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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bragon@naver.com연녹색 표지에 흰색과 검은색으로 된 글씨와 카툰이 어지럽게 장식된 이 책은, 단편집이라기보다 잡지에 가까운 외관을 하고 있다. 촌스러운 디자인과 펄프 질감이 강한 재질은, 선명한 ISBN 넘버와 12,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사실상 동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물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 동인지. 슬프게도, 한국 SF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수록된 이 단편집은, 겨우 동인지의 형태를 벗어나는 시늉만을 내고 있었다. 마치 한국 SF 자체의 뿌리 깊은 영양실조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알려진 대표 작가들이 힘을 합쳐 모여서야 겨우 하나의 단편집을 펄프지 형식으로나마 내 볼 엄두를 낼 수 있는 게 한국 SF의 현실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비록 개별 차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고, 심지어 박상준 교수의 서문마저도 그냥 일견하고 지나가기엔 아까운 의미심장한 문화 칼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서문에도 앞서 말한 한국 SF의 한탄스러운 현실이 충분히 지적되고 있지만, 또 그와 동시에 이 책이 그 현실에 주는 희망에 대한 기대와 격려 역시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작품 외적인 면에서도, 이 책은 현재 한국 SF계의 현실을 잘 대변하는 기념비적인 물건이라 할 수 있다.

책에 실린 10개의 단편은 소재도 내용도 분량도 다 제 각각이지만, 그들이 나타내려는 주제―――라기보다 메시지―――는 마치 서로 미리 짜고 쓰기라도 한 듯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이런 점도 동인지적인 측면을 더 강화해주는 한 요인이 되고 있지만.) 여기 수록된 단편들을 세 가지 단어로 축약하자면, 첫째 관계, 둘째 한국, 셋째 자아 라고 할 수 있다.

관계는 나와 타인의 관계, 상호 작용을 말한다. 인간과 비 인간의 관계, 순혈과 잡종의 관계, 메이저와 마이너의 관계, 과거와 현재의 관계, 남자와 여자의 관계…
SF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그 자유로운 발상과 상황 설정으로 인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만 국한되는 주류 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책에 수록된 여러 글들도 그런 장점을 십분 활용해 독자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관계와 의사소통이 현대, 특히 ‘지금’을 대표하는 최대 화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한국 SF 작가들의 결코 얄팍하지 않은 성찰은 매우 반갑다.

한국이라는 코드는, 이 책을 다른 SF와 차별하는 가장 강력한 변별점이자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 그리고 한국 SF 팬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특별히 애국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국인이 쓴 SF이기에, 한국과 한국인이 중심 배경으로 나오고,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출판 시장의 90% 이상을 외국 번역물에 의존하는 한국 SF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한국인이 쓴 글에 한국이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이 오히려 신선함마저 줄 정도다. 실린 글 10개 중 7개가 한국과 한국인을 중심 배경으로 사용했으며, 그 중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 현실을 살짝 비판하는 것들도 보인다. ‘박철수’보다 ‘존 스미쓰’가 더 익숙한 SF 팬들에게, 한국 작가들의 한국 SF라는 것은 어쩌면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요소인 자아 역시 관계 못지 않게 SF에서는 많이 다루어지는 소재다. 많이 다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자아에 대해 가장 심도 있게 고민하는 문학 장르가 SF일 정도로, 자아라는 것은 SF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소재이며 그만큼 깊은 통찰력을 가진 작품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작가들이 새삼스레 ‘자아’를 살펴 보는 것은, 역시 그들이 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환협지’라고 통칭되는 장르 문학계에서 그들의 나이가 젊은 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학계 전체로 볼 때는, SF가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인 장르라 해도, 그들을 노장파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유일하게 복거일 씨만이 여기에서 예외인데, 역시 그래서인지 여기 실린 그의 글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젊음 탓인지, 자아에 대한 통찰은 진지하기는 해도 기존의 다른 작품들보다 낫다고 보기는 힘들다. 앞서 ‘관계’라는 코드가 한국적인 감성, 현대적인 정서와 어울려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비해, ‘자아’ 라는 깊은 주제에 대한 젊은 단편의 짤막한 성찰은 기존 작품들의 변주 내지는 답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내용과는 상관 없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의 ‘편집 방향’이 다면적이라는 것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얼터너티브 드림’은 타이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위치인 5번째에 있고, 첫째 자리는 듀나의 ‘대리전’이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책 등의 작가 명에는 ‘복거일 외 9인’이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대리전’이 첫째 작품으로 수록되기에 아쉬움 없는 작품이긴 하지만, 한국 SF계에서 ‘복거일’이나 ‘듀나’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전체적인 통일성보다는 단순히 세일즈 포인트를 위해 ‘제일 폼 나는 제목’과 ‘제일 유명한 작가들’을 제 각각으로 표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총평은 이 정도로 마치고, 각각의 단편 하나하나로 시선을 돌려 보기로 하자. 한 작가의 단편집이라면 모르거니와, 10명의 작가에 의한 10편의 중단편을 싸잡아 하나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일이고, 각자 말하고 싶은 것이 다른 작가 개개인에 대해서도 실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장편과 달리 단편은, 특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SF 단편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상큼한 반전이 생명이기 때문에, 평소처럼 줄거리고 주제고 다 까발리면서 살펴볼 수는 없다. 그러니 독자들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평가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듀나의 ‘대리전’은 우정과 애정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는 여자들 간의 미묘한 관계를, 지구에 관광 온 외계인들의 유쾌한 활극 사이사이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품 큰 배경 자체는 은하 규모의 거대한 서사시의 도입으로서 부족함이 없고 듀나 자신 글 중에 ‘시작의 끝’이라는 표현을 인용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에 대한 그녀의 감정, 속내일 뿐이다. 이 작품은 드라이 와인, 혹은 녹차 라떼 같다. 달콤한 맛, 풍부한 향, 그리고 입 안에 남는 텁텁함. 이 대담한 단편집의 첫째 자리에 놓기에 손색이 없는 글이었다.

