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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돼지 좀비 바이러스

2010.02.14 00:0602.14


-김차남의 경우. 하나.

"너 왜 신종 좀비 바이러스가 신종 좀비 바이러스인지 알고 있냐?"

 박급우는 지 도시락만큼이나 싱거운 놈이다. 김차남은 알고 있다. 다만 대꾸하기가 귀찮아 묵묵히 도시락을 먹을 뿐이다. 언제나처럼 아는 척하고 싶나보지. 기분 나쁜 날에는 항상 박급우의 싱거운 허세에 짠소리로 간을 맞춰준다. 오늘은? 다 귀찮은 날. 입에 든 햄계란부침이나 마저 씹는다.

"신종 좀비 바이러스 원래 이름이 돼지 좀비 바이러스거든. 그런데 돼지 축산 협회에서 돼지 값 떨어지니까 그 이름 쓰지 말라고 압박 넣었대. 웃기지 않냐?"

 물론 신종 좀비 바이러스는 돼지고기 먹는다고 감염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입 안에 든 햄계란부침이 약간 쓰다. 신종 좀비 바이러스는 그 이름 그대로 걸리면 좀비가 된다. 전국적 이슈다. 박급우는 뒤이어 신종 좀비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랑 비슷하다던가 아직 한국에는 감염된 사람이 많지는 않다던가 남미 어디에는 떼로 좀비가 나왔다던가 뉴스에서 빤히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뭐 나야 괜찮지. 하루 6시간 이상 꼭 자주고. 비타민제 챙겨먹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공부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꼭 당구 한판 쳐주고. 그래, 오늘 당구 한판 칠까?"

 김차남과 박급우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이렇게 속 편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건 오늘 건강검진이 있던 덕이다. 보충도 야자도 없으니 하루 휴가 얻은 셈. 상시 새마을 운동 진행 중인 고3 반이지만 신종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이 여간 아니라 그렇다. 흰자위만 드러낸 채 침 튀기고 콧물 뿌리며 남 깨물고 다니는 감염자의 모습은, 썩 예쁘장한 꼴은 아니니까. 사람들이 이성과 상식의 모라토리엄을 선포한지도 오래다.

 물론 고3은 그 기세가 덜하다. 언제나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화 없이 굴러가는 단체는 고등학교다. 뭐 달라진 게 없다. 교문 앞에서 체온검사 하는 것 정도? 그래봤자 두발검사의 반만큼도 엄격하지 않다. 아이들을 곱게 집에 돌려보내는 것은 학교 취향이 아니다. 원래 오늘도 야자를 할 예정이었다. 옆 중학교에서 감염자가 나와 공문이 미친 듯이 쏟아졌기에 취소한 거지.

 김차남도 마찬가지다. 뭐 달라진 게 없다. 신종 좀비 바이러스에 걸려서 박급우의 대갈통을 깨물고 빠는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다음 있을 명박고사를 더 걱정했다. 애초에 신종 좀비 바이러스는 손 잘 씻고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사람 많은 곳 피하는 것 외에 예방책이랄 게 없지 않나. 주변에 걸린 사람도 없다 보니 위기감이 없다. 걱정은 뭐 걸리면 그때 하지. 박급우 대갈통이나 깨물면서.



-김장남의 경우. 일곱.

"전기충격기. 비닐봉투. 접착테이프. 굶주린 돼지."

 김장남의 젓가락이 불판 위에서 춤을 춘다. 현란하지만 명쾌한 그 움직임에는 일초의 군더더기도 찾을 수 없다. 삼겹살을 뒤집는 것은 오로지 단 한번 뿐. 이회 이상 이루어지는 삼겹살 전복은 고기의 농후함을 없앨 뿐이라 김장남은 굳게 믿었다. 소리. 소리를 들어야 해.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기름튀기는 소리를. 김장남은 고기가 구워진 정도를 파악하는 청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영화에 나온 이야기야. 사람을 잡을 줄 아는 놈이 쓰는 살인 도구가 저거거든. 전기충격기. 비닐봉투. 접착테이프. 굶주린 돼지. 장도리나 전기톱에 비하면 고상한 방법 아니냐? 물론 난 장도리도 좋아한다만."

