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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의 소설에서 종종 보이는 테마 중에 하나는 정상성을 상실한 주인공이 환상을 통해서 그 정상성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때 환상의 세상은 주인공한테 정상성을 상실한 주인공한테 대안 혹은 보상으로 존재하며, 김이환은 정상성이나 환상 그 자체에 물음을 던지는 대신에 일단 주인공을 환상 세계에 부딪치게 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지켜본다. <디저트 월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주인공이 결국에 정상 가정의 가장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주인공이 환상 세상으로 이동해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정규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의 비정상성, 분열을 교정하는 내용이다.

 

<절망의 구>에선 정상성에 대한 회귀 욕구가 거의 강박증처럼 분출된다. 절망의 구가 건물을 덮쳤을 때 그 건물에서 일하는 회사원은 자신이 남들처럼미리 건물을 빠져나가지 못한 것을 자책하다가 죽는다. 이는 경쟁 사회에서 남들과 같은 스펙을 갖추지 못한 것을 한탄하다가 파멸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리고 결말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함께 살아남은 동료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들어서 그가 린치당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작가의 의도나 가치관하곤 무관하게 사회에서 정상으로 분류되는 범주에 드는 인물이 성 소수자를 처단하는 모습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의 구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이 나타났을 때 결국에 등장인물들은 정상성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주인공은 환상 세계에 들어와서 남들과 같은 성장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정상성으로의 회복. 이때 주인공이 대면하는 환상 세상은 위계질서와 물리적 질서의 철저한 지배를 받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은 환상 세계에 있는데도 굳이 배변을 봐야 하고, 비가 오면 벼락이 칠까봐 집에서 전기를 꺼야 한다. 주인공한테 하늘을 나는 능력이 생긴 것은 딱 특정한 공간에서만 허용된 일이고 그 공간을 벗어나면 능력이 사라진다.

 

그밖에도 주인공을 돕는 로봇과 표범 사이에 힘의 위계가 있다는 점, 그 두 개체와 그들을 다스리는 왕 사이에서 권력의 위계가 있다는 점에서 이 환상 세상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것은 그들의 세상에 가치의 위계질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선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가치가 가장 우선하며 모든 개체들은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 복무한다.

 

이는 정과리가 한국 판타지 소설을 논하면서 언급한 특징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정과리는 환상 소설의 범주 안에는 보르헤스나 루이스 캐롤처럼 현실의 질서와 관념을 전복시키는 종류의 소설도 있지만 유독 한국 판타지에선 철저하게 물리 질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내용의 소설이 주류라는 것을 지적했다(마법사의 힘은 숫자로 그 위계가 구분되고 드래곤은 색깔에 따라 특성과 힘이 나뉜다). 정과리는 이를 두고 자신의 현실을 갖고 싶은 청소년들의 욕망이 구체적인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환상 세계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고 해석한다. 현실은 난해하고 모호하지만 판타지 세상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며 청소년 자신을 위한 자리가 있기 때문에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17세 주인공이 구체적인 질서와 목적이 있는 환상의 세계로 이동해서 정상성을 회복한다는 내용인 것을 생각하면 정과리의 주장은 이 작품에 꽤 잘 들어맞는다. 이 작품에서 환상 세계는 모든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코스로 존재한다. 주인공은 성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질서를 필요로 한다.

 

