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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죽음의 지뢰찾기

2017.11.11 23:3411.11

유영남은 밥을 먹다가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식은 찌개 위에 토를 했다. 먹은 게 곧바로 나왔으니 뭐가 찌개이고 뭐가 토사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토를 하니 가슴이 휑하니 비워진 느낌이었다. 유영남은 한참을 그렇게 영혼이 없는 돌처럼 고개 숙인 채 냉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겨우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보니 이제는 자신이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을 대충 치우고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마음이 실없이 울컥울컥하고 눈앞이 까무룩 했다. 

이유는 별 특별할 것은 없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시험에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5년 동안 시간만 버리고서 말이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없는 형편에 시험 때 드는 비용 혼자 벌어보겠다고 몇 년 간 아득바득 돈을 모았었고, 시험 이 년차부터는 커트라인에서 한두 문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개중 후자가 5년 동안 이 무용한, 결과적으로 무용하게 된 노동을 견인해 간 주역이었다. 마치 얼굴도 모르는 누가 귀매(鬼魅)라도 걸어 놓은 듯이 내리 4년 간 신기하게도 커트라인의 턱 끝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던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해서 무엇을 할까. 결과가 따르지 않은 복기는 이 고시라는 승부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꿈도 꾸지 않는 검은 잠을 한참 자고 난 유영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둘러싼 방의 공기가 이상하게 두터웠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비웃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영남은 노트북을 켰다. 5년 동안 초인적인 인내력을 가지고, 주중엔 인강을 듣고 주요 뉴스들을 체크할 목적으로 하루에 세 시간, 주말엔 스팀에서 이만 천원을 주고 산 고전 액션 아케이드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 목적으로 두 시간만 이용했던 중고로 산 낡은 노트북이었다. 부팅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모니터에는 허연 세로줄이 몇 개 가 있었다. 유영남은 늘 하던 대로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체크하고, 관심 있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구글에서 검색해 갈무리하면서 결핍된 세상과의 소통을 채웠다. 모든 것은 유영남이 보기에 빌어먹을 정도로 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유영남은 자기만 세계로부터 폐기처분 된 기분이 들었다. 

 

뉴스를 보니 또 폭발사고가 있었다. 20대 직장인이 자취하던 원룸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히 안에 있던 사람은 죽었다. 불에 탄 육편이 처참하게 흩어져 있었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 기사도 있었다. 비슷한 수법이었다. 그 원룸에 살고 있던 사망자의 가족이 거주하던 집에서도 동시적으로 폭발이 일어나 세 명을 산화시켰다. 여태까지 일곱 차례의 사고가 다양한 기간을 두고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관망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리고 보통 하던 것처럼 축소하고 숨기기에도 힘든 일이기에 경찰도 미친 듯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유영남이 이해하기 힘든 인터넷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로 제대로 진척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희생자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 희생자는 누구일지 짚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지는 않고 있었지만 사태가 이대로 장기화된다면 일반적인 소요 수준에서 끝날 일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뚜렷한 인상을 유영남은 받았다.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어머니일 터였지만 나중에 문자나 하나 보내는 것으로 해결을 보고 싶었다. 가족과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어두운 삶과 마주한다는 의미였다. 유영남은 되도록 그 일을 늦추고 싶었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서핑에 몰두하던 유영남은 결국 그 사이트와 접촉했다. 세상은 B와 D 사이에 놓인 C라는 말이 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했다는 말이라지만 다소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사르트르가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다 (We are our choice)’라는 말과 몇 가지 비슷한 맥락의 말로 선택을 통해 구축되어가는 자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인인 사르트르가 프랑스어에도 없는 birth와 death를 가지고 말장난을 했다는 것이 유영남이 보기에는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선택이었을까. 검색창에 떠 있던 것은 사춘기 소년이라면 열이면 아홉이 환장하고 달려들 키워드였지만 유영남은 그런 단발적인 충동에서는 졸업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죽음과 성적 쾌락은 맞닿아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원리가 적용되었던 것 같다. 자포자기 상태로 누가 고통 없이 목이라도 쳐 줬으면 하고 내심 기도하던 유영남은 느닷없이 감정이 동함을 느끼고는 이제는 오랜 과거가 되어버린 사춘기 소년 때와도 같은 과단성으로 그 사이트에 접속했다. 

