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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20주년] 거울의 탑

2023.07.01 00:0107.01

   ------  거울 20주년 기념 단편  ------    

거울의 탑

노말시티

 


영원한 밤으로 뒤덮인 광활한 어둠의 공간을 지나 반짝이는 유성의 바다를 건너 밀로르진에 도착하려면 반드시 빛의 바람에 올라타야 했다. 세상과는 다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때로는 늙고 때로는 젊어지는 마법에 휘감기다 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은 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혹시 그 중간에 사라지거나 혹은 빚어지는 사람이 있지는 않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모험가, 방랑자, 정복자, 학자, 상인, 관리, 도둑, 사기꾼, 추방자가 모이는 그곳, 밀로르진에는 거울의 탑이 있었다.

빛의 바람에서 시간이 뒤섞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밀로르진을 기억했다. 어떤 이는 세상의 비밀을 간직한 서고라고 했고 어떤 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발칙한 특산품이 거래되는 시장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황량한 불모지에 세워진 피난처라고 주장했다. 나에게 밀로르진은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공방이었지만 열띤 논의에 끼는 대신 나는 여행하는 내내 입을 다물고 오가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사실 나는 내 생각에 자신이 없었다. 노래하는 거울은 이야기 속에나 존재한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세상 어딘가에 그런 거울을 만드는 공방이 있다는 뜬소문에 관심을 주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그 공방이 밀로르진이라는 건 순전히 나의 상상이었다. 밀로르진에는 어떤 것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공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은 만일 세상 어딘가에 공방이 있다면 그건 밀로르진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무작정 빛의 바람에 올라탔다.

빛을 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사람들은 밀로르진에 공방이 있을 거라는 말보다 밀로르진에 가겠다는 내 말에 더 코웃음을 쳤다.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면 나 역시 농담을 던진 척 따라 웃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나그네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처음 보는 책이 있으면 밥을 굶어서라도 사들였다.

언젠가는 꼭 빛의 바람을 타고 밀로르진에 가고 말 것이다. 수없이 그렇게 다짐하다 보니 정작 밀로르진에 정말로 거울 공방이 있을지는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가까스로 빛에 올라탄 후에야 덜컥 그 생각이 났다. 그런데 정말 내가 가는 곳에 공방이 있을까. 함께 탄 사람 중 그 누구도 공방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밀로르진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바람에서 내렸을 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서 어떻게 내렸는지도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나는 하늘 끝까지 솟은 검은 탑 앞에 홀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아마 저마다의 밀로르진에 내렸을 것이다. 어떤 이는 서고에 어떤 이는 시장에 또 어떤 이는 피난처에. 그때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중간에 떨어진 건 아닐까 걱정했다.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아 나는 더욱 불안했다. 짙게 깔린 안개 속에서 보이는 건 오직 검은 탑뿐이었다. 그게 탑이라는 것도 나의 상상에 불과했다. 층층이 쌓여 있는 검은 벽돌과 육중한 기둥은 안개에 가로막혀 얼마 되지 않는 시야를 양옆은 물론이고 위쪽으로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건 탑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성이나 저택의 일부일 수도 있고 절벽 아래 뚫린 동굴의 입구일 수도 있었다.

다행히 바로 앞에 거대한 문이 보였다. 어느 쪽으로 벽을 타고 돌아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철로 만든 커다란 둥근 고리가 깃털 같기도 하고 펜 같기도 한 조각 끝에 매달려 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고리를 잡고 탕탕탕 세 번 내리쳤다. 소리는 메아리 없이 조용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안쪽에서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두드리려는데 덜컹하고 문틈이 벌어졌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육중한 삐거덕 소리와 함께 문이 빼꼼 열렸다.

“어떻게 오셨소?”

피곤한 눈의 관리인이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올려다 봤다. 문득 바람을 타고 오다가 밀로르진에서는 밀로르진을 밀로르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게 생각났다. 그런데 여기가 밀로르진이긴 한 걸까.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관리인은 길게 하품하며 다시 문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으려 했다.

“아. 저. 잠시만요. 혹시 여기에서.”

