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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일라위

2010.12.11 08:1112.11


  쭉- 쭉- 하고 우는 소리가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공기를 가로질러 날았다. 어떤 새가 그렇게 기묘한 소리로 우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곳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 한번도 그 새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우는 소리로만 듣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이런 전장에서는 흔히 그런 새 소리 가운데는 틀림없이 악마가 숲의 음영에 숨어서 죄많은 영혼들의 죽음을 기뻐하며 웃고 있는 소리가 있으리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보름 후면 열일곱 살이 되는 둘케는 다시 한 번 콧잔등 위에 솟아난 땀방울을 손목으로 훔쳤다. 딱히 그런 미신 같은 얘기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침 삼키는 소리도 총이 내뱉는 함성처럼 울리는 긴장 속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신경 쓰일 만한 일이다.
  쭉- 쭉- 쭉- 쭉. 소리는 잠시도 쉬질 않고, 보이지 않는 새처럼 이리 저리 숲 속을 날아다닌다. 바로 옆에 몸을 숨기고 있는 바둘이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체, 악마나 잡아가라지! 놈들은 총 소리를 즐기는 거야. 빨리 쏘라고 닦달하는 거지.”
“저 놈들이 악마인데, 누가 저 놈들을 잡아가겠어?”
“이단자들의 피는 악마들이나 좋아할껄. 난 됐다.”
  가장 앞에 있던 조장 우대테가 눈쌀을 찌푸리고 돌아보았다. 바둘과 묵이 입을 다물자, 다시 들리는 소리는 쭉- 쭉- 쭉- 쭉- 하고 우는 소리 뿐이다. 우대테는 벌써 스물두살로, 화전민인 가족에서 도망쳐나와 젊은호랑이 부대에 합류한지 육년이나 지났다. 뭔가 불쾌한 일이 있으면 이마에 난 흉터가 먼저 움찔 움찔 씰룩였다. 여러 차례나 분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서 살아 돌아왔고, 정부군 장교의 권총을 탈취해온 일도 있었다.

  약간 간격을 두고 울리던 소리가 별안간 그쳤다.

  둘케는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올려다 보았다.
  어두운 숲 그림자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천상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신의 모습처럼 빛난다. 그러나 과연 신께서는 이 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계실 것인가, 아, 알고 계신다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닥치는 것을, 그리하여 이런 죄를 짓는 것을 다만 내려다 보고만 계시는 것일까. 죄는 그림자처럼, 우리의 머리 위를 무겁고 두터이 덮고 있다. 신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 신께서 외면하시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우리는 그 죄의 밑에서 조심스럽게, 늪 속을 철벅거리는 물쥐처럼 천상의 시선을 피하여 죄가 전능하신 분 앞에서 우리를 숨겨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늘로 빛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하지만 그의 부모를 빼앗아간 자들은 어떨 것인가? 그의 여동생을 빼앗아간 자들은? 부모님은 그와 동생이 아주 어릴 때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의 동생, 일라위의 웃음짓는 얼굴만큼은, 마지막의 그 피얼룩과 더불어 한 시도 잊어본 일이 없다.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지금, 둘케가 공평하시고 기울어짐 없는 판단을 내리시는 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되갚아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땀투성이인 어깨가 저도 모르게 떨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으로 나선 전투이기 때문이 아니다. 혹은, 이 임무가 어쩌면 처음이자 바로 마지막 것이 될지도 모를 만큼 무모해서도 아니다. 그에게서 일라위를 빼앗아간 자들에게 마침내 정당한 심판을, 마땅한 징벌을 내리치기 전의 떨림이다.

  후-우 하고 좀 다른 소리가 울었다. 모습도 보이지 않는 악마 같은 새들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 훨씬 앞쪽에 있던 구르스가 휘파람을 불어 신호해 온 것이다. 조원들은 이제나 저제나 이 신호만 울려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초소로 향하는 트럭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막상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는데도, 그다지 특별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우대테가 나직하게 말했다.
“가자.”

