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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나랑 바꿀래

2014.03.31 22:2603.31

나랑 바꿀래





살이 익어가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병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수학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여백에 또렷한 글씨로 ‘효도수학’이라고 적힌 학습지는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옆에는 엄마가 조그마한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효도수학’은 너무 어려웠다. 병진이는 수학 문제를 푸는 대신 학습지 여백에 가위표를 층층이 쳤다. 가위표를 아무리 그려도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가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소리만 더운 방 안에 울렸다.

“엄마.”

“왜.”

“에어컨 안 켜?”

“안 돼. 요금 나와.”

십 년 만에 가장 덥다는 여름. 이 여름에 엄마는 요금 나온다고 에어컨도 안 켠다. 그럴 거면 학습지도 풀지 말라고 하든가. 방학이지만 오늘 병진이는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아홉 시부터 자리에 앉아 학습지를 풀고 있다. 벌써 열두 시가 가까워온다. 중학교 과정을 준비해준다는 ‘효도수학’은 이번 여름방학부터 시작했다. 한 쪽에 열 개가 넘는 문제가 빼곡이 채워져 있다. 한 장을 넘기려면 스무 개가 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일찍 퇴근한 아빠는 병진이의 수학 학습지를 슬쩍 넘겨다보더니,

“어이쿠, 우리 회사 회계 장부인 줄 알았다.”

라고 말하면서 병진이의 머리를 툭 쳤다. 김치를 썰던 엄마가 말했다.

“병진이가 수학이 약해서 학원 선생님한테 추천받은 거야.”

“그래? 이거 풀면 일등 한대?”

“그것만 해서 일등 되겠어? 다른 것도 해야지.”

엄마는 손에 잡은 식칼에 힘을 주고 김치 꼭다리를 꽉 눌렀다. 병진이는 우두둑 하고 썰리는 김치를 보자 왠지 자기 몸 어딘가가 잘리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올해는 피서를 안 갔다. 엄마는 작년에 계곡에 놀러갈 짐을 싸면서 내년부터 중학교 준비를 해야 하니 피서는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병진이는 계곡물에 발만 담그고 하루종일 죽은 물고기처럼 앉아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서 냇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다. 올해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엄마는 부족한 수학을 보충해야 한다며 처음 보는 학습지 ‘효도수학’을 내밀었다. 

“이거 풀고 지금 다니는 학원 박 선생님한테 지도받도록 해. 엄마가 과외 해달라고 빌고 빌어서 겨우 받아 왔어. 열심히 해.”

‘효도수학’을 편 병진이는 하얀 건 종이, 까만 건 잉크라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매주  월, 수, 금은 학원에, 화, 목, 토는 태권도장에 가야 했다. 일요일은 영어 회화 학원이었다. 남는 시간은 집에 붙어 앉아 ‘효도수학’을 풀어야 했다. 엄마는 이번 방학에 반드시 수학을 잡아야 한다며 과외를 시작하고 싶어했지만 학원장 박 선생님이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대신 '효도수학'은 정말 어려웠다. 한 시간에 두 문제 풀기도 어려웠다. 학원에서 수업 받는 시간보다 ‘효도수학’과 끙끙대는 시간이 더 길었다.

지금도 지겨운 ‘효도수학’을 풀고 있다. 학원과 태권도장을 다녀오면 집에 있는 시간은 온통 이 '효도수학'에 달라붙어 보내야 했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더운 나머지 아예 머리가 뜨끈뜨끈하다. 하지만 지난 달에 전기요금이 이십만 원이나 나왔다며 엄마는 에어컨 리모컨을 아예 없애버렸다. 병진이는 샤프 끝을 깨물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점심밥 먹는 시간이다.

드디어 엄마가 스마트폰을 놓고 일어섰다. 병진이도 샤프를 놓았다. 엄마는 겨우 두 문제 푼 학습지를 힐끗 내려다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미 열두시 반이었다.

"나와서 밥 먹어."

엄마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배고팠던 병진이는 신이 났다. 점심을 먹으러 부엌으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앨리스가 병진이를 향해 뛰어왔다. 앨리스는 두 살 난 비글 강아지다. 하얀색과 갈색의 통통한 몸을 흔들며 달릴 때마다 넓적한 귀가 팔랑거렸다. 엄마는 냄새나서 싫다면서도 앨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병진이는 아침마다 앨리스와 조깅하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앨리스를 사오기 전에는 조깅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앨리스가 배 위에 기어올라 코를 핥으며 짖어대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병진이는 앨리스를 안아올렸다.

“밥 먹고 놀아야지.”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던 엄마가 말했다.

“밥 먹고 나면 앨리스랑 잠깐 나가 놀아도 돼?”

“바깥은 더워.”

“더워도 괜찮아. 잠깐만 놀고 올게. 땀 좀 흘리면 기분도 좋고 공부도 잘 될 것 같아. 응?”

병진이는 식탁 끝에 매달렸다. 엄마는 옆눈으로 병진이와 앨리스를 슬쩍 흘겨보더니 허락을 내렸다. 

“더우니까 삼십 분만 놀다 와.”

“오케이!”

병진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식탁 앞에 앉았다.

밥을 먹고 난 병진이는 앨리스를 리드줄로 묶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산책을 하게 된 앨리스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날씨는 더웠지만 병진이는 좋기만 했다.

“앨리스, 너도 답답했지? 달리자!”