 모이병 이병은 김장남이 무슨 말을 했는지 놓치고 말았다. 물론 모이병이 선임의 젓가락질에 담긴 심후한 내공을 알아보았기 때문은 아니다. 감히 선임에게 가위질과 불판을 맡긴 불초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김장남은 불판의 주도권을 놓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체를 한 번에 들려면 좀 힘들지. 너도 해봤으니 알 거 아냐. 가장 좋은 방법은 시체를 여섯 토막낸 다음 한곳에 쌓는 거야. 벽돌처럼. 근데 그러고 나면 이걸 없애야 한단 말이야. 시체를 없애는 최고의 방법은 돼지 먹이로 주는 거지. 며칠 굶은 돼지들에게 시체 토막은 진수성찬이거든."

 작업을 마치고 모이병 이병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김장남은 모이병 이병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도 몰랐다. 다만 입을 벌리면 안 된다는 것만은 알았다. 입을 막는 데는 고기가 필요하다. 이 삼겹살은 힘든 작업을 해냈다고 대대장이 한턱 쏜 것이다. 김장남은 젓가락과 가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군부대의 시계는 고기를 구울 때 특히 느리다.

"하지만 그 전에 시체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이빨을 다 뽑아버려야 해. 돼지가 소화를 못하거든. 물론 이건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지만, 돼지 똥을 체로 거르긴 싫을 거 아냐? 뼈는 걱정 마. 돼지가 다 씹어 삼킬 거야."

 김장남은 완벽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들어 삼겹살에 싸 삼겹살에 찍은 후 입 안에 넣었다. 과육, 아니 육육이 입 안에서 터져 흐른다. 입꼬리 사이로 새어나오는 돼지기름을 손으로 훔친다. 입술이 번들번들 빛을 반사한다. 켁. 역한 살덩이들을 그만 뱉어버렸다. 기침.

"그러니 돼지농장을 가진 사람을 조심하라고."



-김차남의 경우. 둘.

 김차남은 일찍 집에 돌아갔다. 거실에서 김장남이 DVD를 가득 쌓아놓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오늘 휴가 나왔군. 군대에서 나와서 할 짓이 저것밖에 없을까? 게다가 몽땅 다 듣도 보도 못한 영화. 김차남은 한심하다는 듯 형을 바라보았다. 김장남은 이전까지 나왔던 그 어떤 때의 휴가보다도 가장 '빠져' 보였다. 김장남은 사춘기 동생의 신경질 섞인 시선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차남은 누가 자기 엄마를 장남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다. 왜 내 엄마한테 장남 엄마래. 가끔은 자기가 장남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다들 엄마를 차남 엄마라고 부를 테지. 하지만 첫째라고 제사 지내고 명절 챙기는 것이 귀찮을 테니 그도 곤란하다. 형은 별 생각 없이 자기 동생을 대했다.

"너그 형님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되기 위해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에서 승리하고 법을 준수하며 상관 명령에 복종하고...뭐더라. 아, 명예와 신념을 지키며 전우애 단결하는데 필요해서 이거 보는 거다."

 김장남은 3학년 때까지 구구단도 못 외웠는데. 군대 독해. 저게 저 긴 걸 외우게 만들다니. 군대 가기 전과 가고 난 후 김장남은 너무 달라졌다. 이제 김차남은 휴가 나온 형과 신종 좀비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뭐가 다른지 모를 지경이 됐다. 저렇게 입으로 지껄일 때는 좀 살아있는 것 같은데. 곧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것 같은 눈이 된다.

 주인공들은 방금 막 대형 마트에 들어갔다. 좀비 영화는 도찐개찐 꼭 저러지. 뭐 생필품도 있고 무기도 있고, 영화가 진행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니까. 김차남은 김장남 멀찍이 앉아 영화를 봤다. 곧 주인공들은 주류 매장에 가서 술을 푸고 대형 TV로 포르노를 봤다. 저 새끼들 저거 즐기고 있구만. 신났어. 김차남은 혀를 찼다. 김장남이 대꾸했다.

"대학은 좀비 영화에 나오는 마트 같은 거야."

 들어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얘기일까. 좀비가 되어서 마트 밖을 서성인다는 걸까. 마트 안에 있는 사람만 펑펑 놀고 마실 수 있고.

