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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벨님과의 인터뷰



12월 28일 목요일. 징하게 추운 날 루나벨님과 jxk160님이 찾아왔다.

최근 인터뷰가 그랬듯 일단 한상 잘 먹은 후부터 질문이 시작되었다. (편의상 jxk160님은 jxk, 루나벨님은 루나로 표기합니다.)



진아 : 처음 쓴 글은 어떤 글이에요? 데카메론 전에도 썼었죠?
       아, 근데 이런 질문은 너무 재미없나? 맨날 하는 질문이라...
jxk  : 하세욧! 저한테도 하셨잖아요.
루나 : 음... 데카 전에도 썼었는데, 그 전에 쓴 글들은 그냥 습작이고, 소설 형식을 갖춘 글은 데카메론에 올린 글 부터였던 것 같아요.
jxk  : 저 루나벨님이 쓴 팬픽도 봤는데.
루나 : 헉, 어떤 거요? 공개한 건 하나 밖에 없는데...;;;
진아 : 어떤 팬픽요?
루나 : 슬레이어즈요.
진아 : 어, 나 눈 감고 다니는 애 좋아했는데... 이름이 뭐였지?
루나 : 제로스요!
jxk  : 트라이에서 망쳐놨어요. ㅡㅡ;;


(이후 슬레이어즈에 대한 이야기로 10분이 흐르다;;)


진아 : (정신을 차리고) 요새 쓰고 있는 글은 어떤 거예요?
루나 : 공모전 준비 중이에요. 퇴고만 세 번째예요. 아, 이제 지겨워.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제가 화두가 그거라서요. 이게 끝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성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병 속에 든 바다>는 퇴행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소녀들의 퇴행이나 진입이나 성장 같은 것들, 그런 연장선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jxk : 늘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아요.
루나 : 예전에는 그걸 직시하지는 못했어요. 막연하게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는데 돌이켜보니 대부분 소녀들의 성장이 주 관심사였더라고요.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 것 같고, 더 분명하게 정면으로 다루고 싶어졌어요.
jxk  : 그런데 가만 보면 <월아>는 소녀 이야기는 아니고... <병 속에 든 바다>, <약속>은 그렇다 치고, <키리에>는...
루나 : 은근히 아닌 것도 많네요. ^^;;
jxk  : < H 이야기>가 있네요.
루나 : 생각해보면 그거야말로 소녀들의 이야기였죠. 지금 쓰고 있는 글도 < H 이야기>랑 비슷해요.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다 쓴 다음엔 뭐가 되든 뭔가가 될 것 같아요. 하나의 매듭을 짓는 기분이에요.

jxk  : 글 때려치우면 뭐 할 거예요?
루나 : 원래 그런 걸 생각하기 싫어서 일부러 피했었는데... 글쎄요, 원래 피아노를 치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글을 썼어요. 글을 안 쓰면 둘 중 하나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나한테는 글 밖에 못 쓴다거나, 내 모든 것은 글 뿐이라거나 하는 절박함이 없어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안일해질까봐 무서워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 두 가지에서는 거리를 두려고 하죠.
jxk  : 아니, 셋 다 잘 해야지 하고 분발하셔야죠!
루나 : 능력이 안돼요. ^^;;;

jxk  : (뜬금없이) 어떤 담배가 제일 좋아요?
루나 : 던힐 프로스트요! 멘솔계의 황태자죠!
jxk  : 왜 담배에 민트를 넣는 거예요!


(이후 약 7분간 담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진아 : (정신을 차리고) 합평회하면서 힘든 점은 없어요?


