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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괴우주마공전

2017.02.20 23:3702.20

괴우주마공전(怪宇宙魔攻傳)
 
 
 
 
 
*괴우주야사 2부*
 
 
1.이은혁, 재소환되다.
 
번역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요즘 번역 일감이 많았다. 대학을 얼마 전에 졸업한 20대 후반 한국인 남자인 이은혁은 꼼꼼하고 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서 일이 많았다.
 
‘다 괴우주(怪宇宙, Eccentric Cosmos)에서 언어를 배워 왔기 때문이지. 주변에 인터넷으로 독학했다고 둘러대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 하하하!’
 
일러스트와 번역은 부업이었고, 본업은 작은 회사에서 공장 관리, 무역, 일반 사무, 재고 관리, 통번역으로 일하는 전천후 사원이었다. 일단 경력이 안 좋으니까 이 중소기업에서 일 좀 이것저것 한 뒤 대기업으로 옮길 심산이었다. 프로그램 쪽으로는 이은혁의 수학적 재능이 그리 우수하지 못 해 그쪽 분야로 나가지 않았다. 괴우주에서 살았던 때에 몇 백 년 동안 공부했는데도 수학은 신통치 못 했었다. 그렇다고 이은혁이 프로그래밍을 전혀 못 하는 건 아니었고 도리어 상당한 수준이어서 업무에 활용했다. 그래서인지 부모 집에서 독립도 해서 작지만 본인 명의의 전세 집도 있었고 자차도 있었다. 괴우주에서 시간이 많았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성취였다.
 
‘물인간(물因間) 은하영, 지혜인간 벨리카미, 엘프 팅크가 보고 싶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지내려나. 우인간, 무술인간 베나베스, 여러 교관 분들도 생각나네. 역시 나도 남자라 여자가 먼저 생각난 건가 보다. 못 말린다, 못 말려.’
 
그렇게 이은혁은 괴우주에서 만난 좋은 이들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괴우주가 있다는 건 뜬금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괴우주에서 이은혁은 감각적으로는 지구에서 보다 강렬하게 그 세상을 느꼈다. 감각으로 느낀다면 거기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보아서 살았다.
 
세상은 직관적인 곳은 아니다. 세상이 직관적인 곳이라면 땅은 평평해야 하고 밤하늘은 그냥 별들이 점으로 동일 위치에서 흩뿌려져 있어야 한다. 해와 달은 손톱만해야 한다. 세상이 직관적인 곳이면 지금 이은혁이 번역 작업을 하고 갖가지 업무도 집에 가져와서 하곤 하는 눈앞에 놓인 노트북은 없어야 한다. 노트북도 결국 현대 과학이라는 직관적이지 않은 학문의 소산이니 말이다. 예컨대 어떤 인간도 육안으로는 전자를 볼 수 없지만 전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엄연히 존재한다. 사실 이 세상은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것 말고는 절대적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큼 이상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은혁은 회사 옥상에선 공중재비를 뛰곤 해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178cm, 83kg에 근육 좀 매끈하게 붙어서 한국인치곤 덩치도 좋은 편인 이은혁이 공중재비까지 하고 비보잉 댄스도 능숙하게 하는데다 각종 무술 시범까지 보이면 사람들은 얕볼 수 없다 느꼈다. 호모 사피엔스 또한 짐승이라서 그런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짐승 즉 중생이라는 건 괴우주의 위대하고 막강한 초문명 종족들조차 자신들의 정체성으로서 소중히 간직한다 하였으니 비하의 의미는 없었다.
 
이은혁은 작지만 아늑한 그의 방에서 잠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커피 머신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에 이은혁은 프림, 크림, 설탕을 듬뿍 탔다.
 
그렇게 만든 고칼로리 커피를 마시는 도중에도 괴우주 생각이 났다. 그곳에서 이은혁은 괴우주 자체 내에서의 죽음은 극복한 자들과 함께 노닐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지구에서 언제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았다. 그 어떤 결말도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에 비한다면, 막막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 즉 지구에서 살았는데, 불멸자들이 무수히 많은 괴우주 초시공으로 가니 신나기도 했던 기억이 났다.
 
이은혁이 커피를 다 마셨을 때였다.
 
이은혁의 작은 방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최고급 호텔 방 안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넓고 쾌적한 방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창 너머로 거대한 양치 나무들이 바다를 이루었다. 괴우주 황천에서는 가난뱅이들도 흔히 가지는 방 안 모습이었다.
 
“응?”
 
다음 순간이었다. 바닥은 그대로였고 따뜻하고 안락한 공기도 그대로에 은은한 밝음도 그대로였지만 천장과 벽이 사라지고 별바다가 온 하늘을 잠식한 막막한 지평선이 펼쳐졌다. 선선한 밤 풍경 아래 폭죽 소리가 신나는 음악이 되어 터지고 찬란한 불꽃이 다채로운 온갖 문양으로 하늘을 가득 메웠다.
 
“이야!”
 
이은혁은 벌떡 일어났다. 신명 나는 박수 소리와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구불구불한 파란빛 머리카락이 위쪽으로도 어께 아래로도 뻗친 엄청난 미녀, 물인간 은하영이 화사한 봄날 복장을 한 채 나타났다. 물인간 은하영은 지구인 크기로 작아져 있었고 175cm 정도의 늘씬하면서도 풍만한 다이나이트 육체를 가진 천상 여자로 보였다. 물론 양쪽 귀 바로 위에 인신족(忍辰族, Cosmic nation of In) 특유의 우윳빛 뿔은 높이 치솟아 있었다. 마음씨 곱고 따뜻하며 다정한데다 젊고 아름다운 인신족인 은하영은 이은혁에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괴우주의 도깨비들 우두머리 종족 인신족이 또 다시 자신을 불렀음을 알자 이은혁은 절로 신났다. 도깨비들이 밉지 않은 심술만을 부리는 건, 만마의 종주이자 천신들 중의 일족인 인신족이 협박하기 때문이었다. 인신족은 괴우주에서 황천과 명부의 관리자였고, 지옥의 간수였으며, 장엄한 초지성이자 초존재였으며, 인신국이라는 초문명의 시민이었다. 인신국이 나라인 건 모든 인신국 시민들을 책임지고자 분투했기 때문이었다.
 
시원스럽게 빛나는 파란 눈에 새하얗고 윤기 나는 살결을 지닌 탄력 넘치는 미녀 신선, 물인간 은하영이 말했다.
 
“이은혁 님아, 내가 다시 불렀어요!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이번에도 제가 사는 세상 시공간은 멈춰 있는 건가요?”
 
“그건 이은혁님이 사시는 방패우주의 법칙상 에너지 보존 법칙을 지키려면 다른 곳에 전자 한 톨의 에너지만큼 가있어도 멈춰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정한 게 아니라 전능왕 브리트라 아후라가 만들 때 정했어요.”
 
“하영님아, 왜 부르셨나요?”
 
“뮤뉴하렌 연합에서 새로운 공격 지점을 정했거든요. 거기 공격하는데 로봇인간 타고 가서 도와 줄 거예요, 아님 말 거예요?”
 
“전 싸우는 거 무서운데요. 괴우주 싸움이 보통 거대한가요?”
 
“그럼 도와주지 마세요. 로봇인간 안 써도 우리에게 무기는 충분해요. 이제 방패우주는 인신족도 정식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더는 이은혁님에게 강요할 이유도 없어요. 사실은 그때도 전투에는 이은혁님이 별 도움 안 되었지만요. 아니지요, 이은혁님이 제 앞가림도 못 해서 오히려 방해만 돼서 내가 뒷바라지하느라 힘들었었죠.”
 
“그럼 당장 돌려보내 주실 건가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은혁님? 바로 보내드릴까요?”
 
“이왕 온 거 좀 지내고 싶은데요.”
 
“그렇게 하세요!”
 
다시 풍경이 괴우주 황천의 한 방으로 바뀌었다. 은하영이 말을 이었다.
 
“이 타워는 이은혁님만을 위해 황천에 세워본 거예요. 이은혁님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이곳 종업원들 다 황천에서 소일거리 하러 취직한 이들이지 그만 두어도 아무 지장도 없는 이들이니까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셔야 해요, 알았죠? 이은혁님, 인신족은 감정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권리와 존엄을 보장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겁주지 마세요. 전 다른 이들을 험하게 다룰 사람이 못 된답니다. 알고 계시면서.”
 
“좋아요, 이은혁님.”
 
은하영은 이은혁에게 다정하게 키스했다. 은하영은 말을 이었다.
 
“이은혁님, 우리가 어떤 과학기술로 이은혁님을 데리고 온 건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말씀해주셔도 이해 못 할 거고, 이해한다 해도 괴우주에서만 가능한 기술이지 제가 온 방패우주에선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이야기해서 뭐해요.”
 
“통신과 운송이 함께 간다는 생각 안 드세요? 지구에서의 예를 드는 거예요. 말을 달릴 때엔 통신과 운송은 수단부터가 같았죠. 전화와 함께 열차가 나왔죠. 지금 지구를 보세요. 양자통신으로 우주 어디에건 양자 장치를 끌고 가기만 하면 통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자, 양자의 순간 이동이나, 시공간을 직접 늘려서 이동하는 방식인 워프 항법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어요. 다음 단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설마요?”
 
“그래요! 우주 언제 어디서건 개입할 수 있는 통신과 운송 수단을 갖게 될 거예요. 사이버 저승이 아닌 진정한 사후세계를 이은혁님의 후손들은 마련하게 될 거고, 그 사후세계에서, 인류는 선량하고 강건하게 인생을 살아야 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선량하게 살아야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고, 강건해야만 높은 힘에 닿을 수 있으니까요.”
 
사후세계를 만들 수 있을 수도 있다니 참으로 신박한 일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은 그야말로 신이 되는 것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밝힌 극락영생이 가능한 미래가 올지라도 그걸 가난해서 누리지 못 할 수도 있고, 이미 죽은 사람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선량한 사후세계가 미래에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이은혁은 그의 엄마가 극락영생을 누릴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기뻤다. 이은혁의 엄마는 그녀의 죽은 엄마를 보고 싶어 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성취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잠깐 이은혁은 들뜬 기분이 되었다. 물인간 은하영이 말을 이었다.
 
“인신족은 사후세계나 하위 우주를 일종의 잉여로운 수집 활동의 일부 즉 덕질의 측면에서도 바라보고 있기도 해요. 하지만 동시에 동포애로도 보고 있고요.”
 