"들어가면 다 끝날 거라 믿는데, 좆까."

 김장남의 말대로다. 지상천국인 것처럼 굴던 주인공들에게 파국이 찾아왔다. 영화가 진행되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마트 안에서는 곧 내분이 일어나서 흑인이 백인을 쏘았고 백인도 또 죽는 마당에 흑인을 쏘았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하로 좀비들이 들어왔다. 결국 생존자들은 버스를 개조해 마트에서 도망쳐야 했다. 주위에 몰린 좀비떼를 깔아뭉개며. 형님의 고마운 인생조언이다.



-김장남의 경우. 여섯.

 동네 운동장에 6, 7m 깊이 구덩이가 여러 개. 구덩이는 몇 십, 몇 백의 고깃덩어리들로 메워져 있다. 몇몇은 꿈틀거리고 몇몇은 굳어있고. 바리톤의 신음이 울린다. 김장남은 다른 부대원들 얼굴이 보고 싶었지만 방독면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생방 보호의 임무형 보호태세 4단계의 문제는 방독면 때문에 담배를 못 핀다는 거다.

 이등병 몇몇이 석유를 구덩이에 뿌린다. 돼지 방역 작업이랑 같다. 소독 및 살균을 위한 소각. 불길이 치솟는다. 영감들이랑 병신들이 마른 오징어 구워지듯 꿈틀거린다. 사람이 타는 냄새가 어딘지 삼겹살 굽는 냄새와 비슷하다. 살짝 군침이 돈다. 바리톤이 소프라노로 올라간다. 10데시벨이 100데시벨로 늘어난다. 몇몇은 시큰둥하지만 몇몇은 움츠러든다.

 김장남은 주머니에서 종이쪼가리 한 장을 꺼낸다. 꼬깃꼬깃 접는다. 중학교 시절 심심풀이로 접어 날리던 이후 처음 접어보는 종이비행기다. 가볍게 날린다. 김장남의 손재주가 메주기도 하고 어디에 받치고 접은 것도 아니라 종이비행기는 시체 사이를 날아다니다 이내 불밭에 처박힌다. 김장남이 저지른 가장 규모 큰 테러.

 팔다리가 뒤엉키고 울음 섞인 비명이 메아리친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불바다 위를 걸으려 일어서다 쓰러진다. 흔들리는 불길처럼 시체들이 춤을 춘다. 지독한 군무. 건강에 좋지 않은 풍경. 다이옥신 대량 함유. 천이백의 고깃덩이가 잿덩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노가리라도 까자고 삼삼오오 모여 있던 군인들은 일거리를 찾아 흩어진다.

 불길이 꺼졌다. 작업은 계속된다. 석회가루와 소독액 살포. 매장. 포크레인이 있어 김장남이 삽질을 할 일은 없었다. 행보관은 후임들을 독려했다. 야. 괜찮아. 저기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좀비니까. 이제 앞길에 물길이 쭉 날 거야. 이 지역에서 준비 중인 건설토목계획에 대한 간단한 잡담을 했다. 사병들의 머릿속엔 부대에 돌아가 벌일 삼겹살 회식뿐이다.



-김차남의 경우. 셋.

 김차남은 집을 나왔다. 심부름으로 장이나 볼 셈이었다. 집에 있어봤자 공부도 안 되고 컴퓨터는 김장남이 차지했고. 아무래도 형에게 수험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넘쳐흐르는 것이 아닐까? 김차남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성장 호르몬 분비가 2년 전에 멈추지 않았으면 저 병신을 들어다 창밖에다 던져버렸겠지? 하는 상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

 10분 남짓 걸려 마트에 도착했다. 하지만 마트에 몰려드는 좀비 따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종 좀비 바이러스 예방 상품 코너에 몰린 사람들만 가득하다. 혹 있을지 모르는 발병자에 대비한 경비가 늘어나기는 했다. 예상한 것과는 다른 기시감을 느꼈다.

