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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유리성의 아이

2006.04.04 21:0304.04

유리성이 있었다. 아주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또한 단단하기까지 했다.2m정도의 높이. 작은 크기이지만 아이는 성이라고불렀다. 문이 없고, 창문도 없었다. 그래도 밖에선 안을 볼 수 있었고, 안에선밖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유리상자 안에 살고 있었다. 아이는 상자를 성이라고 불렀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유리벽에 구멍을뚫었다.그리고 그 구멍으로 하나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바라보려면 구멍을 두 개 뚫어야 했다. 아이는 유리벽에 난구멍을 통해밖을 바라보았다. 아이에게 유리벽은 바라볼 것일 뿐이지만, 유리벽의 구멍은 통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유리성이 있었다. 밖에선 안을 볼 수 있었고, 안에선 밖을 볼 수 있었다. 이따금씩 안에서 밖을 향해 손가락이 나오긴 했지만, 밖에서 안을 향해 들어가는 일은 그 날 이후 없었다.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매일 저녁 유리상자 앞에서 김밥을 먹었다. 남자는 구멍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를 유리벽 너머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이도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구멍이 있었다. 아이는 구멍을 통해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유리벽 너머 아이를 쳐다보았다.

“처음엔 벽돌성에 살았어요.”

아이가 말했다.

“아이가 자꾸 벽돌에 구멍을 뚫어서 바깥을 구경하길래 벽을 전부 유리로 바꿨답니다.”

아마. 아이의 엄마가 말했을 것이다.
아이의 엄마가 말했다.


남자에겐 오른쪽 검지가 없었다. 그날 이전에 그는 오른쪽 검지로 그의 콧구멍을 파곤 했다. 지금 그는 귓구멍도, 콧구멍도 파지 못한다. 그에겐 오른쪽 검지를 제외한 9개의 손가락이 있다.

그 날이었다. 그 날도 해가 지지 않은 저녁, 유리상자 앞에서 남자는 김밥을 먹었다. 마지막 남은 김밥을 입에 넣으려는그를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남자는 김밥 하나를 가지고 아이에게 갔다. 아이는 여전히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아이에게김밥을주려 문을 찾았지만 문은 없었다. 김밥을 주려 창문을 찾았지만 창문은 없었다. 남자는 김밥을 입에 넣고 구멍을들여다보았다.남자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아이의 눈을 쳐다보았고, 아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구멍에서 눈을떼었다. 그리고구멍에 오른쪽 검지를 집어넣었다.

유리칼이었다. 유리로 된 칼. 남자가 보아왔던 그 어떤 유리보다 맑고 투명한 유리로 된 칼이었다. 남자는 칼을 볼 수 없었다. 아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유리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이는 칼을 꺼냈다. 그리고 남자의 손가락을 내리쳤다.

지금 그는 귓구멍도, 콧구멍도 파지 못한다.

남자는 오늘도 유리상자 앞에서 김밥을 먹는다. 아이는 오늘도 유리성 안에서 구멍을 통해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 옆 김밥 봉지안에벽돌이 하나 들어있다. 남자는 남은 김밥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김밥 봉지를 집어 들어 유리벽의 아래쪽으로 던졌다.유리는맑은 소리를 냈다. 봉지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오늘 유리성이 깨어졌다. 아이는 깨어진 가운데 서 있다. 남자는 아이의 눈을 쳐다본다. 아이는 떨어진 유리 한 조각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다. 아이는 남자를 구멍을 통해 쳐다본다. 남자는 아이의 눈을

쳐다본다. 눈물이 눈 밖으로  흘러내린다. 남자는 눈물을 통해 아이의 눈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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