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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askalai@gmail.com)



인류학이라는 생소한 이름.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 학술서일 게 분명하다 싶은 책표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서가들조차도 이 책의 제목을 들은 적이 없거나 보았어도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에 속지 말라. 이 책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낌없는 추천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무엇 때문에 고전이냐고? 물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뛰어난 고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마거릿 미드/조한혜정,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8년 3월)이라는 재미없는 제목의 의미는 단순하다. 그대로 읽으면 된다. 이 책은 고립되어 살아온 인접한 세 부족에 대한 민족지 기록이다. 그런데 세 부족사회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참으로 우리와 ‘다르다.’ (사실 현대 인류학은 그렇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인류학이라고 하면 신기한 원시부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감안한 말이다.) 분명 7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부족들도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을 잃고 혼란을 겪었겠지만, 이렇게 다른 문화, 이렇게 다른 가치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세 가지 사회의 특성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또다른 인류학의 명저 [문화의 패턴](루스 베네딕트/김열규, 까치, 1997년 8월)와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관점은 약간 다르다. 베네딕트와는 달리 미드는 성차라고 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그녀는 미국 사회의 엄격한 성격 구분, 즉 남성은 진취적이고 공격적이며 독립적이고, 여성은 모성적이고 의존적이며 수동적이라는 규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녀 모두 온화하고 수동적이며 다정다감한 것이 이상적인 아라페쉬 사회, 남녀 모두 공격적이고 거칠며 과격한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먼더거머 사회, 끝으로 미국의 성역할 구분을 뒤집어놓은 듯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챔불리 사회가 그것이다.

이들 세 사회의 생활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움을 불러 일으키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드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점이다. 성차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라는 이 책의 기술은, 여성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들어보았을 법한 이야기이다. 물론 실제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규정해버린 ‘이상적인 사람’, ‘이상적인 여성’, ‘이상적인 남성’이라는 개념들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항상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이상에 맞지 않는 기질을 타고 났기에 고통받는다. 그 점을 아는 것, 더 나아가 그 사실을 알고 개개인이 규정된 이상을 향해 억지로 끼워맞춰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으로 '진보한' 사회일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를 강요받음으로써 고통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인데도 그 문화의 틀에 갇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이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

이 책에 결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한바탕 감탄을 늘어놓은 주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 이해하기 쉽게 쓰여있다는 점 등이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일 것이다. 진심으로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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