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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백일몽

2016.02.25 14:2902.25

 서걱서걱. 종이에 적어내려가는 글씨들이 늘어간다. 저 칠판 앞에서 교과서를 보며 수식을 써가며 설명하는 수학 선생님. 성격이 괴팍하기로 전교에 유명한 선생님이다. 자신의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향해 분필을 잘 던지는 것과 그 높은 명중률로도 유명하기도 하고. 요즘 시대에 분필 투척이라니,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괴팍한 성격을 가진 그 다운 행동이기도 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를 통해 내리쬔다. 필기를 하던 노트의 한쪽에 빛이 반사되서 눈이 부시다. 곤란하다. 이러면 필기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가. 필기를 하지 않는 손으로 햇빛을 최대한 가리면서 글씨를 써내려 갔다. 서걱서걱. 샤프심이 흰 노트에 검정색 흔적을 남기고, 곧이어 그 검정색이 문자로 바뀌어간다. 이건 X고, 이건 Y. 그리고 이건?


 점심을 먹고 나서 그럴까. 수마라는 녀석이 내 눈꺼풀 위에 눌러앉으려 작정을 했는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의식도 점점 흐려져간다. 노트 위의 글씨들도 점점 흐트러져 갔다. 뭐야 이건, 지렁이? 뱀?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 나열의 시작. 이러면 안되는데, 젠장.


 칠판을 보고 글씨를 써 가던 선생님이 교과서를 덮는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학생들을 향해 한마디. 자, 여러분. 오늘 수업은 이쯤하고, 러시안 룰렛을 하겠어요. 뭐? 뭘 한다고? 어느 새 교탁에 올려져 있는 리볼버 권총 한 정.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총탄 하나를 꺼내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자, 여기 총알이 있습니다. 이 총알을 이제 여기 6개의 약실을 가지고 있는 이 총에다 넣겠습니다. 처음 사람이 이 실린더를 돌리고 쏘고, 두 번째 사람 역시 실린더를 돌리고 쏘는 겁니다. 그러면 확률은 항상 1/6이 되는 거겠죠? 그럼 책상에 앉은 순서대로 시작합니다. 시작!


 차르륵, 철컥, 탁. 다음 사람. 차르륵, 철컥, 탁. 다음 사람. 차르륵, 철컥, 탁. 다음사람…….


 아이들은 실린더를 돌리고, 공이를 젖히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담담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아이들. 나는 서서히 내 자리로 다가오는 권총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차르륵, 철컥, 탁. 다음 사람. 차르륵, 철컥, 탁. 다음 사람.


 차례는 어느새 13번째. 내 차례가 될 때 까지는 앞으로 5번이 남았다.

 

 차르륵, 철컥, 탁. 다음 사람. 차르륵, 철컥, 탁. 다음사람. 챠르륵, 철컥.

 

 탕!


 매캐한 화약 냄새가 교실에 가득 찼다. 그리고 한 손에 권총을 든 채로 엎어져 있는 여학생 하나. 검붉은 피가 책상과 노트를 물들인다. 뚝. 뚝. 바닥에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 이지혜 학생이 걸렸군요. 우리 모두 애도합시다. 잠시 묵념! 1분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꺼낸 또다른 총알 하나. 하나만 걸리면 외롭겠죠? 아직 반도 안왔는데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어서 한번 더 갑시다. 그럼 다음 사람부터 시작!

 

 뭐야, 끝난 거 아니였어? 당황스러워 하는 나를 내버려두고는 그 다음 학생이 실린더를 돌렸다. 

 

 차르륵, 철컥, 탁. 통과, 다음 사람.


 그는 총을 내 책상위에 올려놨다. 내 차례가 왔다.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잡고, 실린더를 돌린다.

 

 차르륵, 실린더가 돌아가는 소리.

 철컥, 엄지로 공이를 젖히는 소리.

 

 그리고 검지로 방아쇠를 당긴다.


 탕!


 "야, 너 거기. 일어나, 임마."


 이마에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내 책상에 올려져있는, 반으로 부러져 버린 분필 한 자루, 그리고 나를 향해 화가 난 표정으로 손가락질 하는 선생님.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길게 늘어져있는, 내용도 알아보기 힘들게 쓰여있는 글씨들. 나는 금세 내가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깨달았다. 아, 이런 젠장.


 "뒤로 나가 서있어. 어디서 잠을 자, 잠을."


 햇빛은 여전히 따사로웠다. 낮잠 자기 좋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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