  조원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숨어있던 풀숲에서 무기를 단단히 챙기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수도 없이 교관들에게 맞으면서 훈련받던 때처럼 낮은 자세로 우거진 풀을 헤치고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다가간다. 사정없이 풀들이 쑤석거리고, 앞선 사람의 땀밴 등만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숨을 깊이 들이키고, 다시 깊이 내쉬었다. 풀벌레가 웅웅거리며 귓전을 지나쳤다. 교본대로 숨을 한 번 삼킬 때마다 한 발자국씩 내딛으면. 그 박자대로 옷 아래 맨 폭탄띠가 흔들리며 자꾸 뼈마디에 와 부딫혔다. 그러나 조금도 불평할 마음이 일지는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놈들에게 뜨거운 피와 불로 된 벼락을 뒤집어 씌울 심판이기 때문이다.
우대테가 손을 들어 신호하자 모두 멈춰 섰다. 조원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초소 하나를 공격하는데 한 조 씩, 동시에 일곱 군데를 폭파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 초소에 머무는 정부군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지형적으로 그 일대가 모두 노출되어 있는데다가 무장도 월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부에서는 ‘용맹한 호랑이의 기상으로’ 일곱 개 조를 투입하여 초소들을 무력화시킨 뒤 후발대를 보내 보급창을 탈취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공격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적들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호랑이가 사냥할 때처럼, 조심 조심 풀에 몸을 숨기고 다가간다. 호랑이의 얼룩무늬는 밀림의 음영 아래서 이 사나운 포식자를 거의 눈에 띄지 않게 해 준다. 그 다음은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사납고 치명적인 기습공격이다. 적들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해오기 전에 모조리 숨통을 끊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조원들이 내려다 보고 있는 아래로 트럭이 멈춰 선다. 트럭 운전수는 아주 옛날부터 이쪽 편이었다. 가까운 친척들이 타마후로 몰려 재판도 없이 즉결처분 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군 물품을 넘기는 역할을 해 왔기에 신분증이 있어서 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접선했을 때, 정부군 장교들이 물으면 그냥 웃으면서 자기는 종교니 뭐니 하는 것에 관심없고 돈만 있으면 된다고 넘기지만, 밤마다 복수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꽤 유용한 정보를 많이 넘겨주었기 때문에 믿을 만 하다고 봐도 좋다. 트럭 운전수가 문을 열고 내린다.
“무슨 일이야?”
  반군 세상인 밀림을 아직 빠져나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멈춰 서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부군 장교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트럭이 멀쩡히 달리고 있어도 갑자기 유탄이 날아들까봐 불안할 게다!
“이것 참 죄송해서, 헤헤, 소변이 마려워서 말입죠. 금방 다시 달리겠습니다요.”
“것 참... 서둘러. 여긴 아직 놈들 천지니까. 이런 데는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라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조원들은 벌써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후두두둑 돌이 구르고 덩굴이 끊겼다. 다리에 조금쯤 긁혀 한 두 군데 상채기가 났지만 신경쓸 틈새도 없다. 조원들을 알아보고 운전사가 재빨리 피하자, 우대테가 달려들어 확 조수석 문을 열어젖혔다.
“뭐야? 억!”
  우대테가 그대로 놈의 턱주가리에 한방 먹였다. 다시 한방 주먹이 날아들었을 때는 피 섞인 침과 이빨이 떨어져 나왔다.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겨우 정부군이 정신을 차리자 여섯개의 총구가 빤히 그를 쳐다보고 있다. 놈은 부들부들 떨었다.
“사... 사, 살려 줍쇼! 저 저 저- 살려만 -”
“시끄럽다. 지금부터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 죽인다. 옷을 벗어라.”
“지, 집에는 애새끼 둘하고 아내가 있어서, 커헉!”
  권총 손잡이로 한대 더 후려치고 나자 그제야 옷을 벗기 시작한다. 공포에 질린 눈을 희번덕거리며, 쉴새없이 중얼거리며 군모와 상의를 벗었다.
“어이, 아래쪽은 됐어. 바지까지 갈아입을 필요는 없으니까.”
“에, 예?”
  대답은 총구가 대신 했다. 시체가 되어 널부러지자 조원들이 얼른 들어서 풀숲 속으로 내던진다. 거기서 구더기밥이나 되라지! 우대테가 상의를 갈아입고 군모를 눌러썼다. 트럭 운전수가 그걸 보고 히죽 웃었다.
“꼴 좋다. 나리들, 꼭 제 복수 좀 해 주시요. 내 이리 이리 연명하다 보니 그래도 결국 때가 오는구만. 기필코 놈들을 죄다 지옥으로 쳐넣어야 됩니다요.”
“그건 신께서 심판하시는대로 될 게요.”
  우대테가 차갑게 내뱉는다. 조원들은 재빨리 트럭에 올라탔다. 운전대는 과묵한 주눈이 맡았다. 조수석에 군복 윗도리를 대충 걸친 우대테가 앉았다. 뒤쪽 물품이 실린 칸에 바둘, 묵, 구르스, 둘케가 탔다. 곧 차가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리기 시작하고, 우두커니 선 운전수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이제 운전사는 걸어서 마을까지 돌아가 반군을 만나 차를 빼앗겼다고 신고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놈들이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일 것이다... 아마 이 사건으로 저 운전수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게 될 테지만, 접선 때 다른 곳으로 옮겨갈 만한 돈을 한 뭉치 넘겼으니 알아서 잘 할 게다.