(본시 합평회 진행은 내가 했으나 약 1년 전 루나벨님과 추선비님에게 떠맡겼다.;;)


루나 :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요즘은 편하게 하고 있어요.
진아 : 진행자가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다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요. (무사태평)


(거울도 그렇게 3년을 왔습니다.;;;)


루나 : 도움이 되는 점이 많아요.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그런 거요.
jxk  : (주먹을 불끈 쥐더니) 맞아요.
진아 : jxk님 글이 저번에 그랬다고 들었어요.
루나 : 예, 정말 다양한 해석이 나왔었죠. ^^;;;

(대화 중에 나온 jxk160님 글은 아직 거울에 게재되지 않은 글입니다. jxk님 기다리고 있어요.♡)


진아 : 자기 글의 장단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루나 : 헉... 그, 그런 질문을...;;;
진아 : 질문하려고 하는 게 인터뷰다보니...
루나 : 장점은 묘사가 강하다는 것? 단점은 서사가 약하다는 것. 남들이 문장이 괜찮다고는 하는데 전 모르겠고;;
진아 : 어머어머 못할 것처럼 빼시더니 다한다아---

(잠시 웃느라 대화 중단)

jxk  : 왜 서사가 약하다고 생각해요?
루나 : 서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녹여내는 데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이나 묘사에 치중하는 것 같아요. 서사성을 견고하게 하는 건 저한테는 좀 지루한 작업이랄까. 허술하지 않게 보이려고 신경을 써서 글이 버텨는 내지만 신경을 조금만 덜 쓰면 금세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jxk  : 그런데... <키리예>도 그렇고, <병 속의 바다>도 그렇고, 굳이 판타지일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거울에 올라오는 글들이 그렇게 장르성이 명확한 건 아니지만....
루나 : 순문학에 가깝다고요?
jxk  : 네.
루나 :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장르보다는 순문학에 가깝다고... 근데 순문학 쪽에 가면 “이게 순문학이라고?” 그래요. 되게 애매한 입장에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언젠가는 제가 장르 장편을 썼었는데 쓰다보니 이게 아니다 싶더라구요. 왜냐하면, 판타지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걸 글을 통해 표현해야 하는데 나는 일일이 설명을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FSS처럼 설정 다 정리해서 첨부해버리고 독자들은 알아서 이거 먼저 읽고 시작해~ 그래버리고 싶고...
jxk  : 그건 어떤 글을 쓰고 싶냐보다도 편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인 것 같은데...
루나 : 음, 중요한 건 그게 보람이 안 느껴지더라는 거예요.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면 괜찮지만 보람이 안 느껴진다는 게 힘든 점이면 좀(웃음). 왜 이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장르보다는 순문학이 더 맞지 싶어요.
진아 : 그럼 이번에 쓰고 있다는 글은 순문학 쪽 글인가요?
루나 : 네. 공모전에 내려고 쓴 거니까요.

진아 : 거울 필진 중 좋아하는 사람은요?
루나 : (당황하며) 네?
진아 : 아, 그러니까 글을 좋아하는 사람요.
jxk  : ‘글을’을 빼요~
루나 : 헉...;;;;
진아 : 흐흐흐... 글을 좋아하는 사람요.
루나 : 추선비님, 갈원경님이요.
jxk  : 치. ‘글을’ 빼지.
루나 : 어... 그걸... 빼면.... jxk님.
진아 : 아, 그 말이 듣고 싶었군요.

(잠시 웃느라 대화 중단)

진아 : 어떤 점이 좋아요?
루나 : 앗, 그런 건 물어보지 마세요!
진아 : 사실은 별로 안 좋아하는 구나?
루나 : 부끄러워서 그러죠! ^^;;; 갈원경님 글은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원경님 글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느낌. 깊이 있는 휴머니티가 있어요. 원경님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는 다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추선비님 글은, 날이 서 있잖아요. 함축적인 거. 그런 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말로 날카롭게 찌르는 거. 그런 공력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어요. 음, 전체적으로 제가 가지지 못한 점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진아 : jxk님은요?
루나 : jxk님 글은...
jxk  : ‘글은’ 빼라니까. 치. 에로스가 아니었어...
루나 : 으하하;;;;
       음... jxk님 글은 깊이가 있어요...
jxk  : ‘글은’ 빼도 되는데...
진아 : 루나벨님, 담배 거꾸로 물었어요. ^^;;;

(... 얼마나 당황하셨으면...;;;)

루나 : (겨우 담배에 제대로 불을 붙이시고) 전에 인터뷰 하셨을 때요.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는 말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 정도 깊이라면 그런 말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jxk  : (고개를 숙이며) 그렇구나. 이거 되게 쪽팔리는 거구나.
진아 : 와- 다 듣고 나서- 어머어머- 사실은 듣고 싶었으면서.