 닭이 다 떨어졌다. 엄마가 삼계탕 재료 사라고 했는데. 반면 돼지고기는 가득이다. 박급우, 돼지 축산협회 대처가 좀 늦었나 봐. 김차남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야 삼겹살 사오면 내가 널 구워 먹을 거다. 김장남은 이제까지 인생에서 먹은 돼지고기의 절반을 군부대에서 먹었단다. 신종 좀비 바이러스 덕분에 단백질 보충 화끈하게 했단다. 김차남은 잡다한 주전부리만 샀다. 김장남이 삼겹살을 싫어하게 될 줄이야. 김장남의 7할은 돼지고기로 이루어졌을 텐데.



-김장남의 경우. 다섯.

 짙은 안개 속 노인이 걷고 있다. 흙투성이 옷차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노인의 눈동자에 신발 바닥이 비친다. 늘이다 놓은 고무줄마냥 신상병 상병의 몸이 강하게 튕긴다. 깔끔한 드롭킥. 노인의 목은 꺾이다만 나뭇가지처럼 덜렁거린다. 앞으로 걸으면서 뒤를 볼 수 있을 정도. 돈 트라이 디스 엣 홈, 돈 트라이 디스 엣 홈. 신상병 상병은 착지에 실패해 악 소리를 지르며 구렁이마냥 꿈틀댔다.

"비천어검류, 구두룡섬!"

 오일병 일병의 쇠파이프가 여덟 번 노인의 몸을 내리친다. 멋진 기술명에 비해 오일병 일병의 파이프 휘두르는 뽄새는 영 아니다. 하지만 소독차가 만든 안개 때문인가, 오일병 일병의 초식은 어딘지 신성함이 느껴진다. 아홉 번째 공격 때는 파이프 무게에 지가 지쳐 나가떨어졌다. 아홉 머리를 가진 용이라기보다는 여덟 다리를 흐느적거리는 문어다. 하. 그래. 웃겨. 김장남은 이 일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쉽기도 하다. 영화랑 달라. 좀비들이 너무 약해.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힘이 셀 리 없다. 좀비는 수면을 취하거나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니 이틀 못가 열량부족으로 쓰러진다. 인간이 인간 몸을 지탱하는 데에는 꽤나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좀비는 그 많은 것들을 갖지 못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좀비들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결핍 상태였다.

 좀비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도 우스운 환상이지. 먹어봤자 퇴화된 인간 위장이, 그것도 죽은 인간 위장이 날고기를 소화할 리 없잖아. 더욱이 오늘 잡은 좀비들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저 노인들이 틀니에 쇠톱이라도 박아 넣지 않은 한 김장남의 살이 뜯길 일은 없었던 게다. 오늘 한 작업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반복노동. 삽자루가 쇠파이프로 바뀐 것 정도가 색다르다.

"모이병신병님, 모이병신병님도 좀 치시죠?"

 모이병 이병의 얼굴이 붉어진다. 병신 취급을 받아서는 아니다. 어제오늘 병신 취급 받은 것도 아니니까. 어제오늘 병신이었던 것도 아니니까. 모이병 이병은 그 누구보다도 신나보였다. 모이병 이병은 그럴싸한 스윙으로 좀비를 갈겼다. 한쪽 손을 너무 일찍 놓는 것과 시선이 타격점에서 벗어나는 것만 빼면 꽤 훌륭한 스윙폼이다. 불쌍한 모이병 이병. 신상병 상병이 두산 팬만 아니었다면 모이병신병 소리는 듣지 않았을 텐데.

"여, 모이병신병님. 혹시 제 생각하시면서 휘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스윙이 꽤 격하신데요?"

 설마. 신상병 상병 니 생각하며 패고 있음 고작 저 정도겠냐? 그래도 쓰러진 노인을 향해 거품까지 물며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모이병 이병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다. 김장남은 슬슬 정리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비켜라 자식들아, 니네 상병님 천년간 무공을 발휘하지 않겠다는 묵계를 깨시고 항룡십팔장 쌍룡취수 출수하신댄다!"

 딱 13장까지만 출수하고.



-김차남의 경우. 넷.

"삼겹살을 못 먹겠어."

 김장남은 피자를 뜯으며 말했다. 부대 식사가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휴가 첫날 가족 특식에 나름 타협안으로 나온 것이 피자였다. 형이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돼지고기와 엄마가 가격폭등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던 소고기 사이의 간극은 넓다. 휴가면 으레 김장남은 군대 이야기를 꺼냈지만 오늘은 여느 때보다도 응어리가 깊었다.

