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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성격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



 
 이 글은 환상소설이 아니다. 주워들은 이야기에 근거한 주관적인 의견이다. 그것도 작가의 취향이 아주 많이 들어간, 많이 주관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작가’와 ‘이야기’라는 단어를 보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디까지나 작가가 있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
 그러면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
 첫 번째 예시는 친구 관계, 혹은 엄밀히 말하자면 선후배 관계다. A가 선배고 B가 후배다. 둘 다 남자다. 대학교 선후배 사이고, 나이는 적당히 2년 정도 차이나는 걸로 하자. 현재 연령대도 적당히 삼십대 초중반 정도. A는 결혼을 했지만 신혼이고 아이는 없고, B는 미혼이다.
 A와 B는 양쪽 다 그냥저냥 무난한 학교의 그냥저냥 무난한 학과를 나와서 각자 따로 그냥저냥 무난한 회사에 다니는 그냥저냥 무난한 인생을 살고 있다. A는 아직 한창 신혼인 아내가 벌써부터 부모님과 조그만 고부갈등을 겪고 있어 고민이지만 부부 사이나 가족 관계에 금이 갈 만한 심각한 상황은 아니고 그냥 좀 고민이다. B는 얼마 전에 독립해서 혼자 사는데 독신이 무슨 죄라고 연말만 되면 웬 세금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불만이지만 사채빚을 끌어안아야 될 정도는 아니고 역시나 내라는 돈 다 내고 나서 은행 잔고를 보면 그냥 좀 슬프다. 요점은 평균적인 기쁨과 고민이 조금씩 있는 평균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A는 부드럽고 다정하고 자상한 성격이라 결혼과 가족 관계에 몰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타입이고, B는 진취적이고 화끈하고 소위 말하는 남자다운 성격에 키도 크고 잘 생겨서 독신 생활을 좀 오래 만끽하는 것이 당연해보이는 타입이다. 즉 양쪽 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참 괜찮은 사람, 멋진 사람이다.
 그런데 이 둘이 마주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B는 심술투성이 짜증쟁이 오지라퍼로 변신하고, A는 멍청이 호구에 쪼다로 돌변한다. 이유를 분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앞서 전제했듯이 A는 부드럽고 다정한 성격이다. 남자인데도 어찌 보면 좀 아줌마 같은 면이 있어서 고민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에게 수다를 떨거나 하소연하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삼는다. 그리고 결혼생활의 소소한 문제들처럼 자기 혼자만이 아닌 배우자까지 관련된 사안의 경우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리거나 일방적인 해결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B는 소위 말하는 “화끈한” 성격이기 때문에 A의 행동이 (본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자기 개인적인 문제들을 미주알 고주알 남 앞에다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해결책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한심한 태도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짜증이 난다. 그러면 B는 앞서 말했듯이 전형적인 “남자” 성격이기 때문에 공감보다는 해결책을 지향하므로 일단은 자기 나름대로 A를 배려하여 고민에 대해 이런저런 행동 방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물론 A는 해결책이 아니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걸 원했을 뿐이다. 더구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A도 사리분별이 있는 어른이므로 본인의 결혼생활과는 관련이 없는 제삼자의 의견을 무작정 받아들이거나 그런 관련없는 의견에 공연히 정색하고 반대했다가 쓸데없는 논쟁을 시작할 의향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겠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등의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미적거린다.” 그러면 B는 더욱 짜증이 난다.
 이렇게 되면 A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격이기 때문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B를 짜증나게 한 것이 미안해진다. 그런데 B의 눈에는 이유없이 미안해하는 A의 태도 또한 후배 앞에서 선배답지 못하게 비굴하게 구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더 짜증이 난다. 악순환이다.
 A와 B는 물론 각자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서 각자 잘 살고 있고 둘 사이의 접촉은 잘 해야 피상적이다. 그러므로 악순환이라고 해봤자 이 정도에서 끝날 뿐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더 큰 충돌로 번지지는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A와 B는 둘 다 같은 전공을 하는 같은 학과를 졸업하고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관계로 일 때문에 가끔씩이지만 정기적으로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다행히 가끔씩만 얼굴을 마주치기 때문에 관계가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이다. 동창들은 대체로 A와 B가 제법 친하다고 잘못 알고 있으며, 어쩌면 본인들조차도 관계의 역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들이 제법 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주변에 이런 경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각자 떨어뜨려 놓고 보면 개개인으로서 큰 하자가 없으며 심지어 꽤 괜찮은 사람들인데, 모아 놓으면 둘 다 이상해지는 것이다. A와 B의 경우는 눈에 띄지 않게 미묘한 변화이지만 상황이나 성격 조합에 따라서는 주변 사람들까지 곤란할 정도로 확연히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2.