 

랜섬웨어의 스포너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플래시 광고와 팝업 광고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광고에 나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양식 있는 시민이 공공장소에서 입에 올리기를 꺼릴 종류라는 설명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 팝업의 맨 위에 떠 있는 것이 이러한 것이었다.

‘색다른 쾌락을 원하십니까? 지뢰 찾기 하나만 성공시키면 끝내주는 쾌락이 찾아옵니다.’

선택지는 ‘원합니다!’와 ‘괜찮습니다.’였다. 정신이 멀쩡할 때의 유영남은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현실인식으로 그런 얕은 수에는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유영남은 보통의 유영남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절망감으로 절여져서 딱히 약도 쓰지 않았는데도 판단력이 큰 폭으로 저하된 유영남이었다. 유영남은 반사적으로 떠오른 호기심에 ‘원합니다!’라는 버튼을 눌러버렸다. 기실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은 했지만 허탈한 마음에 뭐라도 채워보자고 들어온 거라서 마우스에 올라가지 않은 왼손도 바지 속이 아니라 방바닥에 늘어뜨린 상태였다. ‘원합니다!’를 선택한 것도 정말 쾌락을 원해서라기보다는 지뢰 찾기 하나 끝내면 도대체 뭐가 나온다는 말인지 비판적으로 탐구해보려는 마음이 보다 강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선택에 이른 심리적 과정을 구구절절 나열한다 해도 결국 남는 것은 결과뿐이었다.

 

유영남이 ‘원합니다!’를 누르자 새 팝업창이 떴다. ‘준비가 끝난 후에, 당신이 지금의 IP로 다시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게임이 시작됩니다.’라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유영남은 쓴웃음을 짓고는 사이트를 나가버렸다. 그리고 노트북을 발로 차 구석에 처박아 놓고는 다시 매트리스 위에 자빠졌다.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받지 않고 신호음이 끊기자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는 유영남이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으면 제멋대로 과대 해석해서 본인이 먼저 쓰러질 번거로운 위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일주일이 소요되었다. 유영남의 경우에는 준비에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었다는 의미였다. 이쯤 되니 여전히 집에는 제대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유영남도 서서히 평정심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체념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이대로 우울감만 곱씹으면서 방구석에서 불완전기아 상태가 되는 것 또한 시험에 5년 연속 낙방한 것만큼 (유영남의 기준에서는)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결혼이나 뭐 그런 것들은 다 포기해야겠지만 아직까지는 멀쩡한 몸뚱이가 있으니 착실하게 돈이나 모으면서 금욕적으로 산다면 이대로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유영남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미래를 바꾸기를 열망하며 나름껏 피를 깎는 노력을 했고, 제대로 된 선택지를 손에 쥐기 위해 몹시도 고심했으나 결국 자신이 도착한 곳은 지금이며,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무언가 새로운 발걸음을 다시금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었다. 유영남은 이렇듯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결론을 프린트라도 해서 벽에 붙여 두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신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영남은 MS 워드에 ‘새로운 발걸음’ 운운하는 글을 써서 집 앞의 문방구에서 인쇄하고 코팅도 해 올 생각으로 노트북을 켰다.

 

그러나 유영남의 눈앞에 튀어나온 것은 늘 보던 바탕화면이 아니었다. 노트북이 부팅된 후에 온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때 없는 지뢰찾기 화면이었다. 그게 지뢰찾기라는 것은 인식할 정도의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그 위에 겹쳐져서 붉은색의 커다란 경고창이 떴다. 그 창에는 ‘경고! 이 화면을 끄거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이 폭발합니다!’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가 표시되지 않는 낯선 번호였다.

유영남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해서 일단은 전화를 받았다. 남자목소리인 것은 확실한데 다소 앵앵거리는 가는 느낌의 목소리가 송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유영남씨?”

“너 누구야.”

목소리는 기분 나쁘게 들떠 있었다.

“저는 탐험가입니다. 인간 경험의 보다 확장된 영역을 탐험하고 있습니다.”

“장난치지 마 새끼야.”