관리인의 머리가 멈추고 시선이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답답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여기에서?”

“거울을 만드나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오신 게요? 여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사는 곳이니 그리 알고 가 보시오.”

관리인은 혀를 끌끌 차며 그렇게 대답했다. 다시 닫히려는 문을 황급히 붙잡고 나는 애원하듯 말을 쏟아냈다.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저기. 괴물이 나와도 좋고 잡아 먹혀도 좋으니까 좀 들어갈 수 없을까요? 갈 데가 없어서요. 여기에 오는 게 평생의 꿈이었는데. 그러니까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갈 곳은 이제 여기밖에 없거든요?”

문이 쾅 닫혔다. 그리고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절반 정도가 열렸다. 안은 깜깜했다. 관리인의 마음이 바뀌면 큰일이다 싶어 나는 얼른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문이 다시 닫히니 안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잠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는 말이 정말일까. 어디선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탁하고 관리인의 손에 들린 등불이 켜졌다. 관리인의 주름진 얼굴에 그림자가 파도쳤다. 가늘게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원래 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사정이 딱해 보여서.”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당신이 갈 곳은 얼마든지 있지 않소? 여기에 오기로 선택한 것뿐이지. 어딘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관리인이 등불을 높이 들자 빛이 커지며 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벽면에 걸린 수많은 사람의 초상화가 불빛에 올라탄 채로 춤을 추었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노래하는 거울을 노래한 이야기, 노래하는 거울이 노래한 이야기,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이야기, 노래하는 거울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만나 봤던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는 노래하는 거울이 만든 사람도 있고 노래하는 거울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내가 잘못 찾아오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오시오.”

어두운 복도에서 관리인이 든 등불만 동동 떠 어디론가 흘러갔다. 복도는 좁아졌다 넓어졌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계단을 밟아 오르며 밑으로 내려갔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앞으로 나아갔다.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천장이 낮은 곳도 있었고 건물 밖으로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사방이 탁 트인 곳도 있었다. 한참을 따라가다가 결국 멈춘 곳은 출발한 곳과 똑같이 생긴 넓은 홀이었다.

“자. 그럼 난 이만.”

관리인은 그렇게 말하고 등불을 덮었다. 당황한 내가 손을 휘저어 보았지만 이미 관리인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았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전 어디로 가야 하죠? 어떻게, 뭘 하면 되나요?”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오.”

서서히 멀어지며 사라지는 목소리는 흘러나오는 방향조차 짐작하기 힘들었다.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바닥이 찬데도 춥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안에 들어온 이후로 이상할 정도로 몸의 감각과 기분이 따로 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가 고팠지만 무언가를 먹고 싶지는 않았고 졸립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함을 억누르고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서서히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검기만 했던 주변에서 희끗희끗한 회색이 드러났다. 검은 벽이 어디선가 들어온 희미한 빛을 머금은 게 보였다. 거대한 홀의 빈 공간이 어슴푸레 내 주위를 감쌌다. 멀리 벽에 걸린 액자의 모서리가 반짝 빛났다. 나는 조심스레 한쪽 구석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다시 짙어진 암흑 속에서 나를 이끈 건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희미하게 속삭이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나는 액자라고 생각했던 게 실은 거울이었다는 걸 알았다. 거울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노래가 들렸다. 이야기 속에서만 들었던 노래하는 거울을 실제로 본 내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오래되었지만 들어 보지 못한 노래였다. 거울 속에 스치는 얼굴은 노래의 주인공일까 아니면 노래를 만든 사람일까.

“마음에 들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거대한 홀 안에서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걸까. 거울을 바라보자 잠시 멈췄던 노래가 다시 시작되었다. 거울 속에서는 오래전 사람들이 오래전을 상상했던 풍경이 흘러갔다. 그리고 분명히 노래와는 다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노래를 듣는 건 네가 처음일지도 몰라.”

“진짜?”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누군가가 키득거렸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노래를 부르는 액자, 아니 거울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액자, 아니 거울이었다. 그건 정말로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거울은 아니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바보. 농담이지.”