 이번에는 정반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각자 떨어뜨려 놓고 보면 개개인으로서 아주 이상한 사람들인데 둘이 만났기 때문에 그럭저럭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경우다. 결혼한 부부 이야기다.
 남편 쪽은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아주 어렵게 자라서 자수성가했다. 지금은 적당히 작은 사업 같은 걸 하고 있다고 치자. 남편은 성장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며 현실의 물질이나 금전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강하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병적일 정도로 강하다.
 이런 남편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전문 직종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나게 엘리트처럼 들릴텐데 둘 다 (겉보기에) 평범한 사람들이므로 아내는 예를 들어 미용사라고 하자. 결혼할 때 남편이 개업시켜준 미용실을 벌써 십 년째 안정적으로 꾸려가고 있으며 경기를 좀 타긴 하지만 수입도 괜찮은 편이다.
 이 두 사람의 일상 생활이 어떤 모습이냐 하면, 일단 집안 살림은 전부 남편의 홀어머니가 맡아서 한다. 며느리가 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시어머니는 살림을 거들어주는 정도를 넘어서 집안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는 쪽이 옳다. 왜냐하면 부부의 아이는 물론 아내까지도,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치약이나 어느 상표의 비누를 쓰고… 등등의 문제에 대하여 남편의 시어머니가 하나하나 전부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의견을 대체로 존중하지만 며느리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취급하므로 아내 쪽은 가정사에 전혀 발언권이 없다.
 그리고 집안의 금전적인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전부 남편이 틀어쥐고 있다. 자기 사업에서 버는 돈을 혼자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가 미용실에서 버는 돈도 저녁마다 남편이 와서 전부 수금한다. 그리고 자기 차에 아내를 태우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가서 남편과 아내는 아이와 함께 남편의 어머니가 해준 저녁밥을 먹는다. 밤이 되면 남편의 어머니가 사다 준 잠옷을 입고 남편의 어머니가 골라준 이부자리에서 잔다. 아침이 되면 남편의 어머니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를 차에 태워 학교와 직장으로 각각 데려다 준다. 저녁이 되면 다시 남편이 아내의 미용실로 가서 그날 번 돈을 전부 걷고 아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리고 온다…의 반복이다.
 이 가족 관계에서 아내의 역할은 마치 식물과 같다. 남편과 남편의 어머니가 적당한 화분과 적당한 흙과 적당한 비료를 골라서 채워넣은 뒤에 아내를 그 화분에 심고 햇볕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두고 제때 챙겨서 물을 주었더니 꾸준히 돈이라는 열매를 맺어주는 것이다.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냐 하면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성인 여성이 집안 살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나 직업이 미용사라는 사람이 자신의 옷은 물론 속옷과 화장품까지 시어머니와 남편이 사다주는 품목에 100% 의존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경우라면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옷이나 화장품은 아내 쪽이 얼마나 주체성이 결여된 성격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여자든 남자든, 아무리 배우자가 차려준 미용실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하루종일 선 채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저녁에 배우자가 와서 모두 수금해 가고 정작 자신에게는 한 푼도 내주려 하지 않는다면, 빚에 팔려 무슨 노예 계약서라도 쓰지 않은 한은 그런 생활을 십 년 넘게 조용히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편과 아내가 양쪽 다 이런 생활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아이도 행복한 가정에서 잘 자라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남편은 물론이고 아내 쪽도 상당히 심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미용실이라는 자기 사업체의 운영자 역할은 물론 한 가정의 주부 역할, 아이의 어머니 역할을 감당해낼 소양이나 능력이 원래 없으며 별로 노력할 의도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저 남들이 다 하듯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남편하고 사이도 좋으니 갖출 것은 다 갖추었고, 살림이나 아이 양육 문제는 시어머니가 맡아주고 골치아픈 금전 문제는 남편이 다 알아서 해 주므로, 자신은 잘 하고 좋아하는 미용 일만 큰 탈없이 계속 해 나갈 수 있으니 인생에 매우 만족하는 것 같다.
 한편 남편 쪽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금전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하고 효심이 지극하다. 이런 남자에게는 배우자로 현재의 아내와 같은 여성이 딱이다. 번 돈을 남편이 모두 가져가도 아무 불만이 없으며 생활의 모든 측면을 시어머니가 간섭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졌다는 데 안도하면서 시어머니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계속 꼬박꼬박 돈을 벌어다 준다. 딴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며 애초에 그럴 능력도 의향도 없다. 의심 많고 집착이 심한 남자에게는 완벽한 아내다.
