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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노인과 바다와 인어

2024.01.16 06:0301.16

1.

노인은 바닷가에서 혼자 살았다. 공공 해수욕장을 지나고도 한참 걸어서 다시 공장 지대와 생선 양식장을 지나쳐야 나오는 곳이었다.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사는 사람은 더 없었다.

노인의 집은 낡고 작은 단층집이었다. 집 바깥은 바닷바람과 소금기에 절어 있었다. 앞문은 좁고 금 간 시멘트 계단과 연결되어 인도로 통했고 뒷문은 바닷가로 통했다. 모래사장 위에 작은 보트 한 척이 노 두 자루 낚시 장비와 함께 누워 있었다.

노인은 예전에 은퇴했고 연금으로 살았다. 노인의 삶은 복잡하지 않았다. 세 끼 밥 먹고 살림하고 홈트레이닝으로 건강과 몸매를 가꾸면 하루가 갔다. 주말이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낚시를 나갔다. 잡아서 팔려는 낚시질도 아니었고 노인의 보트 역시 규격 미달이었으므로 노인은 낚시 허가를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노인의 낚시 솜씨가 좋지 않았으니 낚시 허가를 받는 게 외려 민망했다.

세 번의 금요일 밤을 껴서 84번 나간 낮 혹은 밤낚시에서 노인이 저녁 반찬거리를 낚아 온 적은 별로 없었다. 중간치 크기 고등어가 몇 번 잡혔고 멍청하게 생긴 갑오징어가 두 번인가 잡혔다. 한 번은 얽히고 섥힌 비키니 두 세트가 낚여 올라왔다 (노인은 이 비키니의 임자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잠깐 궁금했다).  노인이 바다로 나가는 목적이 과연 생선을 잡아서 반찬을 삼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햇빛 아래 바다, 혹은 노을이 이끄는 초저녁 밤의 고요함 속에 파묻히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노인은 그저 꾸준히, 빈 고기 바구니와 미끼통만 들고 집으로 오기를 반복하면서도 주말이면 직장 다니듯 바다로 나갔다.

노인이 85번째 낚시질을 나간 것은 저녁때였다. 노인은 아직도 큰 고기를 낚아 보고 싶다는 가늘고 길게 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오랜만에 시간대를 저녁때로 바꿔 보기로 했다. 일기 예보도 좋았고 몸 컨디션도 좋았다.  혹시 몰라서 보트에 달린 간이 모터는 점검해 두었고 해양용 GPS 앱도 폰에다가 다운받아 두었다.  

노인은 자기 집이 있는 바닷가가 막 시야에서 벗어날 무렵 노질을 멈추었다. 노인은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아래 넓게 펼쳐진 바다에 홀로 있었다. 작은 별 같은 노인의 집 불빛만이 유일한 지표였다. 오늘 노인이 주책맞게 좀 멀리 나온 건 맞다. 하지만 노인은 은퇴해서 유유자적하고 단조롭게 사는 인생에서 묻어나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집에서 가져온 큰 플래시를 켜서 배 안에 얹어 두었다.

노인은 수제 밑밥을 좀 깔고, 생 정어리 한 마리를 꺼내 낚시에 꿰어 드리웠다. 싱싱한 정어리는 노인이 반찬으로 쓰려고 집에 남겨 뒀고, 신선도가 떨어져서 마트에서 할인판매하는 정어리만 골라서 미끼로 가져왔다. 노인의 심보가 그러하니 크고 좋은 고기가 잡혀 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아랑곳없이 작은 낚싯줄을 몇 개 더 드리웠다.

제법 성과가 있었다. 고등어 몇 마리가 잡혀 올라왔다. 노인은 흥분했다. 이전에 하루 종일 나가서 고등어 한 마리 잡아 온 것에 비하면 아름다운 결과였다. 그러더니 저번처럼 갑오징어 한 마리가 잡혔다. 다음에는 손바닥만한 해파리 한 마리가 잡혔는데 놓아 주었다.

그 후 30분 동안 고기가 잡혀 올라왔는데 이상하게도 모두 도미였다. 제법 살이 통통했고 모양이 좋았다. 노인은 이거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오늘이 유독 운수 좋은 날일 리가 없었다. 노인은 자기 낚시 실력을 알고 있었고 시간대만 바꾼다고 이런 조과가 날 수가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노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젠장, 낚시질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배가 파도에 조금씩 움직여 버렸다. 길잡이용으로 켜 둔 집 불빛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사방은 깜깜했다. 여기가 어디야? 노인은 GPS 앱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 노인의 위치는 해안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모터를 쓰면 집에 곱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노인의 위치 근처에 있는 것이 도미 양식장이었다. 노인은 플래시 불빛에 드러난 도미를 내려다보았다. 중짜 여섯 마리였다. 이거 잘못하면 도미를 골라서 노리고 온 도둑놈으로 오해받게 생겼다. 더군다나 낚시 면허도 없어? 물론 낚시 면허가 없다는 게 불법은 아니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더 얹어 받을 수도 있다.

이제는 물러나야 할 때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자연과의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고, 다음을 기약하는 아쉬움마저 노인은 사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정어리를 꿰어 둔 큰 낚싯줄이 휙 당겨지면서 보트 자체가 기우뚱했다.

“어엇!”

노인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보트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고 낚싯줄은 계속 풀려 나갔다.

