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거울 13호 거울 감상기

2004.07.30 21:3607.30

Melchizedek ( melchizedek@naver.com )


  
  인터넷 소설?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
  내사랑 싸가지
  그 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쭉 훑어보고, 이 괴이쩍은 제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이래뵈도 꽤나 유명한 작(作)들이니까.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대충 추려도 이 정도다. 그 흥행정도(혹은 가능성)만 놓고 보았을 때, 이미 영화가는 조폭의 판에서 인터넷 소설의 판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엽기적인 그녀]로 포문을 연, 인터넷 소설의 출판?영화계 진출은 이제 더 이상 독특하게 여겨지거나 소문거리가 되지 못한다. 귀여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SBSi는 본격적으로 신진 인터넷 소설군을 발군하는 데 나섰다.
  
  인터넷 소설(우선, 여기서 언급되는 ‘인터넷 소설’의 정의는 인터넷을 통해 통신체로 쓰여진 십대 하이틴 로맨스 소설로 제한하겠다)의 돌풍은 사실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최초의 오프라인 진출작 [엽기적인 그녀]가 출판되었던 것이 2001년이었다는 점, 그리고 98년도 드래곤 라자를 기점으로 가없이 퍼져 나갔던 (같은 인터넷이라는 요람을 가진) 판타지 장르의 폭발적 성장에 비추어 보자면 오히려 늦다.
  이모티콘과 통신체로 대표되는 가벼운 인터넷 소설은, 처음엔 판타지처럼 스쳐 지나가는 한 때의 유행과 소설의 ‘소’자도 모르는 십대들의 공유 문화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인터넷사용자층에서도 격한 찬반논쟁이 일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한 쪽에서 열광하는 만큼, 그 반대편에서는 그보다 큰 목소리로 그들을 욕하는 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안티 세력이, 오프라인 진출에서 지금의 인터넷 소설만큼 큰 반反향을 일으켰던 판타지 진형이라는 점은 참 아이러니 하다 할 만 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의 대중문화는 이미 인터넷 소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문화산업의 파급력을 살펴 보자면 이미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은 인터넷 소설을 이기지 못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을 덧붙이자면, 이것은 사실 우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판타지의 세계적인 붐은 상당하다. 소설, 영화, 게임, 만화 문화 전반에 판타지 장르를 빼고는 21세기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아마 향후 몇 년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설 창작 시장(2차 창작 포함)만으로 국한해 보자면 그 규모는, 앞으로의 가능성 면에서 인터넷 소설이 앞서 나갈 것으로 보인다.*
  
  판타지 소설이 인터넷의 총아였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
  
  인터넷 소설 하면, 가장 먼저 판타지를 떠올리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귀여니와 옥탑방 고양이를 떠올린다. 판타지 소설은 이제 일부 매니아층이 즐기는 무협의 아류작, 혹은 대여점의 대본소용 소설정도로 취급받는다.
  이것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판타지 소설이 아직 인터넷이라는 태반을 떠나기에는 덜 자란 미숙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미숙아 주제에 너무 세상에 일찍 빠져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대여점과 출판시장 불황의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판타지 소설은 침몰하는 배에 혼자 갇힌, 자연생존력을 잃은 쥐와 같다. 이 끝모를 추락이 과연 대여점의 문제로만 몰아세울 수 있을지, 나는 조금 회의적이다.
  
  이제 더 이상 눈살을 찌푸리기 전에 이 현상을 침착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어쩌면 이리 순문학 진형의 판타지 유행에 대처하는 순서성과 비슷한 것일까) 귀여니는 어떻게 '작품성 제로에 문학성은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소설로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으며,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을 가지고 그 정도의 흥행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일까.
  
  유연함이다. 대중문화에서 필요한 것은 문학성도 작품성도 아니다. 오직 시류의 흐름에 얼마나 발빠르게 편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인터넷 소설은 그것의 탄생과 성장의 초석 자체가 맞춤재단되어 있었다. 판타지 진영이 끝없는 문학성 시비와 표절 논쟁, 편수 늘리기에 치중하고 있을 때, 이미 그들은 발빠르게 구매자 입맛에 맞추어 일러스트, 영화화와 드라마화, 빠순이 형성까지 모두 마치고 있었던 것이다. 2차 창작물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감탄할만한 발상이다. 이미 시작과 구성부터가 소설이라는 테두리가 좁았다. 시나리오로써의 상품성이 더 크고 사건 구성의 독특함이 뛰어나다. 열린 사고와 창의적인 발상은 그들의 완전하지 못한 맞춤법과 문장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는 매력이다.(2차 창작 시장으로 가자면 국문학적인 문제는 문제도 되지 않으니 더욱더 그러하다.)
  