 남편이 만일 일반적인 정도의 주체성과 자기 생각을 지닌 보통의 여성과 결혼했다면 아마도 (홀어머니와 합세하여)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의심하면서 여자를 죽도록 괴롭히는 괴물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아내 또한 배우자에게 일반적인 정도의 주체성과 자기 의견을 기대하는 보통 남자와 결혼했다면 반 년도 못 가서 두 사람의 생활은 여러 모로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결국은 견디다 못한 보통 남자에게 이혼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것이다. 둘이 서로를 찾아내어 결혼에 골인한 것은 천운이었다. 본인들을 위해서도, 관련된 (혹은 관련되지 않은)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런데 정작 이 남편과 아내는, 행복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특별한 경우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양쪽 다 자신들이 평범하고 정상적이라고 여기며,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아내와 모든 남편 또한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
 뭐 그것도 그것대로 천운일 것이다.
 
 3.
 친구 관계이든, 사업 관계이든, 연애나 결혼 관계이든, 사람 사이에서 그 관계의 본질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떤 위기나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을 때이다. 그렇지 않을 때에 본디 인간 관계란 관계 자체의 본질과, 그 관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격 특성과, 그러한 성격 특성으로 인한 관계 역학과, 그 역학이 반대로 관련자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을 지나치게 깊이 고찰하지 않아야만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계에서 언제나 위기나 문제가 한 번쯤은 도래한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4.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위기를 상정해 보자. 이번에도 역시 결혼한 부부다. 현재 한국의 평균적인 초혼 연령 등을 감안하여 둘 다 삼십대 초반이고 아직은 신혼이라 할 수 있는 결혼 2-3년차 정도라고 하자. 편의상 남편을 P씨, 아내를 K씨라고 하겠다. 이니셜은 작가가 맘에 드는 글자를 대충 고른 것인데 특정인의 실제 성명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특정인이 이 이야기를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P씨와 K씨는 평온하게 열심히 잘 살고 있던 부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 P씨가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연락이 온다. 그런데 연락이 경찰서에서 온 게 아니다. 피해자의 엄마에게서 왔다.
 사정인 즉슨 이렇다. 아침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어떤 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왔다. P씨는 차를 즉시 세웠지만 아이는 이미 부딪친 것 같다. 그래서 P씨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내렸다. 그런데 다쳤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아이는 도망을 가 버렸다. 흔히 있는 일이다.
 어느 집 아이인지도 모르고, 주변에 딱히 목격자도 없다. 할 수 없이 P씨는 경비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아이나 부모가 나타나거나 무슨 연락이 오면 알려달라고 했다. 경비원은 당연히 P씨가 몇 호에 사는 누구인지 다 알고 있으므로 굳이 연락처를 따로 남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침이라 바빴으므로 P씨는 일단 출근을 했다.
 이후에 판명되는 바 경비원은 이 사건에 있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으며 다시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작은 사고에 관련해서는 종일 전혀 연락이 없었다. 그러므로 일터에서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동안 P씨는 그냥 잊어버렸다.
 저녁이 되어 P씨는 지친 몸을 문제의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역시나 늦게 퇴근한 아내 K씨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텔레비전이라도 좀 보고 인터넷 서핑이라도 좀 하면서 각자 긴장을 풀고 다시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까지 짧은 여가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거의 한밤중이 다 된 시각에 남편 P씨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피해자의 엄마는 기세등등하다. 아이가 많이 다쳐서 여기저기 까지고 멍이 든 채로 돌아왔는데 아침에 유치원도 데려다줘야 하고 남편 출근도 챙겨야 하고 한창 바쁠 시간이라 신경을 못 썼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유치원에서 밥도 안 먹고 아프다고 자꾸 보채고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높고 해서 급하게 연락을 받고 병원까지 데려갔다. 거기서 의사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캐물으니까 그제야 아이가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에 데려와서 아이를 약 먹여 재우고 다들 퇴근할 만한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 차가 어디쯤에 세워둔 어느 차였는지 가리켜 보라고 했다. P씨도 누구나 그렇듯이 습관적으로 언제나 비슷한 자리에 주차를 했기 때문에 아이는 비교적 금방 차를 찾아냈다. 그래서 피해자의 엄마는 운전석 앞유리창에 붙여놓은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예측가능한 일이지만 피해자측의 요점은 역시나 돈이었다. 아이를 치고선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부모에게 연락하지도 않고 그냥 가 버렸으니 분명 뺑소니다. 병원 가서 진단서 끊고 경찰에 신고하면 징역 살게 해줄 수 있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치료비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치료비가 얼마가 될지는 내일 아이를 병원에 한 번 더 데려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몇 가지 검사를 더 해야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합의금 조로 백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P씨도 이에 대하여 처음에는 자기 입장을 설명하려 시도했다. 상황을 확인하려 했으나 아이가 먼저 도망갔고, 주변에 목격자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경비실에 이야기해두었던 점을 들어 의도적인 뺑소니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해명을 시도할 때마다 피해자 어머니가 가로막았고, 그 때마다 상대방의 어조나 말의 내용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마침내 P씨는 어쨌든 자신이 가해자인 것은 분명하므로 상대방이 합의금을 확실하게 정하면 드리겠다고 동의했다. (“백만원”을 주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일차적인 대화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편은 아내에게도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어하다가 남편이 말하는 내용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인지하고 나자 화를 냈다. 분노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은 남편이 이런 골치아픈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났기 때문이고, 또한 그 문제에 대처함에 있어서 아내인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합의금을 주겠다고 순순히 약속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내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병원에 다녀와 봐야 자세히 알 수 있다”라고 말하여 요구하는 액수가 변동될 여지를 남겼다는 사실을 불안해했다.