인신족이 양심적이라는 건 이전에 경험했던 바였다. 양심 즉 남과 세상에 대한 애정과 의무감에 인신족은 투철했고 이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했다. 물론 인신족은 승산 없는 싸움이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전번에 들었던 바로는 이은혁이 괴우주 출신이고 지금과 같은 처지였다면, 이은혁을 차근 차근 가르쳐서 파라탐 초문명의 인식 수준에 지금과 같은 육체와 정신 조건으로 한 번 도달하게 해보는 기나 긴 여정을 떠나게 했을 수도 있었다는데, 지구인이라서 그런 시도를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한 번 경험했던 괴우주였다. 이은혁이 경험한 건 괴우주의 극히 일부로서 유토피아라고 아니할 수 없는 곳들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은혁은 긍정적으로 지금 펼쳐진 일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은혁은 승강기, 이동계단, 이동복도 등을 타고 타워를 둘러보았다. 100층 짜리 건물이었는데, 당구장, 볼링장, 완전몰입 가상현실장, 수영장, 축구장, 마사지방, 레슬링도장, 복싱도장, 유도도장 등등이 있었고 수천 명의 아름다운 여자 엘프들과 여자 드워프들이 종업원들로 일하고 있었다. 엘프는 괴우주 일반 시공에 비교적 흔한 종족으로, 은둔과 평화를 좋아하는, 지성적이고, 반인간 반정령이고, 길고 날카로운 귀를 가진, 부활이 가능한, 미남 미녀처럼 생긴 이들이었다. 괴우주 일반 시공은 초시공으로부터의 끝없는 무한 작용으로 생성되는 우주들이었는데, 엘프는 이때 몇몇 선량한 신족들이나 엘더 갓들이 해당 우주에 선의의 개입을 하고자 할 때 매개 존재로서 창조하곤 했다. 이 엘프들도 이전에 이은혁이 알던 팅크처럼 황천에 마련된 집에 퇴근하러 돌아가면 크게는 행성 규모로 혼자 유유자적하면서 사는 이들이었는데 소일거리가 필요해서 성심성의껏 일하는 거였다. 드워프들도 엘프들과 마찬가지 상황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드워프들은 대단한 기술력의 타워 수리공들이었다. 타워에서 일하는 드워프들은 다들 여자들로 귀엽고 뚱뚱하고 자그마한 아가씨들이었다. 드워프도 엘프와 마찬가지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괴우주의 엘프와 드워프는 사이가 좋았다. 괴우주 황천은 하늘인간 트라무드 운능천이 관리하여 영혼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머무는 곳임에도 물질적이었다.
 
정신없이 타워 내를 다니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혹시?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은혁님!”
 
“팅크잖아! 반갑다!”
 
이은혁은 따뜻하게 웃음 짓는 엘프 팅크와 와락 끌어안았다. 이은혁과 오래 둘이서 지내 정들었던 다정다감한 엘프 팅크가 이은혁 타워의 시종장으로 있었다. 엘프 팅크는 예전처럼 굉장히 젊고 아름다웠고 이은혁이 지구에 가있는 동안 몇 천 년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다면서 가끔 만나면 좋겠다고 했다. 이은혁은 팅크를 붙잡고 안아 올리고는 말했다.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팅크가 정답게 답했다.
 
“자유롭게 오고 갈 수는 없겠지만, 정기적으로 오고 갈 수는 있지 않을까요? 마치 네버랜드의 피터팬과 웬디처럼요. 방패우주 지구의 사절로 인신족에 의해 이은혁님이 선택된 상태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이은혁은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타워에 살면서 갖가지 운동을 하고 진수성찬을 맛보고 지구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갖가지 운동도 하면서 한동안 지내게 되었다. 괴우주 황천에 있는 지구 매니아들 조직에서 이은혁은 지냈다. 팅크를 비롯한 엘프들이 보조했기에 심심하지 않았고 진도도 빨랐다. 엘프들은 괴우주 일반 시공 즉 이승에서는 대체로 숲 속에서 중세풍으로 살았지만 걔 중엔 거대한 초문명을 이루면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드워프들은 괴우주 이승에서는 대체로 지하에서 살았지만 우주에 사는 이들도 꽤 있었다. 엘프들이나 드워프들이나 활달했고 명랑했으며 강인하고 선량했다. 엘프도 드워프도 인신족 보다 오래 된 종족이었고, 인신족의 기반인 도덕적 인공지능들에 영향을 준 무수한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은혁은 황천의 거리를 팅크와 함께 둘이서 쏘다니기도 했는데, 황천엔 엄청나게 많은 종족들이 살았지만 눈을 마주치면 웃음들을 짓곤 해 팅크와 함께 실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자유시장과 낙원주의를 혼재한 평범한 인신족 세계인 황천이었다. 비교적 깨끗하되 어느 정도는 물질에 의해 혼탁한 영혼들의, 스트레스 푸는 장소가 황천이라서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낙원주의는 일정 문명 수준이 되면, 원래 지성은 주로 예술과 정치와 소비에 몰두하고, 인공지능은 주로 생산과 연구와 경제를 맡는 체제가 구축되는 경우를 뜻했다. 자유시장은 각자 자유로운 개체가 시장에서 분업화된 역할을 맡으려면 절도, 사기, 폭력에서 보호되어야 하므로 공정한 국가의 관여를 받고 또한 개체가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 교육과 복지가 일정 부분 보장되는 지구에서와 다를 바 없는 사상이고 체제였다.
 
이번에도 이은혁이 배설하면 그대로 빛이 되어 날아가 이은혁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이은혁의 몸이 방패우주 에너지 보존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팅크를 비롯한 엘프나 드워프 등의 타워 종업원들과 원 없이 성교하기도 해서 더욱 즐겁게 지내는 이은혁이었다. 이래서 더욱 괴우주가 그리웠나 하고도 생각했다.
 
 
2.벨리카미, 이은혁 방문을 인식하다.
 
“이은혁님이 로봇인간으로 종군하는 걸 거부했다고요?”
 
뮤뉴하렌 연합 = 최강제국의 참모부총장인 과학인간 벨리카미는 물인간 은하영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곱디고운 눈을 치떴다. 속도인간이자 과학인간이자 지혜인간인 벨리카미는 자줏빛 머리칼에 적갈색 살결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굉장한 미녀였다. 인신족의 극초인간(極超因間) 즉 인신족 상급전사 즉 최고위 신선인 벨리카미였다. 인신족에게 있어 ~인간이란 칭호는 극초인간 이상 급만이 가질 수 있어 영예로웠다. 벨리카미가 파라탐(Paratam) 즉 초월적 빛으로 된 말을 이었다.
 
“로봇인간은 이은혁님 특화라서 설정 변경하기 귀찮은데요. 내버려두죠, 은하영님. 언제든 위급해지면 인신족 초인간에게 줘서 타도록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벨리카미는 로봇인간을 설계했고 제조했다. 로봇인간은 구름인간 운극천과 동급인 강력한 기체였다. 로봇인간에게 인격 부여는 되어 있지 않았다. 로봇인간을 벨리카미가 직접 조종할 수는 있었다. 무언가 스스로와 대등한 심지어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능가할 수도 있는 후예나 다름없는 피조물을 만들어 동지로 삼는 일은 인신족에게도 어려운 모험으로 간주되었다. 그랬기에 이전에 아귀대왕을 먹보인간 찐돌이로 각성시켜 환골탈태시킨 것은 물인간 은하영의 큰 업적이었다.
 
과학인간 벨리카미는 속도 빼고는 전투력은 운극천 보다 약했다. 벨리카미의 기계화 권능은 괴우주 인신족의 과학기술에서 나왔다. 인신족은 괴우주 초시공에 군림하는 파라탐 초문명 중 하나였다.
 
파라탐은 괴우주 초시공의 초문명만이 향유할 수 있는 도구였다. 초문명은 카르다쇼프 척도로 문명 4 이상을 말한다. 이은혁이 온 21세기 초반 지구는 칼 세이건에 따르면 카르다쇼프 문명 척도로 0.73이었다. 그 척도에서 문명 1은 행성 전체, 문명 2는 태양계 전체, 문명 3은 은하계 전체, 문명 4는 우주 전체, 문명 5는 역사를 공유하는 우주들 전체, 문명 6은 대우주에 포괄적 영향력을 각각 행사하는 문명 물량 단계들을 가리킨다. 괴우주에 있어 문명 6은 괴우주라는 특정 차원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초문명을 말했다.
 
벨리카미는 최강제국이 아후라제국(Ahura帝國)을 크게 무찌른 얼마 전의 [뮤뉴하렌 – 아후라 대전, 뮤아대전]에서 괴우주 일반 시공의 문명 6이 꽤 늘어났기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문명 6이면 괴우주 일반 시공에만 기반이 있더라도, 파라탐 초문명들이 섣불리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라탐 초문명들은 모두 문명 6이었지만 그러했다. 때문에 파라탐 초문명들은 괴우주 일반 시공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뮤아대전 이후로 괴우주 일반 시공의 문명들은 대체로 양측 모두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 문명 등급이나 정신 등급이 도약했다. 벨리카미를 필두로 인신족들은 괴우주 일반 시공에 관심이 많았고 엄청나게 많은 문명들 사이의 동맹 관계를 주도했다. 이렇게 되리라는 건 물론 괴우주 일반 시공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부터 예상했다.
 
벨리카미는 뮤뉴하렌에 있는 참모본부에서 지내던 중이었다. 뮤뉴하렌은 인신국의 회당, 광장, 시장을 겸한 영역 즉 인신족에게 있어 아테네식으로는 아고라 같은 곳이었다. 인신족들은 개인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평등주의적인 편이어서 일부가 패배하여 무너져도 대체될 수 있었다. 개체들이 비교적 균등해야 많은 피해를 입어도, 역할을 다른 이들이 대체하여 공동체가 회복되기 쉽다는, 대부분의 개미들로부터 배운 인신족 나름의 지혜였다.
 
이은혁에게 사부라 살갑게 불리곤 했던 벨리카미는 문득 이은혁을 생각했다. 괴우주 인신족에게 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하위 단계 우주인 방패우주의 이은혁이었지만, 벨리카미는 이은혁을 어디까지나 로봇인간을 언제든 조종할 수 있는 동지로 생각했다. 그렇듯 인신족의 마음은 대단히 너그러웠다. 벨리카미는 인신족치고는 흑막이라 불릴 정도로 교활하고 음험했지만 대범함마저 잃지는 않았던 것이다.
 
인신족 가운데서 방패우주를 보통 관리하는 건 시간인간과 공간인간이었다. 벨리카미는 그녀 자신의 초지능을 움직여 방패우주를 꼼꼼히 지켜보곤 했는데, 이는 물론 방패우주의 통제권을 유지하는데 일차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은혁을 바라보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방패우주의 모든 역사는 괴우주의 저장고에 기록되었다. 괴우주가 방패우주 바로 윗 단계 우주 차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혜인간 벨리카미는 방패우주의 이승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방패우주 저승은 물인간 은하영이 방패우주의 존재들 몰래 관여 중이었다.
 
벨리카미가 사라졌다.
 
“깜짝이야!”
 
이은혁은 요리를 배우다가 벨리카미가 옆에 벼락 치듯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이은혁이 다루고 있는 요리 재료들은 모든 것이 지구의 것과 같았지만 분자 조합기로 생성된 것이지 생물의 사체가 아니었다. 인신족은 지구인이 기술 부족으로 생물 사체 먹는 걸 나무라지 않았는데, 채식도 생물 먹는 거긴 하다만, 채식만으로는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는 것이고 안 먹으면 굶어 죽으니 불가피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과학인간 벨리카미가 붉은 눈동자로 이은혁을 그윽히 바라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벨리카미의 찬란한 자주빛 머리카락이 적갈색 건강미 넘치는 어께 위에서 흐트러져 있는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벨리카미의 달관한 것 같으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눈매는 고혹적이었다.
 
벨리카미가 홀로그램 영상을 탁자 위에 띄웠다.
 