  트럭이 흔들거리면서 제멋대로인 도로를 달리는 동안, 같은 칸에 탄 조원들은 말이 없었다. 이 임무가 죽음으로 직결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란 걸 누구나 아는 탓이다. 더군다나 눈 앞에서 산 사람이 한 순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걸 보고 난 다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이들 가운데 사람 죽는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총격, 죽음, 시체는 그만큼 흔한 것이니까. 다만 자기 손으로 누군가를 시체로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다. 둘케 뿐 아니라, 다른 조원들 모두 제각기 사정은 있지만 모두 정부군을 증오하고 그 피를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은 똑같다. 수용소에서 총살될 처지에 있다가 반군의 공격 덕택에 목숨을 구한 바둘, 소각작전 때 온 가족을 잃은 묵, 어머니가 정부군에게 강간당해 미쳐버린 구르스. 한시도 복수를 잊은 적이 없지만, 매일 밤 꿈꾸던 것을 이제 자기 손으로 직접 이루게 된다면?
  둘케는 우대테처럼 침착하고 무정하게 정부군을 죽여 버릴 자신이 없다. 한순간에 생명을 잃고 툭 쓰러지는 시체의 눈을 보면서, 그의 가슴 속에는 두가지 감정이 회오리쳤다. 하나는 겨우 저 정도로 끝이야? 손가락을 먼저 하나씩 자르고, 손을 자르고, 팔꿈치와 팔뚝을 자르고, 그 다음에 자비롭게 목을 찔러야지! 하고 소리치는, 으르렁대고 날뛰는 미친 불길 같은 생각이다. 또 하나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지막 순간에는 잠시 주저할 것만 같은 이상한 불안감.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버릴 것만 같다. 겁쟁이! 하고 다시 불길이 으르렁대지만, 그가 온통 증오로 충만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 겁 먹은 것도 아니라면, 그가 왜 주저해야 하는 걸까? 그 순간의 주저를 부정해 버리기 위해서, 더 잔혹해지지 못하고 복수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지어야 하는 걸까?

