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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12호 거울 감상기

2004.06.25 22:4306.25

Melchizedek ( melchizedek@naver.com )



[원혼택시] by 무한슬픔

  엘리베이터와 더불어 공포담 단골 탈 것, 택시.
  밀폐된 공간, 자신이 선택했으나 올라선 순간 제어할 수 없는 그 공포가 아마 두 탈 것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가장 태평한 일상이 순간 모르는 곳이 되어서 공포를 더욱 자극한다.
  친구와 제자, 아들에게 배를 갈린 채 끝도 없는 밤길을 원혼택시 속에서 가고 있는 남자. 도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여섯 줄의 짧고 건조한 일인칭 서술은 오싹하게 독자들을 자극한다. 결과를 먼저 놓고 과정을 서술하는 수미상관법. 운율을 맞추기 위한 시가 아닌 바에야 이것은 시작부터 강렬하게 읽는 이를 끌어당기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택시에 탄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친구, 제자, 아들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원한을 사게 된 것인지 순서대로 풀어진다. 마치 추리―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아직 밝혀지지 않는 사실을 헤아리는 것과 같다.
  (이에 비하면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 [땀 흘리는 아내]는 처음부터 중간부까지도 결론을 전혀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쉴 새 없이 폭풍우로 후려치듯 독자를 끌어간다. [원혼택시]가 제목에서부터 이미 소설내용의 일정부분 이상을 암시하고 있다면 외려 [땀 흘리는 아내]는 제목을 이용해서 내용 자체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독자가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랑스런 땀 흘리는 아내가 ***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겠는가. 두 편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원혼택시]는 소재 자체가 시일이 지난 낡은 것이라는 것이 좀 아쉽다. 서술이 다듬어지지 않아 읽을 때 약간 껄끄럽기도 했다. ‘~며’ 같은 이어지는 말이 두 번 반복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고친다거나 문장의 주어를 될 수 있으면 사람으로 잡는다면 좀 더 부드럽게 읽힐 것이다.

[누구를 먼저 구할까] by cancoffee1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를 곤란하게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 어른에게 던져졌을 때 어떤 반응이 생길까. 그것도 사실상 가정의 실권을 쥐고 있는 아내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말이다.
  ‘나랑 아기가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꺼야?’
  이야기는 별 것 아닌 일상의 한 페이지를 열어젖히며 그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물음은 사실상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자아, 남편이여, 당신은 어떻게 이 궁지를 빠져나갈 것인가.
어렸을 적 나는 소위 ‘화장품 아줌마’를 무척이나 기다리곤 했다. 무어, 어린 나에게 마사지를 해 줄 것도 아니었고, 단지 그 아줌마가 하나씩 가져오는 얇은 화장품 잡지를 좋아했다. 잡지 끝에는 항상 짧지만 재미있는 꽁트가 실려 있었다. 부부생활에 관련된 이야기였으니 어린 내가 그 깊은(!) 내용까지야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야 미지수지만, 꽤나 좋아했었다.
  canfoffee1님의 글은 그 얇은 소책자 끝페이지의 짧은 꽁트처럼 위트 넘치는 유머러스함이 매력이다. 그래서 환상문학웹진에 싣기에 어울리지 않는 단편인데도 어색하지 않다. 마치 화장품 잡지에 실린 상관없는 꽁트처럼. 실례가 될지 모르는 비유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환상을 다룬다고 볼 수는 없으니, 이게 최대치의 찬사다.
  자궁 속에 가득 찬 양수처럼 위대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거대한 홍수마저 이겨내는 장대한 부성애를 나타내는 한 편의 뛰어난 모노드라마다…라는 얼토당토 않은 결론을 내려본다. 어쩐지 지은이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단편이다.(웃음)

[안개속에서] by askalai

  음습한 한국의 장마 풍경이 어울리는 안개 바다 앞마을의 이야기다. 분위기를 끌어가는 것에 능숙하고 문장도 능숙하게 잘 읽힌다. 초반의 전개는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소설은 너무 거대한 설화를 끌어왔다. 설화 자체는 아름다울지 모르나 소설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이 너무 오래 전개되었다. 무언가 다른 복선을 기대했던 독자에게 끝마무리가 너무 생뚱맞았다. 신화란 현실과 연계할 수 있을 때에서야 의미를 갖는 법이다. 의미있는 상징들이 외따로이 떨어져 연결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인형을 만드는 남자] by bluewind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기에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이 더 컸다.
소설 소재가 주는 임펙트가 그리 강하지 않기에 서술과 문체에서의 아쉬움이 더 크다. 메마르길 원했다면 차가움이 부족했고, 아름답길 바랬다면 문체가 조금 부족했다.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 by 가연

  환상문학을 향한 비난 중 하나가 현실도피문학이라는 점이다.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아예 마주보지 못하도록 외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만 해당하는 말일 뿐,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와 같은 단편을 보면서, 환상문학이야말로 현실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문학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가진 고독과, 거의 모든 나라에 일상화 된 ‘커피’라는 기호품을 이용한 훌륭한 환상소설이다. 문장이 단조롭고 인물의 성격이 완전히 형상화 되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열여섯살짜리 어린 주인공의 시점이기에 어느 정도 가감하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장면 전환이 좀 더 부드러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치 만화의 분할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작가가 의도한 부분인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여름이 다시 여름인 것처럼] by 赤魚

  개인적으로 이번호 베스트로 뽑고 싶은 작품이다.  현실을 조금 왜곡해 보여주는 거대한 비대칭 거울처럼 상징적인 대치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특히나 잊혀졌던 존재를 생각하는 순간 그 존재가 불시착한다거나, 그런 잊혀진 존재들이 배달하는 품목들에 대한 설정들이 무척이나 이채롭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등장인물의 성격 형성도 꽤나 만족스럽다. 짧은 단편 안에서는 복잡다단한 인물을 만드는 것보다 이렇게 전형적인 인물을 등장시키는 편이 더 낫다.
  현실의 문제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해 내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쓸쓸하게 잊혀져 가는 환상의 존재와 도시 속에서 잊혀져 버린 ‘나’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분기점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할 만한 실타래를 만들어 준다.

[그림] by unica

  잘 쓰인 통속소설은 즐겁다. [그림]은 설정을 위한 설정을 가진 통속소설이고, 잘 쓰였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소설에 꼭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주제를 찾아야만 한다면 곤란한 일일 것이다. 꼭 ‘미묘한 사춘기의 설렘과 첫사랑’이라는 주제를 찾아야만 한다면 ‘굳이 판타지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확장돠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잘 쓰인 통속소설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은 재미있는 단편 소설이지만 장면 분할이 너무 짧고 소설의 장면장면이 만화의 이미지를 채용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글을 쓴 후, 그런 장면분할이 자신이 의도한 부분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된 것인지 살펴야 할 것이다. 앞서서 등장하지 않았던 오빠가 급박한 사건 전환의 일환을 맡았다는 점도 좀 아쉽다. 앞서의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사건의 전개가 너무 급박하다. 복선이나 암시가 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저의 느낌을 단순하고 짧게 요약해서 써 보았습니다. 절대적인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독자의 어떤 감상기라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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