  판타지 장편 소설에 희망은 없는가
  
  확실히 지금 출판 판타지 소설 쪽이 추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장 논리에서 외면받을 정도로 상품성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상품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단편보다는 장편일 것이다. 드래곤라자라는, 해외출판, 게임화, 만화화를 통해 (말도 많고 탈도 많긴 하지만) 그 수익성을 상당히 높인 대표적인 케이스가 있다.
  사실 판타지 소설은 단순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문화산업으로 보기에 적당한 구석이 많다. 그 필요성 자체가 수요자 쪽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활용방법이 다양하다는 것도 그렇다. 이미 그 성공적인 케이스가 일본쪽에 있기도 하고, 그런 만큼 많은 부분에서 이웃나라 일본과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문제는 그 ‘2차 창작’의 결과물 자체가 그리 탐탁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 쪽으로 꽤나 성공 케이스인 일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좋은 2차 창작물보다는 이름만 빌려다 쓴, 3류도 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판타지 소설을 실사화한다는 것은, 일반 인터넷 소설을 시나리오로 쓴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미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은 영화로 입맛만 높아져 버린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무리고. 독특한 이야기 구성에 멋진 스타 배우라는 +α가 되었던 쪽과는 완전 상반되는 문제점들 뿐이다.
  그러다 보니 편리함과 수익성 면에서는 인터넷 소설에게 밀리고, 기존의 소설 진영에는 문장조차도 완전히 영글지 못한 부분이 눈에 치인다. 여러모로 양쪽에서 밀리는, 못난 둘째자식 같은 형세인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 장르를 찾는 매니아(라고 할 수 있을까는 좀 의문이긴 하다만)들이 존재하고, 기본적인 수익 구조는 있다 보니, 완전히 버리기에는 조금 꺼림칙하기도 하다.
  그건, 진물 다 빠지기를 기다리는 고무나무 신세이기는 해도 아직 희망은 있다는 말이다.
  
  거울의 판타지 장편소설들
  
  지금 이 사이트, 거울에서도 잘 살펴보면 꽤나 흥미로운 작들이 많다. 조아라나 라니안 처럼 큰 사이트에서 조회수 1위를 기록한다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비율이 큰 것은 아니지만 소설의 안정성 면이나 시도 자체만으로는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들이 꽤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주는 조개 속에 숨어 있는 법이니까.
  
  거울이 좋은 점은 다른 일반적인 소설 사이트와 달리 적어도 기본적인 면에서는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또 소설 수가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너무 많은 작품군은 외려 독서를 방해하기 쉽다. 어느 정도 보장된―그러니까 갑자기 맞춤법, 문맥에 맞지 않는 무시무시한 문장이 튀어나오는 일이 없는 안정성과 기본 이상의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충분히 매력적이다.
  장르도 비교적 다양해서 골라 읽기도 좋은 편이다. 우리나라 판타지 쪽에서는 기본적이고 전통적이라고 생각되는 형태의 [엣센지아]나 [제로의 기억] 같은 작품부터 현실을 기반으로 한 [소녀, 내달리다]나 SF풍의 [테라의 마법사]같은 작도 있다. [제로의 기억]은 낯익은 1인칭 시점이 부드럽고 편안하게 읽히는 편이라 부담이 되지 않는다. 어딘가 낯익은 캐릭터와 작품이지만 그만큼 보장된 안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unica님의 소설 또한, 비슷한 취향의 독자에게라면 편안하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순정만화 풍의 등장인물과 이야기 형식은 잘 다듬어져 있어 작가가 작품에 가지고 있는 애착을 잘 느낄 수 있다. [테라의 마법사]는 독특한 느낌이 드는 작풍이 매력으로 한 편 한 편이 박진감 있게 진행되어 있다.
  독자코너인 장편 소설란은 작품 수가 적기는 하지만 그 수에 비해 상회의 수준작을 볼 수 있어 즐겁다. 꾸준히 올라오는 그 성실성만큼은 외려 메인의 작품들보다 나을 정도다.
  
  
  
  결국 지금의 위기 사태를 해결할 만한 돌파점은 문제의 시발점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좋은 작품이 나와 주는 것. 귀여니같은 스타급 작가가 나와주거나 엽기적인 그녀처럼 소위 대박을 터트려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그저 나같은 일반인은 판타지 소설이 아직은 창 밖으로 던져버릴 만큼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찾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지금도 잘 찾아보면 온라인 상에서도 읽을 만한 작품이나, 기대할만한 작가군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덩치가 너무 비대해 졌다는 것이 문제일 뿐,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능성 있는 치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로 나는 거울의 장편 소설들도 가능성 있는 맹아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2 - 헤임스크링라 14 2004.10.30
기획 [SINBIROUN iyagi를 통해 본 팬덤Fandom의 한계와 미래 (1)]3 2004.09.25
장르 북토피아 - 장르문학의 터전을 꿈꾸는 전자책 2004.09.24
기획 SF 벼룩시장2 2004.09.24
장르 과학소설 읽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 2004.09.24
거울 15호 거울 단편 단평2 2004.09.24
그림이 있는 벽 소환(召喚)3 2004.09.24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1 - 헤임스크링라 13 2004.09.24
장르 리딩 판타지 2004.08.28
거울 14호 거울 장편 감상5 2004.08.28
거울 14호 거울 단편 단평3 2004.08.28
그림이 있는 벽 잠식3 2004.08.28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10 - 헤임스크링라 12 2004.08.28
장르 테일즈 소개 2004.07.30
거울 13호 거울 감상기 2004.07.30
그림이 있는 벽 Snowy day in July2 2004.07.30
게르만 신화 윙링아 사가 9 - 헤임스크링라 11 2004.07.30
장르 드림워커 소개3 2004.06.25
거울 12호 거울 감상기 2004.06.25
거울 6월 거울 단편 단평1 200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