“넌 누구야?”

“보고도 몰라?”

“보니까 더 모르겠는데.”

“너랑 똑같이 생겼잖아.”

“하지만 나는 아니잖아. 방금 너도 너라고 말했고. 네가 나라면 나를 보고 너라고 하지는 않겠지.”

“앗. 들켰네. 킥킥.”

나와 똑같이 생긴 그 형체는 거울 속에서 일렁이며 앞니를 환히 드러낸 채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나와 똑같은 자세, 그러니까 정확히 반대되는 자세를 취했다. 이제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건 그냥 나였다. 내가 눈을 치켜뜨면 같이 치켜뜨고 입을 벌리면 입을 벌리고 왼손을 들면 오른손을 들었다. 내가 노려보자 거울 속의 나도 똑같이 노려보았다.

“장난치치 마.”

거울 속의 나도 똑같이 입을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내가 뱉은 소리만 거울에 반사되어 홀 안에 울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거울에 손을 대 보았다. 나의 손가락과 거울 속 나의 손가락이 마주 닿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건 말랑한 살이 아닌 매끈하고 차가운 표면이었다. 나는 한동안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옆에 있던 거울도 노래를 멈췄다. 흘러가던 풍경도 멈췄다. 이제 그 거울은 노래하는 거울이 아니라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였다.

홀 안에는 어둠과 함께 적막이 감돌았다. 나는 하릴없이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반짝이는 점들이 별처럼 알알이 박혀 있었다.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천장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눈을 감아도 눈앞이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 맞는 것 같았다. 거대한 검은 탑과 노래하는 거울과 별이 빛나는 천장이 있는 꿈이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꿈을 꾼 걸까. 빛의 바람을 타고 나서일까. 아니면 그 전일까. 혹시 노래하는 거울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잠이 들었다.

 


툭툭.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나의 옷자락을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옆으로 구르다 뺨에 닿은 차가운 돌바닥의 느낌에 흠칫 놀라 눈을 떴다. 창문 같기도 하고 액자 같기도 한 틈새로 긴 네모꼴의 빛이 새어 들어와 홀 안을 채우고 있었다. 정강이를 툭툭 치는 건 내가 타고 하늘을 날던 지팡이, 아니 관리인의 지팡이였다.

“돌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게 평생의 꿈이었나?”

관리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대는 몸을 겨우 가누며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다. 흐린 시야를 애써 선명하게 조이며 손가락을 더듬은 끝에 겨우 어제 보았던 거울을 찾았다. 나의 모습으로 나에게 말을 건 거울이었다.

“저기. 저건. 어. 거울인가요, 아니면 액자인가요?”

“거울이 뭔지는 알고?”

거울이 뭔지는 안다. 그런데 사실 거울이 뭔지는 잘 모른다. 거울 속에 있는 내가 왜 위아래는 뒤집히지 않고 좌우만 뒤집히는지 설명하라면 말문이 막힌다. 어떤 책에서 읽은 것 같기는 한데 덮고 나니 또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거울이 뭔지 잘 모르는 셈이다. 거울 속에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따지면 어제 내가 본 건 거울이 아니라 액자인 셈이지만 나는 여기에 노래하는 거울을 찾으러 온 거 아닌가. 노래를 할 수 있는 거울이 말을 건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저런 걸 여기서 만드나요?”

결국 나는 그냥 저런 거라고 말해야 했다. 나의 평생의 꿈이 그냥 저런 게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관리인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기는 거울을 걸어두는 곳이고. 어디서 만드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지.”

“그럼 저건 누가 만든 거울인가요?”

“그게 왜 중요한가?”

“저도 거울을 만들고 싶거든요. 노래하는 거울이요.”

