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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위대한 12초

2009.07.10 22:1407.10

위대한 12초
-플라이어 1호의 사진에 관하여


Prologue.
나는 죽어가고 있다. 아니, 내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며칠 전, 오래지 않아 내가 죽게 될 것이란 것을 문득 깨달은 나는 내가 살던 집을 조금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사진사로 활동했고, 지금까지도 독신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정리할 추억은 많지 않았다. 온갖 사진들이 들어찬 상자들이 가득한 창고만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의무였다.
그래서 나는 벌써 이틀째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늙어 으스러져가는 몸을 힘겹게 이끌고 내가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추억을 뽑아내 그 실로 수의를 짓고 있었다. 나에게 소중한 사진은 다른 상자로, 쓸데없는 사진은 타오르는 모닥불 속으로 정성스럽게 옮기며 나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좀 더 자유롭게 풀려져 나갔다. 그때였다. 내가 그 사진을 발견했던 것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그 위대한 장면을 발견해낸 것은.
나는 그 사진을 찾아내고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몸소 경험했던 그 사건을, 그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창고 정리를 끝마치기도 전에 금덩어리라도 되는 양 그 사진을 조심스레 서재로 가져온 나는 얼마간 그 사진을 쳐다보다가 액자를 꺼내어 그 안에 그것을 끼워 넣었다. 그 액자를 책상 위 잘 보이는 것이 안치하고서 나는 펜을 집어 들고 회고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꾼 형제의 이야기가 얇은 종이 위로 펼쳐져 나갔다.


#1.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의 미궁에 갇혀 있었다. 그는 그 마의 미궁 라비린토스의 제작자였으나, 설계도를 모두 불태워버려 미궁의 구조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떻게 해서든 그곳을 빠져나와야겠다고 결심한 다이달로스는, 미궁에 떨어져 있는 새의 깃털과 벽에 매달린 벌집의 아교(밀랍)를 이용하여 날개를 만들었다. 그는 만들어낸 두 쌍의 날개 중 한 쌍을 함께 갇힌 아들, 이카로스에게 건네며 충고했다.
“아들아,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아교가 녹아 날개가 부서지니 조심하여라.”
그러나 이카로스는 미궁을 탈출하고 날아가던 도중 하늘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지 못한 나머지 너무 높은 곳까지 날아가 버렸다. 날개가 녹아 깃털이 하나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할 때에야 그는 자신이 너무 높이 올라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도 전에 결국 바다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인들의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소망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신화로 유명하다.
시간이 점차 흘러 과학이 발달한 13세기에 이르자…….」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덮인 그 책은 손때가 묻어 낡을 대로 낡아 있었으나, 「하늘에 대한 고찰」이라고 쓰인 제목만은 그 책이 만들어졌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선명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한참이나 그 책의 표지를 응시하던 나는 잠시 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칠흑 같은 하늘과 점점이 박힌 금싸라기별들, 그리고 여위어 가는 그믐달이 벌써 한밤중이 되었음을 나에게 또렷이 알려주고 있었다. 팔을 뻗어 하늘을 움켜잡는 듯 창밖의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본 나는 이내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몇몇 유성들이 긴 꼬리를 달고 하늘에 횡으로 선을 그었다.