낚싯줄을 끊을 수도 있었다. 그걸 뒤로 하고 보트를 몰아 집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자기 앞에 놓인 이 상황과 맞서 싸워 보기로 결심했다. 노인은 노질과 홈트에 단련된 두 팔로 낚싯줄을 잡아, 심연 아래에서 그에게 싸움을 건 거대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의지에 반하여 그걸 잡아당겼다. 보트가 다시 흔들리면서 플래시가 바닥에 떨어졌고 의지할 빛이 없어졌다. 노인은 완전히 어두워진 속에서 온전히 팔의 감각에만 의존하며 고기와의 씨름을 계속했다.

노인과 고기는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팔이 아파 오는 속에서도 노인은 줄의 감각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인과 고기와의 대결 이외에, 물 밑에서 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마치 고기가 노인과 싸우는 동시에 뭔가 다른 것과도 싸우면서, 그 때문에 고기 자체의 힘은 분산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무게는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럴수록 노인은 자신의 팔에, 온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이미 시작된 싸움이었다. 끝까지 가야 한다.

낚싯줄이 팽팽히 당겨졌다.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낚싯줄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진 듯 목숨이 질겼고 제 할 일을 몸 바쳐 하고 있었다.  비싼 물건이라 값을 하는군! 노인은 팔을 꺾어 잡으며 생각했다. 한낱 낚싯줄이 이 정도 밥값을 해 준다면 노인 역시 온몸을 불살라야 한다. 노인은 낚싯줄을 믿고, 줄을 끌어올렸다.

노인의 승리였다. 물 밑에서 죽일 듯 개기던 물고기가 드디어 항복을 하고, 어쩌면 느끼지도 못했을 짧은 순간 아래에서 당기던 힘이 없어졌다. 노인은 휘청 하며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몸을 낮추며 균형을 잡았다. 줄 끝에 낚인 고기가 뛰어오르듯 끌어올려졌다. 고기가 배 안으로 들어왔을까 아니면 뱃전에 걸렸을까 하고 생각 중인데, 갑자기

“으헉!”

배가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고기가 걸린 쪽에 뭔가 무거운 것이 매달려 왔다. 아니다, 단순히 매달려서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엄청나게 첨벙대는 소리와 더불어 뭔가 커다란 것이 있었다. 노인은 낚싯줄을 놓았다.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이 노인의 머릿속에서 경보를 왱왱 울려 댔다. 노인은 배 바닥을 더듬어 노를 쥐었다. 낚싯줄에 시달린 손아귀에 힘이 주어지지 않으려는 것을 노인은 억지로 추슬러 꽉 잡았다.

배가 출렁거렸다. 그 커다란 것이 배 위로 기어올라왔다, 뱃전 위에 있었다. 노인은 본능만 남은 상태로 노를 야구배트처럼, 몸 전체의 세포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힘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써서 휘둘렀다. 퍼억! 허공을 가른 노는 무언가를 분명히 후려쳤다. 그리고 터억 하고 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노인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플래시고 뭐고 찾을 생각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노인은 모터를 켜고 폰을 켰다. 폰의 조그만 불빛이 생명줄 같았다. 노인은 핏발 선 눈으로 화면의 GPS 를 응시하며 배를 해안으로 몰았다. 모터 소리가 어두운 밤바다를 가르며 길게 꼬리를 끌었다.

 

2.

노인이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노인은 자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침대까지 왔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옷도 못 갈아 입고 바로 누웠던 듯, 바닷물과 모래가 옷과 침구에 잔뜩 묻어 있었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말랐다.

노인은 어젯밤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해안가에 닿았고, 집에 돌아왔다. 대단하게 먼 바다로 나간 것도 아니었는데 어젯밤의 예기치 못한 체험 때문에 노인에게는 그것이 무지무지하게 힘들고 먼 길처럼 다가왔다. 보트 안에 뭐가 남았는지 들여다볼 생각도 못하고 구르듯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떨리는 손으로 선반에서 술병을 꺼내 병째로 몇 모금 마셨다. 기억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노인은 오늘 하루는 침대를 다시 손보고 빨래를 엄청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실 문을 열었다. 거실 겸 식당 겸 주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가 모래투성이였고 신발 자국이 있었다. 발을 내려다보니 바닷물에 푹 젖은 신발을 아직도 신고 있었다. 어젯밤이 정말 끝내줬었나 보다.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노인은 내가 아직도 술이 덜 깼나보다 생각하며 복도 끝에 섰다.

노인의 사고가 일시 정지되었다.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낡고 작은 식탁과 의자가 뒤집혀져 있고 소파 위에 있던 방석 몇 개는 바닥에 떨어져서 모래와 바닷물투성이였다. 바닷가로 통하는 뒷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바닥은 모래와 해초로 지저분했다. 그 위에 뭐가 앉아 있었냐면,

인어였다.

인어는 몸이 푸른 기가 돌 정도로 희었고 길고 새카만 머리는 미역줄기 같았다. 커다란 눈은 물고기 눈처럼 광택 없이 검었다. 한쪽 어깨와 뺨에 노 자국처럼 생긴 피멍이 들어 있었다.  인어는 당연히 알몸이었고 머리카락 밑으로 출렁거리는 아랫몸이 다 드러났다. 하반신에 돋은 비늘이 허리까지 올라오지 않아서 인심 좋게 푸짐한 엉덩이가 넉넉하게 보였다.

인어는 어젯밤 노인이 휘두른 노에 단단히 얻어맞은 듯 동작이 느리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니까 바다로 도망가는 대신 정신 못 차리고 가정집 뒷문으로 들어왔겠지. 인어는 꽃 같은 탐스런 입술이 달린 주둥이에 커다란 도미 한 마리를 단단히 물고 있었다. 노인이 어젯밤 대결을 펼친 물고기였다. 노인이 젊었던 수십 년 전 일본인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잔치 음식에 나왔던 것 같은 특대 사이즈였다. 이미 인어가 얼마간 먹어치운 상태라 도미는 뼈가 드러나 있었다.