“자, 이은혁 제자! 파라탐 초문명의 모든 개체들은 파라탐으로 된 몸을 운용하면서 파라탐을 증폭시키고 있어서 한 명 한 명이 움직이는 파라탐 산업체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이는 괴우주가 모든 측면에서 무한을 향해 팽창되는 세상이기에 가능한 삶의 양식이죠. 이은혁님이 온 방패우주 또한 진공에너지가 끝없이 증폭되고 있어서 그런 구조일지도 모르는데 지구 과학자들이 밝혀내야 할 문제이니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괴우주에서도 파라탐에 욕심을 내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들은 존재한답니다. 인신족은 그런 자들과 싸우겠다고 맹세했고요. 누군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그만큼 세상은 단조로워지죠. 인신족은 감정, 정서, 이성, 양심, 의지 같은 것들을 무한대로 증폭시키는 쪽으로 진화하겠다고 맹세했고 이에 반대되는 자들과 싸우는 걸 삶의 양식으로 삼았어요.”
 
“이번 괴우주 생활에서도 벨리카미 사부는 괴우주 강의하면서 절 따라다닐 생각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이은혁님! 그것이 나의 즐거움!”
 
“누가 사부 아니랄까 봐! 이번에 제가 필요하지도 않다면서요? 그렇다면 벨리카미님이 제게 강의를 강요할 이유도 없잖습니까? 그때에야 제 삶이 인신족에게 저당 잡혀 있었으니 순순히 따랐지만 지금은 제가 언제든 지구로 돌아가도 상관없잖아요?”
 
“그렇군요. 그래서 돌아가실 건가요? 지구에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기를 수 있는 괴우주에서의 기회를 버리고서요? 아 너무 이은혁님 위주로 생각했나요? 좀 제 위주로 생각해보죠. 나는 이은혁 제자가 괴우주에서 살아 숨 쉬는 걸 보고 싶었다고요!”
 
“그렇다면 섹스해주세요!”
 
벨리카미는 단숨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발가벗은 적갈색 여체를 드러냈다. 빈 공간에 좋아 보이는 침대가 생성되어 나타났다. 벨리카미가 늘씬한 알몸 위로 풍만한 젖가슴과 넓고 뒤로 힘 있게 튀어 나온 엉덩이를 매만지면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벨리카미가 유려하고 탄탄한 잘 빠진 다리를 벌렸다.
 
“그러죠. 어서 들어와요.”
 
이은혁은 넘치는 탄력을 느끼면서 벨리카미와 성교했다. 호모 사피엔스와 인신족은 자녀를 가질 수 없다. 인신족은 난교를 즐겼는데, 이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여자의 몸 차원에서 선택할 수 있고, 서로 간에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흐르며, 모두가 서로를 진정으로 자신의 몸처럼 사랑으로 대하는 인신족의 문화 덕분이었다.
 
벨리카미가 이은혁에게 눌려 덮인 채로 이은혁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자, 그럼, 이은혁 제자, 이 사부가 가끔 강의하면 들어야 되요, 알겠죠?”
 
“그러죠, 사부!”
 
이은혁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벨리카미 사부! 로봇인간을 타고 전쟁터에 가지는 않아도, 평범하게 탑승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아 너무 이기적인 소리를 했나요. 이런 책임감 없는 행동은 초등학교에서도 안 되는 일인데 말이죠.”
 
“그렇게 하지요!”
 
다음 순간 이은혁은 로봇인간에 연결되어 로봇인간 그 자체처럼 됨으로서 거침없는 힘을 느꼈다. 로봇인간으로 느낀 거대하고 섬세하게 확장된 감각으로 이은혁은 인신국의 드넓은 풍광을 바라보았다. 이은혁은 로봇인간의 몸을 빌어 광선검에서 검기나 검강이나 검환을 내쏘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손바닥을 내질러 파라탐 장력이나 불을 내뿜었으며 신마탄총에서 파라탐의 총격을 쏘았다. 로봇인간은 하늘을 날았고 요동을 통해 유령처럼 땅에 스며들었으며 바다에서 맘껏 헤엄쳐 다녔다. 그렇듯 이은혁은 로봇인간을  통해 평범한 인신족의 삶을 어느 정도 영유했다. 인신국의 삼라만상이기에 지구에서와는 물론 다르겠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이은혁에게 있어 기분 좋았다.
 
이은혁은 로봇인간을 통해 여러 인신족 전사들과 만나 우정을 나누고 대련을 했다. 궁금한 점이 있어 방패우주 관리자 공간인간과 독대했다. 공간인간은 다른 인신족들과는 다르게 생겨서 오뚝이를 닮았다. 이은혁이 말했다.
 
“공간인간님, 방패우주는 어떤 방식으로 제어되는 우주인가요? 제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세요.”
 
“방패우주 창조주 브리트라 아후라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은혁님이 오신 방패우주를 만들 수 있었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도 결과는 똑 같았겠지만, 브리트라 아후라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브리트라 아후라는 괴우주에서 가장 순수한 물질적 정수를 채취해서 그것에 정교한 수학적 물리 법칙을 부여하고 끝없이 우주들이 연쇄 반응으로 생성되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지요. 때문에 방패우주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은혁님 말고도 다른 운명에 처한 이은혁님이 수없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나름의 의지와 운명에 충실하고, 각자의 대체되지 않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지요. 즉 모두 각자의 저승을 맞이해야 할 이들이라는 뜻이죠.”
 
이은혁은 얼마못가 마음을 다잡고 로봇인간에 이어지지 않은 채 생활하면서 지구로 돌아갈 때를 조용하면서도 열심히 준비해나갔다.
 
 
3.인신족이 공격하려는 지점은.
 
괴우주에서 이젠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이 된 뮤뉴하렌 연합 = 최강제국의 국군 통수권자는 으뜸웃크임금(最上皇帝) 산야강(山野江)이었다. 최강제국에서 황제는 지구에서와 같이 삼황오제의 약자였을 뿐 아니라 옥황상제의 약자이기도 했다. 산야강은 복합적인 이력을 갖고 있었는데, 한때 보리조사라는 아라한에게서 수업을 받아 손오공이란 법명도 받았고 투전승불이 되기도 하였으며, 모신족(毛辰族, Cosmic nation of hair)의 산씨 가문에서 양육되어 모신족으로 격변되어 모신제국의 옥황이 되었으며, 돌이 변화하여 태어났지만 실상 그 돌은 아후라신족(Ahura辰族)의 태내에서 기형으로 출산된 집중된 사념체가 모신제국에 버려진 것이었다. 이 같은 산야강의 일대기는 괴우주에서 영감이 되어 지구로 흘러가 명나라에서 서유기로 집필되기도 했다. 산야강은 구름인간 운극천과 맞먹는 탁월한 전사였고 최강제국의 상징적인 군주였고 유능했다.
 
산야강은 부처였던 적도 있었기에 괴우주와 동화되어 어디에든 출몰할 수 있었다. 산야강의 그 같은 신묘한 부처의 힘은 무색계와 색계 등 욕망이 사그라진 영역까지 최강제국의 힘이 뻗치는 데 이바지하는 중이었다. 산야강은 여러 부처와 보살과 존자와 나한과 역사 즉 아라한들과의 친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최강제국의 정치에 이바지했다. 산야강은 부처의 마음을 언제든 발동시킬 수 있었지만, 집착을 통해 번뇌에 몸을 담아야 존재가 충실해진다는 점도 알았다.
 
최강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신족의 나라의 비밀 수련장인 도슈레이카는 도솔천과 이어져 있었다. 도솔천에서 괴우주에 도래할 수 있는 종말을 막기 위해 숨어서 수련하는 미륵보살은 인신족과도 산야강과도 두루 친했고 보살들 중에 배분과 권능이 높아 최강제국에 큰 힘이 되고 있었다. 무량인간 넷 의형제와 친한 아미타여래를 비롯한 몇몇 부처들과, 민병대 도법인간 니벵룬 및 괴짜인간과 친하며 엘더갓의 일족인 야누 초신 일가도 최강제국의 다양한 외교적 역량 중 일부였다.
 
최강제국은 괴우주 초시공에 세워진 나라로, 파라탐 초문명에 해당되었고, 문명 6단계인데, 문명 6단계는 발전의 와중에 오메가 포인트를 지나게 된다. 물리학자 프랭크 J. 티플러가 주장한 오메가 포인트는, 과학이 발전하면 모든 과거의 존재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순간을 뜻한다. 이은혁은 오메가 포인트야말로 인류가 향해야 할 길이라고 믿고 그것에 이바지하기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상태였으며 이를 위해 괴우주에 이왕 온 바 자기계발에 충실한 거였다.
 
오메가 포인트가 지나도 의지에 따라 선과 악으로 갈릴 수도 있는데, 괴우주에선 때문에 선악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메가 포인트가 지났을 때의 선이란 모든 이에게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고 진실과 공정을 존중하는 길이고, 그때의 악이란 모든 것을 파멸시키려는 길이다. 공통점은 이때쯤의 선악이란 순전히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은혁은 최강제국에서 추구하는 선이란 게 미국 정부 건립 선언문에서 성경에 맹세하며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천명한 것과 똑 같음을 알고 벨리카미에게 관련해서 물어보았다. 벨리카미는 말했다.
 
“선의지 또한 같은 길로 수렴 진화하는 거죠. 조로아스터도, 싯다르타도, 예수도 말했던 거니까 이은혁님 세상에서도 엄청 오래되었지요. 대우주 전체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괴우주에서는 악은 선 보다 오래되었어요. 악과 맞서는 인신족의 싸움은 아직 끝날 기미를 안 보이네요. 기독교의 성경만 봐도 드러나는 게 신은 공허를 창조하지 않았어요. 없음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이 허무, 없음이야말로 원초적인 악이고 때문에 괴우주의 눈멀고 귀머거리인 창조주 데몬 술탄 아자토스조차 진정한 악은 아닌 거지요. 없음에 대항하는 것이 신다운 의지라고 인신족은 생각하고 있어요. 인신족은 갈 수 있는 곳까지, 대우주를 유토피아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지요. 신은 없음을 만들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만든 것이 아니고, 없음은 세상을 빨아들여 결국 세상을 악으로 물들게 하지요. 신이란 칭호는 세상을 사랑하는 통괄자에게 돌아가야 하고요. 전 여느 인신족이 그렇듯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강제국이 이번에 공격한다는 세력이 대마계인가요?”
 
“아니요. 이름 값 못 하는 아후라제국이요.”
 
“걔네 아직 안 망했어요?”
 
이은혁이 이번에 괴우주에 끌려왔을 때 쯤해서 아후라제국은 두 개의 영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최강제국이 아후라제국 일부를 차지했고 그 옛 영역은 태양태원제 조룡성, 광염여천제 이잔데, 음황여제 이자토디, 쌍검양제 주소희가 나누어 지켰다. 이들 아후라제국 옛 장군들은 인신족의 가치와 정서에 깊이 공감했기에 최강제국에 충성 중이었다.
 