#2.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지도 어언 2주가 지났다. 미국 아이오와 주, 데이턴 시의 시더래피즈 마을. 우리 가족이 살게 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이라 함은 단지 두 사람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란 그 형제가 어딜 가나 서로의 분신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난 2주 동안 나는 따로 다니는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 또한,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들은 화장실도 같이 갈 정도로 붙어 다닌다고 하였다. 물론 과장된 바가 적잖이 있겠지만, 그들은 그런 소문이 공공연히 돌아다닐 만큼이나 우애가 깊었다.
라이트 가(家) 아이들, 혹은 라이트 형제가 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형이 윌버, 동생이 오빌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을 부를 때나 대화할 때는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어이, 라이트!”하고만 말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성으로 부르는 것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불려왔기에 익숙하고 친숙하기 때문인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듯, 그들이 늘 하나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라이트 형제는 또한 향간에서 ‘괴짜’라 칭해지고 있었다. 혹자는 괴짜가 천재와 의미가 상통하는 단어라고 하였으나, 일단 ‘괴짜’라는 말 자체가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괴짜라는 것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도 그들을 단순한 괴짜가 아닌 ‘총명한 괴짜’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지난 2주 동안 나는 그들의 괴짜 같은 면모를 보지 못하였으나, 아이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친구가 고장 낸 재봉틀을 고쳐주겠다고 학교를 빼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결국 수리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시골에서 기계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을 텐데, 그들이 하루 만에 재봉틀을 뜯어내서 그 구조를 분석하고 수리해냈다는 것은 그들의 괴짜 기질, 아니 천재성을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고 조심스럽게 평가를 내려 본다.
이 정도면 그들에 대한 설명은 끝났다. 요약해보자면, 그들은 우애가 깊은데다가 괴짜이고, 덧붙여 천재성마저 돋보이는…, 평범하지 않은 형제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 형제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를 부르는 내 또래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음성은, 윌버인가?

“어이, 위트! 같이 가!”

역시 윌버다. 뒤에는 동생 오빌을 호위병마냥 대동한 채, 그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 같은 학년에 같은 반인 그는 내가 이곳으로 전학 온 이후 가장 친해진 친구들 중 하나였다. 솔직히 말해 사교성 좋고 밝은 성격인데다 지도력까지 있는 그는 학교의 모든 학생들과 안면을 트고 있었으니, 굳이 내가 그와 친하다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학교에 적응하는 데에 윌버가 지대한 공을 세운 것만은 확실했으므로, 그에게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어! 라이트, 얼른 뛰어 와!”

나는 그, 아니 그들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주며 회답했다.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적당히 대꾸하기 위해 간신히 짜낸 말이었으나,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그들에게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그들도 나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토를 달지 않고 밝게 마주 미소지어주었다.

“자자, 얼른 가자! 조금만 더 늦으면 지각이야!”

그렇게 나는 그들과 급속도로 친해져갔고, 몇 달 뒤에는 ‘라이트!’라는 호칭에 나 역시 포함되게 되었다. 내 성이 ‘라이트’일리는 만무하였으나, 나는 나의 새로운 호칭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쏙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그들 형제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품어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 사이의 두터운 신뢰는 그 때, 내가 ‘라이트’의 호칭을 얻었을 때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3.
그렇게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와 윌버는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생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한참 진로를 고민해야 될 나이여서 그 당시의 우리에게는 언제나, 길을 걸을 때나, 숙제를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심지어는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조차 근심거리가 있었다.

“위트, 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뭘 하고 싶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던 나의 머릿속에 윌버의 질문이 입력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한참 뒤에야 입력과 분석을 끝내고 윌버의 질분을 이해한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대학에선, 우선 미술 분야를 전공하고 싶어. 공부하는 틈틈이 사진술을 익혀서, 사진사가 될 거야. 재미있을 것 같거든.”

내 말을 듣고 윌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진술이라는 게 별로 발달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 당시에는 장래성조차 불투명한 기술이었던 탓이었다.

“뭐, 네가 하고 싶다는 게 그거라면 상관이야 없겠지만, 부모님께서 반대하시진 않으셔?”

부모님의 반대라……. ‘너의 길을 걸어라’라고 아버지께선 늘 말씀하시곤 하셨으므로, 내가 가겠다는 길을 그분들이 막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시고 모든 선택권마저 나에게 맡겨 주신 그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술을 정말 배울 것인지도 고민하던 참이었다. 윌버는 나의 근심거리를 정확히 집어냈던 것이다.

“반대는, 아마 하지 않으실 거야. 남은 건 내 선택 밖에는 없어.”

윌버는 내 말을 듣고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걱정, 근심, 그리고 고뇌가 그의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장래 문제로 부모님과 다투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것일까? 쓸쓸해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조금 우울해져버렸다.

