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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중단편선의 의미
거울이 앞으로 가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어떤 사이트가 발전하고 있다, 혹은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문학사이트라면 말이지요, 이렇게 떠억하니 한 권 정도 결과물이 나와주는 게 무척 좋은 기준이 되겠지요. 그것도 단순한 동네 인쇄물 수준이 아니라 정식 출판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그저 들르는 사람임에도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외적인 퀄리티만 해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듯 해서 책장한귀퉁이만 봐도 흐뭇해지는 기분. 사실 2005는 너무 두꺼워서 어디 들고다니기엔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다시 원래 크기로 회귀해 주니 저는 기뻤답니다. 게다 각 소설의 시작과 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는 세로선들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은 차이가 큰 만족감을 주더군요.
이번 2006 중단편선은 표제작을 앞세울 만큼 체계도 갖추어진 모습입니다. 단편선에서 표제작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한 작가의 단편선이라면 소설목록 중 가장 뛰어난 것이, 그리고 여러 작가의 글을 모아놓았을 경우는 편집장이 책의 성격을 대표하는 작품을 뽑게 됩니다. 2006의 표제작은 {변신!}. 왜 그 작품이 표제작인지는 독자들 스스로가 느껴보는 것이 좋겠고요, 나는 ‘표제작을 선정했다’라는 사실만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그럴만큼 거울에 작품이 쌓였다는 겁니다. 동호회의 회지나 기념 삼아 찍어내는 자비출판 같은 게 아니라 작가‘군‘이 생겼고 그것을 통제해서 리스트를 뽑을 만큼 말입니다.
거울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보증서가 꽤나 마음에 듭니다.

{변신!} 표제작이기에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이미 웹상에서 한 번 매우 인상깊게 읽었기에 기억력 젬병의 나로서는 드물게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단편이다. 역시나 이전에 읽었던 것과 비슷한 감정만 남았고,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은 이게 왜 표제작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사실 이 글은―――이 작가의 대부분의 글이 그렇듯이―――남들이 따라갈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장점만큼이나 도저히 모르고 넘어갈 수 없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차라리 같은 작가의 다른 수록작 버지니아울프가라사대라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다이어트같은 작품이라면 독특함을 살리면서도 단촐해 보이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역시 변신!만큼의 강렬함을 살리지는 못했겠지. 이 작품 첫장엔(121쪽) ‘변신’이란 단어 뒤에 느낌표가 없다. 이는 참 아쉬운 오타다. 왜냐면 이 변신은 카프카의 희극적이고 부조리한 변신과 다른, 황당하지만 그럴듯하고 재밌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변신로봇물의 주인공들이 크게 외치는 고함처럼 변신‘!’이다. 하하.

지금, 이 시대에 책을, 종이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의 의미
출판이 이전처럼 높은 벽이 아닌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출판 자체가 쉬운 일만도 아닌 시대지요.
인터넷은 정말 우리 삶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글을 읽는 것, 쇼핑을 하는 것, 영상을 보는 것……. 이 모든 행위들이 이제 인터넷―――전자파 가득한 작은 LCD모니터에 얼마나 적당한가 고려해야 합니다. 문학도 다르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온라인상에서 발달해 온 한국 인터넷 문학들이 특히 그러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그런 데를 몇 군데 돌아다녔는데 정말 요즘은 10년이 아니라 2,3년만 지나도 획획 변화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감탄한 것은, 그대로 몰락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아니, 실은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건지도요. 음, 그 쪽이 더 맞는 거 같네요. 우린, 우리대로 놀고 있군요. 종이책 만들면서.
종이로 보아야 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종이로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전자파 물씬 흐르는 모니터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종이책을 사는 이유는 소유욕 이전에 아직까지도 필요성 때문입니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진짜로 모니터로는 알아 볼 수 없는 내용일 경우. 그리고 모니터로 볼 때와 종이에 인쇄되어 읽을 때 완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 어느 쪽이든 종이로 인쇄되어 나와서 볼 수 있게 되는 건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행운입니다.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나 같은 경우엔 좀만 긴 글이어도 프린트해서 보는 편인데, 그런데도 책으로 나와서 볼 땐 또 전혀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전자책하고도 달라요. 역시나 아날로그 인간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쨌든 나 같은 아날로그들 많을 테니 종이책만들기는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들에게도 그렇겠지요. 자기가 쓴 걸 종이로, 책으로 만들어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건 분명 색다른 느낌일 겝니다. 누군가에게도 이야기 했듯이, 글 쓰는 이들에겐 몇 가지 커다란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장편에서 완결이 그러하다면 장단편 가림 없이 출판이 그러합니다. 그저 많이 쓴다고 느는 게 아니더라구요.
종이책 출간은 나름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의미심장합니다.

