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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쫄면

2017.03.31 20:1203.31

쫄면

– 해망재 –

자신이 하지 않은 딸꾹질 때문에 온 몸이 들썩거리고 있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를 낳아 본 엄마라는 뜻이겠지. 유현은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배를 툭툭 쳤다. 딸꾹, 딸꾹, 딸국. 아기는, 아니, 아직 뱃속에 있는 태아는 무섭게 딸꾹질을 해 댔다. 너무 자주 하는 게 아닐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병원에 가 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병원 문턱만 넘어서면 거짓말처럼 딸꾹질을 멈추곤 했다. 아무 문제도 없어요. 자연스러운 성장이에요. 의사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애기가 숨쉬기 연습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양수도 삼키면서 딸꾹질도 하고."

 "정말 괜찮아요?"

 "엄마가 불안해 하는 게 더 안 좋아요. 가기 전에 막달 검사 날짜 잡고 가세요."

 불안했지만, 불안해 하는 게 더 안 좋다니 내색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는, 마치 행복이 조금씩 다가오는 기간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루하루 불안감에 숨도 쉬기 어려운 임신 35주 차.

 임신을 하면, 먹고 싶은 게 많을 줄 알았다. 한 밤중에 남편을 깨워 한겨울에 딸기며 망고, 한여름에 귤을 내놓으라고 상전처럼 떼를 쓸 줄 알았다. 밤마다 치킨을 뜯으며 맥주는 왜 못 마시냐고 투덜거릴 줄 알았다. 잘 먹고도 잘 먹어 인생 최고 체중을 가뿐히 갱신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처음에 못 견뎠던 건 라면 냄새였다. 그 다음은 냉장고를 열자 뺨을 때리듯 튀어나오던 김치 냄새. 그 바람에 남편은 새벽 두시에 냉장고 청소를 해야 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고 바퀴벌레가 미끄러질 만큼 깨끗하게 청소를 한 것 까진 장했는데, 이번엔 락스 냄새 때문에 동 틀 때 까지 속이 뒤집혀 울었다. 밥이 다 된 것을 알리며 새하얀 김과 함께 쿠쿠가 뿜어내는 밥 냄새가 마치 흐린 날 티타늄 공장에서 뿜어내던 연기처럼 역겨워진 순간에는, 자신의 정체성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33년 평생 밥을 먹고 김치를 먹으며 살아왔는데, 밥 냄새가 역겹다니. 죽고 싶었다. 생수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도, 몇몇 생수는 물에서 희미한 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넉 달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닐까, 영양실조로 애가 잘못되는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아이는 멀쩡했다. 의사 말로는 엄마가 밥을 안 먹으면 엄마 몸에서 양분을 빨아서라도 아이는 큰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들 애 걱정만 하고 애 안부만 묻고 애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이쯤 되면 아이도 아이지만 나도 좀 걱정해 달라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퇴근길에 길에서 주저앉아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포도당을 맞고 누워 있으니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고 하얀 병원 천장을 올려다 보는데,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안부 전화가 아니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날따라 뼈에 사무쳤다. 애 낳다가 죽은 사람은 없는데, 남들 다 하는 입덧 갖고 유세를 한다고. 그 말씀이 서운해서 명절에도 시댁에 안 갔다. 전화를 하셔도 데면데면, 예, 예, 그런가보죠, 그렇게 퉁명스레 대꾸하고 끊었다. 못됐다, 독하다, 싸가지가 없다, 뱃속의 손자 때문에 말은 못해도 돌아앉아 말씀은 많으시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물도 제대로 못 넘겨서 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그리고 애 낳다가 죽은 사람이 없긴 왜 없어. 그런게 정말 없었으면 산모 사망률이라는 살벌한 통계 항목은 왜 있겠어. 바로 이 동네 산부인과도 몇 년 전에, 산모가 애 낳다가 죽어 난리가 난 마당에. 그래서 이 근처 여자들은 다들, 아이를 낳으려면 종합병원에 가야 한다고들 수군거리곤 했다. 종합병원에서 차로 15분 내, 어지간한 급병에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는 병원세권인 이 동네가 좋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의 문병이나 문상을 갈 때 외의 일로 종합병원에 드나들게 된 것도 임신을 한 뒤의 일이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이, 별 냄새는 나지 않고 맛은 강한 것들이었다. 새콤한 것들. 왜 사람들이 임신을 하면 신 것이 당긴다는지 이해가 갔다. 한의학적으로 간이 허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이렇게 속이 메스껍고 모든 것이 텁텁하고 역겨워 물도 못 마시는 상황에서, 신 맛만은 그 텁텁함을 조금이나마 눌러주는 듯 했다. 입덧이 계속되는 내내, 유현은 아침마다 레몬 반 쪽을 쭉 짜서 물병에 넣고, 레몬물을 마시며 하루를 버티곤 했다.