“윌버, 너는 어쩔 건데? 생각…, 해 봤어?”

나의 질문은 조심스러웠고, 그는 내 물음에 곧 슬픈 표정을 지우고는 대꾸했다.

“대학에는, 가지 않으려고 해.”

그의 갑작스런 선언에 나는 당황하여 놀라다 못해 잠시 얼어붙어 버렸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것은 앞으로의 공부를 포기하겠다는 것일까? 성적도 좋고 공학에 재능 있는 그가 공부를 더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거지? 내 얼굴에서 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읽었는지 윌버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공부를 아예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단지 사회에 일찍 진출하는 편이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하면서 조금 흥분해버렸는지 조금씩 호흡이 빨라지며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가던 윌버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려는 듯 몇 차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다시 평온하고 안정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나랑 오빌은 앞으로도 기계를 만지면서 살 것인데다가 대학에 간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 난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어. 얼마 전 오빌이랑 같이 만든 인쇄기를 이용해서 신문을 내 볼 생각이야. 데이턴 시에는 지역신문이 없으니, 아마 잘 팔리겠지…….”

독백을 마친 그가 나를 쳐다보며 밝게 웃었다. 아마도 나와 대화를 나누며 확실한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했다. 이 녀석은 항상 생각이 깊고 고민이 많은 녀석이었으니, 결심하기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윌버를 보며, 나도 사진술을 배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 우리 모두 자신의 길을 가는 거야. 열심히 해야겠지.”

반쯤은 그에게, 반쯤은 나 자신에게 충고하듯 읊조린 나의 말에, 윌버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고, 이내 나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굳은 표정으로, 그는 나에게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잠시 그 녀석과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침묵은 때로 그 어떠한 말보다 많은 것을 표현해주곤 한다. 그 날의 침묵은 우리에게 있어서 언약과도 같은 의미였다.


#4.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독학으로 틈틈이 사진술에 관한 지식을 쌓아가던 나는, 가끔씩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강직한 글씨체로 쓰인 윌버의 편지와 장난기 가득한 필체로 쓰인 오빌의 편지는 공부에 지쳐가던 나를 매우 즐겁게 해 주었다. 그들의 편지엔 늘 여러 가지 일들이 적혀 있었다. 처음으로 왔던 편지에는 드디어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이 발간한 첫 신문이 동봉되어 있었고, 그 뒤로도 그들의 일상생활이라던 지, 혹은 신문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들 특유의 문체로 아기자기하게 적혀 있었다. 그들의 편지는 언제나 평범하면서도 유쾌한 사건들이 적혀 있었기에, 내가 졸업할 때 즈음 도착한 그들의 소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문사가, 장사가 안 돼?”

그들의 편지에 적혀 있는 바에 따르면, 그들의 신문이 데이턴 시에서 큰 인기를 얻자, 큰 신문사들이 그 기세를 몰아 자신들의 신문을 판매하기 위해 장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지역 신문으로서는 거대 신문사들의 정보 수집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고, 결국 문을 닫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젠장!”

마음만 같았으면 그 비열한 거대 신문사 자식들을 작살내고 싶었으나,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윌버의 편지에는 아직 한 쪽 분량의 글이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마저 읽으며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전거 장사를 시작하겠다는 거야?”

기계를 만지는 데에는 소질이 있었으니,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팔겠다는 윌버의 말에 나는 걱정 반, 기쁨 반 정도의 심정으로 그 편지를 내려놓았다. 물론, 그들 형제에게 있어서 자전거 수리와 판매는 굉장히 좋은 기회일 것이다. 앞으로 기계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질 것이고, 그들의 자전거라면 잘 팔리겠지. 하지만, 녀석의 편지에선 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학마저 때려치우고 신문사를 열겠다던 그 당시의 열정이 이 편지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할 거냐, 윌버.”

나는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며 독백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의 말이 그 녀석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나는 내 마음이 그 녀석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 형제를 북돋아주고, 너희는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나는 밤새도록 술을 마셔댔다.