노인은 몇 개의 파편으로 쪼개지는 자신의 의식을 깨달았다. 그 자리에 굳은 채 노인은 인어를 내려다보았다. 인어 역시 동작을 멈추고, 까만 눈으로, 아직도 입에 죽은 도미를 문 채,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둘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서로 마주보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침묵을 깨고 인어가 퍼드덕거렸다. 탐스러운 입술에서 도미가 뚝 떨어졌다. 굵은 바늘보다 뾰족한 도미의 등지느러미가 인어의 손등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인어가 끼이! 끼이! 소리를 내며 꼬리를 퍼덕거리자 바닥이 울렸다.

이런 젠장. 노인은 급한 대로 정신이 돌아왔다. 노인은 인어에게 달려들어 도미를 떼어내려 했다. 인어가 노인을 물려고 했다. 노인은 주먹으로 인어의 이마를 퍽 때렸다. 끼! 하고 인어가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노인은 인어의 어깨를 밟고 도미를 인어의 손에서 뺐다. 희푸른 인어의 손등에 뻘건 점 같은 상처가 줄줄이 남았다. 노인이 발을 떼자, 인어는 푸드덕거리며 소파로 도망갔다.

 “아 이거 정말—”

노인은 말을 더 하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 인어의 몸에서 물기가 좀더 말랐던 듯, 이제 인어의 하반신은 사람 다리 모양이었다 (발뒤꿈치와 종아리 부분에 지느러미가 살짝 붙어 있긴 했다). 인어는 엎드린 것도 앉은 것도 아닌 구불텅한 자세로 소파 앞에 피신해 있었다.

노인은 망연히, 반 이상 뜯긴 도미를 한 손에 들고 인어를 넋 잃은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인어는 손등에서 피를 흘리는 채로 노인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도망을 갔다. 사람 다리는 모양만 다리인 듯, 인어는 제대로 걷거나 뛰는 대신 하반신을 질질 바닥에 끌면서 뱀장어처럼 몸을 뒤채며 뒷문으로 나갔다. 노인은 인어의 동작에 홀려 다른 것을 잊고, 인어가 나갈 때까지 눈도 떼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노인은 그날 오후를 판단력이 마비된 상태로 보냈다. 뇌가 손을 놓아서 머리는 텅 빈 채, 손발만 기계같이 움직여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치워야 할 것 정리해야 할 것 빨아야 할 것이 끝도 없었다.

인어라니, 맙소사. 유명한 생물이지만 노인은 인어를 한 번도 실물로 본 적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랬는데 늘그막에 집안에서 그걸 만나다니. 인어라니 맙소사. 노인의 심장이 새삼스레 요동쳤다.

대충 집안 꼴이 잡혔지만 노인은 집안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어젯밤 잡아 온 고등어와 도미가 어떻게 됐는지 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노인은 뒷마당 해변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인어의 흔적이 모래밭을 휘젓고 바다 속으로 도망간 자국만으로 남아 있다고 해도, 그 자국조차 노인이 받은 충격을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생선을 밖에 저렇게 내놓으면 배 안에서 썩을 거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게 더 끔찍하다.

노인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바깥으로 나가 볼 용기를 냈다. 노을로 하늘이 온통 벌갰고 붉은 햇살은 수평선에 닿으면서 시커매지는 바닷물에 닿아 지저분한 파편을 만들어 냈다.

생선은 배 안에 그대로 있었다. 인어가 입을 댄 자국은 없었다. 고등어도 도미도 이미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노인은 생선을 거둬 모아 치웠다. 배 안을 한 번 씻어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서야 허기를 느꼈다. 

 

말끔히 치워진 거실과 식당은 인어 같은 게 처음부터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멀쩡했다. 노인은 어쩌면 어제 오늘 일이 모두 다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지친 몸이 한층 더 지쳤다. 노인은 밥 하기가 귀찮아 라면을 끓여서 훌훌 넘겼다.

노인은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별로 의미도 없는 정보가  잠그지 않은 수돗물처럼 끝없이 쏟아졌다. 일어나서 침실로 가자 거기서 자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노인은 가물가물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다.   

 

노인은 꿈인지 아닌지 모를 소음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다. 익숙지 않은 소음이 어디선가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기계 소리 같기도 하고, 어린 강아지가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끼이 끼이 끼이.

그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노인은 등덜미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불을 켤 것도 없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텔레비젼 화면 불빛에 희미하게,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인어의 모습이 비쳤다. 노인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인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싱크대로 천천히 향했다.

노인은 싱크대 옆 전기 스위치를 올리는 동시에 식칼을 쥐었다.

“하이구. “

노인이 낮게 말했다.  식칼은 아무 필요가 없다. 인어는 누군가를 공격하고 덤빌 상태가 아니었다. 한쪽 손등이 부어 있었고 벌겋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낮에 도미 등가시에 찔린 것이 탈이 난 게다. 항생제. 항생제. 노인은 급히 구급약 상자를 뒤져서 병원 처방전 받아 산 다음에 버리지 않고 뒀던 연고 남은 걸 꺼냈다. 노인이 가까이 가자 인어가 끼이끼이 거리는 걸 멈추더니 이번에는 아아 아으 소리를 냈다. 끼이 소리보다 더 사람 음성 같았고 그래서 더 징그러웠다.

노인은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인어의 손등에 연고를 댔다. 인어는 아으 소리를 한 마디 냈을 뿐이었다. 얘가 가만히 있네. 노인은 속으로 놀랐다.

