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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겨울비

2016.08.31 22:4008.31

창 아재는 나보다 다섯 살이 어렸다.

 코흘리개 어린애일 때야 나이가 어리니, 아재, 아재, 그렇게 부르라고 듣기는 했어도 윗사람인 줄은 몰랐다. 뜀박질도 돌팔매질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어리디 어린 아재는 말이 좋아 아재지, 만만하게 나어린 동생이나 다름없었다.

 “나이가 어려도, 그 위에 항렬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대여섯 살 먹은 윤창 아재를 놀리고 속여다 물에 빠뜨리고 돌아선 날, 나는 회초리로 다리가 부르트도록 맞아야 했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윤창이 네 숙부고, 너는 아랫사람이니라.”

 그리고 이럴 때, 윤창 아재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은 할아버님 아닌 우리 아버지였다.

 할아버님야 늦둥이 막내아들이 면구스러우신지, 뻔히 윤창 아재가 아버지이, 하고 부르며 쫓아와도 못 본체 고개를 돌리곤 하셨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당신의 맏아들보다도 한참을 어린 저 늦둥이 아우를 늘 나보다 윗길로 두셨다. 그것이 아버지가 알고 계신 질서이고 도리였으며, 나는 마땅히 장손으로서 그 집안의 질서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믿으셨다.

 그런 관계로, 윤창 아재가 도회에 나가 공부를 하고, 나는 고등보통학교만 마치고 그대로 붙들려 와 이 마을에 남게 되었을 때에도, 그 처사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은 나 뿐이었다.

 “정 무언가 하고 싶다면, 선생이 되면 될 게 아니냐.”

 할아버님과 아버지의 처사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고보 마치고 선생이 되는 것은 좋다고 했다. 그런데 네가 뭐라고 했느냐. 왜놈들 학교에서 가나나 가르치는 건 싫다고 네 입으로 말해 놓고서 뭐라는 거냐.”

 장손을 대학까지 보내 놓았더니 공연히 헛바람만 들어, 사회주의니 무어니 엉뚱한 소리나 하며 쏘다니다가 집안을 풍비박산 내더라는 이야기는 비단 먼 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옆 동리에서도 그런 식으로 장손이 붙잡혀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니. 선생이 되어 이 마을에 얌전히 눌러앉으라는 말씀에, 그저 1, 2년 학교에 나가 보았다가, 칼 차고 일본 순사같은 꼴을 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직을 한 것도 그분들 눈에는 영 불안해 보이는 것이었다. 어쩌면 할아버님과 아버지는, 나를 고보에 보낸 것조차도 후회하고 계실 지도 모른다. 차라리 촌무지렁이였으면 집안이라도 보전할 것을, 하고. 그분들에게는 내가 아니라, 이 집안만이 중요하였으니.


창 아재는 나와는 달랐다. 그는 어려서는 얌전하게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동리의 영재였고, 자라서는 경성의 명문 고등보통학교에 1등으로 진학하더니, 장학금을 받아가며 제국대학에 들어간 수재중의 수재였다. 예전에야 행세 깨나 하는 집안이었다지만, 세상이 바뀌어 예전만한 영화는 누리지 못하던 차에, 아재의 승승장구는 가문의 기쁨이자 영광이었다.

 “거 봐라, 윤창이가 해도 뭔가 할 거라고 했잖느냐.”

 아재가 방학을 맞아,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오면, 온 집안 어른들은 다 모여 술잔을 기울이시고, 더러는 아직 오지 않은 앞날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우리 집안에서 군수가 하나 나와 봐라. 누가 우리 집안을 감히 무시하겠느냐.”

 “군수보다는 역시 경찰서장이 더 낫지 않겠소.”

 “윤창이 저 아이는 영리하기는 해도 강단이 없어서…….”

 “그래도 사내가 큰 뜻을 품어야지 않겠소. 그 어린 나이에 멀리 경성까지 가서 공부를 하는데, 그 정도 포부며 기백이야 있겠지.”