  다른 조원들도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타오르는 증오의 불길에 맞서는 그 불쾌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짐짓 더 잔혹하고 무시무시하게 수군거리고 웃기 시작한다. 주저를 떨쳐버리려고 쉽게 방아쇠를 당기듯, 비웃고, 이를 갈고, 침을 탁 뱉는다. 그들의 뒤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는 그림자 같은 불안에서 애써 눈을 돌린 채.
  응, 아까, 그 놈 봤지. 버르적거리면서 죽는 꼴을. 정말이지 추해. 자기가 지은 죄는 생각도 하질 못하고, 언젠가 죄가 자기를 내리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나봐. 라아다의 개들한테 뭘 더 바라겠어. 전부 꼭 같은 놈들이야. 다 목을 따 버려야지. 그것도 한번에는 안 되고, 좀 더 지긋이, 겁에 질린 눈을 들여다봐 주면서, 서서히 목을 반쯤만 남게 톱질하면 어떨까. 그지경에서도 회개할 생각은 커녕 어떻게든 더러운 목숨을 이어가려고 버둥댈 껄.
  떠들어대는 말소리에 그림자가 서서히 흥미를 보이며 음영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게. 왜 그렇게 빨리 죽여버려야 되지? 좀더 죄의 대가를 치루게 해 줘야 하는데. 그거야 더 많이 죽여야 하니까 그런 게 아니겠어. 전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시간을 끈다고 생각해봐, 그 전에 뒤통수에 총알이 날아오겠다. 어차피 지옥에 떨어져서 세상 끝나는 날까지 탈 거라면, 굳이 우리가 거기다 불을 더해주려고 하는 것보다야 더 많은 놈들을 더 빨리 지옥에 쳐넣는 편이 낫지. 뭐야? 그 딴 식으로 말할 꺼면 어차피 놈들이 언젠가는 심판을 받을 테니까 그때까지 내버려두자고 하지 그래. 야 야, 너무 시끄럽다. 목소리 높이지 마.
  차가 한바탕 털커덕 흔들리는 사이 그림자는 몸을 완전히 조원들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는다. 조원들은 흡사 그림자가 내려다 보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모두의 안에서 불안하게 일렁이는 것이란 대개 모습은 조금씩 달라도 움직이는 것은 한가지다.
  성전에 나서서, 왜 주저하는거지. 참된 알 스라의 백성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인데. 사라져! 사라져! 내가 약해서 그런 거야. 충분히 마음을 다잡지 못해서, 악마가 기어들어오는 거야. 지옥불이 바로 그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거야!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놈들을 죽여 없앨 거라고요. 그러니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세요. 널 위해서 저들을 죽이겠어, 저놈들이 너에게 했던 것의 일백배로 갚아줄 거야. 걱정 마, 난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걸. 지옥에서조차 놈들은 용서받지 못할 거야. 너희를 태우던 불길이 놈들의 살과 뼈를 태우게 해주겠어. 그러니 나 혼자 살아남았다고 그렇게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지 마.
  대개는 눈을 질끈 감고, 귀도 틀어막고, 이를 악문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이들만의 기도이다. 혹은 방아쇠를 당기는데 몰두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잔혹해지거나,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도 좋을게다. 하지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란, 총구에서 시작되는 것을, 그로부터 흘러내리는 피인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목적지에 거의 다 이르렀다. 덜컹거리는 너머로 초소가 보인다. 우대테가 돌아보고 짧게 뱉었다.
“말씀 외에 영광 없도다!”
  다섯 사람이 화답했다. 팽팽한 긴장이 돌았다. 흡사 나무 사이에 설치해놓은,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의 방아쇠에 걸린 철사같다. 뒤 칸에서는 모두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앞 쪽에서는 처음의 검문에 답할 숨을 가다듬는다. 침착하기만 하면 돼! 어차피 저 놈들은 꿈에도 못 꾸고 있을 터이다. 게을러빠진 정부군 놈들, 으레 이 시간에 지나가니깐, 태연스레 대답하기만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보내겠지. 그러고 나면 등 뒤에서 피투성이 심판이 내리치는 거고.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얼른 앞에 선 정부군을 눈이 훑는다. 일곱이나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듣기로는 있어봤자 셋이고 나머진 초소 안에 있을 거랬는데. 차가 흔들리는 건지 심장이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다. 손을 흔들어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주눈이 흘깃 우대테를 보았다. 우대테는 계속 가라는 입모양을 해 보였다. 별 수 없다. 들은 것보다 좀 수가 많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 돌아갈 수도 없지 않는가! 일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작전은 성공해야만 했다. 아니 반드시 성공할 것이었다!
  검문대 앞쪽으로 두섯이 나오면서 차를 세우려했다. 메고 있는 총이 유난스레 위협적으로 보인다.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상한 건가? 아니면 평상시랑 다를 게 없는 건가? 정부군들의 웃는 낯이 멀게 또 가깝게 느껴진다. 정보가 새어나갔을 리 없다. 아니 애초부터 샐 곳도 없다. 그 운전수를 빼고는... 그가 배신했을리 없다... 모든 것은 그들이 속여 넘기고 있는 대로 일 것이다... 그래- 아직 저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죽음이, 심판이 임박했단 걸-
“어이 어이, 수고가 많구만. 신분증 좀 보이시게.”
  공연스레 총구로 이쪽을 휘저어 가리켜 보인다. 군모를 깊히 눌러쓰고 있는 우대테 쪽은 특별히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주눈이 아까 건네받은 신분증을 꺼내려 품으로 손을 넣었다. 바로 그 때 우대테는 초소 쪽에서 열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정부군들이 이쪽으로 급히 오고 있는 것을 언뜻 보았다. 빌어먹을!

“주눈, 밟아!”