 노인은 연고를 상처와 그 주변에 발랐고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 노인의 마른 손끝에 닿는 극히 짧은 동안의 감촉은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감염이 되어 부어올랐을지언정 인어의 손등 살갗은 섬세한 실크 천처럼 보드라웠다.

노인은 자기가 하는 짓을 반쯤은 의식하면서 인어를 보았다. 인어는 낮에 봤던 때보다도 몸을 가누는 것이 힘들고 느려 보였다. 노인에게 덤비려 하거나 물려고 들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노인과의 거리가 가까운데도 인어는 몸조차 빼지 않았다. 노인은 문득 생각했다. 이것이 혹시 나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우리 집에 일부러 돌아온 건가. 하지만 내가 저를 어떻게 할 줄 알고, 날 어떻게 믿고서, 이렇게 대책없이 나한테 왔어?

그리고 난 어떻게 앞뒤 재지도 않고 너한테 약을 발라 준 거지.

노인은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록 인어 역시 움직임이 없다가, 천천히 바닥 위에 몸을 오그렸다. 노인은 갑자기 피로를 느꼈다. 뒷걸음질로 침실로 도망쳤다. 잠들기 전에 침실 문을 잠갔다.

 

노인은 한낮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방문을 여는 것을 노인은 주저했다. 인어 그것이 아직도 우리 집 안에 있을까? 하지만 침실에서 계속 처박혀 있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배가 고프다. 노인은 숨을 가다듬고 문을 열어, 방 밖으로 나갔다.

인어는 아직도 있었다. 부엌 바닥에 구불텅하게 앉아 있었다. 바닥에 설거지 안 한 채로 내버려 둔 라면 냄비가 뒹굴고 있었고 냉장고 문이 열려 있었다. 인어의 입가에 뭔가를 먹은 흔적이 묻어 있었다. 노인은 아직도 인어에 대한 경계를 백 퍼센트 풀지는 못한 채 그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인어는 손을 쓸 줄 알았고 냉장고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의 팔힘이 있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찬밥과 남은 반찬 과일 쪼가리들에는 인어가 지저분하게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노인이 먹으려고 그릇에 덜어 놓은 참치 통조림은 인어가 그릇 바닥까지 깨끗이 먹어 치웠다.

인어는 노인의 기색을 느끼고는 이쪽을 보았다. 인어의 눈에는 흰자위가 없었고 커다란 눈이 검었다. 검다 못해 푸른 기 도는 긴 머리칼이 몸을 덮고 있었다. 도미 가시에 찔린 손은 빨리도 나아서, 붓기가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 물고기 하반신 대신 다리가 있었다.

인어는 인간 여자의 몸이었다.

노인은 숨이 멎는 것을 느끼며 인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피곤해서 판단력이나 시력이나 기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거 알면서도, 어쩌면 자기가 노망이 나기 시작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도,  인어의 자태에 노인은 영혼의 뿌리 끝까지 홀렸다. 노인이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어가 가진 몸은 노인이 꿈꾸어 본 적조차 없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3.

인어의 손은 금방 나았다. 노에 얻어맞은 멍도 없어졌다. 멀쩡하게 회복된 인어는 바다로 갔다가 노인의 집으로 매일 매일 다시 왔다. 노인은 바닷가로 통하는 뒷문을 열어 둔 채 인어를 기다렸다. 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으면서 노인과 인어는 뻔뻔스럽게도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인어는 빠른 속도로 노인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순한 짐승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노인이 예전에 자기를 노로 쥐어팬 건 신경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인어에게 노인은 도미 가시에 찔려서 찾아갔더니 자기에게 약을 발라 치료를 해 준 고마운 존재였고, 이상하고 차가운 상자 안에 맛있는 것도 모아 두었다가 자기에게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인어는 노인과 같이 있는 것이 좋은 눈치였고 단순하고 행복한 기색이었다.

노인은 인어가 오면 인어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바닷가에 같이 있기도 하고 라디오도 같이 듣고 텔레비젼도 같이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노인은 때때로 깊고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노인에게는 그날 낮의 광경이 낙인처럼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햇빛이 부드럽게 들어와 퍼졌던 부엌 바닥에, 물고기 꼬리에서 변한 다리를 쓸 줄 몰라 몸을 뒤튼 채 앉아 있었던 인어. 완전한 여자 몸으로.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여신 같았던 모습.  

노인은 애써 생각을 돌렸다. 노인은 인어에게 연민을 느꼈다. 거친 바다에서 살아가는, 강한 면과 약한 면이 동시에 있는 바다 생명체, 나름의 매력과 성격이 있는 커다란 물고기 같은 존재, 하나의 생명, 하나의 존재. 생태계. 하나뿐인 지구. 환경. 자연은 소중한 것이여. 하지만 노인은 그런저런 생각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있어 보이는 겉 생각을 걷어내고 나면 노인이 붙들고 있는 것은 인어를 향한 욕망이었다. 노인은 그걸 깨달았고, 인정했다.

노인이 오랜 세월 동안 봉인해 두었던 색욕에 다시 눈 떴다고 해서 인어한테 뭔 짓을 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쳐다보기만 했고 대단한 접촉도 없었다. 노인은 기본적으로 점잖은 신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은 겉으로는 표정 관리 중이어도 마음은 점점 더 깊어졌다. 젊은 여자의 형상을 하고, 그에게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그의 음식을 (허락도 없이) 나눠 먹고, 그에게 좀더 익숙해지고 좀더 찾아오는 존재. 나에게 다가오는 너. 너의 깊고 까만 눈, 내 반찬을 사정없이 먹어치우는 탐스러운 입술,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고픈 해초 같은 검은 머릿결, 몸에서 물기가 마르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두 다리, 걸친 것 없이 물결치는 너의 몸, 너의 따스하고 다정해 보이는 얼굴, 몸짓.