공원으로 간 병진이와 앨리스는 나란히 달렸다. 금방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래도 앨리스는 더 달리고 싶어했다. 병진이는 앨리스의 리드줄을 잠깐 풀어주었다. 귀를 부채처럼 흔들며 달려간 앨리스는 울타리를 넘어 잔디밭에 뛰어들더니 냉큼 뒹굴었다. 이 모습을 본 병진이는 중얼거렸다.

“앨리스 넌 좋겠다...”

병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앨리스는 신나게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병진이도 달리고 싶었지만 날씨가 푹푹 쪘다. 병진이는 앨리스와 같이 달리는 대신 그늘진 벤치를 찾아 걸터앉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팬티가 젖을 정도로 땀이 퐁퐁 솟았다. 병진이는 콜라캔이라도 들고 나올 걸 후회하면서 건너편 풀밭을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제법 드나드는 공원이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손수레를 밀고 다니는 야쿠르트 아줌마도 산책하는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았다. 스케치북과 물감통을 들고 가끔 그림을 그리러 오는 학생이나 큼직한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찍어대는 아저씨도 뜨거운 날씨에 질렸는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매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원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공원은 뜨거운 태양빛 아래 나른하게 달아올랐다. 병진이는 졸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병진아."

누군가 병진이의 이름을 불렀다. 병진이는 깜박거리며 땀이 흘러내리는 눈가를 닦았다.

"응? 누구야?"

“나야."

병진이는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 새 옆에 앨리스가 올라앉아 있었다. 병진이는 손가락을 들어 귓구멍을 후벼냈다. 뭔가 잘못 들었겠지 싶었다. 하지만 주위에 앨리스 말고 아무도 없었다.

"병진아."

다시 누군가 병진이의 이름을 불렀다. 병진이는 일어서서 벤치 뒤를 찾아보고, 길 건너편으로 목을 뽑아 둘러보았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앨리스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병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병진이는 슬쩍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앨리스, 혹시 너야?"

앨리스는 천천히 머리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것이 끄덕이는 고갯짓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앨리스, 너 사람 말을 할 줄 아는거야?”

앨리스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마치 영어 회화 학원의 외국인 선생님이 자주 하는 어깻짓같았다. 그러더니 앨리스의 입이 미묘하게 움직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할 줄 알지. 사람 말이 뭐가 어렵다고 그리 신기해하는 거야?"

병진이는 입을 딱 벌렸다.

"앨리스?"

"뭘 그렇게 놀래? 사람 말은 아주 쉬워. 못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지."

“뭐? 그러면, 너 이제까지 사람 말을 할 줄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는 거야?”

“사람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 가만히 있었을 뿐이야.”

앨리스는 다시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여긴 지금 아무도 없어.”

“어, 어, 앨리스,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네가 사람 말을 할 줄 안다는 건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오늘 내가, 너무 날씨가 더워서 제정신이 아닌 걸거야.”

병진이가 도리질을 치자 땀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목욕을 마친 강아지가 물기를 털어내는 것 같았다.

“네, 네가 정말 사람 말을 할 줄 안다면 이제까지 왜 가만히 있었어? 나랑 가끔 둘이서만 얘기하면 재미있잖아.”

“뭐, 재미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난 너보다 훨씬 말을 잘 한다고. 국어 시험을 봐도 너보다 점수를 잘 받을 걸.”

“뭐? 강아지 주제에. 네가 나보다 말을 잘 한다고?”

앨리스는 그 말에 흥 하고 콧바람을 불었다. 그 순간 병진이는 앨리스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씨익 비웃음을 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묘해졌다.

“끼어들 필요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널 볼 때마다 안타까운 걸. 저렇게 쉬운 문제를 왜 틀릴까 하고.”

“앨리스,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그렇게 쉽게 말할 거면 네가 한 번 시험 쳐보든가. 아니면 네가 답을 가르쳐주든가. 엄마랑 똑같이 말을 하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고 매일 노래를 부르는데 그럼 직접 공부를 해보시든가...”

툴툴거리는 병진이는 엉뚱하게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앨리스는 병진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병진아,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으면, 나랑 바꾸는 게 어때?

“뭐?”

“너 공부하기 싫지? 학원 가기도 싫지? 태권도장도 싫고. 학습지도 힘들잖아. 나랑 바꾸자.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어서 사는 거야.”

“뭐? 뭐라고? 그럼 네가 사람이 돼서, 학교도 가고 공부도 하고, 난, 난 강아지가 돼서 하루종일 놀고 먹고, 뭐 그러자고?”

“그래.”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하루종일 네 곁에 있으니까 알 수 있어. 네가 얼마나 죽을 맛인지. 학원도 학교도 지겨운데 학습지까지 매일 하려니 너무너무 싫지? 매일같이 엄마는 짜증만 늘어나고. 네가 날 끌어안고 몇 번이나 나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잖아. 나, 그 말 잊지 않았어. 네 소원을 들어줄게.나랑 바꾸자. 그럼 나처럼 살 수 있어.”

병진이는 가슴이 떨렸다. 앨리스처럼 하루종일 뒹굴면서 먹고 놀 수만 있다면. 으, 지긋지긋한 '효도수학'만 집어치워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앨리스의 말이 진짤까? 정말 바꿀 수 있는 걸까? 병진이는 앨리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병진이를 바라보는 앨리스의 눈빛은 마치 얼마 전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장수 같았다. 요놈아, 너 이거 갖고 싶지? 하면서 노오란 병아리를 내밀던 병아리 장수의 눈빛을 떠올리게 했다. 병진이는 그 병아리가 죽고 싶을 만치 갖고 싶었다. 앨리스의 눈빛은 그때처럼 병진이를 몸 달게 했다.