“어떻게 할 거냐고…….”

눈가가 젖어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라이트 형제의 신문사가 실패했기 때문에 흘러내리는 눈물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편지에 함께 들어있었던 그들 어머니의 부고(訃告)와 식어버린 그들의 열정에 대한 안타까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나의 무능함에 대한 실망이 모두 나의 가슴에 응어리져서,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술잔이 한 차례 비워졌다가 흘러내리는 나의 눈물로 차올랐다. 하늘에서는 별 하나 없이 달만이 시리게 빛났다.


#5.
난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그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들에게서 간간히 편지가 오곤 했지만, 내가 답장을 보내는 적은 없었다. 그들도 내가 답신을 보내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지, 이따금씩 찾아오던 편지도 2년이 지나자 끊겨 버렸다. 물론 우리들이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이 길 끝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고 싶었던 것이다.

“윌버, 윌버, 나의 친우여.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들과 연락을 끊은 뒤로 나는 부쩍 혼잣말이 늘었다. 부모님께서는 편찮으셔서 시골로 내려가 요양 중이셨고, 대학마저 졸업한 뒤로는 친구로 삼을 사람들조차 근처에 있지 않았다. 가끔씩 찾아오는 옛 동료들은 내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며, 건강을 좀 생각하라고 충고하곤 했으나, 지금은 그 무엇도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관심의 대상은 언제까지나 라이트 형제 뿐이었다. 그들에게서 언젠가 반드시 올 편지를, 나는 맹목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나 소중한 존재들이였다. 나는 헛된 일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미련할 정도로 한 곳만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편지가 끊긴지도, 1년째야. 아직까지도 너희들은 미래를 보지 못한 거냐? 언제까지 그렇게 얽매여 있을 건데! 이제는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란 말이다, 하늘을!”

내가 그렇게 혼자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갑자기 벨이 울렸다. 지금 시간에 찾아올 이는 없었고, 집배원인가? 나는 현관문을 향해 뛰다시피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역시나 집배원이었다. 밀랍으로 정성스레 봉인된 편지를 들고 나의 신원을 확인한 그는,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 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봉투를 조심스레 뜯어내었다. 급하게 내용을 읽어내려 가려고 했으나, 그다지 긴 내용은 써져 있지 않았다.

「릴리엔탈 추락사. 우리 라이트 형제, 비행기 연구 착공.」

길지 않은 그 편지를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정말 종이가 뚫어져라 수십 번이나 그 편지를 읽어 내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들은 역경을 이겨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나도 그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한동안 고생해야 했다.

“해냈구나, 윌버. 해낸 거야.”

사람이 너무 기쁘면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나는 그 자리에서 실감했다.


#6.
그 편지가 오고 나서 우리는 다시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전만큼 긴 편지는 오간 적이 없었으나, 커다란 벽을 하나 뛰어넘은 우리들의 편지에는 언제나 경탄과 기쁨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연구의 성과라던가 새로운 기술 등에 관한 내용이 5년 넘게 오가고, 마침내 1903년 가을 말, 나에게는 하나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해안에서 비행기를 날려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정중하고 엄숙한 문체로 쓰인 그 편지가 어째서인지 내 웃음을 유발했다. 그 동안의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들과 나 사이의 끈끈한 신뢰 관계를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꼭 가지, 꼭 간다고! 윌버, 기다려라!”

12월 중순까지 나는 이것저것 필요한 짐을 챙기는 데에 바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진기였다.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게 될 그들을, 나는 꼭 기록으로 남겨주어야 했다. 어쩌면 내가 사진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었던 것도 그들을 위해서였는지 몰랐다. 마음 속 한 곳에 그들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있었던 나는 이렇게 그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짐을 다 챙기고도 몇 번씩이나 풀어보며 점검을 마친 나는, 들뜬 기분으로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기차가 흔들리는 속도에 맞추어 내 심장도 두근거렸다. 셔츠 위까지 내 심장 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나는 긴장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성과물을, 그 역사적인 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이 사진기에 담고 싶어서 나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도 주먹 쥔 손을 펼치지 못했다.