놀리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난 유영남은 전화를 끊어버리고 전화기를 매트리스 위에 내던졌다. 그리고 노트북 모니터를 세차게 접었더니 냉장고가 터졌다. 냉장고의 냉장실 내부에서 일어난 것으로 생각되는 폭발은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고 측면에 냉장고 내부에서 척 노리스가 주먹으로 친 것 같은 융기를 만들 정도의 압력을 발생시켰다. 큰 소리는 덤이었다. 유영남은 화들짝 놀라 생존본능에 떠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실제로 폭발을 겪자 집이 폭발했다는 기사,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기사, 방금 전 지뢰찾기 화면에 떠 있었던 괴이한 경고문이 하나로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형성했다. 유영남은 그 의미를 ‘전화를 받지 않으면 좆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유영남은 방 밖으로 뛰쳐나가는 대신 고분고분 전화를 받았다.

“다시 전화를 끊으면 그 즉시 집이 폭파됩니다. 시간 낭비는 유영남씨도 원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이제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보세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유영남은 ‘네’하고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하라는 대로 했다. 경고창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모니터를 가득 채운 지뢰찾기 화면만 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유영남은 자칭 익스플로러에게 물어보았다.

“게임 규칙은 간단합니다. 지뢰찾기 기회가 한 번 주어지는데, 지뢰를 밟으면 당신의 집과 당신 가족의 집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해서 다 죽고, 게임을 무사히 완료하면 살아남는 거죠. 단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나는 이런 거 한다고 한 적이 없어.”

“저번에 선택하셨잖아요? 색다른 쾌락을 원하신다고?”

“그건 그냥 별 생각 없이 누른 거야. 난 이런 거 필요하지 않아.”

“그런 거 클릭하는 사람이면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누가 그런 걸 클릭합니까.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웬만한 쾌락에는 질려서 권태에 절어 있는 사람 아니면 안 눌러요. 만약 정말로 생각 없이 누른 거라고 해도 그래도 늦었어요. 선택은 당신이 했고, 그 결과는 명백한 거죠. 게임을 하셔야 해요. 추가 규칙이 있습니다. 게임을 기권해도 폭발하고, 집을 나서거나 남의 방문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도 폭발합니다. 정리하면 남에게 들키거나 게임을 포기하면 게임에 실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유영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그렇게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고개를 내리깔고 현실을 부정해보려 애썼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익스플로러가 말했다.

“어..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무슨 일 하는지 다 보여요. 그러고 연습게임은 무제한으로 드리니까 시간 낭비 할 거면 그냥 연습게임이라도 하시는 게 명줄을 늘일 확률을 높여줄 겁니다. 그래도 그냥 지금처럼 그렇게 오래 계실 거면 게임 시작 전에 저한테 한다고 말하고 시작하세요.” 

 

전화벨이 울렸다. 유영남은 고개를 들었다. 노트북 화면에 뜬 시간을 보니 어느새 여섯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어머니였다. 익스플로러와는 아직 연결되어 있었다. 유영남은 전화를 무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머니가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자기 생각에는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일 테지만 유영남에게는 환장할 일이었다. 다섯 번째 연속적으로 통화음이 반복되자 유영남은 익스플로러에게 물었다.

“전화 받아도 돼?”

“어머니가 고집이 완강하시네요.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익스플로러는 뭐가 좋은지 킬킬거리며 웃었다.

“감청하고 있으니까 아시죠? 잠깐만 통화하면서 그만 좀 방해하라고 하세요.”

유영남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영남아! 너 왜 자꾸 전화를 안 받니!? 시험 때문에 그러니?”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짜증만 났는데 막상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 괜찮아.”

유영남이 울먹거리는 소리로 대답하자 어머니도 영향을 받았다.

“시험 안 돼도 괜찮다. 엄마는 너만 있으면 돼. 엄마가 좀 더 벌면 되고, 우리 함께 일해서 같이 행복하게 살면 되지.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와라. 오랜만에 맛있는 것도 먹고 얘기도 좀 하자.”

“나중에 갈게. 조금만 기다려.”

유영남은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흐느낌은 통제할 수 없이 새어나왔다.

“아니, 얘가. 너 지금 집이지? 엄마가 지금 갈게.”

“아냐, 오지 마. 내가 조금 있다가 갈게.”