오경문의 ‘오래된 이야기’는 그저 그렇다.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아써 C. 클라크의 수많은 단편 중 하나를 읽는 느낌.
얼핏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과 비슷한 소재지만, 조금만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1페이지를 읽으면서 이미 전체를 다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격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최후의 질문에서’ 마지막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을, 이 작품에서는 글 전체를 통해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달까. 기독교 전승과 접점이 적은 한국 독자들로서는 더더욱 감흥이 떨어지는 작품.

이영도의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해서’는 ‘문화’에 대한 그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문학도로서 주제에만 치중한 나머지 물 건너 동네의 게임 설정을 대수롭지 않게 ‘단순 배경’으로 표절했다가 두고두고 쓴맛을 보게 된 출세작 때문인지, 그는 다른 이들보다 한결 더 전통 문화의 생명과 전승에 관심을 두게 된 듯 하다. 어쨌거나 그 시도는 무척 신선하며, 결코 무겁지 않은 작품 속에서 진지함과 함께 숙연함마저 느껴지게 한다. 그 외에 2세 생산에 대한 묘사는 이제 막 두 딸의 아버지가 된 내가 박장대소를 할 만큼 공감이 갔지만, 그러나 전혀 할머니답지 않은 주인공은 아무래도 조금 아쉬웠다. 이영도가 ‘여성’을 묘사하길 바란다는 것은 아직 무리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전’과 함께 이 책에 있는 10편의 글 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수작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엔더의 게임’에 나왔던 엔서블을 중요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인데, 위의 듀나의 작품 ‘대리전’에서도 똑같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미 국내 SF 작가들에게는 초광속 이동처럼 따로 설정할 필요 없는 일반 소재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작품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세계관을 그냥 공유하기로 마음먹었거나. 정보화 사회인 현대에서, 엔서블은 초광속 이동이나 광선총보다 더 유용하고 많이 활용할 가치가 있는 소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게 특정 작품에서 쓰인 창작 명사인 이상 한국 작가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그럴듯한 다른 단어를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김보영의 ‘땅 밑에’는 그야말로 SF 단편의 정석에 가까운 작품이다.
뒤집힌 설정과 적절한 반전. 작가의 과학적 지식을 의심케 하는 설정들이 사실은 복선임을 알게 되는 시점에서,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유쾌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발상의 전환’ 혹은 ‘신선한 소재’가 전부여서, 다른 깊은 통찰력이나 공감을 제시해 주진 못한다. 그야말로 SF 단편다운, SF에서나 가능한 신선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을 뿐인 작품. 20대까지의 감성에는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30대 이상의 독자에게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의 수많은 기사들 중 하나 정도의 느낌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김덕성의 ‘얼터너티브 드림’은 이 책의 타이틀 작품이기도 하고, 그만큼 분량도 많아서, 이 책에서 ‘로도스의 첩자’, ‘필멸의 변’ 등과 함께 단편이라기보다 중편에 가까운 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심 줄거리나 주제 의식은 그 분량에 따라가지 못하고, 상당히 소재 중심적으로 끝나 버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타이틀 작품인데다가 흥미 깊은 주제인 ‘꿈’을 다루고 있는 만큼, 좀 더 밀도 있고 깊은 성찰이 있었으면 했지만, 그저 색다른 MMORPG 공략집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쉽다.