(잠시 웃다가)

진아 : 그럼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루나 : 신경숙이요.
jxk  : 웃.
루나 : 다들 그런 반응이더라구요. ^^;;;
진아 : 어떤 점이 좋아요?
루나 : 그렇게 끝까지 파고드는 것도 능력이죠. 전 그렇게 하면 무서울 것 같아요. 보기 싫은 부분까지도 다 파헤쳐서 예쁘게 말을 하거든요. 그런 점이 좋았어요.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는 완성도니 뭐니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자기 취향이랄까 자기랑 맞는 부분이 있어서잖아요. 그 사람은 가장 나를 감명 시킬 수 있는 패턴을 가지고 있어요.
jxk :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루나 : 개인적인 거라 말하기 싫었는데; 말하자면 일종의 자기 연민이잖아요. 그걸 그렇게 찌질하기는 커녕 아름답고 힘 있게 풀 수 있는 게 좋아요. 아 요즘은 조선일보에 <푸른 눈물>이라는 신작을 연재하고 있어요. <리심>같은, 빠리에 간 조선의 궁녀 이야기에요. 아직 읽진 않았는데 신경숙 씨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게 무척...(발그레)

진아 : 다른 작가는 누구 좋아해요?
루나 : 오스카 와일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요.
jxk  : 오스카 와일드까지는 알겠데 톨스토이는 의외네요.
루나 : 예, 그렇죠. 그래도 좋아요. 쥐스킨트도 좋아하구요.
       김승옥, 최명희, 배수아도 좋아해요.
jxk  : 톨스토이 저는 잘 안 맞았던 거 같아요. 재미 없었어요. 전쟁과 평화...
루나 : 전쟁과 평화는... 재미없는 부분 건너뛰면서 읽으면 재밌어요. 음... 저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이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진아 : 아까 순문학이 더 맞다면서 거울에 있는 이유는요? 아, 꼭 장르를 써야 한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구요.
루나 : 단적으로, 거울은 이도저도 아닌 글(웃음)을 잘 받아줘서랄까요. 제 글이 아까도 말했듯이 장르 쪽에서는 순문학에 가깝다고 하고, 순문학에서는 장르에 가깝다고 해요. 조만간 방향성은 정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런 경계에 있는 글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랄까요. 그게 거울의 특징이자 열린 가능성이기도 하고.
진아 : 장르냐, 순문학이냐를 꼭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루나 : 언제나 데뷔가 문제죠. 등단하고 한두 작품 내고, 궤도에 올라간 뒤에는 굳이 그런 전형성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써도 상관없지만 그러기 위한 관문에 설 때까지는 어느 정도 전략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아직 아마추어니까요.

jxk  : 주로 단편 쓰시죠? 장편은 생각 없으세요?
루나 : 쓰다만 게 있어요. 여력이 되면 계속 쓰려고요. 아 근데 그건 순문학 아니고 장른데... 뱀파이어...
jxk: 백합? 아, 뱀파...;
루나: 백합! (웃음) 백합물도 써보고 싶어요. 소녀들의 성장이랑 맞닿아 잇는 부분도 있고요.


(잠시 백합물에 대한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진아 :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부분이라면요?
루나 : 어... 다 힘든데...
진아 : 아, 나 질문하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고1 때였나? 국어 선생님이 작문 수업하다가 글 쓸 때 뭐가 제일 힘든지 질문을 했어요. 제가 지적을 받고 일어섰는데 생각나는 게 없는 거야. 그래서 “처음 부분을 쓰는 게 제일 어려워요.”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다음으로 힘든 건 뭐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중간을 이어나가는 게 힘들어요.” 그럼 그 다음에는 뭐가 힘드냐는 거예요. 그래서 “결말을 짓기가 힘들어요.” 했거든요.