“공기 좋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가슴을 펴고 지레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흘낏흘낏 곁눈질하며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으나, 그런 것에 신경 쓸 게재가 아니었다. 도착한 것이다. 이제 거의 10년 만에 나는 그들 형제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아니, 만난다 뿐이랴! 세계 최초의 순간을, 나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위트, 여기야!”

역에서 헤매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윌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윌버는 머리가 조금 벗겨졌다는 것 외에는 전혀 변한 점이 없었다. 그 꼿꼿해 보이는 외모 하며, 유쾌한 성격까지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나는 그 옛날의 소년이었을 적 모습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계속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데, 윌버의 한마디가 내 근심을 씻은 듯이 없애주었다.

“위트, 너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나!”

기뻤다. 그는 나를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기억해주고 있었고, 또한 그렇게 말해주었다.

“고마워, 너도 역시 변한 점이 없는 걸? 윌버, 비행은 내일이지?”

내 질문에 순간 윌버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냥 긴장했을 뿐이었는지 그는 이내 미소를 띠며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래, 내일이야. 내일이면 모든 게 바뀌겠지.”

윌버와 나는 오랜만의 재회를 즐기다가 숙소로 향했다. 물론 우리 둘 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터였다. 오빌 역시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평범한 날이 아니었기에, 밤이 깊어가도록 나는 뜬눈으로 남아있었다. 밤을 이기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었고,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7.
“이제 날리는 거야.”

키티호크 해안은 고요했다. 초대장을 받고 온 사람은 얼마 없었다. 다들 라이트 형제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한 순간의 판단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 좋은 기회를 놓쳤다. 세계가 진화하고 있다면, 지금은 그 분기점이다. 1903년 12월 17일, 사람들은 이 날을 앞으로 영원토록 기리게 될 것이다. 인간이 하늘을 지배하게 된 첫 번째 날이라며, 모두가 이때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완벽한 사진을 남겨야만 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된 것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자, 출발한다! 형, 조심해!”

오빌의 말에 윌버가 비행기에 납작 몸을 엎드린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보였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비행기를 고정시키고 있던 끈을 끊은 그는, 비행기가 조금씩 속력을 높여가며 해안선을 따라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형 윌버를 쳐다보았다. 나는 사진기를 잠시 놔둔 채 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한 차례 쳐 주었다.

“긴장 풀어, 오빌. 그리고 저 비행기를 따라가도록 해. 내가 멋지게 한 장 찍어줄 테니까.”

내 말을 들은 오빌은 그제야 굳었던 어깨를 풀고 평소와 다름없이 헤실헤실 웃으며 플라이어 1호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속력이 점차 빨라지던 비행기가 떠올랐다. 낮았지만 분명히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오빌은 환호성을 지르며 비행기를 따라 달렸다. 나 역시 크게 소리치며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었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손에 땀이 차 계속해서 스위치가 미끄러졌다. 안 돼. 찍어야 한다, 반드시 찍어야 한다. 나는 사진기를 조금 비스듬히 돌린 뒤 스위치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을 펴 손 전체로 힘껏 그것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그 역사적인 순간이 필름 위에 또렷이 새겨졌다.

찰칵-


Epilogue.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일이다. 조그만 도시의 시골마을 출신 꼬마들이었던 윌버와 오빌은 신문사와 자전거 상회를 거쳐, 결국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하늘을 동경하던 사실을 잊지 않았으며, 결국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은 다들 나보다 일찍 저세상으로 가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윌버의 그 진실 된 눈을, 그리고 오빌의 미소를 나는 똑똑히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사진은 많은 곳으로 퍼져나가 새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제 사람들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든 형제의 이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윌버 라이트, 그리고 오빌 라이트. 나의 소중한 친우이자 영원히 위인으로 남을 그들을, 나는 이 회고록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숙여 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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