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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신화와 점성학

2004.04.30 23:5204.30

신화와 점성학

리즈 그린, 유기천 옮김, 문학동네, 2000년 5월



정원사 (gardener_77@hotmail.com)



점성학은 신문이나 잡지에 한꼭지씩 실리는 심심풀이 별자리 운세와는 많이 다를 뿐더러,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학문이다. 당장 출생천궁도만 해도 그렇다. 별자리운세를 두고 어떻게 세상 사람의 12분의 1씩이 같은 운명을 공유할 수 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출생천궁도는 태어난 때의 황도궁(태양궁)만이 아니라 상승궁, 태음궁, 기타 행성궁들과 행성들끼리 이루는 각도와 위치 등으로 복잡하게 짜여진 패턴이다. 12가지 분류로는 턱도 없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현대 점성학은 황도 12궁과 10행성으로 이루어진 출생천궁도란 예정된 길로 사람을 끌고 가는 운명이 아니라 내면의 특징과 무의식을 일깨워주는 나침반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때에 어떤 운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해줄 뿐, 결국 선택과 개척은 개인의 몫이라는 뜻이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신화와 점성학](리즈 그린, 유기천 옮김, 문학동네, 2000년 5월)은 이런 흐름을 잇는 현대 점성학 중에서도 융 심리학과 캠벨의 신화분석을 받아들여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심리 점성학Psychological Astrology자 리즈 그린의 저서 [The Astrology of Fate] 3부작 중에서도 점성학적인 기본 지식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2부만 따로 떼어 국내에서 점성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유기천이 옮기고 주석을 단 책이다. 물론, 아무리 융과 캠벨을 이었다 해도 무슨 별자리가 어떤 신화를 배경으로 하며 그 별자리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경향을 보인다…… 같은 내용이 주라면 이 자리에서 다루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운명’이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하나는 강력한 힘인 ‘케르ker’로, 이 힘이 분노하여 복수를 시도하면 에뤼니에스가 되고 태어날 때 개인에게 주어지면 모이라가 된다. 모이라는 운명의 부정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나타내며, 집단적이고 비개인적이다. 반면 또 하나의 운명을 나타내는 ‘다이몬daimon’은 수호신이며 운명의 우호적 요소다. 개인의 내부로부터 인상을 형성해가며 자신의 운을 개척하거나 망치는 힘이다. 모이라가 ‘몫’이라면 다이몬은 ‘나누어주는 자’이며 복수형인 다이모네스는 ’신들‘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다이몬의 단수형태, 각 개인의 수호신이 점성학의 출생천궁도와 결부된다.

   여기서부터 다시 이야기하자.

   융과 캠벨의 이름을 보고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자 리즈 그린은, 혹은 심리 점성학은 우선 신화mythos가 ‘이야기’이자 ‘틀’로서 인간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입장을 취한다. 여러 신화, 특히 영웅 신화의 여러 단계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따르는 정신적인 변화를 반영한다―――여기까지는 캠벨의 신화관을 연상시킨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점성학 역시 ‘이야기’이자 ‘틀’로서 인생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신화와 같은 면을 공유하며, 출생천궁도가 암시하는 패턴에 어떤 신화가 공명할 때 그 신화는 개인의 삶 속에서 다이몬의 기능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물론 하나의 신화가 하나의 별자리에 대응한다거나, 특정 신이 개인에 대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론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서론에 이어지는 본론은 황도 12궁 각각에 해당하는 여러 신화를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성격과 심리, 경향을 읽어내는 방식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주로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하고 가끔 이집트와 북구 신화를 끼워넣으면서 이것은 자신에게 이 신화들이 친숙해서일 뿐이며, 더 친숙하고 더 연상하기 쉬운 신화는 각자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저자가 보여주는 신화 지식의 폭은 결코 얕지 않다. 예컨대 쌍둥이자리의 경우에 주된 이야기는 주로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자식인 제토스와 암피온, 제우스와 레다의 자식인 카스토르와 풀룩스, 로마의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차지한다. 여기에 힌두의 아쉬빈이 잠깐 언급되고, 빛과 어둠의 쌍둥이라는 의미에서 북유럽의 발데르와 로게,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말베리히와 보탄, 지크프리트와 하겐, 성서의 카인과 아벨, 수메르의 이난나와 에레슈키갈, 그리스의 아르테미스아 아프로디테 같은 대립적인 신들이 열거된다.

