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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chizedek@naver.com낯설게하기
요즘 ‘나의’ 화두는 이게 아닌가 싶다. “‘시간의 잔상’의”라고 썼다가, 잠시 생각해 보고 고쳐 썼다. 작가들이 이렇게 하자, 모의해 쓸 리는 없으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것이므로. 게다가 나 저 단어의 의미를 알고 쓰기는 한 걸까, 의심스럽다. 문학도는커녕, 문과생도 못되는 사람이라 여러 가지 정의면에서 못미더운 사람이다, 나는. 모두다 좋아하는 ‘너도해 지식인’에 물어보았다. 역시나,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건지 주르륵 뜬다. 읽어봐도 귀신 시나락 까먹는 거 같은 소리는 역시나 모르겠고, 대충 내 상식이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없는 확신만 커진다. 시어가 어쩌고 리듬이 어쩌고 형식 블라블라는 다 떼어먹고 그냥 단순하게 국어사전의 정의만 따르자면,

낯설게하기[명사]<문학> 러시아 형식주의의 주요한 문학적 수법. 슈클로프스키(Shklovsky, V.)가 주장한 것으로 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되어 참신하지 않은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을 이른다.

란다. 이 정도면 내가 이번 호 시간의 잔상을 읽고 저 단어를 생각해 낸 것이 그냥, 무턱대고, 아무이유없이 였던 건 아니라는 점을 이번 호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