(잠시 폭소)

진아 : 애들은 다 웃고...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루나 : 하지만 그게 정답이잖아요.
진아 : 지금 생각하면 그렇죠. 근데 그 때는 그걸 생각하고 말한 게 아니라 하나만 물어볼 줄 알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거나 댄 건데, 다음 건? 다음 건? 하다보니까...;;; 와 애들은 웃어대지...
루나 : 선생님은 뭐랬어요?
진아 :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구요.
루나 : 맞아요. 맞는 말이잖아요.
진아 : 그게 지금이나 그렇지, 생각해봐요, 웃기잖아요.

루나 : 음... 제가 제일 힘든 건... 역시 중간을 쓸 때?

(다시 웃음)

루나 :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 걸까 계속 회의가 들어요. 앞부분 다시 훑어보고 멈칫멈칫하는 게 오래가요. 내 글을 믿지 못하고 글을 보는 게 힘들어요.

진아 : 그럼 가장 즐거울 때는요?
루나 : 별로 없는 거 같은데. 글을 쓸 때 말고 다 쓰고 나면 즐거워요. 한 편 완성했을 때의 기쁨이랄까요. 근데 지금 쓰고 있는 건 쓰면서도 되게 즐거워요. 그 전에는 쓸 때는 괴롭고 다 쓰고 나서 행복했는데 이 글은 쓰면서도 좋네요. 뭔가 변화가 생긴 건지.
진아 :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이긴대잖아요.
루나 : 근데 즐기는 자도 한계가 있어요. 딱 자기 좋을만큼만 하고 마는 거.
jxk  : 흥. 난 즐기기만 하는 거야~하는 것도 학생 때나 할 수 있는 거 아냐요? ‘자기 시간 뺏기고 있다’는 상황이 되면 그만 두든지 의미를 찾든지 해야 하게 되잖아요.
루나 : 그런 것도 있지만 자신은 할 만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즐기기만 할 뿐인 태도 있잖아요.
진아 : 일종의 자기만족 같은 건가요?
루나 : 그런 거 같아요. 그런 게 경계해야 할 점인 듯.


진아 : 쓴 글 중에 가장 아끼는 건 뭐예요?
루나 : <병 속에 든 바다>요.

jxk  : 가장 좋아하는 글은요?
루나 : 와 날카롭다. 그게 다르다는 걸 아시네요. < H 이야기>요.

진아 : 아끼는 거랑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뭐예요?
루나 : 아낀다는 건 개인적인 거예요. 나한테 소중하다는 거죠. 하지만 좋아한다는 건 그 작품이 어떤 이유로 분명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나 : < H 이야기>가 제일 잘 쓴 글 같다는 의미예요?
루나 : 굳이 비교하자면 <키리에>가 더 잘 쓴 것 같긴 한데... 음... < H 이야기>는 고 3때 쓴 건데 그 시기의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풀어내서 써냈던 분수령 같은 작품이거든요.

jxk  : 음... <키리에>에서요. 결말에서 늙은 남자가 젊은 남자를 너무 쉽게 덮쳐요.
진아 : 반항을 안 한 거 아니에요?
jxk  : 그게 설정상 반항을 안 한 거였어요?
루나 : 굳이 의도한 설정이었다기보다,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jxk  : 야오이쪽 글로 오해될 여지가 있지 않냐는 평을 보고나서 저도 느낀 건데, 그게 야오이의 특징이잖아요. 그냥 이유 없이 쉽게 굴복해버리는 거. 그런 거 많이 본 사람만 이렇게 느끼는 건가;
진아 : 루나님은 오히려 그런 식의 항거하는 과정을 너무 자세하게 쓰다가 잘못하면 에로가 되니까 그게 꺼려졌던 거 아니에요?
루나 : 네, 맞아요. 이게 야오이로 보이면 안 된다는 방어기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은 그렇게도 많이 읽혔지만. 근데 야오이를 싫어해서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한테 진지하게 “이런 글을 쓰다니, 야오이가 싫었구나.” 한 사람도 있어요.;;;
jxk  : 앞부분까지는 이야기 자체가 사실적이었는데 갑자기 너무 쉽게 넘어가 버리니까... 상황이 너무 상징만을 위해서 사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너무 서둘렀달까요.
진아 : 촛대 같은 걸로 머리를 내려치거나 했다면, 에로틱한 묘사 없이도 가능했을 지도요.
jxk  : 뭐가 개연성을 줬더라면... 하는 게 아쉽네요.