넌 아름다워. 넌 내게 세상 무엇보다도 아름다워. 어쩌면 넌 내가 좋은 게냐? 날 좋아하니? 난, 이미 네가 좋다. 네가 날 좋아한다면 난 준비가 됐어. 내가 너를 한 번 안을까? 널 가질까? 인어야 나한테 오너라. 내 팔 안에. 품 안에. 사랑하고 있어. 너를 사랑하고 있어.  

인어가 없는 시간이면 노인은 인어를 떠올렸다. 그의 상상 속에서 인어는 노인을 사랑하는 젊은 여자였다.  노인은 상상 속에서 아주 조금 더 젊어졌고, 좀 수줍어하는 인어를 나이 어린 연인처럼 대하며 그녀를 다독이고 이끌었다. 인어는 노인의 리드를 따르며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기뻐했고, 노인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정작 인어가 앞에 있으면 쪽팔려서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인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개같이 굴었다. 생선 반찬은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어댔고, 아무데서나 눕고 앉고 뭣도 걸치지 않은 두 다리를 짝 벌리고 맨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기분 내키면 끼끼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은 또 많아서 집안 물건을 살살 건드렸다.

급기야 인어는 어느 날 노인의 텔레비전 리모콘을 건드려 제 손으로 채널을 켜고야 말았다. 노인은 기겁을 하며 인어에게서 리모콘을 빼앗았고, 그 직후 자기가 보던 포르노 채널의 연회비가 밀려서 더 채널이 안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다행스럽게도 인어가 고른 채널은 어린이 프로그램 전용 채널이었고 인어는 그게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는지 노인이 다른 채널로 돌리면 끼끼깨깨 신경질을 냈다.   

인어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며칠간 별다른 말썽을 안 부렸다. 노인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어가 어지른 것들을 치웠다.

그리고 인어는 TV 유치원 프로그램에서 사람 말 하나를 배워 왔다.

“하브지”

“뭐?”

“하브지. 하브지.”

인어는.

노인의 존재를.

텔레비전을 통해 인식했다.

할아버지.

라고.

그렇다고 저거한테, 난 할아버지 아니야 젊은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겠느냐 라고 하기에 노인은 너무 양심적이었다.

노인은 현실에 굴복했고, 인어가 자기를 하브지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했다. 상상 속에서 노인은 아주 약간 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그만큼 더 연륜 있고, 더 자상하고, 더 이해심 깊은 연인이 되어 인어를 대했다. 상상의 인어가 입술을 열어 하브지, 라고 부르는 것마저 노인은 기뻤다.

 

인어는 바다로 돌아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노인은 남아 도는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인터넷으로 인어를 검색했다. 인어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지 읽고 클릭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홍수에 노인은 거의 떠내려갈 뻔했다. 안데르센의 낡은 동화부터 오래된 신문기사까지. 노인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읽으면서 눈치 없는 왕자새끼를 속으로 욕을 했고,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감정 이입이 잘 안 된 채로 심드렁하게 넘겼다. 할로윈 인어 코스튬과 일본의 인어 괴담을 넘기자 남는 정보는 의외로 몇 개 없었는데, 거기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오래된 신문기사였다. 어묵 공장에서 시작한 거대 해산물 기업이 세계 최초로 인어 형상의 물고기를 유전자 조작으로 개발해 냈다는 것이었다. 사진도 있었다.  정말로 인간 여자와 물고기 꼬리를 가진 생명체가 수조 속에 있었다. 인어의 눈은 시커멓고 생선 대가리처럼 멍청해 보였다. 자주 묻는 질문 리스트도 있었다. 이거 혹시 사람 유전자를 섞은 건 아니겠죠? 대답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큰일날 소리. 순도 백 퍼센트의 물고기 재조합 유전자 변형 동물입니다. 정부 인증도 통과한 제품이에요. 어떤 유전자를 어떻게 섞었는지는 극비사항이랍니다. 저희 회사의 첨단 기술이며……

그 유전자 재조합 동물은 관상용으로 팔려 나갔다. 생긴 걸 봐서도, 가격으로도, 공장에서 찍어 내서 염가로 팔 물건은 아니었다. 부자 동네에서 개인 수족관에 넣을 용도나, 커다란 아쿠아리움이나, 하다못해 유흥가 나이트클럽에서도 눈요기용으로 사 갔다.

노인의 미친 듯한 검색질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회사 웹사이트가 침을 튀겨 가며 아니라고 했어도 인어에게 사람 유전자가 섞였다는 루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동시에 인어 자체에 대한 인기는 빠른 속도로 떨어져 갔다. 인어가 팔리지 않으니 해산물 기업은 생산을 중단했고, 설상가상 생산 설비 어딘가에서 폭발인가 화재인가가 있었다. 기업은 유전자 재조합 생물이 해양으로 대량 유출될 일은 없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간간이 인어를 발견했다는 신문기사나 체험담이 있었다 (그런 뉴스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기업은 사후 처리가 재빨라서 인어를 발견하는 족족 금전적 보상을 하고 회수를 했다. 기업 웹페이지를 보면 아직도 인어 회수를 철회하지 않고 있었다 (폐사는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교란된 해양 생태계의 회복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노인이 인어를 잡아다가 해산물 회사에 갖다 주면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노인은 그 같은 가능성에 몸서리를 쳤다. 저 예쁜 걸. 말도 안되는 소리.