고양이 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짧은 길을 길게 돌아왔다. 원래 요약따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단편은 요약할 이유를 더욱더 가질 수 없었다. 내용 요약이 글의 매력을 없앨 테니까. 고딩시절 읽은 허생전 같은 오래된 느낌의 글형식과 달리 내용은 전형적인 현대인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 초반은 허허거리며 읽어나갔다. 괜시리 고어적 느낌을 살린다고 꽥꽥대는 것 같은 ‘불시착한 성도착 외계인의 존재론적 순애보’라는 단어 같은 곳에서 멈춰서서, 이건 호동이가 말했던 ‘정신적 여백의 미’만큼의나 의미없는 단어다! 라고 외쳐보다가도, 과연 이 단어가 의미하는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라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고(‘존재론적’ 순애보가 가장 상상이 안 된다. 역시 나는 관념어에 약하다.), 왜 쥐는 서생원이고 그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는 묘도령일까, 라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상모 TV프로그램만큼의 일관성도 없는 관용어들에 딴지를 걸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이미 이런 식의 낯설게하기 소설은 넷상에서는 넘쳐나는 까닭에 형식이 남달라도 내용이 그저그랬다면 이냥저냥 넘어갔을 터지만 끝판에는 내용조차 낯설어진 모습에 무릎치고 읽었다. 단순한 깨달음뿐이었다면 공허했을 터지만 고양이라는 신묘스런 짐승을 매개체로 해서 마지막도 심심치 않았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양이들이 어디에서 보내는 지 비로소 알 듯 했다’. 이 문장이 끝판의 심심함을 짭짤하게 간해줘서 좋았다. 내용과 제목을 교猫하게 연결해주는 끝판마무리였다.
뱀다리. 나는 여전히 저 ‘미아리에 불시착한 성도착 외계인의 존재론적 순애보’라는 단어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저것이 의미없는 게 아니라 혹시 작가가 쓴 작품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추측 때문이다. 설생도 작가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라는 뱀다리의 생각을 가지고 38호의 이 작가 글을 찬찬히 훑어봤다. 대충 눈치챈 사람은 알겠지만 그래서 므네모시네2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다른 별에서 떨어진 사람.’이라는 문장이었다. 결국 헛다리 짚어서 중반쯤 갔다가 글 내용을 헐레벌떡 다시 붙잡아와야 했지만 나름 능동적 독서였다...라고 자위하고 있다.(챙피해서 무슨 생각하며 읽었는지 말도 못하겠다.) 제목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므네모시네2였지만, 그러나 무식이 자랑이라고 많은 것을 띄엄띄엄 읽어제친 내 머리덕분에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상관관계를 깨닫지 못했다. 제목에 쓰여진 날짜가 의미하는 것처럼 그리 멀지 않는 미래, 혹은 아주 가까운 현재에 대학가에서 인터넷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여주인공 화자는 자신이 똑똑하고 남들이 호들갑 떨 웬만한 일에도 시니컬한 태도를 견지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전형적 지식인이다. 그녀가 그 ‘다른 별에서 떨어진 사람’같은 남자를 만나면서 벌어진 일을 그리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연애소설을 바라진 마라. 내가 ‘낯설게하기’를 떠올렸다니깐. 이건 사랑이야기일까, 아니면 사회비판?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냥 편하게 읽을 순 없었다. 지금 문인정부시대라고 다들 안심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경고성 메시지일까. 아님 잘난 척 하는 여자들에게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라는 경고성 메시지일까. 어쨌든 메시지이긴 한 걸까? 그걸 알려면 이 앞 시리즈를 읽어야한다. 30호 작품을 보자....흠, 이 이야기들은 메시지가 아니다. 바보같은 독자는 이제야 제목을 떠올린다. 바보, 므네모시네, 기억의 여신, 그녀가 능동적인 사회활동을 벌일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것은 단순하고 담담한 술회일 뿐이다. 기억, 사랑에 대한 기억, 혹은 사랑이 될 수 있을 뻔 했던 안타까움에 대한 기억...추억...회한이 되지 못한 아릿한 가슴.
뱀다리. (스포일러)므네모시네2의 부제목을 보자. 마드모아젤 아네모네. 아네모네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다. 그 중에서도 이 소설엔 아도니스에 관련된 쪽이 맞겠지. 아도니스의 피에서 아네모네가 피어났음을 유추해 보면 마드모아젤 아네모네는... 그 남자? 그렇다면.... 남자가 마드모아젤이라면.... 역시 이 이야기는 '성도착‘ 외계인의 존재론적 순애보? ...농담이다.;; S&J가 흘린 피에서 피어난 건 꽃이 아니라 ’여자‘였다. 이제 사랑을 알게 된, 그러나 사랑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38호의 철거인 6628 은 제목이 친근하다. 무슨 대괴수 대 거대로봇의 한판 액션을 그릴 듯한 제목과 달리 낯설게도 이 소설은 (거대로봇에 비하자면) 작은 자동차 한 대의 인생 이야기이다. 39호의 밀실이 우리가 생각했던 밀실에서 몇억광년은 떨어진 진실이었던 것만큼의 의외다. 처음의 기대에 비교하자면, 세상이 두쪽 날만한 큰 사건이 터진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철거인이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 악의 세력을 없애거나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 같은 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동차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기계이고 우리가 아는 로봇에 가장 가까운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리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번호판 역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철거인 6628 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되자 이제 그 흔하디 흔한 자동차는 우리의 기억 속에 익숙한 철인28호처럼 하나의 고유성을 지니게 된다. 소설은 철거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실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쇠철처럼 담담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마지막의 거대한 종결사건만큼의 뜨거운 감정을 품고 화려한 종막을 향해 달린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막판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점까지 힘찬 힘을 지니고 있어 읽는 동안 즐거웠다.
나는 처음에 시작할 때 화두를 낯설게하기로 잡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오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번과 이번 호의 시간의 잔상은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문학 작품의 절반 이상은 사랑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여러 가지로 되풀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랑을 굳이 환상문학에서까지 다뤄야할까... 못할 것은 또 무에냐. 아니, 오히려 이러한 모습이 한층 더 즐거운 문학의 힘이 아니더냐.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고루해진 문학에서, 더욱더 낯설게 표현한 현실의 저 이면을 다룬 환상이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그럴 듯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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