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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고양이와 엘리베이터

2008.04.26 00:4304.26

이매진 장르문학상 공모에서 SF상 탓던 글입니다. 당시엔 제가 군복무 중이라 상 타러 가진 못 했었죠. 평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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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엘리베이터

내가 30년 만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들은 건 온갖 다채로운 촌수를 자랑하는 친척들의 연이은 급사였다. 죽은 방식이 하도 다종다양해서 세상에 아직 이토록 많은 죽음이 있다는 게 언 듯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특별히 모험을 좋아하는 재기 발랄한 친척들을 두었던 것이 이만저만 짜증스럽지 않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다. 공정하고 엄격한 법률은 그들이 죽을 때마다 일정액의 돈을 내 앞으로 보냈고 그것들은 투자 신탁 기금 안에 착실히 쌓인 끝에 난생 처음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냉동되기 직전에 남북한이 통일되지 않았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요즘도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이름도 모르던 이들이 심심찮게 달라붙는 게 싫어져, 모든 연락을 끊고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적도의 바다 위에 요트 하나 달랑 띄워 놓았다. 얼어 있을 때에는 내가 얼기 이전에 나왔던 이미지들만을 회사가 양껏 제공해 주었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구해나갈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에 취미를 붙여 보겠다고 지름 1미터 짜리 반사 망원경을 샀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 접한 한쪽 밤하늘에서는 요란한 광고의 오로라만이 날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점들의 우연한 집합체로 밖에 보이지 않던 하늘에 더는 미련이 남지 않았다. 결국 망원경은 은빛 궤도 엘리베이터가 오만하게 서있는 인공 섬 한 귀퉁이에 조성된 숲을 향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 숲을 향하게 되었는 지는 알 도리 없다. 설령 낱낱이 밝힐 수 있다 하더라도 그대로 덮어두고픈 심정일 뿐이다. 빛살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카멜레온 마냥 탈바꿈하는 숲을 지켜보는 건 내 취향엔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이름 모르는 동식물을 볼 때마다 학명과 속성을 찾아보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재미는 쏠쏠했고 가끔씩 찾아와 공원처럼 숲을 거닐거나 데이트를 하는 하릴없는 인간들을 멀찍이 구경하는 것도 흥밋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이토록 지루하고 정적인, 30년 뒤의 세상을 미리 보고 싶어 냉동인간이 되었던 사내가 아니었다면 르시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든든한 은행 하나 점지해서 내 재산을 몽땅 맡기고 다시 얼어보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던 아침이었다. 이번엔 한 100년 쯤? 냉동 장치가 고장나거나, 냉동 처리 회사가 부도난 다음에 냉동 인간의 인권 따위는 상관 않는 사회가 찾아든다면 죽을 수도 있게 충분한 세월을 누워 있고 싶어졌었다. 내가 느낄 수 없다면 죽음도 고통은 아니다.
그날따라 더욱 더 잘 어우러진 빛과 숲은 자신들 어느 한 구석도 놓치지 말고 봐달라는 듯이 물기를 가득 머금었다. 새벽에 비를 뿌렸던 하늘은 맑게 개어 적어도 아침나절 햇살이 가혹하리라는 암시를 던졌지만 숲은 곰팡이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평안했다. 진하게 쌓인 갈등은 당장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망원경 렌즈에 눈을 딱 붙이고 선명도를 이론상의 극한까지 올리기 위해 꼼꼼하고 끊임없이 손가락을 놀렸다.
문득 수풀 한 귀퉁이에서 낯선 움직임이 일었다. 주황빛 바탕에 암갈색 줄무늬가 가느다랗게 쳐진 꼬리였다. 그 앞쪽엔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둘이 있었다. 꼬리와 눈동자가 한 덩어리의 검은 실루엣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묘한 매력을 풍기는 실루엣이다. 내 망막에 실루엣의 문신이 새겨졌다. 실루엣은 빛살 속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내어 부서졌다. 고양이였다. 15,6세 정도 되었을까. 세포 조작을 통해 자신을 온갖 팬시 캐릭터 모습으로 바꾸는 일이 내 이전 세대의 코스푸레 마냥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으니 그런 경우일 것 같았다. 한때의 유행에 내몰려 제 유전자를 소진시키는 일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고양이 같은, 어디에도 묶여 있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일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너무도 부드러워 내 마음 속 미인도를 직접 건드리는 것 같던 어둠의 영상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 소녀는 잠깐 그 거리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요트를 응시하는 듯 서있더니, 다시 땅에 손을 집고 궤도 엘리베이터 쪽으로 내달렸다. 나는 엉겁결에 한쪽 손을 내밀어 허공을 그러쥐었다.