{몽중몽}이 경우가 바로 종이로 읽어야 느낌이 산다는 경우다. 모니터로는 머리 아팠던 짜깁기가 책으로 넘겨 읽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꿈속을 돌고 도는 나의 이야기가 끝까지 아주 좋았다. 환상적이고 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러면서 주제에 이르기까지 엉터리 하나 없는 유려한 이야기들……. 근데 모니터로는 전체 내용을 따라가기만도 벅찼더랬지. ‘작가로서 읽고 싶다’는 의미는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잘 못알아듣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멋진 이야기였다. 처음으로 이 글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최민주가 왜 그랬을까?} 유쾌한 글. 근데 종이로 보니 느낌이 좀 죽는다. 있을 만한 온갖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배꼽잡게 만드……ㄹ었었는데. 순위놀이, 댓글낙서, 광고글, 특정사이트에서 통하는 의성어들, 무한 반복 댓글, 통신체, 자음체, 앞말 잇기 댓글놀이, 행운의 편지류 등등등 정신없는 속에서도 어째저째 진실에는 그래도 접근해 가는 네티즌 군상들……이라는 게 너무나 실감나서 마치 내가 시간 남을 때 네이버 실시간 댓글을 읽는 중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생생했더랬다. 그래도 이런 글도 있어주면 나중에 돌아보며 웃게 될 거다. 인터넷 문학의 또 다른 진화다.


재능의 의미
편집장의 머릿글이 너무도 마음에 들더군요. ‘재능’이란…… 본인이 그만두고 싶더라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 바로 보고 밑줄 좍좍 그었더랩니다. 이 시대에 재능이란 그만두지 않는 것 붙잡고 있는 그 끈기 자체일지도요. 예전만큼 길이 멀지 않아 보이는 만큼, 그걸 계속 붙잡고 있기도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계속 해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2006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에 글을 실은 모든 작가들, 중단편선 출간에 힘을 보탠 이들, 그 모두가 뛰어난 문학도일 겝니다.

{하얀 이빨} 공포와 추리가 적절하게 뒤섞여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화자의 일상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사실성 깃든 면이 제일 좋았다.
{판타스틱 입맞춤} 작은 이야기. 많은 걸 한꺼번에 담으려 하지 않는 면이 좋다.
{걸어다니는 화석} 좀 더. 좀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 거 같다. 언제나, 이 작가의 인간 이야기는 정말로 마음에 든다.
{연애편지} 이것도 책으로 보니 좀 색다른 걸. 이해가 쏙쏙 되는 건 아니다.
{바지니에게} 분량으로 보자면 이거야말로 표제작. 내용으로 보자면…… 이거야말로 이 단편선의 다른 작품들과 완전 동떨어진 이야기. 책으로 꼭 읽어봐야 할 작품.
{적백화면} 광기와 절망이 나락으로 좌절하지 않아서 좋은 글. 난 이 정도가 딱 알맞다.
{다이어트} 다이어트에 대한 색다른 해석. 난 어쩌면 데브데브다브의 또 다른 시시투 해방군이 아닐까. 나날이 늘어가는 지방층이 그것의 증거.
[환상진화가} 할 말 없음. 너무 좋았음.
{버지니아 울프 가라사대} 마지막에 할 말을 몰아넣는 게 특징인데, 이 작품은 그게 어울렸다.
{명예롭지 못한 소녀} 좀 더 깔끔하게 해석해 주길 바라는 건 주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용에 관한 것. 글의 흐름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플라스틱 프린세스} 사춘기의 그럴듯한 방황이 광기로 변하는 게 좋았다. 깊은 공감대 위에 형성된 환상이라 탄탄한 글이다.
{황금알 먹는 인어} 이렇게 극단적이면 나는 힘들다.


*추천작*
이야기의 재미는 {환상진화가} {다이어트} {하얀 이빨} / 짧고도 여운 깊은 사색에 어울리는 건 {몽중몽} {플라스틱 프린세스}({바지니에게}도 넣고 싶은데 그럼 짧은 사색이 안 되므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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