니...오늘 아침이 있기는 했던걸까..
'그러고 보니, 숲속을 돌아다니는 동안 무언가에 취한 듯 점점 기분이 좋아졌는데 기억의 사라짐 때문이었던걸까.'

순간 멍해져버린 나의 표정을 본 [기억]이 그것 보란 듯이 말을 이었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좋지 않아요. 하루 빨리 물질세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돌아가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물질세계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필요로 해야 하죠."
엄마의 얼굴과 어긋나는 묘한 목소리로 말하는 [기억]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숲을 걸으면서 사라졌던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묘한 불쾌감과 함께..
정말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걸까?
그 답을 나는 깨닫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억]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지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금세 까먹었다. 어쩌면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지도...
나는 점점 더 몽롱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최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알아차렸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세세하게 표현되었던 [기억]의 얼굴, 즉 엄마의 얼굴이 약간 밋밋해졌다고나 할까. 조금씩 두루뭉술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일까...
"아~ 어쩌지?"
눈물이 나올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내 머리 속의 기억 의 구멍난 자리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차 나를 하염없이 가라앉게 만들 뿐이었다. 나의 우울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기억]이 말을 했다.

"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순간, 당신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어 텅 빈 공간으로 돌아가게 돼요. 절대 제 모습을 놓으면 안돼요. 힘들더라도 당신이 보고자 하는 사람을 계속 떠올리세요. 당신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생각할 때마다 비록 멀리 있더라도 그 사람은 당신을 부르게 될 테니까요."
나는 점점 투명해지면서 형태 없는 모습으로 변하는 [기억]의 말에 결국 참았던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엄마...."

엄마.....

엄...



"혜정아! 일어나~ 얘가 땀에 흠뻑 젖었네. 오늘부터 아침운동한다고 했잖아!!"
"음..."
"일어나!!  이 녀석아~최소한 작심 3일은 해야 할 꺼 아냐!!"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등에 싸하게 아픔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왼쪽 볼 검은 점과 눈가에 있는 주름들이 확 눈에 들어오며 머릿속이 맑아졌다.
"엄마!!"
와락 엄마를 껴안자, 엄마가 말했다.
"어이구~ 얘가 왜 이래? 더워 죽겠어~ 이 손 놔~"
"나... 나....망..."

잊어버릴 뻔했던 엄마의 얼굴을 눈으로 더듬으며 [망각의 숲]이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벽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색의 [망각의 숲]이 있어야 할 종이에는 아무런 그림도 있지 않았다. 하얀 백지였다. 믿기지가 않아 나는 다시 눈을 비비고 보았지만, 벽에 붙어있는 것은 검은 점 하나 없는 하얀 백지뿐이였다. 내가 말을 멈추자, 엄마가 되물었다.
"망... 뭐?"
"아.. 아무것도 아냐, 헤헤.."
"미술숙제한다더니, 그건 다 한거니?"
"아직...다 못했어. 운동보다 그것부터 마저 해야겠네."

황급히 둘러대며, 일어나 엄마를 방에서 내보냈다.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손으로 닦아내고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새벽부터 다시 내 방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어제 저녁때 들어갔던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서 같은 검색어인 '명화'를 입력해 [망각의 숲] 그림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림은커녕 그 그림이 있었던 사이트조차 나는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한 여름밤의 꿈이라도 꾼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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