“거울을 앞에 놓고도 거울보다 거울을 만든 사람이 더 궁금한 사람이 거울을 만들겠다고? 적당히 구경이나 하다가 다음 바람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관리인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나서 또 휑하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이나 복도가 아니라 벽으로 스르륵 들어가 버린 것 같았는데 관리인의 말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해진 상태여서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거울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앞에 놓인 거울을 제대로 살펴볼 생각도 안 하면서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럼 나는 거울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거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뭐가 되었든 관리인은 나를 내쫓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건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수없이 많은 거울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건 행운이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벽으로 다가가 어제 내게 노래하고 말을 걸었던 거울을 살펴보며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내게 노래를 불러 주었던 거울은 그냥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였고 내게 말을 걸었던 거울은 그냥 거울이었다. 옆에 걸린 다른 거울들을 살펴봐도 그냥 액자거나 거울이었다. 꿈을 꾼 걸까? 아니면 지금 꿈을 꾸는 중일까? 꿈속에서는 꿈이 꿈이라는 걸 모른다.

어젯밤 꿈에서 나는 하늘을 날았다. 기다란 지팡이를 타고 별빛을 담은 바람에 올라앉아 세상을 여행했다. 나는 내 몸이 가벼워지는 상상을 했다. 몸이 조금씩 위로 떠 오른다고 믿었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보았다. 힘을 빼니 몸은 힘없이 아래로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보다. 나는 하릴없이 홀 안을 빙빙 돌며 벽에 걸린 액자들을 확인했다. 하나같이 그냥 액자고 그냥 거울이었다.

결국 나는 다른 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다. 어제 관리인의 뒤를 따라 짚어 온 길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앞에 보이는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도 길을 잃은 상태였다.

복도는 좁아졌다 넓어졌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계단을 밟아 오르며 밑으로 내려갔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앞으로 나아갔다.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천장이 낮은 곳도 있었고 건물 밖으로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사방이 탁 트인 곳도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넓은 홀에 도착했다. 출발한 곳과 똑같이 생긴 넓은 홀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아까와 달랐다. 다른가? 이전의 홀에 어떤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걸려 있는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노래하는 거울을 찾으러 와서 정작 거울이 하는 노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결국 노래도 아니고 거울도 아니고 노래하는 거울을 좋아했던 걸까. 거울이 노래한다는 사실만 신기해했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노래가 좋았고 노래하는 거울이 좋아서 거울을 좋아했다. 그런데 노래하는 거울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후부터는 노래도 거울도 예전만큼 좋아하지는 않게 되었다. 빛의 바람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고 싶어 하니 당연히 노래도 거울도 좋아한다고 믿었다. 진짜로 밀로르진에 도착해 거울과 액자에 둘러싸이고 나서야 내가 노래에 무심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야 그걸 알았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둘러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노래가 들렸다. 처음 들어 보는 노래였다.

내가 가 본 적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낯선 곡조의 노래였다. 노래에 집중하자 희미하던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내 몸이 둥둥 떠서 노래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길지 않은 노랫소리가 잦아들자 내 몸도 가라앉았다.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게 아니라 바닥에 그냥 놓여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액자를 집어 들었다.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내가 들었던 이야기 속의 세상이 액자 안에 들어 있었다. 평범한 액자였고 평범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 풍경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아까 들었던 곡조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 음을 흥얼거리자 액자 속의 그림이 살짝 일렁였다. 소리를 멈추자 그림도 멈췄다. 애써 기억을 되살려 조금 전 들었던 노래를 불러 보았지만 그림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부른 건 들었던 것과는 다른 노래였다.

액자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관리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 액자는 왜 벽에 걸리지 않고 바닥에 놓여 있었을까.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처음 홀에 들어왔을 때는 이 액자를 보지 못했다. 홀이 워낙 넓었고 바닥을 살필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눈에 띄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액자를 벽에 걸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그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에 두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액자가 부른 노래는 그렇게 버려질 노래는 아니었다. 어딘가에 걸려서 언젠가 보러 올 누군가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도 이번 홀에는 못만 박힌 빈자리가 몇 개 있었다. 사실 많았다. 빼곡하게 그림이 걸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액자가 아니라 거울이었다. 거울은 거울인데 세상을 비추지 못하는 거울이었다. 벽의 색과 똑같은 검은 색으로 뒤덮인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울 속의 세상처럼 이쪽 세상도 텅 비어 버릴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그림이 든 액자를 치켜들자 검은 거울은 스르륵 사라지고 액자를 걸 빈자리만 남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액자를 걸고 조금씩 움직이며 수평을 맞췄다. 자리를 잡자 액자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 걸려 있던 것처럼 벽으로 조금 빨려들며 찰칵 달라붙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거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무언가를 망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부드러운 빛이 벽에 걸린 액자를 휘감다가 흩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내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거울이 된 것이다. 나는 아직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노래하는 거울을 걸기는 했다는 사실에 조금 뿌듯해졌다.