유영남은 그 순간 등 뒤로 오한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특유의 과대망상증이 발동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잠시 친구와 놀러간다고 하고 나가서 귀가 시간이 조금 늦었을 뿐이었는데도 가출이니 납치니 소란을 피우고 다니다가, 친했던 친구들에게 자기 아들을 늦게 돌아오게 만들었다고 미친 듯이 쏘아붙여 외톨이로 만든 것도 그런 과대망상증 때문이었고, 우리 아들이 원빈보다 잘생겼다면서 동네방네 혼기 찬 처녀들에게 사진을 뿌리고 다니는 바람에 유영남이 영문도 모르게 동네 단위로 비웃음당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도 그런 과대망상증이었다. 여하간 그런 과대망상증이 작동해서 좋은 꼴을 본 경험이 없었고, 지금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상황이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유영남은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지금 무슨 이야기가 짜 맞춰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1). 아들이 시험에 떨어진 것 같다. (2). 아들이 서럽게 운다. (3). 아들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 (4). 아들이 내가 간다는 데 한사코 말린다. = 아들이 자살하려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유영남이 예측한 그대로 움직였다. 이 상황이라면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진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유영남이 가지고 있는 학습된 무력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아들,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집에 그대로 있어. 계속 전화할 거야!”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곧바로 익스플로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가 대단하시네요. 진짜 집을 나서려고 하시는데요?”

유영남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연습할 시간도 없겠네요. 넉넉잡아도 세 시간 반 정도면 오시겠죠? 문 열면 폭발합니다.”

“씨발, 다 거짓말이지? 내가 내내 집에 있었는데 어떻게 폭탄을 설치해!”

유영남은 익스플로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익스플로러는 그런 갑작스런 감정의 폭발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아까 냉장고 보시지 않으셨나요? 확실히 집에만 계셔서 힘들기는 했어요. 그래도 약을 써서 성공시켰죠. 저 이 일 한두 번 한 것도 아닙니다.”

“시발, 시발.”

유영남은 계속해서 욕을 하며 분을 삭였다. 머리에 피가 몰려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시발, 그래 한다 해. 성공만 시키면 된다는 거지?”

“네, 약속은 지킵니다. 물론 성공해서 입을 다문다는 약속은 유영남씨가 지키셔야 하지만요.”

“하면 돼?”

“하면 됩니다.”

 

그렇게 지뢰찾기가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진전이 궤도에 오르자 난이도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평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영남도 의무교육 시절까지는 지뢰찾기를 경험해본 적이 잦았다. 기본 원리는 전부 알고 있었고, 지금 하고 있는 게임도 그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짜인 채 흘러갔다. 집중만 잘 한다면 어디에 지뢰가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도 약간의 장고만 있으면 능히 타개할 수 있는 난관이라 유영남은 생각보다 공정한 게임의 진행 방식에 나름 안도를 했다. 지뢰의 밀도를 근거로 추정해보면, 대충 MS 윈도우에 기본 장착된 지뢰찾기의 중급과 고급 난이도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고급의 경우 지뢰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 제시된 정보보다 지뢰의 개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럴 경우 운에 맡기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특정 패턴에서 지뢰가 자주 출몰하는 영역을 익히고, 그런 부분은 피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결국 확률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찍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지뢰의 밀도와 정보의 밀도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만 난이도를 크게 높이는 것은 확률의 문제보다는 양의 문제였다. 한 화면에 들어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화면 밖으로, 상하좌우 모두 상당한 양의 드러나지 않은 영역이 존재했다. 마우스를 통해 드래그하면 그 영역을 전부 살펴볼 수 있었다. 이건 집중력의 마라톤이었다. 숙고만 제대로 한다면, 합당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디에 지뢰가 있는지는 타당한 논리적 추론을 통해 걸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순간,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모든 게 폭발해서 하늘로 날아가게 되어 있다.

“물을 좀 마시고 싶어.”

유영남은 전화기 너머의 익스플로러에게 말했다.

“그러세요.”

그러나 냉장고는 파손된 상태였고,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전부 조각나 내용물을 사방에 뱉어놓은 채였다. 유영남은 지하수를 그대로 집 안으로 들여오게 설비되어 있는 수돗물을 틀어 마시고 싱크대에 오줌도 누었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방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극도로 집중하다가 긴장이 풀리니 눈앞이 캄캄해져서 한참을 눈가를 손으로 누른 채로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으나 대충 한 개 사분면을 끝낸 정도에 불과했다. 어머니가 도착하면 협박을 해서든 어떻게 해서든 방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아야 했다. 어머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으니 같이 산화되어 날아가기 싫다면 한껏 주의해야 했다.