나는 보트를 타고 궤도 엘리베이터 둘레에 만들어진 항구 공항 복합 도시로 갔다. 수 천 개의 호텔들과 부두로 둘러싸인, 지표면에서 으뜸으로 번영하는 도시다. 가장 호화스럽고 흥청거리는 곳은 붕새가 날아다녔다던 길을 가로지르고 있는 은빛 링이지만 링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맡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링과 위성의 감시 카메라들을 이용해 아이를 손쉽게 찾아주었다. 직감은 의외로 맞아 떨어졌다. 소녀는 떠돌이 신세로 지냈고 보호자 따위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나를 더욱 들뜨게 한 것은 그녀가 진짜배기 15살이었다는 점이다. 이제 막 성적으로 여무는 나이에 저런 변형을 거친 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해졌다.
가까이서 보니 복잡하게 이루어진 암갈색 털 줄무늬가 발가벗은 주황빛 소녀의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쓰레기통을 뒤지며 부랑자들에게 던지듯이 빠굴을 했다던 흔적이 온 몸에서 뚝뚝 떨어졌다. 이 정도 수술을 하려면 돈이 꽤 들텐데 저축한 것도 없나. 재빨리 검색을 해보니 가격 파괴 바람이 휩쓸고 간 뒤였다. 경쟁은 소비자를 유쾌하게 하고 시민을 사냥한다.
-아저씨예요?
소녀는 커다란 눈을 말똥거리며 자그마한 입술에서 반짝거리는 혀를 살짝 내민다. 독특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전자 변형을 했다가 결국 나돌아다니게 된 창녀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미성년 매춘을 비롯한 향락 산업이 내가 얼어 있던 기간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합법화되고 공식화된 것이 이 시장을 비튼 면도 있을 것이다.
-내 요트로 같이 갈래. 널 내 양녀로 들였어
-좋아요. 떠도는 것도 지쳤는데 잘 됐네요. 근데 양녀는 아네요. 나 남자예요. 물론 겉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고 Y염색체 따위도 없어요. 하지만 전 남자예요
나는 다시 르시를 보았다. 놀랄 만치 해맑은 웃음과 순해 보이는 커다란 검은 눈이 인상적이다. 짧고 곱실거리는 보랏빛 머리카락이 고체의 느낌으로 살랑거린다. 양아들이라니, 저토록 여성스러워 보이는데.
-괜찮아. 같은 남자끼리라니 더 잘 놀 수 있겠어. 너 이름이 뭐니?
-르시라고 불러줘요
나는 르시와 함께 보트를 탔다. 바람이 보트 아래에서 뿜어져나가며 물결을 밀어냈다. 수많은 이야기에서 배는 바람과 물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거리기만 한다. 보트는 이 불평등한 관계에서 보다 확실한 위치를 점한 체 잔인하리 만큼 우아하게 두 승객을 태우고 바다 위를 날았다. 나와 르시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내게 점차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요트에 이르자 르시는 탄성을 지르며 널찍한 갑판을 이리저리 꼬리를 살랑거리며 뛰어다녔다. 르시의 허리는 진짜 고양이처럼 힘차고 탄력이 넘쳤으며 포동포동하면서도 가늘었다.
-아저씨, 보니까 내가 왜 이런 수술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
-어디가?
-다 보여..... 실은 아버지한테 강간당했거든. 아버지 친구들한테도. 날 돌려가며 매일같이 팼었어요. 집안 일은 몽땅 나한테만 떠넘겼고. 어머니란 게 도망을 쳤으니 그러려니 해도 너무 했어. 남자일 때에도 난 꽤 예뻤지만 너무한 거 아냐
-정부에서 빼앗지도 않든?
-좆같은 나라여서 가정의 소중함만 죽어라 내세웠지
아직도 그런 나라가 있나. 아프리카 몇 군데나 망망대해 위의 좁아 터진 섬나라 몇 빼고는 없을 것이니 어떤 나라인지 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출했어. 국경을 넘은 다음 호스트 바나 게이 바에서 일하다가 돈 좀 모아서 세포 변형 수술했다고. 그 다음엔 내키는 데로 세상을 신나게 떠돌았어요
-니 아버지는 널 죽은 걸로 처리했더군. 그걸 살리는 건 쉬웠지만
-내 그럴 줄 알았어
르시의 얼굴이 잠깐 어두워졌다 밝아진다.
-조건들이 알맞아도 나쁜 사람을 난 상상할 수도 없다. 미친 권력 따위는 상황만 바뀌면 흔적조차 없어질 테니 마음 두지 말렴
나는 우선 샤워부터 시켰다. 한동안 꺼두었던 후각 센서를 활성화한다. 예상대로 르시에게선 싱싱한 풀 냄새가 났고 보드라운 살결의 맛은 달콤했다. 나는 보다 세련되고 고급의 호르몬 발생 유전자를 믿을만한 루트로 다운받아 르시에게 집어넣어 주었다. 르시는 말이 많고 애교가 넘쳤으며 잘 토라졌기에, 훨씬 더 흥미 있어진 요트 생활을 한동안 평온하게 즐겼다. 르시는 돈으로 사서 일일이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껍데기가 아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는 기분을 무의식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설령 그런 인형이 나랑 동등하달지라도 기분은 내가 바꾸지 않는 한 다르지 않는가.
한 가지 서운한 점이 있다면, 르시는 수영을 너무 잘했다. 도무지 고양이답지 않다. 바다엔 상어들이 있지만, 르시는 그 보다는 강하다.