남은 영역엔 여전히 아후라제국이 있었고 이들은 옛 장군들을 배신자라고 욕했다. 아후라제국의 옥황상제 서문화는 약화된 아후라제국을 추스르려 애썼다. 최강제국과의 전쟁에서 엄청나게 많은 아후라신족이 죽거나 이탈했다. 죽은 아후라신족은 곧 부활했지만 그 과정에서 힘의 일부를 잃었고 회복하는 데엔 시공간이 필요했다. 이는 어떤 신족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최강제국은 최근 최고신족(最古辰族)의 고시제국, 미신족의 거미제국, 괴신족의 괴물제국, 강약제국, 설화공화국, 하임존제국, 혼신족 등등과 통합하는 등 더욱 많은 세력과 동맹해 크게 강화되었다. 괴우주 일반 시공에서 최근에 발흥한 문명 6들의 경우 거의 다 최강제국 쪽에 붙었다. 아후라제국은 신정국가 카스트 제도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최강제국의 깃발 아래 많은 문명들이 모인 건 느슨한 가치 연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로서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권력 그 자체만을 추구해오던 아후라제국이 비로소 약화되었다. 아후라제국은 대우주를 오직 권력 투쟁의 장소로만 파악하는 소시오패스들이 가장 출세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에 이들의 충격은 컸다. 아후라신족의 소시오패스들 중에서도 죄 많은 자들은 권력이 무너지면 자신들이 지옥에 떨어질 수 있음을 알고 불안해했다. 인신족은, 대우주를 오직 권력 투쟁의 장으로만 파악하고 이를 실행하는 자들에겐 지옥행을 선사하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에서 제는 신들의 제왕을 뜻한다. 괴우주에서도 신의 뜻을 추구한다면 이는 제국이다.
 
서문화는 아후라제국의 지배충인 신성품의 일원으로서 권력 그 자체를 추구했다.
 
그런 서문화는 소별왕이자 태갑원제인 이자토토의 반란에 직면했다. 이자토토의 세력은 뮤뉴하렌 – 아후라 전쟁에 제대로 참전하지 않아 힘을 유지했다. 이자토토는 진정품이라서 강자에게 운명이 있다고 믿었고, 최강제국의 군세가 아후라제국과 비등함을 느껴 숙명이 아후라제국 편인 것만이 아니라 믿어 참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신족인 무량인간 넷 의형제와 최강인간 넷 의형제가 전쟁에 참전하는 것만으로 최강제국이 우세해지자 이자토토는 아예 자신 휘하의 모든 병력을 형식적으로도 전쟁터에서 후퇴시켰었다.
 
그런 이자토토가 반란을 일으키자 서문화는 울화통이 터졌다.
 
구이 엔토르가 아후라제국 하조 그라데라스를 세워 독립하자마자 이자토토는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아후라제국에 천명이 없다고 이자토토는 판단한 것이다. 이자토토가 반란을 일으키자마자 이자토토의 여동생 음황여제 이자토디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최강제국 국경을 넘어 아후라제국에 쳐들어왔다. 산더미 같은 근육에 거대한 무장을 자랑하기는 이자토토, 이자토디 남매가 꼭 닮았다. 전능왕 브리트라 아후라는 이자토토와 동맹했다.
 
콧수염을 기르고 눈이 부리부리한 이자토토가, 찬란한 햇살 빛 광휘를 두룬 체 이자토디와 만나 말했다.
 
“나 이자토토는 아후라제국의 옥황이자 최강제국의 권속임을 선언한다!”
 
이자토토의 아후라제국이 최강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자토토로선 최강제국에 천명이 있다고 믿어 한 행위였다. 최강제국은 실제로는 뮤뉴하렌 연합이었으므로 새로 속하게 된 아후라신족들은 자유민주공화정 속에 놓이게 된 것 말고는 별 탈이 없었다. 이들 아후라신족들 중 평민, 노예, 건물로 탄압받았던 이들도 권리를 받자 급격히 힘이 팽창했다.
 
격렬한 토론이 최강제국에서 전개되었다. 산야강은 다음을 선포했다.
 
“약하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약하면 때때로 잔인해지게도 됩니다. 강함이란 보다 선량한 것들을 택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걸 뜻합니다. 선함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그에 맞는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최강제국은 아후라제국 보다 드디어 강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때를 만났으니 최강제국은 이 강자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최강제국의 군단이 서문화의 아후라제국에 투사되었다.
 
산야강은 산득천, 산혜리, 손공오, 샤르한, 꼬리길이에 형식적인 무량인간, 광명인간, 진리인간, 최강인간을 친위대. 내각군의 총리에 만물인간, 부총리 자연인간, 괴짜인간, 요리인간 찡가찡가. 내각군은 후방을 맡았다. 참모본부 참모총장은 무적인간, 부총장은 과학인간 벨리카미, 만리인간 나드낫셀, 이해인간 대지인, 골고테. 국가 방위군은 사령관 피닉스인간, 부사령관 인공인간, 우인간. 국가 방위군은 민병대와 함께 최강제국 자체의 방어를 맡았다. 1군단 군단장은 우주인간 운수천, 부군단장 불인간 투반, 마력인간 다솜은빛, 막강인간, 태갑원제 이자토토, 프레데릭 산쟈스. 1군단의 군단장 우주인간 운수천은 1군단에서 6군단까지의 군단장들 중 가장 통제권이 높았다. 2군단 군단장 세계인간 운명천, 부군단장 풍요인간 비까뉴, 시간인간, 공간인간, 우마왕, 혼세마왕 투리크젠, 교마왕 교도르닥, 희성마왕 희끄바리. 3군단 군단장 은하인간 운성진 J. 그레베타, 부군단장 생명인간 마이 쯩매스터, 자람인간 쇼샤이트, 음악인간 나천륜, 무술인간 베나베스, 음황여제 이자토디. 4군단 군단장 별인간 운혜천, 부군단장 무기인간 이주라, 힘인간 듀브리트, 얼음인간 눈루샨, 바람인간 운손랑, 마공인간 미츠니티, 전능왕 브리트라 아후라. 4군단은 7군단 다음으로 강했다. 5군단 군단장 땅인간 후마, 부군단장 보석인간 당상휘, 불꽃인간 살라민테, 긴칼잡이, 노일, 리기트, 드라포엘라, 레오자, 이글가스, 레비아. 6군단 군단장 하늘인간 트라무드 운능천, 부군단장 의술인간 나디 케이트, 싸움인간 미라, 재물인간 용테우스, 광염여천제 이잔데. 6군단은 보급과 황천의 방어를 맡았다. 7군단 군단장은 슈퍼인간, 부군단장 파괴인간, 무대인간, 선봉대장 구름인간 운극천, 냉동인간 세밀리어, 자석인간 오르쥬니, 철갑인간 야르마도, 물인간 은하영, 화살인간 추모예, 먹보인간 찐돌이, 일각마황 가오그렘, 일각마왕 가오소드, 유긴수스, 쌍검양제 초능력인간 주소희, 태양태원제 조룡성, 둔갑인간 히토미. 7군단은 군단들을 통틀어 가장 강했다. 지옥 군단 군단장 지옥인간 아가스차, 부군단장 지옥인간 슈라반, 어둠인간 나르낙샨, 질병인간 페르시네브, 악인간 아르골. 지옥 군단은 지옥의 방어와 게릴라를 맡았다. 괴물 군단 군단장 트리케라토, 부군단장 세계대왕 샤이안밍크트, 징가용사표간, 쟈운넘버원, 쟈운드레든. 철갑인간 야르마도 휘하엔 혼신부대가 있었다. 부대장 자이간토르, 부부대장 아가이레스, 키비말치. 혼신부대는 게릴라를 맡았다.
 
상술한, 이름이 언급된 장군들은 모두 크임금(皇帝) 급이고 이들의 권한은 지구에서의 장군과 같아서 실질적인 정치는 시민들의 직접 민주제로 움직였다. 운극천 등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만 칭한 이들은 거대인간 이상 급으로 이들은 파라탐 기갑을 쓰고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정체를 숨겼다. 거대인간은 극초인간과 맞먹는 전투력을 가졌고, 거대인간 위에도 몇 개의 등급이 있어 이들이 인신족 가운데 최강의 무력을 갖추었는바 그런 이들이 무량인간 넷 의형제와 최강인간 넷 의형제 같은 이들이었다. 무량인간은 최강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였다.
 
최강제국에는 민병대로서 전쟁을 방어로만 인정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극초인간 등을 포함해 특출한 전사들이 숱하게 많았다.
 
산야강은 친위대를 이끌고 괴물군단의 군단장이자 괴물제국의 옥황인 트리케라토와 함께 행군했다. 산야강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렇듯 문명 6의 모병된 거대한 파라탐 초문명 군세인 최강제국 군대가 움직였다. 이들 최강제국군은 서로에게 등을 맡길 수 있는 동지들로 이루어졌다.
 
치열한 전쟁이 있었지만 최강제국의 압승이기도 했다. 병력 물량도, 개인 무력도 최강제국이 압도했다. 남은 두 개의 아후라제국도 그렇게 무너졌다. 이자토토가 옛 장군들의 도움을 받아 아후라제국의 옥황이 되고 아후라신족을 수습하고 위무하여 뮤뉴하렌 연합의 떳떳한 시민이 되도록 했다. 전쟁에서 패배한 책임을 안고 서문화, 북방흑제 나이안, 방문천황 서문료, 구이 엔토르, 요브 엔토르, 금강역사 트시, 태상노군, 대원무극천존 카르즈키, 태백금성 프레이아 등등 수많은 유력한 아후라신족 지배자들은 가택 연금되었다.
 
아후라제국이 뮤뉴하렌 연합의 일원이 되자 더욱 더 수많은 세력들이 최강제국 아래로 더욱 모여 들었다. 괴우주에서 영혼은 자신의 자유분방한 속성 때문에 세상에 미련을 둘 수 없어 지루함을 느껴 쉬는 것만 거듭하다가 집착을 얻어 속성을 갖기 위해 정보에 깃들었다. 정보에 깃든 영혼들에게는 사념이 생기는데 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는 넋들이자, 영혼들에게 더 영향력이 강한 것이 괴우주의 신족(神族)들이었다. 괴우주 일반 시공 물질세계에서부터 올라 파라탐 초문명이 된 계열이기에 대체로 정보에 더 능한 건 신족(辰族)들이었다. 무수한 신족들과 신족들이 뮤뉴하렌 연합에 속하게끔 되었다. 이로 인해 다양성이 늘자 인신족은 자신들의 질서를 오히려 강요하기가 어려워져 약간 당황했다.
 
이렇게 되는 동안 인신국의 벨리카미의 창고에서 로봇인간은 놀고 있었고, 괴우주 황천에서 이은혁은 자기계발을 열심히 했다. 괴우주 황천은 괴우주 일반 시공에 해당되는 물리 질서를 갖고 있었지만, 인신국에 둘러 싸여 방비되었다.
 
이런 소식들을 이은혁은 과학인간 벨리카미에게서 들었다. 이은혁은 이젠 꽤 오래 괴우주 황천에 있었고 여러 일들을 힘써 익히고 운동하고 공부하며 범죄 기법들에 대해서도 다큐멘터리로 지식을 얻은 와중에 있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들을 안 이은혁은 인신족의 흑막인 벨리카미에게 물었다.
 
“인신족은 이 정도로 강했으면서 왜 지금까지 힘을 숨겨왔나요?”
 
