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트를 걷어내며 탁자를 손으로 더듬었다. 담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그것을 깨달은 남자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남자는 입맛을 다시다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깨어 있었던 듯 눈도 뜨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대체 어디 있었지? 남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불을 붙이자 남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남자는 담배 연기를 싫어했다.
"안돼."
남자가 젖가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여자가 담배를 끄려 했다.
"아니. 그거 말고."
"응? 그럼."
"결혼 말이야. 밤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어."
지난 밤에 여자는 둘 모두 절정에 달했을 때 남자에게 청혼을 했다. 나름대로 수를 쓴 것이지만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남자는 소설가였다. 글을 쓰는 부류 중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 어디 있던가.
"왜?"
당연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금방 대답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맨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쎄. 끌려 다니는 데 지쳤다고 할까."
"정말?"
여자는 흘러내린 단발머리를 쓸어넘겼다. 손목을 가로지른 상처가 여럿 보였다. 죽을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죽고 싶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실 여자가 생을 지향했는지 아니면 지양했는지는 남자에게 항상 의문이었다.
"병원에 들락거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잖아? 대체 내가 언제까지 고용인이 데메롤을 먹는지까지 신경써야 해?"
"고용인?"
여자는 '고용인'이란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더블의 더블은 되어 보이는 침대에 누워 1제곱미터에 10만원이 넘는 천장 마감재를 바라보며.
"그래. 난 밥해주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타이핑하고 가끔 다리까지 벌려주는 가정부야. 내가 잊고 있었네. 주제 넘게 결혼이라니. 미안해."
"당신이 싫은 건 아니야."
남자의 어투는 꽤 누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는 모니터에 나타난 텍스트를 좇고 있었다.
"난 사람과는 살 수가 없어. 모르겠어? 당신을 고용한 건 내 사막을 쾌적하게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야. 당신을 보살피고 당신이 보살피는 동안 끈적끈적하고 눅눅해진 내 집을 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소설을 못 쓰고 있다는 걸 알잖아. 당신을 병원에 업고 간 이후로 한 줄도 못 썼어.
당신은 재능이 없어. 알잖아? 당신이 내 소설을 좋아한다구? 돈이 아니라? 이 빌어먹을 집이 아니라? 내 차가 아니라? 상처받은 개들끼리 핥아주는 건 그만 두자구. 내 취향이 아니야. 알잖아?"
남자의 말에는 억양이 없었다. 마치 국어책을 읽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남자는 모니터에 나타난 글자를 그저 읽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밖으로 나가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울고 있었다. 여자가 떠나간 후에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그는 울었다. 그가 한 짓은 스무살 짜리 어린애나 하는 것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남자는 소설이 써지자 비로소 여자가 떠났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벌써 일주일 동안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남자는 소설을 쓸 수 있었지만 언제나 같은 내용이었다. 그걸 깨달은 건 전화기를 부순 밤이었다. 문득 생각하니 전화기를 설치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자가 음독을 했는데도 119를 부를 전화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자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자살 중독자인 줄 알았다면, 손목에 찬 두꺼운 시계를 의심할 줄 알았다면 결코 그녀를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자는 전화를 설치하는 편이 번거로움을 더는 일임을 알았다. 사람에게 적응하는 것보다 전화에 적응하는 것이 나았다.
남자의 소설은 한동안 맴돌이를 계속했다. 썼다가 지웠고 지우다가도 다시 썼다. 남자의 방은 일회용 용기의 산맥을 융기시켰다. 수염이 돋아났고 눈물이 말랐다. 충혈된 눈에서 대신 핏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어느날 새벽이 밝아올 때 소설가는 마침내 소설을 끝냈다. [소설가의 사랑]이라 이름 지은 소품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기다릴게. 돌아와.
사랑해.
"안돼."
남자가 젖가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여자가 담배를 끄려 했다.
"아니. 그거 말고."
"응? 그럼."
"결혼 말이야. 밤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어."
지난 밤에 여자는 둘 모두 절정에 달했을 때 남자에게 청혼을 했다. 나름대로 수를 쓴 것이지만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남자는 소설가였다. 글을 쓰는 부류 중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 어디 있던가.
"왜?"
당연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금방 대답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맨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쎄. 끌려 다니는 데 지쳤다고 할까."
"정말?"
여자는 흘러내린 단발머리를 쓸어넘겼다. 손목을 가로지른 상처가 여럿 보였다. 죽을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죽고 싶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실 여자가 생을 지향했는지 아니면 지양했는지는 남자에게 항상 의문이었다.
"병원에 들락거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잖아? 대체 내가 언제까지 고용인이 데메롤을 먹는지까지 신경써야 해?"
"고용인?"
여자는 '고용인'이란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더블의 더블은 되어 보이는 침대에 누워 1제곱미터에 10만원이 넘는 천장 마감재를 바라보며.
"그래. 난 밥해주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타이핑하고 가끔 다리까지 벌려주는 가정부야. 내가 잊고 있었네. 주제 넘게 결혼이라니. 미안해."
"당신이 싫은 건 아니야."
남자의 어투는 꽤 누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는 모니터에 나타난 텍스트를 좇고 있었다.
"난 사람과는 살 수가 없어. 모르겠어? 당신을 고용한 건 내 사막을 쾌적하게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야. 당신을 보살피고 당신이 보살피는 동안 끈적끈적하고 눅눅해진 내 집을 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소설을 못 쓰고 있다는 걸 알잖아. 당신을 병원에 업고 간 이후로 한 줄도 못 썼어.
당신은 재능이 없어. 알잖아? 당신이 내 소설을 좋아한다구? 돈이 아니라? 이 빌어먹을 집이 아니라? 내 차가 아니라? 상처받은 개들끼리 핥아주는 건 그만 두자구. 내 취향이 아니야. 알잖아?"
남자의 말에는 억양이 없었다. 마치 국어책을 읽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남자는 모니터에 나타난 글자를 그저 읽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밖으로 나가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울고 있었다. 여자가 떠나간 후에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그는 울었다. 그가 한 짓은 스무살 짜리 어린애나 하는 것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남자는 소설이 써지자 비로소 여자가 떠났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벌써 일주일 동안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남자는 소설을 쓸 수 있었지만 언제나 같은 내용이었다. 그걸 깨달은 건 전화기를 부순 밤이었다. 문득 생각하니 전화기를 설치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자가 음독을 했는데도 119를 부를 전화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자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자살 중독자인 줄 알았다면, 손목에 찬 두꺼운 시계를 의심할 줄 알았다면 결코 그녀를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자는 전화를 설치하는 편이 번거로움을 더는 일임을 알았다. 사람에게 적응하는 것보다 전화에 적응하는 것이 나았다.
남자의 소설은 한동안 맴돌이를 계속했다. 썼다가 지웠고 지우다가도 다시 썼다. 남자의 방은 일회용 용기의 산맥을 융기시켰다. 수염이 돋아났고 눈물이 말랐다. 충혈된 눈에서 대신 핏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어느날 새벽이 밝아올 때 소설가는 마침내 소설을 끝냈다. [소설가의 사랑]이라 이름 지은 소품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기다릴게. 돌아와.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