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바란다
어느 가을날, 공동창작이라는 발상을 처음 떠올렸을 때를 기억합니다. 뱃속의 태아처럼 생명력있고 사랑스럽게 꿈틀거리던 그 생각. 저는 거울 필진합평회 뒷풀이 자리에서, 필진분들을 하나하나 붙잡고서 그 야심을 펼쳐놓으며 참가하시라고 권유를 빙자한 협박(!)을 했었지요. 그게 벌써 2년 전이었군요. 그리고 지금, 거울이 벌써 5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요.
거울 5주년 축전 의뢰를 받고서, 뭐라고 쓸까 고민하며 거울을 한번 쭉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새삼 느낀 것은 감동이라거나 기쁨 같은 것이라기보다도, ‘야, 이 사람들 뭐가 이렇게 징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돌아보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거울은 참 징했습니다.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흙을 밀어올리고서 힘차게 자라나는 새싹처럼 거울은 씩씩했습니다. 진지한 작가정신의 용광로라거나 환상문학의 전문적인 토양이 되고자 한다는,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을 그 명목을 과연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업잡지도 아니면서 5년 내내 무모하다시피한 실험과 도약을 질리지도 않고 거듭하는 그 용감무쌍한 모습. 어느덧 꼭지마다 수북하게 쌓인 원고와, 출간된 종이책과 전자책의 숫자에 머리가 아련해집니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어서요.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날 국내 장르문학계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무모한 실험 중 하나일 ILN의 모든 필진들이 거울 출신이라는 것은 몹시 당연한 일이구나 하고요. 그러니까 정말 뭐 이런 데가 다 있나요.
앞으로도 10주년, 20주년을 상상해봅니다. 그 때도 거울은 여전히 빠딱빠딱하게 잘 닦여져서 한국의 환상문학을 꾸준히 비추고 있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 또 누군가가 합평회 뒷풀이 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이상한 프로젝트에 참가하라고 선전하지는 않기를 바라봅니다.
―――거울의 5주년을 축하하며, ILN 편집장 아밀(루나벨) |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