삼십 분 후, 병진이는 앨리스가 이끄는 리드줄에 묶여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병진이의 모습으로 변한 앨리스는 일단 개가 된 병진이를 리드줄에서 풀어준 다음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샤워를 한 앨리스는 의젓하게 책상 앞에 앉아 저녁을 먹을 때까지 학습지 '효도수학'을 풀었다. 아빠는 그날도 퇴근이 늦었다. 엄마와 단 둘이 저녁을 먹고 난 앨리스는 거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시키지도 않은 인터넷 강의를 보았다. 엄마는 옆에서 드라마 채널을 틀었지만 앨리스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인터넷 강의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루종일 앨리스가 사람 노릇을 하는 동안 병진이는 강아지로 변한 자기의 몸에 한껏 놀라고 있었다. 털 때문인지 쉴새없이 온몸이 간질간질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그만 먼지 구름이 계속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병진이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이렇게 수많은 종류의 냄새를 한꺼번에 맡아보기 처음이었다. 김치 냄새와 고기 냄새, 방금 씻은 야채와 과일 냄새는 물론 변기와 비누가 풍기는 냄새에 물론 엄마가 아침에 바른 화장품 냄새까지 수천 가지 냄새가 콧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만으로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가 어느 찬장에 햄을 숨겨 두었는지도 짐작이 갔다. 심지어 집중하면 벽에 발린 시멘트의 아릿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냄새만이 아니었다, 병진이는 애완동물용 신발을 벗자마자 집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사방에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앨리스, 우리 집이 이렇게 시끄러웠어? 사방에서 소리가 계속 들려.”

“벌레 소리야.”

“뭐? 우리 집에 이렇게 벌레가 많아? 그렇게 더러워?”

“조용히 해.”

앨리스는 발로 슬쩍 병진이를 밀었다. 병진이는 깜짝 놀랐다. 병진이가 사람이었을 때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살짝 밀기만 했지만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 병진이는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스락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의식하기도 전에 발이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소파 밑에 살찐 바퀴벌레가 기어가고 있었다. 휴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앞발이 바퀴벌레를 짓밟고 있었다. 병진이는 혐오감과 벌레를 사냥한 기쁨이 두서없이 섞인 해괴한 기분을 맛보았다. 소파 밑에서 기어나온 병진이를 보고 앨리스가 소리쳤다.

“엄마, 앨리스가 바퀴벌레 잡았어요!”

“바퀴벌레? 우리 집에 바퀴가 있어?”

누워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서 두루마리 휴지를 움켜쥐었다.

“앨리스, 당장 이리 와! 아유 더러워!”

“야단치지 마세요. 벌레 잡았잖아요. 칭찬해주세요.”

앨리스의 말에 엄마가 휴지로 병진이의 발을 박박 닦아내다 말고 싱긋 웃었다. 

“그런가? 병진이가 아주 어른스럽네.”

밤이 되자 앨리스는 복습을 하고 발을 씻고 이를 닦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병진이는 침대에 누워 뒹굴면서 엄마가 주는 간식을 받아먹었다. 팔다리가 슬슬 녹아내리는 듯 편안했다. 

‘우와, 좋다. 강아지가 되니까 정말 편하잖아. 학원 안 가도 되고 태권도장도 안 가도 돼. 하루종일 놀다가 배고프면 누워서 밥만 먹으면 돼. 엄마가 가끔 쓰다듬어 주는데 그것도 정말 좋아.’

생각해 보니 엄마와 같이 웃으면서 논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솔직히 엄마가 소파에 누운 병진이를 쓰다듬어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병진이는 엄마 손에 코를 비볐다. 고무장갑과 핸드크림 냄새가 뒤섞여 났다.

‘헤헤. 너무 좋다.’

병진이는 소파에 누운 채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앨리스는 병진이를 리드줄에 묶고 조깅을 하러 나갔다. 공원에는 몸을 풀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앨리스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린 뒤 벤치에 앉아 오 분간 쉬고 나서 다시 집으로 달려서 돌아갔다. 마치 기계 같았다. 병진이도 실컷 달렸다. 집에 돌아왔지만 땀을 아무리 흘려도 씻지 않으니까 너무 좋았다.

병진이가 시원한 마룻바닥에 누워 쿨쿨 자는 동안 앨리스는 학원에 갔다. 학원 수업은 오후 열 시에 끝나기로 되어 있었다. 집에만 있다보니 병진이는 조금 심심했지만 학원에 가는 것보단야 훨씬 나았다. 슬슬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한 잠 늘어지게 자기로 했다. 에이, 앨리스랑 바꾸기 전에 털 깎아달랠걸. 덥잖아. 병진이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오후 일곱 시였다. 초인종 소리가 났다. 아빠였다. 병진이는 고개를 벌떡 들었다. 엄마도 방에서 나왔다.

“왔네.”

“병진인, 학원?”

“어.”

아빠는 화장실로, 엄마는 안방으로 가버렸다.

병진이는 소파에 엎드려 기다렸지만 엄마도 아빠도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나고 나서야 아빠가 나왔다. 병진이는 아빠가 반가워서 바닥으로 뛰어내려 아빠의 바짓부리에 달라붙었다.

“헤헤, 아빠! 아빠!”

