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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오크 창녀

2008.06.02 13:0606.02

오크 창녀

난 돼지로 돼지의 자궁을 빌어 태어났다.
난 새끼 돼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랬다. 난 변해갔다. 발굽이 빠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돋아나고 얼굴은 갸름해지고 겉눈썹이 생겨나고 몸이 솜털도 없이 보송보송해져갔다. 나중에 안 바에 따르면, 온몸의 혈관을 나노 머신이 돌아다니면서 세포들을 개조하여 탄수화합물들을 갈아 끼웠다. 나노 머신들은 제 할 일을 다 한 뒤 분해 되어 배설물에 섞여 빠져나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을 것이고 반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태어난 나 같은 이들을 오크라 부른다.
나노 머신이 영구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회사들이 알고 있다는 괴문서가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 여부는 증명할 수 없었다. 설령 그 소문이 사실이라 해도 회사들이 시간이 흐르면 분해 되는 나노 머신 장사를 스스로 중지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다국적 독점적 대기업의 재산권을 거역하고, 영원히 작동하는 나노 머신을 요구할 권리가 내게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중간 중간에 분해 되는 나노 머신 용액을 살 권리만이 내게 주어져 있었다. 어떤 나노 머신은 개조되지 않는 인간 보다 더 뛰어난 지성을 갖추게 한다지만 그건 비쌌다.
일터와 내 침소는 가까웠다. 사이버네틱스 장치들 덕에 난 하루 30분만 잔다. 푸르게 빛나는 나노 머신 용액을 주사 받았다. 용액은 날 인간으로 유지시켜줄 것이다. 용액이 나를 비틀어 날 얼마나 처음과는 다른 동떨어진 존재로 바꾸는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용액이 내 피 속에 존재하는 한 난 늙지 않고 살해되지 않는 한 죽지도 않는다.
침소에서 일터로 가는 짧은 복도엔 광고들로 날뛴다. 지금 내겐 그것들을 살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 광고들은 구체적인 상품이 아닌 상품의 종류와 성능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다. 내 눈은 차마 그것들을 외면하지 못 하고 할깃거린다. 매니저의 재촉이 스피커를 통해 울리고 나서야 발걸음을 빨리 한다.
복도를 걷는 내 몸 위엔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다. 내 늘씬한 알몸은 젊은 인간 여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크의 표지인 돼지 꼬리를 뺀다면 말이다. 오늘도 일터로 나선다. 할인점 한 칸에 자리 잡은 성매매 업소에서 난 일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성노동자 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을 내면 날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유전자 변형 인간이나 가난한 사람이 주로 고객이다. 임금은 적지만 내겐 노동 3권이 있고 퇴직금도 나온다.
성노동이 적법한 노동이 된 지는 오래 되었다고 들었다. 사고자 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있는 산업을 무작정 막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지 인간들은 지난 세기를 통해 깨달았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여 성노예로 몰아가는 인신매매가 국제적으로 음성적으로 줄기차게 이루어진 이후에야, 성병이 관리 되지 않고 성노동자들이 주택가에 스며든 이후에야, 주류 사회는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했다.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난 미성년자를 성노동자로 만드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난 그 틈새시장을 노리고 태어났다. 지금 나는 5살이고 인간 육체 연령으로는 16세 즉 육체적으로는 거의 성인이다. 만 18살이 될 때까지 시민권을 얻지 못 한다면 난 정육점에 사람 고기로 팔릴 것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 한 이에겐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음울한 붉은 빛 조명 아래 미리 피임약 여러 알을 물과 함께 들이켰다. 피임약을 먹지 않으면 무엇이 내 자궁에서 나올지 나는 모른다. 물에선 씁쓸한 맛이 났다. 내 미각은 인간 보다 돼지를 닮았다. 인간 보다 섬세하고 방대하다. 내 미각을 통해 날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아는지 고객들은 주로 내 입을 탐한다. 난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내 고통을 판다. 이는 착취당하는 것이지만 그 밖에 내가 살아갈 방도는 없다.
오늘 첫 손님이 들어왔다.
내게 돈이 더 쌓인다면 몇 년 뒤엔 시민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정육점에 팔릴 가능성은 높지는 않다. 정육점에 주로 진열되는 건 이성이 처음부터 주어진 적 없이, 인간 유전자를 넣어 길러진 사람 고기 맛 돼지다. 제대로 인간이 되어 할인점 밖 거리 위에 하이힐을 신고 선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의 페니스 앞에 입술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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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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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에 쓴 글들은 제 생각으로도 연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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