“생각보다는 적응이 빠른데?”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들렸는지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거울의 검은 표면에서 목소리에 맞춰 둥근 파문이 퍼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물었다.

“넌 대체 누구야?”

“아직도 내가 누군지가 궁금한 거야?”

나에게 되묻는 목소리에 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구라는 건 꽤 어려운 질문이다. 목소리가 과연 누구이기는 한 걸까. 나는 목소리가 누구인지가 가장 궁금한 걸까. 좀 더 단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뭘까.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고 싶어.”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말도 안 돼. 거울이 노래한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듣지 않는 거지.”

“장난치지 말고.”

“장난 같아?”

“그러지 말고 그냥 가르쳐 주면 안 돼?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방법 말이야.”

“좋아. 가르쳐 줄게.”

“정말?”

“정말.”

목소리는 흔쾌히 그렇게 대답했다. 검은 표면이 스멀거리더니 조금씩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명암이 생기고 윤곽이 드러났다. 밝고 어두운 그림자에 색이 입혀졌다. 거울 속에 나타난 건 나의 모습이었다. 거울에 비친 나와 정확히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입을 벌려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거울을 따라 입을 움직였다.

“자. 이제 준비는 끝났어.”

“끝났다고?”

“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한심하긴.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고 싶다며? 그럼 노래를 해야지.”

“노래를 하라고?”

“응.”

“내가 아니라. 거울이 노래하게 만들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노래를 해 보라니까?”

거울은 막무가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목을 가다듬고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나는 나와 똑같이 입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작던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서 어느새 홀 안을 가득 채웠다. 노래를 마치자 거울 속에 비친 나는 활짝 웃으며 박수쳤다.

“오. 생각보다 잘하는데? 어때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어 본 기분이?”

“무슨 소리야. 노래를 한 건 나잖아. 거울이 아니라.”

“나도 같이 노래했어.”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쏘아붙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왜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나는 왜 노래하는 거울을 좋아하게 된 걸까.

“내가 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어.”

“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

“내가 하는 노래가 거울이 되어서 거울의 탑에 걸렸으면 좋겠어.”

“그렇지.”

“세상의 온갖 신기한 이야기가 거울의 탑에 모여 있다고 들었어. 거울의 탑은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공방이자 전시관이라고. 내가 들어 봤던 가장 멋진 이야기를 만든 노래꾼들의 거울도 거울의 탑에 걸려 있다고 들었어. 그 사이에 내가 만든 거울도 걸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가 만든 거울을 보고 내가 만든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어.”

그건 내가 한 말일까. 아니면 거울 속의 내가 한 말일까. 내가 묻기도 전에 거울 속의 나는 희미한 미소만을 남긴 채 스르륵 사라졌다. 거울 안은 다시 검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불러 봐도 소용이 없었다.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거울 속의 나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거울의 노래를 들을 수는 있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거울의 탑에는 명성만큼 많은 거울이 걸려 있지는 않았다. 채워진 자리보다는 비워진 자리가 많았다.

거울의 탑에서는 배도 고프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원하면 잠을 잘 수는 있었지만 졸립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복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관리인과 마주쳤다. 관리인은 무엇 하나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 없겠냐고 물어봐도 그냥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지나가 버렸다.

