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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이 쌀쌀해지고 말았네요.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이번 달에는 앤윈, pena 두 사람이 네 편의 소설을 심사했습니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한 소설들이었습니다. 개성이 뚜렷한 좋은 소설들을 만난다는 것은 심사를 하는 쪽에서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달에는 認님의 <그들의 방식>을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니 군 - 유작

A : 남의 문장을 사용한 자기 이야기를 통해 표절에 관한 딜레마를 우화처럼 나타낸 작품입니다. 소설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작품 전체의 결론을 모호하게 놔둔 것 같은데, 이런 경우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밝혀도 괜찮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들에게 중요한 딜레마이지만, 말 몇 마디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을 인물과 배경을 생각해 작품으로 옮겼을 때에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요. 감상과 교훈은 독자의 몫이라지만 그것을 위해 일부러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죽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이처럼 우화적인 짧은 작품에서는요.

B : 소설 전체의 분위기 묘사가 훌륭합니다. 고전적인 문체와 어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듭니다. '표절'이라는 주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만한 재미있는 선택입니다. 아쉬운 점은 훌륭한 분위기가, 분위기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현실보다는 다른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모호한 상황들을 만드는 것도 물론 좋을 것이나, 모호한 상황만 존재해서는 조금 아쉽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認 - 그들의 방식

A : 지난번 단편 아르바이트에 이어 어마르라는 외계인이 섞여 사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섬세하게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 인물 주위의 배경을 묘사하는 솜씨나 과하게 힘들이지 않고 전개해나가는 필력은 아르바이트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내공이 견실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아르바이트라는 작품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뉴스 한 줄의 실체가 이 작품으로 보이는데, 사실 아직까지는 어마르라는 존재를 통해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두 편 연속 어마르의 범죄, 그것도 성적인 면의 범죄를 다루는 와중에 굉장히 섬세하게 그에 관련된 소시민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낯선 대비를 이룬다는 정도입니다. 어마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렇게 연작을 몇 편 보고 나면 짐작하게 될까요.  작품 자체에 해드릴 말은 읽는 이를 조금 더 쫀쫀하게 끌고 나가는 흡입력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정도일 것 같습니다. 섬세한 대신 작품 전체가 몽롱하고 늘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분위기를 내고자 한 점은 좋았으나 구성을 통해 독자의 고삐를 쥘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B :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얼개가 명확하며 무엇보다 소설의 디테일이 첨예하게 살아있습니다. '어마르'라는 지구인과 달라 어느 정도 배제당하는 종족의 존재를 특별한 의식으로 치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에 가서 앞의 이야기와 하나로 이어지는 결말의 구성도 짜임새가 있습니다. 읽는 동안 독자로서 '어마르'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한 것은 좋으나, 그 때문인지 '어마르'의 특징적임(왜 사람들이 어마르에 대해서 약간은 거부감을 갖는지)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어마르에게서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요. 이종족과 살아나가는 인간의 양태만을 그리는 것이라면 그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며, 마지막의 귀여운 어긋남도 즐거웠지만, 이대로라면 좋은 소재가 상당히 소품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아쉬운 마음도 드네요.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바닐라된장 - 용석아!

A : 단 한 마디의 잘못 정정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엽기발랄하게 달려간 작품이었습니다. 온갖 내장을 쏟아내고 누군가의 입막음에 굴하지 않고 남은 장기들로 처절하리만큼 자기표현을 해 간 결과가 단 한 마디라는 것이 허탈합니다. 물론 의미를 둔다면 그것이 자기 이름이자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글로밖에 표현하지 못할 글이었지만, 소설로서의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B : 읽는 동안 '이게 대체 뭔 또라이같은 소리야' 싶을 만치 키치적 웃음을 줍니다. 마지막 부분까지도 키치적으로 치고 넘어가는 부분이 유쾌합니다. 되바라진 면이 재밌는 소품이네요.


annunziata - 화가 이야기

A : 악마와 계약한 화가, 예술가는 아주 많이 변용되어온 소재입니다. 계약한 기간 동안을 죽음을 넘어 존재한 것, 그래서 현대에 와서 새로운 그림을 옛 그림으로 팔게 한 것 외에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없이 제3자들끼리의 대화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간 점이 아쉬웠습니다. 단편이라는 분량 안에서 해결하기 위한 좋은 장치일 수 있지만, 소설이란 진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는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더 좋은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아닐지요. 

B :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전통적인 소재 안에서, 계약 이후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소재도 재미있고 이야기 구성도 나쁘지 않은데 그다지 소설 자체의 흡인력이 있지는 않네요. 화가 자신도, 화자도,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사람도, 어느 등장인물도 소설의 진행을 휘어잡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가작에 선정되신 認님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책을 한 권 보내드립니다.
認님은 pena12 @ gmail.com 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발송시필요)를 보내주세요. 

댓글 2
  • 14.10.01 08:29 댓글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부족한 부분을 들춰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설익은 연출이 탄로나 부끄럽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파다발을..ㅋㅋ 

  • No Profile
    이니 군 14.10.06 08:34 댓글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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