주인공이 씨앗을 심는 마을에서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그렇다. 나이든 남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린 아이였을 때 꿈의 세계에 왔지만 잘못된 행동을 한 끝에 그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 늙어버렸다. 남자는 주인공한테 자신 역시 겉모습과 무관하게 어린아이니까 자신한테 반말을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그 남자한테 존대한다. 이때 주인공은 '성장에 실패한 채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어른''아직 성장의 여지가 남아 있는 자기 자신'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고, 그 구분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이라는 위계질서를 이용하는 것이다(그래서 나이든 남자한테는 존댓말을 하지만 자신보다 겉모습이 어린 아이들과는 서로 반말을 하며 지낸다. 중요한 것은 나이 자체라기보다는 성장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주인공이 다른 아이의 씨앗을 잘못 심은 걸 그 구역을 담당하는 할아버지한테 고백한 것 역시, 규칙이 있어야만 그 규칙을 어긴 잘못을 고백하면서 성장의 미덕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은 주인공이 성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무대를 제시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정규 절차를 통과하면서 이뤄지는 성장이 강조될 때, 이 소설에선 <절망의 구>처럼 정상성에 대한 강박증이 다시 엿보인다.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데 실패한 아이들한테는 갱생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절망의 구에 잡아먹힌 회사원처럼? 일반적으로 성장 소설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들한테 규칙을 강요하는 제도와 마찰을 빚는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정상성에 대한 강박으로 가득한 인싸 소설 해리 포터에서마저도 주인공들은 볼드모트를 막기 위해 교칙을 어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제도가 곧 세상으로 그려진다. 세상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제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수긍하기 힘든 대목은 주인공이 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위해 살육을 필연적인 일이라고 여기고 동물을 죽이는 장면이다. 이는 분명히 유년기에 저지른 행동에 대한 반성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살육을 막기 위해 제도를 거스르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하지만 제도 = 세상 그 자체인 이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은 제도에 거스르는 선택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에 주인공이 인식하는 세상이 실제 그 자체가 아니라 주인공의 해석에 불과하다면? 주인공이 인식하는 이야기의 필연성(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위해 동물을 희생해야만 한다)이 실제 그 자체가 아니라 제도에서 승인받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결과물이라면 어떨까?

 

이후에 주인공은 제사장을 사칭하는 아이를 만난다. 제사장은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해서 제자리에 머물게 되자 새로 나타나는 아이들한테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주인공한테 혼쭐이 난 뒤에 자신은 단지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싶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다. 이 이야기 안에서 제사장은 악인이고 주인공은 악인한테 벌을 주는 선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만약에 그 이야기 자체가 허상이라면? 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위해 동물을 희생시킨 주인공의 선택과, 새로 나타나는 아이들을 괴롭히기로 한 제사장의 선택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단지 주인공은 우연에 의해서 스테이지를 통과했을 뿐이고, 주인공이 올바른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스테이지를 통과했다는 것은 주인공 자신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해석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어쨌든 폭력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재밌는 것은 제사장을 혼내줄 때 주인공의 모습이다. 주인공은 어린 아이인 제사장과 다르게 청소년의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서 제사장을 혼쭐내주고, 그 과정에서 또래 아이와 싸우듯이 욕도 내뱉는다. 주인공이 이러한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또래 아이들 사이의 다툼처럼 그려진다. 주인공은 아이이기 때문에, 제도를 완전히 통과해서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허락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행동을 하는 순간 모호한 존재가 돼 버린다.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완력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은 주인공이 훨씬 육체적으로 성숙한 청소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환상의 세계에 지나치게 늦게 온 그는 어쨌든 아이가 아니다. 아이답게 행동하는 것은 그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주인공이 사기를 치는 제사장을 혼내주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은 제도를 통과하는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성장의 의의를 따져보자면 잉여에 가까운 행동이다. 주인공은 아이가 될 수 없으면서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인공이 실제적인 성장을 거치는 것은 후반부에 제도에서 벗어났을 때이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주인공은 밤의 해변을 거닐다가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사정에 따라서 거처를 옮겨야 하고, 그것이 슬퍼서 해변에서 흐느끼고 있다가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주인공은 그 여자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여인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서 만났고 달빛에 비친 모습만 봤을 뿐이다. (중략) 여인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기억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아름다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p364

 

 

<집으로 돌아가는 길>37살의 서술자가 자신이 17살에 겪은 일을 회고해서 말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환상 세계의 모든 것은 명확한 위계질서와 물리 질서에 의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힘들어하던 17살 주인공한테 환상의 세계는 회복의 공간이 된다. 현실과 달리 환상 세계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이 맞춰져 있으며, 주인공은 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구성된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일을 반복하면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세상에서 의미를 찾기가 쉬워진다.

 

"숲의 뒤쪽으로 내가 걸어왔던 돌 언덕이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작게 보였다."(p110)

 

위 대목은 주인공이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다음에 자신이 지나쳐온 경로를 돌아보는 장면이다.