인어가 인기를 잃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인어는 사람만큼 덩치가 크면서 수명도 오래 기르기 귀찮을 만큼 길었고, 많이 먹었고 많이 쌌고, 별다른 쓸모가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죽었을 때 징그러웠다. 죽은 인어의 눈은 빠르게 백탁이 진행되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 주름이 졌다. 그렇게 죽어 널브러진 걸 수조에서 들어내어서 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죽은 인어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어떤 놈이 엽기 게시판에 조회수를 올릴 생각으로 올려 놨던 것이다. 입은 벌어지고, 열린 눈꺼풀 아래 허옇게 변한 두 눈이 있고, 길고 두꺼운 혀를 빼물고. 인어는 문 닫은 나이트클럽 수조에서 굶어 죽었다. 클럽은 망해서 문을 닫았고 아무도 인어 따위를 거둘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시청에서 세금을 들여 가며 치웠겠지. 음식물 쓰레기에 섞어서.  

노인은 죽은 인어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소름이 돋았고, 몇 번의 클릭 이후에는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노인은 그 사진 때문에 거실에 있는 인어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다. 사진 속의 인어는 제대로 관리 안 된 수조에서 대충 길러지다가 일찍 죽은 거고, 나는 우리 인어에게 저런 식으로 대해서 빨리 죽이거나 하지 않을 거니까. 내 인어는 저렇게 되지 않을 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4.

일단 노인이, 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틀자 노인의 상상은 정교하게 가지를 쳐 갔다. 단순히 인어를 상상 속의 연인으로만 대하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대신, 노인의 머릿속에는 인어를 길들여서 침대에 넣을 계획이 움텄다.

내가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구. 난 내 인어에게 유흥가의 수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주고 있어. 우리 이쁜이는 온 바다가 자기 집이야.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나는 그 아이를 가두거나 한 적이 없어 안 그래? 난 걔한테 나이스하다구. 다친 것도 치료해 줬고 먹을 것도 주고 있잖아. 내가 걔를 해치려는 게 아니잖아. 그 아이를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잖아. 사랑하니까, 조금 더 인간처럼 사랑하려는 거 뿐이잖아.

인어도 좋아할 거야. 이미 나를 따르고 있어. 게다가 몸에서 물기가 완전히 가시면 완전히 인간의 몸인걸. 내가 사랑을 확실하게 표현하면 더 좋아할 거야.

 

노인은 인어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노인이 조금씩 인어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소파 위에 파묻혀 있던 인어가 하브지 하면서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흰자위가 거의 없는 까만 눈동자가 싱싱했다. 인어는 노인을 완전히 믿었고 조금의 경계도 없었다. 노인은 인어 바로 옆에 붙어 앉았다. 노인의 심장이 고동치며 더운 피를 온몸으로 퍼뜨렸다.

노인은 마른 입술로 거의 속삭이다시피 말했다. 내 예쁜 아가. 인어는 노인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 듯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가까이서 보는 인어는 몹시도 아름답다. 고운 얼굴과 물처럼 흐르는 검은 머릿발을 가진 그녀는 여자였다. 노인은 저도 모르게 숨이 더워지며 인어에게 거의 몸을 밀착하다시피 했다. 인어는 가만히 있었다.

“인어야”

노인의 목소리가 긴장에 갈라졌다.

“…… 내 예쁜 인어야”

노인은 주름진 팔을 들어 인어의 알몸을 안았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인어가 아무 몸짓도 하지 않자 좀더 꽉. 인어의 몸이 노인의 품 안에 가득 찼다. 인어는 처음 당해 보는 노인의 포옹이 답답한 듯 잔물결처럼 버둥거렸다. 그 몸짓이 노인을 견딜 수 없게 했다. 노인은 온몸에 힘을 주어 인어를 단단히 껴안고 핏기 없이 하얀 볼에 입맞춤을 했다.

처음이니까 키스까지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지만 노인은 그 짧은 동안 자제를 못 했다. 노인은 인어를 안은 팔에서 힘을 좀 빼 주는 대신 입술을 인어의 볼에서 목으로, 어깨로, 그러다가 가슴으로 내렸다. 인어는 끼이, 하고 한 마디 말했을 뿐 잔몸짓조차 더 하지 않았다.

노인은 인어의 보드라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인어에게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물고기 냄새와는 달랐다. 물과 바람과 하늘과 파도의 냄새. 노인은 그 냄새 때문에 하던 짓을 멈추고 인어를 올려다보았다. 인어의 눈은 깊은 밤바다처럼 아무것도 없이 까맣기만 했다.

 

바다로 돌아가기 며칠 전부터 인어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냉장고를 털기는커녕 차려 놓은 음식에도 입을 대지 않았다. 그런 채로 인어는 바다로 갔고, 도통 오지를 않았다.

노인은 인어가 오기를 매일 기다렸지만 시간만 헛되이 지나갔다. 노인은 기운을 잃어 갔고 일상이 흐트러졌다. 노인은 아무것도 못 하고 바다를 쳐다보며 날을 보냈다. 인어가 얼마 지나면 또 오리라는 희망은 있었지만, 노인은 걱정이었다. 인어는 내가 한 짓이 싫었을까? 그래서 아주 떠나 버린 걸까? 먼 바닷물 속에 인어가 있는 것 같아 시선을 던지면 인어는 거기 없었다. 모래사장에 밀려 오는 파도에도 인어는 섞여 있지 않았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건데. 노인은 생각했다.

널 사랑하는데, 아직도.

노인은 인어가 보고 싶었다. 인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난. 밀물 같은 슬픔이 노인의 가슴에 밀려들었다.

 

5.