"옆 부대에서 대량으로 발병자도 나왔어. 수십 명이나. 2단계도 나오고. 휴가 끊길 뻔 했지. 우리 중대도 모이병이, 걔 걸려서 뒤질라 그러는데. 안 됐지. 그래도 전에 작업 하나 큰 거 끝내는 덕에 포상휴가 받아서 나온 거야."

 신종 좀비 바이러스는 3단계로 등급이 나뉜다. 1단계는 발병자가 그저 감기처럼 앓는 것. 2단계는 가사 상태에 이르러 바이러스 때문에 반쯤 좀비가 되어 사람을 물고 다니는 것. 3단계는 사망에 이르고 완전한 좀비가 되는 것. 신종 좀비 바이러스는 사망률이 높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2단계에서도 잘 요양하면 치료가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옆 부대는 꽤나 장병들을 굴렸던 게다.

 뭐 고등학교도 딱히 다르지 않다. 어떤 부모는 수업 빠지면 내신에 안 좋다고 진단서도 조작한다던데. 김장남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그 다음 장면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차남은 박급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루 6시간 이상 꼭 자주고. 비타민제 챙겨먹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공부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꼭 당구 한판 쳐주고. 그러면 안 걸리지 않겠냐고. 김장남은 누군들 그러기 싫어서 안 그러냐며 웃었다.



-김장남의 경우. 넷.

"썅, 햄버그마요네?"
"그래도 한솥이지 말입니다."

 김장남은 자신의 몸의 7할은 돼지고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남은 3할의 구성성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돼지고기 가격 폭락은 군부대의 식단에 단백질 비중을 확실하게 높여주었다. 신상병 상병은 차마 도시락마저 돼지고기 도시락을 사다 주냐 투덜거렸다. 으스스하게 안개 낀 날씨 쭈구려 밥 먹기 불편이야 하지만. 씻지 못한 게 섭하지만. 방독면을 벗으니 시원하다.

 씨발 나 요즘 똥이 안 나와. 거 어떻게 된 게 상병 달고 다 돼지냐. 모이병신병님. 저 목이 마르지 말입니다. 다 드셨어요? 입 안에 든 고기는 씹고 말해 병신아. 맛있게 드셨어요? 뭐? 그렇습니다? 새끼가 나 목 마른 건 까맣게 잊고 밥알 한톨한톨 아주 음미하며 쳐드셨네?

  김장남이 군대에서 배운 것은 단 하나다. 뒤집어 볼 것. 그러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먹기 위해 배급하는 것이 아니다. 배급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다. 모이병 이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신이라서 갈구는 것이 아니다. 갈구고 싶어서 병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과법칙은 일종의 사기다.

 김장남은 하도 돼지처럼 퍼먹다보니 자기가 돼지를 먹는 건지 돼지가 자기를 먹는 건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돈아일체. 돼지와 내가 하나가 된 상태. 호돈지몽. 내가 돼지냐 돼지가 나냐? 인면돈심. 사람 얼굴 돼지 마음. 신돈합일. 몸과 돼지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 독고구돈. 독고는 돼지고기 먹고 싶어. 정말이지. 돼지고 싶다.



-김차남의 경우. 다섯.

 피자 다 먹었다. 학원 갔다. 박급우는 진즉 와서 공부 중이었다. 할 땐 하는 놈이다. 형님, 이놈은 진짜 갈 놈이잖아. 김차남이 보기에는 박급우가 좀비보다 무섭다. 저렇게 멍청한 놈이 저렇게 공부를 잘해도 될까. 저렇게 한심한 놈이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높은 자리 맡으면 그건 재앙 아닐까. 내가 저 녀석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거야 말로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김장남이 연고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수업은 새벽 2시에 끝났다. 선착순 마트 입장 날이 얼마 안 남은 덕이다. 신종 좀비고 뭐고 학원가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김장남의 경우. 셋.