 이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윤창 아재가 높은 사람이 될 날을, 그래서 우리 집안 사람들이 다들 목에 힘을 주고 다닐 날을 벌써부터 그리워했다. 할아버님의 젊디젊은 후처가 낳은 이 아재는, 어려서는 그 형님들의 눈치를 보며 몸을 숙였고, 학교에서도 오로지 공부만을 하더라고 들었다. 요즘 먹물 먹은 젊은 사람들이 흔히 떠들어대는 사회주의니 독립 운동이니, 그런 험악한 것들은 그의 인생에 끼어들 틈조차 없으리라는 말도 들었다. 그는 공부 열심히 하여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울 희망이었고, 나는, 응당 이 집안을 물려받을 장손으로서, 그렇게 집안을 일으켜 줄 나의 숙부,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윤창 아재에게 감사해야만 했다.

 씁쓸한 감정이 앞서긴 했지만, 내가 윤창 아재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선생이 되기를 포기한 이상 여기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야 할 내 인생에, 책이며 레코드며, 경성에서 자기가 보고 들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다 주는 것도 윤창 아재 뿐이었다. 사회주의 하는 친구들 소식을 물으면, 자기는 잘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더듬더듬, 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해 주는 사람도 그 뿐이었다. 언젠가는 조카님이 바라시는 그런 날 들이 오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일어나는 윤창 아재의 뒷모습을 보며, 너는 윤창 아재가 나이가 어려도 나보다 어른은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다섯 해 전의 나는, 윤창 아재까지 걱정하고 다닐 깜냥은 없었으니까.

 그런 윤창 아재, 온 집안의 희망인 윤창 아재가 갑작스레 귀향한 것은, 그가 졸업을 1년 남짓 앞두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제 내자입니다.”

 아재는 앳된, 단발머리에 구두를 신은 여자를 데려왔다.

 "진명을 나온, 무척 똑똑한 아가씨입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창 아재에게는 본래 정혼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며 몸이 불편하여 단자를 돌려보냈다. 윤창 아재는 그렇습니까, 그 말 뿐 가타부타 말도 없었다. 애초에 연애를 걸었던 것도, 애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윤창 아재는 그 일 이후로 들어오는 혼담은 죄 거절하곤 했다.

 “지난 번 그 일을 계속 마음에 두는 것이냐. 인력으로 어떻게 될 일이 아니래도.”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면 왜 모두 마다하는 거냐. 사내란 하루빨리 혼사를 치러야 안정이 되고, 자식도 낳아야 하는 것인데.”

 “제가 공부가 길어질 것 같아, 제 각시 될 이를 고생시킬까 그렇습니다.”

 윤창 아재는 그 일 하나만큼은 고집을 부렸고, 집안 어른들은 결국 그 일에 대해서만은 약속한 듯 입을 다무셨다. 아마도 윤창 아재가 지금 공부하는 학생일 때 장가를 보내는 것 보다는, 학교를 마치고 자리를 잡은 다음에 좀 더 나은 혼처를 구하리라는 꿍꿍이도 내심 있었으리라.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우리 집안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집안들과 통혼할 수도 있으리라며 김칫국을 마시는 분도 계셨다. 종손이 뒤늦게 후처를 얻어, 손자보다도 어린 아들을 두었다고 윤창 아재를 부끄러워하시던 분들은 다 어디 가셨는지.

 그렇다보니, 윤창 아재가 멋대로 혼인을 하고 돌아온 일에 대해 어른들이 속앓이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집안 곳곳, 어디를 가도 저 순순하던 아이가 어쩌자고 저런 일을 저질렀느냐며 한탄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어디서 요망한 단발머리 신여성 따위가 이 집안을 차지하려 드느냐며 호통치는 어른들도 계셨지만, 윤창 아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 나도 들은 이야기는 있다. 젊어서 객지에서 혼자 살다보면 객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여학생 첩을 두고 사는 경우가 없진 않더라고 하더구나.”

 “첩이 아니라 내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륜지대사를 어찌 마음대로 정하는거냐.”

 “이미 혼인신고 서류를 내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이리 서두르는 거냐!”