이한범의 ‘사관과 늑대’는 뭘 얘기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정 모르는 풋내기 장교를 관찰자로 해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결국 로버트 하인라인의 ‘우주 전쟁’ 때부터 내려오는 K9에 대한 다양한 SF적 해석의 또 다른 변주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정체성 혼란은 2차 성징을 맞이하며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10대들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정도로, 이 책을 사 볼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을 것 같다. 또한, ‘오래된 이야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애완동물에 대한 기본적 감성이 미국과 다른 우리나라 독자들에서는 그리 공감이 가는 소재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젊은 이 단편집 중에서도 유독 대상 독자 층이 어린 쪽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장원의 ‘로도스의 첩자’는 전통적인 시간 여행물을 살짝 비튼 것이다. 그러나 꽤 많은 분량 동안 계속되는 내용도 결말도 독자의 초기 예상을 별로 벗어나지 못해, 그리 큰 감흥은 없다.
이 작품의 주된 장점이라면,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추’ 같은 지식 나열형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로운 사실을 덧붙이면서, 독자들은 ‘그게 그렇구나’ 라는 퍼즐 맞추기 식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사실을 나열한다고 그런 희열이 느껴질 리 없고, 마치 재미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적절한 레벨 밸런싱이 필요한 것처럼, 전체 구성을 구상하면서 지적 요소들을 적재 적소에 배치할 필요가 있는데, ‘로도스의 첩자’는 바로 거기에 성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축소판 SF형 ‘푸코의 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복거일의 ‘꿈꾸는 지놈의 노래’는 SF를 소재로 쓴 일반 문학이다.
이 작품에서 지놈 (나는 ‘게놈’이라는 표기를 더 좋아하지만)이 뭔지 DNA를 어떻게 재구축하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 마치 한국 의학 드라마에서 CT나 MRI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나 마찬가지. 단편 문학 작품으로서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자칫 주류와 단절되기 쉬운 SF 팬들에게 ‘일반적인’ 문학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 외에는 큰 가치를 두기 힘들다. 큰 기복 없는 잔잔한 전개나 주인공의 중년다운 달관적 시각도 주 독자층인 젊은이들에게는 쉽게 공감 가기 힘든 요소일 것이다. 교실 창틀 사이로 비치는 황혼을 담아낸 것 같은 작품.

노성래의 ‘향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기’의 SF적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박상준 교수가 서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이 단편집에는 변주적인 느낌을 가진 작품이 특히 많은데, ‘향기’도 그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추어들은 이런 느낌의 단편 SF를 쓰면서, 스스로를 추스르지 못하고 파국적 결말로 내달리는 실수를 범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런 폭주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칭찬해 줄 만하다.

신윤수의 ‘필멸의 변’은 딱 적당한 우량 SF다. 적절한 주제 의식. 적절한 서술 방식. 적절한 활극. 중편이라기보다 단편에 가까운 짧은 결말.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다.
그러나, 너무나 모범적인 그 모습 때문에, 별다른 향취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좀 더 작가 자신의 풍미를 넣고 갈등과 대립을 추가하고, 주제 의식도 좀 더 명확하게 내세워서 장편 소설로 내놓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우리나라 토양에서 단품 장편 SF가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중편보다는 장편에 어울리는 소재요 줄거리라 아쉽다.

이렇게 취향도 모양도 수준도 얼핏 들쑥날쑥인 10편의 중단편. 그러나 앞서 말한 공통 코드가 있어 그들은 하나의 책에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그런 공통 코드도 아니고 개별 작품의 주제도 아니고, 바로 한국 SF가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일 것이다. 수록된 작품의 수준은 대체로 높고, 최저라도 일독의 가치는 있는 것뿐이다. 코드 면에서는 흥미를 끌 만큼 현대적이고, 건전한 수준에서 지역적(한국적)이고, 다 읽었다고 구석에 던져 두지 않을 정도의 성찰이 있다.
비록 책 모양과 제본 품질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들지만, 책을 모양이 아니라 내용으로 판단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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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n 08.01.25 22:54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오류지만, 엔서블(또는 앤서블)은 '엔더의 게임'이 아니라 르귄의 '로캐넌의 세계'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입니다. 이후 스콧 카드를 비롯한 많은 sf 작가들이 빌려 쓰면서 보통명사에 가까워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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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1.26 10:56 댓글 수정 삭제
    애초부터 한국 SF의 정점에서 10명을 뽑아서 책을 낼 생각을 하고 글을 모은 게 아니라, 모 웹진에 실린 글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 SF 대표작가 단편 10선”이라고 홍보 문구를 붙여버린 거니까, 그 레토릭 때문에 이 책이 한국 SF의 현주소가 될 수는 없겠죠.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글도 수록되어 있지만, 책의 기획이나 진행과정 자체가 동인지 기획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 그게 한국 SF의 현주소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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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08.01.26 12:19 댓글 수정 삭제
    저도 부제 보고 좀 당황했어요. 이 책에 '한국 SF 대표작가 단편선'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2호, 3호에는 대체 무슨 이름을 붙이려고... 교수님들이 작품을 선정했던 크로스로드 첫 해의 작품들은 에... 분위기 많이 비슷해요. 전반적으로 사각사각합니다. 제가 부르는 이름은 '박사/교수 등장 소설' 모음집.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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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혼 08.01.28 13:22 댓글 수정 삭제
    //yunn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예전에 다른 분으로부터 그 비슷한 지적을 받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
    그런데도 '엔더의 게임'을 먼저 읽어서 깊이 각인되었는지, 이번에도 고쳐지질 않았네요.
    다음부터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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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2.03 20:15 댓글 수정 삭제
    황금가지 자체 주간 베스트 2위를 했더군요. 1위는 나는 전설이다, 구요.
    많이많이 판매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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