아빠는 병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병진이의 등을 잡아 옆구리에 끼고 베란다로 나갔다. 손에는 담뱃갑이 들려 있었다.

“어? 아빠? 담배 끊었잖아?”

병진이는 버둥거리면서 말했지만 컹컹, 짖는 소리만 나왔다. 아빠는 베란다 유리문을 꼭 닫더니 대뜸 병진이의 머리를 주먹으로 콱 쥐어박았다.

“조용히 해, 이 개새끼야!”

으악, 병진이는 깨갱거렸다. 아픈 것도 아팠지만 아빠가 욕을 하는 걸 처음 들어서 놀라웠다. 아빠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씨팔년, 담배 하나 집안에서 맘대로 못 피우고 드러워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자고 돈을 벌면 뭘 해. 별 쓰레기같은 학원이나 학습지에 다 퍼붓고. 애새끼도 엄말 닮아 공부 더럽게 못하고. 말도 안 듣고. 가끔 진짜 내 자식 맞나 싶고...아이 씨발, 담배말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진짜. 내 인생.”

병진이는 아빠 옆구리에 끼인 채 발발 떨었다. 아빠의 이런 모습은 생전 처음 보았다. 너무 무서웠다.

“야, 이 개새끼야, 떨긴 왜 떨어! 내가 무서워? 너도 나 무시하냐?”

아빠는 병진이를 다시 한 번 쥐어박았다. 비명을 질렀지만 낑낑대는 소리가 대신 나왔다. 아빠는 병진이의 머리와 엉덩이, 배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병진이는 좁은 베란다에서 이리저리 도망쳤지만 아빠의 매질을 피할 수 없었다. 발길질을 하던 아빠는 병진이를 콱콱 짓밟기까지 했다. 병진이는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쌌다.

“아 이 개새끼 왜 이렇게 피해? 한두 번 맞아보는 것도 아니고...씨발 오줌 쌌네.”

아빠는 병진이를 베란다에 내버려두고 거실로 들어갔다. 병진이는 맞은 자리가 너무 아파 눈물이 나왔다. 아빠에게 얻어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빠가 이렇게 무섭고 잔인한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서움과 아픔이 뒤섞였다.

“아빠, 진짜 나쁜 사람이야? 나 없을 때 이렇게 앨리스 때렸던 거야?”

병진이는 눈물을 핥다가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현관문이 열리고 앨리스가 들어왔다. 엄마가 안방에서 나왔다.

“병진아, 이제 왔니?”

“네.”

아빠도 방에서 나왔다.

“힘들지? 우리 병진이.”

“괜찮아요.”

“앨리스가 너 찾느라 낑낑대서 잠깐 베란다에 놔뒀단다. 네가 안고 들어가렴.”

병진이는 앨리스의 품에 안겨 방에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잤다. 다음날 아침 앨리스는 병진이를 깨워 산책을 나갔다. 병진이는 아픈 몸을 끌고 일어나야 했다.

“앨리스, 너도 아빠한테 맞았니?”

병진이는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날 앨리스는 태권도장에 갔다. 병진이는 아빠한테 얻어맞은 데가 너무 아파서 하루종일 소파 밑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저녁이 되자 아빠가 들어왔다. 병진이는 살며시 기어나갔다. 엄마는 마트에 가고 없었다. 아빠는 주변을 슬며시 돌아보더니 병진이의 배를 냅다 걷어찼다. 병진이는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다시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다음날도 비슷한 하루가 이어졌다.

병진이는 아빠에게 거의 매일 매를 맞았다. 엄마나 앨리스가 옆에 있으면 아빠가 때리지 않았지만 아빠와 단 둘이 있으면 여지없이 손발이 날아왔다. 병진이는 되도록 엄마와 앨리스 옆에 달라붙었지만 아빠의 매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 매질을 피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한 번 잡히면 밀려 있던 매질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병진이는 괴로웠다.

“앨리스랑 바꾸니까 공부 안 하고 학원 안 가서 편한데...아빠만 날 때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병진이는 고민했다. 다시 사람이 되면 학원과 태권도장을 돌아야 한다. 지겨운 ‘효도수학’도 풀어야 한다. 하지만 아빠의 매질도 견디기 쉽지 않았다. 마룻바닥과 소파를 신나게 뛰어다니던 병진이는 아빠가 집에 오기만 하면 먼지와 죽은 벌레가 가득한 소파나 침대 밑에 들어가 숨소리도 크게 못 내고 엎드려 있어야 했다.

어느 날 밤 새벽 두 시나 됐을까, 술에 잔뜩 취한 아빠가 들어왔다. 엄마도 앨리스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식탁 밑에서 자고 있던 병진이는 현관문을 비틀어 여는 소리에 놀라 본능적으로 뛰쳐나왔다.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다. 아빠는 뒤돌아 도망치는 병진이의 꼬리를 확 잡아당기더니 거꾸로 들어올렸다.

“니미 씨팔...죽도록 일하다 들어오니 마누라도 애새끼도 처 자고 있네...맞아주는 건 개새끼밖에 없구만. 그래 너라도 같이 자자.”

아빠는 병진이를 옆구리에 끼고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병진이는 짓눌려 죽을 지경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넥타이에 고추장이 얼룩져 있었다. 병진이는 혀를 내밀어 핥았다. 짜고 매웠다.

“이 시키, 어딜 핥어? 그래 핥아라 핥아...”