 그러자 사태의 전면적인 해결책으로 P씨는 자진신고를 제안했다. 그러나 K씨는 타인이 신고하든 자신이 직접 신고하든 남편의 이름 아래 “뺑소니”라는 불길한 단어가 붙는 사건의 기록이 남는 것 자체에 대하여 매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였다. 그리하여 (주로 K씨의 주장에 따라) 두 사람은 일단 기다렸다가 피해자의 어머니가 요구하는 정확한 치료비의 액수를 듣고 나서 결정하기로 했다. 백만원은 큰 돈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액수는 아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K씨가 원하는 것은 이 작은 사건이 아무 흔적 없이 해결되는 것이었으므로, 그 대가로 백만원이라면 무리한 액수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측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다음날 늦은 저녁이었다. 피해자의 어머니라던 여성은 피해자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남자에게 전화를 넘겼다. 남자는 이미 진단서도 끊었고 지하 주차장 CCTV 증거도 확보했다면서 뺑소니 신고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금 천만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여기서 P씨는 처신상의 큰 실수를 저질렀다. 천만원이라는 금액을 들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공무원인데 어디서 그런 큰돈이 나오겠느냐”고 대답한 것이다. 상대방은 더욱 득의양양해져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공무원 노릇 계속 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고 소리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5.
 위기 상황의 대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옳지 않은 방법까지 포함하여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옳은 대처 방법 자체가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맞이한 사람에게 있어 어느 쪽이 더 옳고 덜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결국 관련자의 가치관과 사고 체계와 정서와 감정 전반을 포함하는 – 한 마디로 성격이다. 그러므로 본 위기에 처한 당사자들의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해야겠다.
 각각의 성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남편 P씨는 이상주의자이고 아내 K씨는 현실주의자이다. 물론 사람의 성격을 100% 어떠하다고 딱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좀 더 정밀하게 설명하자면 남편 P씨는 “아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더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이에 반하여 아내 K씨는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더 현실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해야겠다.
 반대되는 성격끼리 서로 끌리는 경우는 부모님이나 친구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상주의적인 사람은 현실주의자가 능력 있고 똑똑해 보여서 매력을 느끼고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인생의 큰 목적이나 비전을 제시해 주거나 혹은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끌린다.
 P씨와 K씨도 그런 평균적인 경우였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대학교 시절 수업을 함께 들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져 연애 관계로 이어졌다. 현실주의자답게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했던 K씨는 P씨가 가진 웅대한 포부와 열정에 감탄했다. P씨는 반대로 착실하게 수업을 듣고 자격증과 진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꼼꼼하게 앞날을 대비하는 K씨의 실제적인 능력과 성실성에 매료되었다. 관계 자체가 이렇게 시작되었기 때문에 대학 시절의 대부분 두 사람의 관계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농활이라든가 각종 봉사활동을 빼놓지 않고 다니면서 자기보다는 친구와 후배들을 챙기느라 가진 돈과 시간을 다 퍼주는 P씨를 K씨가 자질구레하게 돌봐주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P씨가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현실적으로나 정서적, 심리적으로나 K씨가 P씨를 보살펴주고 P씨가 그걸 고마워하며 의지하는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이십대 후반을 지나던 무렵에 관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 이상주의자 P씨가 뜻밖에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P씨가 원하는 업무의 분야나 내용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분히 이상주의적인 방향이었지만 어쨌든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반대로 이 시기에 K씨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악전고투하다가 적성도 안 맞을 뿐더러 학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하고 다른 분야의 진로를 모색하는 중이었다. 오래 사귄 사이이고 남자 쪽의 직장이 확실하게 안정되었으므로 본인들 뿐 아니라 양쪽 집안에서도 결혼 이야기가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현실주의자인 K씨는 자신의 진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결혼부터 했다가는 영영 집안에 들어앉아 안정적이기는 해도 그다지 막강하지는 못한 남편의 생활력에만 기대 살아가는 처지가 될 것을 염려하여 어떻게든 혼사를 미루었다. 그렇게 미룰 수 있는 한계까지 미루었으나 K씨의 경력에 획기적인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K씨도 “서른 살 노처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항복하기에 이르러, 비정규직이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에 더 가까운 직장에 한 발만 담근 채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니 K씨는 직장 경력이 없는 채로 기혼녀가 된 데다가 나이와 대학원 학력까지 모두 다 걸림돌이 되어 마음에 꼭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비정규직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최근에는 다시 대학원에 돌아갈까, 혹은 다른 분야를 준비해 볼까 궁리를 하면서도 딱히 결정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위에 대두된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남편 P씨와 아내 K씨가 각각 어떠한 해결 방법을 가장 옳다고 생각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두 사람이 의견의 일치를 본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백만원에서 천만원으로 불어난 합의금이 터무니없다는 데는 P씨와 K씨 모두 동의했다. 비상식적인 금액을 요구하는 것을 보니 상대가 비상식적인 사람들일 것이라는 데도 두 사람은 의견을 같이했다.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 협박을 받거나 돈을 뜯길 위험성이 있다고 K씨가 추측했고 P씨도 동감했다.