가끔 아직 걸리지 않은 거울을 발견하면 그걸 벽에 걸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지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거울이 걸려 있는 걸 보고는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거울이 부르는 노래에 어울리는 자리에 걸어 놓으려 나름대로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유명한 거울의 탑을 이렇게 내 멋대로 장식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여기는 소문이 자자한 그 거울의 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누구도 이곳이 거울의 탑이라고 말한 적이 없고 밀로르진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거울의 노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관광객이 북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텅 빈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노래를 듣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거울에서 노랫소리가 들릴 때가 있었다. 그건 아마 내가 아닌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거울의 노래를 듣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거울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거울의 탑에서 내가 깨달은 몇 가지 중 하나였다.

노래를 부르는 거울을 만드는 데도 조금은 진전이 있었다. 무료할 때면 나는 검은 거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검은 물결이 일렁이며 내 노래에 화답했다. 가끔은 거울이 내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가 내가 지나갈 때 둥근 파문을 일으키며 몇몇 소절을 들려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혼자 흥얼거린 건 줄 알았다. 거울의 탑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도 힘들었지만 내가 한 일과 거울이 한 일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냥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내 노래를 누군가가 들었을까. 내 노래가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을까. 그건 정말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였을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거울의 탑에서의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흘러갔고 나는 그럭저럭 그런 삶에 적응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내가 평생 꿈꾸던 삶인지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많은 부분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숨겨져 있던 게 아니었다. 몇 번이나 계단을 보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아래로 내려가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래층에서는 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걸리지 않은 거울은 거의 항상 탑의 가장 위층에 있었다. 거울의 탑에서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층이 생기고 새로운 방이 나타났다. 내가 거울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곳도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탑 꼭대기 근처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갑자기 계단을 내려가 볼 생각이 든 건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일에 조금 진력이 나기 시작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노래를 불렀고 거울이 내 노래를 기억했고 거울이 부르는 노래를 가끔 누군가가 들어 주었지만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제자리에 있었다. 노래를 부르면 부를 수록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점점 좁은 틀 안에 갇힌다는 느낌도 들었다.

계단은 놀라울 정도로 깊은 곳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거울의 탑은 층과 층이 층층이 연결된 구조가 아니었다. 어느 층에서든 계단 하나만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어느 층으로든 갈 수 있었다. 엇갈리고 꼬이고 휘감긴 계단 중 하나를 골라 오르거나 내리면 다른 층이 나왔다. 꼭대기 층에서 한 번만 내려와도 맨 아래층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계단을 걸어올라 아래층에 갈 수도 있었다.

거울의 탑은 서서히 땅속으로 파묻히는 중이었다. 새로운 층이 하나 생기면 그만큼 탑이 아래로 내려가며 지하로 파고드는 식이었다. 분명 창문 틈새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층이었는데 한참 뒤에 다시 가 보면 모든 틈새가 벽돌로 막혀 있곤 했다. 눅눅한 습기가 느껴지는 탑의 지하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더욱 스산했다. 그래도 여전히 노래하는 거울이 걸려 있었고 뜻밖의 방문자를 위해 기꺼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전설로만 듣던 유명한 노래꾼의 거울을 발견하기도 했다. 빛이 바래고 먼지가 쌓였어도 여전히 노래는 아름다웠다. 여기저기 액자가 떨어져 나간 어두운 홀 안을 거짓말처럼 지키고 있는 그런 거울을 발견할 때면 이 층이 여전히 지상에 있고 방금 만들어진 거울들이 즐비하던 시절에 수많은 노래꾼과 구경꾼으로 북적이던 광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두근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찾아온 걸까. 더 빨리 빛의 바람에 올라탔다면 이 노래꾼들과 함께 노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네. 정말 원하는 게 뭐야?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거야, 아니면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거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는 빈 거울이 없었다. 목소리는 내 안에서 들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에게 대답했다.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거지. 그걸 꼭 구분해야 해?”

“그럼 뭘 아쉬워하는 거야?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면 되잖아.”

“그냥.”

“그냥?”

“그냥. 모르겠어. 좀 외로운가 봐. 여기 온 뒤로 관리인을 빼고는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노래를 들을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조금.”

“흠. 글쎄. 내가 보기에는 넌 노래를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은데.”

“듣고는 있어. 그래도 함께 부를 수는 없으니까.”

“시도는 해 봤어?”