 딸꾹. 이번에는 아이가 아니었다. 배가 불러올수록, 온 내장이 짓눌리는 게 느껴졌다. 아이는 뱃속에서 부지런히도 움직였고, 그때마다 위장을 걷어차곤 했다. 간 쪽에 불룩 튀어나온, 아마도 엉덩이로 추정되는 부위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유현은 어릴 때 봤던 공포영화를 떠올렸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SF영화였을 텐데.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공포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영화. 무서워서 이불에 머리를 처박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봤던 영화, 에일리언을. 사랑스러운 아기를 기다리면서 그 영화를 떠올릴 만큼, 뱃속의 존재는 낯설었다. 처음부터 엄마와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듯, 그녀의 생각이나 행동방식과는 번번히 다르게 움직이곤 했다. 그녀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체크무늬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눕자마자 휙 돌아누워, 배 위에서 출렁거리는 그 체크무늬에 놀라 비명을 지르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유현은 애써 생각했다.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힘든 건 힘든 거지. 연애라고 꽃길만 밟는 게 아닌 것 처럼. 어쨌든 지금은, 앙상하게 말라서 배는 툭 튀어나오고, 얼굴은 부어올라 자기 얼굴같지 않은 이 상황에서, 딸꾹질까지 두 사람 몫을 해야 하는 시기다. 유현은 그런 자신이야말로 에일리언을 닮은 게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남유현 씨 슬슬 들어가야 하지 않아?"

 대답하려는데, 계장이 먼저 말을 끊었다.

 "요즘은 다들 애 낳기 전까지 일 해. 그래야 출산휴가 하루라도 더 쓴다고."

 "아니,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잖아. 괜찮은거야? 애는 괜찮고?"

 "예."

 "요즘 출산률 떨어져서 큰 일인데, 남유현씨 애국하네."

 "애국 조오치......."

 계장이 말을 흐렸다. 임신한 임산부, 곧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써야 할 사람, 그리고 앞으로 십수년을, 아이 때문에 안절부절 못 할 사람은 부담스럽다는 투였다.

 "그래도 요즘은 워킹맘도 애 키울 만 하지. 여긴 육아휴직은 잘 되어 있잖아."

 "전 계약직이라."

 "계약직도 1년 쓸 수 있을걸? 총무팀에 물어 봐. 박영희 주사가 잘 알 거야."