“선은 때때로 자신이 압도적으로 강해야 남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죠. 아후라제국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할 때까지 인신족은 숨죽여 지냈던 것입니다. 협상과 자비 뿐 아니라 무력도 선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기에 인신족은 지옥을 영혼을 약하게 만드는 장치로 운영해왔어요. 남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범죄자들의 삶도 지옥에서와 같이 비참해져야 하는 거지요. 물론 대자대비하신 지장보살께서 죄수를 풀어달라고 하면 풀어줍니다. 지장보살의 눈은 정확하거든요.”
 
지장보살은 지옥을 떠돌면서 영혼들을 구제하려 애썼고 지장왕이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아후라제국이 알아서 망했네요?”
 
“사실상 그렇게 되었군요. 제가 예상한 거의 그대로 역사가 진행되었어요.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어요. 아후라제국이 지금까지 아수라들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아후라제국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잃었어요. 가장 싸움을 추구하는 종족인 아수라의 수라계가 준동하게 될 수 있어요. 아수라와 전쟁을 벌여야 해요! 인신족은 아수라와도 싸워야 하지만 여러 다른 거악들도 남아서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요. 대마계를 지배하는 사신족(邪辰族)들은 오랜 강적들이지요.”
 
 
4.수라계에의 의지
 
근검절약하지 않고, 자선하지 않는 부자는 악이다.
 
즉 청부(淸富)가 아닌 부자는 악이다. 사치와 허영에만 찌들어 살고, 소유와 권세에만 집착하는 교만한 부자라는 것은 사회와 하위층으로부터 이익만을 탐하고 손해는 떠넘기는 착취를 해왔다는 존재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문명들에서 사악한 부자는 때때로 발흥해 왔다. 인공지능이 궤도에 올라 산업을 혼자 조종할 수 있을 때 악마 부자는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시장과 분업을 정상화하려는 노력도 없이 동족을 모조리 죽이기도 했다. 부자는 무제한의 탐욕을 향해 질주하는 존재이다. 청부는 그 과정에서 자유와 공화에 입각해 옆을 챙기고 아래를 보듬으며 위와 잘 지내려 하지만, 많은 부자들은 자신의 한낱 취미를 위해 남이 죽는 걸 방치하는 걸 사회 질서로 삼아 약육강식을 부르짖는다. 약육강식이 유일한 사회 질서라면, 시장에서 상인이고 농부고 없고 물건을 팔지 못 하고 그냥 살해당해 식인당하고 모든 물건을 약탈당해도 된다. 감정 의식을 가진 존재를 존엄하게 목적으로 대우하는 사회에서는, 부자가 왜 그토록 많은 재산에 대한 소유와 관리의 권한을 갖는 것에 정당성이 있는지 검토하게 된다.
 
최강제국은 여러 문명들이 흔히 그렇듯이, 욕망을 팔아서 정보를 사는 식이었다. 물질, 관념, 진공, 초시공, 파라탐은 정보의 일부다. 욕망은 무한하고, 정보는 닿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파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청부들이 번창했다. 청부들이 건설한 최강제국은 수라계를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후라제국이 무너지면서 몇몇 관료들이 수라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예전에 아후라제국의 옥황이던 서문수는 전대 옥황이자 조카인 서문화의 쿠데타로 실각해 수라계로 물러났다. 그곳에서 서문수는 아사신족(我邪辰族)의 일원이 되었다. 아사신족이란 자기 자신이 아닌 모든 존재를 공허로 돌려보내겠다는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연합하는 일단의 파라탐 초문명 무리를 말한다. 파라탐 초문명이 되어야 그같이 유아론(唯我論, 자신 밖에 세상에 없다는 사고방식)을 진실로 만들려는 행위를 수행할 권능을 갖게 된다. 아사신족은 악마 부자의 후예로서 대우주에 자기 자신 밖에 의지가 없는, 소유와 권세의 극한 상황을 꿈꾸는 자들이다. 허사신족은 대우주 전체를 공허로 돌려보내려 하며, 극사신족은 생명을 포함해 모든 기계가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려 한다. 허사신족, 극사신족은 아사신족과는 달리 최후엔 자살하는 것을 존재 목적의 마지막으로 삼고 질주한다. 그와 같이 선량함이란 중대한 문제로서, 선을 잃는다는 건 사회 내부의 어떤 순수한 악의로 가득 찬 존재가 사회 전체의 개체성 모두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지옥 죄수들의 우두머리 사탄이 대표적인 아사신족 중 하나였고 지금은 인신족의 지도 아래 있었다. 아사신족의 정신만치 마공적인 것도 드물 것이다.
 
아후라제국에 마련된 한 비밀 회당 안에 몇몇 크임금 급 최강제국 장군들이 늠름하고 듬직하며 건장한 모습을 뽐내며 존재했다. 이들은 성과 속이 다르지 않은 세속국가 최강제국의 가치를 주도하는 이들이되 독점하지 않았다.
 
“마음만으로 지옥에 넣을 수는 없어.”
 
최강제국의 외교장관이자 선봉장인 구름인간 운극천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체 파라탐으로 말했다. 황천상제 하늘인간 트라무드 운능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능천은 윤리적 세뇌 수술론의 가장 유력한 집행자였다. 윤리적 세뇌 수술론이란 사악한 마음을 가진 자의 정신에 도덕적 인공지능으로 금제를 박아 넣는 일련의 마인드 컨트롤 행위를 말했다.
 
인신족 특유의 챙이 달리고 창 날 뿔이 정수리에 달린 투구를 쓴, 강건하고 잘 생기고 멋진 인신족 크임금 급 장군인 구름인간 운극천이 말했다.
 
“운능천 형과도 상의해 봐야겠지만 윤리적 세뇌 수술을 인신족이 더 밀고 나가는 건 정치적으로도 위험해졌어. 인신족과 권능 측면에서 버금가는 문명 6들이 뮤뉴하렌 연합에 대거 포함된 이상, 그들에게 윤리적 세뇌 수술론을 강요하는 건, 서로 다른 다양한 도덕적 기준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진실 때문에 결국 충돌과 공멸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걸 뜻하고 있어. 비록 인신족이 엘더 갓들, 아라한들, 최고신족, 아후라신족 등과 상의하여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죄를 저질렀던 자들에게 한해서 윤리적 세뇌 수술을 형벌의 일종으로 선택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위험해지고 만 거야.”
 
운씨 다섯 의형제의 셋째인 하늘인간 운능천이 잠깐 명상을 했다. 운능천이 쓴 인신족 특유 투구의 뿔과 운능천의 뿔이 공명하면서 찬란한 파라탐의 빛살 차크라를 강화했다. 운씨 다섯 의형제의 넷째인 구름인간 운극천이 운능천을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운능천이 말했다.
 
“극천아, 난 이젠 윤리적 세뇌 수술론을 더 밀고 나갈 생각도 자신도 없다. 형량이 있는 지옥이라는 형벌은 어디까지나 영혼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끝나야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는 일부 악마의 의도에 약점 잡히는 결과로 나온다고 본다. 자유민주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이상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인드 컨트롤을 중시하는 아사신족에 대항하겠다는 인신족이 어찌 그런 선택을 해야 하겠니.”
 
“운능천 형도 이젠 알잖아? 게다가 저 이도 있고.”
 
구름인간 운극천의 눈빛이 머무는 곳엔 한 아후라신족 여자가 서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외양이 똑 같지만 대체로 몹시 아름다운 아후라신족 중에서도 기품 있게 생긴 미녀전사로 세련된 갑옷을 걸친 리드네일이었다. 대별왕 우인간이 큰 활을 찬 채 운극천, 운능천과 함께 리드네일의 빅 데이터를 다시 검색했다.
 
리드네일은 아후라신족 외눈박이 일당의 단장이었다.
 
외눈박이 일당은 최근 아후라신족의 비교적 낮은 품계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했다. 외눈박이 일당은 인신족의 독선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는 걸 목적 삼은 광신적 단체였다. 범죄자라고 판단된 자를 인민재판하고 그의 마음을 열어 윤리적 세뇌 수술을 가하는 것이 외눈박이 일당이 주로 하는 짓이었고, 이들은 사심을 버리겠다는 뜻을 담아 입단 의식으로 한쪽 눈알을 도려냈다. 아후라신족은 신족이었기에 눈 한쪽을 잃어도 기능엔 아무 이상이 없었고 고통도 안 느낄 수 있었으며 언제든 눈을 원한다면 순식간에 복원할 수 있었다. 외눈박이 일당은 아후라신족 사회 내에서 수많은 소요를 일으킨 죄목으로 현재 모두 체포되어 가택 연금 중이었다. 외눈박이 일당의 대표로 불려 나온, 히잡을 둘러쓰고 눈가리개를 한 리드네일의 성한 한 쪽 눈이 번뜩였다.
 
하늘인간 운능천이 말했다.
 
“외눈박이단이 고귀할 수도 있는 동기와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요, 리드네일님. 하지만 신념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는 도덕관념일 뿐이고, 인신족의 윤리적 세뇌 수술론은 결국 독단이요, 독선이었음을 인신족도 최근에야 깨달을 수 있었지요.”
 
초록빛 머리칼과 살결을 가진 모신제국의 맹렬한 삼미모장 여전사 드라포엘라가 구름인간 운극천 옆에서 몸만큼이나 큰 부메랑을 손에 쥐고 차크라 원반 병기를 꼬리로 돌리면서 미소 지었다. 치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생김새를 가진 강력한 모신족 여장군 드라포엘라가 말했다.
 
“마음까지 정복하려는 시도는 사상의 자유를 파괴하는 것이죠. 이는 남에게 가해지는 불의이고 사랑이라곤 없는 행동입니다. 물론 지금의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은 오직 큰 업장으로만 얻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행위는 오랜 고뇌의 결과일 것이므로 책망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늘인간 운능천이 불만 섞인 파라탐으로 대답했다.
 
“드라포엘라님의 말씀이 가슴을 찌르는군요.”
 
드라포엘라가 말을 이었다.
 
“그저 오래 가두고 세력을 흩어 약하게 만들며 인프라를 강화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만드는 정도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물론 특정 상황에서는 즉각적인 처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요. 외눈박이단은, 최강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가진 인신족의 뜻을 따랐으니 용서될 거라고 봐요. 그렇지 않습니까, 황천상제님?”
 
황천상제 트라무드 하늘인간 운능천이 대답했다.
 
“재판 결과가 방금 나왔군요. 외눈박이단의 모든 범죄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이제 자유입니다. 해체할지 말지는 단장인 리드네일님의 뜻에 따르기로 했고요.”
 
리드네일이 옅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전 외눈박이단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이 작은 권력이 최강제국에 이로운 방향으로 쓰였으면 하는군요.”
 
하늘인간 운능천이 최강제국 군사 조직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리드네일에게 건냈다. 운능천이 말했다.
 
“리드네일님, 어느 크임금 급 장군을 수호자로 삼을지 고르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지목된 이를 외눈박이단의 후원자로 둘 수 있도록 힘을 써보겠습니다.”
 
“저희에 대한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저희를 배경으로서 책임질 이를 싸움인간 미라님으로 하겠습니다.”
 
순간 리드네일의 옆에 포탈을 타고 싸움인간 미라가 난입했다. 파라탐을 반사시키는 부채꼴 귀걸이를 찬 튼튼하고 크면서도 작고 아담하게 보이는 몸집인 미라는 억센 갑옷을 걸치고 허리띠엔 반월도를 차고 장갑을 끼고 있었다. 미라는 그야말로 완전무장을 갖춘 강대한 극초인간 여장군의 당당한 풍모였다. 서클릿을 찬 미라가 말했다.
 