  권총이 불을 뿜자 웃는 낯이 당장에 나동그라졌다. 끼이이이이이이이-! 바퀴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제 자리에서 맹렬하게 돈다. 총구들이 철컥 철컥 이 쪽을 향했다. 발포 직전의 총구가 햇빛을 받아 빛난다!
“발사!”
  정부군 쪽에서 고함이 터져나올 때 트럭은 돌진하며 검문대와 정부군 두 놈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와자자작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요란했으나 그 아우성을 총 소리가 날카롭게 뚫고 들어왔다. 딱 따닥 딱딱딱딱! 불 속에서 가지 터지는 소리 같다! 너무 소리가 가벼워서 심지어 우스꽝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주눈이 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운전대 위로 몸을 푹 숙였다.
“주눈, 주누운!”
  하지만 운전수를 염려할 계재가 못 된다. 주눈의 시체가 쓰러지면서 휙 쏠리자 운전대가 돌아가는 통에 트럭도 통째로 길게 끌면서 옆으로 돌아선다. 뒷 칸에서 비명소리가 울렸지만 콰아앙! 소리를 내며 트럭이 넘어지자 온 세상이 흔들리고 우르르르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이 가득하다. 넘어가면서 초소를 정통으로 들이 받았다. 안에 있던 정부군들이 뭐라고 고함치면서 피하지도 못하고 일제히 피곤죽으로 으깨졌다.
  우대테는 뒤집힌 채로 잠긴 문을 열려고 애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발로 쾅 차서 열었다. 열린 위로 씽! 씽! 하고 총알이 지나간다. 우대테가 고개를 숙이고 고함을 질렀다.
“말씀 외에 영광 없도다! 살아있는 녀석들, 트럭 뒤쪽으로 이동해!”
“말씀 외에 영광 없도다!”
  복창하며 셋이 겨우 뛰어내린다. 묵은 차가 뒤집힐 때 그 충격으로 즉사했다. 목이 이상하게 꺾인 채로 방아쇠 한번 당기지 못한 손은 축 늘어져 덜렁거린다. 나머지 셋도 이제나 저제나 신호만 기다리던 중 느닷없이 세상이 뒤집힌 통에 정신이 없다. 잘못 뛰어내린 구르스가 발을 헛딛어 비틀거렸다.
“바보 자식들, 죽을 셈이야! 뒤로 뛰라니까!”
“발사!”
  다시 우대테가 고함을 지르는데 비슷하게 발사 소리가 울렸다. 따다다닥 딱딱딱딱. 구르스가 길게 핏줄기들을 내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얼굴이며 몸뚱이에 뚫린 구멍들이 너무 태연스러워서 소름끼칠 정도다. 피가 꿀럭꿀럭 솟아 땅을 적셨다.

“쏴, 쏴라! 타마후의 이름으로! 타마후! 타마후!”
  우대테가 팔만 내밀어 총을 쏘면서 소리쳤다. 살아남은 둘은 겨우 아슬아슬하게 뒤쪽으로 돌아갔다. 바둘은 용케 무사했지만, 둘케는 다리에 총을 맞아서 더 걸을 수가 없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였다. 정보가 새어나갔고, 정부군은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모조리 그 운전수 놈 탓이다! 우대테는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악마나 잡아가라! 하지만 상황은 악마니 뭐니 따질 틈이 아니다. 다시 소리 질렀다.
“안 쏘고 뭐하나? 타마후의 이름으로!”
“발사!”
  딱닥딱딱딱다닥닥닥. ‘말씀 외에 영광 없도다’는 화답 소리는 총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엄폐물 뒤에서 쏘기 시작하자,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던 정부군 세 놈이 고꾸라진다. 하나는 완전히 늘어진 게 정통으로 맞았으나 나머지 둘은 꿈틀거리면서 기어 도망치려고 했다. 둘케는 자기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는지 못 맞췄는지 알 틈이 없다. 다리에서 시작된 몽롱한 느낌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고,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서도 힘이 점차 빠진다. 바둘은 와들와들 몸을 떠느라 총을 쏘는 둥 마는 둥 하다.
“우대테, 우대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우대테! 죽은 거 아니지? 둘케 피 좀 봐!”
“멍청아, 닥치고 계속 쏴! 젊은호랑이 부대원이라면 한번 죽는 것쯤은 각오해얄 꺼 아냐!”
  우대테가 호통을 쳤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 벌써 조원들의 반을 잃었고, 설령 전부 무사하다 해도 기습이 실패한 이상 작전은 무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퇴각할 수나 있을 터인가? 희망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놈들을 전부 다 죽여 없애는 길 뿐이다! 말도 안 된다 해도 우대테는 거기서 억지로 용기를 끌어올렸다.
“들어, 너희들, 내가 지금 몇 번째 전투인 줄 아냐?”
  히끅, 하고 울음을 참는 소리 같은 게 들려왔지만 우대테는 무시하고 말했다.
“이게 다섯번째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네 번이나 이런 데서 살아 돌아왔단 말이야! 그리고 다섯번째도 살아남을 꺼다! 그럴라면 네 녀석들도 싸워야 돼! 다음번 싸움에서 신참 놈들한테 이게 두번째 전투라고 말해주라고!”