 "거,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계장이 손사래를 쳤다. 규정을 따지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규정대로라면 육아휴직도 쓸 수 있고, 출산휴가를 쓰는 것에 미안해 할 필요도 없었다. 규정대로라면 임신 초는 물론 당장 다음 주 부터 아이를 낳을 때 까지 단축근무도 할수 있어야 했다. 매달, 산부인과 검진일에도 보건휴가를 쓸 수 있어야 했다. 생리휴가는 무급이지만, 임신해서 검진받으러 가는 건 유급이었다. 하지만 계약직은 물론이고 공무원도, 그런 걸 챙겨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법은 많은 것을 보장하는데, 상사는 그런 것을 보장하지 않았다. 임신했다는 말은 회사에서는, 축복이 아니라 짐짝 취급의 서곡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가끔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임산부를 위해 가장 많은 규정과 혜택을 만들어 놓은 곳이 관공서인데, 다른 데들은 임신만 해도 회사를 그만두게 하거나, 못살게 굴어 나가게 하거나, 임산부에게 짐을 들게 하거나 사다리에 올라가게도 한다는데, 여기조차도 다들 눈치를 보며 뱃속의 아이를 키워나가야 한다면 다른 곳들은 어떤 지옥도가 펼쳐지는 걸까. 제도가 갖춰졌을 때 사람이 바뀌는 것은 강제력이 주어질 때의 일이다. 제도가 있어도 그 대상이 약자라면, 상사들은 절대 입을 다물지 않는다. 자식이 넷이나 있다면서, 계장은 유현에게 바쁠 때 임신을 했다고 계속 투덜거리곤 했다. 그런 그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짐도 들고 다니고, 정수기 물통도 갈았다. 계약직이 아니면 좀 나았을까. 남유현씨가 아니라 남 주사였으면 대놓고 짐짝 취급하진 않았을까. 생각해 봤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들 마찬가지였다. 출산휴가 낼 사람이라고, 육아휴직도 들어갈 지 모른다고,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고과는 깎이고 승진은 밀리는 것을 눈 앞에서 보아 왔다. 남자는 애아빠가 되면 책임질 게 늘어난다고 고과도 승진도 더 잘 받던데, 더 열심히 일하던 여자는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반쪽어치도 일을 못 하는 사람인 것 처럼 취급당했다.

 새콤새콤한 게 먹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만큼 맵고, 시원하고, 그런 것이.

 임신 기간 내내 먹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먹을 수 없는 것은 얼마 없었다. 처음에는 입덧 때문이었고,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많아 마음놓고 이것저것 먹을 수가 없었다. 임신성 당뇨도 걱정이었고, 돈 걱정도 끝이 없었다. 출산휴가만 쓰자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고, 휴직을 하자니 다시 여기서 일 할 수 있을 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몇 달동안 외벌이 상태인 게 마음에 걸렸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보라카이 같은 데서, 따뜻한 바다를 바라보며 며칠이라도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좀 쉬고 싶었다. 구내식당에서 올라오는 반찬 냄새에다, 아이는 멀미가 날 정도로 딸꾹질을 해 대어, 유현은 화장실에 숨어 혼자 울었다.


김밥천국 가게 안은 음식 냄새가 너무 넘쳐나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쫄면을 들고시청 앞 벤치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 한둘이 그녀를 보고 수군거렸다. 유현은 남들이 보든 말든 벤치에 앉아, 쫄면을 비벼 냠냠하게 입에 넣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순간도 추억이 된다거나, 그런 말 같은 것은 개나 물어가라지. 힘들고, 아프고, 서럽고 비참한 눈물이 반 잘려 올라간 삶은달걀 위로 뚝 하고 떨어졌다. 남들 다 하는 임신 갖고 유세하는 게 아니었다. 남들 다 이렇게 임신기간을 보내는데도, 상사에게 영영 찍혀버릴까봐, 직장으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무서워서 찍소리도 못하는 거였다. 나라는 존재가 거짓말처럼 지워져 버릴까봐 겁먹는 것도 아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생존해야 하는데,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밀려나 버릴 것 같아서, 임신을 한 것이 무슨 회사에 큰 죄라도 지은 일인 것 같아서. 나는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 괴롭고, 뱃속의 아이는 이렇게 커져가는데, 계속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숙인 채로 잔뜩 웅크려서, 바보같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유현은 쫄면을 입에 밀어넣으며 엉엉 울었다. 밝은 하늘 아래에, 남들 다 보는 훤한 길가에서, 그렇게 어린아이같이 울어버린 것은 나이가 두 자리가 된 이후로 처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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