 

어두운 지하실에 갇혔을 때 주인공은 별이 많이 그려져 있는 딱지로 다른 딱지를 내리치면 지하실이 밝아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딱지치기로 지하실을 밝게 만들어서 출입문을 발견해 빠져나온다. 이 에피소드는 <집으로 가는 길> 이야기의 주된 특징인 유년기에 대한 긍정위계를 드러내고 있다. 딱지들 사이에는 별의 개수라는 기준을 통해서 힘의 위계가 제시되어 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즐기던 딱지치기 놀이를 하면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방법을 찾아낸다. 이때 세상은 해결될 수 있는 분명한 형태로 존재한다. 주인공이 지하실에서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공간을 돌아보았을 때 지하실은 이제 환하지만 작아졌고 자신의 집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성장을 거치면서 세상의 모습이 한 가지로 정해졌기 때문에 분명하고 익숙하지만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이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다음에 자신이 지나쳐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별 다른 여념을 갖지 않는 것이다. ("숲의 뒤쪽으로 내가 걸어왔던 돌 언덕이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작게 보였다.")

 

 

저 대목에서 주인공은 지나쳐 온 장소에 별 다른 여념을 갖고 있지 않다. 환상의 세계는 물리적인 규칙을 지닌 구체적인 형태로 주인공한테 제공되었고, 주인공은 그 세상의 구체성과 부딪치면서 모험하고 성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구체성을 통해 세상을 단정 짓게 된다. 지나쳐 온 돌 언덕은 멀리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때 주인공의 의식 안에 있는 시간의 간격은 물리적인 거리에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 있는 과거는 오래 전에 지나쳐 간 것이니 신경 쓸 이유가 없다. 한 번 클리어한 게임의 스테이지를 굳이 돌아볼 필요가 없듯이. 주인공은 게임의 규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지나간 스테이지에 대해 깊게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해변가에서 주인공이 미지의 여인을 만나는 장면에선 불분명함이 개입한다. 그는 여인의 얼굴이 아름다웠던 것은 기억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설명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고 주인공이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여인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서 만났고 달빛에 비친 모습만 봤을 뿐이다. (중략) 여인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기억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아름다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p364

 

주인공은 환상의 세상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분명함을 마주하고, 그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결별하게 된 뒤에는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다. 그 뒤에 해변에서 만난 새로운 인물, 연상의 남자와도 하룻밤을 보내면서 상실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닫는다.

 

 

이제 바닷가를 떠날 시간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했고, 나는 세수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녀와 그를 생각했다. 호수에서 만난 일이 계속해서 머리에 떠올랐지만 표범과 로봇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떠나야지.”

로봇이 다가와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호수에 가 볼까, 그런 일이 있던 곳인데 한 번만이라도 더 돌아볼까 생각했다가,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미련을 버려야 했다. 다시 가더라도 그도 그녀도 없을 것이다. 둘 다 나를 두고 떠났고, 남자는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까지 말했는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

나는 대답했다. 이번에는 표범 등에 타고, 바닷가 길 위에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p380)

 

 

표범과 로봇은 주인공한테 환상 세상에 대한 것을 설명해주는 동반자이고 주인공은 환상 세상에서 일어난 일의 대부분을 두 개체한테 이야기해주지만 해변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환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이 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분명하게 설명된다면 주인공이 해변에서 겪은 일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올바른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스테이지를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음에도 사랑하는 이들을 두 차례 떠나보냈을 때, 주인공은 더 이상 보상의 규칙이 없는 세상에 떨어졌음을 깨닫는다.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조직되어 있는 환상의 세상 안에서 주인공은 결국에 세상의 무심함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로봇과 표범이 고래를 놀리는 장면에 주인공은 심정적으로 동화되지 못한다.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제사장을 완력으로 제압해 혼쭐을 내주었을 때 주인공이 아이처럼 행동하는 청소년이었다면 그는 이제 자신이 아이의 세상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천진난만함을 꾸며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재밌는 것은 주인공이 제사장을 혼내주는 장면이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일이었지만 성장의 의의로 보면 잉여적인 에피소드였던 반면에, 주인공이 해변에서 두 사람을 만나는 장면은 원래 환상 세상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주인공한테 성장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정과리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정과리가 한국 판타지 소설들에 대해 쓴 글에는 재밌는 발상이 많다. ‘판타지 소설이 개인의 저작물 형태로 발표된 것은 기성 문단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와 같은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건질 만한 부분을 찾아보면 대강 이렇다.

