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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ticsun@msn.com들어가며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범상치 않은 표제부터 눈길을 확 잡아끈다. 무슨 책인가 물으니 청소년을 위한 SF 단편집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을 접해본 일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야 동화나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한 어린이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동화책은 아직도 읽는다), 중ㆍ고등학생 시기로 접어들고 나니 그 연령대를 겨냥한 문학은 ‘1318문고’가 다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당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던 지역 도서관에도 어른/어린이용 서적들은 달리 분류되어 있었지만 그 사이는 뻥 뚫려 있었다.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미묘한 경계인 시기, 10대 중반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서 아이 티를 벗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때문에 ‘창비청소년문학’이 기획되어 외국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스캔들] 같은 잘 쓰인 창작소설을 발굴하여 출간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기뻤고, 이 단편집 역시 기대가 크다. 더욱이 장르문학 중에서도 진입장벽이 높은 축에 속하는 창작 SF 단편이라니, 쉽지 않은 과제를 다양하게 소화해내는 작가들의 솜씨가 궁금해진다. 맛있기로 소문난 희귀한 요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심정에 비할 수 있을까. 어서 뚜껑을 열어 보라는 재촉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면 사양 않고 입 안 가득 맛을 느끼려 부지런히 손을 놀려본다.



김보영, 마지막 늑대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이 청소년 독자를 의식해서인지 주로 학교생활, 공부, 왕따 등 10대들에게 친근한 소재나 배경을 등장시킨 것에 비해 이 작품과 다음에 나올 {가말록의 탈출}에는 딱히 그런 의식이나 친절한 설명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SF를 처음 접하는 대다수의 청소년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시작이 될 듯하다. SF라고 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올릴 스페이스 오페라나 SFX 영화의 장면들과는 다른, 상상력을 마음껏 굴리는 SF의 맛을 느끼게 해 줄 작품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타나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용족과 그 애완동물로 전락한 인간들. 설정과 도입부만 보면 종족을 보존하는 길을 택한 원로원과 옛 인류의 생활 방식을 고집하는 ‘늑대’ 간의 갈등을 그린 소설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알맹이는 그보다는 훨씬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들은 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 (중략) 나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납작하게 벽에 눌어붙은 초록색 원과 선들을 보고서 ‘파란 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인간, 수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감각으로 알아차리면서도 색깔을 보지 못하는 용. 서로 사랑할 수는 있지만 이해하진 못하는 두 종족의 사연을 주로 인간의 시각을 통해 풀어놓고 있지만, 읽다 보면 그 둘의 거리를 서술하는 인간의 시각마저 낯설게 다가와 ‘인식의 차이’를 체감케 하는 지은이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을 인식하는 메커니즘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두 지성체 간의 불완전한 소통이 굉장히 서글프게 다가온다.



듀나, 가말록의 탈출

{마지막 늑대}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읽으니 마치 연작 같다. 공만 보면 흥분하며 소유욕을 느끼는 외계 생물 라두가 등장한다. 수천 년 전의 외계 지성이 알 수 없는 목적에서 주입해 놓은 그런 본능 때문에 라두는 생존본능도 잊고 공을 쟁탈하기 위해 미친 듯 날뛰며, 사람들은 그 거칠고 역동적인 싸움을 보며 열광한다. 자신 역시 라두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엔지니어의 자폭과 주입된 본능에 의한 것일지언정 꿈에 그리던 구체를 끝내 가질 수 없는 가말록의 절망이 교차하며 비극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능숙한 스토리텔러인 듀나의 작품답게 좀처럼 빈틈을 내보이지 않고 독자를 이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그동안 듀나가 보여준, 그다운 살짝 비틀린 재치랄까, 블랙 유머랄까 하는 요소가 덜 들어간 것 같다. 전에는 심각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큼 그런 감각이 양념처럼 더해지곤 했었는데, 이 작품에는 그런 요소가 덜해서인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는 느낌이 들고 듀나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 몰입도가 조금 낮았다.



박성환,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누구나 갑자기 머리가 좋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창 성적에 예민하고 진로가 불투명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작품은 그런 상상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소문은 은밀하지만 빠르게 퍼졌다―――지나간 우스갯소리 같은 글머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첫 문장에 나날이 머리가 좋아져 가는 학교 아이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비밀의 근원지는 대머리 박사의 연구실. 하루아침에 머리가 좋아지게 해주는 기술이라니, 굳이 청소년 독자가 아니더라도 설정만으로는 최고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지구를 침략하러 온 기생형 외계인 어으들의 짓이었다.

지은이 박성환은 그동안 풍자적인 작품을 많이 써왔는데, 이 작품 역시 공간적 배경이 학교일 뿐 날카로운 칼날은 여전하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바람에 억지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과 아론들의 말에 따라 이유도 모르고 침략자로 키워진 어으들이 잘 대비되며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작품은 여기에서 그냥 주저앉지 않는다. 지루한 일상 속에 자신이 돌연변이가 된 것처럼 느끼는 현우와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또 다른 돌연변이가 만나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두 돌연변이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다.

제목에서부터 재치가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표제가 아닌 이 작품의 제목으로는 조금 어긋나는 느낌이다.



배명훈, 엄마의 설명력

{엄마의 설명력}이라는 제목만 읽었을 때에는 그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다. 작품을 읽고 나서도 묵희를 완전히 속여 넘긴 엄마의 말솜씨를 가리키는 말이려니 했는데, ‘설명력’이란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쉽게 밝혀 말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지은이가 밝힌 바로는 “엄마라는 패러다임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이해하는 데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의미로 쓴 제목이라고 한다.