아빠의 몸에서 담배 냄새와 술 냄새, 바깥에서 묻혀 온 매캐한 매연 냄새가 뒤섞여 났다. 코가 맹맹하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병진이는 몸부림을 쳤다.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워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이었을 때에는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감각이었다. 더 이상 안겨 있다가는 토할 것 같았다. 도대체 아빠는 어디에 있다가 온 것일까?

“이 시키, 같이 자자니까 왜 몸부림을 쳐? 너도 나 무시하냐? 너 일루 와. 오랜만에 좀 맞아보자.”

아빠는 병진이의 뒷덜미를 잡고 베란다로 나갔다. 병진이는 몸부림을 쳤다. 아빠, 살려 줘! 병진이는 온 힘을 다해,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손목을 칵 물었다. 깜짝 놀란 아빠는 병진이를 베란다 바닥에 내던졌다. 병진이는 캑 하고 나자빠졌다.

“이 시키, 주인을 물어? 오늘 아주 죽었어.”

아빠는 와이셔츠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병진은 보들보들 떨었다. 아빠가 담뱃불을 병진이에게 가까이 가져오더니 눈알에 들이댔다. 시뻘건 담뱃불이 다가왔다. 병진이는 눈을 꽉 감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큰 소리를 질러댔다. 캬아앙! 소리는 찢어지는 듯한 개 짖는 소리로 튀어나왔다. 방문을 열고 엄마, 아니 앨리스가 튀어나왔다. 소리에 움찔한 아빠가 돌아보았다.

앨리스가 말했다.

“잘 다녀오셨어요, 아빠.”

베란다로 온 앨리스는 병진이를 들어 품에 안았다. 병진이는 필사적으로 파고들었다. 앨리스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병진이는 안심하면서도 순간 아빠보다 앨리스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을 껐다. 병진이는 앨리스의 팔을 비집고 빠져나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이곳에서 영원히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앨리스, 이젠 안 돼! 나 다시 돌아갈래!”

“말 걸지 마. 나 지금 ‘효도수학’ 하느라 바빠.”

“무슨 소리야! 그건 원래 내 거잖아! 앨리스, 우리 다시 바꾸자. 이젠 못 견디겠어.”

병진이는 뒷발에 힘을 주고 앨리스의 무릎에 펄쩍 뛰어올랐다. 앨리스는 별 수 없이 샤프를 놓고 회전의자를 돌려 병진이와 마주앉았다. 방 안에는 둘밖에 없었다. 요즘 엄마는 병진이를 옆에서 감시하지 않았다. 놔두어도 혼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앨리스에게 대만족이었다. 오늘 엄마는 오랜만에 백화점으로 외출중이었다.

“다시 바꾸자고?”

“응.”

“왜?"

"그걸 몰라서 물어? 나 아빠한테 매일같이 얻어터지고 있잖아. 지난번엔 담뱃불로 지지려고 했다고. 네가 구해준 건 고맙지만 이렇게는 못 살겠어."

앨리스는 피식 웃었다.

"맞고 좀 살면 어때?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으면서 학원에서 썩는 것보단야 낫잖아. 태권도장 사범도 가끔 엉덩이에 발길질을 하던데. 니네 엄마는 도대체 얼마를 주고 이 쓰레기같은 걸 산 거니? 이런 걸 하루종일 들여다보느니 개로 사는 게 훨씬 행복하잖아.”

앨리스는 ‘효도수학’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래도 더 이상 매는 못 맞겠어.”

“아휴, 이래서야 원, 요즘 애들은 약해빠졌다니까. 개로 산 지 이제 한 달도 안 됐잖아. 세상에 신나기만 한 인생이 어디 있어?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맷집 붙으면 견딜 만 해. 맞다보면 맞는 요령이 생기거든. 손이 닿기 전에 몸을 살짝 비틀어서 덜 아픈 데로 맞는다거나...”

“앨리스, 내 말은 그 말이 아냐. 우리 아빤 너한테는 그냥 남이지만 나한테는 진짜 아빠야. 공부 못 하고 놀기만 한다고 학교나 학원에서 맞는 건 괜찮아. 남이 때리는 거니까. 하지만 아빠한테 맞는 건 말이지, 정말 힘들다구. 그냥 맞는 게 아냐.”

“그냥 맞는 게 아니면, 뭐야?”

“몰라, 그냥 학교에서 맞는 거보다 힘들다는 얘기야. 뭐랄까, 선생에게 맞아도 좀 지나면 안 아파. 하지만 아빠한테 맞으면...시간이 한참 지나도 그 자리가 쑥쑥 아파. 기분도 정말 나쁘고 한참동안 우울해. 이렇게 되기 전에는 아빠한테 매 맞은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몰라. 앨리스, 내 아빠는 왜 날 때리는 걸까? 혹시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 잘못한 게 없어도 그냥 때려주고 싶은 걸까?”

앨리스는 고개를 돌린 채 병진이의 말을 들었다.

“너도 날 때린 적이 있잖아.”

“그래. 나도 장난삼아 널 때린 적이 있어. 정말 미안해. 이젠 사람이 되면 그 어떤 강아지도, 아니 어떤 동물도 때리지 않을 거야. 아, 사람도 때리지 않을 거야.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 앨리스.”

앨리스는 입술을 비죽이 내밀더니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면야."

병진이는 이 말을 듣자 너무 기뻐 펄쩍 뛰었다.

"정말?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거야?"

"예전처럼 바꿔주는 건 곤란해.”

“뭐야, 그럼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

“꼭 그렇지는 않아. 다시 바꿀 방법이 있기는 해. 하지만 예전처럼은 안 돼."