인어는 계절이 바뀌기 시작한 밤 갑자기 돌아왔다.

낯선 기척에 잠을 깨서 거실로 나가 불을 켰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인어는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물기 마른 두 다리 사이에 강아지 크기만한 생선 알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인어는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찌푸리며 으응 하고 낮게 신음했다.

노인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뒤 생각 없이 인어에게 달려들었다. 바닥으로 몸을 굽혀 인어의 윗몸을 안아 일으켰다. 산란이 끝난 인어의 얼굴은 마르고 지쳐 보였다. 인어를 안아 올리자 빈 자루 같은 가벼운 몸이 훅 들리고, 알주머니가 자루처럼 바닥에 툭 떨어지며 터졌다.사탕 크기만한 알들이 찢어진 틈으로 흘러나왔다.

노인은 인어를 침실로 데려가 자기 침대에 눕혔다. 인어가 까칠한 입술과 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인어가 속삭였다. 하브지. 인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이 말은 잘게 흔들리는 감정과 함께 와 닿았다. 인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 분명히 첫번이었을 산란 경험에 겁먹고 있었다.  

노인은 인어의 눈꺼풀을 쓸어내려 주며 말했다.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좀 자거라. 인어는 짧게 끼이 끼이 울다가 좀 지나서 잠이 들었다.

 

노인은 침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인어의 알주머니와 알을 치웠다. 치우는 것이 별 일 아니었는데도 끝내고 나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들었다. 노인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갑자기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인어를 처음 보았던 순간, 처음 반했던 순간, 마음 속에 품었던 갖가지 욕망,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느낌, 인어를 안고 입맞춤을 하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던 일, 처음부터 변함 없었던 인어의 자태, 인어가 오래도록 없었을 때 노인이 품어야 했던 그리움, 그리고 지금은 수십 년 전에 일어난 것처럼 멀게 느껴지는 인어의 산란.

노인은 자기 자신에게 혼란을 느꼈다. 나는 인어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인어는 나에게 뭔가. 어떤 존잰가. 나는 왜 인어에게 이렇게 하고 이렇게 느끼는 건가.

하지만 뭣보다도, 인어가 다시 돌아온 게 기뻐지기 시작했다. 내가 싫지 않았구나. 내가 보고 싶었구나. 나를 의지할 사람으로 보는구나. 네가 돌아왔구나. 이제 예전처럼 같이 지낼 수 있겠구나. 노인은 피로가 점점 나지막이 퍼지는 것을 안도감과 함께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노인이 눈을 떴을 때는 벌써 해가 훤했다. 이불 없이 잠들어서 그런지 온몸이 으스스했다. 인어는 거실에 없었다. 아직 침실에 있는가 보다. 노인은 침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인어는 방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얘가 문손잡이를 다룰 줄 몰라서 문을 못 열었다. 노인은 인어에게 몸을 굽혔다. 노인이 괜찮니? 하고 물을 새도 없이 인어가 노인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인어 쪽에서 노인에게 한 최초의 포옹이었다. 노인은 몸이 굳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데서 온 충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인어를 마주 안았다.

“…… 하브지”

인어가 불렀다. 인어에게는 아직도 감정의 동요가 남아 있었다. 노인은 인어가 완전히 몸이 풀리고 진정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인어를 안고 있었다.

 

6.

인어는 한동안 기운이 빠져서 지냈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잘 먹지도 않았다. 노인은 인어 주위를 맴돌며 이 음식 저 음식을 권했다. 인어는 입맛이 바뀌었는지 당근과 오이를 씹어 넘겼고 생선 요리는 손대지 않았다.

구석에 웅크릴 때를 빼면 인어는 노인 옆에 바싹 붙어 있었다. 노인의 목이나 허리를 붙들어 안고 대가리를 노인의 품에 파묻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인어를 감싸안으며 달랬다. 이 녀석이 아직도 알주머니를 낳았을 때의 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인어는 회복되어 갔다. 먹는 양이 늘었고 냉장고에서 고기와 달걀 생선을 골라 먹었다. 노인의 낡은 배에 붙은 미역을 뜯어먹기도 했다. 몸이 영양 보충을 하면서 느긋하게 풀어지고, 팽팽하던 기색이 느슨해졌다.

좀더 시간이 흘렀고 인어는 예전처럼 되돌아왔다. 바다에 갔다가 노인 집으로 오기를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 노인과 인어는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던 사이마냥 지냈다. 둘은 같이 집 안에 있거나, 같이 바닷가에 있거나, 같이 낚싯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도미 양식장이 있는 방향은 피했다).

노인은 낚시질을 했고 늘 그랬듯 뭐가 잡히는 일이 없었다. 뭘 잘 잡아 오는 건 인어였다. 인어는 열 번도 넘게 자맥질을 하면서 물고기를 잡아 왔다. 이번 시즌에는 고등어가 풍년이었다.

저녁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노인은 인어가 잡아 온 고등어를 손질해서 구웠다. 인어는 노인이 잘라 낸 생선 대가리와 꼬리 내장을 날것으로 먹어치우며 뒷마당 바닷가에서 뒹굴거렸다. 아직 지지 않은 햇볕이 인어의 꼬리를 말리면서 두 다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둘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노인은 밥반찬으로 두 마리를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 인어를 주었다. 인어는 제법 의자에 그럴 듯하게 앉아서 고등어구이를 닭다리처럼 뼈째 뜯어먹었다. 인어는 신나게 먹었고 노인의 먹는 속도는 느려졌다.

노인은 인어에게 할 말이 있었다. 인어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꼭 해야 했다.

“인어야. “

인어는 먹는 데 정신이 가 있어서 노인의 말은 전혀 안 듣고 있었다.