   그러나 아무리 신화읽기의 한 가지 방식이라 해도 이 책의 기둥은 신화가 아니라 점성학이다. 그런데 ‘쌍둥이’가 무엇을 상징하며 그에 관련한 신화들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느슨한 이야기 흐름 속에서 정작 쌍둥이자리 사람들이 어떤 성격/경향을 갖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드문드문 조금씩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해도, 책을 쓴 목적이 별의 움직임과 신화가 개인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피고자 함이었다면 이건 좀 무책임한 것 아닌가? 그런 의문 덕에―――라고 하면 아이러니하지만, 출생천궁도와 그 천궁도 안에 살아있는 신화읽기를 연관짓는 이 책의 방식이 타로카드에서의 이미지읽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타로에 흥미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역량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지는 못해도 질문자 개인의 상황이나 성격, 심리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 상당 부분 동의할 것이다. 타로카드는 질문자와 점치는 사람 간의 관계와 상황, 태도, 질문 내용 등 많은 변수를 가지며 그런 의미에서 점성학이나 사주팔자와 달리 임의적이고 개인적인 면이 많다. 그런 타로카드도 기본적인 규칙은 어느 정도 공유하며, 각 카드와 그림의 의미를 푼 매뉴얼이 존재하고, 초보자가 매뉴얼대로만 읽어내도 표층적인 의미에서는 오류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타로에는 ‘점술’ 혹은 ‘좋은 상담 수단’ 외에 또 한가지 의미가 있다. 그것은 타로가 상징의 집약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타로에는 매뉴얼로 읽을 수 있는 체계적인 상징 외에도 그림이 나타내는 이미지에서 순간적으로 읽을 수 있는 ‘흐르는 상징’이 있다. 점성학에서 신화 읽기가 타로에서 이미지 읽기와 비슷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뜻이다. 점성학은 천체의 순환과 규칙, 수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우주와 움직임과 개인의 운명을 연결시켜 해석해보려 한 학문이고 따라서 타로보다 훨씬 단단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질서있는 상징체계라기보다는 역동적 이미지의 흐름인’ 신화가 차지하는 자리는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이 ‘흐르는 상징’과 ‘삶’의 교차점을 찾으려는 노력이야말로 현대 점성학과 현대 신비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임을 떠올리고 싶다.

   [신화와 점성학]은 넓은 의미에서의 오컬트에 관심을 둔 사람 모두에게 흥미로운 책임에 분명하다. 타로나 점성학을 활용하면서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자(반만 농담이다), 상징과 심리학에 대한 책이며, 신화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우주와 연관을 맺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가 파고든 고민의 흔적이다. 그 흔적에 꼭 공감하라거나 배울 필요는 없다. 무심코 집어든 이윤기 산문집에서 ‘당신에게 깃들여 있는 신께 문안 드립니다’라는 뜻을 지닌 인삿말 ‘나마스떼’를 빌어 자신도 ‘여러분 안에 깃들여 있는 신화에게 문안 드립니다’라고 말하곤 한다고, 신화 읽기란 우리들 안에 흐르는 강 같은 신화를 마중하는, 혹은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는 대목을 읽었다. [신화와 점성학]도 출발점에서는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드니, 그것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

   “나는 출생천궁도와 관련하여 ‘나의 신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신화가 있고 개인은 서로 다른 그 많은 주제들을 변형시키고 결합하여 자기 특유의 것으로 요리하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점성가라 할지라도 몇 줄의 문장으로 그것을 정확히 분석하여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또한 우리가 무대 위에 있는 동안 연극이 어떻게 진행되어갈 것인가를 상상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다. 어쩌면 죽음 저편의 세계에서는 완전한 각본이 읽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어진 시점에서 우리가 일별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상연되고 있는 바로 그 장면, 과거 장면들과의 관계, 다음 막에 대한 어렴풋한 직감 정도일 것이다.”

―――[신화와 점성학] 서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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