“예전과 똑같이는 안 된다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앨리스는 샤프 끝으로 머리를 긁었다.

“다른 가족들 중 한 명을 골라 바꾸어야 돼."

“뭐라고?”

“네가 엄마나 아빠 둘 중 하나를 골라 바꿔야만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어. 네가 사람으로 돌아오는 대신 엄마나 아빠는 지금의 네 모습이 되는 거야. 둘 중 누구를 개로 만들지는 네가 정해. 너희 가족은 엄마, 아빠, 너 밖에 없잖아. 그러니 선택은 간단해. 엄마가 싫어, 아빠가 싫어?”

병진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 중 한 사람을 없애야만 하다니.

“결정하기 힘든데.”

“왜?”

“엄마든 아빠든 둘 다 있어야 돼. 엄마가 없으면 밥은 누가 해 주지? 청소도 해야 하잖아. 그리고 아빠는 돈을 벌어오잖아.”

“네가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둘 중 하나는 강아지로 바꿔야 해. 선택하면 둘 중 하나는 없어질거야. 잘 생각해 봐. 누가 없어지는 게 좋아?”

병진이는 생각에 잠겼다.

“어, 엄마로 할게. 엄마는 밥을 해주지만, 밥은 마트에 가서 사 올 수 있으니까. 청소는 어떻게든 하면 되고. 아빠가 돈을 벌어오니까, 아빠는 못 바꿔. 아빠가 없어지면 돈은 누가 벌어? 돈 버는 건 어렵단 말이야.”

“엄마를 바꾸기로 결정했어?”

“으...응. 그런데, 엄마가 강아지가 되면, 넌 어떻게 되는거야?”

“그건 걱정 마.”

앨리스는 눈을 찡끗했다.

“난 해방될 거야. 네 눈앞에서 사라질거야. 넌 네 아빠한테 얻어맞을 엄마나 걱정해.”

병진이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눈앞에 꼬리를 흔드는 비글 강아지가 앉아 있었다. 몸이 개운했다. 마치 들판에 누워 산들바람을 쐬며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병진이가 팔을 뻗자 강아지가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아, 엄마.”

병진이는 강아지가 된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거실에는 엄마가 외출하면서 들고 나간 핸드백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없어지자 아빠는 자주 집에 늦었다. 어떤 때에는 집에 전화만 걸고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우리 병진이, 이제 다 커서 집에 혼자 있어도 되지? 그럼 아빠는 아들만 믿고 열심히 일한다아~”

병진이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왜냐하면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엄마가 늘 옆에 있었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따뜻한 강아지가 되어 곁에 있었다. 강아지가 된 엄마는 한결같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조깅을 하자고 조르고, 집안일을 하는 병진이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따라다녔다. 병진이가 공부를 게을리한다 싶으면 문제집을 물고 와서 앞에 떨어뜨렸다.

가끔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일주일에 두세 번 오셔서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보다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병진이는 남기지 않고 먹었다. 종합반 학원과 태권도장은 계속 다녔지만 지긋지긋한 '효도수학'은 갖다 버렸다.

병진이는 아빠가 강아지가 된 엄마를 때릴까 봐 주의를 기울였다. 아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병진이는 엄마를 매일 밤 끌어안고 잤다. 하지만 병진이가 학원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어쩔 수 없었다. 아빠가 없을 때 병진이는 엄마를 껴안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엄마는 담배 냄새를 풍기며 낑낑거렸다. 때로는 다리를 절룩이기도 하고 꼭 끌어안으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병진이는 눈물이 났다. 엄마가 아빠한테 얻어맞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만 안 때리면 좋을 텐데. 그럼 최골 텐데. 진짜로.”

병진이는 아빠가 개를 학대하는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왜 아빠는 힘없는 동물을 두들겨패는 걸까?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점점 엄마가 고통에 차서 낑낑대는 소리를 낼 때가 많아졌다. 병진이는 엄마와 지내는 시간을 되도록 늘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빠의 매질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병진이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병진이는 마음이 아팠다. 엄마를 사람으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면 학습지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몰라.’

학원을 더 다녀야 할지도 몰랐다. 병진이는 겁이 더럭 났다. 걱정에 싸인 병진이는 여름 방학이 끝나가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학원에서는 중학교 과정을 준비하는 마지막 특강을 시작했다.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이 잦아졌다. 학교 수업이 끝난 병진이는 집에 들러 엄마에게 밥을 주고,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다시 학원으로 갔다. 아빠도 바빠지는 모양인지 점점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아지면서 하루종일 엄마 혼자 집을 지키게 되었다. 병진이는 생각했다.

‘차라리 다행이야.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면 엄마가 맞을 일이 없으니까. 내가 엄마를 옆에서 지켜주진 못하지만 내가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생각할 테니 안심할거야. 주말에는 내가 집에 있으니 아빠가 엄마를 때리지는 못하겠지.’

병진이는 매일 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기어나오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병진이는 평소보다 학원에서 늦게 돌아왔다. 모의고사 준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벨을 누르는 대신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온 병진이는 현관에 놓인 아빠의 구두를 발견했다. 거실로 들어가자 불 켜진 베란다에서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한 손으로 엄마의 목을 잡아서 허공에 흔들어대고 있었다. 숨이 막힌 엄마는 눈알이 불거진 채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엄마의 한쪽 눈알과 마주치는 순간 병진이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아빠는 엄마를 차가운 베란다 바닥에 내던졌다.