  잠시 양 측의 총소리가 잠잠해졌다. 정부군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긴 했지만, 그래도 목숨은 아까워서 반격하기 시작하자 저마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서로 기회만 엿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세 차례 총알이 빗발치듯 난 다음 완전히 죽어버린 두 시체 옆에서 정부군 하나만 우는 것 같은 묘한 소리를 내면서 버둥거리고 있을 뿐이다.
“진짜야? 이런데도 이길 수 있는거야?”
“물론이지, 그럴라면 정신 똑똑히 차리고 한 놈이라도 더 죽이라고. 자기 죽는 게 무서워서 적과 싸우지 못하면 그게 무슨 호랑이야?”
  하고 말은 했지만 우대테도 난감한 처지이다. 지금 살아남은 셋 중에서 바둘은 울먹거리느라 바쁘고, 둘케는 아무 소리도 없으니 총을 맞았다는 게 생각보다 더 심한 부상일 수도 있다. 그나마 경험이 좀 있는 것은 자기 하나 뿐인데 제대로 된 엄폐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적들을 보고 쏠 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유리창은 다 박살났으나 차체가 우그러지는 바람에 몸을 그리로 빼내는 건 무리다. 부러진 쇳조각을 슬쩍 들어올려 보았더니 당장 휭! 소리가 나며 총알이 날려버렸다. 이래서야 빠져나갈 수도 없고 어쩐다?
“둘케, 너도 내 말 들리냐? 둘케, 둘케!”
  바둘이 둘케를 돌아보았을 때 둘케는 거의 정신을 반쯤 잃은 상태였다. 나직한 신음소리만 새어나왔고, 피는 바짓단을 붉게 물들였다.
“우대테, 둘케가 이상해! 죽은 것 같아!”
“조용히 해, 바둘. 그렇게 떠들어대서야 산 둘케도 죽겠다. 숨은 쉬고 있어? 눈 앞에서 손 흔들면 깜빡거리고?”
  잠깐 조용해지더니 응! 하는 답이 돌아왔다.
“어디 총알을 맞은 거야?”
“다리... 다리 빼고는 딴 데는 안 다친 것 같아.”
  그러면 총상의 고통 때문에 그런 모양이군, 하고 우대테는 생각했다. 자기가 묶여있는 지금, 믿을 수는 없지만 이 둘의 용기를 최대한 북돋아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총상 때문에 실신한 녀석을 깨우는 게 무리일지는 몰라도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그 녀석, 뺨이라도 때려서 깨워! 깨우면 일으킬 수 있어. 셋이서 다시 반격하는거다.”
  찰싹 소리가 났다. 정말 말한 그대로 불이 나게 뺨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일어나! 일어나! 하면서 연달아 그 소리가 들려오자 우대테는 이 상황에서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미쳐 우대테가 웃음을 거두기도 전에, 무언가 날아와 툭 부딫히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세상이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우대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트럭의 기름탱크가 다시 한 번 폭발을 일으키자 후두두두 파편이 쏟아져 날렸다. 수류탄은 단방에 젊은호랑이 조원들이 숨어있던 트럭을 날려버렸다. 몸을 숨기고 있던 정부군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으레 과장되었듯이, 총알비 아래에서 죽어가면서도 저항하는 반군들에 대한 소문은 거의 전설적인 것이었다. 트럭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철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너머로 조심스레,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반쯤 익은 살점들은 무시하고 다가간다. 처음에 트럭이 박살낸 초소 안쪽의 피범벅 속에 비교적 온전한 형체 둘이 널부러져 있었다. 정부군들은 그 주위로 에워싸고 총구를 들이댔다.
  하나는 폭발에 날려가면서 목을 나무조각에 꿰뚫린 모양이었다. 입가에서 피 섞인 침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목에서 골골하는 소리만 나는 게 더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탕! 하는 총소리 한 방에 바둘의 분노도 증오도 혹은 울먹거림도 모조리 다 끝장나고 말았다. 시체는 몇 번 걷어 채여 옆으로 나뒹굴었다. 남은 하나는 다리 한쪽이 부서져 뼈가 살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는데 그 고통 때문인지 헐떡거리면서도 아직 정신은 차리고 있었다. 정부군들은 서로 눈짓했다. 죽은 반군은 말을 못하지만, 살아있는 반군은 칼 끝으로 약간만 간지럽혀 주면 죽은 반군이 되기 전에 몇 가지 더 말해 줄 수 있다.
“너희들 계획은 이미 다 탄로났다. 또 어딜 공격할 거냐?”
  물론 전부 다 탄로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 생활을 청산할 기회로 여긴 운전수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우대테의 작전을 아는대로 고해바쳤을 때, 이 초소는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의 세부 사항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더 위로 올려 보내면 자기들만 피를 흘리고 뒤에서 펜만 굴리고 있는 작자들이 공을 전부 가로챌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반군에게는 다행히도 이런 공훈 싸움 덕에 다른 초소들에는 충분한 추가 병력이 지원되지 않았고 그 쪽을 공격한 조들은 큰 무리 없이 기습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곳의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정말 지독한데요, 이 지경에 되어서 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니.”
“야, 빨리 알고 있는 대로 불어. 안 그러면 정말 빨리 죽여 달라고 빌게 만들테다.”
  발로 툭툭 건드렸지만 몸은 덜렁덜렁 흔들리면서도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다. 피칠갑을 한 채로 눈을 부릅뜨고 허공의 어느 한 점을 응시하는 모습은 흡사 악귀처럼 보인다.
“벌써 죽은 거 아녜요?”
“숨은 쉬고 있잖아. 아직 죽은 건 아냐. 야, 야! 다음 공격은 어디냐고!”