유영남은 찬 수돗물로 세수를 하고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시간에 쫓기고는 있었지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느꼈던 압도적인 절망감은 어느 정도 가신 상태였다. 이 게임은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고, 공정했다. 자신의 경험과 성실한 검토만 뒷받침되어준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벗어날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어머니에게 또 전화가 왔다. 버스를 잡아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이제 시간은 한 시간 사십 분이 빠듯했다. 유영남은 이제 두 번째 사분면을 절반 정도 해결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막상 집 앞에 왔을 때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러한 고민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저어하기도 하면서 유영남은 고사장에서나 발휘했던 절박함으로 지뢰를 하나 둘씩 제거해갔다.

 

세 시간 가까이 집중력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유영남은 자꾸만 말라가는 눈알이 시리는 탓에 주기적으로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눈에 축였다.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나름 속도가 붙어서 진행속도가 빨라졌지만 그만큼 실수도 잦아졌다. 다행히 지뢰를 누르는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그랬다면 몸의 형체가 유지되고 있지도 않았겠지만, 잘못된 곳에 지뢰가 존재한다고 표시해 놓는 경우가 몇 차례 있어 아까운 생 시간을 뒤로 되돌아가 검토하는 데 고스란히 소모해 버려야 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평균속도는 호조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제 삼 사분면을 거의 다 끝내가고 있었으니 이 페이스대로라면 망상에서 유래한 공포에 사로잡힌 어머니를 집 밖에 잡아매두는 어려운 과업이 점점, 큰 폭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용이해져가고 있었다. 유영남은 과도한 집중의 부작용으로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왔다. 결국 신물이 입 안으로 올라오자 잠시 일어서서 오 분만 눈을 감고 쉬었다. 

화면은 찾아낸 지뢰로 빽빽해 눈이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이거 화면 확대 기능은 없나?”

유영남이 수화기 너머로 요구하자 대답이 즉시적으로 돌아왔다. 익스플로러가 유영남이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그 진행사항을 체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꽤나 명백하게 전해져 왔다.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송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키보드인지 마우스인지가 몇 차례 딸깍거리는 소리가 실려 왔다. 금방 지뢰찾기 화면이 몇 배인지 모를 배율로 확대되었다. 유영남의 뻑뻑한 눈이 약간이나마 편해졌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전화를 했고, 답신을 요구했다. 유영남은 자신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머니 머릿속에 불러일으켜 발걸음을 빠르게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유영남은 성실히 답변했다. 어머니가 마침내 동네 초입에 정류장이 있는 버스에서 하차했을 때는 이미 게임을 시작한지 네 시간이 경과했을 때였다.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고, 귓속의 혈관이 뛰는 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가슴 깊숙한 곳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런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나 카레 먹고 싶어. 재료 좀 사다줄 수 있어?”

“아이고, 우리 아들 카레가 먹고 싶었어? 알았어, 엄마가 재료 사 갈게 기다려.”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어. 배스킨 라빈스라고 알아 엄마?”

“배스킨 뭐?”

“배스킨 라빈스라고. 거기 시장에서 근처에 있어.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가면 돼.”

“배 뭐라고?”

“배·스·킨·라·빈·스”

“배스킨 라빈스”

그 순간 사 사분면의 절반이 해결되었다. 

“거기서 더블레귤러로 카라멜 프랄린 치즈케이크하고 자모카 아몬드 훠지 사다 줘.”

“뭐?”

“일단 가게 찾으면 다시 전화해.”

“…응, 알았어.”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익스플로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알바라도 하셨었어요?”

“어. 거의 끝나간다.”

“잘하고 계시네요.”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유영남은 긴장이 풀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어하려 애쓰면서 남은 지뢰를 보다 꼼꼼히 찾아갔다. 숫자들은 정직했다. 그것들은 지뢰가 어디 있는지를 규격화된 법칙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고, 그 정보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간사한 존재라서 자꾸만 딴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절박하게 당면한 과제가 있어 자칭 익스플로러라는 녀석이 지시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지만 정말 이 녀석의 제안이 진실일까? 그런 의혹이 자꾸만 마음을 괴롭혔다. 혹여나 좋은 판단이 날까 흠칫흠칫 그에 관련된 생각들을 연상해보기도 하였으나 이미 냉장고가 날아간 경험을 해버린 이상 생각의 가지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외연은 협착하여 있었다. 