-니네 아버지가 소송을 걸었데
르시가 시쿤등한 표정을 지었다.
-염병, 버릴 땐 언제고
르시가 상어들이랑 헤엄치고 있는 동안 아버지라는 사람에게서 홀로그램이 왔다. 꽤 초췌했지만 눈만은 희번뜩거렸다. 르시는 원래 폴리네시아 인이었던 모양이다. 관광, 단순 산업, 소수 문화 보호 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작은 겨레. 그런데 왜 지금은 일본 여자 같담. 물론 나는 민족성 같은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르시 아버지가 말한다.
-내게 탐을 넘기시오
멋대가리 없는 이름을 갖고 있었군, 르시.
-싫소
-이익금을 5:5 정도로 나누는 선에서 합의를 보는 게 어떻소. 탐의 사진을 보니 훨씬 예뻐졌던데.
-지금은 르시요
분노와 호기심이 뒤섞인 말투로 그가 말한다. 번역기는 정확하니까 대충 맞겠지.
-그 자식이 지었소?
나는 르시가 그 불쾌한 인간을 떠났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어떤 노인네가 화대 대신으로 지어줬다고 하더군요. 르시는 바라지도 않았던 선물에 기분이 좋았고. 나는 르시를 넘길 마음이 전혀 없으니 법정에서 만납시다
나는 홀로그램을 끄고 그쪽 주소에서 오는 모든 정보에 수신 거부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르시 아버지의 야욕까지 떨쳐내지는 못했다. 재판은 금방 끝났다. 법정은 선천적 지위보다는 양육 능력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르시는 완전히 내 여자였다. 내게 마술처럼 하나의 착상이 떠올랐다.
나를 3류 SF 영화에 나올 법한 깡통 사이보그로 바꿨다. 내용물은 거의 생체였지만 덕지덕지 붙은 번뜩거리는 금속 외관은 철판을 곳곳에 박은 미라로 나를 보이게 했다. 얼마든지 되돌아갈 수 있게 백업엔 유난히 신경을 썼다. 남은 몇몇 찌꺼기로는 눈알을 하나 만들어냈다. 접합 가능한 시신경 다발과 작은 팔다리를 갖춘 눈알이었다. 눈알에 원격 감각 기관과 통신기를 달아 내 일부로 삼았다. 르시를 설득해서 그녀의 왼쪽 눈을, 새로 만들어낸 팔다리가 있어서 스스로 움직일 수도 있는 눈알로 바꿨다. 눈알은 르시의 본디 눈과 제대로 조화를 이뤄 르시가 사물을 식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눈알의 팔다리 제어가 훌륭했기에 안구에 무리가 가지도 않았다. 내가 만들어 붙인 눈인데도 르시의 분노를 담아내기엔 넉넉히 진실했다.
-넌 너무 이기적이야. 아버지 보다 더해
르시의 힘은 지상의 어떤 야수보다도 강했지만 내 새로운 육신은 훨씬 더 강했다. 르시는 발악을 하다가 제풀에 지쳐 내 팔 안에 안기곤 했다. 내 세 번째 눈, 르시에게 박힌 눈알엔 내가 르시를 유린하는 모습이 비췄다. 나를 내가 공격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의 매니아다. 세상에 한 명밖에 없네
-그런 짓은 인형한테 해
-나에게 너는 인형일 뿐이야. 내가 너에게 그렇듯이 그냥 사물이지. 너는 짓밟히고 나는 때리면 되는 거야. 가끔은 그 반대도 재미있겠지만
-넌 미쳤어
-저 우주는 오염되어 있어. 오염된 적도 없었지만