 상황 전개에 대해서는 이처럼 부부 양쪽이 대체로 동의했으나 이후의 실제 행동에 대해서는 양측이 노선을 달리했다. P씨는 지금이라도 빨리 자진신고를 하고 그 이후는 법대로 하는 쪽이 옳다고 믿었다. P씨의 주장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법이라는 게 이런 경우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상대측 협박의 핵심이 ‘신고’이므로, 그 신고를 이쪽에서 먼저 해 버리면 모든 사안이 해결된다. 그리고 아직 신고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수를 하면 벌점 정도로 간단히 상황이 끝나게 된다는 것이 P씨의 주장이었다.
 반면 K씨의 사고 과정은 좀 더 복잡하였다. 현실주의자인 K씨는 그 동안 뺑소니 사고에 대하여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전부 찾아보았다. 그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K씨의 결론은 상대방이 뺑소니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은 다 비슷비슷하니까 남편이 출근하는 시간대에는 다른 사람들도 출근하려고 주차장에 내려오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하필 주차장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 남들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CCTV에는 정확히 찍힐 만한 장소에서, 그 시간에 거기 왜 있는지 모를 어린 아이가 혼자 불쑥 튀어나왔다가 상황을 수습할 틈도 없이 도망쳤다는 정황이 K씨에게는 전부 다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피해자의 부모라는 사람들이 진단서를 뗐다고 하면서도 정확히 몇 주 진단이 나왔으며 치료비는 얼마가 들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고, 증거물을 모두 확보했다고 겁을 주면서도 정작 신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방은 이런 종류의 공갈 협박을 전문으로 하는 범죄자들이 확실하며, 그런 범죄자들 때문에 실제로 일어났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사고의 책임을 지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게 K씨의 의견이었다.
 P씨가 주장하는 자진신고에 대해서도 K씨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였다. 물론 정말로 뺑소니 신고가 들어오기 전에 자진신고를 해 두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은 K씨 자신도 검색을 통해 찾아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K씨는 지난 이틀간 P씨의 사고 대처 방식을 목격하면서 남편의 처신 능력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었다. 애초에 사기꾼들의 함정에 멋모르고 걸려버린 것도 남편이었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전화가 오자 덥석 책임을 인정해버린 것도 남편이었으며,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노출해버린 것도 남편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이 상스러운 욕을 해 대는데도 한 마디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하고 (공무원답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극존칭을 쓰는 모습에 K씨는 몹시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졌다. 언제나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한 바, K씨의 관점에서 볼 때 남편은 융통성이나 요령이라고는 전혀 없이 고지식하고 꽉 막힌 원리원칙 주의자였다. 남편 말대로 자진신고를 한다고 쳐도, 남편이 대체 어떤 식으로 신고를 하면서 또 무슨 실수를 저질러서 결과적으로 어떤 덤터기를 덮어쓰게 될지 K씨는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K씨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사례 중에는 자진신고를 했는데도 벌금형을 받고 면허까지 취소된 경우가 있었고, 그 사건의 주인공 또한 공무원이었다.
 그러므로 K씨가 옳다고 믿는 행동 방안은 이런 일을 다루는 전문가를 고용해서 해결을 보자는 것이었다. 아직 사고 신고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고용이나 해결까지도 필요없고 그냥 상담만 해도 뭔가 빛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전문가 또한 K씨가 인터넷에서 발견을 했고, 그 전문가가 해결했다는 사고 사례들을 읽으면서 비뚤어진 상황과 비뚤어진 사람들을 대하는 처신이나 요령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P씨가 격렬히 반대하였다. P씨의 경험과 의견에 따르면 그러한 자칭 “해결사”야말로 합법과 불법의 가장자리에 걸친 채로 활동하는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서에 가서 뺑소니 사건에 대해서 자수를 하고 진술서 한 장 쓰면 끝날 일을 가지고 그런 사람까지 끌어들이면서 공연히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P씨는 주장하였다.