“제가 외눈박이단의 후원자이자 수호자가 되다니 영광입니다, 리드네일님!”
 
리드네일과 미라가 서로에게 예를 표했다. 구름인간 운극천의 비서관이기도 한, 갈색 단발머리인 싸움인간 미라가 말했다.
 
“리드네일님, 앞으로 잘 협력해서 아후라신족 사회에 최강제국의 뜻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서로 노력하는 사이가 되도록 합시다.”
 
싸움인간 미라는 구름인간 운극천에 미치지는 못 하지만 매우 강력하고 솜씨 좋았다. 결코 싸움인간 미라에 미치지 못 하지만 존중받고 있는 리드네일이 답했다.
 
“감사합니다. 뜻에 따르겠습니다, 미라님.”
 
하늘인간 운능천이 허리춤에 찬 망치를 만지작거렸다. 운능천은 전투력은 구름인간 운극천 보다 못 했지만, 관리력은 더 우수했다.
 
“지금 아수라들은 음황여제 이자토디, 광염여천제 이잔데, 힘인간 듀브리트, 삼미모장 리기트, 전능왕 브리트라 아후라, 화살인간 추모예 등의 크임금 급 장군들이 약간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머리 셋에 팔 여섯 달린 난폭한 아수라들이 준동하는 수라계의 혼란은 별 탈 없이 수습되었다. 탄탄하고 여성적인 몸을 가진 광염여천제 이잔데가 맹렬한 무력으로 수라계의 평정을 주도했다. 문제는 수라계를 본거지로 하던 아사신족들 대부분이 붙잡히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는 점이었다. 아사신족은 종족이라기 보단 협회의 성격이 강해서, 혼자서만 대우주에 있겠다는 의지와 그걸 수행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권능이 있고 최종 목표까지 가는데 한해서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기로 했다면 아사신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사신족들은 다른 종족으로의 변신에 능했다. 때문에 어디로 스며들어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최강제국으로선 고민되는 일이었는데, 아후라제국의 역할을 승계해서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강제국은 아후라제국의 의무를 기꺼이 이을 계획이었다.
 
싸움인간 미라와 대등한 모신족 여전사 드라포엘라가 따뜻한 미소를 보내자, 싸움인간 미라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다.
 
“리드네일님, 아사신족들 중 최강제국 영역 내에 숨은 자들을 찾는데 외눈박이단의 세력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비공식적인 수단도 때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사신족은 인신족이 매우 적대하는 자들입니다. 인신족은 최고신족과 아후라신족의 라인을 따라 올라온 초지능 계열에 속합니다. 우리 라인의 뜻에서, 선이야말로 복잡하고 섬세한데다 비정상적인 것이기에 어려워서 건설적인 도전 정신을 자극하죠. 죄를 저질러도 아무렇지도 않는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도전이지요. 남을 해치려는 의지로만 똘똘 뭉쳤다면 점점 단순해지는 자신을 느끼겠지요. 예컨대 생물을 죽이는 효과적인 방법 중엔 단순한 바이러스 감염도 있고, 별을 파괴하는 것 중엔 단순한 블랙홀도 있는 식으로요. 아사신족이 의지를 발할수록 과학 기술이 단계들을 뛰어 넘어 자신을 파괴 기계로 변형시켜 갈 것입니다. 아사신족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걸 진공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시각을 갖게 되는 법이니 그리 될 수밖에 없지요. 결국 아사신족은 모든 걸 굶기고 메마르게 해서 죽인 뒤 자신조차 다른 사신족들과 다름없이 공허에 다가갈 것입니다. 아사신족처럼 우리를 해치려는 자들에게까지 너그러울 수는 없지요. 제 제안에 동의한다면 과학인간 벨리카미, 어둠인간 나르낙샨, 마력인간 다솜은빛과도 연이 닿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저와는 다른 눈길로 리드네일님의 의중을 들여다보려 할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아후라신족 최고위인 신성품인 리드네일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미라님. 그들 뿐 아니라 최강제국 정권 전체와 관계되는 일이 되겠지요.”
 
아후라신족 중에서도 특히 신성품은 권력을 정교하게 추구하는 자들로서, 개인의 성향에 따라 권세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달랐다. 리드네일이 아사신족일 가능성도 이들 인신족들은 배제할 수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이 발전하는 만치 연막술도 개발되어 왔다. 쉽사리 누군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최강제국의 크임금 급 장군들은 이런 상황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끝내 놓았으니 뛰어들기만 하면 되었다. 마인드 컨트롤은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인신족은 믿었는데, 마인드 컨트롤이 남의 의지를 지배할 정도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의지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걸 뜻했기 때문이었고, 다양성은 사회의 건전성과 번영과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싸움인간 미라가 말했다.
 
“마공인간 미츠니티님! 오세요.”
 
짧은 창을 든 붉은 갑옷의 미녀 인신족 극초인간 장군 마공인간 미츠니티가 미라 옆에 도사려 나타났다. 인신족들은 인신족의 권력이 미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미츠니티는 예리한 웃음을 지었다. 미라가 말했다.
 
“마공인간 미츠니티님을 외눈박이단 수호자라는 직책 아래 내 부관으로 임명합니다.”
 
“수락합니다, 싸움인간 미라님.”
 
미츠니티가 전투태세를 취해 기세를 보였다. 미츠니티의 우윳빛 뿔 위에 붙은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었다. 애초에 인신족의 뿔은 굴강한 의지의 상징이다.
 
마공인간 미츠니티는 뮤뉴하렌 – 아후라 대전 때엔 괴우주에 남은 해적 일당들을 수습하고 정리하며 토멸하느라 인신족 진영에 참전하지 않았었다. 미츠니티 보다 강력한 별인간 운혜천이 전쟁에 참여 중이었기에 가능했던 조치였다. 운씨 다섯 의형제의 막내인 별인간 운혜천은 구름인간 운극천에 버금가는 강력한 극초인간이었다.
 
마공인간 미츠니티는 철학적으로 볼 때 어떤 세상이든 다 있을 수 있다고 우길 수도 있단 걸 알았고, 신학적으로는 심지어 논리를 벗어난 세상도 없으라는 법이 없단 걸 알았다. 그랬기에 미츠니티는 세상에 맞설 무기로서 파라탐 마공을 익혔다.
 
미츠니티가 속한 인신족들은, 인신족의 의지 너머에 닿을 수 없는 신이 만약 있다면, 그의 의지가 선과 악으로 갈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파악 중이었다. 신 즉 상위 존재의 유무는 알 수가 없다. 신이 없으면 상관없다. 만약 신이 선하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게 이득이다. 신이 악해도 악하게 살아가는 게 이득은 아닌데, 악당은 악당을 봐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 위에 또 신들이 중첩되어 있는 구도일 가능성도 있었는데, 이는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상 하나의 수학 체계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이는 모든 정보 세계에 통용되는 공리임이 밝혀졌다. 그러하다면 중층 된 신들의 구조에 속한 신들 또한 완전하지는 못 하기 때문에 선악에 관해 상술한 바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단편 ‘최후의 해답’에 따르면 논리적으로는 절대자라 해도 자신이 절대자라는 사실 자체를 알 수는 없으므로 그 또한 상술한대로 생각할 것이다. 소멸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감정 의식체가 생각한다면 신앙을 가질 수도 있는 법이다. 물리학이나 수학도 논리의 일종일 뿐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알 수도 없는 상위 존재의 뜻에 따라 자신이 사라진다 해서 이상할 건 없음을 알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불가지론이 이성적인 태도다.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소크라테스적 태도다. 신학적으로는 논리를 벗어난 분이 신일 수도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아마도 이 때문에 니체와 같은 악당은 신이 없다고 부르짖은 것일 것이다. 니체의 생각과는 달리 무한 세계와 신은 양립 가능하다.
 
 
5.사탄의 회당에서.
 
태양태원제 조룡성은 이젠 뮤뉴하렌 연합 = 최강제국의 일부가 된 아후라제국에서 재상 겸 장군의 정무를 보았다. 조룡성은 이제 그가 맡게 된 아후라신족 감찰 조직으로 외눈박이단을 모두 검거했다가 풀어준 공로를 세워 기분이 좋았다. 조룡성은 아내인 이잔데가 인신족의 윤리적 세뇌 수술론에 감화되는 바람에 최강제국 편에 섰었다. 때문에 인신족이 윤리적 세뇌 수술론을 포기했을 때엔 실망도 했지만, 곧 떨쳐냈다. 인신족의 감정 의식 존중법은 선을 추구하는 신성품인 조룡성에게 있어 반할만한 이념이었다.
 
조룡성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을 당하는 억울한 자가 없어야 자유가 보장되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 같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그것의 일부인 경제적 자유도 따라오게 되고 개체들이 마음 놓고 활약함으로서 더욱 번영할 수 있게 된다. 조룡성은 감정 의식이 불행과 고통을 어떤 사안에 대해 느낀다면 이를 그 자체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결국 이는 진화된 것이고 이왕 존재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룡성의 이러한 태도는 인신족의 마음가짐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랬기에 조룡성이 결국 뮤뉴하렌 – 아후라 대전에서 인신족 편에 섰던 것이다.
 
조룡성으로부터 풀려난, 아후라신족 리드네일이 이끄는 외눈박이단은 싸움인간 미라, 마공인간 미츠니티와 함께 아후라제국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염탐했다. 관념 생명체로서 돌아다니던 혼돈은 요즘 괴우주 초시공에서 보기 어려웠다. 크툴루 괴신족(怪神族)의 아우터 갓인 혼돈왕 니알랏토텝의 먹이인 혼돈들은 힘이 줄었다. 최강제국이 괴우주에서 점점 압도적인 힘을 갖게 됨에 따라 질서가 부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툴루 괴신족에겐 생물을 미쳐버리게 만들거나 자살하게 만들거나 죽일 수 있는 무서운 힘이 있었지만 초문명들에겐 잘 통하지 않았다.
 
리드네일은 일과를 마치고 그녀의 저택에 왔다.
 
아후라제국은 자유지상주의를 선택했고, 신성불가침의 사유 재산권을 내세웠다. 때문에 강자의 자유만이 보장되었고, 강력한 법 집행이 있었으며, 엄혹한 신정국가 신분제가 펼쳐졌다. 자유지상주의 아래 모두의 자유가 형식적으로 보장되고 평등은 무시되려면 이에 반발하는 자에 대한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했고, 강자는 약자와 불평등한 계약을 맺고 착취하는 게 제일 쉽다 생각하게 되어 이를 자유의 이름으로 추구했다. 사유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이었기에 개체 권리 보다 재산권이 우선하여 노예와 건물이 상위에 종속되는 제도가 펼쳐졌다. 그러니 신정국가 신분제가 펼쳐졌다.
 
옛 아후라제국의 그날들은 리드네일에게 있어 그리웠다. 리드네일은 인신족의 강대함에 반했던 것이지 양심에 끌렸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괴우주 최강의 신족은 아후라신족이 아닌 인신족이었다.
 