 “반대하실 테니까요.”

 윤창 아재는 그린 듯이 단정하게 앉아,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조금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윤창 아재가, 조용하고 얌전하게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그저 머리 숙여 예, 하고 대답할 줄이나 알았던 집안 어른들은 한 대 얻어맞은 듯 망연한 표정으로 이 반격을 바라보고만 계셨다.

 “이번에 젊은 여인들을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공출하려 드는 것을 아시지요. 그 정신대에 끌려나갈 노릇이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하고 아내로 삼았습니다. 전부터 마음에 두던 처자이고, 집안도 지금은 다소 영락하였으나 본래 반가의 자손이었으니, 너그러이 받아 주십시오.”


창 아재가 데려온 여학생은, 이제 열 여덟이라 했다.

 진명여학교라, 지금은 내지에 계신 이왕 전하의 어머님이 직접 세우신 학교라고 듣기는 하였는데, 과연 좋은 학교를 나온 처자라 그런지 나이가 어린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그림처럼 단아하였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저 구두 신은 작은 발을 까딱거리며 혼자 뜻 모를 이국의 창가를 나지막히 부르는 것이, 꼭 윤창 아재의 어렸을 때 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였다.

 “아…….”

 그저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는데, 그녀가 이 쪽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새카맣고, 한량없이 말갛게 보였다. 아직은 천진스러울 만큼 어린,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죄송해요, 안 계신 줄 알고…….”

 “아니…… 아닙니다.”

 나는 순간 그녀를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지 갈등했다.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윤창 아재가 데려온 사람이다. 집안 어른들이야 뭐라고 말씀하시든 윤창 아재가 아내로 삼은 여자다. 본부인이든 첩실이든, 이럴 때 내가 그녀를 부를 말은 하나 뿐이다.

 “아즈마니.”

 그게 무언지 분명히 아는데도, 내 입에서는 그 말이 제대로 소리를 맺어 튀어나가지 못했다.

 그저 한없이, 맑고 어리기만 한 듯한 자그마한 소녀.

 그런 여자를 바라보는 것이, 어쩐지 사무치게 쓰라리고 아팠다.

 어째서일까.

 나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그런 마음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바로 알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이름을 붙여주어선 안 되는 마음이었다.


“그 이가 늘 조카님 이야기를 했어요.”

 그녀는 다 쓰러져가는 초당 마루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뭐라고 하셨습디까.”

 “그 이에게는 늘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라고요.”

 마음이 쓰인다.

 그 말이 씁쓸하게 입안에 돌았다. 여기 이 시골에 묶여, 어디로도 날아갈 수 없는 내 신세를 딱히 여기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때 그녀가 말했다.

 “어머님은 그 이를 낳다 돌아가시고, 아버님께서도 일찍 돌아가셨고, 후처 자손이니 서자보다는 나아도, 그 집안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늘 무서웠다고 했지요.”

 “그렇게 말했습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모았던 윤창 숙부를 떠올리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늘, 어디 가서도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야만 어른들이 내치시지 않을 것 같았다고.”

 “그렇게까지 강퍅한 분들은 아닙니다.”

 나는 우물거렸다.

 “……께야, 숙부님께 기대하셨던 게 컸다보니 모질게 대하신 게 없진 않겠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그녀가 배꽃처럼 조용히 웃었다.

 “제게는 친정도 없고, 근로 정신대에 끌려가더라도 막아 줄 사람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아…….”

 “배우던 학교에서 언젠가 교편을 잡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긴 하였지만, 그 뿐이었지요. 근로 정신대라는 게 말이 좋아 가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지, 실은 처녀 공출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가 그 이야기를 듣고 혼인을 하자고 말씀하셨어요.”

 “숙부님은…… 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품이니까요.”

 나는 일부러, 조금은 심술궂은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예, 그런 분이지요.”

 하지만 그녀는 자기도 알고 있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그녀가, 그 말에 마음이 상했으면 좋았을텐데. 남들같으면 자식을 두엇은 두었을 나이에, 나는 아직도 그런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전 그래서, 지금에 만족해요. 살 곳이 있고, 굶지 않아도 되고, 읽을 책들이 있으니까.”

