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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낭만적 상상

2008.05.04 20:4005.04


짙은 쪽빛 물이 가득찬 욕조 안에 향유를 떨어뜨린다. 똑, 똑, 똑. 향내는 병 끝에서 물속으로 공기 중으로 서서히 퍼져나간다.  코 끝에 감도는 향 사이로 발끝을 뻗는다. 수면이 미미하게 떨리고 완만한 곡선의 하얀 종아리가 물 속에 잠긴다. 긴 - 그러나 결코 마르지는 않은 -  손가락이 흰색의 자기 벽을 감싸듯 쥔다.  

여자의 움직임이 일시 멈춘다. 두 종아리를 물에 담근 채로 물의 온도를 살펴보려는 듯 여자는 기민하게 움직인다. 팔로 단단히 몸을 지탱한 채로 두 다리를 살짝 들어올린다. 물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종아리들은 마치 은빛으로 빛나는 물고기같다. 발끝을 까딱이자 그것들은 장난스럽게 꼬리를 흔들고, 수면을 튕긴다.  

  몸을 감싼 타월 안쪽으로 언뜻 허벅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푸른 실선이 비쳐보이는 그것은 여자의 움직임에 아슬아슬하게 - 혹은 대담하게 - 자신을 내보인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고동치듯 침묵과 물소리가 간헐적으로 교차한다. 그녀는 욕실 안의 소리와 종아리에 감겨드는 운디네의 안타까운 손짓을 즐긴다. 여자는 상황의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안다. 그리하여 만족한다.

허리의 곡선이 급히 휘어진다. 찰박. 물소리가 사방의 벽을 두드리다 스러져간다. 무릎이 접히고 허벅지가 잠긴다. 덩굴이 지지대를 타고 오르듯 푸른 색감이 흰 타올에 감겨온다. 허벅지에 이어 엉덩이, 배꼽, 가슴 그리고 쇄골이 수면 속으로 침잠하고서야 여자는 욕조를 붙잡은 손을 풀어 두 손바닥 가득히 물을 뜬다. 향내와 울림이 욕실 안에 가득하다. 금빛 머리카락이 여자의 손가락에 가득 담겨 욕조의 뒤로 넘겨진다. 고개를 살짝 숙인 여자의 입가에서 숨이 흘러나온다.

ㅡ 하아.


딸깍, 욕실의 문이 느리게 열린다. 여자는 미동도 않는다. 들어온 남자는 욕조 아래로 흩뜨려진 폭포수 같은 금발을 피해 무릎 꿇는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술을 겹친다. 남자의 혀가 여자의 입술을 가볍게 핥고,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자 여자는 실소를 흘린다. 여자의 반응에 힘을 얻은 남자가 이윽고 대담해지고, 진지해진다. 여자는 또 한 번 웃는 듯 했으나, 남자의 얼굴에 가려져 다시 보이지는 않는다.

찰박, 큰 물소리가 나고, 여자는 인어처럼 몸을 뒤집는다. 은빛의 물방울 몇 개가 그녀의 완만한 등선을 타고 흘러내린다. 여자는 남자의 키스에 응하며 남자의 귀를 뜨겁게 어루만진다. 여자의 손끝이 강한 남자의 턱선을 간지럽히듯 타고 내려와 그대로 남자의 단단한 목으로 살짝, 떨어진다. 남자는 옅은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남자는 소리내어 웃고는 반격을 재개한다. 뜻모를 곳에의 접근을 허용한 그녀는, 숨을 헉 몰아쉰다. 남자가 계속 그곳을 공략하자 여자는 남자를 안고 가늘게 몸을 떤다.

이제 욕실에는 소리가 없다. 농밀한 접촉과 서로를 향한 갈구가 공간을 통제한다. 완만한 곡선과 선이 강한 직선이 서로 부딪치고 뜨거워진 여자의 피부가 차가운 남자의 피부를 달아오르게 한다. 부드러운 여자의 가슴께를 남자가 맛보는 동안 여자는 그의 머리에 코를 묻고 남성 특유의 체취를 맡는다. 그들은 서로가 상이함을 안다. 손끝으로, 내음으로, 따뜻함으로 상대방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asdf
댓글 2
  • No Profile
    야키 08.05.10 01:49 댓글 수정 삭제
    지이이이인짜 궁금한게 있는데,

    이런글을 쓸때 혹시... 경험을 참고로 하시나요?



    ..굳이 대답은 안하셔도 됩니다. 답변받고 싶기는 하지만 받으면 왠지 더 비굴해질것 같아.....
  • No Profile
    asdf 08.05.10 08:12 댓글 수정 삭제
    욕조가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 하하, 제목이 <낭만적 상상>이잖아요. 그리고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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