 

나는 오랫동안 왜 한국의 판타지는 모험 판타지가 주류인가 궁금했다. 판타지의 한국어는 환상이다. 사전에 의하면, 환상이란 "실문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느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환상은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이고 생각이다. 환상 세계에서는, 때문에, 인간 세상과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 생김새만 다른 게 아니라 행동 방식도 다르고 시공간의 경계도 무너진다. 시공간이 뒤죽박죽이 되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고, 시공간이 인물의 생과 어긋나면 보르헤스가 되고, 시공간이 파괴되어서 생이 죽음의 형상을 하면 프랑켄슈타인이 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모험판타지는, 그런데, 인간 세계와 꽤 닮았다. 인물들의 모양이 다를 뿐 이 세계는 궁극적으로 거친 민담의 세계다. 이곳에서는 시공간이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골격이다. 그래서 '모험'이다. 모험 판타지는 현실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충동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회복하려는 산만한 욕구들을 반영한다. (후략)’ (정과리의 <들어라, 청년들아> p283)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과리가 말한 한국 판타지 소설의 특징을 상당 부분 보존하고 있다. 이야기는 시간순행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고, 환상의 세계는 현실 질서의 전복을 꾀한다기보다는 현실 질서 이상의 엄격한 위계를 재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면서 현실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졌고,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환상 세상으로 와서 자신의 분열을 교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환상 세상은 스테이지라는 형태로 공간의 구분이 명확히 이뤄지고 있으며, 시간 순행의 질서도 유지된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 시간 순행적 연대기의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종종 과거의 한순간이 다른 순간을 비집고 돌아온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37세의 주인공은 20년 전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기억의 뒤섞임 없이 시간 순행의 순서를 성실하게 지켜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의식 안에서 시간에 대한 인식은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인식과 종종 일치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후반부로 치닫을 수록 앞서 쌓아올렸던 규칙과 질서를 모두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해변에서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의 불가해함을 대면한다. 그는 이제 권선징악의 보상을 주는 제도 바깥에 있는 세상에 속해 있다. 더 이상 세상은 제도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째서 열일곱 살의 늦은 나이에 꿈의 세상에 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째서 자신이 죽음의 충동에 사로잡혀 힘들어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의 세상은 이미 시간의 인과 관계기 비틀린 채 존재해 있다. 7살 때 주인공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17살 때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살 때 주인공이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줄 수 있던 것은 7살 때 길고양이한테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17살 때 주인공이 환상 세상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37살의 자신한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세상에 있는 37살의 주인공이 환상 세상에 있는 자신한테 도움을 줄 수 있던 것은 17살 때 자기 자신한테 도움을 받아 환상 세상을 통과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야기를 긍정하려는 주인공의 욕망과 그 이야기 바깥의 세상이 끝없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하나의 성장담, 자신이 주인공인 하나의 이야기로 상정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불가해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완성된 일직선의 이야기, 목적이 분명하고 의미와 보상으로 가득한 세상은 결말에 이르러서 복잡하고 다면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불가해함을 맞닥뜨리게 되고, 사건의 인과 관계는 뒤집히며, 과거와 현재의 위치가 뒤바뀌어지고 현실과 환상의 공간적 구분 또한 흐려진다.

 

 

이는 김이환의 또 다른 작품인 <디저트 월드>와 비교해보면 재밌는 지점이다. <디저트 월드>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고 시간의 구성이 해체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를 테면 문단 문학식 환상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호한 환상을 거친 뒤에 주인공은 정상 가정의 가장으로 회귀한다. <디저트 월드>의 결말에서 보여지는 정상 가정의 모습은 그 환상만큼이나 모호하다. 삶과 죽음, 시간의 구성과 같은 현실의 질서를 갈가리 찢으면서 시작한 이 소설은 결국에 보수적인 정상 가정의 묘사로 끝이 나는 것이다. 반면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규 과정을 통과하며 성장을 하고, 죽음에 휩쓸린 자신의 상태를 교정해서 정상성을 회복하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한 이 소설은 결국에 이성애와 동성애의 경계를 넘어서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야기를 지탱한 환상의 구조마저 해체한다. 여기에서 이야기의 진정한 해체는 결국에 이야기를 발달시킨 이들한테만 허락되는 특권이라고 한다면 조금 성급한 결론일까? ‘해결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소설의 윤리 의식이 이야기를 해결하지 않고 끝내는관습이 되듯이, ‘말해질 수 없는 모호한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소설의 윤리 의식이 결국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끝나는관습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현대 소설에서 종종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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