 그녀는 초당의 낡은 기둥에 뺨을 대며 중얼거렸다.

 윤창 아재는, 그녀를 남겨두고 경성으로 돌아갔다.

 하루빨리 학위를 받아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제 처를 잘 부탁한다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집안 어른들은 어떻게든 그녀를 내쫓을 궁리만 하였고, 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고 본가 근처, 예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윤창 아재가 이삼 년간 지냈던 초당에 아재의 책들을 가져다 넣고, 그녀를 거기서 살게 했다. 그녀가 이 초당에 들어오던 날, 나는 그녀의 가방을 대신 받아들어 여기까지 가져다 주었다.

 가방은 낡고 작고 가벼웠다. 어린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그 이가 늘 조카님 걱정을 했어요.”

 “내 걱정 말입니까.”

 나는 당황하여, 불퉁하게 대답했다.

 “내가 걱정할 게 무에 있다고요.”

 “공부도 계속 하고 싶었을 텐데, 집안에 묶여 있어 안타깝다고 하셨고. 일찍 상처하셨는데, 집안 어른들이 그 이의 혼사보다는 조카님 혼사나 좀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저도 서두를 건 없습니다.”

 “그래도요.”

 “애 낳다가 그리 간 거, 제 팔자가 그랬나 보지요. 어쩌겠습니까. 박복한 탓인 것을.”

 “마음에 두고 계시지요.”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알 것 같아요, 그 이처럼 정이 깊은 분인 듯 하여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를 이 초당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어른들 말씀처럼, 윤창 아재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내쳤어야 했다.

 아재는 나를 용서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녀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윤창 아재는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상해로 간다고 했다. 상해에서,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내게만 남몰래 편지를 보냈다. 윤창 아재가 경찰서장이나 군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이 집안 어른들이 아시면 줄초상이 날 일이었다. 차라리 무지렁이같은 자손이면 집안을 보전이라고 하겠지만, 쓸데없이 독립운동을 한다고 나서는 자손은 집안을 말아먹는 법이니까. 아버지께도 말씀드릴 수 없었다. 아버지는, 윤창 아재가 그저 천둥벌거숭이 어린아이였을 시절에도 윤창 아재를 내치자는 말씀만은 하지 않으셨지만, 집안의 안위가 달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게 뻔했다.

 김윤창은 이 집안의 서출로, 부친께서 돌아가신 후 이 집을 떠나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라고.

 온 집안 사람들이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을, 근동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해도. 양반의 방식이란 그런 것이다.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개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 가문에 해를 끼칠 자라면 축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 것이 왜놈들에게 통하느냐 아니냐는 그 다음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전보가 왔다.

 부고였다.

 윤창 아재가, 상해에서 왜놈의 장교에게 수류탄을 던지려다, 그 자리에서 사살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놈은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데, 대체 왜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거요!”

 집안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아버지는,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 표정과 그 목소리로, 순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동생 분을 아끼시더라고, 소문이 파다하던데 말입니다.”

 경부 놈이 빈정거렸다.

 “서출이라도 재주가 많아, 일가붙이의 말석에라도 앉혀 주었건만. 말이 오만하고 행동이 불손한데다 불령선인같은 언사를 늘어놓으니, 네놈은 내 아우가 아니라 하고 절연하였소.”

 “불령선인이면 마땅히 저희에게 언질을 주셨어야지요.”

 “아무리 그래도 선친께서 늘그막에 어여뻐 하시던 혈육인 것을, 사람 도리로 어찌 그렇게까지 하겠소. 내쫓아, 어디 가서 이 집안 사람이라 말하지 말라 단단히 일렀을 뿐. 내, 족보에서도 그놈의 이름을 지워 버렸으니, 어디 가서 그 놈이 이 집안 사람이라는 말은 하지 마시오!”

 “족보에서만 지운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어르신.”

 “어쩌라는 거요, 그럼.”