“아니. 내가 말하는 건. 노래를 들으며 함께 부를 수야 있겠지.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어딘가 부족해. 난 거울을 만드는 공방을 찾아 이곳에 온 거야.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게 물론 목적이었지만. 난 솔직히 조금은 더 떠들썩한 분위기를 기대했다고. 함께 거울을 만드는 사람끼리 잡담도 나누고 망치도 두드리고 맛있는 걸 나눠 먹기도 하고. 그런 틈에 끼어서 함께 거울을 만들고 싶었던 거라고.”

“그러니까 시도는 해 봤냐고.”

“어떻게 시도를 해? 다른 사람이라고는 보이지가 않는데.”

“눈앞에 있잖아.”

내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오래된 거울이었다. 오래된 거울 안에서 오래전부터 동경하던 노래꾼이 오래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저 노래꾼이 거울 밖에서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망치를 두드리기를 원했다. 나는 거울 밖에 있고 노래꾼은 거울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문득 무슨 생각이 든 나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거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안에서는 오래된 풍경 속에서 오래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노래하며 일렁이는 그림을 덮고 있는 유리가 매끈했다. 유리의 표면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내 손가락이 버터처럼 녹아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물컹해진 손가락이 거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녹아내린 건 손가락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거울 안의 풍경 속에서 내 손가락이 까닥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조금 힘을 주어 손을 더 밀어 넣었다. 거울 안으로 손이 들어가고 팔이 들어갔다. 어깨가 들어가고 머리카락이 들어갔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거울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눈을 뜨니 나는 거울 안에 있었다. 정확히는 몸의 절반만 거울 안에 들어 온 채 거울에 허리가 걸려 있었다. 거울 속으로 어두컴컴한 탑의 지하가 보였다. 액자를 잡고 몸을 끌어내자 미끄러지듯 밀려 나온 몸이 거울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오랜만의 손님이네. 어서 와.”

나에게 말을 건 건 노래꾼이었다. 노래꾼은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몸 전체가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과 가슴 그리고 한쪽 팔 정도만 연기처럼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그래도 그건 분명 노래꾼이었다.

“여기가 어디죠?”

노래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노래를 불렀다. 다시 보니 나에게 처음 건 말도 노래의 일부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노래꾼을 바라보던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노래꾼이 만든 세상에서 노래꾼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몸이 저절로 떠오르며 노래꾼이 만든 세상 속을 날았다. 그곳에서 나는 노래꾼과 함께 노래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노래를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노래를 들을 때 나는 언제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세상 속에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거울을 통해 노래를 들었다. 노래하는 거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런 거울을 만들고 싶어 한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거울을 상상하는 순간 노래꾼과 나 사이에 투명한 유리 벽이 생겼다. 나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거울 밖에서 거울의 노래를 들었다.

“이제 진짜 거울을 만드는 법을 알겠어.”

내가 중얼거렸다. 노래꾼이 흐뭇하게 웃으며 언제나 부르던 노래로 중얼거림에 화답했다.

 


“정말 알긴 아는 거야? 난 잘 모르겠는데.”

거울 속의 내가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까딱거렸다. 그러면서도 못 이기는 척 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한 소절 한 소절을 쌓아 탑 맨 위층에 걸 거울을 만들었다. 노래를 부르며 나는 서서히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거울 속의 나도 나를 향해 다가왔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닿고 서로에게 녹아들며 우리는 하나가 되어 사라졌다.

번쩍 눈이 떠지며 고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래하는 거울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날지도 못하고 빛의 바람에 타지도 못한다. 하지만 빛의 바람을 타고 꿈꾸던 곳으로 여행하는 꿈을 꾼다. 거울의 탑, 밀로르진의 꿈을 되새기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방에 걸린 거울 안에서 노래하는 나를 보았다. 거울의 탑 꼭대기에서 새로 만들어진 거울을 벽에 걸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나는 노래하는 거울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는 거울의 노래를 노래하는 거울을 만들었다. 망치질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조심스럽게 벽을 세우고 층을 쌓았다. 노래하는 거울을 만드는 탑의 이야기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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