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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의 대 변혁과 우주로의 진출!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일궈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꾸는 나라들과 유토피아인 양 홍보하는 디스토피아 세계들이 존재하고, 찬란한 저 우주의 별들에 자기 나라 광고 간판들을 세워대고 있죠. 사람들은 쏟아지는 우주만한 정보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고요. 바야흐로 인류는 새로운 인구 폭발!의 시기를 맞이한 겁니다. 인류의 숫자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이 미치는 곳도 "넓은 세계를 본적이 있어야 그 사람의 세계관도 넓어진다"는 어느 케케묵은 말처럼 되어가고 있죠. 이번에 제가 있는 행성의 공전기에 나온 우주 패션 잡지 코스모플래닛, 에고, 길기도 하군요, 머릿기사 문구가 <지구의 수평선밖에 보지 못한 사람이 우주의 특이점을 보고 온 사람의 디자인을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더군요.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좌우간 중요한건 이게 아닙니다. 제 방송이 언제나 그렇듯 서두는 횡설수설 하지만, 좌우간 다음부터는 꽤 들을 만한 게 나오지요. 오늘은 여러분에게 <키에스트린>이라는 보석에 대해 알려드릴까 합니다. 보석 이야기라니, 드디어 방송 스폰서 모집하냐구요? 제가 자주 제 목이 날라갈 만한 일들을 벌이긴 했지만 적어도 팬들에게 맞아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방송은 제가 죽는 날까지 스폰서 없이 운영할 겁니다! 보석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디까지나 여러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주에서 살건 지구에서 살건, 사람들은 언제나 반짝이는 것에 매혹되지요. 대 확장! 우주 진출!의 시대인 요즘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좀 달라진 게 있긴 하죠. 우주의 특이점을 보고 온 사람들이 어디 지구의 돌들이 눈에 들어올까요? 제가 언뜻 듣기로는 요즘 다이아몬드는 예쁜 돌로 치지도 않는 다는군요. 그게 다 키에스트린 때문이라나요. 자 잠시 영상 재생기를 가지고 계신 분은 제가 보내드리는 이 멋쟁이 보석상의 화상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완전 돈방석에 올랐다죠! 이분이 키에스트린을 캐는 곳은 저 멀리 변방의 fs-3140이라는군요. 한 몫 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거기로 가는 셔틀을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가서 키에스트린이 너무 예쁘다고 기절하지는 마세요!
  키에스트린은 여러 형태로 가공이 가능하지만, 외부 연마나 가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신비롭게도 키에스트린 내부에 은하계처럼 소용돌이 치는 불꽃들이 존재한다는군요! 불꽃들이 서로 꼬리를 물듯 빙글빙글 도는 게 아주 예쁘다고 합니다. 저도 어렵게 질이 떨어지는 화상을 구해서 한번 봤는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여러분들께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보내드리는 영상은 처연한 푸른색이지만 불꽃의 색채는 각양각색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게 어디 돌입니까? 사실 신비한 화학 액체들로 채운 구슬이 아닐까요? 하긴 그건 지구 기업들의 방식이군요. 네, 이 보석은 진짜 돌입니다. 아름다운 돌.
  대체 어떻게 이런 게 나올 수 있을까요? 거대한 우주 구석탱이에 존재할 법한 신비? 역시 우주는 넓다?
  돌을 캐려면 많은 광부와 도구가 필요하죠. 하지만 fs-3140의 도구들은 새것처럼 처음 배달 온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군요. 어떻게 아냐구요? 언제나 말씀 드리지만 제게는 믿음직한 친구가 있습니다. 제 눈을 어디로든 배달해주는 친구죠. 거기서 이런 놀라운 걸 보았죠. 영상 나갑니다. 이런 빌어먹을, 이게 아니잖아…여러분 죄송합니다. 아, 이제 됐습니다.