병진이는 방으로 도망쳤다. 더 이상 엄마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길은 한 가지 뿐이었다.



한참 궁리한 끝에 병진이는 공원에서 앨리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앨리스가 처음 입을 열어 사람의 말을 한 장소가 공원이기 때문이었다. 병진이는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전화를 한 날, 병진이는 혼자 공원으로 가서 앨리스와 처음 말을 나눴던 벤치를 찾아 앉았다. 밤 아홉시 반이었다. 늦여름의 열기가 아직 밤공기에 남아 있었다. 

“앨리스, 앨리스, 어디 있어?”

병진이는 앨리스의 이름을 불렀다. 나직한 목소리가 공원에 멀리 울려퍼졌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거기서 뭐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흘끔 돌아보더니 회양목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앨리스, 앨리스, 나타나 줘. 엄마가 맞아 죽을지도 몰라.”

밤공기는 서서히 차가워졌다. 산책하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윽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들리던 고양이 울음소리도 이제 들리지 않았다. 춥고 무서워졌다. 바람을 맞은 사철나무 가지가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별조각 하나 없는 검은 하늘이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서움을 참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보았지만 앨리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병진이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자마자 병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했다. 침대에는 똑같이 생긴 강아지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엄마의 목에 목걸이가 둘러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병진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목걸이를 걸지 않은 강아지, 바로 앨리스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다니니? 밥은 먹었어?”

엄마가 뒷발을 들어 코끝을 긁어댔다. 날리는 털에 앨리스가 찡그리더니 말했다.

“나를 왜 찾아다녔는지 알고 있어.”

병진이는 겨우 침대로 다가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 듯한 눈치였다. 둘의 모습은 똑같았지만 앨리스는 강아지의 탈을 쓴 귀신 같았다.

“이 바보야, 네 아빠가 개만 보면 발길질부터 해대는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알고 있었지. 하지만 목까지 조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바보야, 그렇게 때리는 사람이 목을 못 조르겠어?”

병진이는 한숨을 쉬었다.

“앨리스, 난 몰랐어. 아빠가 그 정도로 엄마를 괴롭힐 줄은 몰랐단 말이야.”

“넌 아직 애기구나. 네 아빠가 뭐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니?”

“앨리스, 한 번 더 부탁할게. 엄마를 다시 사람으로 바꿔줘. 아빠가 불쌍하지만 안되겠어. 너도 알잖아, 앨리스. 너한테 이름도 지어주고 제일 예뻐해준 가족이 엄마였다구. 그러면 적어도 엄마는 아빠를 두들겨 패지는 않을 거야.”

“괜찮겠어? 그럼 효도수학인지 뭔지 맨날 할 텐데.”

“뭐, 하라면 해야지. 엄마가 아빠한테 맞아 죽는 것보다는야 낫잖아. 그런데 앨리스, 엄마가 사람으로 돌아오면, 개로 살던 기억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난 개로 살던 시절을 죄다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엄마가 사람으로 돌아오면 나를 엄청 야단칠 텐데. 엄마를 개로 바꾸어 버렸다고.”

“그건 걱정말아.”

앨리스가 싱긋 웃었다.

“자기가 원해서 개로 바뀔 때에만 기억이 남아 있어.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개로 바뀌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비유하자면 때린 사람은 잊어먹어도 맞은 사람은 기억을 잘 하는 거랑 비슷하지. 더 자세히 설명해줄까?”

“아니, 아니, 듣고 싶지 않아.”

병진이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앨리스는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병진이는 그 모습에 등에 찬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몸서리를 쳤다.

“그럼 네 소원대로 해 줄게. 오늘 네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되면 네 엄마가 다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이제 네 가족이 모두 한 번씩 개로 변했으니 이제 날 찾아도 나타나지 않을 거야. 난 영원토록 자유로울 거야. 넌 앞으로 네 가족들이랑 잘 해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마친 앨리스는 일어서서 현관으로 갔다. 병진이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 현관문 앞에서 앨리스는 병진이를 뒤돌아보았다. 어서 열지 않고 뭐 하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병진이는 잠금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앨리스는 천천히 걸어나갔다. 마치 풍선으로 만든 개 인형이 떠나가는 것처럼 앨리스의 걸음에서는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에 떠가는 마른 꽃잎같이 가볍고 홀가분했다.

병진이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유유히 사라지고 나서 병진이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현관문을 닫았다. 잠금쇠를 하나씩 채우는 소리가 감옥 문을 닫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몇 년 동안 가족으로 같이 살던 강아지 앨리스는 이제 자유로워졌다. 앨리스가 부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진이는 언젠가 자신도 앨리스처럼 완전히 자유로워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안방에 누운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그동안 무척 피곤했나 보다. 병진이의 배 위에 앨리스의 모습을 한 아빠가 올라와 있었다. 배고프다고, 먹이를 달라고, 조깅하러 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아빠가 없어지자 돈이 쪼들렸다. 엄마는 병진이의 손을 잡고 이제 우리 둘만 남았으니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병진이는 기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간 집은 낡은 다세대 주택이었다. 병진이는 학원도 태권도장도 그만둬야 했다. 학교까지는 마을 버스를 타고 다녔다. 엄마는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다가 유치원 주방에 취직하게 되었다. 병진이는 매일 학교를 마치면 하루종일 집에서 강아지가 된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이 되었다. 엄마가 유치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밤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전화만 하고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병진이는 요리하고 청소하는 법을 익혔다. 아빠가 병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면 병진이는 예전에 앨리스에게 그랬듯이 발로 차거나 밀어내는 대신 방 안에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 이젠 누구의 몸에도 손대기 싫었다.