 P씨가 이런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K씨는 주장의 핵심과는 별도로 두 가지 사안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남편이 해결사를 고용하자는 자신의 의견에 너무나 격렬하게 반대하며 화를 냈다는 점이었다. P씨 본인은 물론 한 가정의 안위까지 위협하는 사기꾼 공갈협박범을 대할 때는 “선생님”을 연발하며 더없이 예의바르게 행동했으면서, 정작 상황의 해결을 위해 함께 애쓰는 아내에게는 마구 화를 내는 태도가 부당하다고 K씨는 생각했고, 그래서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K씨에게 충격적이었던 또 한 가지는 “자수”와 “진술서”라는 단어들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흉악범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런 용어가 멀쩡하고 정상적인 사람인 자기 남편에게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이 K씨는 너무나 싫었다.
 그리하여 논의가 진행될수록 남편과 아내는 점점 더 서로에게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P씨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원론적인 정당성이었고 K씨가 원하는 것은 현실적인 손해를 가능한 한 막아내는 안전 보장,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였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P씨는 K씨가 자신을 사고나 치고 돌아다니며 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얼간이라고 경멸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만은 아닌 이 사태를 가지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자신을 “들볶으며,” 자신이 제시하는 정당한 해결책마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매도한다고 느꼈다. 인생에서 정당함 – 정당한 태도와 일관성 있게 정당한 현실 대응은 P씨의 가치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P씨는 아내가 자신의 이러한 가치관을, 나아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P씨는 갈수록 더 화를 내게 되었다.
 한편 K씨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자신은 이런저런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K씨는 대화가 이어질수록 남편이 자신을 편법 혹은 불법에 의존하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일일이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속물로 취급한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K씨도 남편이야말로 자신을 “깔본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결론 없는 갑론을박이 이어지다가 남편 P씨가 어찌 됐든 사고의 당사자는 자신이므로 해결도 자신이 할 것이며 그러므로 내일 아침에 당장 경찰서에 가서 자진신고를 하겠다고 외쳤고 이에 아내 K씨가 마음대로 하라고 마주 소리치는 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그리하여 P씨는 다음날 출근길에 자진신고를 위해서 경찰서에 들렀다. 그리고 문제의 사기꾼 피해자 부부가 이미 뺑소니 신고를 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
 이후의 사건 전개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부는 결국 아내 K씨가 주장했던 보험해결사를 고용했다. 관건은 피해자가 진단서를 제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진단서를 제출하고 사건이 뺑소니로 인정될 경우 이런 사고의 처벌은 최소 벌금 500만원부터 시작하며 덧붙여 운전면허도 몇 달 이상 정지되거나 심하면 아예 취소되고 몇 년 동안은 면허를 다시 딸 자격을 잃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군인이나 공무원, 대기업 직원은 자체 규정에 따라 정직되거나 면직/해고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형사상의 처벌이나 직장에서의 불이익과는 관계 없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또 따로 해야 한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P씨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반대로 P씨에게 유리한 사실은 사고 신고만 접수되었을 뿐 피해자의 부모라는 사람들이 주장했던 진단서나 CCTV 영상은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부모라는 남녀는 신고 뒤에 계속 전화해서 이제는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이런 식으로 뺑소니 신고를 한 뒤에 진단서를 빌미로 돈을 뜯는 것이야말로 아주 전형적인 사기수법이다. 그러므로 진단서도 증거물도 처음부터 없었으리라는 것이 K씨의 추측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악의적인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진단서쯤은 아무 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진단서가 제출되면 P씨는 그 순간 뺑소니의 범인이 돼 버린다.
 상대가 지속적으로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상소리를 섞어 위협하는 통화 내용은 만약을 위해서 녹음해 두었다. 그 ‘만약’의 사태가 바로 지금 닥쳤다고 판단한 K씨는 사기나 협박죄로 상대를 맞고소하여 입을 막아보자고 제안했다. 법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상황에 대한 억울한 마음에서 튀어나온 감정적인 제안이었고 K씨 자신도 말해놓고 그 점을 깨달았으므로 P씨가 또 다시 격렬히 반대하기 시작하자 K씨도 일단 주장을 굽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P씨는 위에서 계속 언급했던 바 “법대로 하겠다”는 소신을 피력하였다. K씨가 벌금 혹은 더 큰 형사처벌, 운전면허의 정지나 취소, 직장에서의 불이익이라는 가능한 결과를 제시하자 P씨는 예측가능하게도 “그러게 진작 자수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여기에 K씨 또한 “당신이 조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예측가능한 답변을 내놓았다. P씨는 “상대가 처음부터 악의적이었으니 이건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라고 응수했고, K씨는 “그러게 왜 그런 놈들한테 고분고분 휘말리느냐”고 받아쳤다.