  모두 영상을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설명해 드리죠. 이 먼지만 쌓인 굴착기들을 지나서…  식사 중이거나 노약자, 끔찍한 광경을 보기 힘드신 분들은 지금 제가 멈췄을 때 잠시 눈을 가리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다시 재생하겠습니다. 다시 봐도…정말 끔찍하군요. 네, 끝났습니다. 눈을 가리셨던 분들은 이제 보셔도 괜찮으실 겁니다. 방금 지나간 끔찍한 장면에 대해 몇 가지 부연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fs-3140의 발견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아까 보여드린 멋쟁이 보석상입니다. 발견도 하고 개척도 했죠. 보석의 채굴권은 모두 그에게 있습니다. 사실상 저 행성에 진짜 키에스트린은 없었습니다. 키에스트린을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있었을 뿐이죠. 바로 신비한 돌과 거주민들입니다! 저 보석상 아저씨가 아까 뭘 했던 건지 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과학기술 아니면 제가 모르는 부두교같은 괴상한 거겠죠. 확실한 건 저렇게 채굴한 돌에 행성 거주민들의 생체 에너지를 담은 게 키에스트린이라는 겁니다. 키에스트린은 저 fs-3140 거주민들의 말로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같이 넣어야만 키에스트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게 사랑하는 가족들이건, 연인이건, 절친한 친구들이건 말입니다. 정작 저 보석들을 살 사람들은 영원히 알지 못할 그럴 사랑들이죠. 돌 안에 영원히 갇혀버렸으니까요!
  이제 fs-3140 거주민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키에스트린이 요즘 비싸진 이유는 그거라나요. 채굴량 부족. 보석상이 잡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조만간 광석이 바닥날 것 같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달라고요. 실제로 거주민들은 조만간 모두 죽을 겁니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요. 누구도 알지 못한 채 모두 죽어버린다면 키에스트린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 되겠죠. 그래서 오늘 제가 이렇게 방송을 하는 겁니다. 이 전파가 fs-3140근처의 사법기관 행성들에도 닿길 빌지만, 그건 희망사항이고, 제가 무엇보다도 믿는 건 여러분들의 행동력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면 당장 실행하라. 제가 존경하는 고릭 박사님이 그러셨죠.

  어쨌거나 무엇을 할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매번 말하지만 전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니까요. 제가 틀렸다면 증거를 들고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정정 방송을 올리도록 하죠. 아참, 연락 하니 생각났는데 연락처가 바뀌었습니다. 저 보석 업자가 절 한번 보고 싶다고 동네방네 찾으러 다닌다고 합니다. 무서워 죽겠어요. 제게 연락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코스모플래닛이 나온 행성들을 보고 제가 지금 있는 행성을 맞춰보세요. 오늘자 해적 방송은 여기서 쫑입니다. <전파 해적질> 방송의 프로듀서겸 캐스터겸 음향 담당, 음... 좌우간 이상 레인이었습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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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키 08.02.16 11:38 댓글 수정 삭제
    처음부터 끝까지 평을 한 줄로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한다' 라는 식이군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에게 여기저기 이상한 설명을 시작해서 결국은 허무맹랑한 보석이야기 ㅡ 그것도 팥으로 메주를 쑨다 라고 말하는 것같이 어이없는 ㅡ 만 줄줄이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필자는 미래의 한 광고, 혹은 방송을 전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의 시점으로 글을 써낸 것 같습니다만, 글에 전혀 요점이 없습니다. 특히나 매력적인 포인트도 없고.
    처음에 나오는 <지구의 수평선밖에 보지 못한 사람이 우주의 특이점을 보고 온 사람의 디자인을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라는 문장이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만, 결국 결말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나가더군요. 필자가 설정하신 키에스트린 이라는 우주라는 배경이 아니더라도 어디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아이디어 같습니다.

    즉, 굳이 배경을 먼 우주까지 끌고 갈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죠.
    너무 지나친 곳으로 주제를 끌고 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곳으로부터 출발해 아름다운 결말을 추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단편이라는 것은 굳이 스펙타클하거나, 신선한 충격을 주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No Profile
    디안 08.02.17 10:56 댓글 수정 삭제
    평 감사합니다. 좀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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