학원도 태권도장도 가지 않는 겨울방학은 춥고 길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창틀에 낀 살얼음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차가운 화장실에서 발발 떨며 얼굴에 물을 끼얹고 나면 부엌에서 틱틱 하는 보일러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추워도 아침 조깅을 조르는 아빠를 데리고 나서면 바싹 마른 찬바람이 휘몰아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병진이는 아빠와 열심히 달렸다. 때로는 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침에야 퇴근한 엄마가 돌아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병진이는 침대에 누운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아빠가 없어서 힘들지?”

병진이가 속삭였지만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밤을 새우고 아침에 퇴근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병진이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엄마가 끊어준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남는 시간에는 집안일을 했다. 세탁과 청소를 하면서 하루를 꼬박 보낼 때도 있었다. 매일 밤 병진이는 아빠를 안고 잠이 들었다. 아빠 없이는 추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병진이는 행복했다.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것만 빼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겨울방학이 끝났다. 병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병진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병진아. 아빠가 보고 싶지 않니?”

보고 싶을 리가 없다. 매일 같이 살고 있는데.

“이제 아빠가 우릴 떠난 지 반 년이 지났어. 아빠가 일부러 우릴 버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나쁜 일을 당하셨을 수도 있어. 하지만 엄마 생각엔 아빠가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아. 병진이 너 생각은 어떠니?”

병진이는 엄마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낯선 아저씨를 집에 데리고 오자 이해할 수 있었다. 새 아빠가 생긴다는 사실을. 엄마의 새 남편이 될 아저씨는 아빠보다 덩치도 크고 둥글고 붉은 얼굴에 땀을 뻘뻘 흘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저씨는 껄껄 웃으면서 두툼한 손으로 병진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놓더니 아빠를 번쩍 들어 올리면서 큰 소리를 질렀다.

“이야, 집에 강아지도 키우는구나! 아주 맛나게 생겼는데!”

병진이는 그때 아빠의 부들부들 떠는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병진아, 아빠 살려 줘. 그건 분명 아빠의 눈빛이었다. 새 아빠가 아빠를 잡아먹거나 아니면 예전에 아빠가 그랬듯이 매일같이 두들겨 팰지도 모른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아빠는 병진이의 바짓가랭이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다고 다시 병진이나 엄마가 강아지가 될 수도 없다. 그러면 아빠가 사람으로 돌아오고, 새 아빠까지 합치면 한 집에 아빠가 둘이나 생기게 되니까.

중학생이 되자 바빠졌다. 학원에 가지는 않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늦어졌다. 새 아빠가 될 아저씨는 가끔 저녁을 먹으러 집에 왔다. 저녁상을 물리고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며 어색한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앉아 있으면 병진이는 아빠에게 리드줄을 매고 공원으로 나갔다. 한 시간 정도 힘껏 달리다 오면 아저씨는 가고 없었다. 가끔은 엄마도 아저씨를 따라 나가고 없을 때도 있었다. 병진이는 아빠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남은 설거지를 했다. 왠지 몸이 무거웠다.

“이젠 너도 중학생이야. 어른스러워져야지.”

엄마는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병진이의 교복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주변을 슬며시 돌아보더니 병진이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말 잘 안 들으면 아빠한테 말해서 혼낼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잘 하도록 해.”

어느 아빠? 순간 병진이는 심하게 머리가 흔들렸다. 엄마는 새 아빠를 말한 거겠지. 병진이는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만 나도 중학생이야. 아빠도 나도 더 이상 괴로워할 수는 없어. 

병진이는 아빠를 리드줄에 묶고 공원에 나갔다. 둘 다 심장이 터져나갈 만큼 달린 다음에야 병진이는 리드줄을 풀었다. 줄에서 풀려난 아빠는 병진이를 돌아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집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다. 병진이는 아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집을 떠나는 앨리스처럼 가벼움만 가득한지, 강아지가 된 엄마처럼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지 궁금했다. 아빠의 눈망울에 중학생인 병진이가 명확히 이해할 수 없는 뒤섞인 감정이 떠올랐다. 병진이는 가슴이 꽉 막혀왔다. 

그러나 아빠는 시간을 끌지 않고 네 발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병진이의 손을 살며시 핥고는, 등을 돌리더니 휙 하고 새벽 이슬에 젖은 텅 빈 공원길을 내달려갔다.

“아빠, 내가 매일 올게. 밥 가지고 올게.”

달려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 병진이의 눈에서, 아빠에게 얻어맞았을 때보다도 짜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몇 달 후, 공원을 뛰놀던 한 소녀가 벤치 위에 앉아 있는 비글 강아지를 발견했다.

“와아, 귀여워! 정말 귀엽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가만히 앉아 소녀의 손길을 탔다. 소녀는 강아지가 도망치지 않아 기뻤다. 계속 쓰다듬고 귀를 만지작거려도 강아지는 가만히 있었다. 소녀는 이 강아지가 좋아졌다.

“너, 나랑 같이 가서 살래?”

소녀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 밤 소녀가 너무 지쳐서 말없이 앉아 있자 강아지가 소녀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소녀는 강아지의 털을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천천히 소녀의 손을 핥으며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팔에 머리를 얹는 대신 똑바로 쳐들어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사람의 말로 속삭였다.

“너, 나랑 바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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