 이런 방식으로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K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벌금은 내라면 낼 수 있고 운전은 안 하면 그만이지만 저 사기꾼 협박범들 때문에 P씨가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못된 놈들에게 피해 보상이라니, 억울해서라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것이 K씨의 심경이었다.
 사실 세상사의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 “해결책”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이처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이익이나 손해가 아니라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만족감인 경우가 아주 많다. 가령 P씨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P씨는 자신이 정당성을 추구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저에는 분명 정서적 반응이 깔려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실수로 어린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그래서 아이 어머니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여겼으며, 형사상 사건의 처리와는 별도로 피해 보상을 해 주는 쪽이 자기 자신의 죄책감을 해소하고 관련자 모두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아이가 실제로 그다지 많이 다치지 않았고 무엇보다 상대방 부모라는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인물임이 드러난 이상 억울분통해서라도 절대로 이 일 때문에 자신이 장기적인 손해를 입거나 상대방에게 직접적이고 금전적인 이득을 안겨줄 수는 없다는 K씨의 의견에 P씨도 공감했다.
 그러므로 부부는 자신들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옳다는 데 합의했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P씨가 당연히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상담하는 쪽으로 생각한 데 비해서 K씨는 다시 한번 인터넷에서 찾아낸 보험 해결사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소득 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P씨는 편법이나 꼼수를 쓰는 정체 불분명한 인물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불안할 뿐더러 인간적인 품위와 가치관에 대한 손상이라 여겼다. K씨는 변호사나 법무사는 가격 대 성능비, 그러니까 들어가는 비용에 대비하여 사건이 만족스럽게 해결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P씨는 사고를 당했다는 아이가 혼자 달려서 도망칠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 많이 다쳤을 리 없고 상대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결과가 아주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K씨는 최악의 사태를 걱정했다. 어쨌든 뺑소니 사고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 줄여서 특가법이 적용되는 중대한 범죄였으며, 이 사건의 결과에 남편의 직장과 가정의 생계가 걸려 있었다. 이에 대하여 P씨는 아직 나이가 젊으니 혹시 이런 일로 재수없어서 짤리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K씨는 여기에 대하여 궁극의 필살기를 시전하였다.
 “나 임신했단 말이야!”
 물론 이 한 마디로 K씨는 승리했다. P씨는 아내로부터 같은 종류의 선언을 들은 모든 남편들이 그러하듯이 세상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 잠시 깡그리 잊었다. 그리고 표준적인 절차에 따라 한동안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아내를 쳐다보다가, “정말이야? 진짜야?” 등등을 반복하다가, “언제? 언제부터? 얼마나 됐는데?” 등속의 질문을 던지면서, 아내의 임신을 점차 현실로 인식하면서, P씨는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후의 상황은 K씨의 의견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아내가 어째서 원론적인 정당성보다도 현실의 이해득실을 그토록 중시했는지 P씨는 즉각 이해하였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대사건과 아이의 양육이라는 긴 여정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으로 P씨의 직장 경력에 입을 손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는 데 부부는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안전한 결과를 최대한 확실하게 얻어내야 한다는 K씨의 의견에 P씨도 동의했다.
 K씨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보험 해결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해결사의 요구에 따라 중간에 P씨에게 전화를 바꾸었다.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한 후에 해결사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고, 이후에 몇 번 더 전화 통화를 했으며, 간단히 말해 P씨 사건은 뺑소니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부모가 CCTV 영상을 확보했다고 주장한 것은 거짓말로 판명되었으나 진단서는 실제로 존재했다. 다만 전치 2주 정도의 경미한 상해였는데, 그래도 진단서는 진단서였기 때문에 결국은 그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피해자측에 합의금을 어느 정도 주어야만 했다. 또한 K씨가 고용한 보험 해결사에게도 비용이 들어갔다. 해결사를 고용하지 않았을 경우에 소요되었을 수도 있을 비용, 즉 벌금을 내는 비용과 면허취소나 정지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과 직장에서의 가능한 불이익이나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까지 합쳤을 때보다는 확실히 적은 금액이었고, 사실 피해자의 부모라는 사람들이 요구했던, 점점 액수가 커지는 합의금에 비교해도 적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사기꾼들에게 몇 푼이 됐든 돈을 쥐어주어야 했다는 사실에 P씨도 K씨도 모두 기분이 상했다. 또한 해결사는 이런 경우 P씨가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자진신고를 해두는 것이며 자진신고는 사고 직후에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려울 경우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해야 하고, 그런 뒤에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를 직접 상대하지 말고 보험사와 경찰에 맡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기에 대하여 P씨는 그것 보라고 말하려다가 K씨의 얼굴을 보고 참았다.
