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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건너편

2007.06.02 23:1806.02





        <건너편>





  제국의 공포로 일컬어지는 황제 친위대 흑색기사단의 사령관인 마스티프 장군은 케르베로스 황제의 철권통치를 온몸으로 구현하는 인물로 카니리아(Caniria) 제국에서는 명실상부한 제2인자로 손꼽혔다. 케르베로스 황제는 노예시장에 팔려나온 어린아이였던 마스티프 장군을 발탁하여 친히 키우고 가르쳐서 지금의 그로 만들었다. 카누스 황가의 마지막 인물, 정실 황후도 공인된 후계자도 없는 케르베로스 황제가 마스티프 장군을 비공식적이지만 아들로 삼았다는 소문은 거의 정설이었다. 마스티프 장군이 케르베로스 황제와 알려지지 않은 노예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소문은 입 밖에 내는 즉시 그 발설자에 대한 사형선고가 되는 금기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돌아다녔다. 어떤 이유에서든 케르베로스 황제에 대한 마스티프 장군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케르베로스 황제의 뜻은 곧 마스티프 장군의 행동이었다. 마스티프 장군이 케르베로스 황제의 뜻에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스티프 장군과 흑색기사단의 가공할 무위(武威)와 케르베로스 황제의 통치력은 카니리아 제국의 힘을 절정으로 올려 놓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케르베로스 황제에게는 황후도 후계자도 없고, 마스티프 장군은 유사시 케르베로스 황제를 대신할 수 있는 제2인자가 아니라 케르베로스 황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제2인자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케르베로스 황제가 쓰러지는 그 순간 마스티프 장군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제국의 황제위는 공석으로 남게 된다.

  카누스 황가 이전의 제국 황가였고 지금은 공작가로 그 혈통을 이어 오고 있는 하운드 가문의 우두머리인 블러드 공작이 노린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평소 제국의 국경 바깥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독거족과 훈트족의 소란은 제국의 입장에서는 단지 귀찮은 파리떼의 붕붕거림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훈트족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조직과 진용을 갖추고 노도같이 밀어닥쳐 순식간에 방어선을 돌파하고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 훈트족의 말발굽 아래 변경이 마구 짓밟히고 있다는 소식을 받은 케르베로스 황제는 마스티프 장군과 흑색기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마스티프 장군은 즉각 3천 명의 흑색기사단을 이끌고 출동했고, 그 가공할 전력 앞에 훈트족은 단숨에 납작해져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철군을 준비하는 마스티프 장군에게 전해진 것은 케르베로스 황제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블러드 공작의 황제 즉위 소식이었다. 소식을 가져온 블러드 공작, 아니 블러드 신황제의 전령은 마스티프 장군에게, 속히 돌아와 선황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을 전했다. 마스티프 장군 본인은 물론 흑색기사단 전원도 무장을 해제한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거기에 덧붙어 있었다.

  황제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을 들은 순간, 케르베로스 황제에 대한 마스티프 장군의 충성심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변했고, 예상에도 없었던 블러드 공작의 즉위와 그에 덧붙은 흑색기사단의 무장해제령은 곧 분노와 블러드 공작에 대한 의심으로 불타올랐다. 마스티프 장군은 단칼에 블러드 신황제의 전령을 토막내고는 휘하의 흑색기사단에게 긴급명령을 내렸다. 10분 후, 마스티프 장군 휘하 흑색기사단 전원은 반역자 블러드 공작 및 하운드 공작가의 전원 ― 여자든 어린이든 심지어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도 ― 을 처단하여 케르베로스 황제의 원수를 갚는다는 목적으로 일제히 궐기했다.

  모든 것은 블러드 신황제가 예상한 대로였다.

  블러드 황제는 곧 마스티프 장군과 흑색기사단을 반란군으로 선포했고, 제국군은 블러드 황제를 인정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마스티프 장군과 흑색기사단은 비록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했지만, 이제는 제국 전체가 그들에게는 적지였고 어떤 형태의 보급도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싸워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천 명의 흑색기사단은 한 명도 마스티프 장군의 휘하를 이탈하지 않았다.

  케르베로스 선황제가 서거하고 마스티프 장군과 흑색기사단이 반란군으로 선포되고부터 50일간, 훈트족 준동지로부터 제국 수도에 이르기까지의 최단코스는 제국군과 흑색기사단이 흘린 피로 뒤덮였다.





  그리고 51일째.

  제국 수도권을 감싸고 흐르는 쿠르츠하르 강 건너편에서, 마스티프 장군은 전사했다. 그를 죽이기 위해 블러드 황제는 쿠르츠하르 강가에 지름 1킬로미터의 땅을 파내고 폭약을 설치했다. 마스티프 장군은 그 함정 한복판까지 들어왔고, 지름 1킬로미터의 원이 일시에 폭발하는 그 불지옥 속에서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산화했다. 제국군 2개 군단의 목숨이 그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 날 이후, 그 죽음의 덫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흑색기사단의 병사가 쿠르츠하르 강가를 방황하는 것이 종종 목격되었다. 제국민들은 그들을 검은 유령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으나, 그들은 목격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마스티프 장군의 죽음과 함께 긍지와 이성과 감정마저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처럼, 그들은 갈갈이 찢어진 흑색 갑옷을 걸친 상처 입은 몸뚱이를 이끌고 말없이 쿠르츠하르 강가를 헤맬 뿐이었다. 보살피지 못한 상처와 치료받지 못한 팔다리가 산 채로 썩어들어가는데도 그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하다. 건너야만 했던, 그러나 끝내 건너지 못했던 쿠르츠하르 강가에서 그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거역하고 그들의 마지막 날에 머물러 있다.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그렇게 강가를 헤매며, 이미 떠나간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마스티프 장군을 그 검은 유령들 틈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마스티프 장군은 갑옷째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으로 검은 말 위에 올라 달리고 있는데, 그 뒤를 이미 머리 팔다리 몸통이 떨어져 나간 모습으로 죽은 병사들과 아직 죽지 않은 병사들이 따르고 있더라고 말한다. 저 먼 곳에서부터 달려오지만, 쿠르츠하르 강물에 발이 닿는 순간 그들은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더라고 말한다.





  교차로에서 개가 울부짖는 것은 그 눈으로 여신을 보기 때문이다.
황당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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