한 번이라도 배명훈의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천연덕스러운 뻥과 입담에 혀를 내둘렀을 법한데, 이 작품 역시 더없이 흥미진진하다. 천동설과 지동설간의 논쟁을 소재로 입양된 인도계 소녀 묵희의 가족사, 음모론 등이 얽히고설키며 엄마의 현란한 거짓말(?)이 펼쳐지는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지은이는 말해줄 듯 말 듯 결말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언제나 짐짓 진지한 듯 천연덕스럽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배명훈의 설명력이 정말이지 놀랍다.



송경아, 소용돌이

다른 사람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년이 등장하는 성장소설이다. 여기에다 최근 십 년간 가장 큰 청소년 문제로 떠오른 왕따를 주제로 다루었다. 갑자기 남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 고모의 유령이 나타나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 골치아픈 능력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교실 안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흥분과 갈등, 미묘한 악의들이 소용돌이가 되어 주인공을 괴롭힌다. 점점 커져가는 시커먼 소용돌이는 모두가 모른 척하는 교실 안의 왕따를 둘러싸고 생겨나는데…….

유일하게 주인공을 이해해주는 어른이 멘토 역할을 하는 것도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법하지만 그 어른이 하필 유령 고모라는 점이 재미있다. 교실이라는 공간에 공존하는 가해자와 피해자, 아이들이 품고 있는 악의를 소용돌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그들의 갈등 상황, 아이들에게 내재한 폭력성을 그려내는 것이 매우 능숙하고 주제 또한 시사적이다. 나중에 주인공이 선택한 해결책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해줄 수는 없지만, 한층 성장한 이 소년이 [다잉 인사이드]의 주인공 같은 운명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지문, 개인적 동기

[판타스틱]에 연재한 {내일의 꽃} 이후로 이지문의 작품을 접한 것은 처음인데, 전작을 상당히 인상깊게 읽었기에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기대에 비하면 이 작품은 평범한 느낌이다. ‘감정 공유 시스템’으로 노벨상을 받은 김영선 박사의 연구 인생을 돌아보며 그녀가 공감 시스템을 발명하게 된 동기를 파헤치는 내용으로, 이육사의 {교목}에 얽힌 학창 시절의 기억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을 조명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그러나 아이디어에 비해 서사가 부실한 편이라 읽어나가면서 흥미진진함이 덜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지은이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이현, 로스웰 주의보

지은이 이현은 장르문학계에서는 약간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들의 스캔들]과 같은 소설을 통해서 요즘 청소년 집단의 여러 문제와 그들의 심리 상태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탁월함을 보여주어 청소년 문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SF적인 상상력은 그다지 대단하다고 할 수 없지만, 고등학생 소녀인 화자의 정서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능숙하고 문체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형적인 외계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싸이나 UCC 붐 등 요즘 세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무의미한 매일을 기계적으로 살아가며 강박증에 걸린 듯 움직이는 사람들을 일상성에 침식되지 않은 솔직한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소연, 비거스렁이

이 단편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정소연의 작품은 섬세한 감정 묘사와 내내 큰 기복 없이 차분하지만 마지막에 강한 여운이 남는 서사가 특징이라고 할 만한데, 이 작품에서도 그의 강점이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어디에 가든 희미한 존재감 때문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소녀를 그려 왕따나 입시 스트레스 등 청소년이 당면한 문제를 밀착하여 다룬 앞의 작품들에 비해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물의 세세한 심리를 포착하여 배경과 완벽히 조화시키는 그의 내공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끝까지 책장을 넘기며 감동에 젖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시원해지는 일’이라는 뜻의 제목과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맺음말

처음부터 흥미를 돋우는 {마지막 늑대}로 시작해 배부른 입담의 {엄마의 설명력}을 거쳐 {비거스렁이}에 이르기까지, 포만감도 느껴지거니와 마지막까지 힘을 실어준 {비거스렁이} 덕분에 뒷맛이 깔끔하고 만족스럽다. 아무래도 지은이들의 작풍이나 노련한 정도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오가 들쑥날쑥하게 갈릴 수도 있겠다.

서로 개성이 다른 여덟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 보니, 모두가 고민 많은 청소년기를 거쳤기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것이 결국은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과의 소통이든, 사람과의 소통이든, 자신과의 소통이든. 그것이 청소년기의 고유한 관심사와 어떻게 결합되느냐의 문제이지 성인이 되어 느끼는 감정과 엄청난 괴리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청소년 독자가 아니더라도 즐겁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다.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문학 50선’이나 ‘타임 지 선정도서 100권’을 읽는 것도 좋지만, 새해에는 색다르지만 공감 가는 감수성을 보여주는 여덟 가지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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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n 07.12.30 11:20 댓글 수정 삭제
    정말 추천할 만한 책이었어요 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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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집은 원래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숨돌릴 시간이 필요한데, 워낙 재밌어서 한 번에 다 읽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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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7.12.31 08:26 댓글 수정 삭제
    하지만 현실은, 추천할만한 책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반응없는 책인 듯.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가 굉장히 반응 좋은 시리즈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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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림 07.12.31 13:44 댓글 수정 삭제
    그건, 너무 안타깝네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설마 과거의 sf가 현실 보편화 되면서 애들이 상상하기를 멈춘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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