 아버지가 한탄하셨다.

 “그 호적이라는 데서 파서 없애기라도 하라는 거요!”

 “물론 그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제수 되시는 분께서 여기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제수라니. 그 놈이 끌고 들어왔던 학생첩 말이요?”

 나는, 몰래 사랑채를 빠져나왔다.

 내 방에서 돈이며 돈으로 바꿀 만한 물건 몇 가지를 꺼내 들고, 길을 돌아, 담장 그늘에 몸을 숨겨 달렸다.

 그 초당이라는 곳은, 본래 남의 눈에 띄지 말라고 마을에서도 한참 외지고 구석진 자리에 지어 둔 것이라, 운이 좋다면 아직 순사들 눈에 띄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밥 짓는 연기조차도 드물게 오르다 보니, 그녀가 여기서 지낸 여섯 달 동안, 그 초당에 누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얼마 없었다.

 안채를 지나 뒷채로 가려다 말고, 나는 안채의 뒤쪽, 첩실들이 머무르던 작은 별당을 돌아보았다.

 그 별당의 마지막 주인은, 할아버지의 어린 후처였다. 처로 맞았으나, 끝내 안채를 차지해보지도 못하고, 윤창 아재를 낳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산욕으로 죽은 그녀의 방이었다.

 나는 그 별당 문을 열어젖혔다. 주인을 잃고 잊혀진 지 오래였으나, 별당의 구석방에는 예전 그녀가 쓰던 반닫이 따위가 모여 있었다. 나는 그 가구들을, 도둑이 된 듯한 기분으로 열어젖혔다. 물색 비단옷 같은 것 틈에, 작은 패물함이 있었다.

 나는 그 패물함을 열어보지도 않고 집어들었다.


“아즈마니!!!!!!”

 나는 구르듯 초당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허황하고 차분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상해로 갑시다.”

 “상해라니요.”

 그녀가 일어났다.

 “그 이가, 연락이라도 했나요?”

 나는 순간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윤창 숙부가 상해로, 독립 운동을 하러 갔다는 것을.

 “어, 어떻…….”

 “어른들게 말씀드리지 않았을 뿐.”

 그녀는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반닫이 하나 뿐, 별다른 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구석에 놓인 반닫이를 열고, 처음 이 곳에 올 때 가져왔던 그 낡은 가방에 짐을 쓸어담았다. 옷 몇 벌, 그리고 작은 사진첩 같은 것 하나가 고작이었다.

 “경성에서도 계속, 운동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설고 낯선 숙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강단없고, 나약하고, 순순하고, 그저 공부만 할 것 같았던 어린 숙부가, 경성에서 했다는 그 일들이, 부끄럽게 내 살갗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내 손에 들린 패물함을 보고 웃었다.

 “도둑이 되고 싶진 않아요.”

 “……이건 숙부님 거예요.”

 나는 목쉰 소리로 중얼거렸다.

 “숙부님을 낳고 돌아가신, 별당 할머님 것이니까.”

 “…….”

 “이리 와요. 어서 가요.”

 나는 그녀의 가방을 빼앗아 들고, 가방에 패물함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산으로 향했다.


가 왔고, 허무하고 가냘픈 그녀의 작은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순사들도, 이런 날씨에 젊은 여자가 산을 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람이 다니지 않을 만한 산길로 업고 올라갔다. 길이 가파르긴 했지만, 눈을 감고도 뛰어다닐 수 있었던 곳이다. 어린애처럼 가벼운 젊은 여자 하나 쯤은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몇 번인가 발이 미끄러졌지만, 나는 그저 말 없이 그녀를 업고 걷고 또 걸었다.