침대에는 팔다리 달린 눈알이 뭉개져 피투성이가 된 체 놓여 있다. 잠결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설령 깨어있더라도 아픔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르시는 나를 떠나 바다를 건넜으리라. 토막 난 불가사리가 재생되듯 르시의 왼쪽 눈은 빠르게 되살아나 세계를 보게 될 터였다. 나는 팔다리 달린 눈알이 스스로를 낫게 할 때까지 지켜보았다. 팔다리 달린 눈알이 팔짝 팔짝 뛰어다니는 게 평소 같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요트 밖의 수평선을 바라다본다. 이제 르시의 눈도 다 살아났을 것이다.
나는 팔다리 달린 눈알을 집어 내 왼쪽 눈 자리에 끼워 넣었다. 원래의 기계 눈은 내다버렸다. 오른쪽 눈은 여전히 흉물스럽게 조금 튀어나온 망원 복합 렌즈다. 양녀가 가출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직 르시는 미성년이다.
수십 만 개의 위성들이 전 지표를 훑고 있는데도 르시는 잘도 들키지 않는다. 달에서도 지상의 세포 하나를 속속들이 파고 들 수 있는 감시 카메라들을 어떻게 피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밀림이나 할렘의 지하에만 쏘다니며 작은 짐승을 사냥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부랑자들에게 몸을 파는 모양이다. 아무도 믿지 않고 어떤 우두머리도 기억하지 않는 고양이인 르시는 계속 깊은 곳으로만 내려가느라 점차 장님이 되어 갈 것 같았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몇 백 년 쯤 남아 있는 일이긴 했지만.
-기쁜 소식입니다
나는 의자를 돌려, 소리만 나오도록 한 홀로그램 장치를 쏘아보았다. 경찰이었다.
-따님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참을성이 뜻밖에 없군. 요트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알려오다니. 경찰이 좌표를 말하고는 덧붙인다.
-직접 데리러 와달랍니다
-그러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요트 갑판 위에서 경비행기를 이륙시켰다. 르시와의 추억이 배어 있지 않은 장소는 요트 안에는 없고 경비행기도 예외는 아니다. 함께 밟던 페달을 혼자서 밟으며, 얼굴 중앙 쪽에 조금 치우치게 박아 넣은 팔다리 달린 눈알을 보면 르시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했다.

르시는 물에 젖은 체로 동남아 밀림 한복판에 꼿꼿하게 서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뚱이를 가까스로 추스르고 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간다. 내 커다란 그림자가 르시의 늘씬한 몸을 온통 뒤덮어버린다. 르시는 나를 올려다봐야만 할 처지에 빠진다. 드디어 나는 르시를 구할 수 있다.
-나를 왜 불렀지?
-아버지가 복권에 당첨되는 바람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어. 그거면 좋겠는데 사냥꾼들을 풀어서 나를 잡겠다고 설치지 뭐야. 너나 아버지나 세상이나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니가 그 중 나아
-후회할 걸
내가 르시의 뺨에 손을 대려했다. 르시가 가볍게 밀치더니 말한다.
-먼저 아버지를 처리해 줘
나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르시를 뒤쫓는 무리들을 소탕해달라고 부탁했다. 공공 서비스는 철저하고 공정하다. 권리는 내게 있고 그들은 정신 조작형을 받을 수도 있다.
르시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고는 넘어뜨린다. 흥건한 풀 냄새와 피비린내가 억센 금속 마디에 스며들 것 같다. 르시가 기억하고 있을 몇 마디를 읊는다.
-르시, 외계는 정치 경제적 의미 밖에 없어. 지성은 과학적 한계까지 흩어지겠지
르시가 얼굴을 찡그린다. 기묘하게 흔들리는 눈이 나지막이 내 뇌리를 엄습한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거쳐가고 흔적이 지워졌으며 다시 숱한 것들이 스쳐갈 입술이 엔진으로 달군 뺨에 촉촉하게 미끄러진다. 내가 나름의 경구로 삼은 그 말 뒤에 올 덧말을 붙이도록 하기가 두려운지, 르시가 곧바로 속삭인다.
-바보, 나는 니가 좋아


<고양이와 엘리베이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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