“인어야.

넌 나 때문에 사람을 알게 됐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아.

나도 너한테 언제나 좋은 인간은 아니었어. 너를….. 너를 범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모를 테니까 내가 좀 그래도 될 것 같아서. “

인어는 생선 한 마리를 새로 집어들었다. 인어의 손은 고등어 기름 범벅이었다.

“난 너를 모르겠다. 너는 물고기라고 되어 있지만, 어쩌면 네 몸 속에는 인간의 유전자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 회사에서 거짓말한 걸 수도 있잖아. 네가 이렇게 인간 여자처럼 생기고….. 아름다운데. 하지만 너를 완전히 여자로만 대할 수도 없어. 넌 인간이 아니니까. 나한테 와서 알까지 낳아 놓고.

너는 나한테 하나의 존재야. 낯선 우주, 모르는 세계가 통째로 나한테 온 것 같아. 너를 알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소용이 없을지도 몰라.

내가 너를 그렇게 안았을 때…… 더 이상 깊이 들어갈 수가 없었어. 너에게서 바다 냄새가 나면서. 너를 내 방식대로만 사랑하는 게 너를 더럽히는 것 같았고 그러고 나면 너도 바다도 다시 얼굴 똑바로 들고 쳐다볼 수 없을 것 같았어.

네가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나는 모르겠구나. 하지만 적어도 너는 나를 믿는 것 같아. 날 무서워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우리 집에 오고. 난 저도 모르게 너를 돕지.

아가. 인어야.

난 네가 다치는 게 싫어. 나 때문에 네가 해로운 일을 겪게 하기 싫어.

내가 살아 있는 한 너에게 좋은 것들, 좋은 일들만 한 가득 해 주고 싶어”

인어가 고등어뼈를 으득 씹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말랐다.

“아가. 나중에, 만일 내가 죽으면…… 여기로 다시 와서는 안돼.

아무 사람이나 쉽게 믿어서는 안돼.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돼.

내가 죽으면 바다로 가야 한다.  바다에만 있어. 육지로 올라와서는 안돼. 꼭 그래야 한다, 응?”

인어는 고등어를 우적우적 씹어 넘기고 있었고 노인은 자기 말이 독백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인어는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갑자기 노인에게 매달렸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경련이 일고 유리를 깰 듯 높은 비명을 질러 댔다.

“왜 그러니, 왜? 응? 인어야 왜!”

노인은 당황해서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인어의 비명에 노인의 말은 묻이고 말았다. 인어가 소리소리질렀다.

“하브지 하브지 하브지! 죽어! 죽어! 하브지! 하브지 죽어!”

인어는 제 손으로 가슴을 긁어 대며 바닥에 뒹굴었다. 노인은 발작하는 인어를 감싸안았다. 인어는 온몸이 뻣뻣한데 아직도 소리치고 있었다.

“하브지 죽어! 하브지 죽어!“

노인은 인어가 진정될 때까지 오래 껴안고 있어야 했다. 인어의 비명이 칼로 썰듯이 멎었다. 경련이 탁 하고 멈추면서 인어의 몸은 축 늘어졌다. 노인은 인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잘린 비명 너머, 고통으로, 슬픔으로 가득찬 어린 얼굴이 거기 있었다. 노인의 독백은 사실 인어에게 매우 천천히 닿았다. 인어는 지금 막, 죽는다는 개념을 이해했다. 그리고 노인이 언젠간 죽을 거라는 것도 이해했다. 지금 막.

노인 역시, 깨달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노인의 마음이 퍼덕거리고 뒤채이는 동안 노인은 자기 마음에만 신경을 썼을 뿐 인어의 마음은 모르고 있었다는 걸. 인어는 노인에게 길들여진 단순한 물고기 짐승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어는 자기 의지로 노인에게 다가왔고 자기 방식대로 노인과 함께 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죽음이라는 개념이 인어에게 이해 된 지금은 한층 더,  인어에게 노인은 아름다운, 잃고 싶지 않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어는 잠들어 있었다. 노인이 마련해 준 인어만의 잠자리가 있었다. 중고 욕조를 사다가 부엌문 옆에 놓고 바깥에서 바닷물을 양동이로 퍼 날라서 부었다. 인어는 그 안에서 잤다. 사람 침대나 소파는 인어의 몸을 지나치게 건조하게 했고 바닷물이 아무래도 필요했다.

보름 밤이라 달빛이 훤했다. 인어는 옛이야기에 나오는 미녀처럼 달빛 속에 하얗게 잠겨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하반신 끝의 물고기 꼬리가 욕조 밖에 걸쳐져 있었다. 노인은 그 옆에 앉아 인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어에게 정욕을 품었던 것이 까마득한 옛 일 같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인어의 자태였지만 노인의 마음 속에는 불길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노인의 마음에 다가들었다. 더운 물 같기도 하고, 진한 아픔 같기도 하면서, 그 사이를 칼날처럼 비집고 짧은 환희와 행복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인어야.

노인은 혼잣 속으로 말했다.

너를 사랑한다.  

노인은 갑자기 눈물이 치솟는 것을 알았다. 그게 욕조에 떨어져 수면을 흔들어 인어를 깨울까 싶어 노인은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노인은 침대에 들었다. 가라앉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파도가 드디어 잦아들고, 노인은 잠이 들었다. 달빛은 노인의 침실 창문으로도 흘러들어왔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노인은 햇빛 좋은 날의 푸르고 얕은 바닷물 속에서 인어가 행복하게 헤엄치는 걸 해변에 앉아 보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연L

느리고 조용한 글들, 마침내 태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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