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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새장속의 새.

2005.08.22 16:4908.22

관자놀이가 타는 듯 하는 느낌, 그 이름은 어지럼증.

영민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베란다로 걸어갔다.

늦여름의 햇살이 영민을 태울 듯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베란다에 도착한 영민은 동쪽 벽에 걸려있는 새장을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새장.

새장 속의 새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민의 입술이 열렸다.

“이름 모를 새야.”
네가 내 이름을 모를 뿐이야.

“너는 답답하지도 않니?”
특별히 답답하거나 그러지는 않아.

“그렇게 철조망 속에 하루 종일 갇혀서 무엇을 생각하니?”
너는 하루 종일 그렇게 집 안에 갇혀서 무엇을 생각하니?


“나는 몽상을 하고 사색을 해. 내면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지.”
그것은 자기기만이야. 너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

“너는 무엇을 하니?”
나는 하지 않아.

“너는 자유롭고 싶지 않아?”
너는 지금 자유롭니?


영민은 피식 웃었다.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래?”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민은 쓰러지듯 베란다바닥에 누웠다. 째깍 째각 돌아가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영민은 말했다.

“이래선 안돼.”

그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뚜우우...... 뚜우우...... 철커덕. 그리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늘 한잔 하러 가자.”

‘무슨 일 있어?’

“알겠지? 나중에 포장마차에서 만나자.”













넥타이를 풀어헤친 직장인. 슬리퍼를 질질 끄며 힘없이 걸어오는 청년.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저씨.

폭풍처럼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탁류 속에 몸을 맡겼던 세 명의 남자는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빨갛고 하얗고 노란 음식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짜고 달고 맵다.


그리고, 이미 앉아있는 두 명의 남자.

영민은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한석아. 나는 말이야. 나는, 내가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한석은 영민의 오래 된 친구이다. 그러나 성격은 영민과 정반대였고, 좋은 직장을 가진 흔히 말하는 엘리트이다. 할 일 없이 집에서만 박혀 있는 영민의 유일한 친구이자 말동무였고 술친구였다. 한석은 말없이 영민을 바라보았다.


영민은 피식피식 웃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벌써 내 나이 스물여덟이야. 직장은 없고, 꿈도 없고 능력도 없지. 꿈과 희망은 내 나이 스물다섯 때 군대를 다녀와서 다 사라져버렸어.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아무것도 없더군. 스물 살이라는 젊은 나이도, 넘치던 패기도...... 나는 그냥, 그래. 난 평범한 놈이었어. 아니, 그 이하라고 해야겠지. 나는 특별하지 않아. 나는 그냥 되는 대로 대충 사는 쓰레기야. 그래, 그렇지. 너와는 달라. 너는 다르지. 너는 달라. 너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영민은 고개를 숙였다. 한석은 우울한 눈빛으로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난...... 왜 이런거지?”

“......”

“아니, 왜 이렇게 된거지?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거야. 그래, 난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뭐가 날 이렇게 바꾼거지? 군대? 나이? 빌어먹을, 주위 환경?”


한석은 결국 말해버렸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만든거야.”

“내가?”

“네가.”

영민의 붉게 충혈 된 눈이 한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잔뜩 잠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내......가?”

한석은 대답하는 대신 잔에 술을 채웠다.

영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내가 그랬군...... 그래, 내가 그랬겠지. 너는 아니겠지. 하하.”

혼자 피식피식 웃던 영민은,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

“그러면 어떡하면 좋지?”

한석은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네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한석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한 마리의 용은 바다를 가로질렀다. 하늘이 갈라지고 바다는 솟아오르고.








영민 뱃속의 구토물은 입안에서 솟아올랐다.

“우에엑....”

영민은 지금 자신이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있는지, 용이 날고 하늘이 갈라지고 바다가 솟아오르는 공중에 떠있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확신한건 하나뿐.

“우웨에에엑..”
엄청나게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다는 것.


‘너무 많이 마셨어.’

영민은 술을 언제 먹었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어제였던가? 아니면 불과 몇 시간 전에? 중요한건 조금이라도 더 뱃속에 있는 것들을 비운 뒤, 침대 위에 눕는 것이다.

“우웨에에엑.”
















끼루루룩.

응?



영민은 눈을 떴다. 갑작스레 많은 빛을 맞이하게 된 동공은,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을 축소시켰다.

“으음. 아침인가.”

머릿속이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영민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찌리로로로로”

찌리루? 끼리로? 무슨 소리지? 영민은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열려있는 새장, 그리고 그 옆 창문틀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이름 모를 새.

새는 침대 위에 앉아있는 영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민의 입이 열렸다.

“이제 자유롭니?”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메랄드 색의 자그마한 날개를 펼친 새는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창문 밖으로 날아가는 새의 뒷모습을 보며 영민은 배가 아플 때까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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