 그리하여 부부의 위기는 이런 경우의 여러 시나리오 중 최선의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그와 함께 첫 아이를 가졌다는 인생 최대 이벤트 앞에서 P씨도 K씨도 뺑소니가 될 뻔했던 사건의 진행 과정 동안에 빚어졌던 의견 충돌과 성격-인생관-세계관-나아가서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관의 마찰에 대해서 상당히 빠르게 잊어버렸다.
 그것이 아마도 모든 정상적인 인간과 정상적인 부부 사이의 일반적인 삶의 흐름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존재는 P씨와 K씨라는 두 개별적인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 자체를 없애주지 못한다. 아이는 그저 그 차이에 너무 집착하지 않게 해주고 다른 일에 더 정신을 쏟게 해 줄 뿐이다. 부부 두 사람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은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뭔가 사건이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이런 갈등의 변수로 작용한다. 아이도 사람이므로, 양육의 결과와는 별개로 원천적으로 타고나는 자신만의 기질이나 성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두 사람에서 세 사람이 된 가족 구성원간의 역학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올 것이며, 그 변화는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7.
 P씨와 K씨도 이러한 앞날에 대하여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P씨였다.
 “걔는 정말로 다쳤던 걸까?”
 P씨가 물었다. K씨가 되물었다.
 “누구?”
 “있잖아, 사고 났던 애.”
 P씨가 대답했다. K씨는 약하게 짜증을 냈다.
 “그 얘긴 하지 마,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빠.”
 사실 P씨에게도 그다지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으므로 P씨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P씨는 절박하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마음에 걸리는 의문점을 품고 있었고,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자꾸만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금 뒤에 P씨가 다시 물었다.
 “그 엄마가 진짜로 시켰던 걸까?”
 “누구? 또 그 애 얘기야?”
 K씨가 다시 한 번 약하게 짜증을 냈다.
 “그 얘긴 하지 말자니까.”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섭지 않아?”
 P씨가 물었다. K씨가 물었다.
 “뭐가?”
 “자기 애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설마, 세상에 어느 엄마가 애를 일부러 차에 치라고 내보내겠어.”
 K씨가 말했다.
 “애 혼자서 사고를 쳤는데 부모가 보기에 잘 하면 돈이 나올 것 같으니까 뜯어내려고 한 거겠지.”
 그리고 P씨와 K씨는 양쪽 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잠시 후에 P씨가 말했다.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애는 도대체 어떻게 자랄까?”
 “글쎄 말이야. 그 부부는 손발이 척척 맞는 것 같던데.”
 K씨가 이번에는 약하게 분개했다.
 “부모가 그 모양이니 애도 아마 똑같은 사람이 되겠지.”
 무심결에 말하고 K씨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매우 찜찜한 기분이 되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P씨도 K씨도 더 이상은 그 사고나 어린 아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부모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아이를 이용했는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자식이 다쳤는데 “잘 하면 돈이 나올 것 같다”고 판단하여 그것을 악용하고, 상대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것을 일종의 능력이나 정당한 권리로 인식하는 종류의 인간이 다른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생활반경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꺼림칙한 일이었다. 그런 인간이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똑같은 인간을 찾아서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다는 것은 더 꺼림칙한 일이었다. 부모가 “손발이 척척 맞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비슷한 가치관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은 물론 아이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러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편안하게 느끼고 그런 것이 정상적이라 믿을 것이었다. 그렇게 자라나는 아이가 장차 자신들이 낳을 아이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P씨도 K씨도 더욱 더 앞날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밖에서 자신의 가정을 들여다본다면, 자신이 평범하고 정상적이라 느끼는 이 삶과 지금의 관계에도 분명 객관적으로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쯤은 있을 것이라고 K씨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나 남편이나 모두 사람이므로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었다. 그 단점 중에는 스스로 의식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부분도 있고 또는 잘못될 것까지는 없지만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단지 인간은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아무리 의식한다고 해봐도 의식할 수도 자각할 수도 없는 부분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는 것이다 – 그것이 좋은 부분이든 나쁜 부분이든.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는 말하자면 K씨와 P씨 두 사람의 이미 정립된 관계 속에 새로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므로, 부모가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측면뿐 아니라 보이고 싶지 않은 측면과 의식조차 못 하는 여러 측면까지 좋든 싫든 다 보면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인상과 행동과 언설과 사고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K씨는 잠시 진지하게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K씨는 근본적으로 현실적인 성격이었으므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관한 해결책 없는 의문에 계속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키워봐야 알 것이다. 바로 그 잠재된 가능성 때문에 걱정되고 겁이 나기도 하지만 또한 신나고 즐겁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걱정을 하든, 겁을 내든, 즐거워하든, 삶은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흘러가야 할 대로 흘러간다. 그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무섭다고, K씨는 잠들기 직전에 아주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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