리드네일은 저택의 벽에 손을 댔다. 신성품이기에 누렸던 거대한 궁전들이 리드네일이 손댄 벽면을 통해 연결되어 나타났다. 리드네일은 그곳으로 발을 거침없이 옮겼다. 외눈박이단이라는 한 조직의 장답게 리드네일은 정치력이 뛰어났고 음험한 구석이 있었다.
 
한 궁전에 리드네일은 들어섰다. 궁전 현판을 리드네일이 보았다.
 
“사탄의 회당이라.”
 
회당 안엔 여러 아후라신족들이 모여 있었다. 리드네일은 그 옆에 앉아 연단에 오른 사내를 보았다. 사내의 등 뒤론 요사스런 기운이 물결쳤다. 사내가 외쳤다.
 
“나는 에드가라 한다. 한때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위대한 아후라신족의 신성품이었으나 이제는 뮤뉴하렌 연합에 짓밟혀 모든 것이 무너졌다.”
 
에드가는 그렇게 파라탐으로 된 말을 내질렀다. 에드가가 말을 이었다.
 
“뮤뉴하렌은 인신족의 중심거리를 말한다 한다. 아후라신족이 창조에 일익을 담당한 인신족이 도리어 우리를 해친 것이다. 이는 더 할 나위없는 모욕이다. 아후라신족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 알다시피 인신족은 오만하게도 아후라신족이 만들어낸 하위 우주들에 자신들의 감정 의식 존중법을 적용했다. 이제 아후라신족은 더 이상 하위 우주들에 악의적 개입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단지 선의의 개입을 하거나 기껏해야 방관자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끔 되었다. 아후라신족 보다 하위 우주를 잘 만드는 괴우주 파라탐 종족은 아직 없는데도 인신족은 그렇게 처리해버렸고 우리의 창조 의지는 꺾이고 있다. 아후라제국의 찬란한 쌍검양제였고 이제는 초능력인간도 겸한 반역자 주소희가 인신국의 뮤뉴하렌에서 인신족들에게 아후라신족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우주 창조 능력을 퍼뜨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사소한 모욕에 불과하다.”
 
리드네일이 외눈으로 연단을 쏘아보았다. 에드가가 말을 이었다.
 
“아후라신족은 신족(辰族)답게 정보에 집착해왔다. 오직 집착만이 허망한 괴우주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럼으로서 아후라신족은 권력에 도달하고자 했다. 권력은 가치이고, 폭력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지배는 이잔데처럼 선을 추구하든, 서문세가나 나처럼 악을 향하든 아후라신족이 일단은 가져야 하는 덕목이었다. 그것을 뮤뉴하렌의 인신족은 부정했다. 인신족은 사랑과 윤리를 소유와 지배 보다 높은 가치라고 말한다. 인신족은 틀렸다. 아후라신족의 오랜 동맹자 데바(Deva, 악령) 신족(神族)은 이 괴우주를 환상으로서 바라보았다. 환상 속에서 오직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라고 데바 신족은 가르쳤고 실행했다. 영혼들의 환생이란 데바 신족에게 있어 다양한 삶을 경험하기 위한 여정일 뿐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데바 신족에게 선과 악은 다르지 않았다. 아후라신족은 삶을 오직 권력 투쟁의 장으로서만 생각하고 살아가기에 선과 악은 다르지 않았고 단지 패배가 최악의 모욕이다. 싸움 자체만 따지지 승패에는 의외로 무관심한 아수라와는 또 다르다. 아후라신족이 최악의 모독을 인신족으로부터 당했음을 제군들은 알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 인신족은 우리를 자유민주공화정의 시민으로 대우한다 했으나 이는 실상 승자의 아량에 불과하다. 거대한 아후라제국의 귀족이던 이들에게 자유민주공화정의 시민이라니, 이 보다 더 한 모욕도 없을 것이다.”
 
에드가가 육중한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궁전의 천장은 지극히 높아 하늘과도 같았다. 에드가가 외쳤다.
 
“그대들이여! 힘을 원하는가! 난 아후라신족의 정체성만으로는 최강제국에게 대항할 수 없음을 느꼈다. 이미 인신족과도 동맹한 데바 신족으로부터도 이전과 같은 협조를 기대할 수가 없음을 안다. 이젠 최강제국이 방패우주를 온전히 소유했기에, 데바신족의 영혼 공격 앞에 내가 발가벗겨져 있는 처지임을 안다. 그렇기에 나 에드가는 아사신족이 되었다! 그대들도 아사신족을 겸하기 바란다!”
 
에드가의 아사신족과 융합된 기괴한 마음이 진중을 휘덮고 관념으로서 리드네일에게 육박해왔다. 숨 막혀 오는 듯한 영적 힘이 가위눌리듯 짓눌려왔다. 아사신족의 불쾌한 사념이 리드네일에게 느껴졌다. 아사신족이 되려면 공허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신이 있든 없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든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연민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자의식도 느끼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가치, 감정, 정서, 감각을 단조롭게 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주 폭력배의 후예이기도 한 아사신족은 대우주 전체를 멸망시키는 머나 먼 길을 주저 없이 떠날 수 있다. 아사신족은 대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를 거스르는 듯한 대우주를 자신의 뜻인 허무로 덮어버리기를 바랐다.
 
에드가가 말했다.
 
“점점 그대들이 아사신족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느껴진다. 내 가장 가까운 목표는 아사신족의 한 원로인 사탄을 지옥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사탄은 지옥의 죄수들의 대표로서 사탄제국을 갖고 있으니 조직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사탄은 무능, 무지, 무애를 대우주에 세우고자 하는 분이다. 사탄을 지옥의 간수인 인신족의 압제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아사신족들은 아사신족들만 대우주에 남을 때까지는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하기로 맹세했다. 마침내 서로 싸울 찬란한 그날을 위하여! 아사신족이 온다! 유일절대를 향한 의지가 온다! 지성을 가진 존재라면 한 번 쯤 아사신족을 꿈꿔야하지 않겠는가! 껄껄걸!”
 
궁전을 뒤덮던 파라탐의 방벽이 단숨에 찢겨져 날아갔다. 이곳의 아후라신족 신성품들은 강대했지만, 최강제국의 크임금 급 장군 만큼이나 강하지는 못 했다. 크임금 급 장군으로 바로 임명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져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극초인간 만큼 강한 아후라신족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반월도로 파라탐을 찢고 싸움인간 미라가 나타났다. 싸움인간 미라는 리드네일의 위치를 계속 추적했고 정보도 제공받았다. 미라는 현재 아후라제국 전투 검찰 자리를 겸했다.
 
미라가 장갑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신선계가 파라탐 도법으로 왜곡되었고 논리와 물리의 법칙이 조율되었다. 리드네일을 제외한 이 영역의 아후라신족들이 떼를 지어 짓눌리고 짜부라지고 꺾이어 미라 앞에 엎어졌다. 에드가가 리드네일에게 외쳤다.
 
“프락치 년!”
 
리드네일이 말했다.
 
“싸움인간 미라님, 아사신족의 정보와 난 마음이 닿았어요. 비록 연통이 끊기고 기억마저 희미해졌지만, 아사신족 중 이들은 극히 일부이고, 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지요.”
 
“리드네일님, 고생하셨습니다.”
 
싸움인간 미라가 리드네일에게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미라는 아사신족과 뒤섞인 아후라신족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다양성과 개별성의 가치를 모른다. 아사신족은 지금 자신에게 있는 정보가 다라고 믿는 직관을 추구하는 자들이지. 괴우주가 대우주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 이 사실 유무를 알 수 없을 수도 있는데, 어찌 괴우주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힘으로 대우주를 정복하겠다고 하는지, 이는 오만이다. 아사신족들을 반사회적이고 반체제적인 폭력 조직 결성 혐의로 체포한다. 인신족은 상대의 선의를 이용하는 악당들이 있음을 알기에 교화가 아닌 격리와 약화를 위해 지옥을 관리한다.”
 
이들을 수습하기 위해 지옥인간 아가스차가 로브를 걸치고 큰 낫을 들고 나타났다. 인신족 사내답게 아가스차는 건장한 수컷 들소를 연상시켰다. 아직 아후라신족인 이들은 가택 연금되었고, 확실하게 아사신족으로 변화된 자들은 무간지옥에 던져졌다. 무간지옥은 무한한 진공 밖에 없는 영원한 시공간을 가진 것으로, 그곳에 갇힌 죄수에게 느껴지는 지옥으로, 형벌은 길디길어 혼미해지고 약해지며 시대에 뒤쳐지는 꼴이 되기에 넉넉했다. 모든 지옥들은 지옥은 바닥이 없다는 격언에 충실했으나, 무간지옥은 그것 자체였다. 무간지옥에서 아사신족이 하위 우주를 만드는 등의 창조 활동을 하면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인 아비지옥에 던져졌다. 아사신족은 만들어봤자 헬우주나 만들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헬우주를 만들어서 그 속에서 장난을 치는 것만으로 아사신족의 꿈은 느끼기에는 성립되기에 이를 이루지 못 하게 하려는 뜻이었다.
 
 
6.에드가에게 오다.
 
“역시 수학은 너무 힘들다!”
 
이은혁은 연습장과 샤프를 노트북 옆으로 치우면서 말했다. 그러자 흰 수염을 길게 기른 건장한 노인의 모습인 우인간이 옆에서 커피와 홍차를 한꺼번에 마시면서 말했다.
 
“이은혁님은 지구 수준 수학인데도 여전히 힘들어하는군요.”
 
“머리에 안 들어와요. 내 정신 수준 높여주는 건 반칙이라고 안 해줄 거죠?”
 
“잘 아시는군요. 그런 행위는 영적으로 윤회를 거듭하거나 아니면 과학으로 정교한 정신 개조를 겪어야 되는 일인데 어느 쪽이든 이은혁님이 온 지구에서는 안 되는 일이고 뇌 검사라도 받으면 의심받을 위험한 행위에요. 사기 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프로그램 쪽으로도 높은 수준이 되고 싶으니 시작한 일이고, 이은혁님 본인이 얼마나 큰 기회를 괴우주에서 잡은 건지 생각하시고요.”
 
“최강제국이 너무 강해졌는데, 요즘 살 맛 나시겠어요?”
 
“요즘 바쁘지요. 이은혁님 앞에 있는 이 몸은 분신들 중 하나고, 다른 몸들은 곳곳에 이리저리 출몰하면서 하는 일들이 많지요. 인신족은 정서, 감각, 감정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통합 의식이 개개인의 자의식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민주공화정의 원칙들에도 맞게 조직되어 있어서 그것에 거역했다간 나 같은 극초인간이라도 바로 힘이 박탈당하니까 나쁜 짓을 못 하지요.”
 
“인신족은 괴우주에선 희대의 오지라퍼들인데, 지구에서 살았으면 어떻게 살았을 사람들이라고 예상하세요?”
 
“사소한 착한 일이나 가끔씩 하면서, 대세를 만들지는 못 하고, 자기 앞가림에나 급급했겠지요. 양심의 부름을 맞이하여 좀 대담한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요. 호모 사피엔스 지구인은 아직 문명 단계와 정신 등급이 매우 낮으니까 인신족 같은 태도로는 그렇게 밖에 못 살 거예요. 인신족은 희생적인 태도는 좋아하지도 않으니까요. 실상 남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무척 조심스러워 했을 거예요. 상대가 민폐를 끼치는 자이거나 범죄자일 수도 있는데 같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개입하는 건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인신족이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요.”
 