그 결과에 대해 의구심은 있었어도 결국 유영남은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에 경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반 이상 강요된 선택지였지만 어쨌든 그것이 유영남의 결론이었다. 도망치는 것은 도박성이 농후했으나 적어도 이 게임은 공평했다. 치우치지 않고, 누구나 극복할 수 있는 게임이니 차라리 이것에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 가장 나은 대안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적어도 마지막 지뢰를 남겨두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조는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이 지뢰를 다섯 개 남겨두었을 때부터 들기 시작했었다. 촉박한 시간에 쫓기느라 전체적인 조망이라고 말하기에는 미진한 면이 있어 확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전체적인 분포가 차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암시는 지뢰를 하나씩 찾아나갈 때마다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유영남은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여태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법, 현재 강하게 추정되는 결과를 의외의 방식으로 우회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존재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사고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배신당했다. 수 분 간의 장고 끝에 다섯 개 중 네 개의 지뢰를 연속해서 표시한 후 유영남은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마지막 두 칸의 공간적 배치를 보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호흡이 힘들었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기절할 것 같았기에 유영남은 전화기 너머의 익스플로러에게 고함을 쳐댔다.

“이게 뭐야! 운으로 찍어야 하는 거잖아!”

익스플로러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유영남은 거칠게 심호흡을 하며 피로로 뻑뻑해진 머리를 굴려 상황을 최대한 다른 각도에서, 가능한 여러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빠져나갈 공간은 없었다. 좁은 굴 안에서 낙반에 깔려 죽어가는 사람처럼, 유영남은 사방의 벽이 자신을 조여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다. 

그 남은 두 칸은 모서리에 인접해 있었다. 제일 처음 그곳에서 시작하지 않는 한, 어떤 방향에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더라도 필히 결과를 운에 맞기고 소위 ‘찍도록’ 되어 있는 배치였던 것이다. 

“이거 잘못됐잖아! 이거 빼고는 다 해결했어! 그럼 게임을 끝났다고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거까지 다 처리하셔야 해요.”

익스플로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니..”

어찌나 분하고 억울했던지 유영남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든 따져 보아야 자신이 살 확률이 올라갈 텐데도, ‘원래 지뢰찾기는 이렇게 찍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생각이 일순간 떠오르자 논리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내적 확신이 단번에 소실되었던 것이다. 유영남은 말문이 막힌 채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최대한 울먹이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전화기 너머의 사이코가 원하는 것이 이런 괴로워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공평해. 이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야. 애초에 운에 맡겨야만 끝낼 수 있는 거잖아.”

“무엇보다도 공정하죠. 이 부분에 대해서 저에게 아무리 우기셔도 소용없어요. 애초에 이 게임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 부분이거든요.”

그 순한 유영남의 머리를 거세게 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미처 문면을 가다듬기도 전에 말이 제 의지를 가진 양 입 밖으로 돌출되어 나왔다.

“너 혹시. 일부러 이렇게 되도록 만든 거야?”

“네, 제가 실시간으로 폭탄의 위치를 조작했어요. 물론 마지막 부분에 와서만. 마지막으로 접근하게 되는 모서리에 운으로 해결해야 하는 요소를 집어넣기 위해 딱 한 번 개입한 것이지만요.”

유영남은 다시금 울분에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익스플로러는 그러던 말던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전적으로 당신 실력이에요. 그렇게 논리적으로 극복하는 단계 또한 이 게임의 핵심이거든요. 그래서 당신한테는 이제 마지막 한 단계만 남았어요. 그건 그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

유영남은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반복적인 말을 읊조렸다. 처음의 형태는 욕설이었으나 점차 증오와 절망의 가장 깊은 영역에서 끌어올려 토해내는, 형체를 식별하기 어려운 감정의 진동으로 번져나갔다. 유영남은 잠시 후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잡고 현실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오고 있었다. 문을 열면 터진다고 했다. 문이 얼마나 견뎌낼지, 유영남은 두려웠다. 아무리 탄원하고 갈구하고 협잡을 시도하더라도 전화기 너머에 여유롭게 버티고 있는 자에게는 털끝 하나 닿을 수 없었다. 혹여 누군지도 모를 다른 존재에게 필사적으로 기도하더라도 그 존재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유영남은 그 분야에서는 이미 많은 경험을 했다. 아무리 원하고, 아무리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도 모든 일은 자신과 관련 없이 일어나야하는 대로 흘러갔다. 그래서 유영남은 이전처럼 오랫동안 절망하지 않았다. 버튼을 눌러야 한다면, 반드시 눌러야 한다면 그래주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을 하지?”