 심마니들의 초막에 그녀를 밀어넣었다. 비는 쉬이 그치지 않을 듯 했다. 웬만하면 이 비가 오는 동안 한 걸음이라도 더 멀리 달아나야 했지만, 사람이 아픈 데야 도리가 없었다. 나는 하인들 방에서 대충 걷어 온 장쇠의 옷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남자 옷을 보고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길어 쪽이라도 질 수 있는 머리라면 모를까, 이 머리 꼴을 하고 여자 옷을 입고서 먼 길을 떠나는 게 더 위험할 듯 했다. 나는 가위로 그녀의 머리를, 덥수룩하고 촌스럽게 잘랐다. 곱던 얼굴에 때가 묻으니, 못 먹고 비루한 어린 하인아이처럼 보였다.

 “여기서 좀 쉬세요.”

 “조카님.”

 그녀는, 열이 끓어 멍한 눈을 하고도 나를 돌아보았다.

 “조카님은 집으로 돌아가세요. 이제부터 혼자 갈 수 있으니까.”

 “그 꼴을 하고 어딜 혼자 간다고 그럽니까!”

 나는 언성을 높였다.

 “계집이라는 게 발각나면 길에서 겁간이나 당할 것이요, 사내애인 줄 알아도 예쁘장하고 자그마한 게, 어디 낼름 잡아다가 팔아먹어도 천지간에 흔적도 안 남을 사람이!”

 “죽으면 죽을 것이고, 살면 또 살겠지요.”

 “아즈마니!”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어쩌면, 윤창 아재가 죽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녀의 귀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초막에 누가 살고있는 줄도 아무도 모르는 마당에, 누가 그녀에게 그런 소식을 전했을 리 없다. 나는 예의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윤창 아재가 죽었다고 하면, 이 여자도 죽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살려야 했다.

 “정신을 차리란 말이요! 숙부님께 가야 하는데, 여기서 나약한 소리나 하고 있을 겁니까!”

 “상해에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상해가 옆 동네 마실 가는 건 줄 알아요!”

 “조카님.”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나는 잠깐이라도, 행복하고 편안하게 잘 살았어요.”

 이 바보같은 여자가.

 “그 이는 내 선생님이었고, 내 동지였고, 내 서방님이시고.”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그 분 곁으로 갈 수 있어요.”

 윤창 아재는 이미 죽었는데.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누구 곁으로 가겠다는 거야.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잊지 않을 거예요. 이곳에서의 몇 달도, 조카님이 내게 얼마나 잘 해 주었는지도.”

 죽은 사람의 기억으로 남는 것 따위 다 필요 없으니까, 살아달라고.

 당신이 살기를 바란다고.

 죽지 않고, 살아서, 저놈들 손에 잡히지 말고, 훨훨 날아가길 바란다고.

 그 말들이 당장에라도 목구멍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때, 멀리 사람 소리가 들렸다.

 “쉿.”

 나는 얼른 초막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심마니의 초막은, 사람 하나가 겨우 몸을 누일 만큼 좁았다. 일부러 알고 찾으러 온 게 아니라면, 불과 몇 걸음 앞을 지나가더라도 여기 이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숨을 죽였다. 비에 젖고 열이 오른 어깨에서 희미하고 달큰한 냄새가 났다.

 “아즈마니.”

 나는 속삭였다.

 “내가 같이 가겠다는 게 아니에요. 날 데리고 가 줘요.”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난 평생 이 곳에서, 묶여 살았어요. 하고 싶은 일도, 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사내놈으로 태어나서, 나라 빼앗은 놈들에게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종가의 종손이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조카님…….”

 “그러니까 날 데리고 가 줘요. 짐이 되진 않을 테니까.”

 애원하듯 매달렸다. 그녀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위쪽을 덮은 이엉 틈으로 빗줄기가 새어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아기처럼 꼭 끌어안았다.

 어느새, 발 소리는 멀어져갔다.

 그녀는 열에 들뜬 몸으로,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정신을 잃은 게 아니기만 바랄 뿐이었다. 바람이 불었고, 초막 안으로 황토 섞인 빗물이 밀려들어왔다. 어차피 여기 있으나, 밖을 걸으나,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녀를 업고 일어나, 초막을 덮은 이엉을 뜯어 한 자락을 그녀의 어깨에 덮었다.

 그저 북쪽을 바라보며, 나는 걷기 시작했다.

 우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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