  둘케에게는 을러대는 소리도, 다시 쭉-쭉- 울어대는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위의 모든 것은 폭발과 함께 뒤범벅이 되었고 귓구멍에서 피가 되어 흘러내렸다. 머릿속은 피어나듯 새하얘졌다가 도로 눈 감은 것 같은 검은 색으로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걸죽한 피가 좍 벽에 튀었다가 흘러내리고, 바닥까지 흘러내려선 다시 좍 위로 튀어 오른다. 그럴 때마다 점점 모든 것은 피로 얼룩지고, 피는 점점 지옥처럼 검붉어진다. 세상이 울렁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다. 하지만 토하면 온 내장을 다 쏟아내고 말 것 같아 참는다. 가빠진 숨 끝으로 올라오는 비릿한 내음이 자꾸 코 끝을 간지럽힌다. 둘케의 입가 흙에 뒤섞인 피 위로 맑은 침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그는 죽는 것일까? 성전을 완수하지 못하고, 저들의 머리에 정당한 심판을 뒤집어씌우지 못하고. 둘케는 넘어갈 듯한 호흡 속에서 헐떡거린다.
  모두 죽고 말았어. 바둘도, 묵도, 구르스도, 주눈도, 우대테도, 모두 죽어버렸어. 함께 복수하자고 해 놓고, 다 죽어 버렸어! 울음을 터뜨리고 싶어도 쌔액 쌕 거리는 약한 숨은 울음을 토해낼 힘도 없다. 헐떡거릴 때마다 목 안 쪽으로 칼이 지나다니는 듯 고통이 생생해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져버리면 차라리 편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몸이 갑자기 시체처럼 싸늘하게 식고, 목구멍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 가지 중얼거림이 솟구쳐 올라왔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너덜너덜해진 몸을 경련이 한 두 차례 훑고 지나갔다. 둘케는 더 이상 으스러진 다리도 뒤틀린 갈비뼈도 꺾여 나간 손가락도 느끼지 못한다. 그 소리가 다시 중얼거렸다.
  안 돼. 이대로 죽어서는 안 돼. 다른 녀석들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선 안 돼.
  묵직한 것이 속으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배 안쪽에 툭 떨어지더니, 차가워진 몸 한가운데에서 점점 뜨거워지고 무거워지면서 부풀어 오른다. 둘케는 다시 몸을 떨었다. 느리게 심장이 뛰면서 멈춰버린 혈액순환이 천천히 혈관을 타고 도는 것 같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그것은 피였고, 분노였고, 증오였다. 이미 상처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가고 있지만, 다시금 새로운 분노와 증오가 심장 속에서 고동치며 몸 전체로 뻗어나간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죽어 버리면 되는거야?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고, 성한 곳도 없고, 이대로 숨이 넘어가 버리면? 저 놈들이 내려다 보는대로 무거운 몸은 내버려두고, 편안하게 떠나 버리면 된다고? 다른 녀석들은 죽어버렸지만. 죽어버렸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그래서 나도 아무것도 못한단 말야? 이대로? 신께서 굽어보시는 하늘 아래에서? 오, 주님, 당신이 굽어보시는 하늘 아래에서 말입니까? 예언자여, 당신은 주님 곁에서 지금 제가 죽어가는 걸 보고 계십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여기 누워서 죽어가는 광경을? 주님, 그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제가 이대로 여기서 놈들의 손에 죽어 없어지는 것이?