 변기에 마른 똥이 가득하다. 똥에는 알알히 박힌 구더기가 꿈틀댄다. 참 밥맛 땡기는 풍경이다. 시체 치우던 놈이 고작 이런 거에 쫄겠냐만.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단수된 지 오랜 듯하다. 남의 똥 위에 자기 똥 쌓기도 싫어 물만 버렸다. 마른 똥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구더기들은 강렬한 수압의 물대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온몸을 비튼다. 젠장. 나 이따 밥 먹는다고 이 똥벌레야. 똥벌레가 김장남 밥 사정 신경 쓰기에는 수압이 너무 강했다. 10cm를 흔들었다. 수도꼭지를 튼다. 물은 나오지 않는다. 시발. 나 곧 밥 먹는다니까. 김장남은 자신에게 실망했다.



-김차남의 경우. 여섯.

"9반에 좀비가 나타났다!"

 사건이 터지자 아이들은 좀비떼처럼 9반에 몰려들었다. 이렇게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싸움 날 때밖에 없었는데. 김차남은 9반 학생이라는 특권으로 R석에서 이 모든 소동을 보았다. 더욱이 관계자 친분으로 시작부터 클라이막스까지 한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박급우. 야자 시간 박급우는 이와우에게 사전을 빌리려 했다. 이와우는 여느 때처럼 책상 위에 엎드리고 있었고. 온라인 게임 인던 도느라 아제로스와 현실 세계 사이의 시차적응 포기한 놈이라 다들 이상타 생각 못했다.

 박급우가 이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린 순간 이와우는 고개를 들었다. 까뒤집힌 눈. 흐르는 콧물. 벌려진 입. 박급우는 이와우의 콧물이 입술 사이 기다란 끈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 다음은 천정이 보였다. 이와우한테 물린 목덜미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옆 자리 최모범이 비명을 질렀고 반 아이들의 시선은 박급우와 이와우에게 모였다. 좀비다, 좀비가 나타났다! 모두 가장자리로 도망쳤다.

 9반에 좀비가 나타났다! 3학년 대부분이 교실 밖에서 이와우가 박급우를 깨무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종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다고 근력이 강해질 리 없다. 오히려 병약한 상태라 더 약해지면 약해지지. 생채기를 내서 타액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게 신종 좀비 바이러스가 하는 일이다. 바이러스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번식이 목적이니까. 박급우는 께엑께엑 벌써 좀비가 되기라도 했다는 듯 기도에서 비명을 뽑아내었다.

 박급우는 이와우를 밀쳐 넘어뜨렸다. 이와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라인 게임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하는 것도 없는 놈이라. 발육 좋은 초등학생한테도 질 걸. 박급우는 비명을 지르며 책상을 들어 쓰러진 이와우를 내리쳤다. 아직 좀비가 된 것은 아니다. 발병까지 적어도 이틀은 걸린다.

 끼아악, 끼엑 비명을 질러대는데 어쩜 그리 감염자보다 더 감염자 같던지. 이와우는 두들겨 맞다 코피가 터졌다. 박급우는 피가 튀는 것을 보고 또 놀라 뒤로 자빠졌다. 끽끽 울면서 교실 바닥을 뒹구는 박급우를 보며 김차남은 생각했다. 응. 역시 박급우가 좀비보다 더 무서워.



-김장남의 경우. 둘.

 혹시나 싶어 수화기를 들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불을 켜보았다. 먹통이다. 김장남은 모이병 이병이 가져다 준 종이쪽지를 다시 읽었다. 아마 사실인 듯싶었다. 먹다 남긴 어금니. 소화 안 된 머리카락. 난 똥 거르는 체였군. 어쩐지. 황당한 작전이었다. 모이병 이병은 이걸 읽었을까? 모르겠다. 모르쇠 작전. 모이병 이병이 이걸 읽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이걸 읽었다는 건 모이병 이병이 몰라야 한다. 아무렇잖다는 듯 주머니에 쪽지를 숨겼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폐광촌. 남은 것은 집밖에 없었다. 정부는 머리를 썼다. 연이은 재개발.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의 대량발생. 특히나 골치 아픈 직업도 연고도 없는 노인들. 집밖에 남지 않은 폐광촌과 집이 없는 철거민. 이 조합은 썩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철거민들의 생각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격리된 공간에서의 생활로 신종 좀비 바이러스 전염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김장남이 속한 2중대 160명의 임무는 이렇다. 화생방 보호의 임무형 보호태세 4단계 복장을 갖추고 1000명가량의 시체 혹은 좀비를 치우는 것. 위험한 작전은 아니다. 폐광촌에 가난뱅이들 몰아넣은 것인 만큼, 정리할 곳은 아파트 단지 하나 뿐. 주변 상가나 주택은 다 닫혔거나 건설 업체에서 철거하는 중. 15층짜리 아파트 20동. 마스터 키로 문 열고, 좀비 땅에다 던지고, 운동장에 파놓은 구덩이에 묻고. 작업 자체는 간단하다.