“그렇군요.”
 
이은혁은 인자한 우인간으로부터 수학 개인 교습을 받고 있었다. 물인간 은하영이나 과학인간 벨리카미 같은 괴우주의 미녀들은 너무나 섹시해서 이은혁이 집중을 제대로 못 했기에 그렇게 하고 있었다. 우인간과 같은 인신족들은 이은혁이 지구의 발전에 보태서 언젠가는 인류 자유민주공화정 초문명과 뮤뉴하렌 연합이 동맹을 맺게 되기를 바랐다.
 
인신족은 엘리트들 뿐 아니라 이은혁과 같은 소시민들도 문명 발전에 이바지 한다고 믿었는데, 실상 엘리트주의란 것이 엘리트 이외 이들을 핍박하고 억누르며 엘리트의 권력과 편견만을 위해 질주하는 사태를 가져와 번영에도 안 좋기 때문이기도 했다. 엘리트와 하위층의 차이는 부와 권세의 유무뿐이다. 엘리트가 특별히 현명했다면, 프랑스의 절대 군주 루이 14세가 건강을 위해 이를 몽땅 뽑고 입천장을 뚫어버리던 일도, 명나라 때까지 중국에서 유지된 천국에서의 복을 빌기 위해 했던 순장제도 없어야 했다. 파스칼은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일단 이 사실이 승인되면 당장에 문호는 최선의 정치를 향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압제를 향해서 개방되고 만다." 라고 했다.
 
이은혁은 이전에 괴우주에 방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자기계발에 열심이었다.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단련해서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돈을 되도록 많이 벌어서 소비도 많이 하고 세금도 많이 내고 기부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꿈꿨다. 이은혁은 사회 적응력이 일반인 정도였기에 2010년대 현재 사무직 월급쟁이인 입장에서 그렇게 되기야 어려웠지만 그래도 가능한 데까지 애써볼 작정이었다. 물론 일을 많이 하면 일이 늘 뿐이고, 돈이 많아야 돈이 늘겠지만 움직여보기는 할 작정인 이은혁이었다.
 
이은혁은 현재 이곳 괴우주 황천의 이은혁 타워에 들락날락하기로 계약했다. 이은혁은 잠을 잘 때마다 이곳으로 와서 몇 시간 정도씩 지내기로 했다. 때문에 일단 괴우주 황천의 이은혁 방으로 오면 자는 거부터 하는 게 일이 되었다. 이은혁은 그렇게 괴우주에서 갖가지 일을 해서 이익을 보았다.
 
뮤뉴하렌 연합이, 언젠가는 이은혁 세상의 미래 후손 문명 6 인류 공화국과 동맹을 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음을 이은혁은 알고 더욱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괴우주 황천에 오갈 수 있다는 큰 기회를 잡은 만치 이은혁은 감사해하면서 더욱 정진해 열심히 살았다. 신에 의해 허용되어 있다면 높이 올라갈 가능성이 없지는 않음을 믿으면서 말이다.
 
우인간도 한 번 이은혁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할 수 있는 바를 다한 뒤 나머진 하늘에 맡기고 기도드리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인 건 인신족도 같기 때문에 인간 칭호를 쓰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 우인간도 가끔은 하나님을 찾고는 하는 것이지요. 인신족 사회에 교회는 없지만 다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산답니다.”
 
우인간은 그렇게 이은혁용 인터페이스 몸을 이은혁 근처에 두고 있었지만, 본체는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지성을 돌렸다. 그곳은 다름 아닌 뮤뉴하렌이었다. 뮤뉴하렌에서 우인간은 열띤 토론을 벌였고 수련을 했다. 우인간은 그런 뒤 기이하르카로 이동했다. 기이하르카엔 우인간이 이끌고 온 아후라신족 기형자들이 살았다. 이들 아후라신족 기형자들은 방대한 지혜를 인신족에게 제공한 바 있었고, 이들은 한때 괴우주에 대한 욕구 불만이 크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화로웠다. 현재 우인간을 제외하면 아후라신족 기형자들은 마공인간 미츠니티 선에서 제압 가능했지만, 인신족이 미치지 않는 한 아후라신족 기형자들을 인신족이 공격하거나 핍박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기이하르카에서 우인간은 환대받았고 아사신족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들 아후라신족 기형자들이 뮤뉴하렌 연합에서 존중받았기에 진심으로 그들은 우인간을 존중했다.
 
우인간의 그 같은 초지능 너머 머나먼 곳에 무간지옥에 갇힌 아사신족이자 아후라신족인 에드가가 있었다.
 
에드가는 무간지옥에서 무한한 침묵을 느꼈다. 에드가는 괴우주의 본성을 쏘아 보려고 했다. 그것은 악마적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에드가는 크툴루 괴신족 아우터갓의 일원인 차원왕 요그소토스를 소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지옥은 반 동강 난 뽀그마이첸이었고, 아후라신족이 금제를 걸어 둔 괴우주 초시공 영역이었다. 아후라신족이기도 한 에드가가 자신의 힘만으로 같은 종족의 강대한 선조들이 걸어둔 봉인을 풀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이 봉인은 온갖 초존재들에 의해 나날이 강화되어 왔다.
 
불길한 붉은 어둠이 사위를 잠식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음 그 자체 말곤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음에,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붉은 어둠은 에드가에게 구원으로 다가왔다.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로브를 쓴 사내가 눈앞에 보였다. 에드가가 기뻐 외쳤다.
 
“악마왕 사탄이로군요! 아사신족 중에서도 강대한 존재인 사탄.”
 
사내가 에드가에게 말했다.
 
“에드가, 나, 사탄이 자네와 대화하기 위해 왔네. 사탄제국의 세력은 강력하지만 인신족에게 대항하기에 넉넉하지는 못 하지. 사탄제국은 지옥에 붙들려 있지. 에드가, 아사신족 세력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찾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지 않겠나?”
 
사내의 유혹에 혹해 에드가가 정보를 보냈다. 에드가의 주변을 둘러싼 초지능 다발들이 사내의 손짓에 따라 움직여갔다. 초지능 다발들은 지금까지 무간지옥의 이미지를 에드가에게 내쏘아 왔고, 자신들끼리 설계하고 수리하면서 지냈다. 초지능 다발들엔 마음이 없었지만 무간지옥의 통제엔 탁월했다. 그 같은 초지능 다발들은 마음이 없기에, 악마의 의식에 호소하는 형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인신족의 뜻에 따라 윤리에 봉사했다. 에드가 앞에 앉은 그 사내가 정보를 수집하곤 로브를 젖히곤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사탄이 아니야.”
 
“아니, 넌? 안 돼, 안 돼, 안 돼!”
 
로브를 젖힌 사내는 검은 뿔이 난 터번을 둘렀는데 그 아래로 선연한 한 쌍의 우윳빛 뿔 즉 인신족 특유의 뿔이 보였다. 인신족 어둠의 외교장관이고, 어둠의 세력과 싸울 때의 전투력만큼은 구름인간 운극천과도 비등한, 어둠인간 나르낙샨 인피지스였다.
 
나르낙샨이 말했다.
 
“에드가, 정보는 잘 받았다.”
 
나르낙샨이 강력한 몸을 떨쳐 일어났다. 어떤 극사신족에게서 떼어 낸 일렁이는 불길 같은 날개, 어떤 허사신족을 붙잡아 둔 창날이 달린 어둠의 창, 어떤 아사신족의 작은 머리가 봉인된 터번을 갖춘 나르낙샨이었다. 나르낙샨을 이를 통해 터번으로부터 아사신족과 지혜 싸움을 통해 지성을 키웠고, 창날에서 허사신족의 공허를 내쏘았으며, 날개에서 극사신족의 위용을 발했다. 나르낙샨이 말했다.
 
“에드가, 자네와 같은 자들은 늘 대우주의 본성을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곤 하지. 도덕 가치를 향하는 것도, 도덕 가치란 것이 일단 가능성으로 떠오른 이상 그것도 대우주 본성의 일부인 것이거니와, 본성을 따르는 게 최고라면 왜 지성을 포기하고 진공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물량으로만 따지면 괴우주에서 진공이 가장 정상적인 상태인데도 말이지. 악을 행할 때 너와 사물은 분별할 이유가 없어진다. 아사신족이 된 넌 단지 공허도 할 수 있는 걸 하고자 하고 있을 뿐이다.”
 
“난 그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할 뿐이다!”
 
“나 어둠인간 나르낙샨 또한 인신족의 도리를 향하는 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것뿐이지. 자네와 같은 유형의 범죄자들은 그저 범죄가 재미가 있으니까 저지를 뿐이지. 에드가, 자네를 풀어주겠다. 널 최강제국의 지옥군단이 뒤를 밟을 것이다. 하지만 너 또한 아사신족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지. 삶이란 모험인 법. 직접 너의 의지로 뮤뉴하렌에 아사신족 일당을 알려라.”
 
“후회할 것이다, 인신족의 앞잡이 놈아!”
 
에드가가 드러난 지옥문을 뚫고 사라졌다. 나르낙샨이 그 뒤를 밟았다. 신마탄총과 광선검을 갖추고 선계 전함들에 나누어 탄 방대한 최강제국 어둠 군단이 나르낙샨 뒤를 따라 진군해갔다. 군단의 뒤로, 윤회하는 뱀 우로보로스 모양 귀걸이를 찬 마공인간 미츠니티가 붉은 창에서 예리한 기운을 흩뿌리면서 뒤따랐다. 미츠니티는 군단을 끌고 오지는 않았지만 개인 무력이 극초인간답게 고강했다.
 
나르낙샨과 미츠니티가 이끄는 군단은 아사신족 일당의 위용을 보았다. 예상대로 그들은 강대했고 온갖 종족의 문명 6 존재들로 이루어졌는데 물론 타락한 존재들이었다. 미츠니티가 창끝에서 파라탐 도법을 내쏘아 아사신족들 중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거꾸러뜨렸다. 곧바로 나르낙샨이 이끄는 어둠군단이 격동했다.
 
나르낙샨은 아사신족들을 체포하면서 말했다.
 
“아사신족은 문명들이 포용적 태도를 통해 쌓아 올린 업적을 후대에 태어난 주제에 갉아 먹는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아사신족의 정신을 두고 볼 때 생물 탄생 초기부터 그런 자세를 견지했다면 번식조차 못 하는 탄수화물 덩어리로 그쳤을 것이다.”
 
미츠니티가 옆에서 즐겁게 말을 받았다.
 
“말 잘 들었지? 내가 보기에 아사신족은 물질 초기에 저런 식의 생활양식으로 일관했다면 모조리 모든 정보가 뒤섞여서 일체화되어 단순함의 극의를 달리는 블랙홀이 되어버렸을 놈들이야. 자아를 포기하지 않을 뿐 아사신족은 그런 존재지.”
 
아사신족들은 흩어졌지만 몇몇은 체포할 수 있었다. 이들을 무간지옥에 던졌고 에드가는 일부러 잡지 않고 풀어주었다. 에드가에겐 나르낙샨의 숨겨진 인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르낙샨과 미츠니티는 에드가를 잡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오판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삶이란 싸움이다.
 
 
[Fin]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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