진아 : 국문과시잖아요. 국문과가 글 쓰는데 도움이 되나요?
루나 : 아니오.
진아 : 왜요?
루나 : 꼭 국문과라서 도움이 안됐다기보다 제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그걸 충분히 활용을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일단 책을 보더라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평가하거나 문학사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보니까 그런 데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항상 자기 작품 세계에 적용할 만큼의 예민하고 촘촘한 망, 갈고리처럼 끌어올릴 수 있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 게 아니면 글 쓰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학교 공부는 그걸 도와주는 시스템이 아닌지라. 핑계일 수도 있지만 시험 준비만으로도 정신이 없죠. 그래서 똑같은 커리큘럼이나 책을 보더라도 문창과라면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긴 창작을 위한 밑거름으로 책을 보니까.

jxk  : 이건 글로 해야 될 이야기겠지만... 자기 글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는지, 그리고 독자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팬레터? 그림? 팬픽?

(잠시 웃느라 대화 중단)

jxk  : 예를 들어 읽고 감정적으로 공감해서 울길 바란다거나, 주제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길 바란다거나.
루나 : 제가 쓰고 싶어 하는 것들은 대개 개인적인 이야기예요. 앞으로도 사회적, 시대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진 않아요. 내가 개인적으로 쓴 글이 개인적으로 다가가서 개인적인 감동을, 내밀한 걸 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독자에게 바라게 되면 결국 내가 그렇게 써야 한다는 거니까... 결국 저에게 다시 돌아오네요.
아마추어 작가니까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 중 지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래도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바라는 건 있어요. 글이 나한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잘 썼다거나 못 썼다거나 그런 것들도 물론 힘이 되어줄 수 있겠지만, 그런 것 보다 이 글이 나에게 왜 중요한 지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진아 : 독자에게 바라는 거는요?
루나 : .......................... 축전 좋죠. ^^;;; 팬레터 당연히 좋고. 근데... 팬레터랑 그림이 달라요.
진아 : 팬레터 받아본 적 있어요?
루나 : 팬레터라기보다 우호적인 감상은 받아봤는데... 글 너무 좋아요, 라고 쓰는 건, 그러니까 사교의 목적이 섞여 있어요. 나랑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내가 쓰는 글을 칭찬하며 다가오는 거요. 그런데 그림은 달라요. 보통 제 글의 캐릭터를 그려서 보내주는데 그걸 보면 이 사람이 내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보여요.
진아 : 그림도 사교를 위해 그려줄 수 있잖아요.
루나 : 그래도 글은 이런저런 표현으로 돌려가며 말해서 진짜 어떻게 느꼈는지는 잘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저 “글 좋네요”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꿔서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꽤 긴 감상문이 나올 수 있죠.(웃음) 그런데 그림은 그게 정말로 내 글을 좋아해서 그렸든 그게 아니든 간에, 어쨌든 어떻게 받아들이고 투영하고 있는지는 보여요. 감상문 형식보다는 잘 감춰지지 않는 것 같아요.

jxk  : 어떤 사람이 루나벨님 글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루나 : 스무 살에게 뼈저리게 공감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jxk  : 음... 맞아요. 루나벨님의 글에서는 소녀의 감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느껴지지만 그건 진짜 소녀는 동감하지 못할 거예요. 그건 스무 살이에요.
루나 : 맞아요. 사실 모든 사람에게 소통될 수 있는 글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왕자> 같이 나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의미대로 읽힐 수 있는 글을 쓰고싶은 건 아니에요. 스무 살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볼 수 있는, 혹은 겪어봤을 그 특정한 지점을 잘 전달해서 모두에게 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아까 말했던 ‘개인적인 글이 독자에게 개인적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거죠.

진아 : 긴 시간 수고하셨어요 ^^ 마지막으로 거울 독자분들에게 한 마디 ^^
루나벨 :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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