유영남은 물었다. 마우스에 손을 올려놓은 채였다. 송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 눌러버리려고 대비해 놓은 것이었다. 

“쾌감을 주기 위해서요.”

“이게?”

말 뒤에 ‘쾌감이야?’라는 대목이 이어져야겠지만 유영남은 그 단어를 발설하는 것 자체가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인간이 성적인 측면 외에 가장 쾌감을 느끼는 상황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렇잖아요. 인간은 지구에서 제일로 고등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생물이라면서 결국 하는 것이라고는…. 나름대로 창의적으로 몇 가지 베리에이션을 넣기는 했지만 그것도 보다 보면 질리거든요.”

“미친놈 아냐?”

익스플로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제 논리에 취해 앞뒤 안 돌아보고 떠들어내는 유치한 놈에게 휘둘리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자 유영남은 토할 것 같았지만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논리를 억지로 곱씹으며 억눌렀다.

“그래서 난 노력 후에 운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가장 큰 쾌감을 얻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게 네 결론이야?”

“네. 유영남씨도 시험에 합격했으면 기분이 좋았겠죠?”

유영남은 대답하지 않았다.

“실력을 통해서만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 봐요. 결국 등가교환의 법칙이죠. 얻어낸 만큼 잃은 것도 있어요. 그리고 그 정도로 노력했다면 어느 정도 예상도 하던 것이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도 않을 거예요. 의외성이 있는데 어떻게 쾌감이 있겠어요? 그것은 결과를 점점 확신해가는 그 긴 시간 전체에 걸쳐 희석되어서 정작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리 기쁘지도 않을 거여요. 완전히 운에 의해 얻는 것은 그보다는 쾌감이 강하죠. 등가교환의 법칙도, 예측성도 전부 어기기 때문에 강력한 쾌감을 줘요.”

“이거 누르면 바로 폭탄이 풀리는 거지?”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영남은 이렇게 물었지만 익스플로러는 한 차례 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노력 후에, 최후에 순간에 운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노력을 기울이면 결과에 대한 욕심이 보다 간절해지기 때문에 운으로 이겼을 때보다 더 큰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거여요. 장미꽃을 보다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장미꽃을 위해 우리가 소비한 시간과 노력이죠. 당신은 애피타이저를 끝냈어요. 이제 진짜 식사를 하실 때에요.”

어머니가 어느 정도 집 가까이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전화는 오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고 바밤바를 사고는 서둘러 카레를 만들기 위해 집으로 오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마지막 선택이 잘못되었더라도, 어머니는 유영남 자신과 집에서 와병하는 남편이라는 짐 덩어리에서 풀려나 새 삶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은 좀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견뎌내야 하는 부분일 터였다. 그렇게 보자면 시험에 미끄러져서 짐만 쌓아가는 것보다는 이 게임을 통해 얻을 게 더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 유영남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동원한 무의식적 변명인지는 알 수 없을 일이었다. 

유영남은 더 늦기 전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차례 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대고는, 그 커서가 혹여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지지 않는지 눈을 떼지 않고 관찰하며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했다. 

 

유영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직 익스플로러의 범행은 절찬리에 진행 중이지만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이 미진하다. 유영남이 현재 입을 열 수 있는 상태이던 아니던, 그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가 그 일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자신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유영남이 마지막으로 당면했던 상황에 모티브를 얻어서 지금 날짜가 홀수이면 유영남이 그 일로 죽었고, 짝수이면 유영남이 그 일 후에도 멀쩡히 살았다는 방식으로 유영남의 운명을 파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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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빼빼로 데이에 올리네요. 녹차 아이스크림은 맛있는데 녹차 빼빼로는 왜 맛이 그럴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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