 신종 좀비 바이러스가 아파트를 잠식한지 기한이 꽤 지났다. 군대의 투입은 사고발생 한참 뒤에야 이루어졌다. 좀비가 영양분을 섭취 못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윗대가리들은 안전을 위해서라며 최루탄을 지급했다. 호흡기관을 활용할 만큼 신종 좀비 바이러스가 똑똑하지는 않다는 거다. 폐광촌은 페퍼포그가 뿜어낸 최루가스와 근처 하구 공사장의 습기가 만든 안개에 뭍혀 있다.

 뒤집어 보았다. 간단했다. 좀비라서 죽인 게 아니다. 죽이고 싶어서 좀비로 만든 거다. 마트 안에 틀어박혀 즐거워 할 누군가가 떠올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장남과 모이병 이병은 노인을 창밖으로 던졌다. 살려줘. 신음 같은 유언. 을 들은 것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 김장남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썼다. 모이병 이병도 듣지 못한 듯 조용하다. 복도로 나갔다. 여기 사람이 있었다. 이젠 아니다.



-김차남의 경우. 일곱.

 김차남의 고등학교에는 휴교처분이 내려졌다. 이와우는 증세가 심해져서 격리 수용되었다. 박급우는 가볍게 입원한 상태다. 하루 6시간 이상 꼭 자주고. 비타민제 챙겨먹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공부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꼭 당구 한판 쳐주고. 다 옛날 얘기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휴교 탓에 동네 독서실 학원 모두 만석이다. 새로 생기는 독서실도 많다. 공기 청정기가 신형이니 뭐니 광고도 잔뜩이다. 학교가 쉰다고 학생이 쉬지는 않는다.

 김차남의 엄마는 요즘 둘째 아들을 콱 조이는 중이다. 신종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공부를 못한 아이들이 있을 거라는 예상 덕이다. 올해는 자기 실력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찬스가 있으니 더 열심히 하라는 거다. 자기 실력보다 낮은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해에는 낮은 대학 들어가지 않게 더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을까. 한 측에서는 올 해 수능을 보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래봐라. 전국 팔도에서 동시다발적 테러가 벌어질 걸. 신종 좀비고 뭐고 학원가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김장남의 경우. 하나.

 문이 열린다. 최루탄이 터진다. 최루 연기와 안개가 뒤섞인다. 두 남자가 들어온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양 손에는 손도끼와 쇠파이프가 들려있다. 집 안에는 노인 한명이 누워있다. 노인을 쇠파이프로 두들긴다. 반응이 없다. 노인을 들어 베란다로 옮긴다. 아래를 확인한다. 이미 여러 송이의 꽃이 피어있지만 최루 연기로 잘 보이지는 않는다. 노인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또 한송이 꽃이 피어난다. 흩뿌려진 뇌수와 피의 꽃.

 두 남자는 한층 더 올라간다. 마스터 키로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체인이 걸린 탓이다. 손도끼를 휘둘러 체인을 끊었다. 싸구려. 안은 이미 연기로 자욱하다. 이불 위에 누워있는 노인은 이미 죽은 듯 딱딱했다. 근육 없는 팔다리에 쇠파이프가 부딪쳐 둔탁한 소리가 난다. 두 남자는 이불 째 영감을 들어다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렸다. 김장남은 지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덧//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댓글 2
  • No Profile
    앤윈 10.02.14 07:49 댓글 수정 삭제
    황금가지 쪽에서도 읽고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시 읽게 되네요. 이번엔 리플을 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현실을 반영하는 부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좋지만, (일단은 시기적으로도 그렇구요) 주인공들의 익명성을 위트있게 표현한 부분들도 참 좋군요.
  • No Profile
    dcdc 10.02.16 12:09 댓글 수정 삭제
    앤윈님//감사합니다. 저는 이와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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