  심장이 한번 뛸 때마다 점점 반향이 울리면서, 둘케의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목소리는 괴상하게 커진다. 두개골을 진동시키며, 머릿속 가득히 울린다. 이미 고막은 날아가 버리고 피로 가득 찬 침묵뿐이었지만 몸 속을 달리는 소리는 자꾸만 커진다. 어찌나 커졌는지 흡사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묘하게도 쭉쭉거리고 우는 새소리 같기도 하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신께서 계신다면, 내가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거야! 주님, 듣고 계십니까? 당신은 절 이대로 내버려두실 수 없어요. 그러실 리가 없어요. 그건 옳지 않다고요. 예? 주님, 제 기도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여기 비참하게 죽어가는 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예언자여, 당신이 성전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전하신 말씀은 어디 갔나요? 신께서 계신다면, 젠장,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어느새 마음 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온전히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총구 끝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었고, 시체의 멍히 열린 눈동자 속에서 세상을 응시하는 것이었고, 그의 부모님을 죽인 자들의 웃음 속에서도 함께 웃고 있었다. 둘케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총이, 눈동자가, 웃음이 되어 정신없이 중얼거린다.
  옳지 않아! 그럴 순 없어! 그건 공정하지 않아! 이건 성전이고, 나의 복수는 정당한 분노야! 저들은 심판받아 마땅해!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그 시체마저 짓이겨 놓을 테다! 놈들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죽여도 공평하지 않아. 놈들이 내게 먼저 그런 짓을 했으니까, 놈들의 가족들을 그 눈앞에서 죽여 버리고, 그 다음에 놈들을 죽여 없앨 거야! 오, 예언자여, 이것이 나의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 왜 다시 그렇게 말씀해주시지 않으십니까? 예언자님이 제게 그 말씀을 다시 전하도록이요. 네가 맞다고, 네게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당신을 위한 성전에서 죽어가는 순교자에게 말해주세요. 이게 올바른 복수야. 놈들이 받아야 할 몫이고, 내가 놈들에게서 받아낼 대가야! 나의 주님은 내게 그걸 허락해 주셨어. 그렇지 못하면 그건 나의 신이 아니야! 옳은 신이 아니야!
  분노는 미치도록 강하고, 심장은 이를 악물고 피는 달린다. 쿨럭 하고 둘케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침을 토해냈다. 정부군들이 그의 주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윙윙 울렸다.
  나의 신은 심판하고 벌하시는 분이셔! 마땅한 복수를 내리는 분이셔!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계시지. 그래서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성전이시고, 심판이십니다. 놈들을 당신의 정의 앞에 바치겠습니다. 나의 주님과, 나의 정의 앞에요. 주님, 제가 당신의 손에 쥐인 낫이 되겠습니다. 저를 휘둘러 저들을 치세요. 저를 움켜쥐고 저들의 무르익은 죄를 수확하셔서 지옥 속으로 던져 넣으세요. 주님께서는, 나의 주님께서는 저놈들을 손수 쳐 죽이시고, 영원토록 지옥불 속에서 고통 받게 하실 거야!
  피가 점점 빨리 돌면서 관자놀이가 윙윙 울린다. 둘케는 끓어오르는 증오 속에서 그대로 돌아버릴 것 같다. 목소리는 둘케가 되고, 둘케는 목소리가 되어 외친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개자식들! 개자식들, 개만도 못한 자식들, 지옥에나 가 버려! 네 놈들의 죄와 같이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져라! 죽어! 개자식들, 죽어! 죽어! 죽어! 난 신이 뭐라고 하실지 알고 있어. 죽어! 신께선 지금 나처럼 너희에게 말씀하실 거야. 너희 눈을 들여다보면서, 죽으라고,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영원히 고통 받으라고 말씀하실 거야. 신께서 너희를 저주하실 거야! 지옥불 속에서 불태우실 거야! 너희가 고통에 울부짖는 광경을, 너희가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애걸하는 광경을 내려다 보시면서,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그 안에서 너희가 죄 값을 치르게 하실 거야!

  둘케는 거의 초인적인 힘을 내어, 손을 조금 움직였다. 손가락이 조끼 아래에 맨 폭탄띠의 고리에 걸린다. 곧 팔이 다시 온 세상에 가득한 죄의 무게라도 되는 것처럼 무거워진다. 중력의 악마가 잡아당기는 대로 팔은 서서히 땅으로 떨어졌다. 그 동안 둘케의 마음 속에서 재빠르게 목소리가 깔깔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아나고, 갑자기 무섭도록 맑아졌다. 모든 게 명료해지고, 이전으로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다. 젊은호랑이가 되기 전... 아직은 그에게 복수 말고 무엇인가가 남아 있던 전으로. 웃는 모습을, 그 말소리, 혹은 걱정스러운 듯 들여다보는 눈망울도.

‘오빠, 괜찮아?’

  정부군들은 뒤늦게 둘케의 손가락에 걸린 고리를 알아본다. 고함지르면서 앞다투어 달아나는 시간은 멀게만 느껴진다. 둘케의 입이 약간 움직였다.

“일라위.”

  곧 화염으로 된 악마가 폭발하며, 둘케와 무너진 초소와 아우성치는 정부군과 아무 말 않는 시체들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둘케의 눈에서 떨어진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은 맹렬하게 부풀어오르는 불길의 지옥 속에서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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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는 다른 장편의 세계관으로 쓴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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